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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6화 (15/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6화

016. 유통기한(1)

“왜요.”

“뭐야. 난 줄 알고 있었어요?”

“지금 안 건데요.”

상혁은 그럼 이만, 하고는 몸을 돌려 걸어가려고 했다. 전아영은 그런 상혁을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왜요.”

상혁이 살짝 짜증을 냈다. 그 사이 몸에서 웅웅거리고 있던 마나가 죽었다. 2서클 보조 마법, 헤이스트의 지속시간이 끝난 것이다.

추욱.

헤이스트가 끝난 순간 상혁의 팔다리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헤이스트처럼 신체 능력을 높여 주는 보조 마법은 쓰고 나면 몸에 무리를 준다.

‘체력이 엉망이네.’

고시는 절반은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시원에서 공부한답시고 하루 종일 앉아 있었을 몸에 체력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지금이야 20대니까 이러고 살지 훅 가는 건 금방이다.

‘운동도 꾸준히 해 줘야겠어.’

일흔 살이 될 때까지 살아 봤기 때문에 상혁은 늙었다는 것의 느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상혁은 내일부터 스케줄에 일정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전아영을 쳐다봤다.

“왜 불러 놓고 말 없습니까? 할 말 없으면 갑니다.”

그러고 보니 전아영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긴 했다. 갑자기 앞서가던 여자가 뛰어가다가 비명을 지르길래 미친년 보듯 한 건 맞았다.

그게 전아영이란 건 지나가면서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제 나온 건가?’

옷과 몸을 말리고 공장에서 나올 때만 해도 공장에 인기척이 없었다. 물론 증원된 경비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지만 해가 없는 곳에서 쉐도우를 시전한 상혁을 눈치채는 경비는 없었다.

그렇게 유유히 빠져나온 상혁은 집까지 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헤이스트를 썼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앞에 전아영이 가고 있었던 것뿐이고.

‘다리 아파.’

다리가 욱신거렸다. 상혁이 진짜 가려는 찰나 전아영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같이 가요.”

“같이요?”

상혁은 전아영이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문득 논밖에 없고 가로등만 드문드문 있는 길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뭐, 그러죠.”

어차피 헤이스트의 지속시간도 다 끝났다. 헤이스트는 잘만 사용하면 체력도 기를 수 있는 보조 마법이었다.

오러를 다루는 기사 정도면 한 시간씩 헤이스트를 걸고도 부작용이 없지만, 마법사나 단련하지 않은 사람의 몸은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기사 수련생 중에서는 헤이스트로 체력과 다리 근력을 키우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돈이 토 나오도록 많은 귀족 가문의 자제인 경우가 많았다.

마법사들의 인건비는 그 정도 가문이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데려다 쓰는 것보다는 키워서 쓰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마탑에서 키워 낸 마법사가 실력으로는 최고였다.

‘지금 수준은 1분 정도가 한계인가?’

터벅터벅.

전아영은 앞에서 허공을 응시한 채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상혁의 옆모습을 힐끗거리면서 걸었다.

‘창피해.’

아무리 세상이 흉흉하다고 해도 그렇지, 뒤에서 그냥 오는 사람을 괴한으로 의심한 것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전아영이 상혁에게 말했다.

“저, 저녁은 드셨어요?”

지금 시각이 9시였다. 상혁은 그 말에 배를 한 번 문질러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지금 9신데요? 지금까지 뭘 하셨길래…….”

“운동 좀 했습니다.”

전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전아영은 그래도 말을 하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조금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난번에 드린 반찬은 다 드셨어요?”

“네, 잘 먹었습니다.”

“우리 아빠 음식 잘하시죠? 내가 말했잖아요.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네.”

“원래는 회사 버스 타고 다니는데 오늘 회사 버스를 놓쳤네요. 그래서 걸어가고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

상혁은 전아영이 참 말이 많다고 생각했다. 묻지도 않은 일을 혼자 줄줄 읊어 대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전아영은 마을 어귀가 멀리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조심스럽게 상혁에게 물었다.

“저녁 먹고 가실래요?”

“저녁이요?”

전아영의 볼이 붉어졌다. 라면이 저녁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자신이 말을 해 놓고도 의심의 여지가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아영이 두 손을 내저었다.

“그, 그게 아니라. 또 혼자 배달 같은 거 드시느니 차라리 집에 가서…….”

“그러죠.”

상혁은 전아영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았다. 확실히 전아영이 장담한 대로 그녀의 아버지인 전 씨의 요리 솜씨는 일품이었다.

그걸 또 먹을 수 있다면 염치 무릅쓰고 가서 또 얻어먹는 것쯤이야.

이건 염치 축에도 들지 못했다.

캉! 캉캉캉!!

멀리서 상혁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잔뜩 경계하는 하양이의 짖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전아영은 난처한 표정을 말했다.

“그, 전에도 말했다시피 원래 저러지 않는 애인데…….”

“다 사정이 있겠죠.”

상혁이 전 씨 집에서 농약을 두 박스가 넘게 들고나왔다. 그때 만났던 걸 기억하니 꽤 똑똑한 개다.

그 사실을 말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상혁은 하양이에게 눈을 한 번 찡긋해 보이고는 전아영을 따라 전 씨의 집 현관문을 넘었다.

“아빠! 상혁 씨 오셨어!”

“또 왔다고?”

저녁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전 씨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혁이 꾸벅 인사하자 전 씨가 상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둘이서 그런데 이 시간에 웬일로? 너희 설마…….”

“무슨 생각이야 아빠! 오다가 만난 거야. 우연히!”

“우연히?”

“어!!”

전 씨가 경계하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이 세상 모든 아빠들에게 딸과 같이 있는 남자는 일단 색안경을 끼고 봐야 할 상대였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우연입니다.”

“커, 커흠.”

“배고파. 빨리 밥 줘!!”

전아영의 성화에 전 씨는 알겠다면서 부엌으로 사라졌다. 전아영이 상혁을 슬쩍 보고는 아하핫, 하고 웃었다.

“조금 팔불출이셔서.”

끄덕.

상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전아영이 로봇이 된 것처럼 딱딱하게 반대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상혁은 그런 전아영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서 왜…….”

“그, 손님이시기도 하고.”

“도둑 아닙니다. 안 훔쳐 갑니다.”

전아영의 그런 행동이 자신이 무언가를 훔쳐 갈까 싶어 감시하는 것이라고 착각한 상혁이 손을 내저었다.

“도, 도둑이라뇨. 그게 아니라…….”

사실 전아영은 상혁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을 뿐이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 오빠, 첫사랑이던 오빠였기 때문에 괜히 앞에서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받으세요.”

상혁이 손짓을 했다. 전아영은 속으로 한 번 한숨을 내쉰 뒤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 순간 전아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더니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엄마가요? 병원에??”

우당탕탕!!

전아영의 목소리에 부엌에 있던 전 씨가 우당탕탕 소리를 내면서 뛰어나왔다.

“아빠! 엄마가 병원에…….”

“가자!!”

전 씨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는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한 채로 차 키를 집고서는 뛰어나갔다. 상혁도 그런 분위기에 휘말려 자신도 모르게 차에 올라탔고 차가 시내로 향했다.

* * *

병원 응급실.

“여보! 여보오오오!!”

응급실 문이 열리고 전 씨가 앞치마와 고무장갑을 한 채로 뛰어들어와 아내인 최영숙을 찾았다. 그러자 간호사들이 화들짝 놀라 전 씨를 쳐다봤다.

“저기, 최영숙 씨 응급실에 입원하셨다고 하시던데.”

전 씨가 여보를 찾으며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을 뒤로한 채 전아영이 침착하게 간호사에게 물었다.

상혁은 멀뚱한 표정으로 그것을 뒤에서 지켜봤다.

“아! 저기요.”

간호사는 금방 전아영과 전 씨, 그리고 상혁을 최영숙의 병상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최영숙이 머리가 산발이 된 채 누워 있었다.

“엄마!!”

“여보오오오!!”

전아영과 전 씨가 최영숙의 한 손을 각각 붙잡고는 난리를 피웠다. 특히 전 씨는 금방이라고 울 것처럼 울먹거렸다.

딸만 팔불출인 것이 아니라 애처가인 모양이기도 했다.

상혁은 신기한 눈으로 그런 전 씨를 쳐다봤다. 가나안 대륙에서는 점잔 떠는 귀족들만 봐 왔기 때문에 저런 전 씨를 보는 것이 퍽이나 독특했다.

“사장님.”

그때 처음 보는 남자가 전 씨를 불렀다. 전 씨가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고서는 남자를 불렀다.

“이 변호사님!!”

“죄송합니다. 그 김 사무장님이…….”

이제 보니 남자는 변호사였다. 그것도 최영숙이 사무장으로 일하는 변호사 사무실의 변호사가 바로 저 남자인 모양이었다.

이선호 변호사.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머리도 까치집이었다. 딱 봐도 누군가 쥐어뜯은 것 같은 머리였다.

그리고 변호사의 입에서 나온 전후 사정은 마치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는 주로 이혼 관련한 소송을 맡는 변호사였다. 그런데 오늘 이선호 때문에 이혼 소송에서 패소 당한 쪽에서 사무실에 쳐들어와서는 깽판을 부린 것이다.

최영숙과 이선호의 머리채를 붙잡고 난동을 부리다가 최영숙이 까무룩 기절한 것이었다.

“사무장님. 일어나세요. 괜찮아요.”

그렇게 설명한 변호사가 최영숙에게 가서는 말했다. 그러자 기절한 줄 알았던 최영숙이 눈을 번쩍하고 떴다.

“변호사님.”

“엄마……!”

텁.

전아영이 최영숙을 보고 소리치려는 순간 최영숙이 손으로 전아영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이 변호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안 하셔도 된다니까요.”

“한 번 제대로 본보기를 보여 줘야 이런 짓을 안 하죠. 자기가 졌다고 원한을 품고 오다니요. 제대로 한 몫 뜯어 낼 겁니다.”

최영숙은 당하고만 살 수 없는 성격이었다. 그녀의 두 눈이 활활 불타오르는 것을 보며 상혁은 풀썩 웃었다.

‘나이롱 환자라고 부르나?’

기절해 응급실로 실려 온 것 자체가 연기라는 뜻이다. 그때 최영숙이 상혁을 발견하고는 표정이 싹 돌변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요?”

“아, 어쩌다 보니…….”

“아영아.”

전아영이 질렸다는 듯 얼른 최영숙 옆에서 떨어졌다. 상혁은 최영숙이 뭐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저런 애랑 같이 놀지 말라고 한 거겠지.’

상혁은 그런 최영숙보다는 그 옆에 선 이선호 변호사에게 더 관심이 갔다.

2서클이 되자 상혁의 마나 감응력은 1서클일 때보다 당연히 더 민감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뭐 하고 다니는 사람이길래 몸속에 마나가 저렇게 많아?’

이선호 변호사의 몸에는 마나가 가득했다. 그런데 지구에는 딱히 마나를 사용하는 기사나 마법사가 없었다.

오히려 인간에게 해로운 오염물질이나 독성이 마나를 가득 품고 있었다. 그러니 이선호의 몸에 마나가 가득하다는 것은 한가지뿐이었다.

‘독이라도 마셨나? 아니면 병?’

몸 전체가 마나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그가 곧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라는 뜻이었다.

저만한 독이나 오염을 품고 있는 일반인이 건강한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상혁은 이선호를 따라 나왔다. 이선호는 담배를 입에 무려다가 상혁을 보고서는 멈칫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시내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하는 이선호입니다.”

전 씨와 함께 온 상혁을 기억하고 명함을 건넸다. 상혁은 그 명함을 건성으로 받았다.

“백상혁입니다. 그런데…….”

마법사의 호기심은 사람 사이의 매너나 에티켓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선호는 잠시 당황하였으나 인상을 찌푸리진 않았다.

“중독되셨습니까?”

하지만 이내 이어진 상혁의 말에 이선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툭하고 떨어뜨렸다.

상혁은 그런 이선호를 보면서 씩 웃었다.

자신의 추측이, 그리고 예상이 맞았음에 기뻐하는 마법사의 웃음이었다. 그래서 상혁은 한 번 오지랖을 부리기로 했다.

눈앞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갑자기 당장이라고 픽 죽어 버리면 자신의 이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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