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0화
010. 나한테만 노다지(5)
드드득.
“어, 어어?”
우수수.
벽에 더 큰 구멍이 뻥 하고 뚫렸다. 그곳으로 다 삭은 나무와 시멘트가 함께 뒤섞여 우수수 떨어졌다. 상혁은 얼른 마법을 멈추고는 입맛을 쩝하고 다셨다.
“쉽지 않네…….”
마법은 전능했지만, 지금 상혁에게는 요원한 길이었다. 한 3서클만 되었더라고 이러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상혁은 견습 마법사라고 불리기에도 부족한 1서클일 뿐이다.
단지 마나를 다루는 감각이 8서클 대마법사일 뿐이지 절대적인 마나량은 1서클에 불과했다.
“고서클 마법의 수식을 개량해서 1서클에 맞추는 건 무리인가?”
상혁은 손가락으로 벽에 삐죽 삐죽 치솟은 돌덩어리를 손으로 매만졌다. 돈을 들여서 집을 보수하기에는 가진 돈이 부족해 마법으로 보수를 시도하려고 했던 상혁이다.
벽에 구멍이 난 것을 메우기 위해 스톤월이란 마법을 1서클 마나로도 쓸 수 있게 개량하려다가 처절하게 실패했다.
벽의 구멍을 메우기는커녕 오히려 벽의 구멍이 더 커져 버린 것이다.
“가나안에서는 이걸로 성벽도 보수하고 많이 했는데.”
성벽처럼 적의 진군을 맡기 위해 지어진 거대한 것을 보수할 때는 섬세하게 마나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집은 달랐다.
거기에 지금 지훈이 살고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이런 집처럼 여러 군데가 낡고 삭은 곳은 더욱더 섬세 해야만 했던 것이다.
“차라리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게 낫지.”
괜히 마나만 잔뜩 소비하고 구멍만 더 크게 뚫려 버렸다. 차라리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어디서 나무를 잘라와서 판때기를 만들어 구멍을 가리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아우, 답답해.”
마법이 있어도 제약이 너무 많았다. 만약 성공했다면 상혁은 몇백만 원을 아끼는 셈이었지만 오히려 돈이 더 들게 생겼다.
“필요에 의해서 생기는 게 마법이라곤 하지만.”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간은 짧게 잡아야 1년이다. 마법을 개발한다는 건 지구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것과 비슷했다.
이론을 세우고 그걸 마탑에 제출하여 마법사들의 입회 하에 그것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 받는다. 그렇게 되면 이제 이론을 실체화 하기 위한 단계에 돌입한다.
이론을 실체화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실험이다.
연구실에서의 실험, 그리고 그게 성공한다면 외부에서의 실험, 그리고 그것까지 성공한다면 마지막으로 원래 의도했던 바대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실험까지.
이 세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새로운 마법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고작 하루 만에 하려고 했으니 실패하는 것이 당연했다.
제아무리 8서클 대마법사라고 해도 기존에 있던 고서클 마법의 수식을 뜯어고쳐 저서클에 맞도록 바꾼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튼튼하긴 한데.”
벽에서 돋아난 돌벽의 일부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매끈거리고 단단한 것이 내구성도 좋았다. 단지 그게 구멍을 메우면서 주변에 약해지고 삭은 벽을 부쉈다는 것이었다.
“마나 소모도 심하고.”
성공도 못 하고 심지어 마나 소모까지 심했다. 마나를 회복하는 방법이 아침에 오수 웅덩이에 찾아가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아껴써야 했다.
지잉-!
상혁의 오른쪽 눈이 마나안으로 물들었다. 그나마 상혁이 즉석에서 새로운 마법 개량에 도전한 것은 마나안의 보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집의 내구도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실패한 것이었다. 상혁은 마법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난 틀리지 않았어.”
상혁이 틀린 것이 아니다. 집이 틀린 것이지.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한 상혁은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돈도 없고.”
돈이 있었다면 그냥 전문가에게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상혁에게 당장 돈이 나올 구멍이나 돈을 벌 방법은 없었다.
‘뒷골목이라도 털어야 하나?’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면서도 가장 손쉽게 돈을 버는 것은 마법에 당해 강도를 당했다고 어디 떠벌릴 수 없는 이들을 터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암흑가다.
그 방식으로 가나안 대륙에서도 꽤 짭짤했던 상혁이 입맛을 다셨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가나안 대륙이고.’
지구는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수도 없이 많은 CCTV와 경찰과 깡패 사이의 유착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와 소설에 따른 기억이지만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 가나안 대륙이나 지구나 사람 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꼬르륵!!
상혁의 뱃속에서 거지가 울어 댔다. 상혁은 자신이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주린 배를 문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츄릅.
배가 고프다는 것을 깨닫자 침샘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침샘이 그렇게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의, 그것도 대한민국의 음식.
가나안 대륙에서 다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었지만 절대로 대체할 수 없었던 강렬한 MSG의 향연을 오십 년 만에 돌아와 이제 겨우 며칠 겪어 본 상혁의 머리가 미친 듯이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오늘은 치킨이다.”
직접 치킨집에 가서 먹을 생각이었다. 아직도 핸드폰은 오수 웅덩이에 빠진 뒤 절어 있어 다시 켜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니 시켜먹을 도리가 없으니 가는 수밖에. 하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방금 갓 튀겨나온 따끈한 치킨을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핸드폰도 고쳐야 하긴 할 텐데.”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마찬가지로 돈이 많았다면 그냥 핸드폰을 새 걸로 바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나마 가나안에서 50년간 살다 와서 핸드폰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바꿨을지 모른다.
핸드폰 중독 사회에서 상혁은 드물게 그 나이에 핸드폰 청정 구역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아껴 먹어야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첫날처럼 마음껏 먹을 수는 없었다.
한 끼를 인터넷 먹방러들이 먹듯이 매번 먹어치우니 남은 잔고가 수월하게 버틸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것도 뭐 대단한 음식도 아니고 분식이나 패스트푸드로 그렇게 나가 버리니 당연히 잔고가 가파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제 자제를 해야 한다.
“음식 만드는 마법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런 마법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긴 그건 마법이 아니라 창조의 영역이었다. 상혁은 분리된 생각 중 하나를 그쪽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할당한 후 봉투에서 딱 2만 원만 꺼내 들었다.
“하, 한 마리만 먹자.”
마음 같아서는 치킨도 다섯 마리씩 먹을 수 있었다. 칠십 먹은 노구가 아니라 이십 대로 돌아오니 소화력도 짱짱해서 먹는 족족 소화가 됐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나 고리를 쌓는 일은 의외로 커다란 체력 소모를 불러 온다. 그래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먹으면서도 거뜬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참아야 했다.
“난 마법사다. 난 내 이성의 주인이다. 내 머리와 몸은 내 이성에 종속된다…….”
상혁은 고민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3만 원이 더 들려 있었다.
“……무의식도 내 이성이지.”
그렇게 합리화한 상혁은 치킨 세 마리를 살 생각으로 파란 대문을 밀고 나왔다.
그런데 그런 대문 앞에 누군가 있었다.
“꺅!”
화들짝!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기까지 했다. 상혁은 놀란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세요?”
전아영은 자신을 전혀 처음 본다는 것처럼 물어보는 상혁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졌다. 그 때문에 전아영이 뭐라고 하려는 찰나 상혁이 전아영을 알아봤다.
“아! 지난번에 병원!”
“빨리도 기억하시네요.”
“그런데 여긴 웬일로?”
누가 오는지 알 수가 없으니 상혁은 얼른 서클을 올려 알람 마법이라도 설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아영이 상혁의 아래위를 훑었다.
‘깔끔하네?’
또 어디 가서 이상한 곳에 뛰어들진 않았을까 싶어 봤지만 상혁의 행색이 멀끔했다. 아니,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깔끔했다. 집의 컨디션을 보면 물도 나오지 않을 환경 같았는데 말이다.
“지나가다가 그냥 들렀어요. 또 어디 빠진 거 아닌가 싶어서.”
“일부러 빠진 거 아닙니다. 그리고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걸 걱정했다면 빠질 만한 곳을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집에 오다니. 하지만 전아영은 그런 것 따위에는 개의치 않는 굵직한 신경의 소유자였다.
“뭐 사소한 건 넘어가요.”
상혁은 전아영의 오지랖을 다시 한번 느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예전처럼 모질게 말하지는 않았다.
상혁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개가 짖는 집이었지.’
하천에서 전아영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마 개가 요란하게 짖던 그 집일 것이다.
“이 시간에 왜 문 앞에 서 있습니까? 두드리기라도 하든가.”
전아영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니라곤 했어도 상혁이 딱 선을 그어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문도 얼른 고치고 초인종도 좀 달아요. 그냥 문 열고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그럴 겁니다.”
상혁은 파란 대문을 끼익하고 닫았다. 그러고는 전아영을 그대로 지나쳐 걸어가려다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전아영을 쳐다봤다.
“밥 먹었습니까?”
“네? 아니요.”
전아영은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흐음 하며 고민하더니 전아영에게 말했다.
“치킨 먹으러 가는 길인데. 갈 겁니까? 물론 더치페이로.”
“…….”
전아영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멀뚱멀뚱하니 전아영의 시선을 받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전아영에게서 무언가 간질거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나?’
전아영의 몸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밥은 제대로 먹었어요, 그동안?”
상혁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사이 전아영이 상혁에게 물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먹었죠.”
“뭐 먹었는데요.”
“햄버거, 떡볶이, 피자, 탕수육…….”
“와.”
전아영의 눈빛이 변했다. 그러고는 상혁에게 말했다.
“그렇게 먹으면 몸 축나요. 따라와요. 건강하면서도 진짜 맛있는 음식이 뭔지 제대로 보여 줄 테니까.”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합니까?”
상혁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십 년 동안 지구의 음식에 비하면 순하디순한 가나안 대륙의 음식만을 먹어 왔다.
그래서 상혁은 자극적이고, 몸에 안 좋고 MSG 가득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웰빙?
MSG를 안 먹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그렇게 살 가치는 없었다.
“아이, 오라니까요!”
하지만 무작정 자신을 따라오라는 전아영을 보면서 상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나만 아니었어도 그냥 무시하는데.’
전아영에게서 느껴지는 마나가 신경 쓰였다. 마법사가 없는 줄 알았던 지구인데, 마나라니.
마법사의 호기심이 발동한 상혁이 어기적거리면서 전아영의 뒤를 따라갔다.
* * *
“아빠!”
아영은 상혁이 혹시라도 오는 길에 다른 곳으로 새지 않을까,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전아영 몸속의 마나에 흥미를 느낀 상혁이 다른 곳으로 갈 리 없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전아영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도착한 집을 본 상혁은 깨달았다.
‘역시. 이 집이었어.’
컹! 컹컹컹!! 컹컹!!
상혁이 전아영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집이다. 그렇게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낯선 타인을 보고 제법 위협스럽게 짖는 백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미친 듯이 짖는 개잖아.’
“하양이! 왜 그래!”
백구의 이름이 하양이인 모양이었다. 참 직관적으로도 지었다 생각한 상혁은 전아영을 보고 조금 진정한 백구를 보면서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상혁의 마나가 쑥 하고 빠져나갔다.
‘캄.’
그러자 으르렁대던 백구가 급속도로 진정됐다. 1서클 마법 중 하나인 진정 마법이었다.
“어라? 갑자기 진정했네.”
상혁이 의아해 하며 백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전아영에게 말했다.
“안 들어갑니까?”
“들어갈 거거든요?”
전아영이 틱틱대면서 백구의 엉덩이를 두드려서는 보냈다. 상혁은 진정은 됐지만 여전히 자신을 경계하는 기색인 백구를 보면서 피식 웃고는 전아영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아아!!”
전아영이 아이처럼 엄마를 크게 불렀다. 상혁은 자신의 집과는 달리 무너진 곳도 없고 깔끔한 온기가 느껴지자 멈칫했다.
‘맛있는 냄새.’
거기에 구수한 된장찌개의 냄새도 났다. 상혁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바로 떠오르네?’
상혁은 된장찌개의 냄새도 잊었다. 오십 년 정도 잊고 있으면 후각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힌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냄새를 맡으니 곧바로 이 냄새가 된장찌개의 냄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뒤에 옅게 깔린 기름 냄새에 상혁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딸. 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뒤집개를 든 전 씨가 나오다가 멈칫했다. 그런 전 씨를 보고 상혁도 멈칫했다.
저 어울리지 않은 차림새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게 저 아저씨가 만든 음식들에서 나는 냄새라고?’
큰 덩치에 아기자기한 앞치마를 두른 모양새를 보자니 인지부조화가 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전아영의 엄마는 TV 소리가 흘러나오는 거실 쪽에서 나왔다. 단정한 머리와 이지적인 눈빛이 인상적인 중년 여성이었다.
책을 오래 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이 느껴졌다. 하지만 상혁이 궁금한 것은 전아영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시니?”
“그,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래요!”
“이사?”
그때 안에서 전아영의 엄마, 최영숙이 걸어 나왔다. 날카롭게 생긴 눈매가 상혁을 위아래로 훑었다.
“왜요! 그 파란 대문! 오래 사람 없었던 데 있잖아요!”
“그 집? 그 집에 주인이 이렇게 젋은 청년이었나?”
최영숙은 상혁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전아영의 아버지인 전광철이 중얼거렸다.
“집? 그 집이 몇 년째 비어 있었는데! 백성운이가 거기 살았었는데 그렇게 가지만 않았더라면…….”
중얼거리던 전 씨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상혁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너.”
전 씨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성운이 아들이니?”
상혁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처음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