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화
008. 나한테만 노다지(3)
“뭐야. 여기 살아요?”
“…….”
상혁은 자신의 뒤를 따라온 전아영을 보고 인상을 썼다. 무시하고 왔지만 양수리까지 함께 온 것이다. 게다가 말을 들어 보니 전아영도 여기 주민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무시했다.
“여기에 새로 사람 왔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원래 여기 살던 사람이에요? 아니면 집을 샀나? 귀촌 뭐, 그런 거?”
전아영은 상혁이 무시해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러니 그 오지랖을 발휘해 상혁이 멀쩡한가를 보러 그 병원까지 온 것일 것이다.
그렇게 전아영은 상혁의 집 앞까지 따라왔다.
“왜 따라옵니까?”
“들어가는 거 보려구요.”
“다 왔습니다. 그럼 가세요.”
상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문을 닫으려고 했다. 전아영이 다급히 닫히려는 문을 덥썩 붙잡았다.
“아니, 사람이 왜 그래요?”
“제가요?”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람이잖아요. 내가 기껏 살렸는데 또 내버려 뒀다가 죽는 거 보라구요?”
상혁과 전아영이 문을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했다. 녹이 슨 파란 대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다 상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물에 빠진 거 아니었다니까요.”
일흔이나 먹은 자신이 왜 자신의 1/3밖에 살지 않은 한참 어린 전아영과 말씨름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왜 거기서 또 허우적거렸어요?”
“그럴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게 물에 뛰어든 게 아니면 뭔데요!”
또 이야기가 도돌이표였다. 상혁은 안 아프던 머리가 다 아파져 오는 것을 느끼면서 전아영에게 말했다.
“도와주신 거 고맙습니다. 근데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일부러 다른 의도로 물에 빠진 것도 아니었고, 원하던 도움도 아니었으니까. 그럼 가세요.”
쿵!
상혁은 힘을 줘서는 문을 쿵 하고 닫았다. 전아영은 닫힌 대문을 보면서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이유?
간단했다.
상혁이 더 이상 끼어들지 말라는 듯 단호하고 차가운 눈빛을 보냈기 때문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리 없다.
선이다.
전아영은 자신의 발 앞에 상혁이 그어 놓은 선을 본 것이다. 전아영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기껏 도와줬는데. 나도 몰라! 이제 죽든 말든!”
걱정한 시간이 아까웠다.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진 것이다. 오지랖이란 것을 알지만 원래부터 이런 성격인 걸 어쩐단 말인가.
단지 자신의 황금 같은 퇴근 후 시간을 저런 남자한테 쏟았다는 것이 아까웠다. 전아영은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않겠다는 듯 발을 구르면서 상혁의 대문 앞에서 사라졌다.
“후, 드디어 갔네.”
그렇게 방해꾼 한 명을 치운 상혁은 허물어져 가는 집에 돌아왔다. 그러자 뻥 뚫린 벽의 구멍과 천장의 구멍이 그런 상혁을 반겼다.
이것도 집이라고 오늘 하루 일이 많았었다가 보니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피식 웃은 상혁은 손을 들어 올렸다. 어제 치우다 만 쓰레기와 먼지가 집안 천지에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고상하지 못하게 몸을 움직여 치울 필요는 없었다.
“클린.”
휘오오오-!
마나 고리가 힘차게 움직이면서 마나를 뿜어냈다. 그러자 수인이 자동적으로 허공에 맺히면서 흰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쏴아아!
그렇게 불어온 바람이 빙글거리며 작은 원을 그렸다. 그 바람이 집안 전체에 미치자 굴러다니던 먼지와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휘오오오-!!
들어왔던 것처럼 바람이 먼지와 쓰레기를 몰아 벽에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수년간의 먼지와 거미줄, 그리고 쓰레기로 앓던 집 안이 단박에 깨끗해졌다.
“좋군.”
스윽.
맨손으로 만져도 바닥에서 먼지 한 톨, 흙 한 톨이 나오지 않았다. 매우 흡족스런 마법의 효과에 상혁이 씩 웃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번 더.”
따악!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상혁의 몸 크기만 한 물방울이 허공에 맺혔다. 그러더니 그 물방울이 날아와 상혁의 몸에 묻은 먼지와 오물들을 싹 빨아들였다.
뽕-!
깨끗하던 물방울이 탁해진 채로 상혁의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상혁은 방금 샤워를 하고 물을 말린 것처럼 뽀송해진 채로 손가락을 튕겼다.
촤르륵!
그러자 벽 밖으로 날아간 물방울이 터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간단하게 빨래와 샤워까지 함께한 상혁이 환하게 웃었다.
“역시 마법이야.”
상혁은 마법을 쓴 뒤 마나 고리에 남은 마나의 양을 가늠했다. 그리고 그 마나가 자연스럽게 회복되는지까지 확인했다. 마법을 썼으니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까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상혁의 마나 고리의 마나가 1/5 정도가 소모됐다. 방금 막 1서클을 달성한 걸 생각해 보면 클린 마법을 사용한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마나를 어떻게 회복시키지?”
마나가 없는 지구다. 그 때문에 상혁은 몸소 오염수 안으로 뛰어들어 그 물을 벌컥벌컥 마셔 1서클 고리를 이뤘다.
그렇다면 한 번 소모한 마나는 어떻게 채울까.
답은 하나였다.
* * *
월! 월월월!!
드르륵!
전광철은 천안 시내에서 철물점을 하는 철물점 주인이자 양수리 토박이다.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이다. 그런 그가 인상을 팍 쓰면서 문을 열었다.
“이노무 쉐키! 왜 이렇게 짖는 거야!”
그런 그는 오늘따라 마당에서 기르는 백구, 하양이가 마을이 떠나가라 요란하게 짖는 것 때문에 평소보다 30분쯤 일찍 깨야만 했다. 그 때문에 졸음과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가 하양이에게 소리 질렀다.
월! 월월!
“시끄러워, 인마!!”
끼이잉…….
전광철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요란하게 짖던 하양이가 끼잉거리는 소리를 냈다. 영특한 하양이는 주인이 화를 내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하양이는 억울했다.
끼잉, 끼잉.
하양이의 임무는 이 집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철주야 하양이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는데 모르는 낯선 사람이 다가올 때마다 짖도록 한 것은 하양이에게 새겨져 있는 본능이었다.
그리고 그 본능이 발동했다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처음 보는 웬 수상한 사람이 방금 집 앞 골목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결국 하양이는 다시 본능이 이성을 앞질렀다. 이건 알려야만 한다. 충성스런 하양이는 주인에게 알리기 위해서 짖기 시작했다.
월! 월월월!!
“야! 인마!!”
드르륵!
전광철이 다시 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질렀다. 하양이가 움찔했지만 하양이는 필사적으로 알렸다. 저기 수상한 사람이 있으니 주인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과 개는 소통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전광철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안에서 다른 사람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아빠! 또 하양이랑 얘기해?”
“얘기는 무슨! 저놈이 계속 짖잖아! 동네 시끄럽게!”
“죄 없는 애한테 왜 그래!”
전광철의 딸인 전아영이 바락 소리를 질렀다.
“엄마한테 한 소리 들으면 꼭 하양이한테 뭐라고 하더라?”
“그, 그런 거 아니야!”
정곡을 찔린 전광철이 아니라며 부정했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 전아영은 전광철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해! 애 달래 주진 못할망정.”
전광철은 딸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전아영이 투덜거리면서 문을 닫자 전광철은 하양이의 옆에 쭈그려 앉았다.
“에휴, 내 팔자야.”
하양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전광철은 하양이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짖었어. 저기 뭐라도 있었어? 응?”
전광철의 집 앞으로는 작은 내천이 흘렀다. 그렇게 하양이가 짖던 방향으로 목을 빼고 보던 전광철이 순간 멈칫했다.
“음?”
내천에 무언가 물장구 같은 것을 치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슴푸레하게 해가 밝아 오고 있는 새벽이라 그런지 자신이 잘못 본 것 같아 눈을 비빈 전광철이 다시 내천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잘못 봤나…….”
하양이가 옆에서 전광철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혼난 것이 서러운 모양이다. 전광철은 자신이 언뜻 봤던 물장구를 잘못 봤다고 생각하고는 하양이의 털을 쓰다듬는 데 집중했다.
* * *
“우웩.”
상혁은 물을 토해 냈다. 마나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던 상혁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그 방법을 찾아냈다.
동네에 흐르는 하천.
그 하천에 미약한 마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실 간단한 논리였다.
“오수에서 마나가 느껴졌으니, 다른 오수를 찾으면 된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바로 마을에 흐르는 하천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상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처에 논이랑 밭이 많으니까. 거기서 흘러나온 물인가? 제초제나 농약 성분이 든 물?”
농사를 할 때 농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다. 한 때 웰빙이니 뭐니 해서 친환경 농법이 각광을 받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일이다.
돈이 많이 들고 품이 많이 들어가는 반면 소비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형태의 결과물이 즐비하게 나와 결국 다시 원래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상혁은 마을에 흐르는 하천에서 마나를 느꼈다.
공장 앞에 흐르는 오수보다는 못 하지만 그래도 소모한 마나는 채울 수 있는 정도.
“예상치 못한 효과도 있네.”
거기에 추가적으로 상혁이 마나를 흡수하고 다시 내보낸 물에서 상혁이 독성을 분리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혁이 일종의 오염 여과기, 혹은 필터가 된 셈이다.
마나는 자연스럽게 상혁이 섭취한 오수 속에서 상혁의 몸에 해로울 수 있는 성분을 분리해 냈고 그것이 걸러진 깨끗한 물과 별개로 몸 밖으로 배출이 됐기 때문이다.
“하하, 진짜 인간 정수기네.”
피식 웃은 상혁은 하천 벽에 딱 달라붙었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네.”
방금도 개가 짖는 통에 하마터면 사람의 눈에 띌 뻔했다. 안 그래도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훤히 보이는 작은 동네에서 새벽에 그러고 돌아다녔다가는 단박에 마을 전체에 소문이 났을 것이다.
상혁이 어제 갔던 공장에 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또 갔다가 걸리면 진짜 미친놈 취급받겠는데.”
두 번이나 거기 갔다가 빠져 죽을 뻔한 놈으로 걸린 상혁이다. 그런데 거길 또 갔다가 한 번 더 사람의 눈에 띄면 정말 곤란해진다.
“그럼 결국 사람이 없을 때 가야 된다는 소린데.”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늦은 밤에 갈 수는 없었다.
“마법사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니까.”
이른 아침에 마나를 수련하기 위해 하는 명상은 마법사에게 있어 필수다. 생명에 새로이 태동하기 시작하는 여명이 마법사에게 명상을 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늦은 밤은 이미 하루의 생명이 다 소실되고 난 뒤 내일을 위해 회복기를 뜻한다. 그때 마나를 쌓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어차피 오수에서 흡수하는 거니까 상관없으려나?”
하지만 여긴 가나안이 아니다. 그리고 상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나를 쌓는다. 어깨를 으쓱한 상혁은 눈에 보이는 곳까지의 하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여기서 거기까지 이어지려나?”
일단 상혁이 발견한 마나의 근원지 중 가장 큰 곳은 상혁이 차원 이동을 한 뒤 발견됐던 바로 그 오수 웅덩이다.
“바로 옆에 공장에서 폐수가 흘러나오고 있었지. 그것 때문인지 아주 마나가 풍부했단 말이지.”
마나를 공급해 주는 근원인 공장이 바로 옆에 있는 셈이다. 그곳에서 나오는 마나는 이런 하천에 논이나 밭에서 흘러나온 오수에서 느껴지는 마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했다.
그러니 그곳에서 마나를 쌓아야 한다.
“가 보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그곳까지 갈 길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곳에 왔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상혁은 하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치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처럼, 마나의 근원을 찾기 위해 나아가는 상혁은 절실하기 그지없었다.
“제발 이어져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