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7화
007. 나한테만 노다지(2)
전아영은 기겁했다.
어제 본 듯한 남자가 아래쪽으로 내려가길래 설마 했다. 하지만 그 설마는 역시가 됐다. 전아영은 옷가지만이 가지런히 곱게 접힌 채 놓여 있는 걸 봤다.
그리고 부글거리며 웅덩이에 희끗거리며 비치는 인영을 본 순간 전아영은 비명을 질렀다.
“사, 사람! 사람이 빠졌어요!”
“네?”
전아영의 비명 소리에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이 뛰어왔다. 그러고는 전아영이 가리킨 곳을 보고는 얼굴이 하얘졌다.
“어제 그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요?”
경비원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근무자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인계받기는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또다시 돌아왔다는 소리다.
“이런!!”
부글부글
안에 머리까지 담근 상혁의 모습에 전아영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경비원이 전아영에게 말했다.
“안에 소방관들! 그분들 계시죠? 가서 부탁을 드리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자, 잠시만요!”
전아영이 경비원을 부르려 했지만, 경비원은 이미 공장 안으로 뛰어 들어간 뒤였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전아영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러다가는 안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전아영은 이성보다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부글부글!!
공기 방울이 분명한 것이 뽀글거리면서 올라오자 전아영은 더욱 급해졌다. 전아영은 날 듯이 웅덩이 옆으로 내려가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웅덩이 안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구명줄로 잡은 것이다. 그러고는 전아영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웅덩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 * *
부글부글.
상혁은 오염수의 마나를 흡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쌓인다.’
동시에 상혁의 의식이 침잠했다. 삽시간에 주변의 오감이 끊기며 상혁은 오롯이 자신의 의식만이 존재하는 차원에 접어들었다.
관조에 접어든 상혁은 자신의 몸속의 마나를 부드럽게 자극했다. 상혁은 자신의 몸속에서 피어오르는 마나의 유동에 집중했다.
뭐든지 기초가 가장 중요한 법이다.
기반은 다져 놓았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은 그 위에 씨앗을 내리는 일이다.
상혁은 정말 미약한 마나를 유도하여 조심히, 가느다란 한 올의 마나의 끈으로 만들어 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처럼 얇아진 마나를 기반을 다져 놓은 자신의 심장에 쿡 하고 박았다.
움찔!
상혁의 몸이 절로 움찔하고 떨렸다. 마나라고 하는 이질적인 기운이 몸에 연결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상혁의 의식이 부웅 뜨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나가 본격적으로 고리를 이루며 심장이 이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발 더 나아간다.’
원래라면 저 띠를 크게 원을 그리게 하며 심장에 안착시키면 하나의 고리가 생성된다. 그러면서 1서클에 비로소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자신이 세운 이론대로 몸속에 계속해서 유입되는 오염수의 마나로 얇은 마나의 실을 한 올 더 꼬았다.
‘마나 끈 이론.’
마법사가 서클을 쌓는 방법은 심장 어림에 마나로 고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리가 많아질수록 서클이 올라가게 된다.
상혁은 1서클 때 기초 단계를 건너뛰었다. 다른 마법사들이 여러 방법으로 몸속의 탁기를 몰아낸 뒤 깨끗하고 풍부한 마나로 1서클을 최대한 단단하게 만드는 것과는 달리 급히 1서클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 1서클이 탄탄했다면, 난 8서클보다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1서클의 기초가 빈약하다는 건 마나의 총량과 마나의 수발에 지속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소리다. 모래 위에 건물을 지어 봤자 쉽게 무너지듯 마나의 고리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상혁은 이후에 온갖 방법으로 그런 단점을 보완했지만 늘 자신이 1서클을 쌓았을 때를 후회하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두 번째 기회가 왔다.
스윽.
한 가닥 더 만들어진 마나의 실, 그것으로 상혁은 심장에 연결된 다른 마나의 실을 엮었다. 이렇게 마나의 실을 엮어 나가 고리를 이루는 마나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상혁이 세운 이론이었다.
‘천천히, 섬세하게.’
마나를 다루는 데 있어 인간 중 최고 경지까지 도달했던 상혁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예다. 그렇게 상혁은 날카로운 집중력으로 마나실을 뽑아내어 기존의 실들과 엮고 엮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99올, 100올까지.
‘마지막 한 올.’
상혁은 심장이 뻐근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고리를 이루지 않은 채 심장을 자극하는 99올의 마나실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마지막 한 올이 더해졌다.
그리고 그 마나의 실들이 하나의 고리를 이루기 시작했다.
100개로 만들어진 마나의 실.
그 마나의 실이 상혁의 심장 어림에서 하나의 고리를 이루면서 팽팽 회전하기 시작했다. 상혁은 끝까지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위이이잉!!
마나가 돌아가면서 나는 소리가 상혁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가나안 대륙에 있을 때는 인체 실험을 당하느라 인지하지도 못 했던 고리의 탄생이었다.
상혁은 첫 고리를 아주 질기게 만들었다. 이제 막 마나에 입문하는 이라면 상혁이 한 것을 흉내도 내지 못할 것이다.
이미 한 번 가 봤던 길이기에, 그리고 마나를 제어하는 데 자신이 있었기에 상혁은 이론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시도했고 성공한 것이다.
파아앗!!
상혁의 전신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양감과 희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상혁은 쾌감을 느꼈다.
마나가 처음 몸에 자리 잡는 순간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황홀감을 안겨다 주었다. 몸속에 뿌리를 내린 마나가 고리가 되어 순환하는 순간 느끼지 못하던 것, 보지 못하던 것이 보이며 개안을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번쩍!
회전하던 마나의 고리가 안정되는 순간 상혁의 두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그와 동시에 푸른 안광이 벼락처럼 튀어나왔다.
부글부글.
상혁의 입에서 공기 방울이 뽀글거리면서 흘러나왔다. 순간 주변의 시야가 확 트였다가 다시 줄어들었다. 마나 서클을 성공적으로 이뤘다는 뜻이다.
동시에 상혁의 입에서 새카만 피 같은 것이 뭉글거리면서 피어올랐다. 20년간 대한민국에 있던 몸뚱어리에 쌓인 탁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온몸이 가벼웠다. 상혁은 농약의 독성과 탁기 등으로 더러워진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눈을 빛냈다.
휘오오!!
상혁이 마나를 끌어 올리자 질기고 튼튼한 마나 고리가 회전하면서 충만한 마나를 공급했다. 1서클에 불과하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마나였으니 이는 시작일 뿐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마나의 고리는 커지고 늘어날 것이다.
물론 마나만 충분하다면 말이다.
‘이제 기초는 됐다.’
1서클이다. 상혁의 두 눈이 기쁨으로 일렁였다. 이 정도 했으니 이제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상혁이 팔다리를 움직이려는 순간.
콰악!!
‘끄아아아악!’
부글부글
웬 손이 물속으로 들어와 상혁의 머리채를 휘감았다.
* * *
부루루룩.
“……으악, 으아아악!!”
전아영은 있는 힘껏 상혁의 머리채를 붙잡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상혁의 머리가 밭에 묻혀 있던 무처럼 쑤욱 올라오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이보세요! 괜찮으세요?”
“으악, 으아악!!”
상혁은 머리 가죽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예상치 못한 봉변에 상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자 전아영의 손아귀 힘이 더욱 강해졌다.
“이, 일단 밖으로!!”
“으아아악!”
전아영의 힘에 상혁은 쉬익 하고 딸려왔다. 상혁이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전아영의 손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아영이 상혁을 물가로 건져냈다.
“하악, 하악.”
전아영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상혁은 상반신만 나온 채로 물가에 얹혀 있었다. 전아영이 그런 상혁에게 물었다.
“이보세요. 괜찮아요?”
“으, 으으으 내 머리.”
상혁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창피한 일이었지만 정말 그렇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팠다. 머리 가죽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는 이 고통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었다.
“저기…….”
“내 머리! 당신 내 머리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상혁은 전아영의 손에 수북하게 남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꽤액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전아영이 당황했다.
“네? 네?”
“모발 생장 마법은 없는데. 대체 머리가 얼마나 빠진 거야. 으으으윽.”
제아무리 자연의 힘을 대신 빌어다 쓰는 마법사라고 해도 빠진 머리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만약 그런 마법이 있었다면 가나안에서 아마 공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마법사와 연금술사들이 매달렸지만, 그들도 이미 한 번 빠져 버린 머리는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소중한 머리카락이 전아영의 손에 수북하게 엉켜 있었다. 그게 전부 다 상혁의 머리카락이었다.
하지만 전아영은 되레 물에서 꺼내 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듯한 상혁의 태도를 보면서 기가 찼다.
“아니,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 꺼냈더니 지금 무슨…….”
“아니, 먼저 물어보기라도 하지.”
“누가 봐도 죽으려고 들어간 사람이구만, 뭘 물어봐요?”
그에 전아영이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위에서 경비원과 소방관들이 뛰어왔다. 그러더니 상혁을 보고는 크게 놀라면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
상혁은 자신이 다시 병원에 갈 것임을 직감하고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1서클을 달성하긴 했지만 모든 게 엉망이었다.
* * *
“앞으로 최소한 사흘 이상은 절대안정을 취해 주셔야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로 오지 말아 주세요.”
의사가 훈계하듯 상혁에게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에게서 걱정이 느껴졌기 때문에 상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사람들은 전부 오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오해이기도 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째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걸 찾기 위해 갔다고 해도 안 믿어 주시겠죠?”
“네. 의사여서 믿을 수 없습니다.”
“하아.”
상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기 자신이 벌인 일이거늘, 이제 와서 누구 탓을 하겠는가. 하지만 그때 상혁의 머릿속에 기억이 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여자.’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이 아니라 1서클이 된 것을 기념하며 기분 좋게 집에 갔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 머리를 쥐어뜯어 놓질 않나, 자신을 발견해서 이 소란을 벌이질 않나.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됐잖아.’
이틀 사이에 병원에 두 번이나 실려 왔다. 뭐 이번에야 몸에 별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퇴원 조치를 받았으나, 의사가 상혁을 바라보는 시선이 환자를 바라보는 그것과 똑같았기 때문에 입맛이 썼다.
생각해 보니 그 간호사는 다시는 볼 일이 없게 해 달라고까지 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 정도 입원시키고 싶지만 그럴 만한 증상이 전혀 없으시네요. 아니었다고 계속 주장하시고. 그럼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네.”
의사는 차트를 착 덮고는 나갔다. 괜히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 상혁이다. 상혁은 병원 원무과에서 피 같은 돈으로 병원비를 낸 뒤 터덜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런데 그런 상혁을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봐요!”
상혁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전아영이 떡하니 서 있었다. 상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몸은요? 괜찮아요?”
상혁은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래, 저 여자가 무슨 죄겠는가. 그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오해했을 뿐이다. 선의이기 때문에 상혁은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복잡한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예, 괜찮습니다. 그럼.”
쌔앵
후다닥.
상혁이 그냥 쌔앵 하고 지나가자 전아영이 바로 따라왔다.
“꼭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그러시네. 내가 살려 드렸는데.”
전아영은 자신 때문에 상혁이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상혁이 툭 내던지듯 말했다.
“……내버려 둬도 안 죽었습니다.”
“와,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살려 달라고도 안 했습니다.”
“그럼 사람이 물에 빠진 걸 보고 있어요?”
“못 믿으시겠지만 빠진 것 아닙니다.”
계속해서 말이 빙글거리며 돌았다. 상혁은 그냥 전아영을 무시하고는 휘적거리면서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전아영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가 이내 그런 상혁의 뒤를 따라갔다.
재수 없는 사람이지만 아직 환자기 때문이다.
“저기요!!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