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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5화 (5/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5화

005. 하수구의 대마법사(5)

처음 기세는 좋았다.

타닥, 탁.

바싹 마른 짚이 불똥을 탁탁 튕기면서 타들어 가는 소리를 냈다. 모닥불은 지붕에 구멍이 뚫린 집 안에서 타오르고 있었는데 어디서 구해 온 페인트 통 위에 걸터앉은 상혁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고개를 치켜든 상혁의 얼굴은 볼 만했다.

땀에 절어서 땟국물이 볼에 선명했고 머리는 까치가 집을 지은 것처럼 먼지와 이것저것 등으로 인해 붕 떠 있었다. 거기에 눈 아래에는 다크서클이 길게 내려와 있었다.

“미친. 못 해 먹겠어.”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낮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상혁이 생각한 것은 가나안 대륙의 일란이었지만 더 이상 그 일란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10년의 밑바닥 생활로 다져진 체력 따위가 지금의 상혁에게는 한 톨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학비를 벌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길러 놓은 체력과, 밑바닥에서 구르면서 생존을 위해 얻은 경험치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지금의 상혁의 몸에는 한 톨도 없으니 금방 지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피부는 얼마나 고운지.

상혁은 그것으로 자신이 가나안 대륙에 갔다가 다시 젊어져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가나안 대륙에 가기 전의 상혁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기억과 경험은 선명하니 상혁의 영혼만 빼고 시간이 돌아갔다는 셈이다.

영혼의 존재에 대해 상혁은 마법사로서 확신했다.

가나안 대륙에는 심심치 않게 귀신들이 몬스터가 되어 한 마을을 습격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미쳤지. 마법사가 몸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했으니. 젊다고 해도 골병들기 딱 좋아.”

상혁은 지구에서 마법을 익혀야 할 필요성을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가나안 대륙의 마법사들이 이 소리를 들었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마법이 필요한 이유가 고작 쓰러져 가는 집을 고치기 위해서라니. 진리를 탐구하고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매일 같이 젊음을 불사르는 가나안 대륙의 마법사들에게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여긴 지구고, 마법사는 없었다.

“내가 편한 게 장땡이지.”

그리고 애초에 마법에 대한 상혁의 개념 자체가 그랬다. 애초에 상혁에게 마법은 가나안 대륙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만약 그게 검이었다면 상혁은 기꺼이 검을 쥐었을 것이다.

살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마침 그때 상혁에게 왔던 것이 마법일 뿐이었다. 그러니 편하기 위해서 마법을 쓰는 것쯤이야 웃으면서 쓸 수 있었다.

“마법을 익히 위해서는 마나가 필수니까.”

상혁은 그 자리에서 허리를 곧게 편 뒤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마나의 존재를 떠올렸다. 마나는 세상 만물을 이루고 있는 근본적인 에너지다.

그리고 그 마나에는 의지가 있었다. 누구든 마나를 쓰기 위해서는 마나에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어야 했다.

불을 일으키고 싶은 자는 불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물을 쓰고 싶은 자는 물에 대한 간절한 갈망을.

그런 식으로 염원과 갈망을 보내는 것이 마법의 주문이고 영창이며 수인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마나를 쌓고 몸에 고리를 만드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몸에 살지 않을래?

이렇게 마나를 꼬드겨서 몸에 끌어들여 고리를 형성하는 것이 마법에서 부르는 서클이다. 상혁은 마나를 간절하게 염원했다.

상혁이 마나를 대하는 태도는 일관적이었다.

살고 싶으니 제발 살려 줘.

생존에 대한 갈망으로 마나를 원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상혁의 마법사로서의 성취가 그토록 눈부셨던 것인지도 모른다.

꿈틀.

상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리고 그는 한 번 더 간절하게 속으로 염원했다.

잠잠.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될 리가 없지.”

마나가 없다는 건 이미 낮에 확인했다. 혹시나, 그리고 밤이면 다를까 해서 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색다르기는 했다.

“마나가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세상에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자신이 지구로 돌아왔다는 것이 오히려 더 확신이 들었다. 상혁은 머리 뒤에 깍지를 낀 채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구에는 마법이 없이 과학이 발달한 이유가 마나가 없기 때문이라는 건가?’

이건 가나안 대륙의 최고 지식자이기도 한 마법사들의 논리를 뒤흔드는 중대한 발견이었다. 마나가 없이도 인간이 존재하고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마법사의 논리에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멘붕이 왔다고 해서 상혁의 생존 능력은 죽지 않았다.

“일단 자자.”

다행히 낮에 든든하게 먹었기 때문인지 배는 고프지 않았다. 대신 몸을 꽤 많이 움직여서인지 잠이 솔솔 몰려오기 시작했다.

“불은 있고.”

상혁은 능숙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의 불쏘시개들을 모아 불을 크게 지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우풍이고 비고 하나도 막아줄 수 없는 환경이니 불은 필수다.

상혁은 정말 오랜만에 노숙을 하는 느낌이 들자 피식 웃었다.

“옛날 생각나네.”

마법사가 되기 전 상혁은 용병이었다. 듣고 말하는 것만 가능하고 쓸 줄은 모르는 상혁이 할 수 있는 건 몸으로 구르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용병 생활을 하면서는 거의 매일이 노숙이었다. 그때를 떠올려 보면 지금 이 기분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지구에서의 노숙이라니, 지붕으로 들어오는 달빛과 별빛이 나름 낭만도 있지 않던가.

생존 능력 하나만큼은 발군인 상혁은 장작이 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들었다.

* * *

“어흐, 추워.”

다음 날 상혁은 팔뚝을 문지르면서 일어났다. 벽에 뚫린 구멍과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불어 오한이 들며 온몸이 으스스 하고 떨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적어도 집에 구멍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머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필요하긴 할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상혁은 결심했다.

“벽이라도 메우자.”

몸을 움직이는 것은 젬병이었다. 청소만 하는 데에도 파김치가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마법의 기초를 닦기 전까지는 거처에 드나드는 바람이라도 막아야 할 것만 같았다.

“노숙은 개뿔.”

가나안에서야 돈을 벌고 살기 위해 노숙을 했던 것이지 그게 즐거워서 했던 건 아니다. 간만에 감상에 젖을 뻔했지만, 역시 아닌 건 아닌 모양이다.

하루 만에 노숙의 현실을 깨달은 상혁은 두 팔을 문질러 몸에 열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르륵

“배고프네.”

그렇게 일어나자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제 청소하느라 저녁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점심에 순댓국을 많이 먹었다고는 하나 지금쯤 되니 배가 다시 고팠다.

“돌을 씹어먹어도 소화할 나이니까.”

칠십이 됐을 때도 상혁은 하루에 꼬박꼬박 고기를 2kg 이상씩 먹었다. 기사만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들도 대식가다. 마나를 움직이는 것 자체가 많은 열량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이 팔팔한 20대의 몸에 마법까지 다루기 시작하면 먹는 식사량이 곱절로 늘어날지도 모른다.

“푸으으으.”

부르르.

한기에 어깨를 부르르 떤 상혁은 아직 불씨가 남은 모닥불을 대충 발로 눌러 끈 다음 녹슨 파란 대문을 밀고 나왔다.

“새벽에 엄청 시끄럽네.”

새벽부터 짖어 대는 닭과 농사일을 나가는 주인을 배웅하는 개들의 짖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몇 번이나 깼다. 그 소리를 막기 위해서라도 벽과 지붕의 보수 공사가 시급한 듯했다. 그런데 새벽과는 달리 오전의 시골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끄으으응!!”

팔다리를 쭉 늘여 스트레칭을 한 상혁은 천안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이 양수리에서는 자는 것 빼고는 상혁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나가자.”

* * *

“꺼어억!”

콜라가 비었다. 빈 컵을 아쉬운 듯 입에 탈탈 털어 넣은 상혁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트름이 꺼억 하고 새어 나왔다.

그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기에 상혁은 컵을 스윽 내려놓았다. 그런 상혁의 앞에는 다 먹은 햄버거 껍데기와 감자튀김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맛있다.”

상혁은 눈에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감격의 눈물은 아니었다. 탄산을 너무 많이 마셔서 눈물이 돈 것이다. 인공적이고 단 이 콜라의 맛이 감탄스러웠다.

아침을 먹을 만한 곳으로 상혁은 천안 시내에 나와 아침부터 문을 연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햄버거 여섯 개와 감자튀김 여섯 개, 그리고 콜라 여섯 잔을 해치웠다. 그런 상혁을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거참, 사람 먹는 거 처음들 보나.”

괜히 그 눈빛에 쫓겨나오면서 상혁은 투덜거렸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자 시간이 열 시쯤이 됐다. 그다음으로 상혁이 향한 곳은 인테리어 가게였다.

“집에 벽이랑 지붕에 구멍이 나서요. 수리를 하고 싶은데.”

벽과 지붕은 상혁이 고칠 수 없다. 고쳐 보려고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상혁은 그쪽에는 재주가 통 없었다. 하지만 가격을 들은 상혁은 알았다고 대답한 뒤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300만 원? 후.”

통장에 든 전 재산을 털어도 벽이나 지붕, 둘 중에 한 곳밖에 수리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당장 먹고살 길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인가?

“알바?”

지금 나이대의 상혁이 할 수 있는 경제 행위는 알바다. 상혁은 멀리 보이는 패스트푸드 점에 요란한 색의 유니폼을 입고 테이블을 청소하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알바생을 쳐다봤다.

“못 할 건 없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언제 떵떵거리고 산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마법이란 걸 기껏 가나안에서 배워 온 게 쓸모가 없어진다.

상혁의 눈빛이 깊어졌다. 눈을 감자 머릿속에서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이 수십 가지나 떠올랐다가 사그라졌다.

하지만 다 부적격이었다.

‘성실한 노동을 통해 땀 흘려 버는 그 대가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단지.’

효율이 좋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나온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빨리 1서클을 만들어야겠네.”

1서클을 만든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법. 정화.’

지금 상혁이 가진 무기는 그 두 가지다. 지구에는 없는 마법이란 이적, 그리고 마나를 흡수하면서 오염을 정화할 수 있는 능력.

‘정부기관에서 정해 놓은 기준에 따라 공장이나 기업이 만들어 내는 공해를 중화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고 있다고 했지. 그거면 돈이 될 테지만.’

정부에 묶이게 된다. 아니, 그걸 넘어서 상혁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국가권력이 상혁을 이용해 먹으려 들 것이다.

‘그런 건 질리도록 경험했다.’

이러니저러니, 결국 잘 먹고 살기 위해서 얼른 해야 할 것은 서클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래야 자기 스스로 보호할 힘도 생기고, 떵떵거리며 살 방법이 생긴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1서클을 만들어야 한다. 스노우볼링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1서클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1서클이라도 만들기 위해서는.”

다행히 방법은 남아 있었다. 상혁이 빠졌던 더러운 웅덩이. 그곳을 찾으면 된다. 상혁은 그곳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 유일한 단서가 남아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아,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병원.

그곳에서 상혁이 눈을 떴을 때 봤던 김은영이라는 간호사를 찾은 상혁은 자신이 어디서 발견된지에 대해서 물었다.

아직 상혁이 기억을 찾지 못했음을 깨달은 간호사는 딱하다는 눈빛으로 상혁을 쳐다본 뒤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해요. 그런 것까지 병원에서 파악하고 있지는 않아서.”

“그런가요.”

상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간호사는 상혁이 왜 그가 구조되었던 장소를 찾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간호사가 혹시나 하는 얼굴로 상혁에게 물어봤다.

“혹시, 뭐 다른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네?”

“아니. 그, 안 좋은 기억이 있으실 텐데 다시 그곳을 찾으려고 하시는 게 그래서요.”

“아, 그게 아니라.”

상혁은 눈을 굴렸다.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거기서 뭘 잃어버린 것 같아서요.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직접 가서 찾아보고 싶어서.”

“아.”

간호사는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상혁에게 말했다.

“천안소방서에 한번 가 보세요. 그곳에서…….”

간호사는 상혁에게 상혁을 구해서 데려온 구급대원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기억을 잃은 사람을 위해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이쪽 병원으로 자주 오는 대원이었기 때문에 간호사가 알고 있던 이름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힘내시구요. 다시 보는 일 없도록 해요, 우리.”

간호사가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었다. 다시 보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 그건 다시 병원에 실려 올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뜻이었다.

씩 웃은 상혁은 곧바로 병원에서 나와 소방서로 향했다. 병원에서 소방서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음…….”

소방서에 오는 건 상혁도 처음이다. 하지만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기 때문에 문을 열고 들어간 상혁이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소방관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혹시 여기 계신 소방관 중에…….”

웨에에엥!!

그 순간 소방서 안에서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더니 상혁에게 말을 건 소방관이 상혁에게 말했다.

“다음에 다시 와 주세요. 출동이라.”

“아, 아?”

상혁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에서 소방관들이 쏟아져 나와 소방차에 올라타는 것이 창문을 통해 보였다.

그런데 그때 상혁의 눈에 상혁이 웅덩이 속에서 깨어나 기억을 잃기 전 봤던 그 소방관이 소방차에 올라타는 것이 상혁의 눈에 보였다.

“어, 저기!!”

상혁이 그 얼굴을 알아보고 소리를 쳤지만 이미 소방차는 출발했다. 상혁은 바깥으로 뛰쳐나와 택시에 올라타서는 외쳤다.

“저 소방차들 따라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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