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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4화 (4/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4화

004. 하수구의 대마법사(4)

달그락.

주인이 없는 입구의 작은 통에 열쇠를 넣고 모텔에서 나온 상혁은 기지개를 쭉 하고 켰다.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꼬르륵.

하지만 일단 그 전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꼬르르륵!

지구에 온 뒤로 상혁은 음식다운 음식을 입에 대지 못했다. 그것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지구의 음식을 말이다.

배가 고프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상혁의 입안에 침이 차올랐다.

“배고프네.”

배를 손바닥으로 문지른 상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상혁의 눈앞에 상혁이 오십 년 동안 지구로 간다면 먹고 싶은 것들을 정해 두었던 리스트가 촤르륵 하고 올라갔다.

그 가짓수만 해도 무려 삼천오백여든 가지가 넘었다.

군에 입대한 신병이 백일휴가를 나가 먹고 싶은 것을 수첩에 적어 두는 것처럼 상혁은 그런 식으로 오십 년간 지구를 추억했다.

이뤄지지 않을 소망이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지구를 떠올리고 있으면 외로움이 덜해지는 것 같아 그 가짓수가 삼천 개가 넘었는데,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될 줄이야.

“역시 사람은 이래서 오래 살고 봐야 한다는 건가.”

가나안에서 믿었던 제자에게 뒤통수를 맞은 충격 따위는 금세 날아가 버렸다. 다른 사람 같으면 트라우마로 남았을 일이지만 상혁은 아니다.

이미 그곳에서 산전수전에 더러운 꼴까지 다 겪은 상혁은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곳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자유에 대한 해방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가나안이 아닌 지구인데 그때를 떠올리며 부들부들 복수심에 떠는 것도 인생 낭비다.

“김밥? 아니. 너무 라이트해. 조금 더 자극적이고 기름진 거. 뭐가 있을까.”

상혁은 가장 먼저 보이는 분식집을 패스했다. 김밥이나 분식도 끌리긴 했다. 하지만 그 순위는 백 위쯤에 있었다. 그것보다는 더 위에 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래. 저거다.”

순댓국밥집을 발견한 상혁의 눈이 번뜩였다. 상혁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쌀밥에 새빨간 깍두기를 떠올리자 입 밖으로 침이 넘칠 뻔했다.

“어서 오세요.”

“특으로 하나요.”

상혁은 경건하게 자신의 앞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은 뒤 물을 따라놓고는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마치 대전투 전에 치르는 의식처럼 상혁은 보글거리는 뚝배기에 순댓국이 나올 때까지 반찬으로 가려는 손을 꾹 참으며 기다렸다.

“맛있게 드세요.”

보글보글

상혁의 앞에 드디어 순댓국이 놓였다. 상혁은 눈앞을 뿌옇게 가리는 수증기와 뚝배기 안에서 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순댓국의 뽀얀 국물에 눈물이 핑 돌 뻔했다.

하지만 눈물은 사치다.

뜨거울 때 먹어야 국밥은 진짜 맛있는 법이다. 이 국밥을 먹고 싶어 상혁은 가나안에서 별의별 방법을 다 해 봤지만, 이 맛이 나지 않았다.

스윽, 스윽.

새우젓을 담뿍 숟가락으로 넣어 풀자 다대기와 들깨가루가 퍼지면서 국물 색이 변했다. 상혁은 숟가락으로 휘젓자 뽀옹 하고 떠오르는 순대를 젓가락으로 집어 새우젓을 찍었다.

부르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대가 입안에 들어올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혁은 쾌감을 느꼈다. 그렇게 상혁은 중얼거렸다.

“37위 순댓국.”

순댓국은 상혁이 먹고 싶던 음식 37번째에 적혀 있었다. 추울 때, 배고플 때 순댓국만큼 저렴한 가격에 배를 채워 주는 음식은 없다.

이게 그렇게도 먹고 싶던지.

상혁은 순대를 입안에 넣었다. 그러자 뜨거움에 입이 저절로 벌어지면서 혀로 순대를 굴렸다. 이로 순대를 씹자 찰진 당면이 팡팡 터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미, 미라클!”

말 그대로 기적. 상혁은 기적을 느끼며 순댓국 안에 든 고기들과 국물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거의 무아지경이나 마찬가지였다. 상혁은 자신이 순댓국을 먹고 있는 건지, 순댓국이 자신을 먹고 있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뚝배기에 집중했다.

드르륵.

그렇게 한 그릇이 고작 오 분 만에 바닥이 났다. 아직 상혁의 옆에는 말지도 못 한 쌀밥이 남아 있었다. 상혁은 입맛을 쩝 하고 다셨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모, 한 그릇 더 주세요!”

모자라면 한 그릇 더 먹으면 된다. 기껏해야 한 그릇에 8000원이다. 상혁이 가난한 고시생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사치를 부릴 수 있었다.

‘돈이야 벌면 되니까.’

게다가 상혁은 더 이상 고시를 볼 생각도 없었다. 마법이 있는데 무슨 놈의 공무원이란 말인가. 자신은 오십 년 동안 타차원에서 개고생한 대가로 얻은 마법으로 지구에서 아주 잘 먹고 잘살 생각이었다.

개국공신?

키타이온의 사신?

마탑주?

500년 내 마법의 역사를 바꾼 8서클 대마법사?

그런 거 다 필요 없었다. 다 한 번씩 해 봤다. 금화를 쌓아 놓고 그 안에서 헤엄도 쳐 봤고 아리따운 여인을 백 명 정도 모아 놀아도 봤다.

부와 명예.

두 가지 모두에서 정점에 올라 봤던 상혁이기에 다른 이에게는 거창한 목표나 꿈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상혁이 원하는 건 간단했다.

“이게 인생이지. 이게 바로 삶이야.”

먹고 싶은 걸 그리지만 말고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삶. 뚝배기 하나에 눈물이 흐를 정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

그 정도면 됐다.

“한 그릇 더요!”

상혁은 또다시 한 그릇을 더 외쳤다. 그렇게 상혁의 옆에는 상혁이 먹은 뚝배기들이 쌓여 갔다. 상혁이 다섯 그릇을 비우고 더 시키자 이제는 식당에서 말렸다.

“총각, 그만 먹어. 그러다 위에 빵꾸 나.”

“괜찮아요. 나라면 나라죠!”

“달라니까 주긴 주는데…… 진짜 괜찮겠어?”

“네.”

“무슨 먹방, 그런 거 하는 총각인감?”

앉은 자리에서 불과 30분도 안 되어 순댓국을 다섯 그릇 넘게 먹었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자 상혁은 깨달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튜브가 장악하고 있던 때라는 것을 말이다.

‘많이 봤었지.’

상혁은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봤다. 더러운 물에 절어 있던 핸드폰은 여전히 지퍼백에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때는 저게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했었는데.

“기억과 영혼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루려면 핸드폰도 한번 살펴봐야겠어.”

지금 상혁은 끊임없이 자신의 영혼과 기억을 조화시켜나가고 있었다. 가나안의 일란이 아니라 지구의 상혁이 됐기 때문에 5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건 꽤 지난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8서클 대마법사인 상혁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후우.”

상혁은 무려 여섯 그릇이나 되는 순댓국을 해치우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질린 듯 쳐다보는 아주머니에게 값을 치른 상혁은 체크카드를 빤히 쳐다보고는 은행으로 향했다.

“200만 원이라.”

지금 상혁의 전 재산은 200만 원이다.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돈이 상혁의 전 재산이다.

“일단.”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보금자리.

차원 이동을 해 보낸 시간까지 합치면 열 살에 집을 떠난 후 무려 육십 년 만에 자신이 살던 옛날 그 집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집으로 가자.”

상혁은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방법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모르는 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모르는 걸 물어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 *

천안 시내로부터 온양 양수리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로 꽤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상혁은 묘한 감상에 사로잡혔다.

“하나도 안 변했네.”

이곳을 기준으로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 정도면 서울은 상전벽해란 말이 어울릴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

그리고 이곳에는 상혁이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이 남아 있었다.

물론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상혁이 서울로 오고 나서부터는 제대로 관리하지도 않은 폐가처럼 변했을 테지만 어쨌든 상혁의 이름으로 된 집은 있었다.

양수리.

그곳에 도착한 상혁은 감회에 젖은 눈을 했다.

“일흔이 넘어서도 잊을 수 없었던 풍경인데. 이걸 기어코 내 눈으로 보는구나.”

정말 살아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차원 이동에 대한 것을 연구했지만 실마리도 잡지 못해 가나안 대륙에서 죽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바로 어제 같았다.

그런데 오늘은 지구로 돌아와 이 양수리의 풍경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 기억난다.”

그러자 상혁의 머릿속에서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의 파편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양수리의 풍경에 이곳에서 살던 기억들이 떠오른 것이다.

인간은 기억을 잊지 않는다.

그저 무의식 한편에 쌓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8서클 대마도사였던 상혁은 먼지가 쌓였을 그 기억을 일반인보다 더 선명하고 명확하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월, 월, 월!

닫힌 문 너머로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딱 시골 풍경이었다. 상혁이 서울로 올라간 이후에도 몇 년이 흘렀지만, 이곳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비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비우고 서울이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모양이었다. 이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논밭밖에 없으니 그럴 법했다.

여기서 10분만 걸어 나가면 거대한 논이 펼쳐진다.

상혁은 그렇게 구불거리는 길을 걸었다. 경운기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가끔 끼익거리면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사람과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여기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다 녹이 슬어 문이 반쯤 나간 대문 앞에 도착했다. 원래는 파란색이었던 문은 원래의 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이 슬어 있었다.

“하하하.”

상혁은 대문을 힘겹게 열고서는 들어간 뒤 그간 버려졌던 집의 풍경을 보고는 짤막하게 웃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담장은 반쯤 허물어져 있는 곳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 틈으로 이름 모를 넝쿨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끼익.

게다가 집은 또 어떻던가. 슬레이트 지붕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문은 제대로 달려 있는 것이 거의 없었고 집 안은 그간 야생동물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듯 털과 똥이 가득했다.

상혁은 그 광경을 둘러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보이는 과거의 조각들을 찾아냈다.

아빠가 늘 일정을 적어 놓고 그달이 지나면 찢었던 달력, 엄마가 쓰던 고무장갑 같은 것들이 있었다.

“보고 싶네.”

일흔이 지났어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컸다. 열 살 때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 서울 친척 집으로 갔으니 이 집이 이렇게 버려져 있는 것도 10년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집 안에 버려진 물건들을 보자 머릿 속에 잊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엄마 화장대. 아빠 책장.”

상혁은 엄마와 아빠의 손때가 묻었을 삭은 가구들을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책장의 서랍을 열어 본 순간 상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건…….”

삐뚤빼둘한 글씨. 그 옆에 적힌 가지런하고 정갈한 글씨와 호방한 글씨.

세 가족의 글씨가 적힌 일기다.

“교환일기 비슷한 거였지.”

상혁은 부모님과 함께 교환일기, 교환편지 비슷한 것을 썼다. 여기저기 누렇게 젖어든 안의 종이 때문에 뭐라 적힌지 볼 수 없는 것이 태반이지만 그래도 개중에는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보물…….]

[사랑해요. 엄마 아빠.]

“그러고 보니 어디 묻히셨는지도 모르네.”

상혁은 부모님을 예고치 않은 사고로 잃은 후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부모님이 어디 묻히셨는지, 화장을 하셨는지도 몰랐다. 보육원 원장이란 인간이 가르쳐 주지 않았었고, 상혁은 그곳에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이걸 보자 문득 부모님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최대한 빨리 알아봐야지.”

그것도 지구에 왔으니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상혁은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여러 상념을 애써 접었다.

부모님의 예고치 못한 사고, 이후의 이상할 정도로 빨랐던 뒷수습 등등.

상혁은 필요치 않은 상념을 접으며 삭은 집안을 빙 둘러보았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집은 빨리 망가진다.

상혁은 바람이 불면 끼익거리는 집의 신음을 들으며 양쪽 어깨에 메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두 팔을 걷어붙였다.

“일단 잘 곳은 만들어 놔야지?”

지붕이 형식적으로나마 있으니 못 잘 것도 없었다. 이보다 더 심한 곳에서도 잤던 가나안 대륙에서의 경험과 몸도 이십 대로 젊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서 살려면 치워 놓아야 한다.

“클…….”

무의식적으로 가나안에서 했던 것처럼 마법을 쓰려고 했던 상혁은 멈칫했다.

지금은 몸 안에 마나가 한 줌도 없는 상태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법이다.

“몸 쓰는 건 영 젬병인데.”

1서클의 마법도 쓰지 못한다는 건 좀 처량했지만 그래도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집안에서 마나를 쌓으려고 하다가는 쌓기도 전에 마나 역류가 일어날 것 같았으니까.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일단 조금이라도 치워 놔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상혁은 기세 좋게 두 팔을 걷어붙이고는 10년 동안 방치된 집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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