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화 (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화

001. 하수구의 대마법사(1)

퍼억-!

일란, 아니, 백상혁은 등줄기를 관통하며 올라오는 고통에 이를 으득 깨물었다. 화살촉이 박힌 등에 마치 불이 난 것 같은 후끈한 통증이 퍼졌다.

상혁은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근육이 잘게 떨리기 시작한 것을 보니 이제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욱씬.

“크으…….”

억지로 마나를 움직이려고 하자 심장 부근이 아파 오면서 머리가 하얘지는 듯한 통증이 덮쳤다.

“빌어먹을 약…….”

아무 의심 없이 먹었던 음식에 있던 독약.

그 약이 몸속의 마나를 흐트러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정도라면 한 시간 정도 요양을 해야 하지만 적은 상혁에게 그럴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마나가 점점 흩어지고 있었지만 상혁은 멈출 수 없었다.

“시, 실드.”

우웅!!

없는 마나, 있는 마나를 다 끌어모아 실드를 만들어 내자 간발의 차이로 그 실드에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틀어박혔다.

심지어 그 화살들은 일반 화살도 아니었다.

묵직하게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 마나가 실린 화살이었다.

“빌어먹을 근육 돼지들이.”

화살에 마나를 실어 보낼 수 있는 건 왕실에서 키운 근위대뿐이다. 그리고 그 기사들을 근육만 가득 찬 돼지라 욕하는 건 마법사들이고. 그중 마법사의 끝이라고 불리는 대마법사인 상혁은 식은땀을 흘리며 좁은 골목길을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한계가 오고 있다는 건 상혁이 제일 잘 알았다.

울컥.

칼에 찔린 배에서는 붉은 선혈이 울컥거리면서 움직일 때마다 솟아올랐고, 독을 마신 탓에 몸속의 마나가 꼬였다. 거기에 등에 맞은 화살과 일흔이나 먹은 노구로 인한 노화는 점점 더 물먹은 솜처럼 상혁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

그렇게 달리던 상혁은 지독한 냄새가 올라오는 하수구 앞에 발걸음을 멈춰 섰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저적!!

그때 상혁의 뒤로 은빛 갑옷을 입은 왕실근위대가 나타나 상혁의 퇴로를 막은 채 상혁을 포위했다.

“흐으…….”

긴 로브가 바람에 펄럭였다. 상혁은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차게 식은 시선을 느끼며 실성한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때 기사들 사이로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자가 나와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꼈다.

“대마법사 일란. 아니, 반역자 일란.”

이곳, 가나안에서 상혁의 이름은 일란이었다. 그마저도 다른 사람의 이름이었다. 상혁은 자신을 반역자라 부르는 기사단장을 보며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 몸이 반역자다?”

“왕자님을 해하여 왕국의 기강을 흐트러지게 하였으니 반역이 아닐 수 없다. 순순히 투항하라!”

상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가 모르는 사이 상혁은 이미 거대한 음모의 그림자에 먹혔다. 그것을 알아챈 것은 너무 늦은 후였다.

그 때문에 상혁은 반역자가 되었다. 지난 사십 년간 아무것도 아니던 이를 왕으로 만들고, 왕국의 기틀을 만들었던 개국공신이 한순간에 왕자를 해한 반역자가 된 것이다.

“이 몸이 제자인 왕자를 죽였다?”

“그것을 본 자들이 태반이다, 반역자 일란!”

“제대로 말하거라.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그놈이 이 몸을 죽이려다 죽은 것이다. 그러면 이 몸이 죽어 줘야 하리?”

상혁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왕자는 그의 제자였다. 동시에 이 왕국을 짊어지고 나아갈 왕이었다. 이 왕국의 건국왕이자 상혁의 주군이었던 현왕이 병석에 든 후 왕자는 왕이 될 기반을 닦아 왔다.

하지만 그런 왕자에게 전대 왕의 신하이자 왕국의 대마법사인 일란, 상혁의 존재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자신이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없는 검인 상혁을 죽이기 위해 왕자는 함정을 파 놓았다. 하지만 상혁이 누구던가.

“그러니 준비를 잘했어야지. 그 정도로 나를 죽일 수 있다 믿었다니. 키타이온의 사신이라 불리던 이 몸일지언데.”

움찔.

상혁의 말에 기사들이 어깨를 움찔했다. 대마법사 일란은 다른 말로 키타이온의 사신이라 불리기도 했다. 왕국을 세우는 데 분수령 같은 역할을 한 전장에서 상혁의 대마법에 의해 적군 십만이 키타이온 협곡에서 불타 죽은 뒤 얻은 악명이었다.

8서클 대마법사.

신화 속에 등장하는 드래곤이나, 인간과 교류를 끊은 지 천 년이 넘은 엘프를 제외하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인 8서클에 도달한 대마법사가 바로 상혁이다.

왕자는 함정을 덜 준비한 죄로 되려 상혁의 손에 죽었다.

하지만 왕국은 공신보다는 왕자의 편이었다. 마탑에 틀어박혀 제 잘난 맛에만 살아 아군보다는 적이 더 많던 마법사는 그렇게 반역자로 몰려 냄새나는 하수구 앞에 서 있었으니 말이다.

“너희도 마찬가지다. 고작 그 정도로 이 몸을 죽일 수 있을 성싶더냐?”

상혁이 기사들을 향해 허장성세를 부렸다. 상혁이 그간 쌓아 온 업적과 악명은 기사들로 하여금 그 허장성세가 진짜라고 믿게 만들 정도였다.

단 한 명.

기사단장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허튼 수작!”

퍼억!

상혁의 눈이 커졌다. 기사단장의 손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오러를 품은 검이 순식간에 상혁의 배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커, 커어어억!”

상혁의 입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흘렀다. 오러가 몸속을 갈기갈기 찢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상혁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해 냈다.

“네 힘이 다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역자 일란.”

“크후후후. 근육 돼지 주제에 머리를 썼군. 마스터에 오른 걸 숨겼다니. 쿨럭…….”

바닥에 시뻘건 피가 쫘악 퍼졌다. 상혁은 자신이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나와 신체가 온전하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로는 마스터를 상대로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었다.

저벅, 저벅.

기사단장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상혁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기사단장이 그런 상혁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배에 박힌 칼을 쥐었다.

“크악!”

배에 박힌 칼이 움직이면서 내장을 찢자 그 고통에 상혁이 비명을 질렀다. 기사단장은 차가운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쿨럭, 쿨럭.”

“공신인 대마법사의 최후가 이리 허망하다니.”

“크흘흘흘.”

기사단장의 말에 상혁이 피를 토해 내면서 웃었다. 상혁은 기사단장을 향해 입술을 뻐끔거렸다.

뻐끔- 뻐끔-

“뭐?”

상혁의 말이 들리지 않자 기사단장은 상혁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어들였다. 그러자 상혁이 피에 물든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감히 이 몸을 상대로 끝까지 방심하다니. 불쌍하다고 했다.”

“뭐-.”

퍽!

기사단장의 턱에 고드름이 솟아나며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마지막 마나를 끌어서 만든 마법이다. 기사단장이 눈을 까뒤집으면서 뒤로 넘어가는 순간 깜짝 놀란 기사들이 화살을 발사했다.

퍽, 퍼버벅.

화살이 날아와 상혁에 몸에 그대로 꽂혔고, 그 충격에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하수구.

왕도의 모든 물들이 하나로 모이는 하수구 안으로 상혁이 기사단장의 몸과 함께 떨어졌다.

풍덩!

상혁의 시야가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마 눈의 핏줄도 터진 모양이었다.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오는 물에 잠긴 채 흘러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쿨럭이면서 웃었다.

‘마지막으로 보는 게 하수구라니. 내 인생도 참.’

상혁의 두 눈에 초점이 풀렸다. 그 순간 상혁은 기구하기 짝이 없었던 자신의 칠십 인생이 주마등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열 살에 여읜 부모님, 원장의 학대에 뛰쳐나왔던 보육원, 살아 보겠다며 시작한 고시 공부, 그리고 이유 모를 차원 이동, 용병으로 길바닥에서 굴렀던 십 년의 하류 인생, 그리고 십 년간의 끔찍한 인체실험, 그리고 대마법사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빛을 끝으로 상혁은 자신의 눈앞이 암흑으로 물드는 것을 느꼈다. 거기서 무언가를 더 생각하기도 전에 상혁은 기억이 끊겼다.

* * *

부글부글.

상혁은 무언가 간지러운 것이 자신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머리카락 같기도 한 긴 무언가가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 죽지 않았나?’

번쩍!!

그 순간 상혁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자 눈앞에 탁한 액체가 막 휘몰아치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느꼈다.

‘뭐지?’

흡!

그 순간 상혁은 숨이 막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상혁은 자신이 어떠한 액체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고 마침내 수면 위로 고개를 탁하고 드는 순간 상혁은 콧구멍과 입을 최대한 열면서 부족한 산소를 한껏 빨아들였다.

“후아아압!!”

콸콸콸.

그런 상혁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바깥에 불룩 튀어나온 커다란 배관으로 탁한 액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상혁은 문득 자신이 저 탁한 액체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대체…….”

상혁은 고개만 내민 채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죽기 전 온몸에 맞은 화살이 스무 대가 넘었다. 그런데 화살은커녕 배가 관통당한 곳도 아무런 상처가 만져지지 않았다.

“난 분명 화살을 맞고 하수구에 빠졌을 텐데…….”

그 하수구는 왕국의 수도를 한 바퀴 돌아 강으로 흘러나간다. 그걸 설계한 것이 상혁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긴 상혁이 알고 있는 강이 아니었다.

삐뽀- 삐뽀-

그리고 그때 저 멀리서 상혁에게 대단히 익숙하지만 지난 오십 년간 들어 본 적이 없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방차가 내는 사이렌 소리였다.

상혁은 그 소리를 듣고는 황급히 고개를 치켜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상혁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달이 하나야.”

노란 달이 하나가 하늘에 떠 있었다. 상혁이 지난 오십 년간 봐 온 하늘에는 달이 두 개였다. 그리고 달이 하나인 곳은 상혁이 오십 년간 그리워하던 바로 상혁의 고향에만 있었다.

지구.

“여기가, 지구라고?”

상혁이 황망한 눈으로 하늘을 훑었다. 분명 이곳은 지구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리더니 바로 옆에까지 왔다.

타닥, 타다닥!!

-어디요?

-저기, 저기예요!

그때 여러 사람의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건 놀랍게도 한국어였다. 오십 년 만에 듣게 된 한국어에 상혁의 두 눈이 감동으로 잘게 떨리려는 순간 누군가 눈부신 빛을 손에 매단 채 상혁이 있는 곳을 향해 쏘았다.

“윽!”

순간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눈부심을 느낀 상혁이 고개를 찡그렸다. 그런 상혁을 발견한 사람이 소리쳤다.

“저기! 저기 요구조자입니다! 제 말 들리십니까!!”

구조대원이었다. 상혁은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지구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지구로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상혁의 두 눈이 회까닥 뒤로 돌아갔다. 물속에 너무 오래 있었던 나머지 체온 저하로 인해 정신을 잃은 것이다.

“아!!”

그 순간 구조대원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 * *

“우리 상혁이! 엄마가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라고 했지?”

“아빠가 떨어진 건 3초 안에 주워 먹어도 된다고 했어!”

“여보!!”

“으하핫! 우리 상혁이가 아빠 말을 잘 기억하는구나?”

상혁은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건 일종의 자각몽이다. 상혁이 대마법사라 불릴 정도의 성취를 쌓은 순간 상혁은 그리운 이런 추억들을 꿈속에서 볼 수 있었다.

상혁의 열 살 전, 두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행복했던 그 추억.

그런데 그때 꿈이 바뀌었다. 그건 더 이상 자각몽이 아니었다. 엄마는 상혁을 쳐다보며 엄한 표정으로 꾸짖었다.

“그런데 독이 든 술을 좋다고 날름 먹었니? 남이 주는 건 함부로 먹지 말라고 했잖아!”

“그것뿐이야? 음식에는 마나를 흩트리는 약도 있었고, 수면제도 있더구만.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라고 했잖니!”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 가며 상혁에게 꾸중했다. 상혁은 수십 년간 처음 겪어 보는 현상에 몸부림치며 그게 아니라고 변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엄마가…….”

“그러니까 아빠가…….”

옆에서 보는 건 좋았지만 막상 잔소리를 들어 보니 괴로웠다. 게다가 말도 못 하니 괴로움이 두 배가 됐다. 그런 상혁이 괴로움에 몸을 뒤틀려는 순간 상혁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