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140화 (140/140)

140. 여명의 궁 (4)

눈물의 궁.

아이를 잃은 어미가 목놓아 우는 궁전이다.

그 외에도 슬픔과 후회, 탄식이 비눗방울처럼 수없이 쌓여있는 곳.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비통함이 비처럼 추적추적 내리는 마계다.

“······.”

나는 새하얀 수면 위에서 마계의 검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빗방울이 그쳤다. 슬픔의 대악마 몰로크가 성불했기 때문이다.

고대 성물 아가타의 성배.

이 성배에 담은 물은 마나가 허락되는 한 모두 성수로 바뀌어 버리니까.

아이를 잃은 밴시도, 인간들을 세뇌하던 악마도, 포악하던 해양 몬스터들도 재가 되어 소멸했다.

-놀라운 경험! 부정적인 감정을 지배하는 대악마 몰로크를 처치하셨습니다!

-니케아 황궁을 지배하던 ‘세뇌 흑마법진’을 고장 냈습니다! 완전히 파괴되어 더는 수복할 수 없을 겁니다!

시스템 창이 나타난다.

비록 달아난 악마도 몇몇 있지만, 마계의 악마까지 전부 처단하는 건 무리겠지.

바다처럼 드넓은 물을 전부 성수로 만들고 아쿠아 스톰을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심할 단계는 아니겠지.’

나는 검은 하늘에 있는 붉은 달을 살핀다.

마계의 붉은 달.

선과 질서, 빛을 추구하는 아르카나 대륙에서 태양을 추앙하듯,

힘과 무질서, 어둠을 추구하는 마계에서는 붉은 달을 추앙하므로.

따라서 붉은 달빛이 내리쬐는 것을 따라 심연왕 프로세피나 또한 날 인지했으리라 추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세피나가 있는 에크론의 산에서 이곳은 거리가 매우 멀다. 아마 그녀도 확신하지 못할 거야.’

스산한 바람이 분다.

이곳은 마계. 아무리 7써클에 오른 나라도 홀로 마계왕을 상대할 수는 없으므로.

상대가 먼저 강림하기 전에 니케아 황궁으로 돌아간다. 아르카나 대륙으로 돌아간다.

“돌아왔는가.”

여명의 궁에는 황제 세실리아가 홀로 집무를 보고 있었다.

흘깃, 그녀가 작성한 문서를 보니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하다. 단 한 명의 피해자도 없도록 한 가지 일에도 철저히 움직인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황제 세실리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신 문두스라고 하니 날 완전히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라고 오해한 모양.

“나는 네가 그리워하던 마신 문두스가 아니다.”

다만 나는 진실을 말해준다.

흠칫 놀란 세실리아에게 보충 설명해준다.

“내가 약속했던 건 황궁의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과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를 다시 만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뿐이었다.”

즉, 내가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혼자 멋대로 착각했을 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시 만날 수 있지?”

그제야 세실리아가 표정을 굳히고 묻는다.

녹색 눈동자가 용의 눈매처럼 근엄하게 내려앉는다.

‘아마 황실 적통에는 하이 엘프의 피가 섞여 있던가?’

나는 그런 녹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한다.

십여 년간 칩거하였으나 전혀 늙지 않은 황제 세실리아.

이는 신성한 황족 혈통, 즉, 태초의 피에 하이 엘프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황제 세실리아가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에게 집착하는 것은,

용족을 두려워하며 선망하는 엘프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나태함과 의존증, 위태로움을 세뇌하는 흑마법진이 더욱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이미 결별 된 관계는 두 번 다시 복구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뿐.”

따라서 나는 의존부터 끊어내라고 말한다.

아마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황제에게 실망한 것도 이런 무른 모습 때문이었을 테니.

“용족은 질서의 수호자. 결국, 대륙의 평화를 위해 악의 교단과 맞설 수밖에 없다. 그때 니케아 황실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야 한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는 종말을 막기 위해 선조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강림한 존재.

황제를 떠난 건 단순히 실망한 감정뿐만이 아닐 것이다.

짐이 된다는 생각.

무딘 인간과 협력해선 될 일도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차라리 혼자 나서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 떠난 것이다.

따라서 확신을 줘야 한다.

니케아 황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정상화된 니케아 황궁은 기존과 다르다는 걸 말이다.

“우선 그러기 위해선 니케아 제국 전체가 힘을 모아야겠지.”

나는 본론을 말한다.

니케아 황실을 정상화한 이유.

이는 단순히 중앙의 개혁에 국한된 일이 아니었으므로.

“이제 곧 악의 교단 디메토르에서 ‘마계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 말에 황제 세실리아가 눈매가 싸늘하게 굳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마계의 문.

이는 동부의 변 때, 다크로드 자칼이 열었던 차원의 틈과는 격이 다른 것이니.

“······설마. 마계가 아르카나 대륙에 전쟁이라도 선포한다는 뜻이냐.”

세실리아가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마계의 문······.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도 특히 흉악한 난이도라고 평가받은 메인 스토리지.’

마계의 문.

차원의 한계를 뚫고, 마계와 아르카나 대륙을 강제로 연결시키는 문.

마계의 존재들이 본체로 아르카나 대륙에 강림할 수 있는 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난이도가 오르는 <별들의 전쟁2>의 후반부를 상징하는 사건.

‘완성되는 순간, 거악들이 아무 제약 없이 본체로 강림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최소 대륙 절반이 멸망할 거다······.’

지금까지 마계의 군주, 즉, 7대 거악은 본체의 힘을 100% 사용하지도 못했거늘.

대륙 일부분을 소멸시키는 건 물론, 전 대륙까지 상대하려고 했었다.

그런 자들이 본체 그대로, 심지어 마계의 군단까지 이끌고 강림한다면?

과거 용의 시대를 끝내버린 것처럼 인간의 시대를 끝내버릴 것이다.

‘문제는 그 위치가 랜덤이라는 거지.’

다만 이것만큼은 나조차도 정확히 위치를 알지 못했다.

단지 악의 교단 디메토르에서 비밀리에 진행하며, 오랜 기간 잠복하여 진행한다고 알 뿐.

이를 막기 위해선 전 대륙이 공조하여 나설 수밖에 없는 거다.

“따라서 ‘대륙 평화 회의’를 개최해야 한다.”

나는 황제 세실리아에게 전한다.

대륙 평화 회의.

전 대륙에 있는 모든 대영주가 모여서 의논하는 일을 말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내 말을 들은 황제 세실리아는 착 가라앉은 눈매를 빛내며 말한다. 목소리에 힘이 돌아온다.

내가 세뇌 흑마법진을 파괴한 덕분이다.

“······어쩌면, 실베스타와 다시 만날 기회를 잡을 수 있겠어.”

더구나 그녀 또한 눈치챈 모양이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를 어떻게 다시 만나라는 건지.

‘물론 다시 만나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입장에선 이미 어린 동생들을 잃었으니까. 비록 그 악의 근원이 디메토르 교단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막지 못한 세실리아를 불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내가 중재해야 한다. 악의 교단 디메토르. 그들은 내부 분열한 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까.’

나는 알고 있다.

악의 교단 디메토르를 지배하는 마계 대군주 심연왕 프로세피나. 그녀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더구나 ‘진 엔딩’에서 그들이 보였던 일은 감히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조차 상상도 못 하는 일이므로.

거악들을 비롯하여 ‘탈인간급’ 강자들과 맞서기 위해서라도 힘을 합친다.

비록 그 길이 고된 가시밭길이라도.

피하지 않는다.

***

끼룩, 끼룩.

한편, 아르카나 대륙 최서부.

다그닥, 다그닥.

커다란 갤리선과 상선이 가득한 선착장에 아무런 짐도 없이 내린 한 사내가 있다.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젊은 사내.

그는 허리춤에 두 자루의 명검을 허리춤에 찬 사내는 흑마를 타고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우웅.

[······검신(劍神) 카를 공. 세트입니다. 시간 괜찮으십니까?]

통신 구슬에서 늙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검신 카를은 젊은 외모와 달리 그에 준하는 연륜을 가진 태도로 답한다.

“말해보도록.”

[니케아 황실에서 공식 외교 문서를 거절했습니다.]

“······.”

세트라는 노인은 공식 협력이 실패했다고 전한다.

[다만 특별히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이 공식 문서가 날아든 바로 다음 날, 니케아 제국 황궁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

세트라는 노인은 통신 구슬을 동영상 구슬로 전환한다.

동영상 구슬로 전해지는 건 피바다가 된 어전 회의실과 으깨 죽은 고위 관료들이다.

마신 문두스가 유력한 용의자라는 내용.

검신 카를은 그 시신들을 무심히 살피다가 말했다.

“전부 악의 교단 디메토르 소속 흑마법사인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린다.

시체들의 공통점을 곧장 파악한다.

그 또한 자신의 대륙에서 숱하게 악의 교단 디메토르의 추종자들을 절멸시켰으므로.

시신에 있는 검은 펜던트 문양을 알아본 것이다.

“일단 다시 공식 외교 문서를 넣어보도록. 어쩌면 마신 문두스가 황궁을 재정비했을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그 이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겠다."

[······!]

검신 카를은 그렇게 말하고 통신을 끊었다.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겠다.

니케아 제국 황궁에 있다는 마신 문두스를 찾아가겠다는 뜻이므로.

히히힝!

투두두두!

아르카나 대륙 중앙.

수도 콘스탄틴으로 질주하는 것이다.

***

또 다른 대륙 서부 도시 ‘라흐’.

신비로울 만큼 아름다운 은발을 가진 여인 실베스타가 거닌다.

불과 십 년 전만 하더라도 계속된 내전으로 증오와 갈등이 끝없이 피를 흘렸던 서부 도시.

그러나 지금은 인파가 북적이는 평화로운 대도시를 둘러본다.

“······식당 이모! 여기 오므라이스랑 빵에 스프 좀 담아주이소!”

“이봐, 이번에 황궁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소문 들었나? 듣자하니 마신 문두스가 고위 관료를 절반이나 죽였다던데.”

“설마 오르비스 대학살을 하던 자가 돌아온 거 아니겠지?”

가까운 여관에서 식사를 하는 자들이 보인다.

안 자리가 꽉 차서 야외에서 식사하는 평민들. 심지어 부유한 상인인지 사치품인 신문을 든 자도 있었다.

“예끼, 이 사람아! 마신 문두스께서 하신 일에 토 달지 말게. 서부에서처럼 뒤에서 암약하던 흑마법사들을 처치하셨나보지.”

“마신 문두스 공을 모욕하는 자, 내 여관에서 나가게.”

“주, 주인장. 내가 무슨 모욕을 했는가? 신문에 나오기에 그냥 해본 말이지.”

“······.”

이곳 분위기는 대단히 마신 문두스에 대해 강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사실 서부만이 아니었다.

불사왕 데힐라칸이 강림했던 동부도, 대한파를 겪은 북부도 마신 문두스라면 대단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대륙 공적이라 불리며 전 대륙에서 배척받던 분위기도 옛말이었다.

“······.”

은발의 여인은 그러한 대화를 빤히 듣고 있었다.

마신 문두스.

본래 그 이명은 바로 자신의 것이었으므로.

전 대륙에서 환호와 탄성, 존경의 대명사로 불리는 일을 고요히 만끽한다.

“이보게. 주인장.”

이후 실베스타는 여관 주인을 부른다.

여관 아주머니는 햇볕 한 번 안 본 것 같은 새하얀 피부와 햇빛에 빛나는 긴 은발을 보고 움찔한다.

“······귀족, 이십니까? 무슨 일이신지?”

“마신 문두스가 강림했다는 곳이 어디지?”

다만 실베스타는 이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주인장이 가리킨 곳으로 이동한다.

“대지의 기억.”

그곳에 담긴 역사를 훑어본다.

그러자 숱하게 벌어지던 인간 내전. 이후 무려 3만명이 모인 대회전이 벌어지려고 할 때,

-둘 다 그만.

샌드 드레이크를 탄 사내가 읊조린다.

빛과 어둠의 가면을 쓴 사내.

그러나 실베스타는 알 수 있었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서 뿜어지는 마나와 살기는 아룡기사 네카르와 같다는 걸.

쿠과과과광-!!

쐐애액!

이후 혼자서 전쟁을 막아낸다.

-내 판결에 따르기 싫은 자가 더 있다면 지금 말해라.

강제로 봉합한다. 이후 서부 연합군을 결성하여 탐욕왕 엘드리치를 막으러 떠난다.

-운석 소환······. 탐욕왕 엘드리치가 별 것을 다 해놨군.

고오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후, 돌아와서 떨어지던 운석을 막아낸다.

탐욕왕 엘드리치.

그자는 간악하게도 자신에게 반하는 대영지들에 밤하늘의 유성을 소환해 몰살시키려고 했으므로.

남들 몰래 온화하게 인간을 보듬어주는 거다.

“이것이 네카르라는 어린 용족의 방식인가 보군요.”

“······.”

함께 따라온 엘프 집사 그란디아가 말한다.

때론 현실적이며 강경하던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처럼 행동하고,

때론 철저하고 온화하던 황제 세실리아처럼 행동했으니까.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또한 고개를 주억거린다.

‘어쩌면, 황제 세실리아의 무른 모습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만약 저 아이처럼 했다면.’

그간 동부에서부터 대지의 기억으로 지켜본 네카르의 행동들은 하나 같이 이상적이었다.

단 한 순간에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

자신조차 몰랐던 파훼법과 숭고한 희생 정신은 대륙의 마법 역사를 50년 가까이 발전시켰다는 실베스타조차 감탄할 수준이었으므로.

네카르란 아이가 남몰래 얼마나 고심했을지, 괴로웠을지 유추한다.

비록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약한 아이라지만 그 가치관을 배우려는 것이다.

‘하지만 저 어린 용족의 여린 마음이 결국 제 스스로를 괴롭게 할지 모른다······.’

다만 기특함 이후에는 걱정이 든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마계의 군주들.

이들은 태초부터 존재한 4명의 악.

그들은 단 4명이 천계를 멸망시킨 존재였으니까.

지금까지의 군단장과는 또 한 번 격이 다른 자였다.

‘거악들도 지금 마신 문두스를 척살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둘러 합류해야 한다.

자신이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완전히 악룡이 되어 심연왕 프로세피나에게 세뇌 당하기 전에.

······심장을 꺼내 줘야 한다면 그래야겠지.

저 아이라면 믿고 눈을 감을 수 있으므로.

여명의 궁으로 날아간다.

거의 다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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