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핏빛 군주 (6)
‘이, 이게······. 인간의 힘이라고?’
청소년 엘프 엘라힘은 난생 처음 보았다.
인간의 검술.
문명에서 수백 년간 체계화된 무기 체계는 감탄이 나올 만큼 군더더기가 없었다.
검왕 알렉스가 보검을 오른쪽으로 휘두르면, 발을 비롯한 몸도 오른쪽으로 향했다. 왼쪽일 때도 마찬가지.
마치 검과 몸이 하나가 된 것처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모든 동작이 이어졌다.
알렉스 혼자서 시종일관 진혈의 뱀파이어를 압도했다.
“검왕 알렉스님.”
“이쪽도 정리가 끝났습니다.”
“······.”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로얄가드.
검왕 알렉스가 이끄는 인간 최정예 기사단.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체계화된 검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로열 가드들은 각자 다른 각도에서 뱀파이어들을 상대하면서도,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게 움직였다.
검진(劍陳).
마치 이들은 하나이면서도, 전체인 듯.
각기 다른 물 알갱이가 모여 파도를 만들듯 서로를 보호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덕분에 무려 진혈의 뱀파이어 하나와 순혈의 뱀파이어 둘을 상대하는데, 로얄가드는 단 한 명도 다친 자가 없었다.
‘만약 궁왕 엘레노아 전하께서 맞붙는다면, 과연 이기실 수 있을까?’
1:1에서 원거리와 근거리 전투 장면을 떠올린다. 엘프 친위대와 인간 로얄가드간의 전투도 상상한다.
침을 꿀꺽 삼킨다. 무엇하나 쉬울 것 같지 않았다.
사왕 중 으뜸이라는 위명을 납득하게 만든다.
“대악마와 계약한 자로군.”
한편 검왕 알렉스는 검 끝으로 진혈 뱀파이어 하사신의 가슴팍을 열어보며 말했다.
왼쪽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 대악마의 계약 문양.
누구와 계약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풍기는 마력을 보아 진혈의 뱀파이어에 버금가는 거물임은 분명했다.
로얄가드 대원들이 묻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니스 백작령을 습격하는 뱀파이어는 이들보다 최소 두 단계 더 높은 자라고 들었다.”
“······!”
그 말에 흠칫 놀라는 로얄가드 대원들.
고오오.
실제로 현재 에니스 백작령 방향에서 거대한 붉은 안개가 몰려오고 있었다.
대륙 남서부 전체를 태양으로부터 차단하는 피의 구름.
새들과 동식물이 놀라서 달아난다.
로얄가드 또한 표정을 굳힌다.
“황실에서 다른 로얄 가드 대원들도 불러오시겠습니까?”
한 로얄가드 대원이 물었다.
현재 로얄가드는 검왕 알렉스를 포함하여 단 6명이었다.
어린 엘프 엘라힘은 몰랐지만 본래 로얄가드는 총 12명이다.
현재 남은 절반의 로얄가드는 황제 세실리아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던 것이다.
“아니, 현재 폐하께서 계속 칩거 중이시기에 황실 분위기가 불안하다. 로얄가드가 전부 자리를 비우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알렉스는 로얄가드의 수장으로서 황제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비록 현재 황제가 국정운영에 손을 놓고 있더라도, 개는 주인을 버리지 않는 법이므로.
자신과 가문을 자애롭게 거둬준 손길을 잊지 않는 거다.
‘······더구나 로얄가드에 배신자가 있다고 하니까.’
알렉스는 인상을 찡그린다.
누가 배신자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로얄가드를 더 차출하기 두려웠다.
‘그래도 가장 믿을 수 있는 부단장 ‘알프레드’를 두고 왔으니 괜찮겠지.’
로얄가드 부단장 알프레드.
그는 알렉스가 어렸을 적, 기사생도일 때부터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이므로.
그에게 황제 세실리아의 호위를 맡긴 것이다.
“이 하이 엘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린 엘프 엘라힘은 살짝 얼어붙었다.
지금 이 말을 하는 로얄가드의 눈빛이 살벌했으니까. 만약 내버려뒀다가 다른 뱀파이어에게 당하면 위험하다는 눈치.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은 분위기다.
“됐다. 애초에 중앙으로 보낸 것이 나와 합류하도록 한 거겠지.”
다만 검왕 알렉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있는 한, 어떤 뱀파이어가 출몰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이다.
“내가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다. 에니스 백작령까지 데려간다.”
따라서 검왕 알렉스는 마차 방향을 바꾼다.
로열 가드가 움직인다.
황제의 힘을 대변하는 대륙 최강 기사단.
그들이 무려 절반이나 대륙 남서부로 지원 나간다.
***
에니스 백작령.
이곳은 대규모 전쟁이 한창이었다.
성벽 전체를 보호하는 신성력.
그리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달려드는 혈괴물들.
시간이 갈수록 신성력을 뚫고 덤벼드는 피의 괴물이 많아지는 만큼 수성 측 또한 죽는 자가 늘어났다.
“······기존 인간들의 신성력이 아니군.”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러한 사투를 한가롭게 바라보는 붉은 머리의 중년 사내가 있었다.
머리에 거악 중 하나임을 상징하는 초대형 뿔을 달고 있는 중년 사내.
혈마왕 블라디미르 폰 체페슈.
대륙 남서부를 마비시킨 뱀파이어들, 그들을 지배하는 왕이자, 흡혈귀의 영웅이었다.
“설마 둘 다 당하다니. 과연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손을 써둔 건가.”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모든 뱀파이어의 왕으로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혈족이었던 의혈의 뱀파이어 나이틴과 그림자 뱀파이어 하사신이 둘 다 전사했음을.
그리고 그 비책은 마신 문두스가 낸 것이라는 걸 말이다.
“더구나 거울 속 세계까지 침입할 줄이야. 내가 죽음의 대악마 위리놈과 계약을 한 걸 눈치채고 있던 건가.”
블라디미르는 손아귀에서 울리는 경보 종을 살핀다.
자신의 방에 무단으로 침입하면 곧장 경보가 울리므로.
밤의 고성에는 진혈 뱀파이어에게 터부시되는 함정이 많은 만큼,
자신이 자리를 비운 짧은 시간 동안 그곳까지 뚫고 갈 수 있는 자는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밖에 없다고 판단한 거다.
“어쩔 수 없군.”
말과 달리 입꼬리가 슬며시 오른다.
반대로 말하면 현재 에니스 백작령 쪽에는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없다는 뜻이므로.
본래 화이트 드래곤이 붉은 군대를 막느라 힘이 빠지면 나서려고 했지만.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먼저 나서서 최대한 흡혈하고 싸우려는 것이다.
펄럭.
따라서 거대한 박쥐 날개를 펼친다.
에니스 백작령으로 날아든다.
결전이다.
***
샤아아아!
‘이대로 네카르 경이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는 승기를 잡아간다고 생각했다.
정화된 순례자의 십자가.
이는 성벽에 다가오는 피의 군대들을 그 자체로 소멸시켰으므로.
비록 신성력이 점차 고갈돼서 뿜어내는 빛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피의 군대를 크게 약화시키는 데 공조하므로.
끝없는 피의 군대에도 성문이 뚫리지 않음에 안도하고 있는 거다.
고오오.
이변이 생긴 것은 그 무렵 때였다.
‘윽?’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는 코를 마비시키는 짙은 피 냄새를 맡는다. 비릿하다 못해 토할 듯 역한 피 냄새.
고개를 들어보니 성문 앞에서 뿜어지던 붉은 안개가 들이닥치고 있다.
마치 붉은 색안경을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예지는 혈무(血霧).
순례자의 십자가가 뿜어내는 성역의 빛을 뚫고 들어온다.
“커헉······?”
“허억, 수, 숨이 안 쉬어져······.”
차원이 다른 혈무에 성벽 위 병사들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쓰러진다.
다급하게 사제들이 신성 축복을 하고, 엘프들이 바람의 정령을 부려 막아낸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는 전염된다.
지금 뿜어지는 붉은 안개.
이는 지금껏 최고위 뱀파이어들이 뿜어냈을 때와 비교해봐도 비정상적으로 짙으므로.
누군가 혈마법을 사용했거나, 환술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잠깐. 이 상황은······. 성서에서······?’
그때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는 머릿속에 번뜩 스쳐 지나가는 문구가 있었다.
무려 성서에서 기록되어 있던 혈마왕의 기록.
[······핏빛 군주가 도래한다.]
[하늘이 붉어지고 짙은 피 냄새가 대륙을 뒤덮는다.]
수많은 신학자가 단순한 비유라고 말했던 기록.
그러나 지금은 대낮임에도 하늘이 노을 질 때보다 더욱 붉고, 짙은 피 냄새가 진동한다.
대륙 전체를 뒤덮을 듯 혈무가 뻗어 나간다. 도저히 과장이라고 할 수 없다.
‘그,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뭐였지?’
성녀 에클레시아는 안색이 창백해진다. 빨리 떠올려야 하는데······. 평생 외웠던 성서 구절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붉은 기둥이 땅과 하늘까지 이어진다. 그 파괴력은 대륙 전체를 저승으로 바꾸려던 불사왕 데힐라칸을 넘어섰다.]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고 나서야 떠오른 다음 구절.
가장 무시무시한 기록이다.
‘붉은 기둥? 그건 대체······?’
에클레시아는 서둘러 대비하려고 이를 추측한다.
그러나 이는 굳이 추측할 필요가 없었다.
고고고고!
이미 성벽 밖에서 에니스 백작령 전체 마나와 맞먹는 양의 마력이 한 점으로 모여들고 있었으니까.
붉은 점이 번뜩인다.
--!!
고막을 넘어서는 굉음이 에니스 백작령을 때린다.
그와 동시에 붉은 기둥이 수평으로 작렬한다.
일격에 성문을 관통하고, 후문까지 무너뜨린 피의 폭풍.
너무나 강력한 마력에 순간 공간이 일그러진다.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와르르 무릎 꿇는다.
성벽이 지진 난 듯 덜덜덜 떨린다.
“의혈의 뱀파이어 나이틴.”
그리고 어느 순간, 들려오는 중저음의 사내 목소리.
바로 곁에서 들리는 중후한 목소리에 에클레시아는 흠칫, 놀란다.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 안개 속에 한 중년 사내가 서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에 마왕의 뿔. 그리고 진혈 뱀파이어보다도 거대한 박쥐 날개.
······일전 궁왕 엘레노아가 말했던 ‘진혈왕자’가 수백 년 늙으면 저렇게 될 것 같은 중장년 사내다.
그자는 홀로 적진 한가운데에 들어왔으나, 붉은 눈동자는 처연함에 잠겨있다.
“고생했다. 내 영생을 위해 헌신해주었구나.”
츠츠츳.
붉은 머리의 중장년 사내는 손을 뻗는다.
그러자 핏덩이로 버려져 있던 의혈의 뱀파이어 나이틴이 사내에게 흡수된다.
붉은 눈동자가 더욱 번뜩인다.
“그러나 이젠 쓸모가 다 했어.”
쿠고고고고!
블라디미르는 이번엔 왼손을 들어 올린다.
그러자 성벽 밖에 가득 쌓여있던 수만 마리의 피의 괴물이 혈액으로 변해 빨려든다.
이들은 순례자의 십자가에 녹아내려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성역 선포에도 멀쩡한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모조리 흡수한다.
“네놈은 블라디미르.”
샤아아.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는 당장 성검 듀란달을 빛내며 살기를 번뜩인다.
그러나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전혀 위기감이 없다.
촤아악.
손짓 한 번에 피의 파도를 모은다. 붉은 구체가 형성된다.
마치 마신 문두스가 모았던 푸른 파도처럼.
콰아아아아아아-!!!
붉은 기둥이 작렬한다.
루크레치아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지르는 피의 폭풍.
마치 마신 문두스의 아쿠아 스톰. 아니, 그보다 몇 배는 강력한 파괴력이다.
루크레치아는 경악하며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른다. 등 뒤를 돌아본다. 성벽이 깨끗이 소멸했다.
‘이게, 단 한 명의 혈마법이라고?’
성녀 에클레시아 또한 벌벌 떤다.
성서에서 왜 불사왕 데힐라칸의 파괴력을 넘어섰다고 칭했는지 이해했다.
단 하나의 일격에 전황을 뒤바꾸는 수준.
불사왕 데힐라칸이 이끄는 언데드 군단과 맞는 위력이었으니까.
“으으······. 아아아······.”
“저, 저 괴물은 막을 수 없어······.”
“도, 도망쳐. 여기 있어봤자 우린 쓸모도 없는걸!”
인간 병사들은 또 한 번 붉은 기둥이 작렬하리란 공포에 무기를 버리고 달아난다. 특히 서부에서 파병 온 병사들.
자신들이 화살을 쏴도 상대할 수 없다는 직감 때문이다.
“어리석은! 물러서지 마라. 전투는 흐름이야! 한 번 도망치면 끝이다!”
그러나 궁왕 엘레노아를 비롯한 엘프들은 대체로 달아나지 않았다. 이들에겐 숲과 제 영지를 떠나면 갈 곳이 없다는 개념이 있으므로.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싸우려는 것이다.
“아니, 겁쟁이들은 도망쳐라.”
그때, 저 멀리서 중년의 사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번쩍!
그와 동시에 에니스 요새 밖에서 뿜어지는 찬란한 황금빛.
쿠과과과광-!!!
부서진 성벽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친다. 혈마왕 블라디미르에게 직격한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뿜어진다.
‘······네카르 경?’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는 황금빛이 날아온 곳을 바라본다.
하지만 저 황금빛은 4대 속성 마법이 아니다.
‘저 문양은!’
에클레시아는 알아본다.
황금 사자와 붉은 방패 문양.
이는 마신 문두스의 조언에 따라, 자신이 직접 비밀 편지를 써보냈던 상대방이므로.
투두두두두!
저 멀리서 당사자가 말을 몰고 달려온다. 휘하 기사단과 하이 엘프 가족을 이끌고.
“너희 같은 잔챙이들이 이곳에 있으면 흡혈귀의 영양분이 될 뿐이다.”
금발 머리의 중년 사내가 달아나는 병사들을 깔보며 읊조린다.
찬란한 검기를 뿜으며 보검을 챙 겨눈다. 마치 혈마왕 블라디미르의 심장까지 도려낼 법한 황금빛 검기.
“로, 로얄 가드! 황금 사자 문양이 도착했다!”
“단 12명에서도 전 대륙의 반란을 제압한다는 그 기사단이?”
“검왕 알렉스! 황제 폐하의 검이라는 대륙 제일검이 당도한 거야!”
그제야 자기도 모르게 잇몸이 만개하는 병사들.
검왕 알렉스.
그 명성은 검과 마법, 신성력을 숭상하는 아르카나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이자, 최고로 평가받는 자.
그리고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혈통인 황실을 수호하는 최고 기사가 강림한다.
혈마왕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보낸 자인가.”
이에 흙먼지 연기 속에서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다.
붉은 눈을 번뜩인다.
***
나는 비몽사몽 한 정신을 다잡는다.
휘몰아치는 바다에 빠진 것처럼 통제할 수 없는 힘에 흔들리면서도. 어떻게든 잠든 정신을 깨운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의 제4군단장.
혈마왕 블라디미르 폰 체페슈.
7대 거악 중에서도 특히 파괴적이라는 마계 군주. 그자가 제대로 날뛰면 전 대륙이 피에 잠긴다는 걸 알기에.
번뜩, 눈을 뜬다.
“?”
-키야악?
정신 차려보니 용용이가 똬리를 틀고 날 감싸고 있다.
혀로 내 얼굴을 핥고 있던 모양. 침으로 흥건하다. ······어쩐지 바다에 빠진 듯 축축하다 했다.
“그래도 고맙다. 계속 신경 써줘서.”
-크르릉!
나는 손을 뻗어 용용이를 쓰다듬는다. 잠들었을 때도, 용용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거늘.
지금도 똬리를 틀고 있었으므로. 아무래도 계속 자리를 지켜준 모양이다.
“그보다 환골탈태를 끝마친 건가.”
【아쿠아 lv7.】
세수하면서 상황을 살핀다. 몸을 일으킨다. 바닥에 찐득하게 떨어진 노폐물들. 어쩐지 몸이 가볍다.
평소엔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때문에 매일 불면증에 시달린 듯 몸이 무거웠거늘.
상쾌하게 자고 일어난 것 같다. 중병을 앓던 환자가 나은 것처럼 힘이 넘친다. 몸에 있던 노폐물이 빠지고, 잔 근육도 붙은 것 같다.
‘상태 창.’
-히든 퀘스트 ‘환골탈태’를 성공적으로 이루셨습니다!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이 삭제됩니다.
-슈퍼 레어 특성 ‘반로환동’이 적용됩니다! 자연의 4대 속성이 몸에 서립니다!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하트’가 반응합니다! 질서의 수호자로서, 힘을 일부 깨닫습니다!
다행히 환골탈태의 비약은 효과가 뛰어났다.
하기야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때문에 신체 능력이 50%로 고정되던 몸이 무술인처럼 뛰어난 육체로 바뀌었으니까.
더구나 파괴 본능도 크게 줄었는지, 지끈거리던 두통도 사라졌다.
체감이 두 배, 세 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드래곤 하트가 반응했다는 건 뭐지?’
나는 처음 보는 문구에 시스템 창을 정독한다.
-히든 퀘스트 ‘용의 후예 질서의 수호자’의 조건에 도달하셨습니다!
-모든 속성의 힘을 100% 충족하셨습니다!
-고대용 중에서도 질서의 수호자로 발탁된 자들의 ‘고대 마법’을 전승받습니다!
“!!”
원작 <별들의 전쟁2> 최고 고인물 때도 얻지 못한 보상에 나도 모르게 크게 웃는다.
고인물의 본능으로서, 새로운 정보와 보상을 얻었다는 쾌감을 느낀다.
“스킬 확인.”
-스킬 ‘가이아 포스 lv1’ : 주위 자연의 힘을 끌어낸다. 그 속성의 마나를 사용할 때, 자신의 마나 소모가 10%에 가까워진다. (용언(龍言) 마법. / 1회 사용 시, 지역마다 쿨타임 30일.)
가이아 포스.
세계의 마나를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용언 마법의 비기.
원작에서도 얻기 위해 환골탈태처럼 극악무도한 난이도의 퀘스트를 깨야 했던 궁극의 힘 중 하나다.
‘이걸 그냥 얻는다고?’
나는 상상 이상의 보상에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추가로 붙은 문구였다.
-마스터 특성 드래곤 하트가 반응합니다!
-히든 스킬 ‘대자연의 분노 lv1’을 획득합니다!
“!!”
대자연의 분노?
이는 나조차 처음 듣는 스킬이다.
그러나 스킬 설명을 읽어보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패시브 스킬 ‘대자연의 분노 lv1’ : 스킬 ‘가이아 포스’를 발동할 때, 자연환경이 뒤바뀐다. 질서의 힘에 반하는 것들에게 적대적으로 변한다.
“설마 내 예상이 맞다면······?”
【가이아 포스 lv1.】
나는 실험 삼아 곧장 새로 얻은 마법을 사용한다.
우선 가이아 포스로 황야의 마나를 끌어 모은다.
고오오.
그러자 주위 마나가 푸른색으로 모인다. 거대한 마나가 소용돌이친다.
나는 실험 삼아 품속의 ‘마정석’을 꺼낸다. 공중요새 라퓨타를 가동할 만큼 강력한 마력이 담긴 돌.
크오오오!
휘이이잉!
촤아악!
그렇게 마정석을 꺼낸 순간, 기껏 가이아 포스로 모은 마나들이 미친 듯이 날뛴다.
잔잔하던 황야에 광풍이 몰아치고, 흙이 창처럼 솟구쳐 찌르며, 물이 분노해 회오리친다.
지이잉! 고오오!
가볍게 워터볼 마법을 시전해보니, 집단 마법 워터 캐논처럼 강화된다. 마치 세상이 함께 분노하여 싸워주는 것 같다. 파괴력이 배로 강화된다.
그제야 나는 마정석을 품에 넣는다. 다시 잠잠해진다.
“대박이군.”
입 꼬리에 미소가 지어진다.
세계의 마나를 끌어 쓰게 해주는 스킬 ‘가이아 포스’.
그리고 그 마나가 사악한 힘에게 극도로 강한 힘을 발휘하는 ‘대자연의 분노’.
이는 악의 교단 디메토르를 상대해야 하는 내게 최적의 힘이었으니까.
‘혈마왕 블라디미르에게 드래곤 브레스를 뿜어낼 때, 사용해도 효과가 뛰어나겠어.’
안 그래도 드래곤 브레스는 질서에 반하는 자들에게 효과가 배가 되거늘.
여기에 대자연의 분노까지 곁들어지다니. 효과가 미친 듯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그제야 거악들이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를 경계한 이유를 깨달았다.
드래곤은 그 자체로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악한 존재에겐 특히 공포스러울 정도로 대재앙을 일으키는 것이다.
“준비는 차고 넘치군.”
펄럭!
따라서 나는 곧장 용용이에 탑승한다.
혈마왕 블라디미르를 상대할 힘을 얻었으므로.
세상을 붉은 피로 잠재워버리려는 거악과 맞서러 간다.
초고속으로 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