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117화 (117/140)

117. 고대용의 사원 (3)

또각또각.

궁왕 엘레노아와 엘프 피난민들은 미로를 계속 걷는다.

어두운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발소리.

피난민들은 처음엔 함정이 튀어나오는 공간이라 대단히 두려워했으나, 지금은 상당히 안정됐다.

그 이유는 궁왕 엘레노아도 부정할 수 없었다.

‘저 황금빛 머리 인간. 생각보다 훨씬 유능하군.’

가장 선두에서 길을 안내하는 인간을 바라본다.

자신을 네일이라고 소개한 사내.

황금빛 머리카락과 깊은 푸른 눈을 가진 저 사내는 정말 숙련된 탐험가인지 가는 길 곳곳에 있는 함정을 모조리 격파하고 있었으니까.

“모두 정지. 바로 앞에 불의 강이 튀어나올 거다.”

“모두 정지. 근처에 태풍의 눈이 있다. 그 장치부터 꺼야 한다.”

쿠오오오오! 탁.

마치 함정 위치를 훤히 다 아는지 정확하게 신호한다.

처음엔 그녀조차 인지할 수 없는 일에 불신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일 뿐.

고작 3시간 만에 벌써 스무 번째 함정을 발견했으며, 모두 순식간에 파훼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 탐험가는 저게 가능하다고?’

궁왕 엘레노아는 믿을 수 없었다.

숨겨진 함정을 파훼하기만 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란 종족은 탐욕스럽기에 좀도둑마냥 도굴하거나, 엘프를 납치하는 일이 잦으니까.

그런 쪽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곳은 지혜의 시련이다. 만약 통과하고 싶다면······.]

쿠과광!

음성이 있는 골렘이 시련을 주겠다고 말하는 가운데, 다 듣지도 않고 폭격한다.

그러자 드르륵, 열리는 문.

피난민의 목숨이 걸린 일을 신중히 움직이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만, 제대로 열리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에, 엘레노아 전하······. 혹시, 저 자가 드래곤인 건 아닐까요?’

‘······.’

엘프 장로 중 하나가 조심스레 다가와서 묻는다.

하여간 그놈의 드래곤 타령. 궁왕 엘레노아로선 노인네들이 이미 자신들을 버린 용족을 왜 이리 찾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자가 정말 드래곤이라면, 자기 사원을 박살내면서까지 우릴 초대하겠나?”

“그, 그것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들어가지.”

궁왕 엘레노아는 노인의 의문을 일축시키며 안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녀라고 의문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마신 문두스가 서부 연합군을 이끌고 탐욕왕 엘드리치와 맞선다는데,

전쟁이 벌써 끝난 게 아니고서야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먼 옛날부터 이 고대용의 사원을 탐사하던 흑마법사일 수 있다. 우릴 함정이나 제물로 쓰기 위해 데려가는 것일 수도 있어.’

따라서 궁왕 엘레노아는 제 딴에 최대한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본다.

탐욕왕 엘드리치의 흑마법사.

그들이 궁왕 엘레노아가 상대했던 주적이었으므로, 그들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엘프 피난민들을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따라서 두 눈을 부릅뜨고 인간을 노려본다. 그녀의 어깨엔 수많은 엘프 피난민과 연합군이 짊어져 있으므로.

저 늙은 용신도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으므로.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바짝 긴장한다.

***

‘거의 다 왔군.’

쿠과광!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대용의 사원을 쾌속 질주한다.

슬슬 4대 속성 함정을 전부 파훼했으니까. 더 이상 시간을 질질 끌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런데 궁왕 엘레노아는 아까부터 왜 자꾸 저렇게 살벌하게 노려보는 거지?’

나는 내 뒤통수를 꿰뚫어버릴 것 같은 궁왕 엘레노아를 힐끗 쳐다본다.

내가 쳐다보자 모른 척 다시 시선을 돌리는 엘레노아. 다시 길을 걸으니, 눈 흰자위에 핏줄이 설 만큼 날 노려본다.

······눈이 뻑뻑한지 연신 손으로 비비는 게 불쌍할 정도로.

그녀가 날 드래곤으로 인식하는 건 아닐 텐데?

궁왕 엘레노아에 대해 나름 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 이건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됐다. 별 탈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만 하면 되겠지.’

나는 단순히 길안내를 잘해서 경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종족. 약속한 걸 반드시 지키는 종족이니 날 먼저 배신할리는 없겠지.

안심하고 고대용의 사원의 마지막 방을 향해 간다.

‘그보다 이곳에는 고대의 기록이 많군.’

【■■■■■■■■■.】

나는 고대용의 사원을 거닐며 복도에 새겨진 기록들을 살핀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고대의 기록. 시스템창으로도 읽히지 않는다.

내가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고고학을 마스터했을 때도 해독하지 못한, 개발자의 게으름 정도로 취급했던 기록들이지만.

-고대용의 기록에 드래곤 아이가 반응합니다. 내용을 해독합니다.

용의 유산이 있는 지금의 나에게만큼은 다시 한 번 해독이 된다.

【나는 제4대 로드이자 레드 드래곤 수장 파프니르. 이 사원을 지은 책임자다.】

【질서의 수호자. 아직 경험이 부족한 어린 용족을 위하여 마련한 공간이다.】

.

.

석판에 새겨진 내용은 ‘고대용의 기록’이었다.

나는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조차 못 몰랐던 내용에 희열을 느끼며 읽어 내려갔다.

새로운 기록을 정독하는 게 내가 역대 최고 고인물이 된 비결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인간. 설마 이걸 해독할 수 있는 거냐?”

다만 내가 석판을 보며 길 안내에 지체하자 궁왕 엘레노아가 슬며시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탐험가들은 고대어 또한 공부하니까 당연하지. 설마 엘프는 읽을 수 없는 거냐?”

물론 거짓말이다.

이는 어지간한 탐험가들도 못 읽을 것이다.

먼 옛날, 괴조 카디악을 토벌하기 전에 만난 탐험왕 다모르급 드워프가 아니라면 말이다.

“흥, 관심 없다. 우릴 버린 용족 따위. 애초에 연구하지 않은 것이다.”

궁왕 엘레노아는 꽤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하기야 대륙 남서부의 엘프들은 수백 년간 고대용을 모신 자들. 용에 관해 자신만 모르는 일이 있다고 하니 기분 나쁜 모양이다.

‘원작보다 용족에 대해 반감이 높군.’

다만 나는 원작과 다른 점을 다소 캐치한다.

원작에서 궁왕 엘레노아는 용족에 대해 체념적이었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를 비롯하여 모든 용족이 거의 멸족되었기에 자신들을 구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명백한 적의를 보이니까. 용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싫어하는 것이다.

무슨 변수일까, 궁금했기에 대놓고 묻는다.

“용족에게 버려졌다니. 그건 무슨 소리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군. 네가 함정을 잘 파훼했기에 특별히 가르쳐주지. 마신 문두스. 그 자는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다. 그 자는 우릴 대놓고 버렸다. 너희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

궁왕 엘레노아는 엘프들만 아는 비밀이라며 말해준다. 대단히 진노했는지 두 눈을 이글거리면서 강한 적의를 드러낸다.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가, 곧 상황을 이해한다.

‘······내가 마신 문두스를 사칭하는 바람에 오해한 것 같군.’

아무래도 내가 마신 문두스라는 이명을 가지고 동부와 북부, 그리고 서부까지 구원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드래곤들을 모셨던 남서부 엘프들은 방치했으니 악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륙을 멸망시키는 거악들은 부활하는 순서가 있었으니까.’

나 또한 아르카나 대륙에 있는 모든 비극을 한순간에 해결하면 좋겠지만.

그러나 내 몸은 하나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쉼 없이 나설 뿐이다.

“도착했군.”

그렇게 잡담하는 사이, 우리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팻말에 ‘드래곤 레어’라고 적혀 있는, 용족조차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문 앞.

결국, 대륙 남서부에 있는 모두를 구하기 위해선 혈마왕 블라디미르를 막아야 하므로.

비정상적인 힘을 정화하는 용의 숨결이 필요하므로.

용의 뿔이 보관된 마지막 방에 도착한 거다.

쿠구구궁.

거대한 돌문을 밀자 수백 년간 쌓인 먼지가 번져 나온다. 케케묵은 공기가 목구멍을 간질인다.

“콜록콜록.”

“여긴?”

나이가 지긋한 엘프 장로들이 기침하며 내부를 둘러본다. 나와 궁왕 엘레노아 또한 내부를 살폈다.

-고대용 족의 마법 공간에 들어오셨습니다!

-이 ‘가상 공간’에서는 현실과 똑같이 느끼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돌로 된 거대 사원이 보인다. 콜로세움처럼 투기장 모양으로 지어진 바위 계단.

미궁 안인데도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마치 마계화라도 한 것처럼 공간이 확장됐다.

고대 건축물이 어떻게 이렇게 지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lv??? 고대 석상 드래곤. (봉인.)

······그 중심부에서 잠자고 있는 석상 드래곤조차도.

석상 드래곤은 말 그대로 새하얀 돌로 조각한 드래곤이었다.

단지 그 크기와 묘사가 실제 드래곤처럼 생동감이 넘쳤을 뿐.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비늘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 섬세하다.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 같았다.

“이건.”

궁왕 엘레노아가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묻는다.

엘프는 본능적으로 용족을 두려워하니까. 숲의 종족으로서 자연에 민감하므로, 자연의 분노를 관장하는 드래곤을 석상만 보고도 긴장하는 것이다.

“네가 필요한 건 피난민들이 뱀파이어들을 피할 대피처와 그들을 상대할 고대 병기들이었지.”

“!”

나는 엘레노아와 피난민들이 바라는 것을 복기한다.

“인간. 넌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

궁왕 엘레노아가 대단히 경계하는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내게 그것까지 말해준 적은 없으므로. 당장이라도 화살을 쏠 기세다.

“창고는 저쪽이다.”

나는 대답을 피하며 거대 홀의 한쪽 구석을 가리킨다.

두꺼운 마법 자물쇠로 묶여있는 바위 문.

사왕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궁왕 엘레노아는 당장 장궁을 꺼내서 정령 화살을 발사한다.

티이이잉!

“······!”

그러나 궁왕 엘레노아의 화살조차 튕겨 나간다. 눈을 부릅뜬 엘레노아가 다시 한 번 폭풍의 화살을 날려보지만 보이지 않는 마법 장벽에 튕겨 나간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직 결계가 안 풀린 거다.”

“뭐?”

나는 표정을 구기는 엘레노아에게 대답하는 대신, 시선을 석상 드래곤으로 향한다.

날개를 접고 잠을 자는 드래곤 조각. 그 곁에는 거대한 비석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나는 비석에 새겨진 바를 읽는다.

‘어린 용족이여. 파괴 본능에 사로잡히지 말거라. 만약 ‘악룡’이 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나는 석상 드래곤에게 시선을 돌린다.

원작 <별들의 전쟁2>를 플레이했을 때는 저 석상 드래곤이 왜 있는지 몰랐다.

단서가 없었고 게임이었으니까. 게임 개발자가 던전 최종 보스를 무찔러야 보상을 얻도록 설계했다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방금 용의 비석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쿠궁, 쿠구구구······!

땅이 지진이 난 듯 흔들린다.

엘프들은 헉, 숨을 들이마신다. 궁왕 엘레노아조차 몸이 굳어버린다. 이들의 시선은 모두 한 군데로 향한다.

-크롸아악-!!!

-경고! 상대가 ‘드래곤 피어 lv1’을 발동합니다! 단, 드래곤 아이의 효과로 수초만에 극복합니다!

-lv??? 고대 석상 드래곤. (악룡화.)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석상 드래곤.

용용이보다도 2배는 거대한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편다.

물론 일전에 보았던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에 비하면 훨씬 작은 크기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콜로세움을 가득 채운다. 용의 눈을 번뜩이며 우릴 내려다본다.

‘아마 고대의 용족에게 악룡화의 위험성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존재인 것 같군.’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할 터이니.

만물의 영장이자, 질서의 수호자로서, 그들의 어깨에 지워졌던 막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게 있었다면 위기에 처한 다른 종족도 도왔어도 좋았을 것을.’

나는 힐끗 엘프들을 살핀다.

사실 생각해보면 고대용의 사원 입구부터 고대 파수꾼 골렘들이 있었으므로.

수백 년간 용족을 기억해준 엘프들을 전혀 배려하지 못했다.

······그리고 용족 특유의 외로움은 악의 교단에게 밀리게 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됐겠지. 아무리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강력해도 홀로 대륙을 정화하진 못했듯 말이다.

‘감정.’

[이름 : 용의 뿔 #2. (NEW, MASTER.)]

[설명 : 고대 시대부터 드래곤 족을 상징하는 권능은 ‘용의 숨결’이었다. 용의 숨결을 사용하기 위해선 성체가 되어야 한다. 용의 큰 뿔은 성체가 되었다는 상징이다.]

[특수 효과 : (미해금).]

* 만약 용의 뿔을 모두 모으면 특별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1/3.)

고대 석상 드래곤 머리에 박혀 있는 붉은 뿔을 발견한다.

용의 뿔.

다음 용의 유산인 ‘ㄹ. 드래곤 소울’, 드래곤 브레스를 얻기 위한 재료.

그 아이템이 저 새하얀 석상 드래곤 머리에 박혀 있으므로. 저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물러날 수 없는 것이다.

-가상공간 안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허구입니다! 이곳에서 사용한 마나와 권능, 파괴 본능은 현실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블루번, 드래곤 블러드의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허약한 몸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기쁜 소식까지 있었다.

가상공간.

이곳은 고대용족이 만든 마법 공간인 만큼, 마음껏 날뛸 수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고대용들은 어린 용에게 악룡화의 위험성은 물론 그들을 상대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려고 한 게 분명하다.

“설마 네놈. 우릴 저 석상 드래곤의 먹이로 바치려고 데려온 것이냐!”

궁왕 엘레노아가 오해했는지 내게 버럭 고함을 지른다. 물론 그녀 또한 어쩔 수 없는 엘프인지, 평소 당당하고 근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손발이 벌벌 떨리고,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렸지만.

너무 진지한 모습에 이곳이 가상공간이라고 말해주기 어려울 정도였다.

“은인에게 또 화살을 겨누는군. 이게 엘프의 특기인가?”

“!”

따라서 나는 적당히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다.

드래곤 피어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여유를 잃지 않는다.

“너희 엘프 일족들은 나가 있어라.”

“그, 그럼 너는······?”

궁왕 엘레노아가 사고가 정지했는지 멍하게 되묻는다. 그럼 어떻게 할 거냐는 듯.

고오오.

나는 즉답하는 대신, 붉은 눈의 스태프를 들어올린다.

용의 뿔과 유산 또한 중요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나 또한 최대 마나에, 용의 권능을 마음껏 퍼붓는다면 어느 정도로 강할지 궁금했으므로.

6써클에 오른 내 한계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저 고대 석상 드래곤은 이에 매우 적합한 상대였다.

따라서 떨리는 흥분을 감추고 석상 드래곤만을 올려다보며 읊조린다.

“너희들을 잊은 신을 없애고 오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