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 (3)
나는 노움으로 쓰러진 사제들을 데리고 에니스 백작령으로 들어갔다.
마력석을 부수면서 순례자들에게 덤벼드는 거대 박쥐 떼까지 처치하느라 몹시 지쳤지만,
신앙심 하나로 이곳까지 돌파해온 사제들을 두고 올 수는 없으니까.
‘······생각보다 페널티가 더 심하군.’
-블루번과 드래곤 블러드를 동시에 사용한 페널티로, 앞으로 25일간 최대 마나가 50% 감소합니다!
나는 숨이 가쁘고 몸이 다소 무거웠으나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움직인다.
마신 문두스.
이는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를 뜻하는 이름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전쟁 억지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에니스 백작령에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전 대륙에 포진된 악의 교단에게 혹여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빛과 어둠의 가면을 쓰고 있는 동안엔 반드시 완벽해야 한다.
“어서 오십시오! 순례자 지원군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두 귀하신 분들을 안으로 모셔라. 어서!”
에니스 백작령 성문이 활짝 열렸다. 병사와 사제들이 입구에 몰려들어 환영한다.
에니스 백작령은 오랜 기간 포위당해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됐으니까.
더구나 이곳 주민들 또한 성벽 위에서 순례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달려왔는지 보았다.
이들 또한 순혈의 뱀파이어들을 상대하는 자들인 만큼 그들의 용기에 감격할 수밖에 없다.
“네가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인가?”
-lv45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 (신성력 고갈.)
나는 휠체어를 탄 체 마중을 나온 한 여인을 발견한다.
파리한 안색에 푸석푸석한 금발의 여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여인이 두 다리 없이 앉아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당신이 마신 문두스인 모양이군요.”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는 겨우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몸이 아파서일까, 근심 걱정이 많은 모습.
‘······아무래도 이미 히든 퀘스트가 진행된 모양이군.’
나는 그 표정을 보고 눈치챈다.
히든 퀘스트.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는 본격적으로 흡혈귀와 전쟁을 시작하면 남몰래 ‘비밀 편지’를 받으므로.
“우선 내성으로 들어오세요. 먼 길 오신 순례자분들을 너무 거리에 세워두었군요.”
안으로 안내하는 에클레시아.
마도공학 휠체어를 조작해서 스스로 내성으로 향한다.
순례자들은 물론, 나 또한 에니스 백작령 식당으로 초대받는다.
나는 부탁할 일도 있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더구나 나는 뱀파이어들이 에클레시아를 어떻게 이용하려는지도 알고 있으니까.’
-lv25 흡혈박쥐 (비밀 편지.)
나는 다소 진중하게 에클레시아를 바라본다.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
지금쯤 이타적인 그녀에게 '악마의 제안'이 왔을 테니까.
나는 흡혈박쥐들을 일부러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
고대 성물 '순례자의 십자가'를 정화하기 위해서라도.
에클레시아를 따라 백작령으로 들어간다.
***
에니스 백작령을 내려다보는 황야 언덕.
부서진 프레야 첨탑.
순혈의 뱀파이어 둘은 나란히 서서 주위를 내려다본다. 산산조각난 분홍빛 트롤의 사채를 주워서 살펴본다.
“······내 트롤들이 당했어. 그것도 한꺼번에.”
환영과 세뇌의 뱀파이어 릴리스는 제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혈마법.
이는 자신의 수명을 걸고 사용한 흑마법이다.
뱀파이어는 흡혈한 만큼 힘이 강해지고, 생명력을 연장하니까.
자신의 분신 같은 하수인들이 당한 것이다.
“새로 들어온 순례자 중에 그토록 강한 녀석이 있다는 건가?”
폭혈의 뱀파이어 노스페라는 제 연인을 차분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 또한 환영의 뱀파이어 릴리스의 하수인을 신뢰했으니까.
“아니, 대륙 7대 성인급 인물이 내 권역에 들어왔다면 분명 느꼈을 텐데. 불쾌한 느낌은 거의 없었어.”
“그럼?”
“······정확히는 나도 몰라. 하지만 한가지 정보는 알아냈지.”
릴리스는 품에서 마력탐지기를 꺼내며 입꼬리만 웃었다.
에니스 백작령을 향해 삐비빅, 소리가 나는 마력 탐지기.
“마정석. 지금 마정석을 가진 자가 에니스 백작령에 들어왔어. 정황상 그놈이 내 트롤들을 처치한 게 분명해.”
“!!”
마정석.
원래 힘과 무질서의 교단 제5군단장 부유왕 엘드리치가 가지고 있던 보석.
현재 잃어버려 혈마왕(血魔王) 블라디미르 폰 체페슈가 찾는 보석이다.
그 가치는 무려 무한한 마나를 가졌다는 드래곤 하트와 교환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 말에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짓는 노스페라.
“······마정석을 가진 초강자라. 설마 마신(魔神) 문두스인가?”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야. 직접 상대하는 건 위험해. 일단 블라디미르 폐하께 보고만 하고 지켜봐야겠지.”
“!”
릴리스는 심각하게 애인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순혈의 뱀파이어조차 마신 문두스와는 전투를 꺼렸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그녀의 진정한 힘을 알고 있으니까.
아무리 마계에서 대악마 다음가는 서열이라는 순혈의 뱀파이어라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드래곤과의 직접 충돌은 자신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만히 있으면 ‘진혈들’이 밤의 귀족이 아니라, 지방 수색대라며 비아냥거릴 게 분명하다.”
다만 폭혈의 뱀파이어 노스페라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진혈(眞血)의 뱀파이어.
순혈의 뱀파이어 중에서도 혈마왕 블라디미르와 가족관계인 뱀파이어를 말한다.
같은 순혈 뱀파이어지만, 자신들은 마계의 대악마급 존재라며 다른 뱀파이어들과 차이를 두는 오만한 자들.
“걱정하지 마. 내게 좋은 수가 있어. 그동안 우릴 지긋지긋하게 하던 에클레시아를 역이용해서 손 안 대고 마정석을 얻을 방법 말야.”
그런 노스페라의 고고한 자존심을 알기에 릴리스는 포근하게 가슴으로 안아주며 속삭였다.
노스페라는 진정 궁금해서 물었다.
“무슨 수지?”
“에클레시아. 그 년에게 남몰래 편지를 보냈거든. ‘지금까지 납치당한 주민들을 살리지 않냐고. 만약 네가 잘만 한다면 모두 풀어줄 수도 있다고.’”
“······주민?”
“그래, 우리 비상식량 말이야. 그 말에 격하게 반응하더군.”
노스페라는 그제야 표정을 굳힌다.
릴리스는 고혹스럽게 웃는다.
“설마. 그 대가로······?”
“맞아. ‘마정석’. 그 보석을 달라고 하는 거야.”
“!!”
분홍빛 눈동자를 빛낸다. 그녀의 하수인 중 하나인 박쥐 떼가 모여든다.
폭탄 발언에 노스페라는 순간 얼굴이 굳는다.
“설마 그정도로 마신 문두스가 마정석을 넘겨주겠어?”
“물론 넘겨주지 않겠지. 하지만 그게 우리 알 빠는 아니잖아? 훔쳐야 하는 건 성녀 에클레시아니까.”
“······!”
악마의 제안.
지금 릴리스는 속삭이는 것이다. 단지 보석 하나만 훔치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겠노라고.
그것도 마정석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한낱 인간에게 말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래도 상관없어. 만약 오르비스 대학살까지 벌인 마신 문두스가 제 물건에 손대려고 한 사람을 살려두겠어?”
“!!”
이간질.
마신 문두스와 성녀 에클레시아라는 그들의 최악의 두 적을 서로 싸움 붙이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만약 상대가 정말 마신 문두스라면 언제까지고 이곳에 있지 않을 테니까.
그 말에 노스페라도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진다.
“적어도 손해볼 일은 없겠군.”
그리고 비밀 편지를 써서 마정석이 있는 에니스 백작령으로 몰래 숨어 보낸다.
***
에니스 백작령 영주 식당에서는 오랜만에 사람들로 붐볐다.
마신 문두스와 순례자 지원군.
이들은 수년간 포위됐던 에니스 백작령에게 대단히 반가운 손님들이었으므로.
오랜만에 희망적인 웃음을 터트리며 만찬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에클레시아 예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
다만 모두가 기쁘게 웃는 식당에서 홀로 못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
에니스 백작령을 지키는 수호성인인 그녀는 힘겹게 식사를 할 뿐이었다.
“이런. 지난 전투로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군요. 얼른 들어가서 쉬십시오.”
“······배려 감사합니다.”
다행히 다른 귀족들의 배려로 에클레시아는 먼저 만찬을 떠날 수 있었다.
다만 휠체어를 타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에클레시아는 전혀 기쁜 기색이 아니었다.
‘오, 이를 어쩌면 좋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에클레시아는 머릿속에 근심밖에 없었다.
근 50년간 이타적으로 봉사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문제였다.
‘분명 처음에는 내 목숨이면······. 주민들을 살려 보내준다고 했는데······.’
자기 방에서 남몰래 뱀파이어가 준 편지를 읽는다.
납치한 수천 명의 주민을 돌려 보내주고 직접 침공하지 않을 테, 그녀더러 선물한 독약을 마시라는 얘기.
······어린아이의 메마른 손목과 함께 온 편지였다.
물론 악마의 말은 믿을 수 없지만, ‘영혼의 계약’이라는 걸 한다기에 고민이었다. 영혼의 계약은 결코 무를 수 없으므로.
수천 명의 행복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었거늘.
갑자기 상대가 말을 바꾼 것이다.
[마정석. 마신 문두스에게서 검은 마력이 가득 담긴 보석을 훔쳐서 가져와라. 그렇다면 주민들을 살려주마.]
만약 이번에 거절한다면 수천 명의 주민을 성문 앞에서 불태워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곁들어 있었다.
······시간제한까지 붙은 압박.
에클레시아는 휠체어에서 제 방 침대로 몸을 옮긴다. 발을 동동 구르고 싶거늘, 그러지 못하는 게 한스럽다.
항상 이타적으로 남들만을 생각한 그녀였기에 교묘하게 헤쳐 나갈 지혜가 떠오르지 않는다.
‘마정석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목숨 대신 받아갈 정도면 정말 중요한 보물인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값어치가 귀한 보물이라도, 수천 명의 주민보다는 덜 귀하지 않을까?
지금 마신 문두스는 백작과 함께 만찬을 즐기고 있다.
만약 훔친다면 지금 그의 숙소를 뒤져보는 게 가장 좋을 터.
하지만 그는 이번에 프레야 순례자들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덕분에 먼 옛날 만났던 보나파르 주교도 목숨을 건졌지.
아무리 목적이 올바르다고 해도, 그를 배신하고 보물을 훔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아니, 애초에 다른 이의 물건을 훔치는 게 올바른 일인가?
‘프레야 여신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부디 지혜를 내려주세요.’
결국, 에클레시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프레야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왔지만,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똑똑.
“!”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번뜩 정신 차리는 에클레시아.
자신의 수행 수녀가 걱정해서 찾아왔나 싶어서 부리나케 방문을 연다.
“······!”
그러나 방문을 열었을 때, 복도에 있던 건 수행 수녀가 아니었다. 다른 프레야 사제도 아니었다.
황금빛 머리카락에 깊은 푸른 눈을 가진 젊은 사내.
아룡기사 네카르 폰 크라우드.
······아니, 마신 문두스.
악마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지금 뱀파이어가 훔치라는 보물, 마정석의 주인이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실례합니다. 에클레시아 예하. 다만 제게 하실 말씀이 있지 않으십니까?”
낮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와 달리 상당히 정중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
대륙 제일의 대마법사라는 자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래. 마신 문두스 공은 최근 수많은 사람을 살린 영웅이었지. 그렇다면?’
혹시 잘 부탁한다면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에클레시아는 뜨겁던 머리가 차게 식는다.
헌신과 신앙심, 그리고 진심을 계속 보이면 모두 화합할 수 있다고 믿는 그녀였으므로.
“······네카르 경께 무례한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추구하는 가치대로 남을 속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자신의 진심이 닿을 수 있도록.
“무엇입니까?”
“혹시 마정석이라는 보석을 갖고 계신가요? 그 보석이 필요해요.”
광휘의 성녀 에클레시아는 뱀파이어가 보낸 비밀 편지를 보여주며 말한다.
“죄송하지만 그럴 순 없을 것 같군요.”
그러나 네카르는 단호했다. 제대로 설명을 듣지도 않는다.
에클레시아는 멍하니 물었다.
“어째, 서······. 인가요?”
“혹시 에클레시아 예하께선 마정석이 어떤 보석인지 아십니까?”
“잘 모르겠어요. 사치품은 잘 몰라서······.”
다만, 네카르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는 이유는 그녀가 생각했던 최악의 이유는 아니었다.
“마정석. 이건 악과 파괴의 신 디메토르. 그 '악신(惡神)'을 부활시키는 보물 중 하나입니다. 현재 마계의 대군주이자 제1군단장 심연왕(深淵王) 프로세피나 폰 이슈타르가 찾는 보물이지요.”
“!!”
젊은 사내는 담담한 표정으로 충격적인 말을 했다.
악신(惡神).
선과 질서의 여신 프레야의 가장 큰 적이라고도 알려진 존재였으므로. 아르카나 대륙 전체가 멸망할 수도 있는 일과 관련된 보석이었던 것이다.
······'진 엔딩'이라는 정체불명의 혼잣말도 들린다.
“더구나 뱀파이어들에게 한번 흡혈당한 민간인은 ‘표식’이 남습니다. 약속대로 돌려보내준다고 해도 언제든 악귀처럼 폭주할 것입니다.”
“······!”
그리고 네카르는 냉철하게 뱀파이어들의 노림수를 파악한다.
실제로 에클레시아 또한 뱀파이어에게 지배당하는 몬스터와 인간들을 꽤 본 적 있기에 반박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저는 슬슬 지치고 있어요. 솔직히 다음 해까지······. 못 버틸 것 같아요.”
에클레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툭 내뱉었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발언.
“울지 마십시오. 예하. 명료한 방법이 있으니.”
네카르는 품에서 손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제야 에클레시아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그동안 너무 큰 부담감이 그녀만을 짓누르고 있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던 것이다.
네카르는 이 또한 이해한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뱀파이어의 표식은 숙주가 죽었을 때 소멸합니다.”
“······!”
에클레시아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경악했다.
순혈의 뱀파이어.
무려 마계의 대악마에 버금간다는 흡혈귀를,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붙어 다니는 그들을 처치하자는 뜻이었으니.
“그, 그게 가능한 가요? 이미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 예하와 토벌전에 나선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큰 피해만 입고 물러나야 했는데.”
에클레시아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말했다.
일반 뱀파이어는 몇 차례 토벌했으나, 순혈 뱀파이어는 감히 잡지 못했으므로.
“예하께서 도와주시면 됩니다. 이미 그걸 위한 장비는 마련해뒀으니까요.”
하지만 상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세상 물정 모른다고 혼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전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상대는 마신 문두스.
동부 사막을 강타했던 수만 명의 언데드 군단과 불사왕 데힐라칸을 처치한 자.
북부 천년산성에서 북부를 한파로 얼려버리고 황제가 있는 중앙까지 침공하려고 했던 설인왕 이미르를 격파한자.
그리고 서부에서 일격에 백만 명 이상을 몰살시킨다는 메가 데스를 정면으로 막아낸 대마법사.
······이미 순혈의 뱀파이어와 대악마보다도 높은, 마계의 군주들을 무려 세 번이나 처치했던 전설적인 존재니까.
비록 홀로 처치한 건 아니더라도 역전의 용사로서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
그런 상대방이 꺼낸 건 아주 작은 십자가였다.
손바닥 위에 올려둬도 넉넉한 십자가. ······이건 상대의 손바닥이 제법 커서일 지도 모르지만.
“소형화 해제.”
“!”
꿍······.
그런데 사내의 말 한마디에 십자가가 급속도로 커진다. 성인 남성보다도 커지는 십자가.
“이 십자가를 정화해주십시오. 피를 신성력으로 바꿔주는 고대 성물입니다.”
“!!”
마신 문두스는 그렇게 말했다.
고대 성물.
피를 흡혈하는 뱀파이어들에게 치명적으로 발동할 수 있는 힘.
순혈의 뱀파이어는 원체 재빨라 신성력에 잘 맞지 않을 뿐, 맞으면 치명적인 건 다른 마족들과 마찬가지이므로.
아무리 순혈의 뱀파이어라도 능히 처치할 수 있는 비장의 아이템인 것이다.
“하, 하지만······. 제게 남은 신성력이 얼마 없어요.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헉?”
에클레시아는 창문을 슬며시 바라보며 말했다. 찌직, 숨어있던 흡혈박쥐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간다.
번쩍. 파치직!
-꾸엑!
물론 그 순간 네카르의 손에서 푸른 번개가 뿜어졌다. 언제 마법을 영창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
그 즉시 박쥐가 새까맣게 태워져 재가 된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마정석을 보낼 테니 붙잡은 주민들을 모두 데려오라고 하십시오. 물물교환하자고요."
"!!"
네카르는 그 어느 때보다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악마처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타심을 악용한 마족들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한다.
주민들을 구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