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천공대결전 (4)
나는 최종병기 라퓨타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본다.
검은 하늘이 뚫렸는지 세상을 홍수로 잠그는 폭우.
서부 연합군은 그런 폭우를 맞으며 검붉은 마력과 시커먼 연기가 집어삼킨 최종병기 라퓨타를 올려다본다.
죽음이 다가왔음을 체감한다.
‘메가 데스. 저걸 막지 못한다면, 모두 죽겠지······.’
지이이잉!!
나는 불길한 소리를 내며 사악한 마력을 모으는 메가 데스를 바라본다.
세찬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공중요새 내부는 지옥처럼 뜨거운 상태다.
탐욕왕 엘드리치.
그 자는 개인적인 악감정으로, 제 영혼을 불태우면서까지 대륙 서부에 있는 모두를 없애려고 하고 있으니.
저것이 폭발하면 무슨 대참사가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반대로 이것만 막아내면 블랙 매스 계획도 끝이다. 전쟁이 끝날 거다.’
창! 쨍! 챙! 콰아앙!
나는 발달된 기감으로 최종병기 라퓨타 속 소리를 듣는다.
지금 라퓨타는 지상에서 올라온 서부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이대로 지옥의 용광로를 얼려버리고, 그들을 제압한다면 무사히 고향으로 돌려보내줄 수 있겠지.
수십 년간, 대륙 서부에서 내전을 유발했던 거악 엘드리치를 처치한 채로.
그가 탐욕스럽게 쌓아올린 보물들을 차지한 채로 말이다.
그 엄청난 양의 재물은 능히 대륙 서부를 부흥시킬만 했으므로.
살아남기 위해선,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막아서야 한다.
“······마신 문두스. 엘드리치 폐하의 적! 여기 숨어있었구나!”
“네놈만 죽이면 된다! 전 대륙을 그릇된 질서와 금욕으로부터 힘과 무질서로 해방하는 날을 위하여!”
그런 중요한 순간에 탐욕왕 엘드리치의 하수인들이 이쪽까지 들이닥친다.
지금 서부 연합군이 제 수하들을 몰살시키고 있음에도, 그들을 돕지 않고 날 죽이러 온 모양.
“베아트리체. 호위를 맡겨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믿어주세요.”
치링.
그녀는 무표정을 유지하는 듯 하지만,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이곳까지 오느라 격전을 치렀는지 갑옷이 파손되고, 아름답던 푸른 머리카락이 크게 잘려 단발이 됐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두 눈을 감는다.
허공으로 한 손을 뻗는다.
쏴아아······.
폭우가 멎는다.
드래곤 블러드.
내 몸에서 붉은 기운이 휘몰아치며 폭주하고 있었으므로.
본격적으로 힘을 발산하자, 막대한 마나에 중력이 변해서 떨어지던 빗방울이 공중에 머무는 것이다.
‘······헤일 스톰. 이는 중력으로 막대한 질량의 물을 모아 내리치는 마법이었지.’
고오오!
나는 빛과 어둠의 가면을 고쳐 쓴다.
붉은 눈의 스태프를 들어 올린다. 검은 하늘에서도 선명하게 번뜩이는 3개의 붉은 눈.
‘그걸 재현해 보인다. 마치 오르비스 대학살 때처럼.’
비록 그것은 나 홀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8써클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조차 드래곤 블러드까지 발동해서 시전하는 궁극의 마법을 고작 5써클 5티어인 내가 시전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열화판이라도, 엘리멘탈 마스터로서 시전하면 효과가 달라진다······!!’
-경고! 파괴 본능이 45%를 넘겼습니다! 폭주에 익숙해집니다! 리미트가 서서히 해제됩니다!
-주의하십시오! 자아가 크게 흔들립니다! 초자아가 본능을 간신히 억누릅니다.
-폭주 상태에 접어듭니다!
.
.
의식이 날아갈 것 같다.
막대한 마나가 내 혈관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나는 이 악물고 고양된 영혼을 붙잡는다.
새로운 마법.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헤일 스톰을 모티브로 만들었던 나만의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서.
만악의 근원 엘드리치를 처단하고, 메가 데스로부터 수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함이다.
치지직.
[······여기는 엡실론, 준비가 끝났다. 먼저 시작하겠다.]
이에 기다리던 통신이 울린다.
아버지 엡실론.
그리고 내 가문은 물의 명가 크라우드.
내 혈통의 뿌리이자, 내게 마법을 가르쳐준 선배들.
이들에게 미리 도움을 청해놨으므로.
혼자서 불가능한 일을, 선대와 함께 라면 가능케 하는 것이다.
***
깡! 채앵! 쨍!
최종병기 라퓨타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부 연합군과 흑기사의 전쟁.
천공에서 만난 두 세력이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베아트리체 저하! 물러나십시오. 지휘관에게 최전선은 위험합니다!”
“······.”
호위 기사들이 베아트리체 곁을 지키며 다급하게 고함친다.
그러나 그녀는 못 들은 척 더욱 매섭게 돌진한다.
‘네카르 경이 먼저 협력하자고 했다······. 이는 분명 내가 필요하다는 증거겠지.’
조금 전, 네카르가 자신에게 호위를 맡긴 순간을 복기한다.
이는 내심 그에게 레지스탕스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으나 동정 받은 게 아닐까,
싶었던 두려운 마음을 사그라들게 하는 말이었으므로.
‘나는, 오르비스의 혈통······. 아버지의 검술을 이어받은 공작이다. 상대가 누구든, 반드시 지켜낸다······!’
푸확!
냉혈하면서도 혈기 넘치게 움직인다. 그녀는 북부 최고 검객 레오파드의 유일한 수제자.
설산검 레오파드에게 어릴 적부터 차기 북부 최강검으로 우뚝 설 재능이라는 걸 공인받은 실력이므로.
그간 수련한 바를 만개하여 활용한다.
네카르를 지켜낸다.
구우웅, 고오오오오!
“······!”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싸우다 보니, 불길한 진동이 천공섬 라퓨타를 흔든다.
베아트리체는 하늘 아래를 내려다본다.
메가 데스.
최종병기 라퓨타에서 발동하는 초대형 3중 흑마법진.
최대 사망자 백만 명을 유발할 수 있다는 궁극의 파괴 권능이 발동하려 한다.
이에 흑기사단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웃음을 토해낸다.
“크하핫! 오르비스 공작 베아트리체. 군신(軍神)이라더니 생각보다 안일하구나. 이대로 메가 데스만 발사하면 전쟁은 끝이다!”
“······.”
흑기사는 이제 곧 지상에 있는 수만 명의 서부 연합군이 죽을 거라면서 기뻐한다.
최대 백만명까지 피해를 입힌다는 대학살 병기를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모습.
과연 악의 교단 추종자로서, 광기 어린 자였다.
“······엡실론 공! 지금입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아무런 대비 없이 흑기사단만 막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네카르와 함께 작전 계획을 했으므로 준비도 함께 했다.
통신 구슬에 대고 신호를 주는 것이다.
치직.
[모두 물을 모아라. 집단 마법을 시작한다.]
지상에 있던 물의 명가 크라우드 마법사들이 강력한 마나를 뿜어낸다.
엡실론을 필두로 모두 모여 집단 마법을 시전한다.
촤아아악!
엡실론이 푸른 눈의 스태프를 들어 올린다.
베아트리체는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거대한 물기둥을 바라본다.
구름에서 휘몰아치는 거대한 물의 창.
“아쿠아 스파이럴.”
아쿠아 스파이럴.
동부 최강의 마법사 엡실론이 6써클의 벽을 뚫고 새로 개발한 재앙류 마법.
바다의 창은 기다린 창처럼 끝이 뾰족하다.
그 끝을 거대한 공중요새를 향해 겨눈다.
쿠과아아아아-!!!
거대한 물결.
하늘에 바다의 창이 내리친다.
최종병기 라퓨타는 절대 마법 방어 결계가 있었지만, 현재 메가 데스를 시전하느라 그 마력을 충당할 동력원이 없었으므로.
파치지직. 쿠과광!
막대한 굉음이 발생한다.
최종요새 라퓨타 성벽이 통째로 파괴된다.
무게 균형이 크게 기울어지고 비틀거린다. 푸른 정전기가 일어난다. 검은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고, 청동 대포들이 반파된다.
와르르, 쿠과과광!
“······!”
그 여파는 공중요새 속에 있던 모두에게 전해진다.
백기사, 흑기사할 것 없이 모두 바닥을 구르며 기울어지는 라퓨타에 매달린다.
베아트리체 또한 흙먼지를 구른다.
위층에 있던 물건들이 부서진 천장 틈으로 와르르 쏟아진다.
[······어리석은 것. 헛된 저항이란 걸 모르느냐!]
화르르륵-!! 콰아!
탐욕왕 엘드리치 또한 전체 통신으로 호령한다.
지옥의 용광로가 타오른다.
최종병기 라퓨타에 장착된 초대형 3중 흑마법진이 새빨갛게 타오른다. 당장이라도 발포할 것처럼.
이에 베아트리체는 개의치 않고 소리쳤다.
“······프레야 교단! 아직입니까?”
즉시 화답하는 통신구슬.
치직.
[······서부 대주교 리카르도입니다! 프레야 교단 사제들도 합창 준비가 끝났습니다!]
엡실론과 함께 있던 프레야 교단 사제들도 움직인다.
이들은 현재 이 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부르고 있으므로.
신실한 프레야 성기사단과 사제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오, 여신이시여. 우릴 가여이 여기소서.]
[이들의 가족을 생각해주소서.]
[끝없는 빛으로 우릴 감싸주소서!]
그들이 일제히 합장하고 성가를 부른다.
신성력이 공명한다. 마치 집단 마법을 시전한 듯 지상에 있는 만물이 따사로운 빛을 발한다.
샤아아아!
사제들의 빛은 모두 검은 하늘로 향한다.
최종병기 라퓨타.
거악 엘드리치가 아르카나 대륙을 파멸로 이끌 궁극의 병기를 시전하고 있으므로.
그 사악한 힘을 막기 위해 집결한다.
찬란한 빛이 뿜어진다.
최종요새 라퓨타를 새하얀 빛으로 완전히 가둔다.
그러자 검은 하늘에 천공의 섬이 빛을 발하며 강림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진짜 천국처럼.
[크아악! 역겨운 여신 찬양가를 멈춰라. 잊지도 않는 신을 믿는 광신도들!]
쿠고고고! 치이익······!!
이에 최종병기 라퓨타 속에 있던 엘드리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탐욕왕 엘드리치가 마계의 군주이며 거악이라고 한 들,
마계도 아닌, 아르카나 대륙에서 수많은 사람이 극상성인 신성력을 퍼붓는데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지옥의 용광로가 불안하게 출렁인다.
‘······맙소사.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엘드리치의 증오는 사라지지 않는 건가······?’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소름이 돋는다.
지금 서부 연합군에 합류한 프레야 사제는 교단 대부분의 전력이거늘.
이들이 모두 신성력을 모아 라퓨타를 향해 발사하고 있음에도,
라퓨타 속 거악의 원한은 여전히 타오르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오! 거룩하신 디메토르이시여.]
[영원한 안식을 주시옵소서.]
[죽은 이를 위하여 만물의 보물을 바치오니.]
[끝없는 어둠으로 감싸 안아 주시옵소서!]
더구나 전체 통신으로 울려 퍼지는 검은 미사 또한 문제였다.
꼭대기 층에 있던 정체불명의 악기가 떨어지며 작동됐으므로. 소름끼치는 검은 미사를 부른다.
기괴한 검은 미사가 확성 마법으로 프레야 교단의 합창 소리를 묻어버리고 있으므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아!’
베아트리체는 문득 지상에 있는 3만 명의 서부 연합군을 발견한다.
지금 이 전쟁은 이미 귀족들만의 전쟁이 아니다.
서부 연합군.
이는 프레야 교도로서, 대륙 서부에 살아가는 이종족으로서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인 것이므로.
“서부 연합군은 들어라. 거악을 물리치는 데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다! 한 소절이라도 아는 가사가 있다면 함께 부르라!”
“!”
현재 임시 총 사령관인 그녀는 전체 통신 구슬에 호소한다.
프레야 교도.
비록 이들이 사제는 아니더라도, 내재된 신성이 조금이나마 있을 것이므로.
프레야 여신이 진정 전지전능하다면, 창조한 피조물에게도 여신과 닮은 일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말이다.
“······순리를 건너뛴 자. 타락한 이들은 심판 당하리라.”
“여신님의 큰 사랑. 받고 있지요.”
“죄인은 심판에 받고, 의인은 은총 받을 지어니!”
이에 하나 둘씩 각기 다른 구절을 부르기 시작하는 서부 연합군.
······비록 이는 효율을 극대화하는 마법진도, 집단 마법도, 성가대도 아니었지만.
무려 3만 명이나 되는 이들이 진심을 모은 것이니.
번쩍!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한 빛이 뿜어진다.
하나하나는 약해도 그 빛들이 퍼지니 검은 하늘 전체를 새하얗게 뒤덮는다.
마치 백주대낮처럼 세상을 하얗게 바꿔버린다.
하모니(Harmony).
각각 다른 가사라도 같은 마음이기에, 기적처럼 집단 공명이 생긴 것이다.
천공과 지상에서 두 신을 찬미하는 노래가 팽팽히 맞선다.
[큭큭, 이미 늦었다! 비록 ‘약화’됐을 지라도, 메가 데스를 완성했으니-!!]
“!”
“!!”
그러나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거악은 무릎 꿇지 않았다.
최후의 권능, 메가 데스를 시전한다.
3중의 흑마법진이 완전히 열리고 엘드리치의 영혼을 담은 마력탄을 쏘아낸다.
신성력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음에도 강제로 발동하는 것이다.
“네카르 경!”
베아트리체 또한 마지막 퍼즐을 호출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네카르가 새로운 마법을 시전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었으므로.
그가 외로이 맞서지 않도록 힘을 보태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
그런데 네카르에게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불현 듯 찾아오는 불안함.
혹시 통신 구슬이 고장 나서 못 들은 걸까?
베아트리체는 뒤를 돌아 네카르를 바라본다.
휘이이잉.
그는 붉은 눈의 스태프를 쥔 채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메가 데스가 발포되려는 상황에서도.
그저 고요하게.
창공에서 몰아치는 폭풍과 비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다.
‘설마······. 새로운 마법을 창조하는데, 실패하신 걸까······?’
뚝,
그녀는 마음이 꺾인다.
네카르가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함께 한 시간을 믿으므로, 그럴 자가 아니라고 믿기에, 새 마법이 불발되었다고 생각하여 절망할 뿐이다.
꽈아아앙-!!!
발포만으로 최종병기 라퓨타가 크게 흔들린다.
순백의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칠흑 같은 탄환이 튀어나온다.
너무나 막대한 마나에 시간이 정말로 천천히 흐른다.
베아트리체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신께서는, 이 결말을 위하여, 우릴 태어나게 하셨단 말인가······?’
마음 한편이 허무해진다.
모두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코 이룰 수 없다면, 그동안 해온 노력이 무용해지므로.
몇 주간 항해하고, 통신 구슬로 작전을 회의하며, 수많은 보급선과 협약을 계획했던 나날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저승에서 만날 먼저 죽어나간 전우들을 볼 낯이 없었다.
펄-럭!
그때, 누군가 베아트리체의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눈을 크게 깜빡 뜬다.
마신 문두스.
······아니, 동부의 네카르.
메가 데스가 발포되고 나서야 움직였으니.
새하얀 빛의 세계 속에서 등에 날개를 펼치고 날아간다.
그의 뒷모습은 너무나 그리던 모습이었다.
황금빛 머리카락에 검은 망토를 펄럭이는 자.
체격은 다소 말랐지만, 넒은 어깨와 큰 키 덕분에 뒤에서 바라볼 때 듬직한 사내.
그가 새하얀 하늘에서 홀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강림한다.
[무언가 오해한 것 같군.]
텔레파시 마법으로 전한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한 손을 하늘 높이 뻗는다. 천상과 지상의 하모니 속에서.
붉은 눈의 스태프를 하늘 높이 들어올린다. 막대한 마나를 뿜어낸다.
[내가 막는다는 뜻은 ‘발포’를 저지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촤아아아악-!!!
서쪽 바다가 진노했는지 소용돌이친다.
다섯 개의 거대한 물기둥이 회오리치며 검은 하늘로 집결하고 있었다.
뭍에 두꺼운 쇠사슬로 고정해둔 초대형 함정들이 하늘로 끌려 올라갈 만큼 억센 파도.
기존 엡실론이 일으킨 바닷물은 물론, 중력 마법을 활용해서 바다에 있던 훨씬 많은 물을 끌어 올린 것이다.
쩌저저저적-!!!
그리고 극한까지 응축된 물을 거대한 얼음 운석처럼 얼려버린다.
블리자드.
재앙류 마법 중에서도 특히 살상력이 강하고 난이도가 높아서 최소 6써클로 분류된 마법.
무려 대륙 공인 대마법사로 인정받는 5써클조차 시전하지 못하는 마법이다.
빙하기가 도래한다.
콰아아아아-!!!
거기에 허리케인까지 더해진다.
미친 듯이 불어 닥치는 태풍. 지상 흙먼지와 쓰러진 나무들, 시체들까지 깨끗하게 날려버린다.
눈보라가 흩날린다.
검은 하늘에서 내리던 빗방울이 모조리 얼어붙어 회오리친다.
화이트 아웃(White out.).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변한다. 단 몇 미터 앞도 볼 수 없는 순백의 시야.
모든 물체에 그림자가 사라진다. 바다의 수평선조차 보이지 않는 폭설.
거대하게 응축된 얼음을 품은 눈보라가 메가 데스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꽈아아아아아앙-!!!
천지개벽이 벌어진다.
운석과 운석이 부딪히면 지금처럼 빛과 열이 발생할까?
베아트리체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 눈에 보이는 것은 소행성처럼 불타오르는 메가 데스와 온 세상을 집어삼킨 겨울이 부딪히는 모습이었다.
네카르가 차디찬 입김을 토해낸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가 비명을 지른다.
······물론 아무리 ‘신’이라는 이명을 가진 사내라도 혼자서 메가 데스를 정면에서 막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지금 메가데스는 탐욕왕 엘드리치의 영혼으로 간신히 발포만 가능할 만큼 약화될 대로 약화된 메가 데스인데다가,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 먼저 물을 끌어 모아주고,
무려 3만 명의 프레야 교도가 힘을 모아 성스러운 물로 바꾸어주었으니.
신성력에 치명적인 거악(巨惡)의 영혼을 깨끗이 정화하는 것이다.
쿠과과과과광-!!!
2차 대폭발이 벌어진다.
최종병기 라퓨타 초근접에서 벌어진 충돌이었기에, 메가 데스가 라퓨타에서 터져나가는 것이다.
대륙 일부분 만하던 공중요새가 산산이 조각난다.
그나마도 원체 단단하게 설계됐고, 절대 마법 방어 결계가 일부 펼쳐져 있었기에 재가 되지 않았을 뿐.
라퓨타 내부의 철근과 벽돌, 가구 따위가 수천 개의 별똥별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진다.
지옥의 용광로 또한 공중분해돼서 사라진다.
[임펫······. 이게, 우리의 최후인가······?]
탐욕왕 엘드리치의 영혼과 마력까지 처연히 흩어진다.
[엄마······.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전히, 외롭고 춥습니다······. 단칸방 때처럼······.]
그 말을 유언으로 완전히 소멸한다.
블랙 매스 프로젝트.
공중요새 라퓨타로 아르카나 대륙을 멸망시키고 제 어머니를 부활시키겠다는 엘드리치의 꿈이 추락한다.
돈과 욕망, 그리고 어머니의 관이 불타 사그라든다.
으아아-!!
다만 라퓨타에 있던 수많은 백기사도 비명을 지르며 쏟아진다.
베아트리체 또한 라퓨타 위에 있었기에 꺄악, 소리를 내며 지상으로 튕겨진다.
하늘의 관.
거대한 공중요새가 떨어지면서, 그 안에 있던 모두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네카, 르······.’
그녀는 함께 나가떨어지는 네카르를 바라본다.
네카르는 방금 ‘블리자드 스톰’을 사용하기 위하여 모든 마나를 퍼부었으므로.
프로즌 모드도, 드래곤 윙즈도 모두 절로 해제되어 떨어지는 만큼 그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어보였다.
마지막 마나를 쥐어짜 공중 파편을 밟는다.
머리에 피가 난 채였지만, 별로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도약해서 떨어지는 네카르를 품에 앉는다.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기절한 네카르와 살결을 맞댄다.
네카르의 몸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마치 생명이 정지한 것처럼.
그동안 얼마나 외로이 싸웠는지 느낀다.
지켰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추락 또한 막을 수 없다.
‘지상에 있는 당신의 아버지 엡실론도, 제 아들의 추락해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겠지······.’
쓴 웃음을 짓는다.
지금 엡실론도 힘이 다해 구해줄 수 없으니.
제 자식이 떨어져 죽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이다.
‘당신을 구하지 못했더라도······. 원망하진 말아 주세요. 우리 또한 함께 따라갈 테니.’
베아트리체는 이 말을 유언삼아 속삭인다.
얄궂게도 네카르의 시그니쳐 마법인 중력에 하염없이 떨어진다.
검은 하늘이 걷힌다. 반짝이는 별과 함께 추락한다.
그래도 낭만 있는 최후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이대로 같은 무덤을 쓴다면.
이렇게 눈을 감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는 일이니.
그렇게 함께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것이다.
“?”
그런데 네카르가 기대오는 베아트리체의 머리를 치워낸다.
뭔 소리하냐는 듯 푸른 눈동자를 빛낸다.
‘······용용이 인형?’
네카르는 품에서 아기자기한 크기의 샌드 드레이크를 꺼낸다. 인형인줄 알았는데 살아있는지 날개를 퍼덕인다.
혹시 용용이가 새끼라도 가진 걸까?
번쩍.
-키야아아악-!!
“!”
그때 네카르가 네잎클로버처럼 생긴 펜던트에 손을 올린다.
갑자기 빛과 함께 용용이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원래 샌드 드레이크의 크기로.
상급 몬스터를 뛰어넘어, 최근 최상급 몬스터로까지 분류되는 용용이의 본래 크기로 돌아온다.
‘이건······?’
베아트리체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네카르는 이해시켜줄 생각 없이 행동에 나선다.
파앗!
수백 마리의 페어리 무리 등장한다.
날개를 파닥거리는 요정들. 스스로 공중을 난다.
촤악.
그들이 일제히 소형화 권능을 발동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백기사들을 작은 인형마냥 작게 만든다.
용용이와 페어리가 작아진 그들을 안아들고 저공 비행한다.
공중요새 라퓨타의 파편을 피해서 지상에 안착한다.
대륙 최서단에 모인 사람들은 만감이 교차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함성을 터트리며 가까운 이를 포옹한다.
철천지 앙숙이었던 니케 대영주와 라흐 대영주 또한 눈물을 흘리며 끌어안는다.
그간 모든 오해는 지금 함께한 우정으로 잊어버릴 수 있으므로.
모든 갈등을 끝낸다.
그렇게 블랙 매스 프로젝트가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