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공중요새 라퓨타 (6)
나는 인피면구로 변장한 채, 공중요새 꼭대기 층으로 달린다.
탐욕왕 엘드리치.
그의 전용실에 온갖 보물이 있으니까.
본래는 엘드리치를 처치하고 얻을 수 있는 보상이지만, 미리 얻으러 간다.
현재 탐욕왕 엘드리치는 용광로의 대악마 아바돈과 맞붙느라, 이곳에 결코 오지 못할 테니까.
-당신은 무려 마계의 악마를 둘이나 처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막대한 써클 경험치를 얻습니다!
-5써클 5티어에 도달합니다!
더구나 시스템 창을 살펴보니 써클 보상까지 받았다.
비록 대악마 아바돈과 함께 하긴 했지만,
화재의 악마 아테와 유빙의 악마 스킬라 덕분에 각각 1티어씩 증가한 모양이다.
‘여기군.’
벌컥.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때문에 얼마 뛰지 않았음에도 숨이 가쁘다.
엘드리치의 전용실로 들어간다.
검은 카펫과 검은 커튼이 가득하고, 향까지 피워놔서 엄숙한 분위기.
그 안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귀 먹먹하게 울리는 악기 소리다.
제 어머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검은 미사.
[오! 거룩하신 디메토르이시여. 진노의 날, 모든 것을 티끌로 부숴버리시리라.]
[죽음과 자연이 두려워할 때.]
[피조물이 부활하고, 세상이 재창조되리라!]
기괴한 노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검은 미사.
악과 파괴의 신 디메토르를 찬미하는 레퀴엠이다.
힘과 무질서의 신으로도 알려진 디메토르의 ‘재창조’ 권능을 예찬하는 내용.
‘그리고 탐욕왕 엘드리치가 제 어머니를 되살리고 싶은 염원이 담긴 가사지.’
나는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제 어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죄악은 아니지만,
이를 위해 다른 가족을 몰살시키는 건 분명 그릇된 것이므로.
이 검은 미사를 완전히 망가뜨리기 위해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간다.
“노움. 찾았냐?”
-움~. 움!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흙의 정령 노움이 돌아온다. 품에 한 아름 안고 있는 정체불명의 불길한 액체와 마나 포션들을 자랑스럽게 내민다.
나는 와르르 쏟는 물약을 받고 고맙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감정.’
[이름 : 블루 번 (SUPER RARE).]
[설명 : 흑마법사가 만든 전설적인 비약. 복용 시 최대 화력이 비약적으로 증폭된다. 그러나 이후 끔찍한 페널티가 적용될 것 같다······.]
[효과 : 30분간, 최대 화력 50% 증폭. 이후 한 달간 최대 마나 99% 감소.]
진품이 맞다.
마시는 순간, 온몸의 마나 혈관이 다 열려서 화력이 증폭되지만, 페널티로 한 달간 폐인이 돼버리는 무시무시한 비약.
“이제 정말 결전이군.”
이후 나는 손에 쥔 블루 번을 내려다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블루 번을 쥐고 나서야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다.
이걸 마시는 순간, 대륙 서부의 거악(巨惡) 탐욕왕 엘드리치와 맞붙어야 하므로.
그 휘하의 대군과 맞서야 하므로 말이다.
‘더구나 엘드리치는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거대 골렘을 타고 있었지.’
어지간한 공격은 모조리 튕겨내는 물질 아다만티움.
과거 드래곤 블러드까지 쓰고 나서야 간신히 경첩을 부수는 데 성공했던 물질이다.
그런데 이번엔 경첩이 아닌, 본체를 부숴야 했다.
‘원작에서 공략법은 다른 유저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 아다만티움의 유일한 약점인 용암으로 어떻게든 녹이는 거였지만······.’
나는 혼자 움직이는 건 물론,
공중요새 라퓨타의 가동을 방해하기 위해 지옥의 용광로 또한 이미 파괴했으므로.
비록 부족한 화력을 추가 강화하기 위해 ‘블루 번’까지 마신다고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지금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원작 게임에서는 나만의 방식과 압도적인 컨트롤로 극복한 일이지만.’
물론 원작에서 언제나 혼자 움직인 나는 적들의 패턴을 모조리 외우고 있으니 가능성이 0%는 아니다.
하지만 과연 지금도 가능할까?
지금부터 가야 할 전장은 스치면 죽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지(死地).
현실은 재도전할 수 없는 법이므로.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움~! 움, 움!
“?”
그렇게 잠시 가만히 서 있으며 떨리는 근육을 잠시 진정시키고 있을 때,
느닷없이 노움이 내 바지를 잡아 당긴다.
나는 차분히 고개만 내려 노움을 바라본다.
정령은 계약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이므로. 내 두려움을 느끼고 위로해주려고 하나 싶었을 때,
-움움!
“이건······?”
노움이 무언가 아이템들을 들고 내게 눈을 반짝인다.
정체불명의 문양이 찍힌 팔찌와 망토.
어딘가 기시적인 아이템이다.
“감정.”
[이름 : 코나흐타의 팔찌. (ANCIENT.).]
[설명 : 고대 포워르 일족 위대한 왕 ‘코나흐타’가 사용했던 팔찌. 제 일족을 탄압하는 기간테스 일족을 봉인한 숭고한 힘이 깃들어있다.]
* 위대한 왕 코나흐타의 유물은 총 4가지입니다. 이 모든 유물을 모아야 진정한 힘이 개방됩니다! (3/4)
“!!”
그 아이템은 무려 고대의 유물이었다.
과거 해적왕 데비존을 처치하고 ‘빙결계 마법서’를 얻었었는데, 그때와 연관된 아이템.
무려 기간테스 일족을 봉인하고, 절대 반지를 만든 고대 성인 ‘코나흐타’의 유물이었다.
‘이런 걸 도대체 어디서 훔쳐온 거지?’
원작에서도 없었던 아이템인 만큼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단지, 흙의 정령으로서 기감을 느끼는데 탁월하다는 걸 새삼 체감할 뿐.
“그렇다면 이건?”
[이름 : 코나흐타의 망토. (ANCIENT.).]
[설명 : 고대 포워르 일족 위대한 왕 ‘코나흐타’가 사용했던 망토. 제 일족을 탄압하는 기간테스 일족을 봉인한 숭고한 힘이 깃들어있다.]
* 위대한 왕 코나흐타의 유물은 총 4가지입니다. 이 모든 유물을 모아야 진정한 힘이 개방됩니다! (4/4)
나머지 하나도 코나흐타의 유물이었다.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에이션트급 아이템.
성물 아가타의 성배와 같은 등급의 보물이다.
-위대한 왕 코나흐타의 유물을 모두 모았습니다! (4/4)
-혹한의 바다에서 군림했던 고대의 힘이 깨어납니다!
고대 유물 4조각이 동시에 푸른 마나를 뿜어낸다.
붉은 눈의 스태프에 끼워두었던 왕관과 빙결계 마법서, 그리고 이번에 새로 얻은 팔찌와 망토까지.
마계화 된 비밀 창고뿐만 아니라, 엘드리치의 전용실 전체를 드리우는 빛이 뿜어진다.
-새 특성을 습득하셨습니다.
“확인.”
[특성 이름 : 코나흐타의 화신 (MASTER.).]
[설명 : 흑마법에 세뇌된 기간테스 거인족을 봉인한 위대한 왕 코나흐타. 그의 권능을 잠시나마 빌릴 수 있다.]
[특수 효과 : 스킬 ‘프로즌 모드 LV1’를 시전할 수 있습니다.]
무려 드래곤 하트와 같은 등급인 마스터급 특성!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뻔했다. 설혹 이런 특성을 챙기지 못했다면 큰일 날뻔 했으므로.
차분히 스킬 효과를 읽어본다.
* 스킬 ‘프로즌 모드 LV1’ : 일정 시간 동안, 모든 물의 마법에 ‘빙결’ 속성을 추가한다. (빙결 속성 한정, 써클 위력+1)
“!!”
나는 스킬 특수 효과를 읽는 순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써클 위력+1.
이는 5써클 마법의 효과를 6써클급으로 올려준다는 뜻이니까.
‘빙결 마법이면 다른 조건 없이 무조건 써클 1단계를 올려준다니. 지금까지 이런 장비는 없었다······.’
당연하지만 써클은 높아질수록 위력도 크게 증폭하지만 올리기도 매우 어려워진다.
그런데 고써클이라도 무조건 1써클 파괴력을 증폭시켜준다니.
아무리 한시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고, 얼음 마법에 한해서라지만 말도 안 되는 효과였다.
마침 내 주 속성 마법도 물.
물 속성까지 얼음 속성을 추가해준다고 하니 해당 조건도 쉽다.
이를 극한으로 강화해주는 아이템을 얻은 것이다.
‘과연 황금 고블린답게 보상도 넉넉하게 넣어주는군.’
나는 나중에 받을 보상을 미리 받으며 생각했다.
탐욕왕 엘드리치.
마계의 제1의 거부인 그는 곳간만큼은 인심이 넉넉했으므로.
원작에서도 구현되지 않은 보물을 챙긴 것이다.
‘······이거 정말로 해볼 만 하겠는데.’
그 덕에 두려움이 굳고 자신감이 대신 차오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으니.
꼭 공략법대로 용암으로만 상대할 필요는 없다.
용암으로 녹이는 게 ‘비교적’ 더 쉬울 뿐, 그 또한 지랄 맞게 어려운 난이도니까.
따라서 차라리 나만의 공략법, '정공법'으로 나선다.
오직 힘.
압도적인 스펙으로 적을 무릎 꿇리는 것.
순수한 파괴력으로 정면으로 깨부술 생각이었다.
***
공중요새 내부.
지옥의 용광로.
이미 대부분이 형체도 없이 녹아버린 이곳에는 거대한 두 존재가 맞서고 있었다.
[크아아악! 탐욕왕 엘드리치! 끝까지 날 쫓아와서 괴롭히는 구나!]
먼저 한 쪽은 용광로의 대악마 아바돈.
과거 용암의 대악마 아바돈이라고 불렸던 자로,
현재는 거대한 뱀 머리가 9개나 박힌 키메라 히드라로 빙의한 상태였다.
후우우웁, 쏴아아아아-!!!!
그는 9개의 머리로 동시에 주위 열기를 들이마시고, 한꺼번에 토해낸다.
지옥의 용암.
비록 지금은 본체가 아닌, 키메라에 빙의했다고 하지만, 대악마로서의 권능과 마력은 그대로이므로.
아다만티움의 유일한 약점인 지독한 열기로, 일대 전체를 녹여버리려는 것이다.
“······누더기 같은 것. 분노에 사로잡혀 발전이 없는 건 수천 년 후에도 여전하구나.”
[!!]
그러나 용암의 강을 맞으면서도 고고하게 서있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탐욕왕 엘드리치.
그는 분명 용암에만큼은 녹는 아다만티움 골리앗을 타고 있었으나, 아무런 타격 없이 멀쩡했다.
지이이잉.
왜냐하면, 그의 골리앗 주위로 오색 빛깔로 빛나는 결계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절대 마법 방어 결계.
마나와 마력, 신성력 따위가 깃든 모든 종류의 공격을 차단하는 절대 방어.
······비록 유지하는 동안, 마계의 군주 엘드리치조차 부담스러운 양의 마력이 소모되지만.
대악마의 마력이 깃든 용암을 모조리 원천차단하는 것이다.
[크아아!]
팅!
이에 대악마 아바돈은 마법 공격이 아니라, 물리 공격을 한다. 9개의 거대한 뱀 머리로 엘드리치가 탄 골리앗을 물어뜯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 마법 방어 결계는 통과할 수 있었으나, 아다만티움의 방어력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아무리 커다란 이빨로 씹어봐야 어떤 흠집도 남지 않는다. 역으로 이빨이 부서질 뿐.
엘드리치는 그런 아바돈을 딱하다는 듯 바라본다. 어깨에 있는 광선포가 작동한다.
“네 영혼은 다시 봉인해 용광로로 써주지. 잘 가라.”
지이이잉, 쏴아아아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작렬하는 광선포.
거대 히드라에 빙의한 아바돈을 형체도 안 남기고 깨끗이 지워버린다.
공중요새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다. 검은 구름이 보이고, 골바람이 들어온다.
“영혼 봉인.”
고오오.
하지만 엘드리치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그의 명령 한 번에 히드라에 빙의했던 대악마 아바돈의 영혼이 빨려 들어온다.
흑마법사들이 가져온 임시 봉인구에 다시 가둔다.
[엘드리치 폐하! 지금 상황 괜찮으십니까?]
“임펫 부총관이냐? 무슨 일이지?”
그러자 통제실에서 통신이 왔다.
엘드리치는 상대 목소리를 알아보고 반응한다.
[예! 현재 서부 연합군이 엘도라도 외벽을 함락시켰습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마냥 축제 분위기입니다!]
“······.”
그제야 엘드리치는 뚫린 요새 구멍에서 지상을 내려다본다.
불길이 치솟는 검은 고성 엘도라도.
안 그래도 충분한 병력이 들어오지 못했거늘.
공중요새가 대악마 아바돈을 처치하느라 침묵하고, 물의 명가 크라우드가 지원까지 오니 끝내 함락되고 만 것이다.
엘드리치는 골리앗에 부착된 최첨단 마도공학 장치로 지상의 소리를 듣는다.
[우와아아아-!!!!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공중요새도 서서히 추락하고 있다! 검은 연기가 뿜어진다!]
[거보라니까! 프레야 여신께서 우릴 보우하신다고!]
서부 연합군은 예상보다 훨씬 쉽게 승전한 전투에 기뻐한다.
영주들은 휘파람을 불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몇몇 사제는 거대한 요새를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기사들은 자신들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며 자화자찬한다.
마지막으로 일반 병사들은 요란스럽게 환성을 지르며 모르는 사람끼리도 격렬한 포옹을 한다.
승리에 도취한 태도. 행복감을 나누는 거로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낀다.
“······.”
물론 이들의 승리는 엘드리치의 패배.
기쁨은 증오가 되고, 환호성은 저주로 들린다. 저들의 웃는 입가를 귀밑까지 찢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든다.
저곳에는 아직 공중요새 라퓨타를 보강할 물자가 잔뜩 있으므로.
“저들은 이게 ‘진짜 라퓨타’라고 생각하는 건가.”
절로 차가워진 목소리.
그는 대악마 아바돈이 뿜어낸 지옥의 용암을 공중에 끌어모으며 말했다.
방금 사용한 광선포의 위력을 본 흑마법사들은 감히 대꾸조차 하지 못한다.
그 모습에 엘드리치는 시시하다는 듯 쯧, 혀를 찬다.
“그래도 다행이군. 비록 마신 문두스는 놓쳤지만······. 그래도 미리 대비해놓길 잘했어.”
영문 모를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통제실을 향해 읊조린다.
“임펫 부총관.”
[예!]
“‘블랙 매스’ 계획을 최종 실행하라. 대악마 아바돈의 반란까지 제압했으니, 더는 늦출 수 없다.”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임펫 부총관.
통제실에 있던 최고 보안 시설을 체크하고, 최종 버튼을 누른다.
쿠구궁······.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일순 멈추는 공중요새.
철컥, 철컥, 지이잉. 치이익.
막대한 굉음을 내며 추락하던 내성이 재조립하기 시작한다. 미리 설계된 대로 청동 대포가 안으로 들어가고, 외부와 연결하기 위한 부두가 내려온다.
번쩍!
그리고 검붉은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는 공중요새 엘도라도.
쿠고고고고고.
저 멀리 떨어진 지상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 흙먼지와 강한 진동이 느껴진다.
대륙 서부에 있던 내성들이 하늘로 떠오른다.
타락 영주들이 거주하던 내성도, 검은 홍수에서 수장됐던 타이탄 영지의 외성도, 땅속에 숨겨두었던 거대한 건축물도.
모두 하늘 위로 두둥실 떠 오른다. 거대한 건축물이 엘도라도를 중심으로 공중에서 서로 합쳐진다.
[엇······?]
[저건······?]
그제야 환희가 식으며 침묵하는 서부 연합군.
그저 목 아프게 고개를 젖히고 거대 건축물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그저 멍하게 바라본다.
지금 합쳐지는 초대형 공중요새는 방금까지 떠올랐던 ‘프로토 타입’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몇 배로 커진 덩치로 검은 하늘마저 가려버린다.
프로토 타입 공중요새는 그저 날아다니는 요새였다면, 지금은 거의 대륙 최서단 전체를 가리는 섬이었다.
“드디어 완성되는군.”
쿠구궁.
탐욕왕 엘드리치는 공중요새 라퓨타의 최종 형태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오늘만을 꿈꾸며 수없는 세월을 살아왔으므로.
쿠과광······.
“······이런. 마정석이 없어서 완전하게 유지를 못하는 건가?”
그러나 성벽 일부가 땅으로 떨어진다.
탐욕왕 엘드리치는 표정을 굳히며 원인을 파악한다.
마정석.
이 거대한 공중요새를 원활하게 운영하라면, 막대한 마력 덩어리인 마정석이 꼭 필요했으므로.
“뭐, 상관없다. 필수적인 장치는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으니. 이 정도로도 대륙 서부 정돈 충분하다.”
엘드리치는 빠르게 판단을 마친다.
현재 남은 마력으로는 최종병기 라퓨타를 오래 유지할 수도,
궁극의 파괴 권능인 ‘메가데스’를 단 한 번만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서부 연합군을 박멸하고, 공중요새를 재정비할 틈을 갖는 건 충분하므로.
“모두 포격 준비.”
위이잉! 철컹, 위잉! 철컹!
엘드리치의 명령에 최종병기 라퓨타에서 일제히 초대형 대포를 장전한다.
지상을 향해 겨누는 수백 개의 대포.
“벌레 같은 인간놈들. 벌레면 벌레답게 순순히 즈려밟혀 죽어라. 그게 본분일 지어니.”
엘드리치는 큭큭 비웃으며 욕지거리를 읊조린다.
끈질기게 어머니의 부활을 저지한 프레야 교단을 향한 최후의 장전이다.
저들의 최후를 상상하며 입꼬리만은 귀밑까지 찢는다.
“모두 발포하라. 오늘이 프레야 여신의 장례식이다.”
***
쏴아아아아.
스산한 빗방울이 내리친다.
하늘이 무너진 듯 무시무시한 천둥이 내리친다. 광풍이 미친 듯이 치고, 바다에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최종병기 라퓨타.
대륙 최서단에 떠오른 이 공중요새에서 뿜어내는 막대한 마력 때문에 천지가 놀라서 요동치는 것이니.
마계에서도 거의 상대할 자가 없는 궁극의 마도공학 병기인 만큼, 강림만으로도 하늘이 기울어지고 대재앙급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것이다.
-공중요새 라퓨타의 가동 시간이 124시간 59분으로 증가했습니다.
-최종병기 라퓨타가 마력 포격을 할수록 이 시간은 더욱 빠르게 줄어듭니다!
“······.”
더구나 최종병기 라퓨타가 되면서 가동 시간이 늘어났다.
아무래도 다른 부속 장치에 예비 마력석과 불태울 제물들을 마련해둔 모양이다.
물론 그동안의 내 활약 덕분에 기하급수적으로 마력을 소모하는 ‘메가데스’는 최대 한 번밖에 사용 못할 정도지만······.
이제 곧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을 예감한다.
[오! 무질서의 신 디메토르이시여.]
[영원한 안식을 주시옵소서.]
[죽은 이를 위하여 만물의 보물을 바치오니.]
[끝없는 어둠으로 감싸 안아 주시옵소서!]
더구나 꼭대기 방에서 틀어진 장송곡 소리가 커졌다.
대륙 서부 곳곳으로 울려 퍼지는 기괴한 검은 미사.
꼭대기 방에 있던 수십 개의 노래 장치들이 확성 마법으로 울려 퍼진다.
그 확성 마법 장치들은 엘드리치가 수집한 최고급 장치로서, 어지간한 폭격에도 끄떡없이 작동하니까.
아버지 엡실론의 폭격에도, 시끄러운 빗방울 속에서도 멀쩡하게 레퀴엠이 울려 퍼지는 것이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위이잉! 철컹, 위잉! 철컹!
나는 꼭대기 방에서 내려와 청동 대포가 장착된 전투 대기실로 향한다.
가만히 두면 최종 병기 라퓨타가 지상에 있는 서부 연합군을 박멸할 것이므로.
지상으로 포격하지 못하게 청동 대포들을 파괴하러 가는 것이다.
“헉! 너는!”
“마신 문두스! 네가 어느 틈에!”
“······.”
내가 도착하자마자 알아보는 흑마법사들.
더 이상 꺼릴 것도 없기에 빛과 어둠의 가면을 쓴 덕분이다.
【아쿠아 스톰 lv2.】
콰아아아아-!!!
나는 그들을 보자마자 모조리 날려버린다.
더 정확히는 지상을 포격할 수 있는 각도에 있는 함포 사격실을 모조리 방문하며 쓸어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희망을 주진 못하겠지······.’
나는 함포 사격실에서 지상을 내려다본다. 드래곤 아이와 발달된 신경으로는 멀리 있는 것도 가깝게 느낄 수 있으므로.
[저게······.]
[진짜, 공중요새 라퓨타라고······?]
망연자실한 서부 연합군이 보인다.
압도적인 크기.
개개인 인간들을 한 없이 작게 만드는 궁극의 마도공학 병기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므로.
챙캉. 땡강······.
손에 힘이 풀린다. 쥐고 있던 창칼을 떨어뜨린다. 활과 화살까지 떨어뜨린다. 구름 위에 자리 잡은 라퓨타에겐 결코 닿지 않을 것을 앎으로.
그저 멍하니.
마치 세계 대종말의 날 같은 검은 하늘을 바라본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엘드리치의 모든 수하를 상대할 순 없다. 저들이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
벌컥, 벌컥, 벌컥!
따라서 푸른 물약을 꺼내 다 마신다.
병 안에서 검은 연기가 휘몰아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액체.
블루 번.
일정시간 동안 최대 화력을 500%까지 증폭시켜주는 전설적인 비약이다.
저들을 중력 마법으로 공중요새 라퓨타로 데려와서 함께 싸우기 위해선 사기를 되찾아야 하므로.
이를 위해선 압도적인 힘을 가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진짜 마신으로서의 이미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쿵, 쾅, 쿵, 쾅, 쿵, 쾅!
그 어느 때보다 거칠어진 심장 고동.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때문일까?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가슴에 강한 통증이 온다. 어지러워 토할 것 같다.
그 대신, 내 몸을 스치는 바람 한 점 한 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폭주기관차처럼 통제가 안 되는 마나.
몸속 마나가 팽창하다 못해 밖으로 분출된다.
내 몸 주위에서 푸른 마나가 형형이 뿜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절대적인 힘을 느낀다.
【프로즌 모드 lv1.】
하지만 그 정도로도 멈추지 않는다.
최종병기 라퓨타.
이는 반쪽짜리 그릇에 부활했던 불사왕 데힐라칸,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절대 병기라는 걸 알기에.
새로 얻은 권능까지 발동한다.
고오오······.
프로즌 모드를 발동하자 내 주위의 기온이 급속도로 내려간다.
마치 대륙 최북단 천년산성에 갔을 때처럼 주위 환경이 미친 듯이 추워진다.
내 몸 주위로 차디찬 마나가 뭉쳐서 서리 결정이 모여드는 것이다.
쩌저적······!!
그렇게 만들어진 설운(雪雲)은 단단한 갑옷처럼 내 몸에 달라붙는다.
마치 기사의 갑옷처럼 반투명한 얼음의 표면이 날 수호한다.
그리고 딱딱한 얼음결정들은 마치 프리즘처럼 빛을 사방으로 난반사한다. 내 주위에 찬란한 빛이 서린다.
-프로즌 모드 lv1가 발동했습니다!
-모든 물 속성 마법에 빙결계 축복이 부여됩니다!
-얼음 결정들이 당신을 고대 왕의 후계자로 인정합니다!
입에서 한기가 서슴없이 뿜어진다. 검은 하늘에서 내리던 빗방울 일부가 딱딱한 우박으로 바뀌어버린다.
차오르는 힘을 느낀다. 당장이라도 폭주할 것 같지만, 혀를 피나게 씹으며 정신 차린다.
내겐 해야만 할 것들이 남아 있으니.
【드래곤 윙즈 lv2.】
촤아악! 펄럭.
양쪽 날개뼈에 거대한 마나 날개를 뽑는다.
힘차게 날아오른다.
모두의 희망을 위하여.
거악 엘드리치와 결판을 내러 간다.
천공대결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