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공중요새 라퓨타 (5)
나는 바람의 길을 타고 초고속으로 달린다.
검은 크리스탈.
지옥의 용광로 가장 안쪽에 있는 핵심 동력 장치.
그 안에 봉인된 대악마 아바돈을 깨우기 위하여.
탐욕왕 엘드리치를 타도하기 위해 그를 이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꺄핫! 인간. 그게 정말로 될 거라고 생각해?”
화르르륵!
화재의 악마 ‘아테’가 주홍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날 몇 번이고 따라잡는다.
몸에 용암까지 두르고 있어, 그녀가 달린 길목이 용암지대로 바뀐다. 뜨거운 열기가 숨을 턱 죄어온다.
심지어 바람의 길을 쓴 나보다 빠른 속도.
‘따라오게 하면 안 된다!’
【워터 실드 lv5.】
콰아앙!
그 즉시 나는 천년빙정의 물로 거대한 방패를 만든다. 육탄 돌격하는 아테의 길을 막는다.
“빈틈.”
“······!”
쐐애애액!
그러나 그 즉시 쌍둥이 악마 ‘스킬라’가 동시에 덮친다.
이 녀석은 나와 마찬가지로 물을 다루는 악마였으므로.
내가 방금 만든 워터 실드를 얼음물로 분해해서, 송곳으로 바꾸고 날 찌른다.
당장 머리 숙여 피한다.
‘······미리 방식을 알고 있었기에 살았군.’
나는 땀이 비 오듯 흐르는 후덥지근한 용광로에서 서늘함을 느낀다.
간신히 피했지만, 조금만 늦었다면 즉사으므로.
상대는 마계의 악마 중에서도 중급 이상의 존재. 그것도 둘씩이나 힘을 합치고 있으므로.
지금껏 상대했던 그 어떤 악마보다도 까다로운 것이다.
“하지만 남의 물을 다룰 수 있는 건 너만이 아니다!”
“!”
【워터 해머 lv1.】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나 또한 유빙의 악마 스킬라가 응축한 물을 그대로 역이용할 수 있으니.
촤아악!
악마가 단단히 굳힌 물을 거대한 망치로 만든다.
1층을 가득 채워버릴 수 있는 질량의 물을 극한으로 응축한다. 검은 크리스탈을 향해 질량을 담아 내리친다.
콰아아앙!
쩌저적······.
시원한 타격음과 동시에 다소 금이 가는 검은 크리스탈.
물론 검은 크리스탈은 집채만 한 크기.
거기에 아다만티움에 준하는 엄청난 강도를 가지고 있어 큰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타격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다.
[그렇지! 조금만 더!]
대악마 아바돈은 정말로 깨져 나갈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들었는지 간절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아까 인간이라고 무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모습.
“네놈! 그렇겐 안 될 거라고 했을 텐데!”
여유롭던 화재의 악마 아테가 경악하며 붉은 눈을 번뜩인다.
지옥 용광로에 있는 열기를 모조리 들이마신 후, 일직선으로 내뿜는다. 방금 워터 해머의 위력을 보고 진심으로 경악한 모양.
쏴아아아아아-!!!!
유빙의 악마 스킬라 또한 눈매를 차갑게 빛내며 천년빙정을 한껏 들이마시고, 일직선으로 내뿜는다.
주위 흑마법사들이 휩쓸리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
‘마나를 아낄 때가 아니다. 최대한 빨리 파괴한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나는 이를 피하며 검은 크리스탈에 금이 간 후, 울리는 비상경보를 살핀다.
물론 이미 라이칸 슬로프와 웨어울프들이 흑기사들을 막고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검은 크리스탈까지 타격이 갔다면 탐욕왕 엘드리치가 강림할 수도 있다!’
악과 파괴의 교단 제5군단장 탐욕왕 엘드리치.
용광로의 대악마 아바돈조차 패퇴시키고 육신을 녹여버린 거악(巨惡).
대륙 서부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마계의 군주가 친정에 나설 수도 있으므로.
【기간테스의 힘 LV2.】
지이잉.
따라서 최강의 권능을 발현한다.
기간테스의 손아귀로 검은 크리스탈을 붙잡는다.
겸사겸사 데드 크로스하는 악마들의 극과 극의 브레스를 막는다.
“이 힘은, 한 번에 하나만 쓸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기간테스의 힘 lv2.】
쿵, 쾅, 쿵, 쾅, 쿵!
거기에 나는 기간테스의 손으로 검은 크리스탈을 붙잡은 상태에서, 또 다른 기간테스의 주먹을 꺼낸다.
······비록 절대 반지 ‘기간테스의 힘’은 마나를 먹는 괴물이라서, 드래곤 하트 속에 있는 마나가 거의 다 떨어졌지만.
지금은 그딴 걸 가릴 때가 아니므로.
“안 돼!”
화재의 악마 아테가 내 의도를 알아보고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다.
나는 그런 악마에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내지른다.
“돼. 멍청아.”
꽈아아아아앙-!!!!
기간테스의 힘으로 검은 크리스탈을 고정한 상태에서, 한 번 더 기간테스의 힘으로 내지른다. 무시무시하게 터져 나오는 굉음.
쨍그랑!!
검은 크리스탈이 완전히 깨져나간다. 집채만한 크리스탈이 산산 조각나며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그 파편이 화살처럼 벽을 뚫고 박힐 정도.
“그러게 처음부터 여유 부리지 말았어야지.”
물론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나는 미리 가져온 키메라 히드라 사체를 '소형화 해제'한다.
검은 크리스탈 속 아바돈의 영혼이 키메라 히드라 사체로 황급히 들어간다.
그리고 그 결과,
-지옥의 용광로에 봉인된 대악마 아바돈의 봉인구를 완전히 파괴하셨습니다!
-당신은 혈혈단신으로 적진의 핵심 코어를 파괴했습니다!
시끄럽게 울리는 시스템 창.
-히든 업적 달성! 용광로의 대악마 아바돈을 봉인에서 깨웠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사악한 원념이 당신을 파멸로 이끌지도 모릅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에 스킬 숙련도와 써클 경험치가 급격히 증폭됩니다!
.
.
더구나 대악마 아바돈을 봉인해제 한 것이 히든 업적으로 인정됐다.
비록 이는 아바돈에게 처형 당하는 걸 목적으로 등재된 히든 업적이지만.
다른 히든 업적으로 파훼해도 보상은 온전히 받는다.
또한,
-히야아아아악-!!!
-lv60 키메라 히드라 아바돈 (화신체.)
거대한 뱀 머리가 무려 9개인 키메라 히드라가 악마의 붉은 눈을 번뜩인다.
용광로의 대악마 아바돈.
그가 임시 육신으로 빙의했으므로. 대악마의 막강한 마력으로 망가진 육신을 재생한다.
-쌍둥이 악마 년놈들······. 감히 날 배신하고 반역을 꾀한 죄인이었지. 이번 기회에 깡그리 모두 없애주마-!!
고고고고고-!!!
당장 지독한 살기를 내뿜는 아바돈.
머리 9개의 입을 동시에 쩍 벌리고 쌍둥이 악마들을 맹렬히 위협한다.
“이, 이런······!”
화재의 악마 아테와 유빙의 악마 스킬라는 뒷걸음친다.
억지로 으르렁거리며 살기를 번뜩이지만, 기세에서 아바돈에게 크게 밀린다.
마계의 악마 둘을 압도하는 마력.
그것도 수천 년간 마력을 갈취당해 빈사 상태인데도 둘을 압도한다.
대악마 아바돈.
그는 무려 마계의 7군주 중 하나인 엘드리치와 견주었던 숙적이므로.
수천 년 전, 배신자를 잊지 않고 물어뜯는 것이다.
***
위잉! 위잉! 위잉! 위잉!
특특급 비상 경보 시스템이 울린다.
꼭대기 층에서 울려 퍼지던 레퀴엠 하모니 소리가 묻힌다.
탐욕왕 엘드리치는 이번만큼은 노래 장치의 불륨을 줄인다.
“뭐냐. 무슨 일이느냐.”
[대악마 아바돈이 깨어났습니다! 침입자가 검은 크리스탈을 파괴한 것 같습니다!]
통제실에서 다급한 보고가 연거푸 들려온다.
통제실 흑마법사들은 당장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엘드리치의 목소리는 차갑게 내려앉았다.
“마계의 악마 둘을 뚫고 검은 크리스탈을 깨뜨렸다고?”
손아귀에 굴리고 있던 보석들을 악력으로 부순다. 가루가 되어 방바닥에 떨어진다.
마계의 악마.
혼자서도 아르카나 대륙 일대를 휩쓸어버릴 수 있는 존재.
그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악마를 둘 씩이나 배치하였음에도 뚫렸으니까.
이는 최고 간부인 흑기사단장 리차드나 흑마도사 클라우드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믿을 수 없어 의심하다가 이내 살기를 띈다.
“······마신(魔神) 문두스. 그자가 공중요새 안으로 잠입한 거군.”
황금 고블린답게 냉철한 이성으로 상황을 통찰한다.
현재 목표는 서부 연합군 몰살이 아니라, 마신 문두스 척살이므로.
맹렬하게 두뇌를 굴린다.
스멀스멀 사악한 기운이 뿜어진다.
마왕의 뿔이 요동친다.
“설마 다수의 병력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오진 못했을 테고. 홀로 내 본거지로 들어오다니. 배짱 한 번 두둑하군.”
“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임프 부총관이 바짝 겁에 질린다.
엘드리치는 명한다.
“임펫 부총관.”
“······예.”
“지금부터 임시 총 사령관은 너다. 통제실로 가서 네 임의로 지휘해라.”
“예, 예?”
충격적인 선언.
임프 부총관은 입을 쩍 벌리고 고개를 든다.
혹시 시험을 하시려는 걸까?
의구심 반, 두려움 반인 얼굴로 주군의 진의를 파악한다.
그러나 막상 엘드리치는 눈치 보는 임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한다.
“통제실.”
[하명하십시오.]
“지옥의 용광로를 임시 폐쇄하라. 더 이상 누구도 진입하지 말도록.”
“!”
그 명령에 임프 부총관은 그제야 두 눈을 부릅뜬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침을 꼴깍 삼킨다.
이제야 지금 제 주군이 내린 명의 의도를 파악했으므로.
“설마? 폐하?”
“그래.”
엘드리치는 고개를 끄덕인다. 거악답게 공중요새 라퓨타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어둠을 뿜어낸다.
“차라리 잘됐다. 마신 문두스. 내 친히 그놈을 없애고 오마.”
“!!”
말릴 틈도 없이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지이잉, 소리와 함께 찢겨나가는 아공간.
고오오.
그 안에는 아다만티움으로 제작한 궁극의 마도병기가 있었다.
최종 병기 ‘골리앗’.
탐욕왕 엘드리치의 전용 마도공학 병기.
나약한 황금 고블린을 오늘날 마계의 군주까지 끌어 올려준 전설적인 살인 병기다.
엘드리치는 어머니의 관만 가지고 골리앗에 탑승한다.
키 100cm인 엘드리치가 골리앗 손가락만 하다.
“용광로의 대악마 아바돈. 그놈을 어떻게 알고 찾아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우웅. 기이이잉.
골리앗이 예열을 시작한다. 고블린 체형과 유사하게 생긴 아다만티움 병기가 지하를 내려다본다.
골리앗 어깨에 부착된 거대한 광선포를 가동한다.
“반역자 무리들을 한꺼번에 숙청해야겠군.”
쏴아아아아아-!!!!
일직선으로 발포된 광선포.
정확하게 1층까지만 깨끗이 녹여버린다. 층마다 있던 부하들이 녹아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모습.
부아아앙!
이후 뚫어낸 구멍으로 급강하한다.
성 꼭대기에서 내성 1층까지 모조리 뚫어버리며 내려간다.
***
치이이익······. 철썩.
지옥의 용광에서 용암이 파도처럼 쉼 없이 출렁였다.
용광로의 대악마 아바돈.
마계의 최상급 존재가 용광로 속 끓는 용암을 모조리 일으켰으니까.
검은 크리스탈에 갇혀있을 때도, 고함 한 번에 용암을 분출시킬 마력을 가지고 있었거늘.
봉인에서 해제된 상태에선 그 이상의 것도 가능하니까.
-화재의 악마 아테를 물리치셨습니다!
-유빙의 악마 스킬라를 물리치셨습니다!
-히든 업적! 마계의 악마를 동시에 둘이나 처치하는데 큰 공헌하셨습니다! 이는 고대 궁정 마법사 프로인트조차 불가능했던 업적입니다!
화재의 악마 아테도, 유빙의 악마 스킬라도 흔적도 없이 녹았다.
본래 악마는 영혼을 담는 그릇을 찾아서 파괴해야 처치할 수 있지만, 용광로 내 모든 것을 녹여버렸기에 함께 깨끗이 소멸한 것이다.
‘······아버지께서도 무사히 도착하신 모양이군.’
-lv59 가주 엡실론. (6써클.)
나는 창문 아래 서부 연합군 상황도 살핀다.
다크 와이번과 청동 대포로 학살 당하던 연합군.
마법사가 부족해서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던 와중에, 동부 최강의 마법사가 강림했으니까.
한시름 놓는다.
-지옥의 용광로를 파괴했습니다! 공중요새 라퓨타 프로토 타입에게 더 이상 마력을 공급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재 남은 마력으론 16시간 32분 간 공중요새 라퓨타를 운행할 수 있습니다.
.
.
결정적으로 잠입 목적이었던 지옥의 용광로도 파괴했다.
지옥의 용광로를 구성하던 장비를 모두 녹이고, 영혼체 아바돈을 구해냈으므로.
더 이상 공중요새 라퓨타의 지옥 용광로는 가동할 수 없는 것이다.
[큭큭, 키메라 히드라라고 했나? 하등한 버러지들의 집합체지만. 그래도 꽤 쓸만하군.]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대악마 아바돈을 소리내어 웃는다.
검은 크리스탈에서 해방된 만큼 광오한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네놈. 이게 무슨 짓이지?”
【드래곤 피어 lv2.】
다만 나는 키메라 히드라 아바돈에게 짙은 살기를 뿜어냈다. 드래곤 아이를 번뜩인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 또한 아바돈의 용암에 휩쓸렸으니까.
물론 아쿠아 실드를 극한으로 발휘해서 살아남긴 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나까지 죽을 뻔했다.
[어차피 네놈은 알아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느냐?]
본색을 드러내는 아바돈.
아까 날 응원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뱀 머리 9개가 혀를 날름거리며 날 비웃는다.
지금 건실하게 살아있지 않냐는 듯. 이것까지 다 계산했다는 듯 말이다.
영혼의 계약을 해서 내게 피해를 입힌다면 자신도 격렬한 고통을 느꼈을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
과연 대악마다운 풍모다.
나 또한 나 혼자 있었으면 피해버리면 되니 별 신경 쓰지 않았을 터였다.
“네, 네일 경······. 이건······.”
내 품에 안긴 요정들과 웨어울프들이 동공이 풀린다.
마치 ‘우리가 지금 무얼한 거지?’라는 표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옥의 용광로에는 사왕 중 하나인 라이칸 슬로프를 비롯하여 함께 온 동료들이 많았으니까.
이들은 내가 소형화해서 구하지 않았다면 전멸했을 테니.
“끄아아아악! 살려, 줘······.”
“왜, 어째서, 악마께서 우리까지······.”
더구나 눈앞에서 용암에 휩쓸린 흑마법사들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리고 있다. 가히 지옥도라고 할 만한 풍경.
물론 이들은 엘드리치의 하수인이기에 싸워야 하는 게 맞지만.
저런 포악한 대악마를 깨우기 위해 그토록 피 흘리며 싸웠는가 회의감이 드는 표정이다.
“내 동료들 또한 영혼의 계약에 포함되어 있을 텐데.”
따라서 나는 대악마 아바돈을 추궁한다.
다만 대악마는 비웃을 뿐이다.
[어리석은 인간. 미안하지만 영혼의 계약에는 그런 애매한 단어는 포함되지 않는다.]
“······.”
이에 나는 침묵한다.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배신할 거란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본색을 드러낼 줄은 정말 몰랐다.
애초에 대악마 아바돈은 포악하여 상종할 자가 아니다.
그나마 나와 영혼의 계약을 해서 대놓고 공격하진 못할 뿐.
[덕분에 엘드리치에게 패배하고 날 배신까지한 쌍둥이까지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게 됐군. 고맙다. 큭큭, 이건 진심이야.]
대충 사정을 알 것 같다.
화재의 악마 아테와 유빙의 악마 니킬라.
그 둘은 본래 대악마 아바돈의 수하였으나, 패배하고 지금처럼 엄청난 분노를 맞았겠지.
그 결과, 둘은 살기 위해 엘드리치에게 투항했고, 엘드리치는 둘의 악감정을 이용해 아바돈의 봉인 경비를 맡긴 모양이다.
‘하기야 마계의 악마란 것들은 거의 이딴 놈들뿐이니.’
나는 적당히 납득했다. 아바돈 성격이 여포마냥 극도로 포악하단 걸 몰랐던 것도 아니니까.
악마가 악마답게 군다는 데 뭐라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지? 내가 아무리 미워도 그 엘드리치에 함께 맞서려면 협력해야 할 텐데?]
대악마 아바돈은 당돌하게 묻는다.
저것이 아마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인 모양이다.
“당연히 달아나야지. 아무리 네놈이라도 탐욕왕 엘드리치를 상대할 순 없다.”
나는 간단하다는 듯 말했다.
대악마 아바돈.
그가 마계에서도 서열 50위 안에 드는 초강자임은 확실하지만.
현재 본체도 아닐뿐더러, 검은 크리스탈에게 마력을 계속 빼앗겨 고갈된 상태. 극도로 쇠약해져 있는 상태니.
애초에 과거에도 탐욕왕 엘드리치에게 패배한 만큼 지금도 못 이길 게 분명하다.
'그리고 엘드리치를 상대할 때 방해되는 녀석이지.'
나는 원작 <별들의 전쟁2> 최고 고인물.
그 녀석을 처치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으므로. 멋대로 폭주하는 이 놈을 계속 데리고 다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탈출하냐는 말이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뭐?]
잠깐 이해 못 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대악마 아바돈.
나는 그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듯하여 덧붙인다.
“나는 분명히 검은 크리스탈에서 꺼내준다고 했지, 널 데리고 탈출해준다고 한 적은 없다. 영혼의 계약은 이미 끝났다.”
[뭐라! 그럼 도대체 왜 날 이토록 힘들게 구했단 말이냐!]
“너는 그냥 시간벌이용이다. 지옥의 용광로를 파괴하고 나면, 적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 테니까.”
[!!]
사실이다.
대악마 아바돈은 내가 자신을 회복시켜서 탐욕왕 엘드리치와 맞선다고 착각한 모양인데, 나는 전혀 그럴 생각 없었다.
공중요새 라퓨타.
이는 탐욕왕 엘드리치의 본거지. 고위 흑마법사와 흑기사가 수없이 많은 곳이다.
아무리 나라도 이곳의 핵심 기관인 지옥의 용광로에 잠입해서 파괴하면 후폭풍이 장난 아니므로.
“애초에 내 목적은 공중요새 라퓨타의 동력기관을 파괴하는 것. 네놈은 깨워도 그만, 안 깨워도 그만이었다.”
대악마보다 더 악마같은 표정으로.
친절하게 진실을 알려준다.
나는 성물 아가타의 성배도 있으므로.
만약 아바돈이 계속 시간 끌면서 고민하면 그냥 성수로 부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럼 이만 잘 있어라. 난 간다.”
난 웨어울프와 페어리들만 데리고 지옥의 용광로에 있는 숨겨진 ‘환풍구’를 연다.
냉각수로 활용되던 천년빙정이 녹으면서 나오는 연기를 빼기 위해 만들어진 통로.
과거 암살자 직업 마스터를 했을 때, 알아냈던 비밀 통로를 활용한다.
[크아악! 네놈. 나도 데려가라!]
키메라 히드라인 아바돈이 내게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영혼의 계약 때문에 내게 피해를 입혀선 안 될 터인데, 분을 못 이기는 모습.
콰앙.
물론 나는 환풍구를 닫아버린다. 워터 실드도 펼쳐준다. 작은 비상구에 저 거대한 키메라가 들어올 수는 없으므로.
적들이 발각하기 전에 달아난다.
‘······왔군.’
-lv65 탐욕왕 엘드리치 (아다만티움 골리앗.)
쿠과과광!
그리고 환풍구로 빠져나가면서 시스템 창을 확인한다.
꼭대기 방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수직 낙하하는 엘드리치.
무려 거대 리치로 강림한 불사왕 데힐라칸보다도 몇 개나 더 높은 레벨.
나와 아바돈이 지옥의 용광로에 있다는 걸 파악한 즉시,
내성이 무너지든 말든 최고 속도로 급강하하는 모양.
‘공중요새 라퓨타는 대략 봉쇄했지만······. 결국 최종 봉쇄는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거악 엘드리치까지 처치해야 한다.’
나는 알고 있다.
현재 공중요새 라퓨타는 마력이 무력화되었지만, 무리하게 기동하면 이 일대를 날려버릴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지금 공중요새 라퓨타는 프로토 타입. ‘본체’가 아니므로.
앞으로 벌어진 대학살을 막기 위해선 결국 탐욕왕 엘드리치를 처치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엘드리치는 온통 아다만티움으로 무장한 골리앗에 탑승하고 있다는 건데.’
콰아아앙!
나는 지옥의 용광로 쪽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진동을 느낀다. 뒤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오고, 건물 일대가 쓸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천천히 추락하던 공중요새가 크게 휘청인다.
아마 대악마 아바돈과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겠지.
나는 기울어지는 환풍구에서 상황을 유추한다.
‘그 틈에 골리앗까지 파괴할 준비를 한다.’
-움?
나는 환풍구에서 빠져나온 후, 인피면구로 다시 흑마법사인 척 연기한다.
그렇게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꼭대기 층.
탐욕왕 엘드리치가 거주하는 방이다.
그 녀석의 방에는 온갖 진귀한 보물들이 있으니까.
"노움. 이제 네가 고생해줘야 한다."
-움움~!
도둑질이라면 맡겨 달라는 듯 신이 난 노움.
마치 보물 찾기를 즐기는 아이처럼 기뻐한다.
······순수했던 정령을 내가 타락시킨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현재 탐욕왕 엘드리치가 방에서 자리를 비웠으므로.
대악마 아바돈이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그 방으로 직행한다.
‘그곳에는 전설의 비약 ‘블루 번’도 있었지.’
나는 최종 목표를 다진다.
블루 번.
마시는 순간, 최대 화력을 5배 증폭시켜주는 시약으로, 페널티로 한 달 간 폐인이 되는 무시무시한 약이다.
과거 불사왕 데힐라칸을 상대할 때, 부족한 화력을 보충하기 위해 마셨던 아이템.
"그 아이템을 찾는다. 그리고 최후의 결전을 치른다."
거악 엘드리치와의 결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