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공중요새 라퓨타 (3)
대륙 최서단.
검은 고성 엘도라도 앞 대평야.
비정상적으로 토목 되어 황량하고도 스산한 안개 바람이 부는 이곳에 두 개의 파도가 몰아친다.
그 첫 번째 파도는 흑기사단.
투구와 갑옷, 심지어 흑마까지 전원 검은 염료로 칠한 최정예 기사단이다.
흑기사단장 ‘리차드’는 검은 랜스를 내지르며 눈앞의 서부 연합군을 학살하면서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기랄. 돌파 속도를 늦추지 마라! 속도가 느려지면 포위당한다!”
쐐애액, 쿠과과광-!!!
그는 무려 5클래스 기사에, 흑마법 강화로 중무장한 전사.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핏덩이로 바꿔버린다.
비탄과 고통, 분노, 절망감으로 모조리 검게 칠해버린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결코 밝지 못했다. 인간 살육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우와아아아-!!!
흑기사단을 막아서는 또 다른 파도 ‘서부 연합군’.
나약한 인간들이 떨리던 몸을 단단히 굳히는 건 물론, 역으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으니까.
가지각색의 색깔과 문양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일제히 진격한다.
“물러서지 마라! 병사들이여. 지금 이 자리엔 우리 고향의 이웃들이 있으니!”
“구원군이다! 살 수 있어! 조금만 더 버텨라!”
“저 새끼들이 내 친구 스미스를 죽였어!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
각자 다른 지역, 다른 이유로 여기까지 왔다 한들,
같은 프레야 교도라는 명목하에 하나의 새하얀 파도가 되어 진격한다.
쿠과과광-!!!
“하룻강아지들이 귀찮게!”
물론 흑기사단에게 그리 위협되지는 않는다.
마나조차 실리지 않은 창칼은 흑기사의 갑옷에 여지없이 튕겨나갔으니까.
마치 개미떼가 달려들 듯 그 자체론 별로 위협이 되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우리 프레야 성기사단이여! 눈앞에 교도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서둘러라!”
번쩍, 샤아아아아-!!!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
그녀가 새하얀 빛을 뿜어내며 흑기사단에게 달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흑기사단이 강하다고 한들, 최악의 상성인 성기사단에겐 전력을 다해야 하거늘.
아무리 하찮은 자들이라고 해도 이 중요한 순간에 귀찮게 달라붙으니 피해가 막심했다.
그들을 간신히 뿌리치며 재정비한다.
꽈아아아앙-!!!
양측 군대의 힘은 팽팽했다.
백기사와 흑기사가 맞부딪힌다.
흑기사단이 서부 연합군 진형을 함몰시킨 만큼, 루크레치아의 성기사단 또한 흑기사단의 진형을 파고들었으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난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네년이,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로구나······!!”
서부 흑기사단장 리차드는 어금니를 씹는다. 양손으로 검은 랜스를 내지르며 일대를 휩쓴다. 사악한 마력이 줄기줄기 뿜어진다.
다 된 밥이었다.
한 시간, 아니, 단 30분만 시간이 있었더라도 겁에 질린 서부 연합군을 초토화시키고 엘도라도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만 아니었더라도.
이 정도 피해를 볼 필요가 없었다.
이에 루크레치아는 차가운 안면으로 읊조린다.
“그러는 네놈은 악마의 발가락을 핥는 버러지로군.”
번쩍!
루크레치아는 그런 상대방의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다.
살기 어린 빛을 뿜어내면서 리차드에게 덤벼든다.
쐐액, 콰과과광-!!
그 누구의 우위 없이 수 시간 동안 격렬하게 부딪힌다.
엘도라도 대평야에서의 대회전이 한치 앞도 알 수 없게 비등비등할 때,
뿌우우우우-!!!
고조된 분위기에 쐐기를 박는 뿔피리 소리.
모두의 이목이 서쪽 바다로 향한다.
“······앗! 저 깃발은?”
“‘바다의 군주’ 군함! 북부 함대의 기함이다!”
“우와아아아! 북부의 패자! 베아트리체 저하께서 지원오셨다아!”
고막이 터질 법한 함성이 이어진다.
북부 연합 함대.
기존 서쪽 바다를 지배했던 해적왕 데비존을 물리치고, 대양 패권을 차지한 함대의 도착이었으므로.
기함 바다의 군주 최정상에 서있던 푸른 머리카락의 여인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선다.
인형을 조각한 듯 아름다운 여인.
오르비스 공작이자, 북부의 지배자인 그녀가 입을 연다.
[흑기사단장 리차드. 지금 항복한다면 적장으로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마.]
지이이잉······.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진다.
초대형 군함들이 일제히 함포를 조준하는 소리와 함께.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이윽고.
쿠과과과광-!!!
측면에서 포격하여 흑기사단을 쓸어버린다.
‘틀렸다······. 흑기사단의 힘만으로 뚫기엔 너무 수적 차이가 난다······.’
이에 흑기사단장 리차드는 절망했다.
지금 병력차는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적이 압도하므로.
시선을 저 멀리 향한다. 아직도 가만히 있는 거대한 요새로 향한다.
구원군을 불러놓고, 막상 도착한 구원군을 돕지 않는 검은 요새 엘도라도.
‘엘드리치 폐하께선, 끝내 날 버리시는 건가······?’
머릿속에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보석알을 돌리고 있을 제 주군이 상상된다.
아마 구하러 나오진 않겠지.
쓸모가 다한 부하는 가차 없이 버리는 게 엘드리치의 특성이었으므로.
‘나 또한, 임프 부총관처럼······. 신뢰받고 싶었거늘······.’
토사구팽.
그 말이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탐욕왕 엘드리치의 목표는 오직 ‘블랙 매스’ 프로젝트.
흑기사단도, 해적도, 타락 영주도.
사실 공중요새 라퓨타를 띄워 올릴 수단에 불과하므로.
평생 충성을 다한 대가로.
쓰다 버릴 사냥감이 되어 버려지는 것이었다.
***
“드디어 오늘이 오는군.”
엘드리치는 내성 꼭대기에 있는 군주실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 무질서의 신 디메토르이시여.]
[영원한 안식을 주시옵소서.]
[죽은 이를 위하여 만물의 보물을 바치오니.]
[끝없는 어둠으로 감싸 안아 주시옵소서.]
꼭대기 방에는 수십 개의 노래 장치들이 가득하다.
탐욕왕 엘드리치가 수집해둔 최고급 마도공학 장치들.
그리고 그 노래 장치 가운데에는 관이 놓여 있다.
죽은 어머니의 시신이 담긴 관.
오직 그 관만을 위하여 수십 개의 노래 장치가 오케스트라처럼 정교하게 움직인다.
우와아아아!
째쟁! 쿠과과광!
성문 앞 대평야에는 북부 함대까지 도착해서 제 부하들을 죽이고 있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부하들을 더 고용할 돈은 끝없이 많으므로.
저들의 비명에 옛 추억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스쳐 가는 감격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방안에 있는 ‘노래하는 인형’들에게 다가간다.
노래 볼륨을 올린다.
똑똑.
“······무슨 일이냐?”
“임펫 부총관님께서 독대를 청하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그때 감상을 깨고 임프 부총관이 들어왔다.
엘드리치는 다소 구겨진 표정으로 허락한다.
“왜 들어왔지?”
“흑기사단장 리차드를 구해주십시오! 저자는 그간 폐하께 가장 충성한 기사이옵니다!”
“그게 뭐? 충성한다고 다 구해야 하느냐?”
엘드리치는 얼굴을 구긴다.
충성을 다했다는 게 구할 이유는 안 된다는 듯이.
왜 내가 저 부하를 구하느라 수많은 돈이 깨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냐는 듯 말이다.
현재 정예 병력들이 마신 문두스를 상대하기 위해 대기 중이니까.
따로 움직일 병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입술이 없으면 잇몸이 시린 법입니다. 만약 이대로 흑기사단이 전멸한다면 수성할 때 더욱 벅찰 것입니다.”
임프 부총관은 그렇게 설득했다.
현재 엘도라도 성 안에는 충분한 병력이 들어오지 못했으니.
흑기사단이 없으면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이다.
“필요 없다. 서부 연합군 따위 한꺼번에 처리할 ‘비대칭무기’가 있으니.”
엘드리치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낀다.
그렇게 엘도라도 꼭대기에는 죽은 이를 위한 진혼곡이 계속 울려 퍼졌다.
평야에서 죽어가는 흑기사들의 비명과 하모니를 이룬다.
그렇게 6시간 후,
엘도라도 평야에서 우레같은 함성이 터져 나온다.
흑과 백.
두 가지 색깔 중에서 오직 백색만 남은 전장.
붉은 피를 딛고 있는 서부 연합군이 더 이상 움직이는 흑기사가 없다는 걸 깨닫고 승리를 선언한 것이다.
[엘드리치 폐하! 큰일 났습니다. 반역자 무리들이 재정비를 마치고 엘도라도를 습격하리란 정보입니다!]
흑기사라는 구원군이 사라진 만큼, 저들의 움직임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마신 문두스를 상대하기 위해 별동대를 따로 빼놓았거늘.
마신 문두스도 처치하지 못하고, 애꿎은 흑기사단만 잃은 상황.
하지만 엘드리치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최고급 포도주를 마시며 침묵한다.
그러자,
[속보입니다! 이제 막 ‘지옥의 용광로’를 가동 완료했습니다! 공중요새 라퓨타 ‘프로토 타입’으로 출격 가능합니다!]
지휘 통제실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온다.
지옥의 용광로.
그곳에 잠든 대악마 아바돈을 깨웠다.
이는 ‘공중요새 라퓨타’를 최종적으로 가동했다는 뜻이므로.
“······그렇군. 마신 문두스. 그 년이 척살대는 눈치채고 아직 나서지 않은 모양이지만, 이것만큼은 눈치 못 챈 모양이야.”
엘드리치가 비릿하게 미소 짓는다.
식은땀을 닦는다. 애써 웃으며 긴장을 푼다.
이제 겨우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
“지휘 통제실.”
그리고 중저음으로 읊조린다.
[하명하십시오.]
“공중요새 라퓨타를 출격하라. 감히 내게 대항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옥을 선사해라.”
[알겠습니다!]
엘드리치의 명령에 비상 대기하고 있던 통제실이 바빠진다.
그와 동시에 엘도라도 내성을 증기 장치에서 뿜어지는 굉음이 지배한다.
부아아아아앙!
이윽고 허공으로 떠오르는 부유감.
창문 밖 세상이 하염없이 낮아진다.
엘드리치와 임프 부총관이 하늘 높이 떠오른다.
3만 여 명의 서부 연합군 전체를 다 가릴 법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검은 요새 엘도라도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했던 이유. 다른 요새보다 몇 배는 확장됐던 이유가 드러난다.
검은 요새 엘도라도의 내성 자체가 공중요새 라퓨타의 ‘프로토 타입’이었던 거다.
쿠웅.
이내 검은 내성이 구름 곁에서 정박한다.
그제야 엘드리치는 통신을 끄고 혼잣말한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이 시대에 남은 마지막 용족이라고?”
고오오오오.
엘드리치는 창문에서 새어 들어오는 고요한 바람을 맞는다.
지금 맞는 바람이 곧 마지막 고요일 지어니.
제 어머니를 되살리려는데 사사건건 방해하는 존재를 떠올린다.
“때는 늦었다. 진작 나타났으면 모를까. 이미 ‘절대 마법 방어 결계’가 개발됐으니.”
지이잉.
엘드리치는 마도공학 반지로 제 손바닥에 반투명한 막을 만들고 살핀다.
절대 마법 방어 결계.
외부에서 날아오는 모든 마법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하는 절대 결계다.
오르비스 대학살 때,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에게 크게 당하고 수십 억 페니를 부어 만든 역작.
엘드리치는 자신감에 찬 얼굴로 입 꼬리를 귀밑까지 찢는다.
“이건 죽은 어머니를 위한 ‘블랙 매스’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용족을 박멸하는 축포도 되겠군.”
철컥.
그의 혼잣말과 동시에 공중요새에 부착된 청동 대포들이 움직인다.
하나하나가 지상에 있는 철제 대포보다 10배는 큰 크기다.
그 동안 성벽에 붙어 있느라,
각도가 나오지 않아서 발포되지 못했던 수많은 초대형 대포가 일제히 장전된다.
“잘 가라. 아르카나 대륙. 너희의 운명은 여기까지다.”
탐욕왕 엘드리치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최고급 와인을 잔에 담는다.
그리고 이를 마시는 동시에,
콰아아아아아-!!!!!!
지상이 깨끗이 쓸려나간다.
***
나는 인피면구로 흑마법사로 꾸민 후, 엘드리치의 창고에서 계속 대기했다.
슬슬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부아아아아앙!
엘도라도 내성에서 검은 불꽃이 뿜어진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부유감.
그리고
지잉, 지잉, 지이이잉······!!
공중요새 라퓨타에 부착된 청동 대포들이 불길한 소리를 낸다. 하나하나가 황소 50마리는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초대형 대포들.
쿠과과과과광-!!!!!
고막이 떨어져나갈 법한 굉음이 울린다.
막대한 진동에 엘도라도 내성이 크게 뒤흔들린다.
성안에 있던 모두가 무게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오, 이런······.”
사왕 중 하나인 라이칸 슬로프조차 비틀거린다. 떨리는 동공으로 창밖을 내려다본다. 믿기지 않는지 한참 참상을 바라본다.
“이게······. 천공의 섬 라퓨타······?”
“궁극의, 마도 공학 병기로군.”
“······.”
페어리 여왕 티타니아도, 님프의 왕 오베론도, 한참 신음 소리만 낼 뿐이었다.
고오오······.
창밖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구름 위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대포 자국.
하늘에서 일제 포격한 결과, 대륙 최서단의 지형이 바뀐다. 산조차 소멸해 높이가 대단히 평탄해진 모습.
천만다행이라면 명중률이 형편없고, 루크레치아를 비롯한 프레야 사제들이 신성 보호막을 펼쳐서 대부분 막아냈다는 점.
그리고 청동 대포는 식히는 데 한참 걸린다는 점이지만.
그럼에도 수백 명의 사람이 휩쓸려갔다.
‘또한, 저렇게 막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겠지.’
나는 휩쓸려간 지상의 아군을 보며 생각한다.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와 프레야 사제들.
아무리 고위 사제라도 신성력에는 한계는 있으니까.
-까아아아악-!!!
-카고오오오-!!!
-lv49 다크 와이번 나이트 단장 타즈할.
-lv40 다크 와이번 나이트.
.
.
더구나 하늘에는 검은 익룡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다크 와이번.
비행 중상위 몬스터로, 샌드 드레이크와 달리 배에 기름기가 가득한 몬스터.
그만큼 탐욕스럽고 포악한 대형 몬스터다.
‘저들이 프레야 교단 사제들을 괴롭힐 테니까.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훨씬 줄어들겠지.’
본래 날 견제하기 위해 아껴둔 모양이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
안 그래도 서부 연합군에는 비행 몬스터를 상대할 ‘마법사’가 부족한 데, 최악의 상황이다.
······물론 이 때를 대비해서 동부 최강의 마법사이신 ‘그분’께도 도움을 요청한 상태이지만.
그분께서 정말 와주실지, 언제 도착하실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가자.”
내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작전대로 ‘지옥의 용광로’로 향한다.
현재 대륙 서부에서 가장 위험한 곳.
그러나, 절대 마법 결계 때문에 공중요새 라퓨타를 공략할 방법은 내부뿐이므로.
어느새 공중요새가 된 엘도라도 내성 중앙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홀 앞에서 막는 고위 흑마법사들.
“······뭐야. 네놈. 갑자기 여긴 왜 오는 거냐?”
아직 인피면구를 벗지 않았기에, 날 같은 흑마법사로 오인한 적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너희 같은 쓰레기를 치우려고.”
【에어 블레스트 lv2.】
콰아아!
나는 흑마법사들을 즉발로 소멸시키고 안으로 달려간다.
함께 들어온 웨어울프와 페어리들의 소형화 권능을 풀면서.
“침입자다! 이종족들이 지옥의 용광로로 들어왔다!”
“어서 저들을 몰살시켜! 엘드리치 폐하께서 아시면 우리까지 뒈진다!”
땡, 땡, 땡, 땡!
그러자 곧장 비상종을 치며 사방에서 우당탕탕 달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만약 시간이 지체되면 저들에게 포위당해 죽겠지.’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그 누구도 공중요새 라퓨타를 막지 못할 것이다.
이는 대륙 서부, 아니, 아르카나 대륙의 절멸일 테니.
【바람의 길 lv4.】
속도를 더욱 높인다.
타임어택.
그 전에 지옥의 용광로를 파괴하고, 반드시 탈출해야 한다.
[네놈, 인간! 멈춰라. 감히 허락받지 못한 자가!]
[하등한 이종족들. 죽을 자리를 찾아 왔구나.]
-lv35 마계 임프. (석상.)
-lv42 마계 켈베로스. (석상.)
.
.
중앙홀 안으로 들어가니 횃불에 의지하는 복도가 보였다.
그리고 복도에 수많은 석상이 있었는데, 몬스터 석상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움직였다.
마계의 마도공학술.
이는 가고일처럼 마치 살아있는 듯 생명까지 부여할 수 있었으므로.
엄청난 거액으로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경비병들을 추가 개발한 거다.
“네카르! 여기서부턴 내게 맡기고 어서 뛰어라!”
서걱-! 쿠과광.
이에 라이칸 슬로프가 백골의 단검을 뽑고 형체가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갈라지는 석상들.
나와 페어리들은 웨어울프들의 호위 속에 안으로 달린다.
“여긴······?”
“네일. 어느 쪽으로 가야 해요?”
중앙홀 안으로 들어가니 두 개의 길이 보인다.
정중앙으로 들어가는 길과 측면으로 빠지는 길.
“측면으로 빠지십시오. 이제부터는 저 홀로 들어갑니다!”
나는 작전대로 혼자 정중앙으로 들어간다.
페어리와 님프들은 측면 길로 보낸다.
‘······더럽게 뜨겁군!’
화르르륵!
중앙 홀은 용암이 이글거리는 용광로였다.
어지간한 성 1층 전체만한 곳.
드넓은 용광로 끝에서 지옥의 용암이 끓어오른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폐가 녹아버릴 수준의 용광로.
벌써 속이 어지러운 공기를 가졌다.
고고고.
그리고 용광로 밖은 거대한 얼음물이 감싸고 있었다.
마계의 천년빙정(千年氷晶).
설인왕 이미르가 거주하던 혹한의 땅에서 1,000년간 얼어붙은 만년설을 말한다.
아무래도 이토록 뜨거운 용광로를 공중요새에 담으려면, 열기를 식힐 ‘냉각수’가 필요했으므로.
만년설로 된 유빙이 용광로 주위를 감싸게 한 것이다.
[······네일 경!]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강화 유리에는 측면 길로 빠진 페어리의 왕 티티니아와 님프의 왕 오베론이 보인다.
관리실.
지옥 용광로와 냉각수를 관리하는 곳이다.
물리력이 약한 페어리들이 여기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
촤아악.
【워터 실드 lv5.】
나는 천년빙정에 있는 물을 뽑아서 뜨거운 열기를 막는다.
그리고 용광로 안쪽으로 힘겹게 걸어서, 최종 목적지로 향한다.
‘찾았다.’
화르르륵-!!!
내가 목표한 곳은 용광로 가장 안쪽, 용암이 솟구치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집채만 한 크리스탈이 있었다.
무려 용암이 튀어도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검은 크리스탈.
‘여기가 ‘마정석’을 꽂아두는 자리군.’
그러한 크리스탈에는 작은 홈이 파여 있었다.
본래 공중요새를 가동시켰던 마정석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구멍.
나는 이것이 내 최종 목적지라는 걸 확인했다.
‘감정.’
[이름 : 영혼의 크리스탈 (ANCIENT).]
[설명 : 탐욕왕 엘드리치에게 끝까지 대항하던 지옥 용광로의 대악마 ‘아바돈’. 그의 영혼이 봉인된 크리스탈이다. 지독한 저주가 걸려있다.]
* 경고! 사악한 원념이 잠들어 있습니다! 만약 깨어날 경우, 대학살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나는 크리스탈 속 악마의 검은 영혼을 살핀다.
인간보다 두 배는 큰 거인의 키.
머리에는 마왕급 악마임을 뜻하는 숫양의 뿔이 크게 박혀 있었고, 등에는 4장의 박쥐 날개가 펼쳐져 있다.
육체는 녹아버렸지만, 영혼의 모습은 남아있는 모습.
그리고
[······그아아악! 그만, 제발 그만해라. 그만하란 말이다아아-!!]
고고고!
대악마 아바돈이 검은 크리스탈 속 흑마법진 때문에 마력을 강제로 빼앗기는 모습을 본다.
대악마의 영혼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쳐보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대악마의 영혼답게 금세 마력을 되찾는다. 그러면 다시 크리스탈에게 마력을 빼앗기는 모습.
수백 년간 갇혀있었음에도, 원념을 잃지 않고 붉은 눈을 번뜩인다.
[탐욕왕 엘드리치! 내 이곳을 깨고 나가는 순간, 네놈을 한 점 한 점 살 뜨고 그 사이사이마다 뜨거운 용암을 부어주마!]
[풀어다오! 내 여기서만 나가면, 그간 은원 관계를 모두 잊겠다! 널 주군으로 모시겠다!]
“······.”
내가 가까이 가자, 날 탐욕왕 엘드리치로 착각했는지 온갖 말을 퍼붓는 아바돈.
물론 증오로 타오르는 눈빛을 보아, 전혀 진심이 아닌 것 같지만.
간절함 만큼은 진실인 듯 했다.
‘······지옥의 용광로를 파괴하기 위해선 이 ‘검은 크리스탈’을 파괴해야 하지.’
나는 열기 속에서 뜨거운 땀을 흘리면서 원작 <별들의 전쟁2> 속에서 대악마 아바돈 처단을 복기했다.
본래 클리어 의도는 주위에 있는 천년빙정을 활용해서, 용암을 식히고 검은 크리스탈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검은 크리스탈을 정화하지 않으면, 아바돈이 깨어나서 역으로 플레이어들을 죄다 죽여 버렸지.’
그러나 악랄한 난이도로 유명한 <별들의 전쟁2>답게 이는 간단하지 않았다.
검은 크리스탈 자체가 매우 단단하기도 했고,
제대로 건드리는 순간, 수많은 함정과 악마가 강림하여 플레이어를 학살했으니까.
더구나 그 모든 걸 뚫고 검은 크리스탈을 깨봤자 광기 어린 아바돈이 모두를 죽여 버렸다.
따라서 신성력을 가진 사제가 검은 크리스탈을 정화해서 영혼을 성불까지 시켜야 하는 곳.
말 그대로 미친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덕분에 이곳을 정상 클리어하려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지.’
원작에서도 대규모 레이드로 기획된 곳.
애초에 마계의 악마는 전부 여러 유저가 함께 클리어하게 만든 곳이다.
단지 내가 독고다이 스타일에 정신 나간 수준의 고인물이었기에 지금껏 홀로 격파했을 뿐.
‘하지만 그렇게 혼자 장난질을 하다가 시스템 허점도 발견했고.’
나는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미소를 짓는다.
내가 역대 최고 고인물로 군림하면서 정상적인 플레이만 한 게 아니다.
혹시 모를 히든 업적을 찾는답시고 온갖 실험을 했으니까.
그 결과, 심각한 오류를 몇 번이고 터트려서 개발진 수명을 단축시켜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발견한 파훼법이 있다.
‘용광로의 대악마 아바돈. 검은 크리스탈을 정화하지 않고 깨뜨리고도, 살아남을 방법 말이다.’
심지어 대악마 아바돈을 수하처럼 악용할 수도 있는 미친 방법.
끝까지 개발자에게 숨겼던 악질 방식이 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적용할 수 있겠지.’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도 있으니.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다.
탐욕왕 엘드리치에게 극도로 증오하는 대악마 아바돈.
이 녀석을 깨우고, 지옥의 용광로를 파괴할 방법을 시작한다.
“이봐, ‘용암의 대악마’ 아바돈.”
나는 아바돈의 과거 이명을 부른다.
용광로에 갇힌 건, 패배한 후, 육체를 잃게 된 것이니.
과거의 이명에 멈칫하는 아바돈.
바닥에서 무릎 꿇고 발버둥치던 움직임을 뚝 멈춘다. 무릎 꿇고 있음에도 나보다 큰 키의 영혼.
나는 그런 대악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계약하자. 그럼 이 지옥 같은 크리스탈에서 꺼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