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97화 (97/140)

97. 공중요새 라퓨타 (1)

‘마침 독가스가 있어서 다행이었군.’

나는 니케 연합군과 라흐 연합군을 중재하고 속으로 한숨 쉬었다.

별로 많지 않은 마나로 무려 3만이나 되는 대군 사이에 끼어들다니.

그것도 탐욕왕 엘드리치에게 대륙 금지 병기까지 지원받은 군단에게 말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결코 하지 말았어야 할 일.

그러나 이는 결국 최상의 결과를 만들었다.

그것도 엘드리치가 후원한 독가스 덕분에 한결 편하게.

‘탐욕왕 엘드리치가 속 좀 쓰리겠어.’

겉으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속으로 웃는다.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플레이어 편으로 나오는 니케 연합군.

거기에 엘드리치가 비싼 투자금 들여서 만든 라흐 연합군까지 피해 없이 온전히 내 휘하로 들어오게 됐으니까.

적의 알토란 같은 대군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전군 출정. 속도를 늦추지 마라. 늦어질수록 죽을 사람이 늘어날 테니.”

나는 그들을 데리고 초고속으로 행군한다.

대규모 전투를 벌이려던 찰나였기에 양측 군대의 보급과 준비도 최상이었다.

‘매복이군.’

-lv25 흑기사 하나단.

-lv27 흑마법사 사하르.

.

.

물론 탐욕왕 엘드리치의 하수인들이 기겁하며, 함정을 파고 시간끌기용 매복을 했지만 상관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숨어봐야 시스템 창에 훤히 보였으니.

"라이칸."

"알고 있다!"

일부는 내가 처리하고, 또 다른 일부는 라이칸 슬로프가 부른 부족으로 처리한다.

적들이 미처 방비하지 못할 때, 최고 속도로 진격한다.

'더구나 웨어울프만 부르는 건 아니지.'

가는 길에 페어리들이 사는 곳을 들린다.

그렇게 도착한 환상의 숲 테레이아.

“네일! 오랜만이시는군요.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나무창을 들고 날아오던 페어리들이 날 알아보고 살갑게 표정을 바꾼다.

“탐욕왕 엘드리치가 대륙 서부 전체를 멸망시키려고 한다. 너희 페어리의 도움을 받고 싶다.”

“······!”

탐욕왕 엘드리치.

그가 떨어뜨린 마정석 파편에 환상의 숲 테레이아에 살던 페어리와 님프 또한 멸족할 뻔했으니.

페어리와 님프는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가 제 여왕과 왕을 데려온다.

“페, 페어리들과 친하다고? 저들이 적대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어?”

“악마의 나무가 어린 세계수였다고? 말도 안 돼! 그 커다란 나무가 악마들에게 점령당했던 거라니!”

그 모습을 지켜본 인간 연합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본다.

이후 명령을 보다 고분고분 듣는다.

나는 대륙 최서단으로 향했다.

이미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지배하는 대륙 최서단으로.

대군을 이끌고 검은 하늘 아래로 스스로 들어간다.

휘이잉. 펄럭.

2주간 전속력으로 행군하여 도착한 검은 고성.

검은 벽돌로 지어진 이 성에 꽂힌 깃발이 나부낀다.

“여기가, 목적지라고······?”

“저, 저 요새를 공략해야 하는 겁니까······?”

공포에 질린 귀족과 병사들.

나도 목 아프게 고개를 젖혀서 성벽을 올려다본다.

‘······탐욕왕 엘드리치의 핵심 본거지 ‘엘도라도’. 직접 보니 더 장관이군.’

이곳은 대륙 최서단인 만큼 서쪽 바다를 앞두고 깎아지는 절벽에 건설됐다.

그 크기는 인공 산맥처럼 거대했다.

보통 성벽보다 세 배는 높은 성벽에, 수없이 박혀있는 청동 대포들.

각각 50개의 궁수 탑과 마법 결계 탑.

그리고 강처럼 넓게 뚫린 해자.

그러한 해자가 무려 두 겹이나 있으니.

과연 마계 제1의 거부이자, 아르카나 대륙 검은돈을 섭렵한 탐욕왕 엘드리치만이 만들 수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겉모습만 장엄한 모래성일 테니까.”

“예? 그 무슨?”

“저렇게 많은 수성 장치를 다 활용하려면 그만큼 많은 군대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 군대를 모을 틈을 주지 않았지.”

“······!”

요새는 클수록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수성 장치가 저렇게 많다면 저걸 활용할 병력도 많아야 하니까.

‘물론 내가 장애물에 천천히 출격했다면 충분히 병력을 모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 덕분에 만들어진 기회.

“루크레치아 예하께선 언제 오시지?”

"일주일 후,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루크레치아의 근황을 확인한다.

프레야 교단 사령관 루크레치아.

그녀가 악의 교단에 천적인 사제와 성기사단을 이끌고 지원 오고 있다.

“그때까지 멀리서 포격만 하도록. 프레야 교단이 도착하는 즉시 공성한다."

다만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그녀만큼은 기다린다.

마계의 군주와 그 휘하 흑마법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프레야의 신성력이 꼭 필요하므로.

적의 구원병이 올 수 있는 상황에서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는 거다.

***

검은 고성 엘도라도.

제5군단장 엘드리치의 주 병력과 물자가 모두 모여 있는 이 요새엔 검은 깃발이 펄럭인다.

성벽 앞에 당도한 적들이 나타난 만큼 흑기사들이 무기를 들고 자리를 지킨다.

“······벌써 성벽 앞까지 도달했다고.”

탐욕왕 엘드리치는 사령부에서 차갑게 읊조렸다. 손에 호두알만 한 보석을 만지작거리면서.

임프 부총관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해 저지해봤으나······.”

“됐다. 이건 마신 문두스가 비정상적인 경우지.”

엘드리치는 손을 들고 이들 입을 저지한다.

홀로 고요히 생각에 잠긴다.

“검은 안개로 절대 발각되지 않도록 숨겨놨거늘. 엘도라도로 바로 찾아왔다 이거지.”

그것도 다른 영지에 파견해둔 흑기사들을 다 소집하기도 전에 달려오다니.

심지어 환상의 숲 테레이아라는 지름길로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곳에 있는 페어리와 님프들은 외부인 모두에게 배타적이니까.

“이제야 인과율 계산기가 대략 맞는다. 마신 문두스. 이 세상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가정을 한다면.”

“······!”

탐욕왕 엘드리치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말한다.

설마 설마 싶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으니.

“하시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면 되겠지.”

엘드리치는 뚝 움직임을 멈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사악한 마기를 뿜어낸다.

“특급 이상 병력에게 전해라. 지금부터 전쟁의 승리보다 더 우선할 것은 '마신 문두스의 척살'이다.”

“!!”

목표를 바꾼다.

대륙 서부 연합군과의 전쟁 승리가 아니라, 마신 문두스 척살로.

“하, 하지만 그건······!”

“마신 문두스야말로 블랙 매스 계획의 최악의 적수다. 그 녀석만 처치하면 몇 년 늦어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손해가 계산되는 듯 눈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허나 타고 난 사업가로서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마계의 군주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

인간에겐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기나긴 세월이더라도, 엘드리치에겐 한순간의 지루함에 불과하니.

“흑마법사 부사령관 클라우드.”

“부르셨습니까.”

흑마법사 부사령관 클라우드.

그는 타이탄 영지에서 죽은 흑마도사 클라우스의 동생이었다.

“다크 골렘과 다크 와이번 군단을 대기시켜라. 전황이 아무리 불리해도 나서지 말고, 오직 마신 문두스만을 기다려라.”

“······! 알겠습니다.”

다크 골렘과 다크 와이번 군단.

이는 탐욕왕 엘드리치가 심혈을 기울여 기른 정예 군단이다.

말 그대로 마신 문두스 척살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임프 부총관.”

“예, 옛!”

“‘지옥 용광로의 대악마’를 깨워라. 공중요새 라퓨타를 언제든 가동할 수 있게 하라.”

“!!”

대악마.

마계의 악마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존재. 한때 마계의 군주들과 경쟁도 한 존재다.

마계의 악마만 해도 하나하나가 아르카나 대륙에서 대륙 7대 성인을 제외하면 적수가 없다시피 하거늘.

그보다 상위 존재인 대악마부터 깨우는 것이다.

꼴깍.

그 명령에 모두가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침묵한다.

특히 지옥 용광로의 대악마는 끝까지 탐욕왕 엘드리치에게 불복하던 존재였으므로.

완전히 봉인시키고 마지막 단계에서 깨우려 하였거늘, 이를 앞당긴 것이다.

“서, 서부 연합군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버려둬라. 내가 죽는 것도 아니니. 그들은 흑기사와 다크 실린더를 동반하여 죽음으로서 버티도록.”

엘도라도에 있는 수비군에게는 잔혹한 명령을 내린다.

먼 옛날, 그가 가장 절박하고 도움이 필요했을 때, 세상 모두가 도와주지 않았으므로.

그 또한 제 부하와 구원군들이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

탐욕왕 엘드리치는 다시 한번 명령한다.

“그 녀석만 죽으면 된다. 모든 정예 병력 성벽 근처에 대기. 마신 문두스를 척살해라.”

***

나는 인피면구로 내 외형을 바꿨다.

공중요새 라퓨타.

그 마도공학 궁극의 병기는 ‘절대 방어 결계’ 때문에 외부에서 타격을 입히기 극도로 힘드므로.

무작정 루크레치아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미리 적지에 잠입해 있으려는 거다.

‘지금쯤 엘드리치의 첩자들이 날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겠지.’

탐욕왕 엘드리치.

그의 악랄함은 나 또한 알고 있다.

혹여 내게 화력을 집중할 수 있기에 겸사겸사 몸을 숨긴다.

“하지만 네카르. 검은 고성 엘도라도로 어떻게 들어갈 거에요? 저희 페어리 일족의 소형화 권능도 한계가 있어요.”

페어리 여왕 티타니아가 말한다.

공중요새 라퓨타에 잠입하기 위해선 우선 요새 엘도라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 서부 연합군과 포격전을 벌이느라 비상사태인데 어떻게 잠입할 수 있겠는가?

소형화해서 성벽을 오르다가, 눈먼 화살에 맞으면 즉사일 텐데.

"괜찮습니다. 이 녀석이 있으니까요."

-우움!

이에 노움이 두 주먹 불끈 쥔다.

자신이 땅굴을 만들 테니 따라오라는 모습.

쿠고고고고!

빠른 속도로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시스템 창까지 있으니 식은 죽 먹기군.’

-lv25 자이언트 웜.

물론 엘드리치는 땅 속에서 진동을 느끼는 ‘자이언트 웜’을 풀어서 지하 땅굴을 대비했지만.

페어리의 권능 ‘소형화’를 사용한 만큼, 요리조리 피해서 도착한 거다.

‘도착했군.’

밖으로 나오니 엘도라도 내부가 보인다.

쿠과과광-!

성안으로 들어오니 더 선명하게 들리는 포격음.

눈감고 귀를 기울이니 저 멀리서 전투하는 소리가 들린다.

“······크악! 인간 군대가 엘드리치 폐하께 반역을 저지른다!”

“모든 흑기사는 성벽을 지켜라! 흑마법사는 맞대응해라!”

아무리 경비가 삼엄한 곳도 하수구만큼은 널널했으며, 더구나 병력이 열세다 보니 근처에 아무도 없었다.

‘성동격서가 제대로 성공했군.’

나는 하수구에서 빠져나와서 가까운 하인 하나를 죽이고,

인피면구로 겉모습을 따라 한 채 내부로 잠입한다.

“네카르. 우리는 이제 무얼 하지?”

함께 잠입한 라이칸 슬로프가 심각하게 말했다.

소형화된 웨어울프 부족과 페어리들도 슬슬 경직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하기야 지금 우리는 탐욕왕 엘드리치가 있는 핵심 본거지로 들어온 것이니.

아직 들키지 않았을 뿐, 사자 아가리 속에 들어온 상황.

긴장할 수밖에 없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들이 위험하진 않을 거니까.”

나는 그런 그들을 안심시킨다.

애초에 지금부터 할 일은 말 그대로 정신 나간 짓.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이 안에는 ‘지옥의 용광로’가 있다. 그곳에서 악마와 피조물을 불태워서 공중요새 라퓨타를 움직일 마력을 얻지.”

지옥의 용광로.

이는 공중요새 라퓨타 속 기계 장치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대악마’이기도 하다.

그 공간 자체에 지옥 불의 대악마가 봉인됐으니.

엘드리치가 막 마계의 군주에 올랐을 때, 자신에게 끝까지 대항한 대악마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대악마의 육체를 녹여 없애버리고 영혼만 기계 장치로 봉인한 거다.

“그 기계 장치를 망가뜨린다. 두 번 다시 타오를 수 없을 만큼.”

“······!”

내 말에 웨어울프와 페어리 모두가 경악하여 입을 쩍 벌린다.

말은 쉽다.

공중요새 라퓨타를 가동할 핵심 동력인 ‘마정석’을 탈취했으니, 예비 동력인 지옥의 용광로까지 파괴한다.

그렇게 되면 공중요새 라퓨타가 움직일 동력이 없어서, 대륙 서부를 멸망시킬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문제는 상대가 그냥 악마도 아닌, 대악마라는 점이지.’

대악마.

그간 내가 숱한 악마와 혈투를 벌였지만, 이번 녀석은 말 그대로 격이 다른 녀석이다.

한 끗 차이로 군주가 되지 못한 존재.

탐욕왕 엘드리치가 이토록 지독한 저주를 퍼부어둔 것은 그만큼 상대하기 힘들었다는 증거일 터니.

‘더구나 전투가 길어지면 탐욕왕 엘드리치가 알아차린다. 그거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지.’

심지어 이곳은 적의 핵심 본거지.

탐욕왕 엘드리치와 그의 사령관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

해보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까.

'그러기 위해선 우선 챙겨야 할 물건이 있지.'

나는 검은 고성의 내성으로 들어간다.

탐욕왕 엘드리치가 있는 내성.

마계의 궁전을 그대로 가져온 이 지옥의 궁전에는, 마계 제일 거부라는 '엘드리치의 창고'도 있었으니.

그 창고에는 세상 없는 게 없다.

‘그리고 지옥의 용광로의 불길조차 꺼뜨릴 꽃도 있었고.’

나는 떠올린다.

빙륜화(氷輪花).

마계의 만년설 속에서 피어나는 얼음꽃으로,

마나를 불어넣는 순간, 폭발하여 주위를 절대영도로 얼려버리는 무시무시한 꽃들이었으니.

그 꽃들을 활용하기 위해 페어리와 웨어울프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으니.

“마계의 창고로 잠입한다.”

인피면구로 아무 흑마법사의 얼굴로 변장한 후,

당당히 적지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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