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92화 (92/140)

92. 드래곤 블러드 (2)

쨍그랑, 와장창창!

폭왕 라이칸 슬로프는 긴 손톱을 꺼내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각 실험실로 박차고 날아들어서 불길한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를 부수고, 흑마법사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죽이는 거다.

물론 적들이라고 가만히 있진 않았다.

“이런 미친. 웨어울프 따위가! 어느 개자식이 웨어울프를 마취도 안 하고 풀어준 거야!”

“비상 구슬을 울려라! 지원군을 불러! 컥.”

땡, 땡, 땡, 땡!

흑마법사들은 라이칸을 보고 기겁하며 흑마법 영창을 시작한다.

그러나 라이칸은 아르카나 대륙의 사왕 중 하나.

더구나 쾌속으로 승부하는 근접 전사다.

멀리서 폭격하는 데 특화된 마법사들이 같은 방에 있다. 따라서 영창을 반도 외우기 전에 전부 처형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라이칸은 까드득, 송곳니를 씹는다.

거대한 유리병 속에 갇힌 이종족들.

인간, 엘프, 드워프, 고블린, 웨어울프 등 다양한 종족이 보관돼 있다.

라이칸은 네카르가 말한 대로 유리병만 깨뜨리고 안에 갇혀 있던 이종족들을 꺼낸다.

다행히 생명 보존이 잘 돼 있었는지 곧장 깨어난다.

“용사님······?”

깨어난 이종족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아직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 되는지 멍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동족끼리 끌어안기도 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움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그건 내가 아니다.”

하지만 라이칸은 일일이 대답해줄 틈이 없었다.

“페어리. 이종족들을 소형화해서 따라와라. 여기서 탈출하려면 최대한 흔적을 줄여야 한다!”

“아, 알겠어요!”

그는 네카르에게 배운 대로 페어리들에게 풀려난 이종족들을 소형화해서 데려오게 하고, 또 다른 건물로 전진했다.

“······비상사태. 마리 실험팀장님께서 돌아가셨다!”

“폭왕 라이칸 슬로프! 탈출했던 죄수가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흑기사와 흑마법사가 본격적으로 쳐들어왔지만 상관없었다.

비록 정면승부는 아니었지만 그는 이미 탐욕왕 엘드리치가 친히 지휘하는 어둠의 군대로부터 이틀 가까이 버틴 적이 있으므로.

엘드리치 같은 거악이 없는 곳에서라면 그 이상 버틸 수 있었다.

다만 마음 한편이 피어오르는 불안.

‘만약 네카르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자신들 또한 필히 죽음에 도달하게 될 터이니.

네카르가 자신에 버금갈 만한 초강자라는 건 알고 있지만,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은 탐욕왕 엘드리치의 근거지 중 하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니.

그의 무사 안위를 걱정한다.

‘네카르, 부디 살아서 돌아와라. 네가 살아야 우리 또한 사는 것이니······!’

***

나는 흰 가운을 입고 대피로를 향해 달린다.

다행히 아직 눈에 띄지는 않았다.

라이칸이 건물 내부에서 대학살극을 벌이고 있는 만큼, 대피하고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까.

같은 흑마법사인 척 함께 대피로로 달리는 것이다.

‘라이칸 슬로프가 잘 해주고 있군.’

나는 제대로 검문하지 않는 흑기사를 보며 속으로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이는 원체 많은 수많은 흑마법사가 일제히 대피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니까.

“폭왕 라이칸 슬로프라.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다. 어지간한 놈 폭동이라면 금세 제압했을 테니.”

"엘드리치 폐하께서 한번 풀어주셨다고 하셨나요? 그때 길을 외우고 찾아온 듯하군요."

다만 적의 근거지답게 대부분 정예들.

곧장 사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적과 직접 충돌하지 마라! 멀리서 일대 공간을 폭격해서 제압한다!”

“집단 마법 ‘끓어오르는 화염’을 준비해라. 라이칸이 있는 건물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려!”

고오오오!

극단적인 방법으로 타개한다.

멀리 떨어져서 안전을 보장받는 만큼, 건물들을 통째로 날려 버릴 생각을 한다.

안에 있는 실험체와 제 부하들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모양.

‘······이것만큼은 아무리 폭왕 라이칸이라도 위험하겠군.’

나는 집단 흑마법 ‘끓어오르는 화염’을 알고 있기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끓어오르는 화염.

작은 강조차 증발시키는 흑마법 5써클 재앙류 마법 중 하나.

그 집단 마법을 막기 위해 천천히 다가간다.

그러자 창칼로 내 앞을 막아서는 흑기사들.

“멈춰라! 이곳은 특별 허가를 받은 마법사만 다가올 수 있다.”

“너는 어느 소속이냐?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도 집단 마법을 하는 동안, 흑마법사들이 취약하기에 호위를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대비책이 있기에 거리낌 없이 창칼을 치우고 다가간다.

“내가 내 연구실 가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

“아, ‘클라우스’님······.”

내가 인피면구를 바꾸고 다가가자 일제히 경례하는 흑기사들.

흑마도사 클라우스.

지금 내가 분장한 중년 사내는 탐욕왕 엘드리치의 직속 부하 중 하나로,

서부 흑마법사 전체를 총괄하는 최고위 사령관 중 하나다.

이곳 타이탄 영지 일대의 총 책임자이기도 하다.

“비켜라. 키메라 자료가 온전한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클라우스님이시라도 마력 조회는 하셔야······.”

“······.”

흑기사가 정예인지 여전히 길을 막는다.

다만 나는 마력 조회를 하는 순간 들키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고 읊조린다.

"감히 내 몸에 손을 대겠다고?"

【드래곤 피어 lv2.】

거기에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는다. 적반하장으로 흑기사들을 노려본다.

무거운 침묵이 돈다.

이에 알아서 난리 난 흑기사들.

‘야, 미쳤냐? 마력 조회를 할 사람이 따로 있지 어떻게 감히 클라우스님을 조회해?’

‘하지만 원칙상 엘드리치 폐하시라도 검문은 해야······.’

‘병신 같은 새끼야. 클라우스님께서 화나셨잖아! 나중에 우릴 키메라 실험체로 써버리시면 네가 책임질 거야?’

‘······!’

흑마도사 클라우스.

그는 제 친위대라도 실패하거나 거리낌 있을 때, 곧장 키메라 재료로 써버리는 악마 같은 인간이었으니.

같은 편인 흑기사라도 두려움에 질리는 것이다.

“실례했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덕분에 프리패스한다.

‘클라우스가 부하들의 신임을 못 얻었는 놈이라 다행이군.’

나는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물론 혹여 들킬까봐 겉으로는 흑기사를 노려보는 연기를 한참 한 후, 안으로 들어간다.

“집단 마법은 잘 되고 있나?”

“무, 물론입니다! 하하. 마침 대피한 흑마법사가 50명이나 모였으니까요.”

“하여간 꼴에 사왕이라고 지가 뭐가 된 줄 안다니까요. 아무리 개인이 강해봤자, 클라우스님 군단한테는 안 되는 걸 아직도 몰라?”

현재 나는 이곳 최고 책임자 클라우스를 연기하는 만큼, 흑마법사들이 바로 브리핑한다.

심지어 어떤 흑마법사는 내게 다가와서 아부한다.

'눈치 없는 것들.'

물론 지금 클라우스는 내가 분장한 것이기에 우스울 뿐이지만.

제 죽을 것을 모르고 아양 떠는 파리들을 비웃으며 천천히 가이탄 호수 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가이탄 호수에 거의 도착했을 때, 본색을 드러낸다.

“너희가 아직도 눈치 못 챈 걸 보아하니, 가능할 것 같군.”

“예?”

내 말에 멍청한 표정을 짓는 흑마법사들.

어떤 의미로 보면 순수한 의문.

【아쿠아 스톰 lv1.】

콰아아아아!

그러나 그 대답은 잔혹했다.

내 명령 한 번에 터져 나오는 거대한 빛.

그와 동시에 가이탄 호수에 있던 물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집단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모여 있던 흑마법사들을 순식간에 포위한다.

이후 뜨겁게 타오르는 물의 기둥.

4층 건물만 한 크기로 넓게 회오리친다.

햇빛에 무지개가 피어나며 깨끗이 소멸시킨다.

-대량 학살! 당신은 흑마법을 익힌 마법사 50명을 일격에 소멸시켰습니다!

-아쿠아 스톰 스킬 레벨이 lv1이 lv2로 올랐습니다!

효과가 확실한 아쿠아 스톰.

과연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시그니쳐 마법이다.

광역으로 쓸어버리는 재앙류 마법으로, 물이 있는 곳에서 이보다 강력한 마법은 흔치 않았다.

“아, 아쿠아 스톰. 이 마법은!”

“아룡기사 네카르! 교단 최우선 적이 나타났다! 클라우스님으로 변장했다!”

물론 적들이 아쿠아 스톰을 알아보고 곧장 덤벼들었지만.

【바람의 길 lv4.】

나는 이미 가이탄 호수 바로 앞까지 달려온 만큼 상관없다.

오히려 라이칸 슬로프에게 갈 부담이 줄어들 테니 바라던 바다.

풍덩.

‘······더럽게 넓군.’

나는 가이탄 호수에 뛰어들어서, 그 넓이를 실감한다.

가이탄 호수.

드래곤 블러드와 마정석. 무려 마스터급 보물의 두 개의 마지막 조각이 있는 곳.

호수라기보다는 작은 바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곳.

타이탄 산맥 어느 곳에서도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분지였다.

마치 백두산 천지처럼 호수 속 도시를 만들어도 될 크기.

차이점이라면 공장 폐수라도 되는지 속이 하나도 들여다보이지 않는 검은 호수였다는 점이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한다. 내가 늦어질 수록 라이칸 슬로프와 탈출한 이종족들에게 큰 피해가 간다.'

-크롸아아!

속전속결.

아무리 내 이득이 중요한 나라도,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은 전력을 다한다.

소형화했던 물용이를 잠깐 원상복구해서 타고, 초고속으로 내려간다.

‘가이탄 호수 밑바닥에는 비밀 실험실이 있었지.’

나는 어두운 수중을 잠영하며 마정석 조각이 끌어당기는 쪽으로 향한다.

호수 밑바닥에 뾰족한 바위가 가득한 지형. 그곳에 숨겨진 비정상적으로 뚫린 동굴.

그곳으로 들어간다.

첨벙.

살아있는 자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연구실.

나는 최종 목적지에 온 후, 옷에 묻은 물기를 턴다.

“노움. 아까 말한 것 잊지 않았지?”

-움! 움!

또한 노움을 시켜 미리 부탁한 일을 맡긴다.

이후 나는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야, 과연 아룡기사군. 설마 내 모습을 흉내 내서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실험실 안에서 중년 사내 목소리가 들렸다.

무시하고 실험실 안으로 들어간다.

현재 나와 똑같이 생긴 깡 마른 중년 사내가 의자에 앉아있다.

"나는 분명 외부에 얼굴을 알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내 얼굴을 따라서 분장한 거지?"

순수한 의문.

하기야 저쪽으로선 내가 원작 <별들의 전쟁2>에 나오는 모든 악역을 죽였다는 걸 모르니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 그딴 게 중요하냐?”

나는 인피 면구를 해제하면서, 눈을 부라린다.

동굴 속 실험체로 시선을 흘린다.

흑마도사 클라우스의 비밀 실험실.

이곳에는 인륜을 저버리다 못해, 천륜에 어긋나는 심각한 실험들이 자행되고 있으니.

키메라.

이곳 거대 유리 속에는 사자의 머리에 전갈의 꼬리를 가진 괴물, 오크 몸에 와이번 날개를 단 괴물 등.

온갖 기괴한 키메라가 가득했다.

아무리 가치관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이는 아르카나 인들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므로.

벌레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클라우스를 바라본다.

“하기야. 그게 별로 중요하진 않지. 우리 측에도 프레야의 쥐새끼가 있을 테니.”

클라우스는 그런 시선이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내가 침묵하며 붉은 눈의 스태프를 들어 올리자, 계속 말을 잇는다.

“그보다 내가 자네를 너무 고평가했나? 설마 아직도 눈치 못 챌 줄이야.”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실험실 곳곳에서 빛이 번쩍인다. 어둠 속에서 검은 화염들이 날아온다.

【워터 실드 lv5.】

촤아아악.

나는 가이탄 호수 속에 있던 물을 강제로 끌어올려서, 막아낸다.

“널 고평가한 건 나였군.”

-lv??? 흑마도사 클라우스. (복제 인형.)

의자에 앉아 있는 가짜 클라우스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본다.

복제 인형.

저건 흑마법 중에서 시체를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마법이다.

네크로맨시와 비슷하지만, 시전자 본인의 영혼이 잠시 들어가 본체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아직도 인형놀이나 하고 있다니."

-lv45 전투 병기 마리. (복제 인형.)

-lv44 전투 병기 다네브. (복제 인형.)

-lv46 전투 병기 사르트. (복제 인형.)

더구나 어둠 속에도 세 명의 인형을 숨기고 있었다.

아마 저 녀석들이 방금 검은 화염을 날렸겠지.

쓸만한 부하들을 흑마법으로 복제시킨 모양.

쩌저적!

동굴 속 땅이 쩍 갈라진다.

날 포위하던 전투 인형들이 있던 곳이 지진이 난 듯 갈라지며 푹 빠져버린다.

몇몇 인형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탈출하기 전에 쾅 닫아버린다.

흙의 중급 정령 노움.

어지간한 최상급 정령과 버금가는 이 녀석이 내 의지에 따라 실험실 속 땅을 어루만진 것이다.

"······호오?"

이건 진정 예측 못 했는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가짜 클라우스.

“키메라 히드라를 불러내라. 너 따위는 내 상대가 아니니.”

나는 드래곤 아이를 발동하며 그런 클라우스를 노려본다.

물론 반쯤은 허세다.

내가 젊은 나이에 대륙 공인 대마법사라는 5써클에 도달한 건 물론, 두 번째 용의 유산까지 차지한 건 맞지만,

원작 <별들의 전쟁2> 중후반 간부와 악마들 또한 각자 상상을 초월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으니.

"네가 내 본체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실제로 클라우스는 인형이라는 걸 들켰음에도 클클 웃는다.

마치 흥미로운 놀이라도 하듯이.

콰앙.

그 말에 나는 그의 인형을 즉시 날려버린다.

그리고 가까운 실험실 책장 하나를 밀어낸다.

어둠 속에 숨겨진 통로를 발견한다.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흑마도사 클라우스를 사냥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드래곤 블러드가 깃든 오색빛깔 비늘과 마지막 마정석 조각이 있는 곳.

그 어둠으로 들어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