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폭왕 (2)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빛이 가득한 언덕.
나와 라이칸 슬로프는 서로를 노려본다.
스산한 공기를 느낀다. 골바람에 흩날리는 썩은 낙엽.
휘이잉.
고요한 숲. 귓가에 칼바람 소리가 들린다.
라이칸은 상대를 노려보며 허리춤에서 백골의 단검을 뽑는다.
【워터소드 lv4.】
나 또한 손에 물의 검을 고쳐 쥔다. 맹렬하게 물이 회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서로 노려보며 빈틈을 노린다. 서로의 실력을 탐색한다.
다행히 나는 원작 <별들의 전쟁2> 검사를 했을 때, 전투 센스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실제 검술을 어느 정도 익혔으니.
쉬이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일순,
콰아아아앙-!!!
서로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전속력으로 충돌한다. 허공에서 두 검이 교차한다.
검끼리 부딪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굉음이 일어난다.
경악스러운 위력. 충격파에 바닥에 쌓여있던 썩은 낙엽과 죽은 동물 사체가 동시에 공중에 떠오른다.
‘큿!’
파괴력에서 내가 밀리진 않았지만, 추가적인 검투에서 내가 밀린다.
당연하지만 내가 아무리 검술을 익혀봤자 기초 교양 수준.
무려 사왕이라고 불리는 자와 견줄 수 있는 자가 아니었으니.
워터 실드를 추가 생성해 공격을 흘려도 위태롭다.
‘하지만 내 주특기가 검술은 아니지······!’
【에어 블레스트 lv2.】
마법사의 주특기는 광역 마법.
내 등뒤에 녹색 마법진을 펼친다. 일직선으로 초강풍이 돌진해 모든 것을 관통한다.
즉발로 바람의 상급 마법의 파괴력이 작렬한다.
“······네놈! 무슨 영창 속도가!”
쏴아아, 콰아아아아!
물론 라이칸 슬로프는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피해버렸다. 이형환위로 모두 피해버리고 다시 덤벼든다.
근접전으로 날 몰아붙인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게 아니거든!’
하지만 나는 검술에서 밀리는 순간, 연거푸 마법을 퍼붓는다. 적을 강제로 떼어낸다.
팽팽한 구도를 유지한다. 용호상박. 마치 용과 맹수가 서로를 물어뜯는 듯 했다.
“헉.”
순간,
주위에 어린 웨어울프들이 숨을 헉 들이마신다.
어느새 우리 곁에 웨어울프들이 가득하다.
벤과 바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성체 웨어울프들.
손에 성수 2병을 들고 있는걸 보아 내가 두고 간 줄 알고 서둘러 찾아오다가 전투 현장을 발견한 모양이다.
“크오오!”
팽팽한 구도에서 라이칸이 먼저 승부수를 던진다.
동족들을 보고 크게 울부짖는다. 무리해서라도 전투를 빠르게 끝내려는 듯 한 모습. 혹여 동족이 휘말릴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백골의 단검이 번뜩이더니, 라이칸의 신형이 수십 개로 쪼개진다. 그리고 그 신형 하나하나가 동시에 내게 역동적으로 날아든다.
필사의 각오로 덤벼든다.
‘드디어 이걸 쓰는군······!’
나는 그 엄청난 속도에 식은땀을 흘린다. 그와 동시에 비릿한 미소를 띤다.
이형환위를 극도로 활용하는 필살기.
저것을 지금까지 기다려왔으므로.
【중력 제어 lv2.】
고오오!
무겁게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그와 동시에 일대를 내리찍는 무형의 힘.
중력 마법.
수십 개의 라이칸 인형(人形)이 동시에 흙에 처박힌다.
라이칸은 당장 흙에서 튀어나오려고 했으나.
“노움!”
-우우움!
쿠과과과!
흙의 정령 노움이 그를 전력으로 붙잡는다.
단 1초. 그러나 초강자들의 싸움에선 너무나 긴 시간.
【기간테스의 힘 lv1.】
지이이이잉.
그 틈에 아공간 게이트를 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강의 일격.
그 안에서 거인의 푸른 손이 튀어나온다. 거대 몬스터 사체가 손톱만 한 크기로 보이는 주먹.
나는 허공에 주먹을 내지른다. 그와 똑같은 동작으로 거인의 푸른 손이 날아든다.
“······안 돼!”
그때, 어린 웨어울프 바리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바리에겐 우리 모두 소중한 영웅임으로.
자신이 어떻게 말려보기 위해 달려 드는 것이다.
“바리! 위험해!”
그러나 초강자들끼리의 싸움에 어린 웨어울프 하나 낀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저 함께 휩쓸릴 뿐.
다른 웨어울프들이 이를 깨닫고 비명을 지른다. 그제야 바리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살기에 공포에 질려버릴 때,
‘이런!’
【아쿠아 부스터 lv2.】
촤아아악.
나는 기간테스의 힘을 중지하고, 사방에 흩뿌려진 물을 집결한다.
그리고 그 물은 서로 충돌해 반발력을 만든다.
어차피 라이칸은 협력의 대상이므로. 부상을 줄인다.
라이칸과 바리가 그 반발력에 한쪽으로 날아간다. 라이칸이 낙법하며 바리를 부드럽게 감싼다.
나 또한 반대쪽으로 날아가 차분히 착지한다.
마치 나와 데이아의 충돌을 중재했던 과거의 엡실론처럼.
두 사람의 충돌을 완벽히 제어한다.
“······.”
모두가 침묵한다. 나는 라이칸을 바라보고, 라이칸은 어린 웨어울프를 죽이지 않은 날 바라본다.
이 와중에 크게 혼날까 봐 힉, 신음을 흘린 바리.
하지만 다행히 소강상태가 됐다.
***
‘큰일 날 뻔했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대로는 누구 하나가 크게 다칠 것 같았으니까.
폭왕 라이칸 슬로프는 아무리 5써클에 도달한 나라도, 전력을 다해야 했다.
만약 시스템의 힘과 용의 유산이 없었다면 필히 사망했으리라.
‘저 꼬맹이가 나서줘서 다행이었다.’
라이칸 슬로프가 오해를 풀 시간을 주지 않은 상황이니까.
저 녀석 덕분에 무사히 전투가 소강된 거다. 오히려 좋았다.
“······왜 우릴 죽이지 않은 거지?”
라이칸 슬로프가 내게 묻는다.
품에 안은 어린 웨어울프를 내려놓고서.
본능적으로 내가 웨어울프를 아끼고 있음을 직감한 거다.
“내겐 널 죽일 이유가 없다.”
나는 담담하게 진실을 전했다.
사실이다.
라이칸은 엘드리치에게 강한 원한이 있는 초강자. 앞으로 아군이 될 수 있는 자이니.
단지 말할 틈 없이 전투에 휘말렸을 뿐이다.
눈치보던 어린 웨어울프 바리가 속사포로 말했다.
“라이칸님! 저분께서는 광랑병을 나을 수 있는 태양의 돌을 선물해주셨어요! 절대 나쁜 분이 아니에요!”
“······!”
그 말에 매우 놀랐는지 짐승처럼 갈라진 동공이 풀리는 라이칸.
그제야 이곳에 함께 온 동족들을 살핀다.
광랑병에 걸려서 골골 됐던 모습이 온데간데없는 모습.
“일족의 병이, 모두 치유됐다고······?”
사정을 전해 들은 라이칸은 믿기지 않는 듯 되묻는다.
웨어울프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밤, 네일 경께서 치유해주셨습니다.”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제야 멍한 표정으로 시선을 나에게 옮기는 라이칸.
“정말로, 더 이상 달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냐?”
한참 멍하게 날 바라본다.
단단한 몸이 부르르 떨린다. 마음의 병이 나았는지 안색이 한결 밝아진다.
쿵.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양쪽 무릎을 꿇는다.
“······내 일족을 구해준 은인을 죽이려 했다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심지어 머리까지 숙이는 라이칸. 마치 목을 베라는 태도다.
나는 다가가서 일으켜준다.
“그럴 필요 없다. 상황이 절박한 건 익히 들었으니.”
나는 알고 있다.
웨어울프의 진정한 힘은 ‘야수화’에서 시작된다는 걸.
라이칸 슬로프는 백골의 단검은 꺼내 들었지만, 야수화까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의 패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기에.
그를 용서한다.
"손을 내밀어라. 사슬을 풀어줄 테니."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기에 성수와 일전 페어리에게 받은 마법 가루를 꺼낸다. 강화에 효과가 뛰어난 재료.
치이이익······!
라이칸 슬로프를 묶은 아다만티움 족쇄에 붓는다. 그러자 격렬한 스파크가 일어난다. 라이칸은 고통스럽지만 신음을 내지 않는다.
그 결과, 아다만티움이 풀린다. 깨진 것이 아니다. 개조된 것이다. 크기가 내 마음대로.
물론 그조차 엄청난 것이다.
라이칸은 자유를 찾은 제 손목을 어루만진다.
“······고맙다. 오늘 일은 내 심장에 새기마. 훗날 반드시 갚지.”
그러자 라이칸은 손톱으로 제 가슴에 내 이름을 새긴다.
각골난망(刻骨難忘).
웨어울프는 은원 관계를 신체에 새겨 잊지 않는 풍습이 있으므로.
오늘 일을 잊지 않기 위해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갚아줬으면 하는데.”
다만 나는 곧장 ‘드래곤 블러드’가 있는 가이탄 호수로 가야 하므로 부탁한다.
“무슨 일이 있는가?”
“탐욕왕 엘드리치. 그자에게 고통받는 건 웨어울프만이 아니다.”
하지만 웨어울프는 속물을 대단히 혐오하는 종족.
그들의 가치관에 맞게 대의를 먼저 말한다.
“너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대륙 서부의 원한은 끝나지 않고 있음을.”
따라서 진실을 말해준다.
탐욕왕 엘드리치.
그자는 자신의 돈벌이를 위하여 온갖 이종족을 납치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타락 영주들을 지원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있음을.
“따라서 탐욕왕 엘드리치를 없애지 않으면 서부는 영원히 분쟁으로 가득한 지역으로 남을 것이다.”
“······.”
“나는 대륙 서부의 만악의 근원을 없애고자 한다. 네가 도와줬으면 한다.”
나는 라이칸의 눈을 마주보며 말한다.
라이칸 또한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한다.
“마땅히 알고 있는 방법이 있나보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타이탄 영지. 그곳에 엘드리치가 인체 실험하는 흑마법 실험실이 있다. 타락 영주들을 지원하는 흑마법 재료들도 가득하다.”
그곳을 부순다.
더구나 그곳에는 온갖 이종족 노예가 있으니까.
그간 밀렵꾼에게 붙잡힌 웨어울프 일족도 있다는 사실도 귀띔해준다.
그 말에 고민이 확신이 서는 라이칸 슬로프.
“내가 부탁할 일이군.”
나에게 한쪽 손을 내민다. 나 또한 그의 손을 맞잡는다. 두텁게 악수한다.
엘드리치의 핵심 근거지 중 하나인 가이탄 호수.
그곳에 함께 갈 동료를 얻었다.
***
검은 고성.
황금 고블린 엘드리치는 눈을 감고 순금 침대 위에서 뒤척인다.
마족은 수명이 무한한 존재.
엘프나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잊기 싫은 기억은 절대 잊지 않으므로.
자신이 가장 행복했을 어린 시절.
7살 때까지 살아계신 어머니를 매일 밤 떠올린다.
[······엄마. 죽으면 안 돼······. 하늘 높게 나는 비공정······. 그곳 타서 잃어버린 아빠를 찾기로 했잖아!]
······제기랄.
그런데 오늘은 하필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떠오른다.
기억 속 코흘개 황금 고블린은 단칸방에서 울고 있다.
한겨울 얇디얇은 모포 한 장만 덮고 있는 어머니를 따뜻이 안아드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병든 어머니께 마지막까지 걱정 끼친다.
[엘드리치······. 아버지께선 꼭 돌아오실 거란다······. 엄마가 없어도, 기다릴 수 있지······?]
[엄마, 죽어? 안돼! 내, 내가. 치료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불러올게.]
철없는 녀석.
단칸방 세 들어 사는 주제에 무슨 돈이 있다고 마법사를 데려오냐?
엘드리치가 혀를 차는 동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안 돼······. 오늘은, 그냥 엄마 곁에 있으렴······. 응?]
[싫어! 난 엄마를 절대 안 떠나보낼 거야!]
[엘드, 리치······!]
그렇게 어머니를 두고 집 문을 박차고 나가는 코흘개.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마저 무시해버린다.
[저기요! 돈 좀 빌려주실 분. 어머니께서 아파서 그래요. 제발! 이 빚은 꼭 갚을 테니까······!]
당연하지만 이곳은 시궁창.
마계에서도 빈민들이 가득한 최하급 노동자 수용소다.
치료 마법사를 부르려면 몇 달 치 월급을 써야 한다.
누구도 피 같은 돈을 빌려줄 리 없는 곳.
도로에서 몇 시간 째 구걸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저럴 시간에 차라리 야간작업하는 게 나으련만.
참으로 한심했다.
세상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
그때, 운수 좋게도 다가온 한 호구.
[저기, 이거······. 이번 달 내 봉급인데.]
그때 만난 게 임프 부총관이었다.
최하급 마족 임프답게 덜 떨어지고 사리 분별이 안 돼서 정 많은 놈.
저런 한심한 생각 때문에 머리가 그렇게 좋아도, 지금껏 회수 못 한 돈이 수억 페니였다.
[감사합니다······! 임펫 씨라고요? 꼭 갚을 게요!]
몇 번이나 허리 숙여 감사를 전하고, 치유계 마법사를 찾아 달려간다.
그러나 임펫의 봉급으로도 고용할 돈은 부족했고, 빌고 빌어도 매정하게 쫓겨났다.
이후 홀로 쓸쓸이 돌아온 어린 고블린.
방안은 이미 싸늘했다.
어머니께선 이부자리를 벗어나 책상 앞에 쓰러져 있었다.
유서에 쓰인 것은 ‘장례식 치르지 말고, 돈 아껴쓰렴.’
기억 속 엘드리치가 오열한다.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못 난 놈.
그게 자신이었다.
“······아, 시발. 제기랄!”
제기랄, 제길!
엘드리치는 욕설을 절로 내뱉는다.
또 기분이 잡쳐버렸다. 이는 가장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거늘.
매달 한 번씩은 꼭 꿔버리곤 한다.
망각.
이는 악마는 결코 꿈꿀 수 없는 신의 축복이므로.
드넓은 방으로 나와 전시된 화려한 훈장들을 살핀다.
동메달부터 시작해서 은, 금, 백금, 다이아몬드, 아다만티움 뱃지까지.
용병으로서의 재능을 일깨우며 마계왕까지 오르게 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뭐, 물론 친아버지는 나중에 알아보니 딴 고블린이랑 바람이 나있어서 사지를 찢어 죽였지만.’
한참 옛 생각에 잠긴다.
더 고통스럽게 사지를 한 땀 한 땀 찢어 죽였어야 했는데.
아니지, 고문실에 끌고 가서 회 뜨고, 치료약을 계속 발라서 무한한 고통을 주었어야 했는건데.
홧김에 너무 빨리 죽여버렸다.
'사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
다만 아버지 기억은 빠르게 잊는다.
힘과 무질서의 신 디메토르.
그자가 어머니를 재창조해주기로 했으므로.
프레야 교단을 완전히 멸절시키면 신의 힘으로 완전히 되살려주기로 영혼의 계약을 했으므로.
계약을 이행할 뿐이다.
그때, 통신 구슬이 울린다.
[엘드리치 폐하. 기침하셨습니까?]
“뭔 일이냐?”
통신 상대는 흑마법사 전체를 총괄하는 마도사 ‘클라우스’.
최근 가장 쓸만한 인재 중 하나였다.
[임프 부총관님께서 세 번째 마정석마저 빼앗겨 석고대죄를 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처분하시겠습니까?]
중년의 인간 사내 클라우스는 또 다른 통신을 보여준다.
혹여 자기를 죽일까 봐 엎드려서 덜덜 떨고 있는 임프 부총관.
지난번에 홧김에 마정석을 못 찾으면 지옥 용광로에 쳐넣어버리겠다고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는 모양이다.
“됐다. 하여간 임프들이란 속 좁다니까. 귀찮으니 나가보라고 해라.”
엘드리치는 그렇게 말하고 보석들을 호두알처럼 만지작거린다.
한심한 녀석.
물론 엘드리치는 자신을 외면했던 세상 모든 놈들은 쓸모가 다하면 가차 없이 용광로로 처넣었지만,
저놈만큼은 결코 버린 적 없거늘.
왜 아직도 저러는 지 몰랐다.
[그런데 왜 아직도 임프 부총관을 치우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보다 똑똑하고 실적 좋은 이는 여럿입니다만.]
클라우스는 대놓고 따져 묻는다.
마치 그간 엘드리치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위배되지 않느냐는 듯.
마치 자신을 부총관에 올리라는 듯 탐욕스러운 눈을 빛낸다.
“판단은 내가 한다. 또한, 임프 부총관은 아직 네 상관이다. 주제넘지 말도록.”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보다 마정석은 확실히 지키고 있겠지? 그 녀석이라면 아무리 타이탄 영지라도 쳐들어올지 모른다.”
엘드리치는 한 사내를 떠올리며 말한다.
아룡기사 네카르 폰 크라우드.
분명 특급 이하의 인간으로 분류했거늘.
특특급으로 분류되는 마신 문두스와 검신 카를 폰 프란츠에 버금가는 활약을 하는 놈.
현재 교단의 최우선 적 중 하나다.
[염려 마십시오. 안 그래도 고급 실험체가 부족했는데. 완벽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클라우스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는 이미 타이탄 영지에 가있는 듯 공장 내부를 보여준다.
그 안에는 데힐라칸이 만들었다는 블루 번 시약을 카피한 ‘다크 번’이 담긴 병이 가득 있다. 마도공학품 ‘블랙 실린더’도 쌓여있었고, 흑마법사와 시큐리티 골렘도 가득했다.
고오오.
그리고 호수에 몸을 담그고 있는 거대한 존재를 비춘다. 4층 공장보다 거대한 괴수의 그림자.
머리가 9개 달린 뱀의 괴물.
키메라 ‘히드라’.
흑마법으로 특수 제조한 괴물로서, 아르카나 대륙 대형 상급 몬스터의 장점만 골라서 합성한 대괴물이다.
그 힘은 무려 최상급 몬스터로 분류되는 괴물.
제 아무리 샌드 드레이크라도 감히 당해낼 수 없었으니.
자신 있게 입을 여는 것이다.
“그래, 네놈을 믿어보지. 너는 날 실망시키지 마라.”
따라서 엘드리치는 통신을 끄고, 공중요새 라퓨타를 축조하기 위한 계획을 점검한다.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관에 고이 모셔둔 어머니의 시체를 살핀다.
어머니의 꿈이었던 비공정에 태워드리기 위하여.
프레야 교단을 멸절시키고, 검은 미사를 드려 죽은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하여.
대륙 서부 멸망 계획 ‘블랙 매스’.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
나는 용용이를 타고 대륙 서부 최남단으로 향한다.
가이탄 호수.
타이탄 영지에 있는 그 호수로 가기 위하여.
바람의 길을 타고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뒤에 탄 라이칸은 비행이 아직 적응 안 되는지 날 꽉 붙잡은 채 말했다.
“네카르, 아니, 네일이라고 했나? 그보다 타이탄 영지에 들어갈 계획은 뭐지? 우리 둘이서 정말 가능한 건가?”
아직 의구심이 남는다는 듯 묻는 라이칸.
당연한 질문이다.
나 또한 죽을 생각 전혀 없으니 솔직히 말한다.
“정면 승부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곳에는 흑마법사가 수천 명이나 있으니까.”
그 외에도 엄청난 양의 시큐리티 골렘과 다크 실린더를 쓰는 마도공학자들.
그들을 힘으로 뚫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잠입할 수는 있지.”
나는 씨익 웃으며 말한다.
과거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흑마법사를 플레이해본 적이 있으므로.
편법을 아는 것이다.
“블랙 아지트. 이종족을 납치하는 밀렵꾼으로 변장해서 들어간다.”
나는 전혀 싸울 생각이 없었다.
내겐 레지스탕스에게 자유롭게 체형을 바꿀 수 있는 ‘인피면구’를 받았으니.
이걸 쓰고 체형 자체를 바꿔서 들어갈 생각이었다.
방비가 가득한 적의 본거지로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블랙 아지트의 위치와 암구호를 알고 있을 뿐더러. 돈도 있으니까.’
날 의식해서 더 많은 병력을 모을 텐데 오히려 좋다.
적들이 많다는 건, 신분을 속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
오히려 귀한 손님으로 들어가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고급 아티펙트를 훔칠 생각이었다.
‘다만 문제는 가이탄 호수에 서식하는 키메라 히드라인데······.’
식은땀이 흐른다.
그 녀석만큼은 변장으로도 속일 수 없다.
애초에 마나의 향기로 피아를 식별하는 키메라이니.
아마 최소한의 충돌은 어쩔 수 없을 터.
이것만큼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
‘라이칸이 버텨주는 사이, 드래곤 블러드와 마정석을 챙긴다. 그리고 그 힘으로 탈출해야겠군.’
마정석 4개를 모두 모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으니.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닥쳐올 결전을 예감한다.
피가 끓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