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폭왕 (1)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큰 바위 부족 족장 베르무스. 이번 일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lv41 웨어울프 족장 베르무스. (나약화.)
현재 웨어울프 족장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중년 여인 베르무스였다.
그녀는 나와 함께 온 십인대장 바르셀에게 사정을 전해 듣고 곧장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울지 않으려는지 눈가는 촉촉했지만,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가 꽃피어있었다.
다른 웨어울프들도 마찬가지. 특히 벤을 비롯한 어린 웨어울프는 날 정말 영웅보듯이 눈망울을 반짝인다. 마치 선망하는 듯한 눈빛.
웨어울프 일족의 왕 라이칸 슬로프를 바라보는 듯한 눈치다.
하기야 이들은 내가 정말 아무런 사욕 없이 나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
‘웨어울프 전사들. 앞으로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잘 됐군.’
나는 일이 잘 풀렸음을 느낀다.
엘드리치의 목적은 공중요새 라퓨타의 출격.
대륙 서부를 멸망시키고, 중앙 여명의 궁에 있는 옥좌를 차지하는 것.
서부에 사는 웨어울프 또한 함께 싸울 수밖에 없으니. 그들의 호감을 사는 건 꽤 든든했다.
다만 상대는 내 흑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 빚은 보답하지 안 되는 일. 저희 일족의 최고 보물인 ‘백골(白骨)’을 드리지요.”
백골이라는 말에 일순 굴속 모든 웨어울프들이 흠칫, 놀란다.
그러나 이내 내게 적합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족장이 가져온 흰 뼈를 감사히 받는다. 다리뼈로 보이는 긴 뼈에는 푸른 마나가 넘실거린다.
‘감정’
[이름 : 백골 (SUPER RARE.).]
[설명 : 초대 웨어울프의 왕 베어울프가 죽인 괴수의 뼈. 이 뼈에는 깃든 강력한 마나는, 그가 죽인 괴수가 얼마나 강대했는지 증명한다.]
[효과 : 무구로 제작하면 효과가 매우 뛰어날 듯 싶다.]
* 역대 백골의 소유자 : 1) 베어울프. 2) 라이칸 슬로프. 3) 네카르 폰 크라우드.
백골은 완제품이 아니라, 재료였다.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타락한 웨어울프들을 전부 처치하면 얻을 수 있는, 우르타 영지에 있는 최고급 보물.
‘하지만 근접 무기 재료였지.’
물론 마법사인 내게 별로 쓸만한 보구는 아니다.
‘나중에 폭왕 라이칸 슬로프를 만날 때 줘야겠군.’
이미 태양의 돌까지 구한 만큼, 차후 그를 아군으로 포섭할 생각이니까.
타고난 전사로서, 자존심 강한 그에게 선물하여 호감을 살 생각이었다.
단지 그렇게만 생각할 때,
털썩.
웨어울프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는다.
광랑병을 앓던 웨어울프도, 장로 웨어울프도, 족장 베르무스 또한 한쪽 무릎을 꿇는다.
갑자기 이변이 일어난다.
“백골의 주인을 뵙습니다.”
“······!”
마치 웨어울프의 왕 라이칸 슬로프를 대하는 듯한 태도.
다시 보니 족장 베르무스조차 백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백골은 상징성이 강한 보물인 모양이다.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한 게 아니었다만.”
나 또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족장에게 예를 취한다.
사실 이런 대접 받으려고 한 건 맞았다.
단지 원작에서는 단순한 고급 아티펙트로만 사용됐기에 예상을 못 했을 뿐.
“그보다 마정석. 그 사악한 돌은 어디 있지?”
웨어울프들을 완전히 포섭한 만큼 곧장 최종 목표로 향한다.
먼 길 온 이유가 바로 마정석이니.
“앗! 예. 저희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십인대장 바르셀과 베오가 앞장선다. 매우 기뻐하며 반기는 모양.
하기야 마정석 또한 웨어울프 일족을 괴롭혔던 가장 큰 위협이었으니.
‘더구나 표정을 보아하니 속세를 초월한 대마법사로서 순수한 선의를 베푼다고 착각한 모양이군.’
나는 굳이 오해를 정정하진 않고 따라간다.
공중요새 라퓨타의 핵심 동력을 막기 위해서.
웨어울프들의 안내에 따라 우트라 숲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서서히 보이는 검은 숲.
일대 산 하나가 흑백화처럼 오로지 검게 물든 숲이 보인다.
-lv31 자이언트 베어 (타락화.)
-lv34 미노타우로스 (타락화.)
.
.
그리고 어둠의 숲에는 대형 몬스터들도 수없이 보였다.
하나하나가 산맥의 최종 보스로 군림할 수 있는 고위급 몬스터들.
그들이 사이좋게 한자리에 모여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도록.”
-크오오!
나는 혼자 다녀오기로 한다.
데려온 용용이를 꺼낸다. 그와 동시에 소형화 권능을 취소한다.
그러자 급속도로 원래 크기로 돌아오는 용용이. 자이언트 베어와 미노타우로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덩치로 강림한다.
-크아아아!
오랜만에 본체로 돌아오자 피가 끓는지 산맥에 쩌렁쩌렁한 메아리가 치도록 포효한다.
“······!”
“드, 드레이크?”
주춤,
웨어울프들은 갑작스러운 용용이의 등장에 한 걸음 물러난다. 승산이 없다는 걸 느꼈는지 침을 꼴깍 삼킨다.
그러나 날 두고 달아나진 않는다.
펄럭.
그때, 나는 용용이의 등에 붙은 안장으로 올라타며 말했다.
“마정석을 정화하고 오지.”
“저, 저희도 돕겠습니다!”
“방해된다. 너희가 다칠 뿐.”
그리고 하늘을 날아서 어둠의 숲 하늘을 난다.
어차피 마정석은 성스러운 힘으로만 정화할 수 있으니.
나 홀로 날아간다.
***
폭왕 라이칸 슬로프는 오직 직진한다.
마력 탐지기는 마정석의 위치를 점으로 포착해줄 뿐,
지형과 장애물, 심지어 어떤 적이 있어도 돌아갈 길을 안내해주지 않지만.
사왕(四王) 중 한 명인 라이칸 슬로프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롸아!
한참 높은 언덕 위에서 자이언트 고질라가 가슴 북을 친다. 그리고 언덕의 장점을 활용해 커다란 바위를 라이칸 슬로프에게 겨눈다.
쫘아악.
-그어어······?
물론 라이칸 슬로프는 그 전에 등 뒤에 나타난다.
자이언트 고질라는 허무하게 제 가슴을 살펴보더니, 쿵 커다란 바위를 떨어뜨린다.
라이칸 슬로프는 고질라의 시체를 밟으며 달린다.
우와아아아-!!
한참 달리니 이번엔 인간들이 전쟁하는 전장이 보인다.
인간들은 라이칸 슬로프도 아는 깃발을 들고 있다.
우트라 영지와 페트라 영지의 깃발.
“사악한 페트라 영지민 새끼들을 죽여라!”
“우리 은광을 빼앗아간 우트라 영지 놈들을 죽여라! 죽은 전우들의 복수를 하자!”
웨어울프 굴과 매우 가까운 영지들의 인간들이 파도가 얽히고설키듯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너무 복잡하게 얽히고 함성을 지르나, 피아 구분이 안 될 정도.
처음엔 은광을 가지고 분쟁을 벌였으나, 이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모습이다.
치잉.
이에 라이칸 슬로프는 여전히 속도를 유지하며 그 전장으로 달린다.
단지 허리춤에 숨겨둔 ‘백골로 만든 단검’을 뽑아들 뿐.
번쩍.
쩌저저저적-!!!
그와 동시에 동시에 수십 명씩 쓰러지는 인간들. 우트라 병사고, 페트라 병사고 구분하지 않고 썰어버린다.
통제가 안 되는 난장판인 전황이 순간 멈춘다.
모두가 공포에 질린다.
“포, 폭왕 라이칸 슬로프다!”
“사, 사왕 라이칸! 웨어울프의 왕이 돌아왔다! 또 인간을 습격하러 왔다!”
“······.”
그리고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는 병사들.
라이칸은 갈라진 길을 따라 계속 달린다.
‘마음이 평화로운 자가 없군······.’
라이칸 슬로프는 속으로 생각했다.
웨어울프는 동족을 대단히 아끼는 종족.
혹여 동족이 다칠까 봐, 강한 힘을 가지고도 전쟁을 극도로 기피하는 성격이니까.
남들과 악감정을 쌓고, 호전적으로 나서는 이들을 가여이 여긴다.
‘······하기야 지금의 나 또한 마찬가지인가.’
다만 입맛이 썼다.
지금 그가 남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니까.
“아룡기사 네카르. 동부와 북부를 구원한 자라고.”
라이칸은 본래 웨어울프의 굴이 있었던 검은 숲에 든다.
엘드리치가 준 파일을 읽는다.
엘드리치의 시점에서 쓰여진 파일인 만큼 대단히 공격적으로 쓰여있지만, 라이칸이 이를 못 알아볼 이는 아니다.
네카르 폰 크라우드.
동부와 북부를 악의 교단으로부터 구원했으며, 대륙의 종말을 무려 두 번이나 막아낸 자.
홀로 가시밭길을 자처하는 인류의 영웅이다.
본래라면 응원하고 함께 해야 했겠지만······.
지금은 제 명예와 목숨보다 중요한 일족이 광랑병에 걸려있으니.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고오오.
이 숲은 여전히 검게 물들어 있다. 마치 라이칸의 멍든 마음처럼.
마력 탐지기가 붉은빛을 번뜩인다. 삐삐 소리까지 울린다.
“찾았다.”
그리고 라이칸은 황금빛 머리카락에 깊은 푸른 눈을 가진 사내를 발견한다.
숲 전체를 검게 물들이던 사악한 돌.
그 돌을 들고 서 있다.
주위에는 수많은 몬스터 사체가 가득하다.
물의 마법에 당했는지 바닥이 홍수 난 듯 흥건하다. 재앙류 마법을 시전했는지 땅이 지진이 나고, 흙이 사방으로 튀어있다.
라이칸은 동공이 세로로 갈라진다.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
“끝났다.”
고오오.
나는 용용이를 타고 곧장 웨어울프의 굴로 날아가서, 마정석을 찾았다.
이후 아가타의 성배로 성수를 무한히 퍼부으면서 정화했다.
일전 환상의 숲 테레이아에서 한번 해봤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마정석을 건드리자 사방에서 필드 몬스터 떼가 몰려온 게 힘들었을 뿐.
-마정석을 정화하셨습니다! 주위로 발산하던 사악한 힘이 멎어 듭니다!
-마정석 조각을 총 3개 모으셨습니다! (현재 3/4.)
* 마지막 마정석 조각은 ‘가이탄 호수’에 보관돼 있습니다!
세 번째 마정석 조각도 무사히 정화했다.
앞으로 남은 마정석 조각은 단 하나뿐이다.
“······문제는 ‘가이탄 호수’라는 건데.”
나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륙 서부 가이탄 호수.
이곳은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대단히 악명 높은 곳이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다.
“탐욕왕 엘드리치의 핵심 근거지 중 하나인 ‘타이탄 영지’에 있는 호수니까.”
타이탄 영지.
엘드리치의 핵심 근거지 중 ‘키메라 제작소’가 숨겨진 영지.
흑마법사들의 비밀 창고가 가득 쌓인 곳이다. 보안이 특히 강력한 곳 중 하나.
‘이곳에 마정석이 있다는 건 엘드리치의 하수인 중 하나가 찾아서 보관 중이라는 뜻이겠지.’
적들 또한 놀고 있지 않았을 터이니.
내가 아무리 빠르게 움직였어도 하나는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물론 강탈하면 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터.
일이 매우 꼬여버렸다.
더구나 포기할 수도 없다.
‘가이탄 호수. 그곳은 세 번째 용의 유산인 ‘드래곤 블러드’의 조각이 있는 곳이니까.’
-다음 용의 유산 ‘ㄷ. 드래곤 블러드’는 대륙 서부 ‘가이탄 호수’에 있습니다.
나는 먼 옛날에 나타났던 용의 유산 시스템 창을 살핀다.
오색빛깔 비늘의 마지막 조각.
그 또한 가이탄 호수에 있다고 하니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탐욕왕 엘드리치와 공중요새 라퓨타.
그들이 펼칠 절대 방어 결계를 뚫기 위해선, 지금까지의 화력을 초월한 힘이 필요하니까.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도 ‘헤일 스톰’을 쓰기 위해선 드래곤 블러드가 필요했지.’
오르비스 대학살 때 사용한 권능.
일종의 폭주 상태에 빠지는 ‘드래곤 블러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리 나라도 혼자 가는 건 자살행위인 곳인데.”
흑마법 연구실과 키메라의 제조실.
엘드리치의 핵심 공장이 모조리 들어가 있는 곳인 만큼 대단히 경비가 삼엄하다.
더구나 그곳에는 엘드리치의 핵심 간부 중 하나인 ‘사령관’도 있으니까.
그곳에 잠입하기 위해선 강력하고도 믿을 만한 소수의 동료가 필요하다.
-우움······.
다만 노움이 피곤하다는 듯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는다.
내가 마정석을 정화하는 동안, 몬스터들을 노움이 막고 있었으니까.
물론 수십 마리의 필드 보스급 몬스터를 막아내는 일은 엄청난 일.
일전 어린 세계수로부터 힘을 받아 중급 정력이 되지 못했으면,
아니, 중급 정령이 아니라 최상급 정령이라도 본래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러나 가이탄 호수는 그런 통상 외의 힘을 가진 내 노움으로도 부족했다.
그 이상의 전력.
동부의 엡실론과 설산검 레오파드, 대륙 7대 성인 루크레치아 같은 초강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전력을 갑자기 어디서 얻어?”
다만 그런 초강자들은 동료로 포섭하기 대단히 어렵다.
물론 나야 공략할 수 있지만 한참 걸리는 일. 고민이 깊어진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투두두두.
“?”
그때 저 멀리서 무언가가 질주해오는 소리가 들린다.
“찾았다.”
-lv??? 폭왕 라이칸 슬로프. (사슬 봉인.)
상대는 흰 털이 무성한 야성미 넘치는 남자였다. 떡 벌어진 어깨에 짐승 같은 얼굴. 덥수룩한 털.
-우우움······!
그리고, 드래곤 피어에 버금가는 살기까지.
사왕 라이칸.
그가 날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다.
번쩍.
그의 신형이 멈춘다. 나는 저 기술을 알고 있다.
이형환위 (移形換位).
너무 빠른 움직임으로 미처 그 움직임이 눈에 늦게 보이는 현상.
【워터 실드 lv4.】
나는 재빨리 물의 방패를 펼치고, 자세를 숙인다.
혹여 용용이가 다칠까 봐 소형화 권능도 발동한다.
서걱, 콰아아아앙-!!!
1초 후, 숲이 반으로 갈라진다.
내 머리카락을 한 올 스친다. 주위 나무들이 모조리 잘려나간다.
쿠당탕탕, 나무 그늘이 사라진다. 민둥산처럼 빛이 가득 드리운다.
나는 심장이 차가워지는 걸 느낀다.
만약 조금만 늦었어도 용용이가 크게 다쳤을 테니.
“폭왕 라이칸 슬로프.”
나는 드래곤 아이를 발동하며 상대를 노려본다.
사왕.
이는 아르카나 대륙 최강자를 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존경을 받는 대단히 명예로운 이명이기도 했으니.
“아룡기사 네카르.”
다만 라이칸 슬로프가 날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구슬프고도, 애처로운 눈빛.
“얄궂게도, 네 목에 내 일족의 운명이 걸렸으니.”
제 일족이 광랑병에서 해방됐다는 걸 아직 모르는 눈치다.
“전력으로 덤벼라. 날 막아서라.”
치잉.
내게 날카로운 손톱을 겨눈다. 이빨을 드러내며 살기를 내뿜는다.
마치 자신이 패배하길 바라는 듯한 말투.
그렇게 멋대로 말을 끝내고 다시 전투태세를 취한다.
‘······일단 싸워야겠군.’
【워터 소드 lv4.】
나는 촤아악, 손에 물의 검을 쥔다.
자세를 고쳐 쥔다. 아무래도 지금은 진실을 말할 틈이 없을 것 같으므로.
더구나 나는 원작에서 폭왕 라이칸 슬로프를 몇 번이고 제압해 본 적 있다.
결국 적은 흙을 밟는 전사. 내겐 흙의 정령 노움도 있으니.
물러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