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87화 (87/140)

87. 웨어울프 (1)

“······바보 같은 녀석. 기어이 두 번째 마정석 파편마저 빼앗겼구나.”

고고고.

탐욕왕 엘드리치가 온몸에서 사악한 마력을 발산한다.

본래 황금 고블린이었던 그는 검은 연기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마력에 완전히 가려져서, 거대한 악마의 그림자가 된 상태였다.

그는 마계의 군주.

서부 어딘가에 서려 있던 마력이 사라졌다는 걸 희미하게 느꼈으니.

그의 분노에 보고서가 중력을 거스르고 허공에 둥둥 떠오른다. 책들이 떠오르고, 책장이 덜덜 떨린다.

부총관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엎드린다.

[조,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현재 정예 실력자를 수없이 고용했으니! 금세 되찾을 것입니다!]

“됐다. 너희에게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

엘드리치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통신을 뚝 끈다.

죽여버릴까 했지만 임프 부총관은 능력이 제법 쓸만할뿐더러,

엘드리치가 허접스러운 밑바닥 고블린이었던 시절부터 함께 한 녀석이니 옛정으로 살려둔다.

진정하고 또 다른 통신 구슬을 꺼낸다.

“‘폭왕(暴王)’ ‘라이칸 슬로프’. 슬슬 결단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엘드리치는 겉으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읊조린다.

통신 구슬 속에 담긴 존재는 감옥에 쇠사슬로 봉인된 근육질 사내였다.

늑대처럼 흰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형 사내.

떡 벌어진 역삼각형 어깨를 가지고,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사내는 당장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린다.

[······탐욕왕 엘드리치. 내가 네놈 같은 구더기에게 굴복할 것 같으냐?]

아르카나 대륙 사왕 중 한 명인 폭왕 라이칸 슬로프.

그는 감옥 쇠사슬에 붙잡혔으나 전혀 굴복하는 눈치가 아니다.

동공이 짐승의 눈처럼 세로로 갈라진다.

살기가 가득 담긴 초록색 눈.

통신 구슬 속 엘드리치를 노려본다.

엘드리치의 입가를 찢어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라는 듯 계속 으르렁거린다.

그러나 엘드리치는 쿡쿡 비웃으며 말했다.

“너무하는군. 광랑병으로 고통받는 제 동족을 구할 ‘해독약’이 새로 개발됐는데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야.”

[!!]

황금 고블린은 손에 보라색 액체가 담긴 시약을 흔든다.

해독약.

현재 대륙 서부에 있는 웨어울프 일족은 보름달을 보면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광랑병(狂狼病)’이라는 지독한 희귀병을 앓고 있으므로.

이를 가지고 협박하는 것이다.

[우리 일족에게 ‘광랑병’을 퍼트린 놈이 네놈이잖느냐! 당연히 해독제를 넘겨야 하는 것 아니냐!]

“그건 단순 사고였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더구나 네놈이 난동부리면서 파괴한 것으로 이미 셈이 끝났지.”

[뭐라고!]

그 말에 온몸을 늑대의 흰 털로 변신시키는 라이칸 슬로프.

폭발적인 힘으로 제 몸을 구속한 쇠사슬을 끊어내려 잡아당긴다. 사왕(四王) 중 하나라고 불리는 영웅답게 두 다리 괴력만으로 땅을 팬다.

파치지직!

[크아아악! 크으으!]

허나 쇠사슬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전류.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른다.

그래도 쇠사슬을 놓지 않는다. 끝없이 비명을 지르며 쇠사슬을 끊으려고 한다. 눈빛도 여전하다. 네놈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도 시원찮다는 듯.

스스로 고문 받는 모습에 엘드리치는 뱀처럼 속삭인다.

“언제나 현재만 생각해라. 과거에 집착해서 병든 동족을 다 죽일 건가, 아니면 ‘간단한 임무’를 하나 해서 모두를 살릴 것인가? 간단한 셈법 아니더냐?”

악마의 제안.

대륙의 사왕 중 한 명인 라이칸 슬로프에게 임무를 맡긴다.

탐욕왕 엘드리치는 알고 있다.

웨어울프들은 동족애가 대단히 강한 종족.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조건이 뭐냐. 네놈 같은 놈이 정상적인 제안을 할 리 없을 터.]

그제야 라이칸 슬로프는 쇠사슬을 내려놓는다.

제 이빨을 부서져라, 씹으며 노려본다.

“아룡기사 네카르.”

그 모습에도 엘드리치는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찢어졌다.

“그 인간 마법사를 죽이고, 사내가 가지고 있는 ‘마정석’을 가져와라. 그렇다면 네 웨어울프 일족을 살려주겠다.”

***

나는 요정들의 배웅을 받으며 환상의 숲 테레이아 밖으로 말을 몬다.

마정석.

사악한 힘을 가득 머금은 돌.

공중요새 라퓨타의 핵심 동력원인 이 돌찾아 다음 목적지 웨어울프의 굴로 향한다.

‘웨어울프의 굴은 ‘우트라’ 영지에 있었지.’

나는 서부 웨어울프들의 설정을 떠올렸다.

광랑병.

달빛을 볼 때마다 광기에 젖어 폭주하는 병.

본래 웨어울프들은 자신들이 원할 때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늘.

서부 웨어울프들은 밤마다 강제로 변신하며 이성까지 잃어버리는 병을 앓았다.

아마 탐욕왕 엘드리치도 이걸 이용해서 웨어울프를 완전히 굴복시키려고 ‘월광석’을 찾는 거겠지.

“하지만 치료법을 알면 문제는 간단해지지.”

-크릉?

나는 내 어깨 위에 안착한 용용이를 쓰다듬는다.

장난기가 돌았는지 내 손가락을 깨무는 녀석. 그래도 힘 조절은 확실한 만큼 아프진 않다.

‘태양의 돌. 그 돌만 찾으면 된다. 그 돌은 달빛의 힘을 소멸시키니까.’

나는 해독제는 만들 수 없지만, 다른 파훼법을 알고 있다.

태양의 돌.

달빛을 몰아내는 힘을 가진 빛의 돌이다.

결국, 광랑병은 보름달을 볼 때 폭주하는 병이므로.

이 돌만 가지고 있다면 달의 힘인 광랑병을 소멸시킬 수 있다.

그것이라면 마정석과 교환할 수 있겠지.

만약 이걸 찾아낸다면 탐욕왕 엘드리치에게 심한 반감을 품은 세력과 동맹을 맺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어쩌면, 웨어울프는 물론, 그들의 영웅이자 사왕 중 하나인 ‘라이칸 슬로프’와도 확실한 협력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나조차 태양의 돌의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는 건데······.’

원작 <별들의 전쟁2>는 본래 게임.

플레이어를 배려하여 웨어울프의 굴 근처에 있는 숲에 월광석과 태양의 돌이 숨겨져 있다.

다만 문제는 현실은 게임보다 훨씬 광활하다는 점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알아볼 수 있겠지만······.

현실은 게임과 달리 축약되지 않았기에 얼마나 헤매야 할지 미지수다.

첩첩산중을 떠돌기 싫다면 마땅한 길잡이를 구해야 한다.

우트라 영지에도 모험가 길드가 있겠지만, 아무리 모험가라도 숲속 지형까지 달달 외우지는 않으니 다소 걱정이 든다.

‘여차하면 노움을 부려야겠군.’

-우우움?!

내가 빤히 쳐다보자 화들짝 놀라서 날 쳐다보는 노움. 과로 후 기절을 예감했는지 안색이 파리해진다.

정말로 산을 뒤엎으면서 뒤져야 하냐며 울먹이기까지 한다.

중급 정령에 들어선 후, 불가능하다고는 안 하는 녀석.

‘······하지만 역시 그건 너무 눈에 뛰려나?’

히히힝.

나 또한 말을 몰면서 생각한다.

현재 나는 마신 문두스를 사칭해 전 대륙적인 수배를 받는 상황이므로.

노움을 부려서 전부 뒤엎는 건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일 뿐,

산을 통째로 뒤엎어서 굳이 이목을 끌고 싶진 않다.

그렇게 이틀간 야영하고 계속 웨어울프의 숲으로 향할 때.

세 번째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히히힝!

투두두두.

홀로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나가니,

저 앞에 먼저 가고 있던 마차 상단이 보인다.

5대의 검은 마차들.

물건을 하나 가득 실었는지, 드넓은 황무지를 달리는 말이 대단히 지쳐 보이는 상단이었다.

“뭐야, 거기 훤칠하게 생긴 청년. 설마 지금 혼자 대도로를 다니는 거야?”

“?”

검은 마차를 제치고 가려고 하니, 검은 로브를 입은 중년 여인이 내게 말을 건다.

입가에 비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걸 봐선 괜히 시비를 거려는 모양.

‘노예상인들이군.’

-lv17 블랙 아지트 노예상인 카라.

-lv19 블랙 아지트 노예상인 바프.

나는 시스템 창에 뜨는 상대 소속을 보고 표정을 굳힌다.

블랙 아지트.

탐욕왕 엘드리치가 지배하는 불법 상회.

블랙 오아시스와 블랙 이글루와 마찬가지로 서부에서 암약하는 암시장이므로.

특히 치안이 안 좋은 서부에서 백주 대낮부터 아이들을 납치해서 인체 실험 재료로 쓴다는 실력 좋은 악덕 상인들이다.

읍-, 읍-.

검은 천으로 뒤덮은 마차 포대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마 노예로 붙잡힌 자유민과 이종족이 일말의 희망을 품고, 살려달라고, 자기 여기에 있다고 몸부림치는 것이겠지.

어찌 됐든 노예거래는 명목상 불법이니 말이다.

‘내가 난동을 부리기엔 이목이 지나치게 끌리는데.’

다만 엘드리치의 하수인이라고 무작정 다 죽이며 다니기엔 마음이 걸린다.

현재 나는 마신 문두스를 사칭해서 황제의 체포 명령이 떨어진 신분.

아무리 가짜 신분증을 만들었다지만, 괜히 잔챙이들을 잡겠다고 계속 소란을 피운다면 꼬리 잡힐 수 있다.

서부에 엘드리치의 하수인은 수만 명이나 되니까.

“야, 카라. 점장님께서 이번 일은 문제없이 빨리 해결하라고 하신 거 기억 안 나? 그냥 조용히 가자.”

“쓰읍, 쟤 잘생겼잖아. 눈매도 냉철하고 코도 오똑한 게 딱 내 스타일인데. 그냥 확 덮쳐서 조용히 데려가면 안 될까?”

“낄낄, 자신 있으면 알아서 하던가. 그 대신 잘못되면 난 모르는 일이다?”

“······.”

대놓고 날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리는 중년 여인.

노예상인들은 자신들이 질거라고 전혀 상상도 못 하는지 재밌겠다는 표정으로 관전할 뿐이다.

나는 귀를 씻어서야 할 것 같아서 먼저 질주해서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lv19 웨어울프 베오. (나약화.)

-lv21 웨어울프 바르셀. (나약화.)

.

.

“?”

근데 저 멀리 떨어진 바위 무더기에서 의외의 시스템 이름들이 보인다.

웨어울프.

내가 구하려고 찾아가는 종족이 왜인지 인간의 땅까지 먼저 내려와서 매복해 있다.

심지어 ‘나약화’라는 심각한 페널티 상태이상까지 달고서.

‘나약화라면 얼마 전 광랑증으로 폭주해서 지친 상태라는 건데······. 아픈 몸을 이끌면서까지 싸우러 왔다고?’

의아함을 느낀다. 그리고 드래곤 아이를 발동해서 검은 마차 안에 갇혀 있는 노예들을 살핀다.

-lv1 전쟁 난민 인간.

-lv2 전쟁 난민 인간.

.

.

-lv6 새끼 웨어울프 벤.

“!!”

그리고 발견했다.

블랙 아지트 마차에 묶여있는 어린 사내를. 늑대인간의 징표인 짐승의 귀를 가진 아이를 말이다.

‘그렇군. 일이 이렇게 되는 거였군.’

나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웨어울프는 동료애가 대단히 강한 전투 종족.

결코, 제 동족을 버리는 일이 없으니.

제 몸이 병든 상황에서도 붙잡힌 어린 동족을 구하기 위해 무리하게 나서는 것이다.

“내가 안 나서면 다 죽을 위기군.”

또한, 나는 확신한다.

시스템 상태를 보아 지금으로선 웨어울프가 대단히 불리한 상태다.

평상시라면 인간을 압도했겠지만, 지금은 광랑병으로 폭주한 직후니까.

만약 노예상인들과 이대로 정면충돌했다면 이기더라도 태반이 죽었겠지.

이들에게 빚을 지울 기회다.

“뭐? 이봐. 거기 청년. 그게 갑자기 뭔 소리야? 겁에 질려서 얼어버리다 못해 미친 거야?”

다만 아직 상황을 눈치 못 챈 노예상인들이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푼다.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무슨 소리긴. 멍청아.”

나는 눈치 없는 노예상인에게 왼손을 뻗는다.

【에어 블레스트 lv2.】

콰아아아!

즉발로 발동하는 5써클 바람의 상급 마법.

조준했던 놈은 물론, 그 옆에 있던 놈들까지 깨끗이 삭제된다.

경이로운 파괴력을 가진 마법.

아쿠아 스톰과 동급 써클인 만큼 방패고 마차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무리 악덕 상인들이 제법 실력 있는 자들이라도, 내 앞에서는 보름달 앞 반딧불이일 뿐.

“너네 다 뒈졌다는 소리지.”

【에어 블레스트 lv2.】

콰아아앙!

잔혹한 미소를 짓는다.

경악에 질린 노예상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

‘다 쓸어버린 후, 웨어울프들에게 대신 흔적만 남겨달라고 부탁하면 되니까.’

내가 처치하고 죗값을 떠넘기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 아닌가?

숲의 신사라는 웨어울프들은 제 동족을 구해준 은혜만은 반드시 갚으므로.

더구나 태양의 돌을 찾기 위해 웨어울프의 굴 인근을 뒤져야 한다면 이들이 가장 전문가일 테니까.

나는 쓸만한 길잡이를 찾은 듯 하여 악덕 쓰레기들을 청소한다.

***

“······‘베오’.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된 것 같아.”

“······.”

황혼이 저물어가는 밤.

웨어울프 십인대장인 ‘바르셀’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황무지로 내려온 대륙 서부 웨어울프 ‘라이칸’부족.

그들은 노예 상인들을 덮치기 위해 바위 무더기 뒤에 숨어있었다.

얼마 전, 보름달이었기에 폭주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취약한 상태였으니까.

결코, 허투루 상대할 수 없기에 최대한 기회를 노리던 중이었다.

“······제기랄.”

까드득.

그러나 바르셀의 약혼자인 베오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으로 흙바닥에 퍽 때렸다.

그가 보기에도 현재 상황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인간 노예상인들에게 들킨 것보다도 훨씬.

쿠과과광!

이변은 간단했다.

자신들이 덮치려고 한 노예 상회를 난데없이 먼저 튀어나온 인간 마법사가 모조리 쓸어버리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오직 혼자서.

자신들이 전부 덤벼도 승산이 있을까 말까한, 수십 명의 인간을 상대하고 있다.

“제기랄! 뭐해. 병신 새끼들아! 고위 마법사잖아! 마법사 상대하는 법 몰라?”

인간 노예 상인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년 여인의 카랑카랑한 명령에 재빠르게 펼쳐지는 노예상인들.

마법사를 포위하고 하나 둘씩 순서대로 튀어나간다.

아무리 고위 마법사라도 마법 영창을 할 시간은 필요하므로.

그 순간순간의 틈을 노리는 것이다.

콰아아앙!

물론 젊은 인간은 그런 것 없이 죄다 다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렸지만.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웨어울프들조차 직감했다.

웨어울프 일족의 영웅 폭왕 라이칸 슬로프급 초강자.

저자는 감히 어찌할 수 없는 대재앙이라고.

지금 저자에게 덤벼드는 건 자살행위란 걸 말이다.

아무리 동족을 위해 제 목숨 안 아끼는 웨어울프라도 저런 초강자에게 덤벼들진 못했다.

이는 제 목숨보다 중요한 동족들을 아무 의미 없이 사지로 몰아넣는 일이므로.

베오는 바위 뒤에서 무릎 꿇고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벤, 그 아이만큼은 내가 반드시 지켜주겠노라고 맹세했는데······.”

베오는 설움이 몸이 부르르 떨린다.

다른 웨어울프들도 허망한 마음은 모두 한 마음이었다.

그들은 본래 자기들 마을에서 행복했다. 제 동족과 가족을 사랑하며 평화로이 지내고 있었다.

······탐욕왕 엘드리치가 설치한 독가스를 마시기 전까지.

광랑병.

보름달만 보면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그 결과, 1년에 한 번도 하지도 않는 ‘야수화’를 매달 하게 됐고, 몸이 약한 웨어울프부터 줄줄이 죽어 나갔다.

벤은 그렇게 죽은 벗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베오와 바르셀은 서로를 사랑한 만큼이나 그 친우도 아꼈기에.

믿을 수 있는 동료 10명을 데리고 죽음을 무릅쓴 매복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비록 허망하게도 아무도 구하지 못했지만.

‘결국, 우린 폭왕 라이칸 슬로프님께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 제 동족이 끌려가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까드득.

송곳니를 씹는다. 입에서 피가 흘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굴욕감이 온몸을 지배한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진 바닷속에 침몰하는 기분.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엘드리치를 추궁하러 가신다며 떠나신 왕께서 돌아오질 않는다.

그가 떠난 지 벌써 반년이 넘었거늘.

······설마 그 지고하신 분께서 당하셨을 리는 없을 테고.

혹 왕께서 자신들을 잊고 버리기라도 하신 걸까?

납득하고 싶지 않다. 눈시울을 붉히며 애써 부정한다.

“베오······.”

그의 약혼자이자 십인대장 바르셀이 피묻은 입가를 닦아준다. 그를 품에 안고 안아준다.

베오는 촉촉한 물기를 흠뻑 느낀다.

비단 우는 건 바르셀 뿐만 아니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울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 부족에서 태어나 함께 자라며, 같은 일을 겪은 동족들.

지금 이 마음은 베오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기에.

이러한 상황에서도 크게 소리 내어 ‘아우우우-’ 울지도 못하고 있기에.

그 분함, 좌절감, 굴욕감, 절망감을 모두가 느끼고 있기에 모두 함께 숨 죽여 우는 것이다.

콰앙.

그러는 사이, 인간들끼리의 내전이 끝났다.

결과는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한 청년의 압도적 승리.

수십 명이나 되는 검은 상인들이 모두 핏덩이가 돼서 길바닥에 묻어 있다.

분명 인간은 빠르게 늙는다고 들었거늘.

도대체 무슨 흑마법을 익혔길래 저렇게 젊은 인두겁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이제 저 마차 안에 있는 노예들을 전리품 삼아 끌고 가겠지.’

망연자실하게 제 어린 동족의 마지막을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서 동족까지 죽여가며 저토록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을 테니 말이다.

달칵.

실제로 대마법사로 보이는 젊은 인간은 마차를 열고, 붙잡힌 노예들을 점검했다.

그런데 다소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다.

마차에 있던 인간들이 밝은 표정으로 마차 밖으로 나오고 있었으므로.

혹시 몇몇 인간을 구하기 위해 이 난리를 펼친 걸까?

“······저건.”

“벤.”

이윽고 벤 또한 내렸다. 겁먹었는지 늑대 귀를 땅에 닿을 듯 접고 있는 아이.

자신을 납치했던 강한 인간들이 주위 시체로 흩뿌려진 걸 보고 히익, 신음을 흘린다.

분명 어린 웨어울프 벤이 맞았다.

베오는 긴 손톱으로 제 손바닥을 판다.

인간들이란 하나같이 타종족에게 무자비한 존재.

이제 곧 저 아이에게 닥칠 재앙을 알기에.

구하러 가지 못하는 옹졸한 제 자신을 원망한다.

“베오 형아!”

“······벤?”

그런데 또다시 이변이 일어났다.

대학살을 벌인 겉모습은 젊은 사내가 쪼그려 앉더니 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어라 속삭였으니까.

이에 귀를 쫑긋 세운 벤은 한결 밝아진 기색으로 토도돗 달려온다. 바위 뒤에 완벽히 숨어있는 자신들을 향해서.

“무슨 일이야? 혹시 저 인간이 무슨 짓 하진 않았어?”

이미 들킨 만큼 바위에서 나와 벤을 살핀다. 혹여 폭탄이라도 붙여서 차도살인을 하는 걸까 두려워 몸을 살핀다.

그런데 아이는 너무나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응! 저기 네일이라는 인간 형아가 이제 괜찮다고 오라던데?”

“?”

그 말에 멈춰선 마차에 걸터앉아 있는 인간 사내를 바라본다.

황금빛 머리카락에 깊은 푸른 눈을 가진 사내.

마치 반로환동이라도 한 듯한 젊은 사내가 입술을 움직인다.

베오는 이를 똑같이 따라 읽는다.

“광랑병을 극복할 수 있다······?”

광랑병.

서부 웨어울프를 멸족으로 이끄는 죽음의 병.

그 병을 극복할 방법이 있다.

네일이라는 자는 그들에게 그렇게 읊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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