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환상의 숲 테레이아 (2)
나는 페어리를 구해주고 다크 님프까지 제압했다.
이후 가방에 있던 성수를 꺼내서 페어리의 다친 날개에 뿌려준다.
고통스러운지 아얏, 소리를 내지만 이내 치료되는 제 날개를 보고 안도한다.
“당신은······? 어떻게 페어리 펜던트를 갖고 계신 건가요?”
자신을 페이라고 소개한 페어리가 묻는다.
페어리 펜던트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지켜주고, 치료까지 해주니 상당히 믿는 눈치다.
“말했잖은가. 나 또한 페어리 친우가 있었다고. 그 친구에게 빚이 있어서 갚으러 왔을 뿐이다.”
물론 개소리다.
이 페어리 펜던트는 해적왕 데비존을 죽이고 약탈한 물건이니까.
하지만 착한 거짓말은 죄가 아니라고 하지 않은가.
페어리를 무사히 돕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마정석에 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마정석을 정화하여 가져가기 위해선 꼭 페어리 마을로 들어가야 했다.
‘더구나 요정 족은 불로장생을 가진 숲의 수호자. 숲을 지키기 위해서 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공중요새 라퓨타가 진정 강림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내부로 잠입하여 핵심 기관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으므로.
그때, 소형화 권능과 신비로운 환술 마법이 가진 페어리가 대단히 유용하다.
더구나 요정족은 기나긴 삶을 살아온 자들. 방금 전처럼 제 죽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종족이다.
따라서 페어리에게 미리 호감을 사고, 빚을 지워두려는 것이다.
“······.”
이마에 있는 더듬이를 꼬물거리는 녀석.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한참 고민한다.
-키야악!
“히이익?”
그 모습에 내 어깨에 앉아있던 용용이가 답답한지 왁 고함쳤다.
도움을 받았으면 재깍재깍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냐는 태도.
“고,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더구나 흙의 정령 노움이 당신을 따르는 걸 보니 정말 악인은 아닌 것 같군요.”
그제야 페어리 페이가 정신 차리고 빠릿빠릿 움직인다.
“하지만 지금 페어리들은 사악한 돌 때문에 마을을 포기하고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어요. 마을에 남았던 님프들은······. 아까 보시다시피 어둠에 잠식됐고요.”
대충 사정은 알 것 같다.
본래 사이좋던 두 요정 페어리와 님프.
함께 서식했으나, 사악한 돌 마정석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페어리는 불길함을 느끼고 서식지를 옮겼지만, 님프는 그러지 않아 타락됐다는 이야기 말이다.
“일단 따라오세요. 여왕님을 만나 뵐 수 있는지, 여쭤볼게요.”
됐다!
다행히 1차 목표를 이뤘다.
페어리 여왕을 만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과제였으니까.
【소형화 lv1.】
따라서 페어리 펜던트로 스스로를 작게 만든다.
페어리를 따라 임시 마을로 들어간다.
***
“여왕 전하. 기운 내십시오. 거의 다 끝났습니다.”
“으윽······. 으으으······.”
페어리 여왕 ‘티타니아’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악한 돌.
그 돌이 페어리 마을를 장악해서 환상의 숲 테레이아 전체를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으므로.
여왕인 그녀가 결계를 펼쳐서 어떻게든 잠식을 막고 있다.
허억······. 헉······.
오늘도 간신히 버텨낸다. 숨을 몰아쉰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 우리 페어리 일족에겐 멸망뿐이야.’
하늘도 무심하시지. 페어리 여왕에겐 체력의 한계가 있었으나, 사악한 돌에는 한계가 없었으니까.
여왕 티타니아가 미처 막지 못한 어둠의 힘은 여지없이 숲으로 퍼져나갔다.
벌써 페어리 몇몇도 날개 끝이 검어지며 타락의 징조가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간 밀렵꾼까지 늘어만 가니······.’
더구나 여왕과 주력 페어리가 결계를 지키기 바쁜 사이, 인간 밀렵꾼이 상당히 늘었다.
이미 지쳐버린 여왕으로서, 힘없는 어린 페어리를 납치해가는 걸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수백 년간 거주한 숲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까?
하지만 떠난다면 어디로?
현재 서부는 인간들의 땅. 심지어 격렬한 내전을 벌이고 있으니.
페어리가 거주할 숲은 없다. 역으로 사냥당하거나 노예로 팔려나갈 뿐.
풀리지 않는 문제에 관자놀이를 지긋이 짓누른다.
“여, 여왕 전하! 큰일이 났습니다.”
그때 한 충신 페어리가 다급하게 날아와서 아뢴다.
여왕 티타니아는 무슨 일이 또 터졌구나 싶어서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무슨, 일이더냐······?”
“그, 그게. 인간 하나가 여왕님을 알현하고자 한답니다. 무려 우리 일족의 펜던트를 가진 사내입니다!”
“?”
페어리의 권능을 빌린 인간.
본래 인간은 밀렵꾼과 노예 사냥꾼밖에 만나보지 못해 인식이 매우 나쁜 페어리로선 생소한 자였다.
“그자가 정말 우리 동족의 벗인지 직접 만나봐야겠구나.”
티타니아가 결론을 내린다.
‘만약 밀렵꾼이 우리 페어리 마을 전체를 알아내려고 하는 일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니까.’
지친 몸을 일으켜서 고치에서 일어난다.
근위병을 이끌고 날아간다.
자신들에게 찾아왔다는 인간을 만나보기 위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
‘여기가 페어리의 임시 마을 ‘페어리 테일’인가?’
나는 페어리 페이의 안내에 따라 임시 마을로 들어왔다.
임시 마을은 거대한 나무 밑동에 숨겨져 있었다.
꽃밭과 가까운 엘프 목에 숨겨져 있는 마을.
사실 마을이라기보다는 나무 곳곳에 창고를 뚫어둔 홈에 나비 같은 요정들이 가득 있는 모습.
반딧불이와 친한지 그들을 등불처럼 쓰는 모습이다.
‘다만, 경계심이 강하군.’
하지만 무작정 안심하고 있을 순 없었다.
페어리들이 나와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 수군거렸으니까.
물론 거리가 멀어서 페어리들은 안 들리는 줄 알지만, 발달한 내 기감으로는 다 들렸다.
[저건 페이잖아?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돌아왔지? 같이 들어온 건 누구야?]
[헉. 인간? 지금 인간이 우리 마을에 들어온 거야?]
[밀렵꾼! 우리 숲에 멋대로 쳐들어와서 붙잡아온 거야?]
내가 날개 없는 인간이란 걸 알아보고 헉, 숨을 들이마신다. 경계 어린 표정을 짓는 페어리들.
‘최근 밀렵꾼이 페어리를 노렸나 보군.’
하기야 이해가 된다. 특히 치안이 불안정하다는 서부.
그곳에는 농사를 망치고 먹고 살길을 잃은 자가 많아 밀렵꾼과 범죄자가 특히 많았으니.
숲에 숨어 사는 페어리 입장에선 인간이 제 동족을 살해하고 납치하는 이들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내 표정이 굳어지자 지금까지 안내해준 페어리 페이는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여왕님께 대신 잘 말해드릴게요. 우리 페어리는 결코 친우를 홀대하지 않아요.”
미안한데 네가 날개를 그리 파리하게 떨고 있으면 전혀 신뢰가 안 간다.
하지만 말이라도 예쁘게 하는 만큼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다.
-lv45 페어리 여왕 티타니아. (부상.)
-lv33 페어리 근위병.
.
.
그때 가장 큰 방에서 20여 마리의 페어리가 나비처럼 날아온다.
그 중에는 다른 페어리보다 덩치가 2배는 거대한 여왕 티타니아도 있다.
‘······생각보다 더 많은데.’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
곧장 공중에서 날 포위한다.
“정말 인간이구나.”
페어리 여왕 티타니아가 근엄하게 말한다.
내 가슴 품에 장착된 페어리 펜던트를 바로 알아본다.
“······여왕 전하! 이분은 절 타락한 님프로부터 구해주셨어요. 님프들도 죽이지 않고 안전하게 제압만 하고 풀어줬다고요.”
날 안내한 페어리 페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변호한다. 공기가 불편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
다만 페어리 여왕 티타니아는 흘려들으며 묻는다.
“페어리 펜던트는 어떻게 얻은 것이냐?”
대단히 의심하고 경계하는 모습.
하기야 페어리 펜던트는 숲의 친구 엘프에게도 해줄까 말까 한 보물이다.
그런 보물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
물론 나는 해적왕 데비존을 죽이고 약탈해서 펜던트를 얻은 만큼, 적당히 거짓말한다.
“존이라는 녀석에게 얻었습니다.”
“······그런 아이는 우리 숲에 없다만?”
“페어리가 꼭 여기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따라서 미리 준비한 말을 한다.
환각 가루 때문에 외부인이 숲으로 들어오기 힘들 뿐, 페어리가 밖으로 나간 케이스가 아예 없는 건 아니므로.
티타니아는 적당히 고개를 주억거린다.
애초에 대답보다는 감정을 읽는 더듬이로 태도와 감정을 보려고 한 모양.
“그래, 인간. 벗으로서 무얼 하러 왔느냐?”
“사악한 돌을 정화하려고 왔습니다.”
내 말에 ‘하!’ 한탄을 내뱉는 페어리 여왕.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아느냐. 현재 우리 페어리 마을 전체가 마력에 잠식됐다는 걸 모르느냐?”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그런다니. 마정석은 내가 친히 정화했을 때도 불가능했던 돌이다. 더구나 그 돌을 지키는 다크 님프는 어떻게 뚫으려고? 그들이 사용할 환술은 대단히 사이하다. 우리 페어리 일족도 버티기 어려워할 만큼!”
페어리 여왕 티타니아는 열을 다해 성을 냈다.
아무래도 이 때문에 페어리 족의 피해가 막심한 만큼 울화가 쌓인 모양.
‘자신에게 문제라고 남에게도 꼭 문제인 건 아니다만······.’
그러나 나는 이것이 날 페어리 벗으로 걱정하는 훈계라는 걸 알기에 적당히 들어준다.
페어리의 원수 종족인 인간이 홀로 죽으러 가겠다고 한다면 굳이 말릴 이유가 없으므로.
“저······. 네일 씨······.”
사악한 돌 얘기가 나오자 페이 또한 잔뜩 긴장한다. 더듬이가 덜덜 떨린다.
“아까 그 성스러운 물로 정화하시려는 거죠? 절 치료해줬던 그 물로요.”
“그래.”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 정도론 불가능해요. 그 사악한 돌은 우리 마을을 지켜주던 ‘어린 세계수’조차 감당 못 했는 걸요······.”
페이 또한 여왕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날 만류한다.
마치 사막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는 듯.
그 정도 성수로는 어림없다는 듯 말이다.
“상관없다. 나는 충분히 가능하니까.”
다만 나는 인피면구와 목소리를 차갑게 변조한 만큼 그대로 읊는다.
다크 님프가 강하다고 한들 그뿐.
악의 교단 군단장과 그 수하들과 전쟁을 벌였던 나다.
굳이 귀찮게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정녕 직접 겪어봐야 정신 차릴 인간이로구나.”
고오오.
다만 그간의 내 활약상을 모르는 페어리 여왕은 나무 스태프에서 신비로운 빛을 흩뿌린다.
마치 스스로 불 속에 빠지려고 하는 나방을 구제한다는 눈치.
그것을 신호로 함께 온 페어리들도 스태프에서 빛을 흩뿌린다.
“네가 정녕 다크 님프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 페어리 일족의 환술 따위 충분히 극복할 수 있겠지.”
페어리 여왕을 필두로 내 주위를 빙빙 돈다.
환각 가루를 흩날리며 환술 마법을 시전한다.
페어리가 소형화 다음으로 자신 있어 하는 마법.
고오오오.
세상이 빙빙 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위가 매우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멀미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만약 네가 이 환술을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다면 인정하겠다. 내 사과는 물론, 우리 페어리 일족의 보물인 ‘마법 가루’를 선물하지.”
페어리 여왕은 호언장담하며 날 비웃는다.
마치 나는 결코 이 환술을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다는 듯.
인간의 태생적 한계라는 듯 말이다.
‘뭐, 제법이군.’
실제로 원작에서도 페어리들의 환술은 꽤 쓸만했다.
즉석으로 발현하는 환술임에도 상하좌우 구별이 안 되고, 몸은 중력 마법에 당한 듯 무거웠으며, 타는 목마름과 추위가 동시에 느껴지는 등 온갖 상태 이상에 빠졌으니까.
만약 일반적인 존재였다면, 당장 숨쉬기도 어려워하며 쓰러졌을 강력한 환술이다.
【드래곤 아이 lv3.】
물론 그건 내가 평범한 인간이었을 때 이야기.
자연의 수호자이자, 만물의 영장인 용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현실이 너무나 또렷이 보인다.
공중에서 열심히 날개를 파닥거리며 환각 가루를 뿌리는 여왕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일 뿐이다.
더구나 결국 환술 또한 마법.
내 몸에 마나를 넣어서 신경을 교란해야 할 터인데, 드래곤 하트로 단련된 내 몸이 이 정도 마나에 꿈쩍할 리가 없다.
터벅.
따라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중심을 잃지 않고 터벅터벅, 밖으로 걸어나간다.
“이, 이럴 리가? 하압!”
쐐애애액!
이에 여왕 티타니아는 승부욕이 돋았는지 스태프에서 내게 에너지를 쏘아낸다.
소형화 권능.
닿는 순간 극도로 작아지는 권능이다. 그래도 시험이라는 건 잊지 않았는지, 다치진 않는 공격을 하는 모양.
티타니아를 시작으로 날 포위한 모든 페어리가 일제히 에너지를 쏘아낸다.
【워터 실드 lv4.】
촤아아악.
하지만 이 또한 물의 방패에 막힌다. 물의 방패가 수십 번 작아지고 작아져도 그 형체가 그대로이다.
당연하게도, 드래곤 하트의 끝없는 마나로 한없이 보충하니까.
“!!”
그제야 경악으로 표정이 물드는 페어리들. 이럴 순 없다는 듯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호승심이 강한 몇몇 페어리는 이젠 너 죽고 나 살아보자는 듯 살상 마법까지 시전한다.
【중력 제어 lv2.】
다만 나는 그 전에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그러자 몸에 무거운 납이라도 달았는지 순식간에 지상으로 떨어지는 페어리들.
일대 공간이 무거워진다. 궁극의 권능이 페어리들을 짓누른다.
날 포위했던 페어리들을 모조리 무릎 꿇린다. 여왕 티타니아 또한 땅에 떨어진다.
그제야 공포에 질리는 페어리들. 날 변호해주던 페이 또한 안색이 하얗게 변한다.
“대략 이 정도입니까?”
나는 그런 페이와 페어리, 페어리 여왕을 바라본다.
인피면구 때문에 차갑게 변조된 목소리로 말한다.
“별문제 없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