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환상의 숲 테레이아 (1)
쾅.
악의 교단 제5군단장 탐욕왕 엘드리치는 수억 페니짜리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르타 섬 해전 결과 보고서.
그 보고서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기록돼 있으니까.
해적왕 데비존의 사망과 그 휘하 해적들의 전멸.
엘드리치가 가장 공들인 사업 중 하나가 한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머저리 같은 놈들. 내 그토록 정면승부하지 말고, 게릴라 활동만 하라고 신신당부했거늘.”
엘드리치는 송곳니 사이로 검은 마력을 뿜어낸다. 내뱉는 연기 속에 섞인 한숨.
부총관은 엘드리치의 분노를 짐작했기에 침묵한다.
이는 단순히 금전적 손해만 있는 게 아니다.
서부 바다를 지배하면서 경쟁 영주의 배는 모조리 침몰시키고, 엘드리치 산하의 무역선만 통과시켰으니까.
독과점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 전체에 큰 타격이 생길 대참사였다.
“보자. 이를 앞으로 복구하는 데 30년이 걸린다고 치면······. 대충 1천억 페니 정도의 손해를 보았군. 3월 19일. 단 하루 만에 말이야.”
엘드리치는 황금 고블린. 두뇌 회전이 매우 빠른 군주이기에 차분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부총관은 주군의 계산기 소리가 두려워 위로했다.
[······엘드리치 폐하, 어차피 서부 해적은 니케아 제국을 항복시키고 제거하려고 하셨잖습니까? 너무 유념치 마소서.]
“······.”
그러나 엘드리치는 말없이 계산기만 타닥, 두드릴 뿐이었다.
“부총관.”
[예, 폐하.]
“폭파했다는 ‘마정석’은 어떻게 됐지?”
중저음으로 내리깔린 목소리.
부총관은 더욱 식은땀을 흘린다. 현재 비보는 한 가지만 들어온 게 아니니까.
차원 이동은 대단히 어렵고도 위험한 일.
본래 마계에서 준비한 마정석이 차원 이동하던 도중 사고로 폭발해버렸다.
그것도 공중요새 라퓨타의 핵심 동력인 마정석을 이동할 때 말이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마력이 깃들어 있다 보니 차원 마법진이 다 감당을 못한 모양.
안 그래도 이 때문에 비상이었거늘, 해전에서의 패배까지 들려온 것이다.
[앗, 예! 지금 돈을 쏟아내면서 흩어진 파편들을 찾고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정말로 백방을 다해 찾고 있습니다! 세뇌한 영주와 흑기사는 물론, 해결사들, 심지어 이종족까지 비밀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단의 적 네카르가 뛰어나다고 해도 마계의 보물까지 알아볼 순 없잖습니까?]
임프 부총관은 최선을 다해 해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제 목이 날아갈 상황이므로.
“······하긴. 아무리 아룡기사 네카르가 날고 긴다고 하지만, 마계에 있는 마정석까지 알 순 없겠지.”
엘드리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마정석을 찾아오지 못한다면······. 네놈을 용광로에 녹여버려서 부족한 동력원을 보충할 것이다.”
마계의 7군주 엘드리치는 살벌하게 붉은 눈을 빛낸다.
마정석.
이는 사악한 마력이 드래곤 하트만큼 가득한 돌.
수백, 수천 마리의 마족과 악마를 녹여버리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총관으로선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엘드리치는 이에 나가보라며 통신을 꺼버리고 홀로 생각한다.
“그보다 아룡기사 네카르, 이자가 침몰의 악마 버뮤다를 처치하는 건 인과율 계산기에도 나오지 않던 방향인데······.”
계산기를 몇 번을 두드려도 마찬가지 결과다.
이레귤러. 본래 결코 있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인간이 무슨 수로 해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침몰의 악마 버뮤다의 블랙 펄을 찾는단 말인가?
분노가 식자 냉철한 이성이 돌아온다. 무언가 일이 이상함을 느낀다.
엘드리치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설마, 정말로 프레야 그 년이 강림시킨 용사라도 된단 말인가? 그럴 리가?”
***
쏴아.
따스한 햇볕과 신비롭게 터지는 물보라.
에메랄드빛 바다와 모래사장에 도착했다.
대륙에서 가장 풍요롭다는 서부에 온 체감이 물씬 풍긴다.
‘으윽······. 뱃멀미는 정말 적응이 안 되는군······.’
-우우움~!
다만 나는 안색이 핼쑥한 채로, 간신히 해변으로 내린다.
달팽이관이 팽팽 돌고, 뱃속 위산이 역류하는 느낌.
일전 심해를 탐사하느라 감기몸살을 앓던 도중, 뱃멀미까지 하니 컨디션 난조가 심화된 것이다.
나는 가짜 신분증을 챙긴 후, 겨우 육지를 밟았다.
우우웅.
[네카르······ 아니, ‘네일’ 경. 대륙 서부에는 무사히 도착하셨나요?]
곧 들려오는 베아트리체의 통신. 내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대단히 걱정스러운 목소리다.
나는 주위에 아직 상인들이 많은 만큼 변조된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덕분에. 네가, 마련해준 새 신분증 덕이다.”
괜히 걱정 끼칠까 싶어 괜찮은 척 한다.
베아트리체의 보증 아래 만들어진 새 신분증.
북부 출신 해결사 신분증 덕에 능히 민간 선박에 탈 수 있었으니.
솔직히 감사를 전한다.
[다행입니다. 하지만 정말 서부로 떠나셔야 했나요? 북부에서도 할 일이 많으실 텐데요.]
베아트리체는 괜히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다만 나는 서부로 떠나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말했다.
“공중요새 라퓨타. 그 절대병기가 제대로 깨어나는 순간, 서부는 물론, 북부 또한 위험할 거다. 이를 막아야 한다.”
막을 방법도 알고 있다.
마정석.
라퓨타의 핵심 동력이 되는 돌. 그 파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물론, 마정석이 없다고 라퓨타를 아예 가동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공중요새 라퓨타에 몰래 잠입해서 마정석을 깨뜨리는 루트가 있다.
이 경우, 엘드리치는 제 부하와 악마들을 용광로에 녹여버려 동력원으로 삼는다.
따라서 아예 가동이 멈추는 건 아니지만, 어마어마한 피해는 입힐 수 있을 터.
‘더구나 서부 가이탄 호수에는 드래곤 블러드의 마지막 조각도 있으니까.’
정면 승부를 하기 위해서라도 서부에 가야 한다.
그것도 막대한 부와 세력을 보유한 탐욕왕 엘드리치보다 빠르게.
이미 대륙 서부 절반 이상을 지배하는 그가 마정석 위치를 알아낸다면 파멸적인 결과가 도래할 것이므로.
최대한 빨리 마정석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
베아트리체에겐 나중에 선물이라도 사 가겠다고 전하고 통신을 끊는다.
그렇게 마정석과 용의 비늘을 찾기 위해 서쪽으로 향하려고 할 때였다.
“이야, 네일이라고 했나? 벌써 의뢰가 들어온 건가?”
“?”
상선에 함께 탔던 해결사들이 내게 말을 붙인다.
“부럽군. 설마 베아트리체 공과 직접 의뢰를 할 정도일 줄이야.”
“······뭐? 실력자인 줄은 알았거늘. 젊은 나이에 그 정도였나?”
“씨 드레이크! 그 존재는 어떻게 조종한 건가? 내게도 가르쳐주게.”
“······.”
이들은 순수하게 내게 놀라움을 드러냈다.
아닌 게 아니라, 해결사는 불륜 뒷조사부터, 사람 죽이는 일까지 온갖 일을 다 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방법을 알아둬야 하니까.
‘아무래도 니케아 함대 연합 측에서도 해적왕 데비존을 상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는지 난다 긴다한 실력자는 모조리 영입한 모양이군.’
나는 그들과 적당히 통성명하고 빠져나온다.
다행히 몸이 아프다는 핑계······. 가 아니라 진실이 있었기에 빠져나오긴 쉬웠다.
“어서 오세요.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따뜻한 방과 음식.”
그렇게 가까운 마을 여관에 가서 쉰다.
몸에 식은땀이 줄줄 나는 만큼 곧장 침대에 누워 쉬었다.
웃돈 주고 고기 가득한 특제 스튜를 배달시켜 먹었으나, 전혀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움······.
흙의 정령 노움이 내 괴로움을 느꼈는지, 나를 토닥인다. 페어리 펜던트로 소용화된 용용이도 내 머리를 핥는다.
하지만 나는 이들을 쓰다듬어 줄 정신도 없이 잠들었다.
***
그렇게 3일이 지난 아침,
‘이제야 살 것 같군.’
기지개를 뚜두둑, 켜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이 허약한 몸뚱이는 며칠은 쉬어줘야 겨우 회복이 됐으니.
간신히 몸을 추슬러서 여관을 빠져나온다. 상황이 급해지는 만큼 더 쉴 수 없다.
‘마을이 을씨년스럽군······.’
나는 손님이 거의 없이 황량한 마을을 둘러본다.
아파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겨우 보인다.
대륙 서부.
엘드리치의 후원을 받는 타락 영주들이 영토 확장을 위해 니케아 제국 영주들을 집단 침공하는 지역.
본래 이 경우 황제가 중재해야 하지만, 황제 세실리아가 오랜 기간 칩거했기에 벌어진 사단이다.
프레야 성기사단 사령관 루크레치아가 주둔하고 있지만, 전체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계속 된 전쟁으로 치안이 개판이 된 모양.
‘최대한 영지를 피해서 가야겠군.’
내가 아무리 아르카나 대륙에 박학다식해도 지금은 원작보다 10년 전.
무슨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곧장 말을 타고 지도를 따라 페어리의 마을로 향한다.
환상의 숲 테레이아.
계속된 내전으로 인심이 흉흉한 서부에서도 특히 무서운 소문이 드는 곳.
이곳에 들어간 방문자는 필히 길을 잃고 같은 곳을 빙빙 돌거나, 무시무시한 맹수를 만난다는 숲이다.
10년 후, 원작에선 아예 악령의 숲이라고까지 불리는 곳.
땅 욕심 많은 서부 영주들과 배고픈 전쟁 난민조차 발 딛지 않는다는 숲이다.
“이곳으로군.”
짹짹짹.
그 숲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붉은빛, 노란빛 화려한 단풍잎이 휘날리는 숲.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연인들이 나들이를 올 법한 숲이었다.
······물론 지금이 3월 달 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단풍잎이 발목까지 가득 차오르다 못해 퇴적되는 것이 소름 돋긴 하지만.
-lv3 겨울 철새 하르마다.
-lv7 자이언트 꽃뱀.
-lv5 봄의 식인꽃 멘들라미.
이곳은 환상의 숲 테레이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한 곳에 모여든 곳. 축제라도 열린 듯 생명력이 왕성한 곳이다.
나는 이것이 숲의 요정 ‘페어리’의 자연 축복 덕분에 벌어진 일이란 걸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용용아. 잘 찾아봐라. 페어리 마을을 찾아야 한다.”
-크릉~.
나는 페어리 펜던트로 소형화한 용용이를 어깨 위에 올려두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 주위를 공중에서 배회하는 용용이.
물용이를 어항에 처박아두고, 자신이 내 곁을 지키는 데 신났는지 쌩쌩 잘도 날아다닌다.
-짹짹?
물론 참새만큼 작아진 만큼 숲에 있는 큰 새들이 먹이감처럼 내려다봤지만.
-키야아아악-!!!
-삐이익!
용용이의 분노 어린 포효 한 번에 기겁하고 달아난다.
아무리 덩치가 작아졌어도, 내용물은 그대로.
용용이의 기세와 마나가 적어진 건 아닌 만큼, 우렁찬 포효 속에 담긴 마나를 느끼고 질겁하는 것이다.
-키야악?
나에게 잘했냐는 듯 칭찬을 바라는 눈치로 바라보는 용용이.
“그래. 우리 용용이가 최고다.”
나는 그 모습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기분 좋은지 머리를 더 내밀며 그르렁거린다.
그렇게 살기를 흩뿌려 숲에 있는 포식자들을 물러서게 한다.
환각을 보게 하는 꽃가루 따위 ‘바람의 길’로 날려버려서 맡지 않는다.
‘······생각보다 찾기 어렵군.’
다만 그렇다고 해서 페어리 마을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상의 숲 테레이아가 지나치게 넓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작 게임 속 장소는 당연히 알고 있지만, 현실에 구현돼있는 모습은 전혀 다르니까.
게임은 플레이어를 위해 대단히 압축적이고 실용적으로 축소되어 있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종일 숲을 헤매서 밤이 됐을 때였다.
콰광.
“?”
저 멀리서 굉음이 들린다. 흙먼지가 나부낀다. 아무래도 전투가 발생한 모양.
‘무슨 일이지?’
-크릉?
나는 졸고 있는 용용이를 깨워서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한다.
다행히 말을 타고 바람의 길까지 사용하니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꽃밭이었다. 사시사철 꽃들이 가득 모여 있는 꽃밭.
-lv13 페어리. (부상.)
-lv27 님프. (암흑 조종.)
-lv25 자이언트 베어 (암흑 조종.)
.
.
그리고 그곳에는 그토록 찾고 있던 페어리가 보였다.
엄지손가락만 한 인간이 나비 날개를 달고 있는 요정.
그리고 그 요정을 포위한 건 ‘님프’와 몬스터였다.
이쪽은 인간 크기의 요정으로, 나방의 날개가 달린 종족이다.
본래 페어리와 마찬가지로 숲의 요정이나, 현재 무슨 이유인지 사악한 기운에 지배당하는 모양이다.
‘찾았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깨닫고 반색한다.
한걸음에 내달린다.
***
“정신 차려! ‘네레이’! 사악한 돌에 지배당하면 안 돼!”
“크으으······!”
고오오!
날개를 다친 페어리 소녀 페이가 울먹이며 친구 님프를 부른다.
하지만 님프는 들리지 않는지 공격적인 소리를 낸다. 손에 물의 송곳을 만든다. 사악한 마력 때문인지 딱딱한 고드름이 된다.
‘어쩌다 네레이가 이렇게 된 걸까? 분명 이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페이는 다친 날개를 바르르 떨며 생각했다.
님프는 본래 숲에서 페어리와 함께 공존하던 요정. 사이가 돈독한 종족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운석처럼 검은 파편이 떨어졌다. 함께 거주하던 마을 쪽으로.
처음엔 페어리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정화하려고 했지만, 그 파편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이 너무 강했다.
결국 페어리들은 결단했다.
마정석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임시 거처를 만들기로.
하지만 님프들은 마을에 남았다.
환상의 숲 테레이아를 번영시킨 '어린 세계수'. 이 성스러운 나무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윽고 님프는 물론, 마을 인근에 있던 모든 생명체를 검게 물들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검게 변한 님프와 생명체는 마치 타락이라도 한 듯 매우 심한 공격성을 갖게 됐다.
“어떻게 해야······? 나는······.”
공포에 몸을 벌벌 떤다.
달아나는 것도 이제 슬슬 한계. 날개가 물 먹은 듯 너무 지쳤다.
하지만 평생 함께한 친우를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요정족은 수백 년을 사는 존재.
만약 친구가 없다면 숲에서 평생 무료하게 살아야 하는 만큼, 그 어느 종족보다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니까.
물론 사악한 돌로 강화된 님프를 공격한다고 해서 전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이내 결심이 선다.
“······아냐. 됐어. 그래도 널 다치게 할 수 없어.”
하지만 페어리는 이내 반격을 포기했다.
손을 내린다.
“어차피 내가 죽는 거라면, 너라도 무사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은 확정적. 그저 할 수 있는 건 평생 친구였던 님프를 다치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뿐.
그렇다면 차라리 아무 저항하지 않는다.
그 벗이 본래 나쁜 이가 아니란 걸 알기에. 함께한 소중한 기억이 남아있기에.
무료한 삶보다는 함께한 감정을 중요시 여기기에.
도저히 공격 마법을 실행할 수 없는 것이다.
-크르르!
다크 님프가 울며 흑마법을 시전한다. 마치 나무 스태프를 쥐라고 고함치는 듯한 모습.
그러나 페어리는 그 모습에 안도하고 툭 스태프를 땅에 떨어뜨린다.
제 친우 또한 저리 타락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기억해줬음에 기뻐하면서.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러서라. 페어리.”
“?!”
촤아악.
변수가 생긴 건 그때였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사내 목소리에 흠칫 뒤를 돌아본다.
언제부터인지 숲에 들어온 갈색 머리 젊은 사내.
날카롭고 매섭게 생긴 인상이지만, 시전한 너무나 친절하고 섬세하다.
우선 물의 방패를 만들어서 자신을 보호한다.
도대체 얼마나 강화된 물의 방패인지 초급 방어 마법 주제에 흑마법으로 강화된 고드름이라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자 사내를 노려보는 님프와 자이언트 베어.
“······! 위험해! 인간. 지금 저들은 사악한 돌에 강화가 돼서 너희 정도는 어림도!”
-크아아······?
그러나 그들은 감히 사내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오히려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이 얼어버린다.
마치 최상위 포식자, 그래. 숲의 위대한 수호자 용족과 눈이 마주친 듯 제 잘못을 깨닫는 것이다.
“노움.”
-우우움!
촤아악.
상대가 몸이 굳어버렸을 때, 인간은 흙의 정령 노움을 부른다. 인간이 어떻게 정령과 계약했는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다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흙으로 묶어버린다. 자이언트 베어는 팔 한 번 휘두르면 멧돼지를 때려잡을 크기지만.
도대체 저 흙의 최하급 정령 노움이 무슨 수를 썼는지 가볍게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한다.
“당신은······?”
이에 페어리 페이는 당황해서 인간을 쳐다본다.
본래 환상의 숲 테레이아는 환각 가루가 흩뿌려져서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는 곳.
그런데 난데없이 이방인이 들어와서 자신을 구해준 상황이니까.
척.
그때 인간 사내는 가슴에 박아둔 펜던트를 보여준다.
네잎 클로버 모습은 평이했으나, 페어리인 페이는 알아봤다.
소형화 권능.
이는 페어리 종족만의 특권. 정말로 소중한 제 친우에게만 선물하는 권능이 새겨져 있다는 걸.
저걸 선물할 정도라면 저 인간은 페어리 종족과 매우 친밀했던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내는 그런 펜던트를 보여주며 본론을 말한다.
“나는 페어리 친우의 부탁을 받고 사악한 돌을 정화하기 위해 온 ‘네일’이라고 한다. 너희 여왕님을 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