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침몰의 악마 (1)
금빛 해골 해적단 본거지 ‘브리스톨’ 섬.
초승달처럼 생긴 이 섬 해안가에는 수백 대의 해적선이 비상 대기하고 있었다. 어민들이 쓸 법한 소규모 정찰선부터 마법 방어 결계까지 펼쳐진 최신형 군함까지.
이들만으로도 대륙 서부 전체 군함을 압도하는 전력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중 절반이 반쯤 곪고 썩은 유령선이라는 점.
파손되고 반파된 흔적까지 있음에도 능히 되살아난 함대라는 점이다.
“······아르타 섬에서 통제하던 ‘씨 드레이크’가 당했다, 이 말이지.”
애꾸눈의 해적왕 '데비존'은 여전히 발을 구르며 말한다.
이제 39명 남은 부두목들은 겁에 질린 채 '일제히 ‘그렇습니다!’라고 우렁차게 고함친다.
해적왕 데비존.
그들의 군주이자, 서부 바다의 지배자인 중년 사내는 무언가 불만스러울 때마다 발을 연거푸 구르므로.
그의 분노에 띠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이다.
“부두목까지 파견한 곳이 전멸당하다니. 혼자 당했을 리는 없겠고. 누구냐. 감히 내게 도전하는 영주가?”
데비존은 이미 심장이 멈춰버린 언데드.
불로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네크로맨서였으니까.
침을 꿀꺽 삼키며 침묵한다. 죽은 자에게 느껴지는 한기. 자신들도 죽이고 언데드로 일으킬까 두려워한다.
-그오오오!
데비존의 뒤에서 둥둥 떠 있는 악마 또한 기괴한 존재였다.
침몰의 악마 ‘버뮤다’.
데비존을 해적왕까지 올려준 '해마' 모양의 거대한 악마.
미궁에서 갇혀 살기 싫었기에 데비존와 계약해 몸을 좀비로 바꾸고 기생하는 악마였다.
부두목들은 버뮤다의 눈치까지 보며 쩔쩔맸다.
“그게······. 아무래도 오르비스 공작 베아트리체가 범인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군함이 아르타 섬을 점거했습니다. 아무래도 서북부 바다로 뻗어 나갈 계획을 꾸리는 것 같습니다.”
“······.”
그 말에 데비존은 한참이나 침묵한다. 이윽고 발 구르기를 멈춘다. 자신의 금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연다.
“오르비스 공작 베아트리체라. 끌끌, 한심한 년. 서부 바다는 그년 애비가 와도 내게 안 됐거늘.”
실제로 해안가 영주들이 연합해서 해적 소탕 작전을 시도한 적 있었다.
물론 그 결과는 참패. 해적왕 데비존의 언데드 함대를 늘려줬을 뿐이다.
“그래, 귀족 연합 함대를 몰살시킨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 오랜만에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데비존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신의 기함 ‘바다의 무법자’에게 명한다.
“모두 닻을 올려라! 아르타 섬으로 출격한다!”
뿌우우우우-!
브리스톨 섬에 거친 뿔피리 소리가 울린다.
그 명령에 3층 전투함 바다의 무법자가 전투 준비를 한다.
정박해 있던 수백 대의 해적선도 일제히 닻을 올린다.
해적들이 노예들에게 채찍을 가한다. 자유민이었으나 강제로 끌려온 노예들은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해적왕 데비존은 아랑곳 않고 명한다.
“버뮤다. 잠들어있는 ‘크라켄’을 불러라. 긴 잠을 견딘 포상을 줄 것이다!”
-그워오오오!
크라켄.
해적왕 데비존의 상징과도 같은 몬스터.
그 힘은 무려 씨 드레이크과 동급인 상급 대형 몬스터였으니.
부글부글.
브리스톨 섬 앞바다에 거품이 낀다. 마치 용암이 끓듯 수면 위로 솟구치는 물방울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수년간 심해 속에 잠들어있던 초대형 괴수가 깨어난다.
-그오오오오-!!!
썩은 살이 드러난 거대한 문어가 해수면으로 오른다.
초대형 군함 3대를 합친 듯한 크기. 그 크기만큼은 씨 드레이크를 압도한다.
죽은 후, 수백 년간 사체가 썩어 발효한 것 같은 악취가 뿜어진다.
본래 수백 년 전 죽어 심해에 가라앉았으나, 침몰의 악마 버뮤다가 끌어올려 언데드로 되살린 괴수니까.
해적왕 데비존은 오랜만에 제 벗을 보며 잔혹하게 웃었다.
“가자! 크라켄. 뭍 놈들에게 왜 바다에서 우리에게 수십 년간 대항하지 못했는지 보여주자!”
-고오오오오!
그의 호령에 악마의 힘으로 더욱 강화된 크라켄이 하늘 높이 물을 내뿜으며 전진한다.
수백 척의 해적선도 돛을 활짝 펼치고 출항한다.
***
나는 검은 로브를 온몸에 두르고, 아르타 섬에서 오르비스 공작령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해적왕 데비존.
그 존재를 처단하기 위해선 3대의 오르비스 군함만으로는 불가능하니까.
오르비스 군함은 물론, 다른 세력과 연합하여 그 규모를 맞추는 것이 필수 과제였다.
‘우선 프레야 교단부터 들러야겠지.’
선과 질서의 교단 프레야.
이곳은 악마와 언데드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광기의 집단이니까.
해적왕 데비존이 부리는 크라켄과 언데드 함대.
그들에게 치명적인 신성력과 질 좋은 군함을 다수 보유한 세력이다.
따라서 오르비스 영지에 있는 북부 중앙 교단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시장에서 사람들이 잡담하는 소리가 들린다.
“야, 들었어? 황제 폐하의 군대가 지금 북부를 들쑤시고 있다는데?”
“네카르 경께서 대륙 공적인 마신 문두스의 권능을 빌리셨데잖아. 그것 때문에 출동한 거래.”
“헉. 아니, 북부를 구하실 때 쓰셨다고 안 그랬어? 무슨 황제는 지가 막아줄 것도 아니면서, 급한 불 끈 사람이나 체포하나?”
“쉿, 말조심하게. 그러다 불경죄로 크게 경칠라.”
“······.”
나는 검은 로브를 더 깊게 쓰고 정체를 숨긴다.
대륙 최악의 공적 마신 문두스.
그 존재를 사칭했기에 현재 황제에게 추격당하고 있으니까.
아마 전 대륙에 수억 페니의 현상금이 걸렸을 거다.
‘다행이라면 북부에서 내 여론은 그리 나쁘지 않군.’
오히려 날 동정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도 그럴게 어찌됐든 북부를 구하기 위해 강림했으며, 그렇게 살아남은 군인들이 각 영지로 돌아가 목격담을 전했으니까.
하여튼 프레야 교단 주교실로 직행한다.
혹여 눈에 띌까 봐 플라잉 마법이 걸려있는 매직 오브를 타고 곧장 4층 창문으로 날아오른다.
끼익.
“······형제님? 누구십니까? 어찌하여 창문으로 오셨는지?”
-lv43 프레야 북부 대주교 ‘안드레아’.
굉장히 당황하는 프레야 북부 대주교.
도둑인 줄 알고 당장 신성력을 뿜어내려 한다.
그러나 내가 내미는 배지를 보고 곧장 표정을 푼다.
“백금 배지? 헉. 그렇다면 설마 당신이?”
“그렇습니다. 동부 마법사 네카르. 교단 형제분께 도움을 청하려 왔습니다.”
나는 과거 대륙 북부를 구원한 보답으로 받은 플레티넘 배지를 선보였다.
대륙 어디에 가도 프레야 교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배지.
지금껏 백금 배지를 받은 자는 프레야 교단 역사에서도 성서에 나올 법한 성인(聖人)급 인물밖에 없었기에, 설혹 황제의 추격을 받고 있더라도 능히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해적왕 데비존이 악마와 해적 군함을 이용해 프레야 교민들을 몰살시키려고 하는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
나는 베아트리체에게 빌린 오르비스의 눈꽃반지를 내밀었다.
이는 북부의 패자 오르비스 공작임을 상징하는 보물이었으므로.
지금 내가 북부 전체를 대변해서 이 자리에 왔음을 알린 것이다.
“설마 해적왕 데비존이 악마의 힘까지 이용하다니. 아 물론, 해적 근멸은 우리 교단의 숙원 사업이기도 했습니다.”
북부 대주교 안드레아는 곧장 협력할 것이라 알린다.
악마 소탕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실질적인 문제도 있다.
프레야 교단은 전 대륙에 포교된 종교. 전국 각지에 기부금과 물자가 들어온다.
그리고 해적들은 그런 돈 되는 선박이나 조운선을 집중적으로 약탈하니까.
필연적으로 해적과 극과 극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해적왕 데비존의 세력이 너무 강해 감히 나서지 못했을 뿐.
“하지만 북부는 전통적으로 기사단과 육군이 강하고, 해군이 약했습니다. 과연 우리만으로 바다의 약탈왕을 막아낼 수 있을런지······.”
대주교 안드레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하기야 북부는 설인을 막느라 정신없었으니까.
그간 해군은 최소한으로 투자되어, 해안가 포대와 함께 해적을 막는 용도로만 사용됐던 탓이다.
물론 고작 북부 함대와 프레야 함대만으로 맞설 거면 애당초 나서지도 않았다.
나는 대주교를 안심시킨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는 대륙 전체가 나설 일이니.”
뿌우우.
실제로 오르비스 항구에는 수많은 군함이 집결했다.
먼저 동부의 황금상회 군함들. 네하드람이 보낸 전투함들이 동맹으로서 도착했다.
현재 북부는 동부의 최대 교역처.
그들이 해적들에게 노력질 당하여 수로를 빼앗긴다면 동부 최대 상회인 황금상회 또한 큰 위기이기 때문이다.
부우우우.
“마침 다른 영주들도 오는군요.”
그러나 황금 상회만 온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군함이 오르비스 항구로 집결한다.
서부, 중앙, 심지어 대륙 10대 상회의 깃발까지 모여든다.
[과연. 북부 최대 영웅이 되신 베아트리체 공의 호출인가. 동맹군이 많군.]
[향후 바다의 지분은 이번 전쟁에서 투자한 만큼 나눠 갖는 겁니다!]
그들 또한 수십 년간 해적들에게 상선을 약탈당하면서 진절머리가 났으므로.
더구나 북부 대륙의 지배자 베아트리체가 나서는 판국에 합류하지 않으면 더는 기회가 없으리란 두려움에 힘을 합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해적왕 데비존을 넘어설 순 없겠지.’
나는 환하게 웃는 대주교와 달리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다.
이미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해적들과 전쟁을 해봤으니까.
해적들은 수많은 약탈을 하며 실전경험이 녹록한 자들.
거기에 탐욕왕 엘드리치의 막대한 자금 투자가 함께하니, 북부 전체와 해안가 영주들이 모두 힘을 합쳐도 벅찰 만한 전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악마란 족속들은 말 그대로 사기적인 존재.
홀로도 대륙 7대 성인급으로 날뛰는 괴물들이다.
제대로 된 퇴치법을 모른다면 드넓은 바다 아래 모조리 물고기 밥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한다면 제대로 된 퇴치법만 알면 훨씬 쉽게 상대 가능하다는 거고.’
나는 경직된 얼굴 근육을 억지로 움직여서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단 한 마리만 잡아도 지역 성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전설적인 존재 마계의 악마.
나는 그들을 이미 몇 번이나 퇴치해봤으니까.
따라서 안드레아 대주교에게 말한다.
“우선 전진기지인 아라타 섬으로 오시지요. 작전 설명은 오르비스 공작이신 베아트리체 공께서 따로 해주실 겁니다.”
***
잠시후, 서북부 흑해 아라타 섬.
매번 어업만 하던 평화로운 시골 작은 섬에 수많은 군함이 집결한다.
바위섬은 하나 같이 요새화돼서 청동 포대가 들어선다.
본섬에 있는 영주성을 중심으로 철통같이 방어하는 모습.
‘아마 지금쯤 저 안에 있는 영주들이 작전을 듣고 있겠지.’
그 속에서 나는 뒷일을 베아트리체에게 떠넘기고 홀로 나왔다.
“물용아. 이번 작전은 네가 가장 중요하다. 알고 있지?”
-크오오?
나는 물용이에게 고기를 먹이며 매끈한 피부를 쓰다듬는다.
씨 드레이크의 평소 성격대로 온순한 물용이. 자꾸 내 품에 안겨 붙는다. 옷이 다 젖는다.
‘결국, 해적왕 데비존의 함대는 대부분 언데드 함.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다.’
언데드 특유의 수복력으로 끝없이 부활할 뿐.
신성력으로는 녹일 수 있지만, 그거엔 한계가 있으니.
해군들이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 내가 침몰의 악마 버뮤다의 본체가 담긴 그릇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해적왕 데비존 또한 뛰어난 네크로맨서. 그런다고 언데드 함정 전부를 바로 잃어버리진 않겠지만.’
그릇이 파괴된 순간, 부활시킬 수 있는 마력에 한계가 생길 터.
이후 유령선을 파괴하면 영구히 소멸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해군들과 함께 서부 바다의 악몽 크라켄을 물리칠 기회가 되겠지.
이 모든 작전을 위해선 물용이의 활약이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그릇을 파괴하는 게 늦는 순간, 그만큼 해군들이 전멸하게 될 테니.
“가자. 최대한 빨리 다녀와야 한다.”
-크릉!
【바람의 길 lv4.】
나는 용용이를 타고 전속력으로 비행한다.
물용이 또한 바닷속에서 초고속으로 잠영하며 쫓아온다.
“저기군.”
그렇게 도착한 것은 해적왕 데비존의 소굴 브리스톨 섬 인근 해협.
서부 바다에서도 특히 거대한 섬이다. 그 섬 주위 작은 섬에 착륙한다. 인근 숲에 용용이를 숨긴다.
“물용아. 가자. 침몰의 악마 버뮤다의 그릇을 찾으러.”
-크오오.
이후 나는 물용이와 심해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용용이가 물속에 들어갈 순 없으니까. 잠시 두고 간다.
-크르릉?
다만 갑자기 못마땅하게 우는 용용이.
물용이만 챙기니까 굉장히 서운한 눈치다. 숲에서 빠져나와 내 곁으로 다가온다. 자길 떠나지 말라는 듯 옷자락을 물고 안 놔준다.
나는 그런 용용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용용아, 널 버리는 게 아니라니까? 지금은 들키면 안 되니까 숲에 숨어 있으라고.”
-······크릉.
해적들에게 용용이가 들키면 위험할 수 있으니 숲에 숨어 있으라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용용이로선 그런 건 모르겠고 그저 물용이랑만 놀아준다고 생각하는 모양.
-키야아악!
-크우우?
날개를 활짝 펴며 물용이에게 괜히 위협한다.
그러자 겁에 질려 바닷속으로 첨벙, 들어가 버리는 물용이.
같은 드레이크라고 해도, 나와 함께 전투하며 성장했으니 크기도, 격도 다른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노움. 용용이랑 잘 놀고 있어.”
-우움!
따라서 나는 노움에게 사과 한 박스를 쥐여주며 용용이와 숲에서 놀게 했다.
그제야 안심하는 용용이.
간식은 잘했을 때 몇 개씩만 먹여야 하는데, 예상외의 큰 지출이다.
“후, 물용아. 이제 괜찮다. 출발하자.”
【물의 감옥 lv3.】
나는 내 머리에 어항 같은 물의 감옥을 만들었다.
본래 사람을 익사시키려고 사용하는 마법이지만, 안쪽에 있는 물을 빼고 윈드 마법으로 공기를 넣는다. 간이 산소통이 완성된다.
첨벙.
이후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물용이와 함께 수영한다.
-크오옹?
설마 사람이 바닷속에서 숨을 쉴 줄은 몰랐는지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는 물용이.
‘대단히 춥군······. 빨리 해결하고 돌아가야겠다······.’
나는 덜덜 떨며 생각했다.
날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차가운 바닷물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서부 바다다보니, 별로 차가운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이 있으니까.
나는 지독한 독감에 걸리기 전에 서둘러 심해 속으로 들어간다.
쐐애애액.
다행히 주인의 마음을 아는 건지, 초고속으로 전진하는 물용이.
과연 바다의 지배자 씨 드레이크답다.
우린 짙은 청색으로 도배된 도화지 같은 심해를 잠수한다. 해상과 달리 햇빛이 적게 들어서 점점 빛이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침몰한 해적선 궁전. 그 안에 버뮤다의 그릇이 있다.’
그 후 침몰의 악마 버뮤다의 근거지를 찾는다. 물론 생각보다 찾기는 쉬웠다.
이곳은 본래 해적왕의 앞바다.
심해 곳곳에 침몰한 해적선들이 널려 있었으니.
‘찾았다.’
침몰한 선박이 점점 많이 쌓여 있는 곳으로 향한다.
침몰의 악마 버뮤다.
그 존재는 제 영역에 있는 선함을 침몰시키는 걸 유흥처럼 여기는 악마였으니.
데비존이 해적들을 통합하고 바다의 왕이 될 수 있었던 힘을 두 눈으로 체험한다.
-사아아?
-파아아?
-lv23 인어. (타락화.)
-lv24 인어. (타락화.)
.
.
선함들이 산처럼 황폐히 쌓여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인어들의 서식지였다.
군함과 해적선, 선함에는 온갖 보물이 가득하니까.
바닷속에서 사는 인어들로선 싸구려 럼주조차 매우 희귀한 음료일 터이니.
이곳이야말로 이들의 궁전이자 화려한 보금자리였다.
-사아아악!
-피야아!
다만 침몰의 악마 버뮤다의 하수인으로서, 외부 침입자를 극도로 경계한다.
저 침몰한 군함 가운데 한 곳에는 버뮤다의 본체인 ‘진주’가 있을 테니.
그 진주를 지키기 위해서 흑마법으로 물의 화살을 쏴댄다. 일부는 산호로 만든 창을 들고 내게 겨눈다.
만약 흑마법사 측이면 신분증을 내라고 협박한다.
“미안하지만, 이쪽이 시간 없어서 신분증은 따로 안 가져왔거든.”
물론 나는 해적왕의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신분증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하지만 그자들을 일일이 찾아내는 것도 귀찮고, 신분증을 증명하는 것도 번거롭다.
신분증은 본래 제 마나에만 반응하는 것이니까.
“따라서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가도록.”
【에어 블레스트 lv1.】
물론 죽어서 말이다.
나는 생각보다 징그럽게 생긴 인어들에게 붉은 눈의 스태프를 발현한다.
빛이 극히 없는 심해 속에서 붉은 눈이 번뜩인다.
빛을 적게 쐬는 인어와 심해어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흉흉한 빛.
곧이어 녹색 상급 마법진이 발현하고.
콰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인어 떼를 일직선으로 쓸어버린다. 쿠과과광, 무너지는 부패한 선박들.
흙먼지와 함께 휩쓸려 나간다.
-사아아······?
-퍄아아······!
무시무시한 살상력에 기겁하는 인어들.
공포에 질린 모습이 역력하다.
“과연 상급 마법은 격이 다르군.”
나는 물 위로 둥둥 떠 오르는 인어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후 무너진 해적선 궁전으로 돌진한다. 막아서는 인어들을 쓸어버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