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씨 드레이크 (2)
영주의 막내아들 ‘아빈’은 해양 몬스터가 빼곡한 아르타 섬 바다를 내려다본다.
비록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전부를 알아보진 못했지만······.
달빛에 비친 몬스터 일부만 봐도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소드 피쉬······. 대양에서 상어보다 더 포악한 놈들. 검처럼 뾰족한 콧등으로 배에 구멍까지 내는 괴물들이다. 저 녀석들이 여긴 왜?’
소름이 돋는다.
평소 어업 활동을 할 때, 소드 피쉬 한 마리만 나타나도 조업을 포기하고 달아나거늘.
현재 이곳엔 그런 소드 피쉬가 적어도 수백 마리 있었다.
심지어 소드 피쉬보다도 위험하다는 전기 해파리와 초대형 가오리, 빙하 뱀장어까지 펄떡거린다.
너무 좁은 곳에 뭉쳐 있어서 극도로 스트레스받고 부대끼는 모습.
만약 저놈들이 조금만 더 앞으로 풀려나 아르타 섬을 습격한다면, 말 그대로 주민 전체가 몰살될 것이다.
영주의 자식으로서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다.
‘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아세’ 큰형······. 이 중요한 상황에서 어디로 가버린 거야.’
실종된 큰형 아세를 떠올린다.
시골 촌놈인 아빈이 보기에도 아세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훤칠한 키와 외모, 큰 형다운 포용력과 모두를 결집하는 리더십이 있으니.
[······내가 시골섬에 갇혀 살기 아깝다니. 그런 말 하지 마. 내 가족과 친우, 이웃들이 다 여기에 있는데 나 혼자 섬 밖에서 잘 살면 뭐해?]
과거 큰형 아세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섬을 번영시키자. 남들이 우러러보고 추위를 참고 놀러 오도록.]
[그러러면 우선 씨 드레이크부터 물리쳐야겠지. 내가 차기 영주가 될 테니 너는 해룡을 물리칠 마법사가 돼줘. 넌 바람 마법에 재능이 있으니,]
그러면서 가문의 없는 예산을 털어서 1써클 바람 마법서를 사주었다.
비록 가문이 비루하여 2써클 마법서를 사진 못했으나.
10번이고 다시 읽은 마법서적. 항상 품에 안고 지니는 아빈의 보물이었다.
그런 믿고 의지할 만한 형이 실종됐다. 이 가문의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그만 돌아가요. 네카르 경. 더 있다간 위험합니다.”
심지어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의 냉철한 목소리가 들린다.
난생처음 본, 숨 멎도록 아름다운 도시 귀족 여인.
이제 겨우 10대 후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녀 베아트리체.
믿기지 않지만, 무려 오르비스 공작이라고 한다.
시골촌놈인 아빈 또한 그 의미는 알고 있다.
북부의 패자. 드넓은 혹한의 땅을 지배하는 절대 영주였으니.
‘······오르비스 공작마저 우릴 버리는 건가?’
그녀의 말 한마디에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이 꺾인다.
하기야 오르비스 공작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저 많은 괴물과 굳이 왜 맞서 주겠는가?
서운함과 동시에 현실에 체념이 든다.
초대형 군함을 끌고 온 오르비스 공작마저 포기한 상황.
북부 최고 영주조차 포기한 상황에서, 그 누가 자신들을 도와주겠는가?
“아니. 이 녀석들 상태가 심각하다. 오르비스에서 군함들을 데려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험해.”
이에 감히 답한 건 젊은 사내였다.
감히 오르비스 공작에게 반말로 답하다니!
아빈은 깜짝 놀라서 그를 홱 바라본다.
‘······잠깐. 네카르? 그 이름은, 들어본 적 있어. 동부의 구원자! 아룡기사라고도 불리는 사내라고.’
아빈은 그제야 상대를 알아본다.
대륙 동부 전체의 멸망을 막아낸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영웅. 심지어 북부마저 구해낸 존재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지금 데려온 군함은 고작 3척이에요. 저 많은 해양 몬스터를 상대할 수 없어요.”
베아트리체는 담담하게 말한다. 마치 본대의 함대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는 듯.
그때 네카르는 베아트리체에게 말한다.
“해적들이 해양 몬스터들을 조종하고 있다.”
“예? 해적이요?”
“그래, '검은 구슬'로 조종하는 모양이군. 그걸 파괴하면 될 것 같다.”
검은 구슬?
설마 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해적들이 움직이는 게 보인단 말인가?
“파괴할 방법이 있나요?”
“내가 다녀오지.”
네카르는 그렇게 말하고 품 속 호루라기를 삐이이익 분다.
-키야아아악-!!!
이에 하늘에서 날아오는 샌드 드레이크.
난생처음 보는 대형 비행 몬스터. 그 크기는 가히 초대형 군함과 맞먹을 정도였으니. 그 피어에 모두가 얼어붙는다.
네카르는 군함에서 포탄처럼 하늘로 솟구친다.
이후 하늘에 날고 있던 샌드 드레이크 등에 탑승한다.
아룡기사. 자신의 이명이 왜 아룡기사인지 증명한다.
“날 믿고 기다려라. 다만 너희가 위험해질 경우, 먼저 후퇴해도 좋다.”
그렇게 말하고 어둠 속으로 방향을 돌린다.
수많은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홀로 돌진한다.
***
쐐애액.
【바람의 길 lv4.】
나는 용용이를 타고 하늘 위로 날아든다.
오랜만에 느끼는 칼바람의 감각. 밤바람이 피부를 때린다.
북부 바다였기에 축축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추울 만큼 시원했다.
“후, 그래. 이거지. 내가 무슨 팔자에도 없는 배를 탄다고.”
-크릉!
용용이가 동의한다는 듯 콧바람을 내뿜는다.
하기야 하늘을 초고속 비행하는 용용이로선 자신을 두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한 군함을 타는 게 이해가 안 됐을 테니까.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칫 잘못하면 해적과 해양 몬스터, 그리고 씨 드레이크까지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니까.’
물론 현재 상황을 잊진 않는다.
아직 해적들이 수천 마리의 해양 몬스터와 씨 드레이크를 세뇌하는 상황.
자칫 잘못하면 그들 모두에게 포위당할 수 있으니.
【아쿠아 레인 lv3.】
촤아악. 쐐애액!
먼저 바닷물을 끌어모아 융단 폭격을 날린다.
안 그래도 통제가 풀려서 위험한 해적들에게 대재앙을 선사한다.
“끄아아악! 해적선이 꿰뚫렸다. 어서 복구해!”
“침입자다! 아르타 섬 촌놈 개새끼들이 물의 마법사를 고용했다!”
해상에서 비명이 메아리친다.
해적들이 비상사태임을 직감하고, 시끄럽게 비상종을 친다.
과연 최정예 해적단 아니랄까 봐, 정규군 못지않은 반응이다.
“침입자는 너희들이고. 쓰레기들아.”
【에어 블래스트 lv1.】
다만 나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바다에 주인은 따로 없다지만, 말은 바로 해야지.
쐐애애액-!!
새로 익힌 마법을 시전한다.
과거 괴조 카디악을 물리치고 얻었던 클라인의 ‘바람의 마도서’.
이에 기록돼 있던 5써클 마법이다.
드디어 5써클이 됐기에 익힐 수 있었던 마법.
보조 마법 바람의 길과 헤비 레인도 알차게 써먹었지만, 무려 상급 마법인 에어 블레스트는 그것들과도 격이 달랐다.
콰과과과광-!!!
일직선으로 땅을 가르는 바람기둥.
수십 명의 해적이 방패를 들든, 실드 마법을 펼치든 무시하고 쓸어버린다.
실로 무시무시한 파괴력.
‘즉발로 발동하는 마법이 이런 파괴력을 갖다니!’
5써클에 막 오르고 처음 발현하는 상급 마법. 바람의 마법답게 경쾌하고 파괴적이다.
괜히 내가 이 바람의 마도서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스킬 발동이라도 ‘아쿠아 스톰’의 경우, 물이 모여 소용돌이치기 때문에 영창 이후에도 발동 자체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니까.
비록 아쿠아 스톰에 비하면 광범위하진 않지만, 활용도는 이쪽이 훨씬 높았다.
‘문제는 저쪽이군.’
-크오오오!
-lv54 씨(sea) 드레이크. (타락화.)
저 멀리에서 날뛰고 있는 씨 드레이크.
괴로운지 거대한 몸을 비틀고 있는 푸른 물뱀에게 날아간다.
아무래도 검은 구슬 때문에 머릿속이 고통스러운 모양.
【워터볼 lv4.】
쐐애액, 파아앙!
나는 즉시 해적이 들고 있는 검은 구슬들을 명중시킨다.
스킬로 맞추는 것이니 빗나갈 리 없다.
쨍그랑 소리가 난다. 해양 몬스터가 본격적으로 난동부린다.
-크롸아아아!
그러나 아직 머릿속이 분노로 가득찬 씨 드레이크.
머리를 하늘 높게 꼿꼿이 세우고, 바다를 내려다본다. 해적들이 이 모든 원흉이라는 걸 눈치챈 모양.
콰아아앙!!
푸른 꼬리로 내리친다. 비명을 지르며 쓸려나가는 해적들. 대형 해적선을 단단히 옭아매고 힘으로 부숴버리기까지 한다.
알아서 잘하는가 싶어서 잠시 바라만 보고 있을 때,
-크오오······!!
“?”
씨 드레이크가 갑자기 고개를 쳐든다. 붉은빛이 사라진 눈을 내 쪽으로 번뜩인다.
아무래도 나와 용용이 또한 적으로 인지하는 것 같다.
-후우웁, 고오오-!!
배가 터질 듯이 숨을 들이켠다.
아이스 브레스.
혹한의 바다에서 서식하던 해룡답게 얼음 속성이 가득 담긴 용의 숨결을 내뿜으려는 것이다.
“아직 피아 구별을 못 하는 모양이구나.”
【기간테스의 힘 lv1.】
나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물론 처음이니까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부하를 거둘 때는 조기 교육이 중요하므로. 힘으로 확실히 교육한다.
콰아앙!
아공간 게이트에서 기간테스의 거대한 손을 꺼낸다. 물용이의 목을 조른다. 해적들에게 강제로 방향을 튼다.
쏴아아아-.
그와 동시에 작렬하는 한빙의 숨결.
새하얀 얼음 결정들이 쏟아진다. 차가운 연기가 피어올라 겉으로 보기엔 아름답지만, 이에 닿은 해적 수백 명이 그대로 동사한다.
“도, 도망쳐라! 씨 드레이크가 우리를 노린다!”
“아룡기사! 동부의 구원자가 이곳까지 당도했다!”
해적들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전의를 완전히 잃고 통제 불능이 된다. 쪽배를 타고 뿔뿔이 흩어진다.
“이쯤에서 네가 해양 몬스터를 부려서 뒤쫓으면 딱일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나는 씨 드레이크의 목을 조른 기간테스의 손을 다소 풀어준다.
애초에 나는 이 녀석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포획하려는 거니까.
아직 나를 원망 섞이게 바라보는 씨 드레이크.
-······크르릉?
【드래곤 피어 lv2.】
그러나 곧 내 눈과 정면으로 마주치더니 일순 움직임을 멈춘다.
대략 3초 정도, 나와 내가 타고 있는 용용이를 바라본다. 공포에 질려 바둥거린다.
이제야 내가 진짜 동족임을 파악한 모양. 용용이 때와 같은 반응이다.
“걱정마라. 난 널 해칠 생각 없으니.”
호감의 뜻으로 가방에서 큰 고깃덩어리를 던져준다.
나도 씨 드레이크를 괴롭힐 이유가 없으니까.
-크르르······?
그제야 내가 적대자가 아님을 눈치챈다. 같은 용족으로서, 호감을 느낀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민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기분이 좋은지 내게 거듭 머리를 내미는 녀석.
용용이와 마찬가지로 아룡족은 머리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제야 기간테스의 손을 완전히 치운다.
“앞으로 네 이름은 ‘물용이’다. 잘 기억하도록.”
-크르?
나는 손가락으로 씨 드레이크를 가리키며 ‘물용이’라고 반복했다.
다행히 용용이와 마찬가지로 아룡족이라 영특한지 금방 알아듣는다.
“자 그럼 저 녀석들, 움직여.”
-크르?
“해양 몬스터들, 움직이라고.”
다만 명령을 가르치는 게 어려웠다.
바다에 쌓여있는 해양 몬스터들과 해적들을 번갈아 가리켜봤지만, 고개를 갸웃할 뿐 알아듣지 못한다. 먹으라고 착각했는지 몇 마리 잡아먹기도 한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용용이가 포효한다.
-키야아아악-!!!
역시 나와 함께 한 세월이 긴 만큼 내 의중을 빨리 파악하는 용용이.
해양 몬스터들에게 급강하하며 피어를 발산한다. 나와 함께 성장한 탓에 날개를 활짝 펴니 저 거대한 씨 드레이크를 크기로 압도한다.
해양 몬스터 일부가 기겁하며 해적 쪽으로 달아난다.
-크롸아아!
그제야 물용이도 이해했는지 해양 몬스터에게 포효해서 해적들을 쫓는다.
용용이의 시범을 보고 나서야 감을 잡은 모습.
-고오오오오-!!
더구나 씨 드레이크는 더욱 특별했다. 단순히 포효하는 게 아닌, 바다 위에서 빙빙 돌아 소용돌이를 만들며 해류를 만든다.
쏴아아아-!!
그러자 거대한 바다가 해적 쪽으로 파도친다. 수천 마리의 해양 몬스터들이 일제히 파도 흐름을 따라 방향을 바꾼다.
등 뒤에 바다의 지배자 씨 드레이크가 분노하여 포효하는 상황이므로.
생존 본능이 발동해 명을 따르는 것이다.
‘······이건 기대 이상인데?’
오싹,
나조차 그 거대한 장관에 소름 돋는다.
설마 이렇게 수천 마리의 해양 몬스터를 전부 조종할 줄이야!
이는 엄청난 권능이었다. 향후 해전을 벌일 때, 해양 몬스터 군단을 부릴 수 있는 권능을 발현한다면 말 그대로 대재앙일 테니까.
-크릉~.
높은 바위에 착지한 용용이는 다 제 덕이라는 듯 코를 위로 세우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후배 교육을 잘했으니 칭찬해달라는 눈치.
“그래, 너도 잘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용용이도 쓰다듬어주었다.
물용이는 바다에서만 부릴 수 있지만, 용용이는 전 대륙에서 맹활약할 수 있으므로.
혹여 서운한 마음 들지 않게 잘 대해준다. 바다 위에서 해적들이 섬멸당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
해적 소탕 전투는 삽시간에 끝났다.
애초에 제대로 된 전투도 아니었다.
압도적인 화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야영하고 있는 해적들을 밤에 기습한 거니까.
심지어 마법으로 대충 쓸어버리고, 잔챙이들은 해양 몬스터로 추격했으니.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네카르 경! 무사하셨습니까? 몸은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
다만 다음 날 아침, 바위섬에서 만난 베아트리체는 내 손맥에 맥부터 짚었다.
큰 전투를 느끼고 마나 혈관이 무사한지 확인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그녀는 내가 설인왕 이미르와의 결투로 마나 고갈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으로 알고 있으니.
혹여 내상을 입었을지 걱정하는 것이다.
“덕분에 무사하다. 그리 신경 안 써도 된다.”
“······.”
나는 별일 없다는 걸 말해준다. 애초에 드래곤 하트 덕분에 마나 회복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빠르니까.
그제야 자신이 너무 과했음을 깨닫고 주춤, 한 걸음 물러나는 베아트리체.
“그보다 해적 소굴은 대충 정리됐나?”
“네, 덕분에 손쉽게 해결했어요.”
베아트리체는 내 곁에 평온히 있는 물용이를 쓰다듬는다. 날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지 자꾸 얼굴을 부벼서 바닷물에 젖는다.
마침 바위섬에 있던 지하 창고에서 해적들에게 붙잡혔던 사람들이 나온다.
“우와아아! 자유다. 북부 기사들이 구조하러 왔다!”
“오르비스 깃발이다! 베아트리체 공과 아룡기사 네카르 경께서 구하시러 왔다!”
햇빛을 못 봤는지 꾀죄죄하고, 흙먼지 뒤집어쓴 노예들.
대부분 본래 자유민이었으나, 해적들의 약탈로 붙잡힌 자들이다.
오르비스 기사단은 그들을 묶은 밧줄과 쇠창살을 직접 잘라준다. 억울하게 노예가 된 자들을 해방해준다.
“······아세 형님!”
“아빈!”
그중에는 길 안내자 아빈이 찾고 있다는 실종된 장남 아세도 있었다.
둘은 서로를 부둥켜 끌어안는다. 다시 뭍을 못 밟을 줄 알았는지 눈물을 삼킨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 아르타 섬 영지는 오르비스 공작 저하와 아룡기사 네카르 경의 자비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곧이어 차기 영주인 아세가 연거푸 허리 숙인다.
앞으로 북부가 바다로 진출할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하는 아르타 섬.
그 섬 차기 영주가 이토록 호의를 보인다는 건 퍽 기쁜 일이었다.
“나는 챙길 것이 있어서 잠시 다녀오지.”
“앗, 그렇군요. 다녀오세요.”
다만 나는 지하 창고로 들어가서 본래 목표물을 찾는다.
‘찾았다!’
[이름 : 용의 비늘 (MASTER.)]
[설명 : 용의 급소를 가리는 비늘. 다른 비늘과 달리 거꾸로 달려있어서 ‘역린’이라고 부른다. 만약 이 조각을 모두 모으면 매우 특별한 힘이 깨어날 것 같다.]
[특수 효과 : (미해금.)]
* 만약 용의 비늘을 3개 모두 모으면 특별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2/3)
나는 오색빛깔의 용의 비늘을 발견하고 웃음기를 감추지 못한다.
세 번째 용의 유산 ‘ㄷ. 드래곤 블러드’.
그에 깃든 힘인 ‘역린’을 얻을 수 있는 비늘이다.
만약 다 모은다면 극적인 순간 몇 배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건 물론,
대지의 기억에서 보았던 화이트 드래곤의 ‘헤일 스톰’을 재현할 수도 있는 궁극의 권능 중 하나.
‘마지막 조각은 분명 가이탄 호수에 있다고 했지.’
-다음 용의 유산은 ‘ㄷ. 드래곤 블러드’로 용족의 활화산 같은 분노를 극대화할 생명력의 힘이 잠들어있습니다!
-‘서부’ 대륙 ‘가이탄 호수’에 잠들어있습니다!
가이탄 호수.
풍요로운 서부 대륙에서도 특히 거대한 호수. 짙은 안개가 끼어있으며, 수많은 실종자가 생겼다는 호수다.
나는 눈을 차분히 감는다. 그 호수에 숨겨진 비밀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직감한다.
-우움~. 움~!
“?”
그때, 흙의 정령 노움이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시선을 끈다.
이젠 도둑질의 달인이 된 건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보물을 들고 온 모양.
물론 나 또한 가져오는 금은보화를 마다할 생각 없기에 냉큼 받는다.
‘이건······?’
[이름 : 코나흐타의 왕관 (ANCIENT.).]
[설명 : 고대 포워르 일족 위대한 왕 ‘코나흐타’가 생전 썼던 왕관. 과거 기간테스 일족을 봉인한 숭고한 힘이 깃들어있다.]
[기본 효과 : 발동 시, 물, 얼음 속성 마법을 사용할 시, 발동 가능. 효과를 20% 증폭한다. (쿨타임 하루.)]
[특수 효과 : 미해금.]
* 위대한 왕 코나흐타의 유물은 총 4가지입니다. 이 모든 유물을 모아야 진정한 힘이 개방됩니다!
미친!
나는 아이템 설명을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려 에이션트 등급. 이는 고대 성물에 비견되는 아이템이었으니까.
심지어 <별들의 전쟁2> 최고 고인물인 나조차 처음 보는 아이템이었다.
더구나 무려 4개의 조각이 모여야 하는 아이템이라니!
‘이거, 다 모으면 가히 성물 프레야 여신의 고대 석상급. 아니, 그 이상이겠군······!’
희열이 차오른다. 노움의 머리를 쓰다듬고 푸른 에메랄드가 박힌 왕관을 챙겨서 밖으로 나온다.
그때, 베아트리체와 아르타 섬 장남 아세의 대화가 들렸다.
“······아, 그런데 걱정입니다. 이놈들의 대화를 살짝 엿들었는데, 이곳에 해적왕 데비존이 눈독 들이는 아이템이 있다고 합니다.”
“네? 해적왕 데비존이요?”
“예, 무슨 왕의 유물이라고 했는데······. 땅속 깊은 곳에 묻혀 있어서 반드시 구하려고 한답니다. 그걸 다 모으면 서부 바다는 물론, 전 대륙의 바다를 장악할 수 있다나?”
“!!”
장남 아세는 노예 신분이었을 때, 들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전한다.
방금 얻은 코나흐타의 왕관에 관한 이야기.
‘이거 잔챙이들이 아니었군.’
나는 사방에 흩뿌려져 있는 금빛 해골 해적단의 싸늘한 시체를 내려다본다.
‘만약, 내가 아는 해적왕 데비존이라면 ······. 반드시 되찾으려 할 것이다.’
해적왕 데비존.
이미 악의 교단의 성물을 받아 언데드 해적선을 이끌며 서부 바다 전체를 지배하는 군주다.
그를 따르는 해적만 거의 3만에 달한다. 군함만 3천 함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자.
북부 군함 전체가 1천 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고려해본다면, 바다 위에서는 가히 적대할 만한 세력이 없을 정도.
더구나 그는 탐욕왕 엘드리치와 어울릴 만큼 제 황금과 보물에 광적인 인물이었으니.
그것이 무려 고대 성물급 아이템이라면, 필히 해적들을 이끌고 올 것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군.’
나와 베아트리체 또한 악의 교단 제5군단장 탐욕왕 엘드리치와 협력하여, 바다에서 니케아 제국을 위협하는 절대악 데비존을 계속 그냥 둘 수는 없었으니.
그 녀석들에게 왕관을 넘겨 줄 수 없다.
맞서 싸우는 수밖에.
더구나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바다에서의 싸움이라면 물용이가 있으니까.’
-크롸아아!
힘차게 포효하는 물용이. 드넓은 바다에 지배자다운 모습이다.
더구나 내 주력마법이 물 속성 마법.
물의 명가 크라우드로부터 엡실론의 비전 마법을 정식으로 배울 거니까.
물러서지 않는다. 대해전을 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