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마신강림 (魔神降臨) (1)
설산검 레오파드와 세미 리치 데라한.
그들이 정면으로 부딪칠 때마다 지형이 뒤바뀌고, 설산이 흔들린다.
6클래스 기사와 죽음을 초월한 리치의 결투.
그 두 존재의 결투는 가히 세상을 놀랍게 할만했다.
“그만 사라지거라. 데라한.”
고오오!
먼저 설산검 레오파드가 주로 덤벼들었다. 전신을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한 만큼 어지간한 공격은 무시하며 질주한다.
키 3m의 거구의 리치에게 초근접해서 황금빛 검기를 번뜩인다.
서걱, 쿠과과과광-!!!
횡으로 검기를 작렬한다.
사신이 목숨을 수확하듯 수백 마리의 설인을 쓰러뜨린다. 홀로 전장의 분위기를 뒤바꾸는 위력.
저 멀리 숨어든 세미 리치 데라한 또한 상체와 하체를 분리한다.
그러나 막상 레오파드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왜냐하면,
[인간 기사. 검기로 베어내면 죽으리라는 건 너무나 필멸자다운 생각이로구나.]
뚜둑, 뚜두둑.
세미 리치 데라한은 몇 번을 박살 내도 곧장 뼈가 이어 붙었기 때문이다.
-크워어어!
더구나 바닥에 쓰러진 설인들도 일어난다.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색돼서 좀비로 달려드는 설인들.
비록 살아있을 때에 비하면 힘이 크게 약해지고 움직임도 둔화됐지만, 레오파드의 앞길을 가로막고 지치게 하기엔 충분했다.
[북부 최강검 레오파드 폰 랭커스터. 과연 제법이지만 그뿐이다. 육신의 한계를 초월한 나와, 벌써 지쳐버린 인간 기사.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세미 리치 데라한은 상반신 뼈에 깃든 보라색 불꽃을 비웃듯 넘실거렸다.
무려 3만의 설인을 지배하는 건 데라한이 아닌, 만년설의 악마 아우둠라의 권능.
데라한은 마력 소모 없이 그저 아우둠라에게 명령만 내리면 되었으니.
수많은 설인을 전부 상대해야 하는 설산검 레오파드와는 애초에 상황 자체가 달랐다.
쿠웅!
으아아악!
레오파드가 침묵하는 사이, 성벽 한 곳 한 곳이 점령된다.
성벽을 빼앗기면서 지형적 이점도 잃어버리는 인간 연합군.
모두의 머릿속에서 어느새 ‘패배’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을 때였다.
-크워어?
-그오오오?
문득,
3만의 설인들이 일제히 멈춘다.
이대로 천년산성을 계속 공격하면 몇 시간 안에 완전히 함락시키는 압도적인 상황에서.
영문을 모르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갑자기 같은 편 설인을 향해 나무 몽둥이를 휘두른다.
얻어맞은 설인 또한 당장 일어나 반격을 가한다.
쿠과과광-!!
-크워어어-!!
공성을 멈추고 내분을 시작한다.
“이, 이건?”
“무슨?”
인간 병사들조차 난데없는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제 눈을 비비고 창 뒤편으로 제 발등을 찧으며 통증을 느낀다.
그러나 두 눈앞에 보이는 건 현실.
분명히 설인들은 천년산성으로의 진격을 멈추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만년설의 악마 아우둠라, 이게 무슨 일이냐? 응답하라!]
치지직.
속세를 초월한 존재. 세미 리치 데라한조차 이 상황만큼은 예상 못 했는지 본부에 통신한다.
그러나 통신을 받지 않는 상대방에 분노가 점차 사그라들고, 아연실색한다.
베아트리체는 성문 위에서 지휘하던 중 이 장면을 목격한다.
“······설마?”
“베, 베아트리체 공! 혹시 아시는 바 있습니까?”
북부 영주들이 베아트리체를 부른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대답하는 대신 저 멀리 떨어진 대륙 최북단, 눈보라가 만개한 하늘을 바라본다.
‘네카르 경께서 작전에 성공하셨구나!’
베아트리체는 만개하려는 입꼬리를 내려 앉히고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만년설의 악마 아우둠라.
설인을 탄생시키고, 세뇌해 지배한다는 북부의 악마.
네카르가 그녀에게만 비밀리 말한 거악의 수족이라는 그 존재다.
설마 마계의 악마를 정말로 물리칠 줄이야.
베아트리체조차 이것만큼은 성공하리라 확신할 수 없었거늘.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다.
[이런······. 쓸모없는······. 피조물들······.]
세미 리치 데라한은 제 통제를 듣지 않는 설인들을 보고 이빨을 딱딱 부딪친다.
분한지 뼈밖에 없는 두개골에서 시커먼 연기를 사방으로 뿜어낸다.
순식간에 반전되는 전장에 진노한다.
[거의 다 온 상황이거늘······. 과연 하등한 피조물은, 일일이 조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더냐.]
뚜두둑!
새까만 마력을 줄기줄기 뿜어낸다.
주위 뼈를 흡수해 몸집을 크게 부풀린다.
불길하게 붉은빛을 형형하는 안광.
[어쩔 수 없구나······. 천년산성조차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위대하신 마계의 군주’께서 필히 분개하실 테니.]
의중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턱뼈에서 검은 연기를 한 움큼 토해낸다.
설인 군단을 이끌고 북부를 넘어 중앙 대륙까지 함락시키려는 원대한 계획을 포기한다.
[파괴하라. 북방의 거인들이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깡그리 없애버려라!]
쿠고고고고-!!!
눈밭에 설인 군단 전체를 드리우는 검붉은 흑마법진이 펼쳐진다.
폭주 마법진.
악마를 상징하는 육망성이 그려진 그 마법진 속에 있는 2만의 설인에게 사악한 마력과 강력한 권능을 부여한다.
뚜두둑, 꽈드득!
-크워어어어-!!!
설인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
안 그래도 인간보다 덩치가 배는 컸던 설인들이 더욱 커진다.
근육이 터질 듯 부풀고, 굵은 핏줄이 곤두선다. 피부는 검붉게 변하고, 눈 흰자위에 새빨간 실들이 가득 찬다.
“으으으, 으아아······!”
쿠과과광-!!!
그리고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한다. 두 주먹만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파괴한다.
천년산성 성벽이든, 인간 병사든, 기사단이든. 심지어 같은 편 설인조차 날려버린다. 본능의 파도가 인간들을 덮친다.
광란의 현장.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의 교리답게 본능과 무질서로서 세상을 지배한다.
“데라한······! 네 상대는 바로 나다!”
고오오오! 쏴아아아!
설산검 레오파드는 나약한 인간들만 노리는 데라한에게 다시 한번 황금빛 검기를 작렬한다.
하지만 몇 번을 파괴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금새 수복해버리는 세미 리치 데라한. 바닥의 폭주 마법진 또한 변함없이 검붉게 빛난다.
[큭큭······. 레오파드. 내 말했을 텐데. 나는 죽음의 율법을 벗어난 존재. 필멸자 따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고오오오!
데라한은 안광을 형형이 불태운다. 흑마법으로 땅을 박찬다.
[내 비록 널 죽일 순 없겠지만, 너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사령관은 죽일 수 있다. 내 친히 이년을 언데드로 일으켜 너와 맞서게 해주마!]
“······!”
그렇게 말하면서 천년산성 사령관 베아트리체에게 전속력으로 뛰어든다.
데라한은 이 모든 원흉이 오르비스 공작 베아트리체라고 생각했으므로.
설산검 레오파드를 피해 그녀를 죽이려는 것이다.
“베, 베아트리체 공! 어서 달아나십시오! 이곳에 남아있다간 죽습니다. 어서!”
“맞습니다! 사령관님께서 돌아가시면 전군이 흔들리니. 어서!”
베아트리체를 보좌하던 북부 영주들은 공포에 질려 대피를 권한다.
이대로 베아트리체가 가만히 있으면 곁에 있는 자신들도 위험하니까.
그래도 북부의 패자인 오르비스 공작을 두고 달아나진 않았다.
“아뇨.”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싸늘한 눈매를 빛내며 대피를 거절한다.
“제 병사들이 이곳에 있는데 어디로 달아난단 말입니까?”
치이잉.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리치를 향해 설화검을 뽑는다.
그녀는 어릴 적, 부모님을 여윈 후, 수많은 사람에게 버려졌으니까.
버려지고, 잊히는 고통을 아는 만큼 제 부하들을 버리지 않았다.
“북부의 용맹한 전사들이여! 들어라! 나 또한 너희와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니!”
또한,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한다.
“이곳은 인류의 최전선! 북부를 지키는 처음이자 마지막 관문이다! 만약 이곳이 뚫리면 제 동료들은 물론, 형제와 가족들이 저런 언데드로 변할 것이니!”
제 가족들을 상기시킨다.
천년산성 병사들 또한 제 가족은 있을 것이니.
성벽 아래에 폭주하는 설인과 언데드가 제 가족을 덮치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끝까지 싸워라! 죽음으로서 이곳을 지켜내라. 나 또한 죽어서 영혼이 될지언정 끝까지 함께 하겠노라!”
우와아아아아-!!!
병사들이 환호한다. 병사들은 자신들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는 사령관을 존경하는 법이니.
‘물론 내가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지만······.’
베아트리체는 가녀린 손을 꽉 쥔다. 그녀도 사실 알고 있다. 자신의 실력으론 아직 세미 리치를 상대할 수 없다고.
훗날 북부 최강검을 이어받을 재능이란 걸 들었지만, 아직 개화하지 못했노라고.
만약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 맞서 싸우다 죽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 곁을 지켜주시는 한, 나는 두렵지 않다.”
어느새 성벽 위로 당도한 거대한 리치를 노려본다.
설화검.
역대 오르비스 공작의 마나가 담긴 검. 제 친아버지 베네딕트의 마나 또한 담겨 있으니.
이 마나의 명예에 뒤처지지 않을 결의를 보인다.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검을 다잡을 때,
샤아아아아-!!!
등 뒤에서 태양처럼 찬란한 빛이 뿜어진다. 하늘 위 태양에 버금가는 강렬한 빛.
전장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빛이다.
“······!”
일순,
전장 전체에 침묵이 도래한다.
베아트리체는 의문을 가졌다. 도대체 등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하지만 강적 데라한이 제 눈앞에 온 상황에서 뒤를 돌아볼 수도 없는 법.
의문만 가지며 눈앞의 적에게 집중하려는데,
“위대한 공녀 베아트리체. 과연 네카르가 말한 그대로구나.”
뒤에서 당찬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감이 넘치는 말투.
스스로 태양처럼 빛나기에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젊은 여인. 그 존재가 또각또각 뒤에서 걸어온다.
[네년은······!]
세미 리치 데라한 또한 등 뒤의 여인을 알아보고 초점을 그쪽으로 맞춘다. 베아트리체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눈치.
어느새 베아트리체 앞을 지나친 의문의 여인.
그녀는 자체발광하는 빛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붉은빛이 섞인 금발의 머릿결에 티 없는 피부.
장미처럼 타오르는 붉은 검기를 뿜어내는 자.
한 손에는 새하얀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 여인이었다.
“프레야 여신의 대리인 루크레치아. 이교도 처단을 시작한다.”
번쩍!
대륙 7대 성인 루크레치아.
프레야 교단의 총 사령관인 그녀가 천년산성에 당도했다. 새하얀 검을 번뜩인다.
성검 듀란달.
악에게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는 고대의 검.
언뜻 보면 투박한 한 손검을 전력으로 내리친 순간,
쏴아아아아아-!!!!
빛의 파도가 세미 리치와 성벽을 감싸고,
-크워어어어어-!!!!
악에 물들었던 설인들이 용암에 닿은 듯 형체도 없이 녹아내린다.
우와아아아아-!!!
그 기적과도 같은 상황에 인간들의 함성이 일제히 터진다. 천년산성이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인 성녀 루크레치아는 이러한 상황이 너무 익숙한지 별 감흥 없는 표정이다.
그녀는 프레야 성기사단을 출격시킨 후, 베아트리체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보나 네카르는 어디에 있느냐? 그 아이가 그토록 바라던 '성물'을 가져왔노라."
***
나는 요툰헤임 산맥 본거지 ‘우트가르다 산’을 완전히 허물고 귀환을 시작한다.
“용용아. 조금만 더 힘내라. 이제 곧 마지막이니.”
-크릉.
【바람의 길 lv4.】
용용이를 타고 쾌속 비행해서 천년산성으로 돌아간다.
격한 전투로 용용이가 꽤 지쳤으나, 아직 투기를 잃지 않았다.
제대로 폭주하면 일주일 내내 날아다닌다는 샌드 드레이크인 만큼 여전히 초고속으로 날아간다.
우우웅.
[네카르 경······. 정말 무사하십니까?]
그때 고대 드워프 지하 갱도로 함께 들어온 레지스탕스 대원들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가방에서 통신 구슬을 꺼내 대답한다.
“그래, 대피는 잘 했나?”
[저희야 무사히 했습니다만······. 정말로 우트가르다 산 전체를 무너뜨린 겁니까······?]
믿기지 않는 듯한 목소리.
작게 들리는 잡담으로 ‘정말로 마신 문두스인 건가?’, ‘사칭하는 게 아니었어?’ 같은 반응이 들린다.
‘굳이 오해를 풀 필요가 없군.’
나는 사기를 위해서라도 굳이 정정하지 않는다.
“임무를 완수했으면, 서둘러 복귀해라. 천년산성에서 동료들이 죽고 있으니.”
복귀 명령을 내린다.
이에 따르는 레지스탕스 대원들.
치직.
[앗, 네카르 경. 급보입니다. 현재 천년산성에서 세미 리치가 날뛴다는 비보가 들어왔습니다. 이거 괜찮은 걸까요······?]
한참 뒤, 한 엘프 대원이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만약 천년산성이 먼저 무너진다면, 자신들은 사지로 직접 걸어가는 꼴이 되는 것뿐이니.
이를 걱정하는 것이리라.
나는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곧 루크레치아 예하께서 당도하실 것이다. 세미 리치 따위 걱정할 것 없으니 안심하도록.”
이후 통신을 끊는다.
실제로 세미 리치 데라한은 성녀 루크레치아에게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대륙 7대 성인.
프레야 여신의 화신이라는 천적 상성인데다가, 악을 절멸한다는 성검 듀란달까지 가지고 있는 여인이니.
거악 데힐라칸급 리치가 아니고서야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나는 그보다 다른 일을 걱정한다.
‘남쪽으로 갈수록 눈발이 강해지고 있다······. 이건 설인왕 이미르가 천년산성에 거의 당도했다는 뜻이겠지.’
고고고.
용용이 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검은 먹구름을 살핀다.
설인왕(雪人王) 이미르.
마계의 7군주 중 하나인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위를 차디찬 혹한으로 바꿔버리는 존재다.
본체의 힘을 완전히 되찾는다면 아르카나 대륙 전체에 빙하기를 드리워 기온을 뚝뚝 떨어뜨릴 대악마.
제7군단장 불사왕 데힐라칸을 능가하는 거악(巨惡)이다.
사악한 마기가 담긴 눈송이가 천년산성 측에서 내리기 시작한 걸 보아 시간이 촉박하다.
‘동부의 변 때처럼 내가 이미르의 심장을 노려야 한다. 그것만이 처치할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설인왕 이미르를 처치할 방법을 알고 있다.
고대 성물 ‘기간테스의 힘’.
본래 설인왕 이미르가 대륙 중앙까지 멸망시키기 위해 타락화하던 절대 반지.
오직 이 반지만이 태산 같은 거구를 가진 이미르를 막아설 수 있으니.
어서 내가 가서 합류해야 한다.
그런데,
-lv26 다크 엘프 하이림. (암흑 계약.)
-lv29 다크 엘프 베픈. (암흑 계약.)
정체불명의 존재가 갑자기 등장한다.
변수가 발생한다.
‘이건?’
-lv31 다크 엘프.
-lv33 다크 엘프.
.
.
천년산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포진된 수많은 다크 엘프.
그들이 내가 갈 길을 막고 있으니까.
-그워어어!
돌아가기에는 그들이 아이스 웜을 부려서 땅굴을 파고 있다.
아무래도 날 추격하던 도중, 레지스탕스가 판 지하 갱도를 발견한 모양.
저 지하 갱도로 레지스탕스 대원들도 복귀하고 있는 만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용용이를 몰고 지상으로 급강하한다.
“······교단의 적 네카르. 드디어 목표물이 나타났다.”
-lv42 다크 엘프 수장 모그리드. (암흑 계약.)
다크 엘프의 수장이 하늘을 향해 삿대질한다. 그와 동시에 3백 여 명의 다크 엘프가 일제히 화살과 흑마법을 쏴낸다.
아무래도 날 막기 위해 파견된 특별 부대가 맞는 모양.
‘이놈들도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군.’
【워터 실드 lv4.】
회피 기동하며 물의 방패를 펼쳐서 막아낸다.
하기야 악의 교단으로서도, 동부의 변을 겪으면서 내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내 전담 특별 부대를 만들어서 대비한 모양.
그 상태에서 본거지인 우트가르드 산이 통째로 무너졌으니, 긴장할 만했다.
지이잉, 고오오!
그때 모그리드가 흑마법진을 발동한다.
내가 있는 공중을 정육면체로 가둬버린다.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짓는 녀석.
“네놈은 우리 힘과 무질서의 교단 디메토르의 해방 계획에 중대한 차질을 빚었다. 이에 척살한다.”
“······.”
말은 당당하게 하지만, 뾰족한 귀는 빳빳이 선다.
왜냐하면 내 소문을 익히 들었을 텐데, 땅굴 파느라 진형도 없이 흩어져 있을 뿐더러
-키야아아악-!!
용용이가 자신을 포위한 다크 엘프들에게 거센 포효를 하고 있으니까.
종족 특성.
다크 엘프 또한 결국 엘프. 자연과 마나에 민감한 존재.
용족은 자연과 질서의 수호자인 만큼, 비록 아룡족일지라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힘으로 뚫고 갈 수도 있지만.'
힐끗,
천년산성 쪽을 바라본다. 이제 곧 설인왕 이미르와 결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니.
최대한 힘을 비축하면서 해결하고 싶었다.
상대로서도 나와 충돌하면 막대한 피를 흘릴 걸 알기에 잠시 침묵한다.
다크 엘프의 수장은 즉시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말한다.
“허나 우리 교단은 자비로운 곳. 만약 순순히 항복한다면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마.”
따라서 악의 교단으로 전향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이거 재밌는 생각이 나는군.’
나는 폭소를 참으며 근엄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전향하면 무슨 일을 하게 되지?”
“현재 교단 최악의 적 ‘마신(魔神) 문두스’가 북부에 강림했다는 소식이 있다. 우리와 함께 그 존재를 척살하게 될 것이다.”
모그리드는 회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말한다.
“또한 우리만 나서는 일이 아니다. 마신 문두스를 척살하기 위해 전 대륙에서 수많은 간부가 모이고 있다.”
만약 이에 성공한다면 나 또한 황족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그렇군. 너희의 뜻 알겠다.”
다만 나는 더욱 웃을 수밖에 없다.
저들이 말하는 마신 문두스. 북부에 강림했다는 교단의 적이 바로 나니까.
따라서 '연기'를 시작한다. 다급한 상황에서 귀찮은 것들을 일거에 물리칠 전략을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무엇이지?”
“마신 문두스를 척살한다면, 그 위치는 알고 있나?”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말.
모그리드는 자부심 넘치게 외친다.
“아직 그것까진 모른다. 허나 현재 교단에서 전력을 다해 찾는 중이다. 곧 찾아낼 것이다.”
결국 모른다는 말.
나는 슬슬 본론을 말한다.
“그럴 필요 없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가방에서 레지스탕스의 가면을 꺼내서 착용한다. 빛과 어둠의 가면.
그와 동시에 붉은색 마력석이 3개나 박힌 스태프를 꺼낸다. 붉은 눈의 스태프.
마신 문두스가 사용했다는 전승이 남아있는 모습.
북부에 강림했다는 마신 문두스의 인상착의를 그대로 장착한다.
“엇, 그건······?”
이상한 낌새를 느낀 모그리드.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고오오오.
【드래곤 피어 lv2.】
붉은 눈의 스태프가 번뜩인다.
악마의 눈이 깨어난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그와 동시에 전력으로 드래곤 피어를 발산한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을 공포에 질리게 한다는 드래곤 피어를.
특히 엘프들이 민감하다는 자연의 분노를 내뿜는다.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나는 굵은 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다크 엘프들을 향해 말한다.
“내가 마신 문두스.”
서서히 경악으로 물드는 모그리드.
“너희가 찾던 북부의 재앙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