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중력 마법 (2)
나는 얼음 지대 틈에 빠진 척후병들에게 다가갔다.
설산에서 악명 높은 크레바스에 빠진 병사들.
아무래도 구조용 밧줄이 닿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모양이다.
“혹시 마법사이십니까?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간절하게 바라보는 십인장 아슬란.
하기야 용용이가 날아들어서 구해주기엔 얼음 사이의 틈이 너무 좁았다.
별 방법이 없음을 앎에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물어보는 것이리라.
“걱정 마라. 내겐 손쉬운 일이니.”
【어스 lv3.】
쿠구구궁.
나는 노움을 소환한 후,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러자 내 손짓에 맞춰서 크레바스 속 척후병들이 있는 땅이 부드럽게 올라온다.
“······마, 마법사? 흙의 마법사시다!”
“살았다! 정말로 크레바스에서 빠져나왔어!”
그러자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참 침묵한다.
지긋지긋하던 눈을 밟고 환호성을 지르는 척후병들.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제 뺨을 때리는 자도 있었다.
“어떻게? 아무리 흙의 마법사라도 이 정도 섬세한 조종은······?”
다만 척후병 십인장 아슬란은 멍한 표정으로 한참 날 바라본다.
하기야 어지간한 흙의 마법사는 얼음을 잘못 건드리다가 역으로 떨어뜨리는 경우가 대다수일 터니.
그러더니 그것이 실례라는 걸 자각했는지, 번뜩 정신 차리고 예를 차린다.
“모두 차렷. 은인분께 경례!”
척.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해맑게 웃고 있던 시골 청년들이 일렬로 서며 각진 경례를 한다.
아슬란은 마지막으로 내게 경례를 한 후 손을 바로 하며 말했다.
“마법사님께서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희 천년산성에서 오늘 일을 정식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네카르 폰 크라우드다.”
“그러시군요. ······예?”
나는 대놓고 이름을 밝혔다.
이에 아슬란은 수첩에 내 이름을 받아적다가 퍼뜩 정신 차리고 3초간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
나와 용용이를 반복해서 본다.
-크르릉!
용용이가 검은 눈을 번뜩이며 아슬란과 눈을 마주친다.
아슬란은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아룡······. 기사······. 네카르······?”
그제야 내 정체를 알아봤는지 혼잣말을 읊조리는 아슬란.
하기야 부하들이 크레바스에 빠져서 워낙 정황이 없었을 테니, 샌드 드레이크가 다시 보이는 것이리라.
“하르모르 산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나는 슬슬 경악하는 반응이 지겨웠기에 말을 잘랐다.
“아, 예! 바로 저쪽에 있는 산입니다!”
“혹시 빙조 흐레스 벨그의 둥지가 어디에 있는 줄 아는가?”
“흐레스 벨그 둥지는 하르모르 산 북 방향 3/4 중턱에 있습니다. 오전 5시부터 7시. 정오부터 2시.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사냥에 나섭니다.”
척후병답게 어지간한 정보는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들이 자세히 지형을 분석한 지도 중 하나를 넘겨준다.
‘역시 쓸모가 많군.’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지도를 받는다.
“너희들은 이만 가봐라.”
“헛, 그럼 경께서는······?”
짐작 가는 곳이 있는지 뜨악한 표정.
곧이어 흐레스 벨그가 숨어 있는 둥지 쪽을 흘겨본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봐야 할 곳이 있다.”
펄럭.
나는 구조한 척후병들을 남쪽 천년산성으로 돌려보내며 용용이에 오른다.
타임어택.
적이 성물 기간테스의 힘을 타락시키기 전에, 천년산성이 무너지기 전에, 베르너 공작을 몰아내야 한다.
그리고 중력 마법은 이를 이루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였다.
목표를 상기하며 표정을 굳힌다.
홀로 적지를 향해 날아간다.
***
스코틀린 레지스탕스 지부.
베아트리체는 쉴 틈 없이 장부를 기록한다.
“베아트리체 대장님! A방향 23번째 길에서 금광이 발견됐습니다!”
“아가씨! C방향 13번길에서 은광이!”
“고대 드워프 왕가에 있던 초고열 용광로를 찾았습니다! 잘만하면 재가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너진 미궁을 갱도로 수리하는 레지스탕스.
엘프들이 정령술로 길 안내를 하고, 드워프들이 개척하는 방식이다.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간만에 큰일을 맡았기에 동분서주한다.
‘다들 기뻐 보이네요.’
베아트리체 또한 가슴 한편이 흐뭇했다.
몸은 부서질 듯 힘들었으나, 장부는 여유로워졌으니.
만성적인 재정 부족으로, 대원들 장비는커녕 의약품조차 제대로 구비 못 하던 못난 지도자였거늘.
조직의 대표이자, 가장으로서 모처럼 뿌듯한 것이었다.
'더구나 정식으로 네카르 경과 협력도 체결했으니.'
장기적인 비전도 마련했다.
네카르가 어디론가 떠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 구슬로 통신해왔으니까.
[나는 북부에 원하는 성물이 있다. 기간테스의 힘. 베르너 공작이 비밀리 흑마법으로 타락시키고 있는 성물이지.]
충격적인 전언.
만약 확인만 된다면, 베르너 공작이 흑마법사들과 연관돼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될 이야기.
[만약 너희 엘프와 드워프가 성물을 정화할 ‘세계수의 이슬’을 넘긴다면 베르너 공작을 상대하는 데 협력하겠다.]
하기야 아무리 동부의 구원자라도 홀로 북부 전체와 싸울 수 없는 일이니.
흑기사와 맞설 세력으로 베아트리체와 레지스탕스를 선택한 것이다.
‘세계수의 이슬이 귀한 보물이긴 하지만······. 대원들 목숨보다 중하진 않겠지.’
세계수의 이슬.
실제로 세계수의 이슬은 아니고, 1,000년 이상 된 엘프목에서 나온 이슬. 그중에서도 특히 마나 농도가 99% 이상 된 보물을 말한다.
물건을 정화하거나, 마법 아티펙트를 강화하는데 큰 효과가 있는 아이템.
엘프 마을의 최고 보물 중 하나지만 흔쾌히 허락했다.
당장 쓸 물건도 아닐뿐더러, 베르너 공작을 몰아내고 북부 전체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값싼 대가이므로.
그렇게 네카르와 레지스탕스가 정식 협약하게 된 것이었다.
“어라, 베아트리체님.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안색이 어두우세요.”
“······.”
다만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낯빛이 나쁜 베아트리체를 보고 오해한다.
그녀는 오르비스 공작 앞에서 계속 무표정을 연기한 지 수년이 지나자,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미소가 잘 지어지지 않았다.
“아니요. 문제없습니다.”
베아트리체는 담담한 어조로 레지스탕스 대원을 돌려보낸다.
이윽고 혼자 있을 때, 손거울을 꺼내고 손으로 제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본다.
착 내려앉은 눈매.
긴 속눈썹 속에 잠든 눈은 해맑음도, 발랄함도 거리가 멀다.
그렇게 씁쓸히 손거울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베아트리체님! 어디 계십니까! 급한 일입니다!”
“?”
레지스탕스 대원 하나가 다급하게 뛰어온다.
또 탄광을 찾은 걸까?
베아트리체는 기쁜 마음을 숨기며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큰일 났습니다! 지금 근거지 ‘알바헤임’에서 긴급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
다만 이번에는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
베아트리체는 다급히 보고서를 읽어봤다.
“베르너 공작이······. 알바헤임 인근 마을 전체를······. 흙 마법으로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인근 민가를 모조리 무너뜨려서라도 레지스탕스 근거지를 몰살시키려 한다는 내용.
일전 네카르가 강물을 옮겨서 막아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모습이다.
베아트리체는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지금 당장 간부들을 집결시키십시오. 긴급 통신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전투 대원을 긴급 소집했다.
***
고오오오.
나는 용용이를 타고 눈 내리는 숲을 초저공 비행했다.
‘눈보라의 악마 니키타의 복수를 하기 전에 움직인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의 제6군단장 이미르.
그 거악은 다른 여타 거악들과는 성질이 다르다.
압도적인 힘과 크기.
핏속에 들끓는 용맹은 때론 무모하기도 하고, 직관적이기까지 하니.
제 부하가 당했다는 분노, 동부 교단을 멸망시킨 자가 나타났다는 불안이 합쳐져서 무슨 일을 충동적으로 벌일지 모르니까.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돌아간다.’
고대용 또한 예언했다.
나비 효과.
내가 벌인 일이 어떤 엄청난 변수로 작동할지 모른다고.
따라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한다.
그러기 위해선 힘과 시간이 모두 필요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이 ‘타임어택’인 이유다.
쐐애액.
척후병들이 준 지도상 하르모르 산에 도착한다.
이후, 얼음 바위에 조용히 착륙해 몸을 숨긴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50분. 이제 곧 흐레스 벨그가 먹이를 찾아 떠날 테니.
‘······저놈이군.’
나는 용용이와 숨죽인 채 흐레스 벨그가 있다는 동굴을 바라본다.
-삐야아악-!!!
그곳에는 온몸을 푸른색 깃털로 가득 채운 새가 일광욕하고 있었다.
양쪽 날개를 펼쳐서 골고루 햇볕을 쬐는 빙조.
묻은 눈이 녹으며 찬란한 무지개를 띄운다.
그 모습은 고고하기도 하고, 우아하기까지 했다.
-lv51 빙조 흐레스 벨그.
물론 그 레벨은 괴물이었다.
무려 데힐라칸과 맞설 때의 엡실론과 같은 레벨.
-lv21 킹 순록 (사망).
그런 빙조 앞에는 아침 식사였던 킹 순록 사체가 놓여있었다.
어지간한 성체 곰보다 거대한 킹 순록의 뼈.
그러나 지금은 빙조가 펼친 날개 한쪽 그림자에 모두 가려진다.
-삐이이익-!!
펄럭, 펄럭.
이후 30분쯤 지나자, 빙조가 때가 되었다는 듯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점심 사냥에 나선 것이다.
‘······지금이다.’
-크오오.
나는 흐레스 벨그가 없어지고, 한참이나 기다린 후, 빈 둥지로 날아들었다.
너무 오래 기다려도 흐레스 벨그가 돌아올 테니까.
저런 괴물과 괜히 교전할 생각 따위 없다. 최대한 전투를 피한다.
쿠웅.
흐레스 벨그의 둥지 앞에 착륙한다.
킹 순록 사체가 놓여있는 곳 바로 앞, 빙조가 태평하게 일광욕을 쬈던 곳으로.
탈피 이후 덩치가 한 단계 더 커진 용용이는 빙조와 마찬가지로 킹 순록 사체가 작아 보일 만큼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삐약?
-삐야악?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푸른 깃털을 모아 만든 둥지에 새끼 빙조들이 삐약거렸다.
‘징그럽게 크군.’
-lv15 새끼 빙조.
-lv14 새끼 빙조.
새끼조차 키가 나보다 두 배는 크다.
심지어 무슨 새끼 주제에 어지간한 성체 몬스터보다 레벨이 높았다.
제법 자란 새끼들이 날 빤히 내려다본다. 마치 벌레를 쳐다보는 듯한 잡아먹으려는 표정.
그구구궁.
-lv31 프로즌 가디언.
이는 새끼들을 지키는 얼음 골렘 덕분이기도 했다.
빙조 흐레스 벨그는 제6군단장 설인왕 이미르가 특히 아끼는 특수 전력.
혹여 침입자가 들어설 것을 막기 위해 프로즌 가디언을 배치한 거다.
‘저놈을 죽이면 곧장 경보 마법이 울리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용의 구슬을 포기할 건 아니다.
“이 또한 자연의 순리다.”
고고고.
나는 손에 막대한 마나를 모은다.
빙조 흐레스 벨그는 홀로도 작은 산을 얼려버릴 만한 대재앙이니까.
인류의 미래를 위해 새끼 또한 제거할 수밖에 없다.
콰아아아!
이후 작렬하는 아쿠아 스톰.
고통 없이 새끼들을 소멸시킨다. 주위에 눈이 많아 습기가 많았으며, 4써클에 오른 후 마나 부담이 덜해진 덕이다.
삐용! 삐용! 삐용!
눈의 골렘도 함께 폭파한다. 마법 경보가 울린다.
지금부터는 정말 초읽기다.
둥지 속에 숨겨진 보물을 빠르게 찾는다.
“찾았다.”
[이름 : ■■.]
[설명 : ■■.]
[효과 : ■■.]
시스템 창으로 해석되지 않는 구슬.
그저 예쁜 돌처럼 둥지 구석에 박혀있던 구슬이지만.
[이름 : 용의 구슬 #3. (MASTER.)]
[설명 : 고대 시대 만들어진 용의 유산 중 하나. 모든 구슬을 모으면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효과 : 현재 봉인된 상태입니다.]
-용의 구슬을 모으셨습니다. (3/3).
드래곤 아이로 바라본다.
실상은 다음 용의 유산이 잠들어있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지금 내 유일한 살길이기도 하지.’
내가 아무리 미친 짓을 한다고 한들, 전부 누워볼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거다.
이미 고대의 석판을 합쳐보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다.
침을 꿀꺽 삼킨다.
-경고! 용의 구슬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3/3)
-강력 경고! 막대한 양의 힘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고대의 힘이 깨어납니다!
-플레이어에게 막대한 페널티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조각을 집어 들자, 강력한 경고 창이 나타난다.
그와 동시에,
번쩍-!!! 쿠과과광-!!!
구슬에서 막대한 빛과 열이 뿜어진다.
특성 드래곤 하트에 버금가는 거대한 마나와 함께.
빙조 흐레스 벨그의 동굴이 완전히 파괴된다.
-신규 특성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시스템 창이 나타난다.
나는 곧장 확인했다.
-특성 창을 확인하시겠습니까?
“확인.”
<현재 보유 특성.>
[1) 허약한 몸. (BAD). ]
[2) 엘리멘탈 마스터 (SUPER RARE.)]
[3) 드래곤 하트 (MASTER.)-용의 유산 활성화 : ㄱ. 드래곤 아이(MASTER.), ㄴ.드래곤 윙즈(MASTER.)]
무사히 목적을 이뤘다!
드래곤 윙즈.
혹시나 해 확인해본다.
[특성 : 드래곤 윙즈 (NEW, MASTER.).]
[설명 : 용의 날개. 만물의 영장이자 대륙의 수호자인 용족은 아르카나 대륙에 작용하는 질서의 법칙을 비틀어 막강한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는 가볍게는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것부터, 무겁게는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짓눌러 파괴하는 대재앙을 실현할 수 있다.]
[특수 효과1 : 활성화 시, 마나의 날개 형성.]
[특수 효과 2: 활성화 시, 스킬 ‘중력 제어 lv1’ 발동 가능.]
“미쳤군.”
시스템에 분명히 명시돼 있다.
중력 제어 마법.
8써클 대마법사라고 알려진, 마신(魔神) 문두스의 비전 마법이자, 오르비스 대학살을 자행한 궁극의 마법 중 하나.
그 마법을 터득했다고 분명히 적혀있으니.
-용의 유산을 모두 모으면 특별한 힘을 깨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시스템 창.
-다음 용의 유산은 ‘ㄷ. 드래곤 블러드’로, 용족의 활화산 같은 분노를 극대화할 생명력의 힘이 잠들어있습니다!
-‘서부’ 대륙 가이탄 호수에 잠들어있습니다!
“······!”
드래곤 블러드.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종결급 컨텐츠였던 드래곤 레이드.
그때 드래곤이 생명력이 일정 이하로 감소하면, 폭주 상태에 접어들면서 마력이 2배, 3배로 증폭됐으니까.
‘악과 파괴의 교단 군단장들과 맞설 때, 꼭 필요한 특성이다······!’
내 한계 이상의 적, 이제부터 내가 상대해야 할 녀석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놈들이니까.
‘비록 내가 제7군단장 불사왕 데힐라칸의 ‘화신체’를 한번 소멸시킨 적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화신체일 뿐이니까.’
향후 ‘본체’로 강림할 군단장들은 그보다도 훨씬 강할 것이다.
설정상 제1군단장 ‘심연왕(深淵王) 프로세피나’부터 제7군단장 불사왕 데힐라칸까지 서열순은 아니지만······.
원작 <별들의 전쟁2>는 결국 게임.
나중에 나오는 군단장들일수록 성장한 플레이어를 압도하기 위하여,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으니까.
실제로 제1군단장 심연왕 프로세피나는 무려 프레야 여신과 한번 대적한 적 있는 궁극의 악 중 하나였다.
그러한 거악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순간적이나마 지금보다 몇 배의 화력을 낼 비장의 카드가 필요했다.
반드시 구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는 가정 하긴 하지만.”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인제 그만 천년산성 이남으로 달아나기로 한다.
왜냐하면, 용의 구슬을 3개 다 모은 순간, 하르모르 산에서 터져 나온 강렬한 빛과 굉음, 마법 경보 때문에 대륙 최북단 요툰헤임 산맥에 거대한 쇠종이 시끄럽게 울렸으니까.
【아룡기사······! 교단의 적 주제에······. 감히 내 권역에 함부로 발을 디딘 것이냐-!!】
쿠구구궁.
제6군단장 설인왕 이미르가 깨어난다.
저 멀리서 앉아있던 작은 설산이 일어난다. 고함이 메아리가 되어 쩌렁쩌렁 울린다.
그가 잠들어있던 ‘우트가르다’와 이곳 하르모르 산 사이에는 몇 개나 되는 산이 있거늘.
어찌나 거대한지 이미르가 일어나는 게 내 드래곤 아이에 선명히 보인다.
데힐라칸과 달리, 단순 화신이 아니라, 마계의 육신까지 가져온 상태로 부활한 결과다.
-쿠구구궁!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수많은 진동이 전해진다. 하르모르 산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
-크쿠우우!
-크워어어어!
땅속에서 ‘아이스 웜’들이 솟구쳐 올라온다. 무려 수백 마리.
샌드웜과 유사하게 생겼지만, 북방이라 그런지 덩치가 훨씬 큰 괴물들. 설인왕 이미르가 지하에 숨기고 있던 비밀 병기다.
그들이 하르모르 산을 가득 메울 듯이 구더기 떼처럼 새까맣게 몰려온다.
설인왕 이미르의 분노어린 고함에 인근 산맥에 있던 몬스터들이 달려오는 것이다.
‘일단 발밑부터 정리해야겠군!’
[스킬 : 중력 제어 lv1.]
[설명 : 일정 공간의 중력을 자유자재로 지배한다.]
나는 심플한 스킬 창을 살핀다.
중력 마법.
아무래도 마나를 불어넣은 만큼 드넓은 공간을 설정할 수 있는 모양.
‘범위는, 내가 있는 곳을 제외한 하르모르 산 모든 곳.’
고오오오!
막대한 마나가 소용돌이친다. 드래곤 하트가 쿵, 쾅, 쿵, 쾅 뛴다.
4써클에 오른 후, 아쿠아 스톰을 써도 큰 부담 없던 마나 혈관들이 터질 듯이 부푼다. 체온이 뜨거워진다.
무한한 마나를 가지고 있다는 드래곤 하트가 절반 가까이 텅 비어버린다.
그러나 권능은 정상적으로 시전됐다.
척.
나는 이를 악문다. 오른손을 꽉 말아쥐고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쐐애액-! 그그그!
-그웨에엑?
그러자 구름까지 솟구치는 아이스 웜들.
아니, 정확히는 아이스 웜이 아니다. 하르모르 산에 있는 눈과 나무까지 뿌리 뽑혀서 하늘 높이 올라갔다.
심지어 눈구름에서 365일 내리던 눈보라마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중력 역전.
물건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는, 너무나 당연한 질서의 법칙을 거스르는 권능.
믿기지 않는 기적에 아이스 웜들은 공중에서 당황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이에 나는 또 한 번 이를 악문다. 주먹을 땅 아래로 있는 힘껏 내리찍는다.
폭발적으로 소모되는 마나. 혈관이 터질 듯 드러난다.
쐐애액-!!
그와 동시에 아이스 웜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땅에 내리꽂힌다.
몸에 천근추라도 매달린 듯, 화살처럼 쏘아진다. 하늘에 오를 때보다도 2배는 빠른 속도다. 아이스 웜들의 비가 내린다.
쿠과과광!
머리부터 처박는다. 무언가가 깨져서 내용물이 터지는 소리가 난무한다.
새하얗던 얼음 산이 황토마냥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 위로 눈보라와 뿌리 뽑힌 나무들이 나뒹군다.
찬 바람이 다시 분다. 뜨거운 땀을 식힌다.
나와 오랫동안 함께한 흙의 정령 노움과 용용이조차 눈을 부릅뜬다.
나는 피범벅이 된 눈밭을 보고 한 마디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끝내주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