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새장 속 공녀 (2)
나는 블랙 이글루에서 노예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어차피 네하드람에게 받은 백지수표들 덕분에 총알은 무한.
그 어떤 놈도 날 경매에서 이길 수 없었다.
“아아! 112번 손님! 드워프 명인을 1만 5천 페니에 구매하셨습니다! 과연 그의 폭주를 막을 이는 이곳에 아무도 없는 것인가?~!”
“109번 손님~. 이번에도 112번 손님께는 안 되셨군요! 3천 페니에 최종 낙찰!”
블랙 이글루에서도 신이 나서 날 띄워주는 멘트를 쏟아낸다.
하기야 이 어마어마한 대금은 악마에게 영혼까지 판 상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할 테니.
-lv32 공녀 베아트리체.
더구나 가면을 쓴 베아트리체도 어느새 나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보여주기식으로 아낌없이 지른다.
악의 교단과 결탁한 베르너 공작을 죽이고 후속 조치를 하려면 베아트리체가 필수적이니.
그녀의 냉정하면서도 칼 같은 계산을 알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이익······! 저 미친 새끼. 노예는 지 혼자 다 사냐? 돈이 얼마나 썩어 넘치는 거야?”
“나도 잘생긴 엘프 남친 하나쯤 갖고 싶다고! 하나는 내놔!”
사방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인신매매에 열 올리는 자가 있다면 당연히 쓰레기일 테니.
길가에 개가 짖는다고 신경 쓰는 사람이 없잖은가?
“자, 이번 엘프는 최소가 3,000페니로 시작합니다~! 이 정도면 거저죠. 거져~.”
“5천 페니!”
“이번엔 나도 살 거야. 9천 페니!”
몇몇 부자들은 일부러 역정 내서 소리친다. 마치 이건 내거니까 건드리지 말라는 포효 같다.
“3만 페니.”
“······.”
“······.”
뭐, 그래봤자 압도적인 돈의 양 앞에 무의미했다.
아무리 북부 최고 부자라도 어린 엘프 노예 하나에 평민 10가구 전 재산을 통째로 태울 미친놈은 없었으니.
“3, 3만 페니······. 믿을 수 없는 가격이 나왔습니다!”
블랙 이글루 상인들조차 웅성거린다.
몇몇 상인은 양해를 구하고, 선불을 요구한다. 물론 나는 가져온 은화 가방을 던져주는 거로 답을 대신했다.
미친 듯한 돈 소모지만 나는 정말로 신경 안 썼다.
‘내 돈 아니니까.’
네하드람이 들었다면 게거품을 물었을 이야기지만 이 자리에 없으니 상관없다.
나름대로 할 말도 있다.
‘어차피 블랙 이글루는 향후 공권력을 동원해서 모조리 회수할 수 있으니까.’
블랙 이글루는 결국 불법 상회.
나는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프레야 교단 이단심문관 또한 마스터하면서 전 대륙에 있는 암흑 상회들도 모조리 박살 내봤으니까.
이들이 어떻게 숨기는지, 어디에 숨기는지 다 알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괜히 베르너 공작에게 뒷돈 흘리는 블랙 이글루를 마음껏 이용하는 게 아니다.
“자~. 이거 열기가 정말 후끈 달아올랐는데요? 노예 매매 다음은 특별한 아이템들입니다~!”
사회자는 연신 내 눈치를 보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어떻게든 내 기분을 맞춰보려고 하는 요량.
“자~! 놀라지 마십시오! 이번 경매에서 첫 번째로 판매할 물건은 무려 전설의 비약 ‘블루 번’입니다!”
“······!”
“마시기만 한다면 마치 여러분이 마신 문두스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이번 동부의 변에서 아룡기사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죠! 물론 부작용은 감수하셔야 하지만요.”
블루 번.
다크 로드 자칼이 거주했던 검은 안개의 성 보물 창고에서 발견했던 전설적인 비약.
그 이름이 거론됐다.
[이름 : 가짜 블루 번.]
[설명 : 흑마법사들의 전설 속 비약 블루 번을 흉내낸 물약. 마시면 몸속에서 지옥불이 타오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효과 : X.]
* 강력 경고! 복용 시 지옥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실상은 가짜였지만.
‘블루 번은 개뿔. 그냥 파란 색 사약이구만.’
미리 하나 더 구비해둘까 싶었다가, 경매에 올라온 물건을 시스템 창으로 보니 안면 근육이 구겨진다.
뭐, 물론 허영심 많은 손놈들은 좋다고 덤벼들었지만.
하기야 내가 노예를 전부 사들여버리는 바람에 여윳돈이 남기도 했을 거다.
‘더 쓸만해 보이는 건 없군.’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헛, 112번 고객님! 저희 상회를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어떻게 포장해드릴까요?”
“모두 옷을 입혀서. 마차에 실어라.”
나는 암흑 상인들을 벌레 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이럴 땐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앗~! 예! VVVIP 고객님! 금방 포장해드리겠습니다~!”
노예상은 나를 단골로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옷값과 마차 4대 값은 받지도 않았다.
하기야 내가 오늘 블랙 이글루에 안겨준 돈은 지부 금고 전체보다도 많을 터이니.
노예 마부들까지 서비스로 얹어준다.
“주, 주인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셔우드 숲으로. 최단거리로 직진해라.”
이후 물건은 준비가 된 만큼 거침없이 밖으로 나선다.
“셔, 셔우드 숲이요······? 주인님. 그곳은 레지스탕스가 빈번히 활약해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만.”
“신경 쓰지 말고 달려라.”
노예가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나는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다.
바로 그 레지스탕스를 만나기 위해 노예를 대량 산 것이니까.
히히힝.
투두두.
그렇게 이틀쯤 달렸을까.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셔우드 숲이 보인다.
쐐애액, 파바박!
“히이이익!”
화살 세례가 쏟아진다. 노예 마부가 놀라서 고삐를 놓친다.
말들이 놀라서 앞발을 치켜들며 멈춰선다.
“멈춰 서라. 인간. 죽고 싶지 않으면.”
-lv13 레지스탕스 파냐.
-lv15 레지스탕스 벨린.
.
.
역시나 레지스탕스가 나타났다.
흑과 백으로 반 갈라져서 색칠된 가면을 쓴 15명의 민병대.
숲속 나무와 땅굴에 숨어있던 엘프들이 나타나서 활시위를 내게 겨눈다.
“지금 그 노예들을 넘기고 달아나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
엘프들은 마차에 담긴 동족이 굉장히 많다는 걸 자각했는지 나름대로 조심스러웠다.
엘프는 거짓말하지 않는 종족일 지어니.
화르륵! 쐐액, 촤아악!
-카아아아!
-사아아!
-오우우!
그러나 무방비했던 건 아니다.
엘프들은 자신들의 비장의 무기인 정령술까지 꺼내 들었다.
불의 하급 정령 카사, 바람의 하급 정령 실피드, 물의 중급 정령 나이안.
생각보다도 훨씬 등급이 높은 정령들이 날 포위한다.
또각또각.
-lv32 공녀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또한 그들에게 다가와서 합류한다.
어느새 내 마차를 추월한 모습.
“동부의 구원자께서 불법 노예를 수집하는 악취미가 있으신지는 몰랐군요.”
아무래도 나는 그녀를 못 알아본다고 생각하는지, 가면을 쓴 상태로도 여전히 외형과 목소리를 할머니로 변조한 채 말한다.
대단히 싸늘하게 굳은 모습이다.
“아이고, 주인님. 제가 이럴까 봐 다른 길로 돌아가자고 했잖아요~! 아이고, 빨리 항복합시다. 안 그러면 악독한 고문 끝에 장례식도 못 치른 채 죽을 거라고요. 엉엉.”
“······.”
노예 마부는 진심으로 좌절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베르너 공작의 프로파간다로 인하여, 레지스탕스의 평판이 심각하게 나빠진 모양이니까.
실상은 블랙 이글루를 약탈해서 빈민과 이종족을 구해서 병력을 늘리는 단체인데 말이다.
“그럴 생각 없다.”
다만 나는 마차에서 내린 후, 가만히 선 채 그들을 응시했다.
물론 마차에 실어온 노예들은 모두 레지스탕스에게 넘겨줄 생각이지만.
앞으로의 협상 주도권을 위해선 얕보일 순 없으니 순순히 항복하지 않는다.
“흥, 기어이 죽으려는 거군.”
“하기야 이편이 깔끔하겠어. 잘 가라.”
쐐애액! 콰아아!
레지스탕스들은 내게 일제 사격했다. 그와 동시에 정령들도 제각기 다른 색깔을 뿜어낸다.
다만 정령은 엘프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노움.”
나는 내 정령을 소환한다.
-우우우움-!!!
노움이 막대한 마나를 토해내며 포효한다.
지난번 흙의 배양토를 먹으면서 격이 상승한 노움.
물론 최하급에서 하급으로 성장한 것으로, 여기서 노움보다 등급이 낮은 자는 없다.
쿠고고고고-!!
“······!”
“!”
“!!”
하지만 계약자의 격차가 원체 엄청나므로 그 차이가 역으로 엎어졌다.
내 주위에 있는 흙이 토산처럼 일어난다. 숲속에 산봉우리 하나를 만들어버리는 노움.
노움은 도저히 하급 정령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흙을 움직인다.
“크읏······?”
“꺄아악!”
심지어 동시에 15명의 레지스탕스 대원의 팔다리까지 흙으로 옭아매 버렸다.
데힐라칸과의 격전을 겪으면서 노움 또한 성장한 모양.
-사아······!
-카아아······.
이에 겁에 질려 꼬리 내리는 정령들.
제 계약자를 감싸며 덜덜 떨고 있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격차.
“어떻게 인간이 이 정도 수준의 정령술을······?”
베아트리체는 홀로 흙의 포위를 설화검으로 베어 나왔음에도 매우 놀란다.
하기야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종족. 타고난 정령 친화력이 대단히 떨어지는 종족이니.
‘압도적인 힘 앞에 기술 따위 잔치레 뿐이니까.’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아르카나 대륙은 기본적으로 원작 게임 <별들의 전쟁2>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상.
세계관 설정 자체가 게임 플레이어들을 위한 방식이니.
‘막말로 하이 랭커의 압도적 스펙이 있으면, 저 레벨 정령 따위 스킬 레벨이 더 높든 말든 중요하지 않은 거지.’
정령의 격이 올라갈수록 자체 마나 량도 늘고, 마나 효율도 늘어날 뿐. 무조건 이기는 게 아니다.
정령의 힘을 올려주는 스텟 계수는 친화력과 마나.
그 중 마나가 무한정 높으니, 한계치 이상의 파괴력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으으······!”
“제기랄. 일이 이렇게 된다면!”
몇몇 엘프들이 최후의 반격을 하려고 한다. 지금 수많은 제 동족이 갇혀있으니까. 자폭을 각오한다.
“그만.”
【드래곤 피어 lv1.】
그러나 유혈사태를 볼 필요없다.
나는 마지막으로 드래곤 피어를 발동한다.
-드래곤 피어 lv1가 다양한 종족에게 동시에 시전했습니다! 다른 종들이 자신이 감히 쳐다보지 못할 위대한 존재를 영접합니다!
-드래곤 피어 lv1이 lv2로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그 효과는 어찌나 뛰어난지 시스템 창이 반길 정도다. 더럽게 오르지 않던 용의 유산 스킬이 오른다.
한 방향에 모여있던 엘프들은 내 푸른 눈을 보고 일제히 얼어버린다.
항거할 수 없는 힘.
이미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낀 상태에서, 종을 뛰어넘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니 눈발이 날리는 숲에서 얼음처럼 멈춰버릴 수밖에 없었다.
휘이잉.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진눈깨비가 날리는 눈발을 그대로 맞으며 서있는다.
자신들의 리더인 베아트리체와 날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를 살핀다.
‘평소라면 그냥 처치했을 수도 있겠지만······. ’
베아트리체는 향후 협력해야 하는 중요 인물.
별로 위협적인 자들도 아닌데.
그녀가 보는 앞에서 부하들을 죽여서 반감을 사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이봐, 마부.”
“예? 예!”
“마차 문 열어라. 사람들을 꺼내라.”
“아, 알겠습니다!”
나는 노예 마부에게 명령했다.
내가 레지스탕스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더니 부리나케 움직인다.
4대의 마차에서 수없이 나오는 엘프와 드워프 노예들.
50여 명의 노예가 구속구를 찬 채 마차 밖으로 나온다. 대부분 어린 이종족이었으나, 레지스탕스 대원이었던 성인들도 있다.
-······!
그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헉, 숨을 들이마신다.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온 동족들이 흙무더기에 갇혀 있는 모습을 발견했으니까.
진눈깨비를 맞으며 내 쪽을 돌아본다.
옷을 입었지만 추운지 벌벌 떤다.
“이봐, 마부.”
“예, 예! 말씀만 하십시오!”
“이들을 한 명씩 저들에게 데려가라.”
“예?”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베아트리체를 지목한다.
마부는 놀라서 날 홱 쳐다본다.
설마 이 상황에서 노예들을 돌려보낼 줄은 몰랐는지, 잠시 나와 노예들을 번갈아 본다. 진위를 살핀다.
“아, 예······. 분부대로 합지요······.”
그렇게 노예들을 한 명씩 보낸다.
처음엔 경계하던 베아트리체도 노예 몸에 아무런 함정도 부착되어 있지 않은 모습에 의아함을 표한다.
“······네카르 경. 도대체 무슨 속셈이십니까?”
앙칼지게 묻는 베아트리체.
하기야 기껏 거금을 들여 산 노예들을 풀어주다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잠시 침묵한다.
‘베아트리체는 냉철한 이성을 가진 철혈 공녀. 추상적인 개념 따위 통하지 않는다.’
위대한 공녀 베아트리체.
그녀는 본래 10년 후에야 거사를 일으키는 인물이다.
제 친아버지를 죽인 베르너를 10년이나 양부로 모시는 굴욕을 참아낸 괴물.
그만큼 스스로의 감정을 깎아내며, 잔혹하리만큼 철저히 이성만을 따르는 여자다.
‘심지어 최종 결말에서 대혁명을 일으키니까.’
베르너와 북부 귀족들의 타락을 파악한 그녀는 귀족이라는 종족 자체에 염증을 느끼니까.
귀족제를 폐지하고, 반항하는 귀족들을 전부 단두대로 보내버린다.
그런 그녀에게 훗날 빚으로 갚으라고 퉁 치고 넘기는 건 자살행위. 오히려 신뢰를 잃는 일이다.
따라서
“나는 사람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에 관심 없다. 단지 거래를 할 뿐.”
또 다른 이유를 말한다.
지금 레지스탕스를 도와주는 단기적인 이유를.
“무슨 거래신지요?”
“스코틀린 영지 지하에 ‘얼음 던전’을 발견했다. 그곳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너희 레지스탕스가 필요하다.”
스코틀린 얼음 던전.
너무나 깊숙이 존재해 드워프의 땅굴 기술이 아니면 다가갈 수 없는 곳.
그곳을 겸사겸사 공략한다.
‘더구나 그곳에 두 번째 용의 보주가 있으니 말이지.’
용의 보주.
원작에서 텍스트조차 읽을 수 없던, 정체불명의 보석. 보자마자 짜증이 터져 나왔던 최악의 보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최고의 보상이다.
무려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하트.
그것과 연계되어 사기적이었던 ‘드래곤 피어’ 다음으로 ‘중력 마법’을 얻게 해줄 보물이니.
“만약 너희 레지스탕스가 스코틀린 영지 얼음 던전 탐사를 돕는다면 이 은화들도 넘겨주마.”
촤르르륵.
주위 환전소를 모조리 털어온, 블랙 이글루에서 물처럼 쓰고도 반이나 남은 은화를 내민다.
레지스탕스는 끝없이 자금난을 겪는 걸 알고 있으니까.
베아트리체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막대한 자금 투자.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
베아트리체는 한참이나 침묵한다.
어쩌면, 조직의 운명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거래.
방금 내가 구해준 노예들과 흙의 정령 노움을 보면서 날 신뢰할 수 있는지, 아군 피해는 어느 정도일지 판단한다.
그리고 인형처럼 고운 입술을 연다.
“아니요, 그럴 순 없습니다.”
레지스탕스 대원들조차 상상도 못 했는지 베아트리체를 홱 돌아본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확고하다.
“죄송하지만, 현재 베르너 공작이 땅속에 있는 우리 레지스탕스의 근거지를 수몰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
“이대로는 수많은 동지와 가족들이 대부분 죽을 위기입니다. 다른 임무를 우선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칼같이 말을 끊었다.
그제야 납득했는지 낙담하는 대원들.
아무리 자금을 모은다고 한들, 동료들을 버리고 신뢰를 잃어버린 조직이 살아남을 수는 없을 테니까.
너무나 탐나는 거래임에도 포기하는 자신들의 리더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아, 저 얼음강 말이냐.”
나는 사정을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
셔우드 산 정상에서부터 흐르는 얼음강.
저 강물 아래에 레지스탕스의 근거지이자 이종족의 피난처 땅속 마을 ‘알파헤임’이 숨겨져 있으니.
그곳이 베르너 공작에게 반쯤 수몰될 예정이라는 건 황금 상회 정보 단체를 통해 들었다.
“그 일이라면 곧 실패할 테니,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필요 없다.”
너무나 느긋한 말투.
마치 미래를 안다는 듯 말한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쓰란 말씀이신지요.”
이에 베아트리체는 무표정 속에서 분노를 삭인다.
“경의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이는 우리에겐 생존이 걸린 일이니.”
아마 귀족에 대한 혐오가 차오를 것이다.
자기 가문의 명예와 번영이 아니면, 관심조차 없는 자들에 대한 증오.
“아니.”
다만 나는 피식 웃는다.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다.”
품에서 스태프를 꺼낸다. 붉은 눈이 3알이나 번뜩이는 악마 같은 결전 병기.
고오오오!
“!!”
주위 마나를 모조리 집어삼킨다.
베아트리체를 비롯한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붉은색 마력석. 이는 하나만 있어도 제 주인을 파멸로 이끄는 보석일 지어니.
쿵, 쾅, 쿵, 쾅.
그러나 붉은 눈의 스태프로 마나를 공급하는 드래곤 하트는 멈출 줄을 몰랐다.
탐욕스럽게 마나를 끝없이 빨아들이는 붉은 마력석 3개에 절대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붉은 눈의 스태프가 한계에 달했는지, 흉흉한 빛을 뿜어낼 때,
척.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쿠구구구궁-!!
쿠과과광!
그러자 셔우드 산 한 측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거대한 산이 무너진 길을 따라 반으로 갈라진다.
기존에 얼음강이 내리는 길과 정반대로 길을 뚫는다.
【아쿠아 lv3.】
쏴아아아아-!!!
이후 아쿠아 마법을 시전한다.
허공으로 들어 올린 오른손에 굵은 핏줄이 터질 듯 부푼다.
콰아아아!
그러자 레지스탕스의 근거지 알파헤임을 향해 물길이 내려오던 얼음강.
그 강물이 방금 새로 만든 대운하의 길로 강제로 틀어진다.
베르너 공작의 수하들이 밤낮으로 땅을 파며 한꺼번에 터트리려는 길은 모조리 비켜나면서.
최종적으로 인근 농경지로 흐를 수 있도록, 멀리 떨어진 농업용 댐에 떨어뜨린다.
쿠과과과.
최종적으로 셔우드 산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강물 방향이 완전히 바뀐 길.
“······!”
노예 마부를 비롯하여 레지스탕스 사람들의 눈동자에 경악이 깃든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꿈인지 착각하는 분위기.
이래서야 가면을 쓴 이유를 알 수 없다.
나는 날 멍하니 바라보는 베아트리체에게 말한다.
“급한 임무가 더 없으면 이제 내 일을 처리하면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