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58화 (58/140)

58. 레지스탕스 (2)

나는 저 멀리까지 날아간 흑기사들을 내려다본다.

흑기사.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광신도 중 하나.

종족에 상관없이 열등한 것들은 모조리 사라져야 대륙이 정화된다고 믿는, 지구로 따지면 나치 같은 놈들이다.

그들을 향해 살기를 내뿜는다.

쿠과광-!!

항거할 수 없는 성난 파도에 속절없이 휩쓸리는 흑기사들.

그러나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에서 특수 제작한 갑옷 때문인지, 무시무시한 물의 파도를 맞고도 갑옷만 금이 갔을 뿐, 즉사하진 않았다.

“쿨컥, 과연 교단의 최우선 적······!”

“결코 살아나가지 못하리라!”

몇몇 흑기사들이 피투성이인 채로 땅을 박차고 내게 달려든다.

하기야 흑기사급 전력은 마법으로 따지면 3써클. 고위 흑기사 간부 데인은 나와 같은 4써클 수준이다.

거기에 흑마법의 힘과 악의 교단 갑주까지 더해졌으니 통상 기사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했다.

‘하지만 통상 써클을 아득히 뛰어넘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려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있으니까.

더구나 4써클에 오른 후, 처음 벌이는 제대로 된 전투.

아쿠아 스톰을 재현했는데도 몸에 부하가 거의 오지 않았으니까.

1써클 때, 지하 수로에서 아쿠아 스톰을 첫 재현하고 숨을 한참 골랐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더구나 물리 공격에 특화된 마법도 알고 있지.’

나는 이번엔 물의 마법 대신 가방에서 흙의 배양토를 꺼낸다.

일전 크라우드 가문에서 동부의 구원자로서 선물 받은 보물.

“노움!”

-우움!

노움은 기다렸다는 듯 단숨에 들이마신다.

번쩍!

그와 동시에 빛을 번뜩이는 노움.

-흙의 ‘최하급’ 정령 노움이 흙의 배양토를 흡수했습니다!

-충분한 경험으로 영혼이 고양돼있는 상태입니다! 정령의 격이 한층 상승합니다!

노움에게서 풍기는 힘이 급속도로 강해진다. 기존보다 30% 정도 강해진 마나.

-정령 승급! 흙의 ‘하급’ 정령 노움이 되었습니다!

노움이 두 주먹을 불끈 쥔다. 키도 꽤나 자랐다.

그래봤자 3cm 정도라서 나는 별 차이는 못 느끼지만······.

당사자는 느낌이 다른 지 영혼이 한껏 고양된 표정.

쿠고고고.

마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흙의 하급 정령이 된 노움이 전력을 다해 힘을 끌어올리는 모양.

쿠과과과-!!

흙의 파도가 일어나 막대한 질량으로 달려오는 흑기사들을 덮친다.

드래곤 하트의 지원을 받기에 보통 흙의 하급 정령으로선 상상도 못 할 힘을 발휘하는 녀석.

우지끈, 콰아아!

주위에 있는 나무 10그루의 뿌리까지 뽑아버린다.

말 그대로 주위 자연경관을 뒤바꿔버리는 힘.

그 힘은 흑기사를 저 멀리 날려버리고, 블랙홀처럼 땅속에 묻어버리는 것까지 가능했다.

마치 흙으로 된 물의 파도를 보는 듯 했다.

“커헉······! 네, 놈.”

“과연, 비겁한······. 교단의 적······.”

흑기사들은 땅속에서 몇 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강대한 흑기사라도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

흙 속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지만 노움이 끝없이 퍼붓는 흙의 질량은 엄청났다.

-흑기사 샤크를 죽였습니다.

-고위 흑기사 데인을 죽였습니다. 극소량의 써클 경험치를 얻습니다.

시스템 창이 나타나 전투가 소강됐음을 알린다.

-크롸!

-꺄아악······! 살려주세요!

하지만 모든 상황이 끝난 건 아니니까.

아직 흑기사가 풀어둔 몬스터들이 어린 엘프와 노예들을 공격하고 있다.

흑마법이었으면, 시전자가 죽었을 때 세뇌가 풀렸겠지만, 지금은 다른 방식이었다.

[이름 : 몬스터 교란기.]

[설명 :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에서 개발한 불법 장치. 발동 시 주위 몬스터의 파괴 본능을 일깨워서 특정 경로의 적을 공격하게 만든다.]

네모난 큐브 모양 장치가 땅에 떨어져있다.

아무래도 흑기사들은 흑마법에 정통하진 않은 만큼 특수 장치로 몬스터를 조종하는 모양이니까.

콰직.

발로 밟아 부숴버린다. 몬스터들이 순간 목적을 잃고 멈칫한다.

그 틈에 물의 파도를 일으켜서 쓸어버린다.

달아나던 어린 엘프와 노예들이 간신히 숨을 돌린다.

“······맥스! 저쪽에 사람들이!”

“전투다! 아이들부터 보호해!”

투두두두.

거기에 추가 지원군까지 당도한다.

은빛 늑대 용병단.

그들이 숲속에서 격해진 전투 소리를 듣고 달려온 것이다.

말을 타고 달려오며 엄호 사격하며 달려온다. 일부 용병들은 방패를 들고 노예들을 지키는 벽을 형성했다.

이내 두려움에 질린 몬스터들이 달아난다.

“우와아! 살았다. 살아남았다고.”

“커헉, 피가 너무······. 아파······.”

“야, 제논! 빨리 가서 의료 물품 가져와. 얼른!”

숲은 살아남은 자들의 환호성과 다친 사람들의 비명이 공존해 메아리쳤다.

은빛 늑대 용병단은 서둘러 응급조치한다.

‘항상 들고 다니길 잘했군.’

나 또한 배낭에 가져온 성수를 한 병 꺼냈다.

성물 아가타의 성배를 반납하기 전에 미리 모아둔 성수.

꼴꼴꼴.

피 흘리는 어린 엘프들과 레지스탕스 대원들에게 뿌린다.

뼈가 으스러지고, 뒤틀린 만큼 대충 교정하고 성수를 뿌린다.

치익, 샤아아.

“으윽······!”

그 중 스톡웰은 상태가 특히 심각했기에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성수의 힘으로 상처가 빠르게 멎는다.

당장 안심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달 정도 재활한다면 이전처럼 완치될 터다.

“왜······. 우릴 구해주는 거지······?”

스톡웰이 날 바라보며 말한다. 경계하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왜, 죽고 싶기라도 했던 건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별로 생각 없었다는 듯 나선다.

물론 거짓된 연기다.

‘레지스탕스. 너희는 훗날 북부의 패자가 되는 베아트리체의 조직이니까.’

만약 지금 내가 레지스탕스 대원을 구해준다면, 나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보고하겠지.

엘프와 드워프는 인간보다 월등히 오래 사는 종족.

그만큼 기억력이 좋기에, 한 번 진 빚을 잊지 않는 습성이 있으니까.

“······.”

실제로 스톡웰은 잠시 침묵하더니, 레지스탕스 특유의 좌우로 흑과 백이 반으로 나뉜 가면을 쓰며 말했다.

“······고맙다. 방금 한 말을 기억해두지.”

이후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땅굴로 돌아간다.

“어린 동족들이아. 어서 돌아가자. 우리들의 숲으로.”

노예 마차에 붙잡혀 있던 어린 엘프와 노예들을 안내하면서.

드워프들이 몰래 땅굴을 파고, 엘프들이 날렵하게 움직여서 동족들을 구하는 구조인 모양이니.

나와 은빛 늑대 용병단은 그들을 친절히 도와주었다.

길거리에 도움이 필요한 자가 있다면 돕는 것이 방랑자들의 암묵적인 룰이니까.

그렇게 모든 일이 다 끝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요? ······허억?”

그때, 황금 상회 상인들이 다가온다.

아무래도 용병 대부분이 가버리고, 한 참이나 돌아오지 않으니 불안했던 모양.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숲 일대가 완전히 파괴된 현장을.

거대한 물의 파도로 휩쓸린 일대와 흙의 정령 노움이 난동을 부린 자국을.

고위 마법사.

이 정도 파괴적인 현장은 초급 마법사 따위가 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서, 설마 당신은······?”

그제야 뜨악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이곳에 제대로 된 마법사라곤 20대 초반인 나 혼자 밖에 없으니까. 연상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황금빛 머리카락에 푸른 벽안의 젊은 마법사.

화가들이 직접 보진 못 했지만, 참전 용사들의 목격담을 듣고 그려둔 그림을 우연히라도 보았을 테니.

의혹은 확신이 되고, 확신은 경악이 되어 충격에 빠진다.

“이만 가시지요.”

나는 별다른 말 하지 않고 마차로 돌아간다.

저들이 날 알아보지 못하고 괄시한 건 맞지만, 물질적으로 내게 위협을 가한 것은 아니니.

더구나 나는 황금상회 차기 후계자의 동생.

혹여 내가 네하드람에게 이번 일을 고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니.

그 공포의 상상력이 자신이 저지른 죗값만큼 스스로를 옭아맬 텐데 굳이 더 나설 이유가 없었다.

***

북부 최대 도시 ‘오르비스’.

이곳은 북부 최남단답게 번화한 도시였다.

얼어붙지 않은 강과 차디찬 북풍을 막아주는 뒷산이 있어서 배산임수 지형이다.

······물론 마신 문두스의 대학살 이후, 북산이 완전히 무너져, 흉물스러운 골짜기가 됐지만.

겨울에 눈이 쌓이지 않도록 모든 건물이 뾰족한 첨탑이었으며, 흰 눈과 대비되는 붉은 계열 벽돌은 온통 눈밭인 북부에서 단연 눈에 가장 띄는 도시였다.

“후- 너무 춥군.”

나는 네하드람에게 선물 받은 최고급 모포를 두르고도 몸을 떨었다.

아르카나 대륙에 오고 나서 첫 눈을 맞았으니까.

심지어 함박눈.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때문인지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뼈가 시린 느낌이 들었다.

“화, 확실히 동부 사막에선 못 겪은 추위긴 하지요. 하하······.”

“마침 북부 공작님께서 추위를 녹일 겸 따뜻한 피로연을 베풀어주신다고 합니다. 네카르 경께서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심은 어떠한지······.”

“맞습니다요. 이번 북부길에 대해 보고도 해야 하니 함께 오심이 어떠십니까?”

지은 죄가 있으므로 내 눈치를 설설 보는 상인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도 북부의 만찬이 궁금했기에 용병 단장들을 데리고 따라가기로 했다.

“어서 오십시오. 황금상회 간부분들. 공작 저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내성 입구로 도착하자, 마중나와 있던 시종들이 다가와 안내한다.

따라서 들어가면서 오르비스 내성을 둘러본다.

‘······별로 화려하진 않군.’

마신 문두스의 강림 이후 다 무너졌기에, 신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수했다.

그렇게 안내한 곳은 1층 식당.

춥지 않도록 다소 좁게 설계된 방이었다.

“어서 들어오게. 거상(巨商)들이 북부로 큰 교역을 하러 오다니."

"만나뵈서 영광입니다."

"오오! 그대가 그 유명한 아룡기사인가? 이렇게 만나보다니 참으로 반갑네. 허허, 동화 속 인물을 만나보는 듯 하군!”

흰 테이블에 앉아있던 중년 귀족 사내가 반갑게 맞이한다.

푸들처럼 접힌 주름이 많은 갈색 머리 사내.

만약 시스템 창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온화한 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lv49 배교자 ‘베르너 폰 오르비스’ 공작.

나는 눈매가 싸늘하게 굳었다.

베르너 공작.

북부 최대 흑막 중 하나로,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소속 제6군단장 설인왕(雪人王) 이미르와 계약한 타락 귀족.

북부에 강림한 거악 이미르에게 제물을 제공해서 힘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자였다.

“공작 저하께서 직접 성대히 맞아주시다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다만 나는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베르너 공작과 악수한다.

이곳은 북부.

어찌됐든 베르너 공작이 지배하는 땅이니까. 함부로 나서는 건 위험하다.

‘어차피 이놈을 죽일 방법을 아니까.’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와 맞서는 것도 대종말로부터 내가 살아남기 위함이었으니, 지금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먼 길 오셨는데 식사부터 하지. 내 아룡기사가 온다는 말에 특별히 준비했네!”

우리가 긴 식탁에 앉아있자 요리사들이 부엌으로 가서 즉석으로 요리를 해온다.

북부는 추위 때문에 하나하나 코스 요리로 나온다.

바로바로 음식이 나오기에 독을 탈 틈도 없는 모양.

‘하기야 북부는 고위 귀족들이 타락하고, 일반인들은 평범하니까.’

동부는 빈민들이 출세하기 위해 흑마법을 익혔다면, 북부는 빈민들이 얼어죽지 않기 위해 도심에 모여 지냈다.

고위 귀족들이 사치품과 영원한 삶을 위해 악마와 계약했을 뿐.

하여튼 코스 요리를 본 은빛 늑대 용병단 제논과 제나는 호들갑을 떨었다.

‘누나, 귀족들의 식사는 원래 이렇게 한 접시 한 접시 정성 들여 나오는 거야?’

‘당연한 거 아냐? 너 어디 가서 귀족이 한 테이블에서 먹는다는 말 하면 무식한 놈이란 말 들어.’

‘······.’

물론 동부 귀족은 한 테이블로 먹는 만큼 나는 침묵했다.

오히려 대륙 대부분이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기 위해서 한상차림으로 먹고, 북부만 음식이 식지 말라고 따라 나오는 것이다.

‘적당히 넘어가야겠군.’

다만 무식한 사람보고 정말로 무식하다고 할 수 없으니 웃어 넘어갈 뿐.

그렇게 베르너 공작과 만찬을 즐기며 오르비스로 오면서 있었던 일을 보고한다.

물론 흑기사에게 뒷돈을 받는 베르너 공작은 이미 다 알고 있을 테지만.

몸속에 능구렁이가 10마리는 있는 만큼 몰랐던 척 넘어간다.

그렇게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할 때였다.

또각또각.

-lv32 공녀 베아트리체.

그때 저 멀리서 냉랭한 한기를 머금은 젊은 여인이 다가왔다.

······더 정확하게는 훈련을 마쳤는지 땀을 닦으며 식당에 왔다가, 베르너 공작을 발견하고 돌아가려고 한 19살의 소녀.

평범한 소녀라기엔 허리춤에 찬 서리빛 장검도 그렇고, 레벨이 지나치게 높은 자였다.

“오, 우리 ‘베아트리체’. 마침 검술 훈련을 끝내고 식사를 하러 왔느냐.”

베르너 공작은 능글맞게 웃으며 그녀를 억지로 부른다.

그러자 베아트리체가 우뚝 선다. 어쩔 수 없이 다가온다.

“······‘아버님’. 부르셨습니까.”

그녀는 처음 본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와,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미인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푸른 머릿결에, 흰 눈처럼 새하얗고 보드라운 피부.

긴 속눈썹과 얼음꽃처럼 차가운 눈동자는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신비로운 인상을 주었다.

다만 인형처럼 감정이 없는 모습.

‘······베아트리체. 훗날 위대한 공녀라고 불리는 히로인이다.’

나는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눈매가 차갑게 내려앉는다.

공녀 베아트리체.

그녀는 훗날 베르너 공작을 죽이고 북부 공작이 되는 메인 히로인이었으니.

‘아마 베아트리체의 서사는 햄릿이 모티브였지.’

나는 베아트리체의 비애를 알고 있다.

과거 베르너가 설인왕 이미르와 비밀리 계약하여, 베아트리체의 친아버지 베네딕트 공작을 독살했으니까.

이후 유일한 후계자인 베아트리체가 어리다며 공작위를 강탈한 거다.

몇몇 충신들의 반발은 베아트리체를 양녀로 강제 입양해서 해결했다.

'세간에서는 불쌍한 딸을 사촌이 돌봐준다고 생각하겠지만······.'

베아트리체는 일전에 모종의 일로 진실을 알아차렸으나,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연기를 하는 중이었다.

제 아비를 죽인 자를 아버지로 모시면서.

“그래, 우리 딸. 손님도 왔는데 오랜만에 함께 식사나 하자구나.”

“알겠습니다.”

베아트리체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한 후, 내 앞에 앉는다.

베르너 공작과 함께 겸상할 수 있는 자가 현재 나밖에 없었기에 앞좌석이 비어있던 탓이다.

‘······기분이 매우 나빠 보이는군.’

다만 나는 발견했다.

유리처럼 투명한 눈동자가 아주 짧은 순간 새까만 악감정을 드러낸 순간을.

하기야 제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주최하는 만찬을 빛내러 참석했으니 부정적인 감정이 차올랐겠지.

그것도 당사자 베르너가 불렀음에도 아직 저항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쪽이 동부의 구원자라고 알려진 네카르 경이시다. 우리에겐 아룡 기사라고도 알려졌지. 이제 혼기가 찬 너로서도 꼭 한번 만나볼 만한 영웅이란다.”

다만 베르너 공작은 베아트리체가 그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걸 모르는지 제법 친근하게 굴었다.

단순히 아버지를 잃고 마음이 꺾였다고 생각하는 모양.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냉랭하게 단답한다.

나로서도 지금 당장 베아트리체가 필요한 건 아니었기에 천천히 협력할 생각이었다.

‘······암살자들이군.’

-lv19 북부 암살자 아리엔.

-lv16 북부 암살자 파르다.

그런데 함께 식사하고 있으니, 천장에서 시스템 창이 나타난다.

암살자들.

다가오는 방향을 보아, 베아트리체를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하기야 베아트리체는 항상 암살 위협에 시달리니까.’

결국 베르너 공작으로서도 베아트리체는 눈엣가시니까.

영주성에서 대놓고 죽이긴 어려우니, 자연스럽게 암살하기 위해서 상황을 재고 있겠지.

죽는 데 오래 걸리는 독약을 먹이거나, 몬스터가 죽인 척 연기하려 할 것이다.

베아트리체도 이를 알기에 최대한 틈을 주지 않고 영주성에 머무르는 것이고.

‘그런데 저놈들은 뭐지?’

-lv39 고위 흑기사 데르카.

-lv41 고위 흑기사 하이린.

기존에 베아트리체를 따라다니던 암살자들 말고도, 또 다른 곳에서 정체불명의 흑기사가 다가온다.

고위 흑기사들.

‘이건 날 죽이려고 찾아온 놈들이군.’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내가 그곳 제7군단장이자, 동부를 멸망시키려 했던 데힐라칸을 처치했으니까.

아무래도 베르너 공작은 자신이 암살했다는 소문이 다소 돌더라도, 위험 요소인 확실하게 처치하는 모양이다.

아직 잔챙이인 베아트리체와 달리, 나는 교단의 최우선 적이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차피 일이 커진 것 베아트리체까지 한꺼번에 처치할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위험하군.’

결국 내가 뿌린 씨앗.

내가 처리할 수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이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동부의 변 때 다친 상처가 깊어서 그러니, 너그러이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따라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난다.

당장 오늘밤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까.

적당히 아픈 척까지 하면서 숙소로 돌아간다.

“허허, 아쉽군. 동부의 영웅을 이토록 짧게 봐야 한다니.”

다행히 베르너 또한, 붙잡지는 않았다.

어차피 얼마 안 가서, 내가 죽어있으리라 생각할 테니까.

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제논이 말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평생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어요.”

입에 소스를 묻힌 채, 제법 의젓하게 말하는 제논.

나야 베르너와 베아트리체를 탐색하느라 만찬을 맛보기는커녕 뭘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났지만.

은빛 늑대 용병단은 꽤 만족한 모양이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손수건을 꺼내서 입술을 닦아준다.

“다들 고생 많았다. 이만 헤어지지.”

나는 굳이 피 보지 않도록 이들을 먼저 보내려고 했다.

다만 베르너 공작이 말했다.

“아닐세. 들어보니 함께 고생해주신 분들인데. 내 함께 대접하지. 일주일 간 내 성에서 편히 머물게.”

“와,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럼~. 자네들은 무려 아룡기사의 동료들 아닌가?”

순수하게 기뻐하는 은빛 늑대 용병단.

반면 나는 눈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완전 범죄를 하려는 모양이군.’

아예 일처리를 하는 김에 확실하게 입 단속하려는 모양이니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선수를 치는 게 깔끔하다. 어차피 다 죽일 것은 똑같으니까.

'더구나 향후 반란을 일으키려는 베아트리체에게 내 실력을 어필할 수도 있으니까.'

오늘밤 역으로 단숨에 쓸어버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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