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55화 (55/140)

55. 포상 (1)

니케아 제국.

아르카나 대륙 대부분을 장악한 유일한 패권 국가다.

그러나 그것은 허영뿐인 영광일 뿐, 중앙 관료들은 무거운 한숨을 쉰다.

대륙 곳곳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몬스터 군단의 침공이 이어졌으며, 탐관오리가 판을 치고 있으니.

그러한 상황에서 현재 동부에 고대의 거악 데힐라칸까지 강림했다고 하니까.

달이 차면 기울듯, 니케아 제국 또한 기울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빈센트’ 후작 각하. 마지막 통신에 따르면 포르티스 요새가 풍전등화라고 합니다. 어쩌면 동부 전체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는 사안입니다!”

브리핑하는 젊은 관료의 보고에 모두의 이목이 빈센트 후작에게 쏠린다.

빈센트 드 발루아 후작.

중앙에서도 부유한 도시 발루아의 영주.

황제의 비서장으로서, 이번 회의의 주최자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무어라 하는가?”

“현재 북부는 ‘대한파’를 방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 서부는 내전 중. 남부는 아직 공식 답변이 오지 않았습니다.”

“······.”

빈센트 후작은 침묵했다.

대륙 전체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동부를 지원해줄 세력은 없다.

“빈센트 후작 각하. 곧장 폐하께 말씀드려 ‘황실 기사단’을 파견해야 합니다.”

젊은 관료는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빈센트 후작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네.”

“······예? 어째서?”

“폐하께서 다시 칩거에 들어가셨네. 지금 황궁에 들어오는 자는 모조리 목을 치시겠다는 엄명이야.”

“!”

황제의 칩거.

대륙이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최고 통치자가 자리를 비운 것이다.

회의실 다른 귀족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착잡한 표정이었다.

“폐하께서 어째서 칩거를······?”

“아마 이제 곧 ‘오르비스 대학살’ 추모 일 아닌가? 또 그 날이 떠오르신 모양일세.”

“아······.”

오르비스 대학살.

마신(魔神) 문두스가 북부 패권 가문 ‘오르비스’에서 대학살을 벌인 사건을 말한다.

그 이유는 불문.

정확한 사정은 황제와 문두스만 알겠지만, 결과는 간결했다.

황제의 이상향이고 가장 믿었던 충신인 마신 문두스가 떠나갔다는 것.

그 정신적인 충격으로 황제가 10여 년간 업무를 거의 보지 않아, 니케아 제국이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젊은 관료는 창백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렇다면······?”

“물자 지원은 충분히 했으니······. 프레야 교단이 해결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빈센트 후작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젊은 관료는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아무리 루크레치아 예하라도 혼자 해결하실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나도 아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강력한 기사단의 출격은 반드시 폐하의 허가가 필요한데. 반역이라도 하란 말인가?”

“······!”

반역.

그 엄중한 말에 회의실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는다.

답이 없는 상황.

무거운 침묵이 계속된다.

그때,

벌컥.

“속보입니다! 동부에서 데힐라칸을 처치했다고 합니다!”

“뭐라? 지원군 없이 그 거악을 물리쳤단 말인가?”

긴급 속보가 들어왔다.

빈센트를 비롯하여 회의실 관료들이 벌떡 자리에 일어난다.

“역시 루크레치아 예하께서 나서신 건가? 과연.”

“아닙니다. 예하께선 동부를 완전히 포기하시려고 하셨답니다.”

“그럼? 엡실론 공?”

“그 또한 아닙니다. 이번에 등장한 인물은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인물?”

회의실 속 귀족들은 관료가 가져온 인물 보고서를 살핀다.

“······‘네카르 폰 크라우드’. 엡실론의 셋째 아들이라.”

“동부가 괴물을 키워낸 모양이군.”

동부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낀다.

새로 등장한 영웅에 대해 집중 조사를 시작한다.

***

물의 명가 크라우드 본가.

네하린과 네하드람, 네파란은 침대에서 곤히 자는 제 동생을 내려다본다.

네카르 폰 크라우드.

한때 크라우드의 수치라고 불렸던 이복동생.

그러나 지금은 동부의 구원자이자, 성전(聖戰)의 영웅이라고 칭송받는 자.

그를 각자 다른 눈길로 바라본다.

“오빠는 언제 깨어날까?”

먼저 막내 네파란.

그녀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어본다.

“흥, 어련히 깨어날 거다. 이대로 죽으면 안 되는 녀석이니.”

네하드람은 말투는 퉁명스럽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자신과 다른 길을 가는 동생을 존중하는 태도.

“······.”

마지막으로 네하린은 말없이 한참 눈을 깜빡인다.

마치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선배 마법사를 바라보는 듯한 감정.

그러한 시선을 자신보다 6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느끼고 있었다.

‘벌써 4써클이라니······. 분명 선술집에서 불을 질렀을 때까지만 해도 1써클이었는데.’

네카르를 진료하던 사제가 알려줬다.

이미 네카르는 4써클의 벽을 허물었노라고.

‘며칠 전만 해도 대견한 동생이었거늘, 지금 다시 보니 한참 앞질러 가고 있었구나.’

고작 1년 만에 벌어진 기적.

네하린은 작년에 3써클 1티어의 벽을 허문 후, 계속 답보하고 있던 상태였으니까.

앞으로 더욱 정진하지 않으면 격차가 감히 쳐다도 볼 수 없을 만큼 나리란 걸 새삼 체감한다.

‘이게 네하드람이 날 보던 느낌이겠지.’

그러나 썩 나쁜 기분은 아니다.

결국, 모두가 물의 명가 크라우드 소속.

선의 경쟁은 가문의 명성을 더욱 드높일 테니.

“그보다 네하드람. 벌써 전후 복구 업무를 마친 거니?”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제 외가 쪽엔 황금상회의 피가 흐르거늘.”

“후후, 그래. 잘 적응하나 보구나. 아버지께서도 말씀은 없으셨지만, 대견해 하시던 눈치던데?”

그 말에 네하드람은 피식 웃으며 제 동생을 내려다본다.

어느새 성인이 돼서 각자 한 사람 몫을 해내고 있는 네하린과 네하드람.

만약 엡실론이 그들을 대견해한다면, 동부를 구원해내고 지금 긴 잠을 자는 네카르는 어떠할까?

‘······어쩌면, 아버지께서 꿈꾸시던 동부의 꿈을 이 녀석이 대신 이뤄줄지도 모르겠군.’

이불을 깊이 덮어주고 밖으로 나갔다.

큰 변을 겪었으나, 발걸음은 가볍다.

결과적으로, 동부를 지속적으로 병들게 했던 흑마법사 세력들을 일거에 소멸시켰으니.

생각보다 인명 피해도 적고, 물자 지원은 많았으니 수복은 물론, 향후 동부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더구나 동부 사막 연합이 목숨을 건 연대를 했으니 앞으로 교류도 더욱 활발해지겠지.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은 당연히 제 동생 네카르가 될 것이다.

뛰어난 상인이라면 미래를 예측한 후 투자를 해야 하는 법.

가장 효과적인 투자를 알고 있다.

나가는 길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서를 부른다.

“내 금고에 있는 각 상회 백지 수표들을 다 가져와라.”

“예? 무슨 일이십니까?”

“네카르라는 마법사에게 투자하겠다.”

“······!”

오직 돈.

막대한 액수의 돈은 언제나 옳았다.

***

하늘이 갠다.

마리우나 산맥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건설하던 루크레치아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티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이는 악과 파괴의 교단 제7군단장 데힐라칸이 이 세계에서 소멸했다는 뜻이니.

“······정말로 그 녀석이 불사의 군주 데힐라칸을 물리쳤다고.”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보고서를 살펴본다.

미케일라가 작성한 보고서.

그 안에는 네카르라는 인물이 반로환동의 마법사이며, 타바스 영지를 괴롭히던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와 발록, 비홀드까지 처치했다고 적혀있다.

“놀랍군. 과거 대륙 7대 성인들조차 간신히 해결한 일을. 홀로 해결하다니.”

그때 저 멀리서 또 다른 세인트 발키리가 다가왔다.

“루크레치아 예하. 서부 내전이 다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랍니다. 서둘러 돌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루크레치아는 잠시 침묵한다.

서부.

대륙에서 가장 풍요로운 이곳은 그만큼이나 욕심이 많아, 각 영주가 파벌을 나눠 싸우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는 곳이니.

본래 루크레치아가 평화 유지를 위해 주둔하던 곳이었다.

“아니, 서부가 심각한 것은 맞지만, 내가 간다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는구나.”

루크레치아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강력한 성기사단을 주둔시키며, 분쟁을 종결짓고 있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근원적인 문제인 영주들의 욕망. 그리고 원한과 갈등은 끊이질 않고 있다.

마치 태양이 비치는 동안은 평화롭지만, 잠시 자리를 비우면 범죄가 드리우는 빈민촌처럼.

‘이를 조장하는 악의 세력이 있다.’

프레야 교단에서 몇 번이나 중재하고, 해결해주었던 사안.

그러나 누군가 혐오와 증오를 야기해서 화약고에 불꽃을 계속 일으키고 있었다.

이를 어찌 해결해야 할까?

“너희들은 먼저 출발하거라.”

“예? 그러시다면?”

세인트 발키리들이 놀라 묻는다.

설마 싶은 마음으로 루크레치아를 바라본다.

“나는 그 네카르라는 자를 만나보고 오겠다.”

“!”

서부 전선이 다급한 와중에 프레야 교단 최고 전력 중 한 명인 루크레치아가 정반대인 최동부로 향했다.

결코, 있을 수 없던 동부의 기적.

이를 이뤄낸 자를 만나기 위하여.

서둘러 전선에 복귀하는 것보다, 그를 만나보는 것이 더 궁극적인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에.

드넓은 사막을 한걸음에 질주한다.

***

‘--?’

나는 비몽사몽 한 정신을 다잡는다.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몸이 축 늘어지고 목이 탄다. 먹은 것도 없어서 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다.

‘······아마 블루 번의 페널티 때문이겠지.’

독한 시약을 통째로 마신 데다가, 이후 전력으로 과한 마나를 퍼부었으니 당연한 결과일 터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게슴츠레 천장을 올려다보니 황금빛 장식과 푸른색 물방울 문양이 보인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 가문 내부인 모양.

안심하고 다시 눈을 감으려는데,

샤아아아.

따스한 빛이 내 몸을 감싼다. 차갑던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몸에 힘이 솟는다.

이건 약초나 물의 마법이 아니다.

신성력.

누군가 나에게 최상급 힐을 해주고 있다.

‘프레야 사제분이 치료해주시나 보군······.’

상반신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켠다.

마침, 내 침대 바로 옆에 한 여인이 앉아 있다.

긴 잠에 빠진 날 간호해준 감사한 이가 누구인지 확인한다.

“?”

그런데 눈이 마주친 여인이 생각보다 너무 젊었다.

분명 주교급 신성력이니 나이 지긋한 사제를 생각했거늘.

이제 겨우 20대 중반의 외모.

그것도 자체발광하듯이 빛나는 미모를 가진 여인이 앉아 있다.

겨드랑이까지 내려오는 붉은 빛 색 낀 금발의 머릿결에, 붉은 핏줄이 보이는 티 없는 피부.

긴 속눈썹과 장미처럼 타오르는 눈동자는 자신이 절세가인이라는 걸 임을 자부하고 있었다.

그녀가 화사한 주홍빛 드레스를 입은 채 내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깨어났느냐.”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상대방.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 흐트러진 정신이 번쩍 깨어났다.

‘······뭐야, 시발. 얘가 왜 여기 있어?’

상대가 내 생각보다 너무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

한 명 한 명이 군단급 전력인 대륙 7대 성인 중에서도 ‘전투 성녀’라는 칭호로 불리는 자.

내전이 격렬하게 벌어지던 서부를 통제하고, 동부까지 구원하러 출격한 존재.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고운 입술을 뗀다.

“왜인지 내가 여기에 있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는 표정이구나.”

반쯤 농담조로 던진다. 어색하게 웃는다.

‘그야 당연히 네가 여기 있으면 서부 전선이 텅 비니까.’

나는 알고 있다.

데힐라칸급, 혹 그 이상의 권능을 가진 거악(巨惡)들이 힘을 회복하며 각 지역에서 자신만의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걸.

‘아마 각 대륙의 멸망 순서는 동부, 북부. 서부, 남부 순이었지.’

동부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터져나가는 아르카나 대륙.

그 이유는 다양하게 있지만,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원작 <별들의 전쟁2> 개발사의 배려다.

유저들이 대비하고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외우기 쉬운 방향으로 정해둔 거다.

······물론 그래봤자 웨이브가 지날 수록 난이도가 지랄 맞게 상승해서 별로 체감은 안 된다.

외딴 섬에 숨으면 당장은 괜찮지만, 최종적으로 전 대륙이 멸망하는 ‘진 엔딩’에 도전조차 할 수 없다.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나는 북부에 가서 대한파를 막아야 한다. 다음 거악(巨惡)이 강림할 곳이 그곳이니까.’

하지만 북부를 정리하는 사이, 다른 지역이 박살 나면 곤란하다.

루크레치아는 이를 최대한 억제할 가장 훌륭한 전력이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겉옷을 걸치고 의자에 앉는다.

“예하께서 여기엔 어쩐 일이십니까?”

빨리 서부로 돌려보내기 위해 목적을 묻는다.

그런데 루크레치아는 당당하게 말했다.

“너를 직접 만나보고 싶기에 찾아왔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말.

그녀는 자부심 넘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여신님께서 간택하신 성인으로서, 대륙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알고 있다.

루크레치아의 신앙심은 좋게 말하면 열렬하고, 나쁘게 말하면 광신도에 가까우니.

오직 프레야를 위해 싸우는 것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삼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는 법. 믿을 만한 자들을 모으고 있다. 전국 각지를 떠돌며 악의 근원을 파헤칠 자들을.”

누군지 안다.

미케일라를 비롯한 세인트 발키리 같은 자들.

전 대륙을 떠돌며 선을 집행하는 숭고한 자리다.

“너는 동부의 변이 일어나기도 전부터 아가타의 성배를 요청했다고 들었다. 남다른 선구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겠지.”

본격적으로 찾아온 이유를 말한다.

“무한한 부를 안겨주마.”

대륙 전체에서 막대한 기부금이 들어오는 대륙 7대 성인이 매혹적으로 제안한다.

“마법 연구가 하고 싶다면, 원하는 만큼 재료를 지원해줄 것이고.”

마법 수련을 위해 방랑하는 마법사의 이상향을.

“명예를 원한다면 온 세상이 네 이름을 알게 할 것이다.”

동부 최고 명문가 귀족이자 영웅에게 명성을 떨치게 해주겠노라고 제안한다.

“권한이 필요하다면 황족도 묵살할 수 있는 성인의 힘을 빌리게 해주마.”

대륙 전체가 프레야 교단을 믿는다.

그들에게 대륙 7대 성인은 여신의 화신 그 자체. 신성불가침으로서, 무한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내 ‘세인트 에인헤랴르’에 들어오거라.”

세인트 에인헤랴르.

성녀 루크레치아의 최고 친위대 중 하나.

세인트 발키리와 정반대로,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부대.

프레야 교단 소속이라면, 무(武)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꿈의 부대 중 하나.

그 부대 속으로 들어오라고 스카우트한다. 거절할 리 없다는 자신감에 고혹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아무래도 이것이 무려 성녀 루크레치아가 머나먼 동부까지 친히 온 목적인 모양.

“······.”

나는 즉답을 피한다. 차분히 고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놀라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제안도 놀랍지만, 루크레치아가 친히 제안하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미쳤냐. 시발.’

물론 다른 의미로 놀란 것이었다.

‘루크레치아의 친위대. 그곳은 오직 신앙심과 명예만 추구하는 곳이니까.’

악의 근원을 파헤친다.

참 좋은 일 하는 곳이다. 권한도 막강하고, 성기사 계열 최고 전직이니까.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

‘부정부패하지 않기 위해서 맹약을 해야 한다는 거지.’

혹여 세인트 에인헤랴르가 뇌물 받고 악과 결탁하면 안 되니까.

마나의 맹세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사치 부리지 않을 것, 약자가 당하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것, 남에게 헌신할 것, 죽을지언정 악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

정말 좋은 내용이지만, 절대 하고 싶지 않을 내용이다.

하지만 대놓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법.

“저를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저는 마법사. 다른 사제분들처럼 독실한 신앙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완곡하게 거절한다.

그러나 루크레치아는 앞으로 대단히 유용한 인물. 입술에 침을 바른다.

“그러나 성녀 예하의 참된 뜻에는 공감합니다. 세인트 에인헤랴르에 소속될 생각은 없지만, 저 또한 대륙에 숨어있는 악을 처치하는 데 함께 할 수 있다면 힘을 보태겠습니다.”

즉, 소속은 안 하지만 프레야 교단을 이용은 하겠다.

넌지시 그러한 뜻을 전한다.

“그래, 네 헌신적인 노고는 이미 그린달 주교에게 들었다. 네 청렴함과 숭고한 의지는 의심할 이유가 없겠지.”

루크레치아는 그 또한 나쁘지 않다는 듯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받거라.”

“이건 무엇입니까?”

“나와 직접 연결되는 통신 구슬이다.”

“······!”

루크레치아를 소환할 수 있는 구슬.

세인트 에인헤랴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을 선물 받는다.

‘이거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군.’

나는 함박웃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

그녀는 프레야 교단 성기사단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이다.

그런 거물을 필요할 때마다 연락해서 부를 수 있게 됐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만 부를 수 있겠지만······.

데힐라칸과 같은 악의 교단 군단장들과 거악을 상대할 때 최고의 지원군을 얻게 됐다.

‘뭐, 돈이야 네하드람에게 뜯어내면 되고, 권한도 마탑과 크라우드 소속으로서 충분하니까.’

비록 세인트 에인헤랴르에 정식 소속된 건 아닌 만큼, 무한한 부와 특권은 받지 못하겠지만.

그것들은 이미 충분하다. 딱히 요원하지 않다.

“그래, 마음이 맞는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앞으로 행운을 빌겠다.”

루크레치아 또한 만족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대륙 7대 성인.

그들은 태양처럼 빛나는 명성만큼이나 해결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계속 쉬고 있을 수 없었다.

“잠시만요.”

다만 나는 정색하고 붙잡았다.

아직 정산이 끝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느냐?”

“아직 데힐라칸을 소멸시킨 보상을 받지 못했잖습니까?”

보상은 철저히 해야지.

지금 나눈 대화는 앞으로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를 상대할 때 협력하자는 거고.

프레야 교단으로부터 악마를 물리친 포상은 따로 받아야 한다.

“아, 그래, 네가 마지막 통신 때, 데힐라칸의 라이프 베슬을 파괴한다면 소원을 한 가지 들어달라고 했었지.”

고개를 주억거린다.

프레야 교단 총사령관인 루크레치아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통신 구슬을 끊었던 순간이 떠오른 모양.

“어디 말해 보아라. 내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지.”

피식 웃으며 담담히 말한다.

마치 네까짓 게 상상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는 듯 물어보는 태도.

무의식적으로 별로 걱정 안 하는 눈치다.

‘후회하게 해주지.’

그러나 내가 다음에 내뱉은 한 마디는 그러한 루크레치아를 정색하게 하기 충분했다.

“프레야 교단의 성물 중 하나를 주십시오.”

“!!”

성물.

‘아가타의 성배’와 같은 등급의 교단 보물.

하나 같이 정신 나간 성능을 자랑한다.

프레야 교단에서도 극소수라서 특별 관리하는 보물.

루크레치아는 눈매가 차갑게 내려앉는다. 한참 고민한다.

“······미안하지만 그건 나조차 홀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군.”

하기야 성물을 대여하는 게 아니라, 아예 소유하려는 것은 대륙 7대 성인조차 홀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루크레치아가 소유한 유일한 성물인 ‘성검 듀란달’도 대대로 물려받는 형식이니까.

그러나 내가 성물의 귀함을 모르고 이리 말한 것이 아니다.

“지금 사용되고 있는 성물이 아니라, 아직 발견 못 한 성물의 소유권을 갖고 싶습니다.”

나는 대륙에 숨겨진 보물과 기연을 모조리 알고 있으니까.

지금 반드시 구해야 할 세계관 최강급 성물 중 하나를 알고 있다.

‘기간테스의 힘. 지금 당장 북부에 가서 그 성물을 구해야 한다.’

기간테스의 힘.

고대에 전 대륙을 지배했다는 거인족 ‘기간테스’의 신체를, 마나를 불어넣은 만큼 소환할 수 있는 성물이다.

‘원작에서 거인의 손을 소환해, 북부 인들이 버티는 성들을 일격에 뭉개버렸지.’

무려 운석 소환급 최흉의 병기 중 하나.

이는 현재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제6군단장 '설인왕(雪人王) 이미르’가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 현재 북부에서 타락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만약 내가 악의 교단에서 그 성물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걸 프레야 교단에 미리 알린다면, 북부의 멸망을 저지하는데 훨씬 수월할 거다.’

기간테스의 힘이 완전히 어둠의 힘으로 물들이는 순간, 수많은 북부인이 떼죽음 당할 테니.

아니, 어쩌면 북부를 뛰어넘어서 대륙 전체를 멸망시킬 지도 모른다.

설인왕 이미르는 데힐라칸과 마찬가지로 홀로 대륙을 멸망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만, 리치와 달리 신성력에 덜 취약하니까.

거기에 기간테스의 힘까지 온전히 깨어낸다면 막아낼 방법이 도저히 없다.

최대한 그 전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더구나 제6군단장을 죽이고 최종적으로 구했을 때도 엄청난 보상이 되리라.

따라서 나는 루크레치아에게 대놓고 고한다.

“북부에 악마들이 고대의 성물이 오염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악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 이를 제가 회수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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