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52화 (52/140)

52. 동부의 변 (4)

가주 엡실론과 다크 로드 자칼.

그들이 한 번 마력을 내뿜을 때마다 전장이 으스러졌다.

그 둘의 전투는 도저히 인간의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쿠광! 쾅! 꽈아앙!

흑마법사의 왕 자칼은 공간을 통째로 지워버리는 검은 기둥을 끝도 없이 퍼붓는다.

한 방 한 방이 5써클 상급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위력.

도대체 무슨 간악한 수를 썼는지 마력을 끝도 없이 끌어 오른다.

촤악, 파아앙.

엡실론도 힘으로 막기보다는 되도록 아쿠아 부스터로 성벽 위를 날아다니며 피한다.

상대는 마경으로부터 알 수 없는 마력을 끝없이 공급받으니까.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마나를 아끼는 모습.

서로가 서로만 죽이면 이 전쟁이 끝난다는 걸 알기에, 다른 요소 따위 고려하지도 않는 모습.

쿠과과광-!!

“끄아아악!”

“피해라! 모두 엎드려! 가주님께 최대한 떨어져라!”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성벽 위에 남아있던 병사들이 보았다.

검은 광선이 성벽을 소멸시킬 때마다 함께 사라지는 병사들.

천외천(天外天).

마치 사자의 맹렬한 싸움에 개미들이 깔려 죽는 꼴이다.

엡실론이 최대한 사람이 없는 첨탑으로 회피 기동하지만, 그 또한 피해를 줄이는 것뿐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는지 지켜보마.”

꽈아앙! 꽝! 꽝!

그러거나 말거나 흑마법사의 왕은 입꼬리를 올리며 끝없이 폭격을 가한다.

상대가 반격할 틈도 없도록, 숨 고를 틈도 두지 않고 몰아붙인다.

엡실론은 스치지도 않고 전부 피한다.

막상막하의 구도에서 균열이 일어난 건 한참 후였다.

“······크헉?”

난데없이 흑마법사의 왕이 멈칫한다. 썩은 피가 가득 찬 혈관들이 일제히 곤두서는 모습.

엡실론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간 적이 없음에도 갑자기 내상을 입은 듯, 머리를 붙잡는다. 검은 피를 토해낸다.

“쿨럭!”

“크아악? 계약이, 불발됐다······?”

-끼기긱!

함정이라기엔 다른 모든 흑마법사가 각혈하며 비명을 지른다.

지상에 있던 언데드들도, 좀비도 순간 명령을 잃고 방황한다.

“차원의 틈이······. 깨졌다?”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려서 동부 끝의 마경을 바라보는 자칼.

자칼은 급속도로 노화된다. 젊고 팽팽한 피부가 순식간에 쪼들려 들어가고, 보유하던 마력도 크게 줄어든다.

힘이 급속도로 약해진 모습.

그런 상태를 놓칠 엡실론이 아니었다.

“얼마 못 버티는 건 네놈이로군.”

파아앙.

부서진 성벽 끝을 밟고 다크 로드 자칼에게 질주한다.

아쿠아 부스터.

물을 폭발시켜 한걸음에 드높은 첨탑에서 자칼 앞으로 뛰어든다.

촤아아악-!!!

그와 동시에 성벽 아래를 쓸어버렸던 거대한 물줄기를 다시 모은다.

다크 로드 자칼과 그 일당을 에워싸는 물방울들.

고고고!

푸른 눈의 스태프가 번뜩인다. 흉흉한 살기를 내뿜는 마나.

제 이마를 붙잡은 흑마법사의 왕이 위기를 감지하지만 이미 늦었다.

엡실론은 막대한 양의 마나를 퍼붓는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절대 비기이자, 그의 상징이 된 대마법.

아쿠아 스톰.

쿠과과과과-!!!

폭발하는 물기둥. 물의 토네이도가 회오리친다.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물기둥이 마찰열을 끓어 올린다.

그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건 급속도로 노화한 흑마법사의 왕뿐. 주위 흑마법사들은 흔적도 없이 소멸한다.

털썩.

모래 바닥으로 자칼이 떨어진다.

포르티스 요새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온다. 승기가 아군으로 넘어왔다는 확신이었다.

“쿨컥······.”

그러나 자칼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그 순간 자칼은 자신을 늘 방해하던 어떤 얼굴을 떠올렸다.

“크라우드, 비밀 병기······.”

그는 까득, 이빨을 씹는다.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녀석. 이런 짓을 벌일 녀석은 한 놈밖에 없으니까.

엡실론을 노려보며 검은 피를 토해낸다.

“······영악한 여우 같은 놈. 남몰래 막내아들을 보내둔 거냐······?”

그러나 눈썹을 꿈틀하는 건 엡실론 또한 마찬가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그 모습에 자칼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쿡쿡 웃는다.

“네놈도······. 모르는 모양이군. 하기야 알았으면, 그 전에 마경을 침공했겠지.”

자칼의 몸에서 검은 마력이 새어 나온다. 몸이 붕괴하는 모습.

“큭큭······. 네놈은 동부의 꿈을 줄기차게 울부짖으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상석에 앉아 있었구나······.”

엡실론이 인상을 찡그리며 푸른 눈의 스태프를 들어서 자칼을 겨눈다.

“유언은 그것으로 끝이냐.”

그러나 자칼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수십 년간 이 순간을 기다리면서 준비해두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쿠구궁, 고고고고고!

반쯤 드러난 심장이 검은빛을 발한다.

자칼의 몸에 새겨진 맹약. 흑마법사의 왕이었던 그가 계약을 맺은 존재.

“데힐라칸이시여! 제 육신을 바치겠나이다!”

데힐라칸.

수백 년 전, 동부 사막을 홀로 멸망시킨 절대 악.

그의 고함과 동시에 하늘이 무너지고 검은 기둥이 자칼을 내리꽂는다.

뿌득, 뚜두둑!

마계의 군주 중 한 명인 그 존재가 차원을 일그러뜨리고 자칼의 육신에 강림한다.

썩은 살과 검은 피, 장기가 쏟아진다. 오직 뼈만 남아 기괴한 모습으로 남는다.

끼기긱, 뚜두둑!

그 상태에서 주위 스켈레톤 뼈를 빨아들이는 다크 로드.

······아니, 그 육신이 주위 뼈들과 재조합하면서 점차 덩치가 커진다.

“다, 다크 로드이시여······? 저희는 도대체 왜······? 크악!”

살아남은 흑마법사 부하들도 뼈와 살을 분리해서 흡수한다.

그와 동시에 뼛속 검은 마기가 더욱 강화된다. 마치 장기처럼 자리 잡은 검은 마기.

속을 새까맣게 채우는 건 물론, 뿜어지는 연기가 주위를 새까맣게 물들인다.

노을로 붉게 물들던 동부 대륙 하늘이 순식간에 뒤집히며 별 한 점 없는 어둠이 도래한다.

“저건······!”

“리, 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성벽 위 병사들이 피부가 차가워진다. 오돌토돌해진 피부를 감싸며 한 걸음 물러난다.

리치.

흑마법과 네크로맨시에 정점에 선 존재.

수백 년간 등장하지 않았다는 전설적인 악마가 강림했으니.

쩡!

그와 동시에 무언가 쪼개지는 소리.

엡실론은 두 눈을 부릅뜬다.

“······6써클.”

5써클 5티어에 머무르던 다크 로드 자칼이 막강한 어둠의 힘으로 강제적으로 6써클의 벽을 뚫어냈다는 걸 직감한다.

쪼개진 써클만큼이나 더욱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는 리치.

-그아아아!

흑마법사의 왕이었던 것은 뼈로 된 4m 크기의 괴물이 되어 엡실론을 내려다본다.

리치.

흑마법과 네크로맨시에 정점에 선 존재.

수십 년간 웅크려있던 거악이, 최흉의 수를 꺼내 든다.

그것이, 백골의 손을 뻗는 순간.

우직하게 버티고 서 있던 엡실론조차 허무하게 튕겨 나가고.

검은 마기가 뿜어지며 포르티스 성벽이 통째로 증발한다.

***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는 동부 사막을 전속력으로 달렸다.

대륙 7대 성인.

태어날 때부터 프레야 여신의 기적을 몸소 체험한 자로서, 악을 섬멸하기 위해 기마 부대만 이끌고 우선 질주하는 것이다.

그오오오!

“······!”

그러던 도중, 붉은 하늘이 순식간에 칠흑같이 어두워지는 걸 목격한다.

해와 달, 그 천체가 힘을 잃는 어둠.

횃불을 꺼내보지만, 촛불처럼 작게 만드는 어둠이 동부 대륙을 지배한다.

“이건······!”

히히힝!

루크레치아는 이 어둠이 무엇인지 눈치챈다.

타고 있던 백마가 놀라 앞발을 든다.

“무슨 일입니까?”

세인트 발키리들이 루크레치아 발아래로 달려온다.

루크레치아는 자신의 구두만 바라보는 발키리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데힐라칸. 잊힌 거악(巨惡)이 돌아왔구나.”

“!”

데힐라칸.

그 존재는 발키리들도 알고 있는 자다.

무려 성서에 기록된 거악.

수백 년 전, 동부 사막 전체를 멸망시킨, 악마들의 왕.

그 존재를 봉인하기 위해 당시 대륙 7대 성인들이 집결하고, 인간 연합군이 창설됐을 정도이니 그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동부를 구하기는 틀렸다.”

루크레치아는 냉철하게 판단한다.

“우리가 도착할 때라면 이미 동부의 전선은 무너졌을 것이다.”

“!!”

그녀는 별 하나 빛나지 못하는 동부 사막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별들조차 동부의 미래에 빛을 더해주지 않으려는 것만 같다.

그리고 명령한다.

“중앙과 북부에서 집결하는 지원군에게 마리우나 산맥으로 주둔하라고 통신해라. 동부는 포기한다.”

마리우나 산맥.

이곳은 중앙과 동부 대륙을 가르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니.

그곳에 병력을 집결시킨다.

“현재 동부 귀족 연합군을 지휘하는 건 누구지?”

“크라우드 가주 엡실론입니다.”

“그에게 통신해라. 동부를 포기하고 주민들을 대피시키라고.”

이것이 루크레치아의 최선이었다.

거악 데힐라칸.

그 존재를 다시 봉인시키기 위해선 또다시 대륙 7대 성인이 집결해야 할 테니까.

현재 동부 전력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인지 마법 구슬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동부를 감싼 어둠의 힘이 원인인 듯하옵니다.”

“······일이 더욱 어렵게 되었구나.”

루크레치아는 무거운 한숨을 쉰다.

“예하, 저희가 최대한 빨리 포르티스 요새에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놈을 격퇴할 수 없는 겁니까?”

한 견습 세인트 발키리가 묻는다.

“수백 년 전, 6대 성녀님과 세인트 발키리 부대가 데힐라칸을 물리치셨지. 무려 14번이나. 그러나 동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아느냐?”

“아······ 리치를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넣지 못하였군요.”

루크레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힐라칸의 계약자는 리치화가 되고, 리치는 사악한 불멸을 위하여 라이프 배슬을 만들어 숨겨둔다. 그것을 찾아내는 데에만 몇 달이 걸린 터이니······ 동부는 그 시간 동안 버틸 수 없다.”

성녀의 지혜는 수백 년을 거듭되어 온 진실.

그녀는 냉혹하리만큼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동부는 끝났다.

***

“후, 좋아 닫았다.”

나는 검은 고성에 숨겨져 있던 차원의 틈을 박살 냈다.

차원의 틈은 자칼에게 끝없이 마력을 전해주는 거대 마법 장치.

어지간한 공격엔 흠집도 가지 않으나, 늪지대의 악마 레비아노를 녹여 죽인 성수 호수를 통째로 들이붓자 와장창 깨져나갔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지.”

나는 원작에서 동부의 변을 몇 번이나 클리어해봤기에 알고 있다.

다크 로드 자칼.

그 악마는 살려도, 죽여도 문제라는 걸.

동부 사막을 멸망시키기 위해 수십 년간 준비한 절대 악이니까.

“결국 내가 해치운 놈이고.”

그러나 나는 수십 번의 실패 끝에 그 모든 것을 클리어한 사람이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는 자칼이라는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동부 전체를 뒤졌고, 힌트를 얻어서 결국 공략해냈다.

“노움.”

-우움?

“호수 밑바닥을 파봐라.”

늪지대의 악마 레비아노.

그 존재가 깃들어있던 호수. 그 물을 성수로 바꿔서 치우고, 땅을 판다.

쿠구궁.

그러자 땅속에서 드러나는 검은 벽.

정사각형으로 숨겨진 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니, 고풍스럽게 검은 함이 드러난다.

함에는 붉은 그릇이 담겨있었다. 어둠의 연기가 끝없이 부글거리며 뿜어지는 그릇.

[이름 : 데힐라칸의 라이프 배슬 (MASTER).]

[설명 : 흑마법사의 왕 자칼이 마계의 거악과 계약한 증표. 무한한 생명력이 보관돼 있다. 파괴될 시, 불사의 권능을 잃게 된다.]

[효과 : 활성화 시, 모든 종류의 흑마법 스킬 레벨+1. 추가 패시브 적용 : 끝없는 마력. 되살아나는 생명. 끝없는 공포.]

[특수 효과 : 활성화 시, 불사의 권능 발동. (현재 파괴 불과.)]

* 현재 활성화 중입니다!

* 파괴하기 위해선 특별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무려 마스터급 보물.

흑마법사의 왕 자칼의 몸에 빙의한 데힐라칸을 영원히 물리치기 위하여 반드시 찾아야 하는 보물이다.

나는 이 보물이 여기에 숨겨져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야 당연히 가장 소중한 보물은 가장 센 놈에게 맡길 테니까.’

설마 거대한 호수를 다 파내서 땅까지 뒤질 거라곤 생각 못 했겠지.

‘하지만 아직 파괴할 순 없다······. 이걸 파괴하기 위해선 지옥 같은 조건이 하나 필요하니까.’

사실상 데힐라칸을 힘으로 제압해야 하는 조건.

과연 동부의 왕이라는 놈이 이 그릇 하나 찾았다고 소멸하진 않는 것이다.

마지막 수를 준비한다.

쿠과광.

먼저 늪지대의 악마 레비아노를 추앙하고 있던 흑마법사를 찾아낸다.

벽을 부수고 들어간다.

-lv27 다크 로드의 11번째 제자 게스네.

“허억? 여긴 어떻게······?”

공포에 질린 흑마법사에게 붉은 눈의 스태프를 겨눈다.

히익, 신음하며 양손을 든다.

“흑마술의 재료들은 어디에 있지?”

“저, 저기에······.”

파아앙!

위치를 알아낸 후, 그대로 목을 날려버린다.

향후 흑마법사 창고를 뒤진다.

‘과연 흑마법사의 왕이 거주하는 곳 창고인가.’

지하 3층 전체가 흑마법 재료 창고였다.

일전 마벨을 죽이고 고대의 석판을 털었던 흑마법사 지부 C와는 차원이 다른 창고.

검은 고성의 크기만큼이나 넓고 복잡했다.

악마에게 제물을 공양해야 하는 만큼 크기도, 종류도 다양하다.

“찾았다.”

그중에는 내가 원하던 물약도 있다.

[이름 : 블루 번 (SUPER RARE).]

[설명 : 흑마법사가 만든 전설적인 비약. 복용 시 최대 화력이 비약적으로 증폭된다. 그러나 이후 끔찍한 페널티가 적용될 것 같다······.]

[효과 : 30분간, 최대 화력 50% 증폭. 이후 한 달간 최대 마나 99% 감소.]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시약.

최대 마나량을 50% 증가시키는 게 아니라, 화력을 증폭시키는 것.

붉은 눈의 스태프와 마찬가지로 자칫 잘못하면 마나 고갈로 자살 병기가 될 수도 있는 아이템이다.

심지어 누가 흑마법사가 만들었다고 안 믿을까 봐, 한 달간 반 폐인으로 지내야 한다는 페널티까지 붙어있었다.

그러나 해볼 만했다.

악과 파괴의 교단 제7군단장인 데힐라칸만 처치한다면, 한동안 마나를 끌어 올릴 일은 없으니.

“더구나 데힐라칸을 잡을 비기도 있으니.”

치링.

나는 성물 아가타의 성배를 꺼낸다.

프레야 교단의 수많은 성물 중에서도 구태여 아가타의 성배를 고른 이유.

이제 곧 데힐라칸과 물 마법으로 맞설 내게 큰 힘이 돼줄 아이템이니까

이후 검은 고성을 빠져나와, 용용이를 타고 포르티스 요새로 날아오른다.

펄-럭.

“······이런. 데힐라칸이 벌써 강림했나.”

성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동부 대륙 전체에 어둠이 드리웠다.

드넓은 마경을 벗어나, 황야를 가로지르고, 민둥산을 지나쳐도 하늘은 온통 검은 먹구름뿐이다.

일전 인간계에서 수년간 힘을 축적한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조차 타바스 영주성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데 그쳤거늘.

그보다 몇백 배는 넓은 동부 대륙 전체를 강림하자마자 어둠으로 전부 감싸는 데힐라칸의 힘을.

‘종말의 날 같군.’

심장이 멋대로 쿵쿵 뛴다.

불길한 예감이 날 옭아맨다. 마음 한편의 악마가 지금이라도 달아나고 훗날을 도모하자고 달콤하게 속삭인다.

‘······아니, 악마가 가장 취약할 때는 인간계에 강림한 직후다. 지금을 놓칠 수 없어.’

그러나 이성적으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킨다.

본능과 맹목으로 살아가는 것은 짐승의 삶.

인류의 미래와 내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서라도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쿵, 쾅, 쿵, 쾅.

치링.

용용이를 탄 채, 데힐라칸이 불러온 먹구름을 가로지른다.

동시에 아가타의 성배를 꺼내어 허공으로 들어 올린다. 검은 하늘에서도 고고하게 빛나는 성물.

먹구름 또한 수증기의 일부 일지 어니.

샤아아아.

아가타의 성배의 힘이 뿜어져 오르며 먹구름에 닿자, 그것들의 성질이 변화한다.

광범위한 정화. 절대적인 회복.

어둠이 걷히고 백색으로 바뀌는 구름.

내가 지나온 방향을 따라서 긴 백색의 꼬리가 이어진다.

그것은 정화된 수만 톤의 성수.

그리고 장전된 벼락.

동부를 물들인 악을 씻어낼 단비.

-데힐라칸의 마계화를 0.3% 정화했습니다! 같은 퍼센트만큼, 거악의 마력 효율이 감소합니다.

-데힐라칸의 마계화를 1.7% 정화했습니다! 같은 퍼센트만큼, 거악의 마력 효율이 감소합니다.

.

.

수없이 시스템 창이 나타난다.

지상에 중앙 대륙으로 대피하는 수많은 사람이 보인다.

심지어 포르티스 요새로 지원 가던 군대가 달아나는 것도 보인다.

모두가 싸울 생각도 못 하고 달아나는 상황.

그 속에서 홀로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새 하늘을 열어젖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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