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대피 (3)
포르티스 요새 내부.
황금 상회 후계자이자, 임시 사령관 네하드람은 손톱을 씹으며 발을 계속 구른다.
드높은 궁수 탑에서 요새를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철옹성.
완전무결한 요새였으나, 그곳을 지킬 군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영주들이 갑작스러운 전시라 군대 도착 시일이 계속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나단 경. 전진 마을 구출에 나설 자원자는 선별하셨습니까?”
“자원자가 거의 없어서 강제로 선별하기는 했으나, 사기가 좋지 못합니다.”
“흥, 하기야 그렇겠지. 어느 정신 나간 작자가 마을 주민을 구하겠답시고 성 밖에서 싸워?”
네하드람은 괜히 궁시렁거리며 말했다.
그때였다.
서쪽 사구로부터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무리의 병력이 다가오고 있었다.
투두두두!
이에 성벽 위의 병력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정지!”
네하드람이 정체불명의 군대에게 소리쳤다.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오며 대답했다.
“여기가 5개의 전진 마을을 구하기 위한 자원자가 모이는 곳입니까?”
“응? 너희는 누군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냐?”
“저희는 은빛 늑대 용병단이라고 합니다! 크라우드 가문의 네카르 경에게 고용됐습니다!”
이에 카나단과 네하드람은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병력 수급에 문제를 겪고 있던 터였거늘, 전진 마을을 구하러 간 네카르는 이미 한참 전부터 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었으니.
“네카르······ 네놈은 대체······.”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히히힝.
“······흠흠, 여기가 네카르 경께서 지휘하신다는 요새입니까?”
그다음으로는, 무려 귀족 마법사 무리가 나타났다.
심지어 상대는 네하드람도 아는 얼굴이었다.
“우리 크라우드와 협업하시는 아리우스 학파 마법사분들 아닙니까? 여긴 어쩐 일이신지요?”
물의 명가 크라우드와 마법 공동 연구를 맡은 아리우스 학파.
귀족으로서, 이번 작전의 위험을 아는 자들이 나섰으니 사뭇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는 저희 동맹 아닙니까? 마법 협업도 같이하는데,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야겠지요. 그리고 네카르 경에게 빚이 있기도 해서 말입니다.”
이쪽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사소한 것이 중요하진 않은 법.
네하드람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법 성과만 쏙 빼먹으려던 쫄보들인줄 알았는데, 평가를 바꿔야겠군.’
그렇게 용병과 마법사로 자원단이 끝난 줄 알았다.
“어? 저건 아펠 영주의 깃발입니다!”
“응? 아펠 영지는 동북부일 텐데?”
동부의 영주들도 지원이 늦었거늘, 동북부의 군대가 먼저 도착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네카르를 돕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무려 세인트 발키리였다.
“저희가 순교할 곳이 정해진 듯하군요.”
대륙 7대 성인 중 하나인 루크레치아가 직속으로 관리한다는 최정예 특수 부대.
“네카르 경께서 악의 군대에 맞선다고 하여 힘을 보태고자 왔습니다. 물론, 저희의 사명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모인 병력의 숫자는 절대로 적지 않았다.
네하드람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네카르에 대한 상전벽해를 느꼈다.
“······이놈이 밖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그 녀석, 하루아침에 달라진 걸 넘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렇게 네카르와 5개의 전진 마을을 구할 구원군이 출격했다.
***
쏴아아아.
펄-럭.
나는 용용이를 타고 마경의 하늘을 날아오른다.
포르티스 요새 앞 5개의 전진 마을.
그중에서 첫 번째 마을 ‘비트로’ 영지.
어차피 나머지 마을들도 봉화를 보고 대피 중이니, 이곳에서 시간을 끌어도 모두를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바람의 길 lv2.】
쐐애액.
거세지는 비를 맞으며 최고 속도로 날아간다.
바로 아래 피난민들이 흑마법사의 군단에게 뒤쫓고 있으니.
투두두두.
하운드독은 그런 피난민들을 향해 삽시간에 달려온다.
푸른 늑대들이 드넓은 초원을 가득 메우며 네 발로 달려온다.
최소 400마리 이상의 선발대.
그들이 흙길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땅에 진동이 전해진다.
피난민들과 가축들은 그 진동이 다가올수록 더욱 공포에 질린다.
“가자.”
-키랴아앗!!
내 명령에 포효하며 급강하하는 용용이.
피난민과 늑대들이 좁혀지는 거리를 초저공 비행해서 횡으로 가로지른다.
쿠과과광.
용용이가 거대한 발톱을 들어 지상을 달리는 늑대들을 쓸어버린다. 막대한 중량을 초고속으로 내리찍는다.
푸화아악!
-키야악!
-깨갱, 깨르릉!
마치 거대한 철퇴가 헤집고 지나간 것처럼, 몬스터 대열의 한 가운데에 붉은 선이 그어지며 육편이 흩날린다.
대형 비행 몬스터만의 권능. 나는 또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달아나던 피난민들은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았다가,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곧 큰 강이다.’
비트로스 강.
대부분 사막인 동부 대륙에서 몇 없는 큰 강으로, 굳이 위험하게 마경 인근에 마을을 꾸릴 수 있도록 풍요를 안겨주는 강이다.
지금 대피하고 있는 비트로 마을 바로 뒤에 있는 강.
만약 피난민들이 저 강을 건너고, 다리를 끊는다면 살아남을 시간을 구할 수 있다.
말 못 하는 짐승과 몬스터들은 배가 없으니까.
-크르릉······!
-아우우우!
하운드독을 조종하는 흑마법사들도 그걸 알고 있는지 더욱 거칠게 군단을 조종한다.
반쯤 미쳐있는지 붉은 눈이 번뜩이는 늑대들. 광기 어린 울음을 토해내며 다시금 피난민과 거리를 좁힌다.
-까아아악!
더구나 하늘에서도 검은 괴생명체 무리가 떼 지어 날아들었다.
악마의 익룡 가고일.
마계의 하늘을 지배하는 거대한 포식자들이 40마리나 쫓아온다. 그들이 일제히 날 포위한다. 하늘을 반쯤 검게 물들인다.
‘이건 아무리 용용이라도 위험하다!’
-키야악!
【바람의 길 lv2.】
나는 이를 악물며 거칠게 비행한다.
용용이는 공중에서 360˚ 회전해서 가고일의 포위를 빠져나온다. 매직 오브를 날아 올린다.
아무리 독수리가 강하다고 해도, 한 마리로선 수백 마리의 까마귀 떼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니.
파아앙! 파앙! 쿠과광!
【워터볼 lv2.】
나는 뒤를 돌아 용용이 꼬리를 쫓는 가고일들에게 워터볼을 난사한다.
공중전은 꼬리를 무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법.
가고일들이 내가 타고 있는 용용이 등을 노리는 걸 허용해선 안 된다.
-까아아악!
-끼야악!
가고일들은 돌처럼 단단한 제 머리가 박살 나고, 날개 한쪽이 부서져 나가면서도 끝없이 따라붙는다.
과연 흑마법사들이 조종하는 괴물들.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덤벼든다.
만약 용용이가 가고일보다 압도적으로 빠르지 않았거나, 내가 마법 영창을 하지 않고 스킬로 난사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만 적용됐다면 당장 뜯겨 먹혔으리라.
터업.
“······!”
섬뜩,
가고일의 이빨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간다. 아무리 나라도 생존의 공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무작정 마나를 퍼부을 순 없다. 적들 수가 너무 많다!’
【워터볼 lv2.】
콰아앙!
아무리 드래곤 하트가 있어도, 몸에 부하가 오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더구나 저 많은 피난민을 구하기 위해서 ‘그 짓거리’를 할 계획이니까.
향후 결정적인 순간 미친 짓을 하기 위해 붉은 눈의 스태프는 아껴둔다.
-워터볼이 한계 이상으로 연속 출력됐습니다! 숙련도가 매우 증가합니다!
-워터볼 스킬 레벨이 2에서 3으로 증가했습니다!
덕분에 스킬 레벨이 빠르게 오르지만, 기뻐할 틈도 없다.
나는 새까맣게 우릴 포위하는 가고일을 보고 이를 악문다.
【썬더 스톰 lv1.】
번쩍, 꽈르릉! 꽈꽈광!
거친 비가 퍼부어지는 만큼 최고 효율로 작렬하는 썬더 스톰.
1초마다 빛이 내 곁을 스쳐 내려가며, 3~4마리의 가고일들이 새빨갛게 녹아내린다.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는 가고일 무리.
그러나 내 표정은 아직 밝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시전한 것일 뿐더러, 포위는 또다시 두터워지고 있으니까.
“더는 안 되겠다! 용용아!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크롸아아!
용용이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일순 구름을 향해 수직으로 날아오른다.
【바람의 길 lv2.】
고오오, 쐐애애액!
샌드 드레이크 특유의 압도적인 비행 속도로 추격을 뿌리친다.
더구나 바람의 길까지 더해지니 순간적으로나마 가고일과 압도적인 거리를 벌린다.
그때, 나는 손가락으로 내려 조그마하게 보이는 지상과 가고일을 가리키며 고함친다.
“물어-!!”
물어.
잘못 가르쳤던 명령어.
내 말에, 용용이가 입을 쩍 벌린다.
흐웁, 콰아아아-!!!
그러자 용용이가 몸을 풍선처럼 최대한 부풀리더니, 머리를 아래로 향하며 녹색 액체로 가고일 무리를 쓸어버린다.
순식간에 전방 5마리의 가고일이 반쯤 녹아 소멸하고, 그 뒤의 10마리의 가고일 또한 행동불능에 빠진다.
일격에 땅 아래로 새끼 괴조만한 가고일들이 15마리나 떨어지는 대재앙.
검은 가고일 시체가 바위무더기처럼 바닥에 쌓인다.
애시드 브레스.
용의 숨결 중 하나로, 독극물에 닿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기술.
아룡형일지라도 만물의 영장인 용의 권능이 작렬한 것이다.
“헉······. 헉······. 공중은 어떻게든 됐나?”
-크르릉······.
아직 가고일들이 꽤 남아있지만, 대충 정리된 분위기.
계속된 초고속 비행에 애시드 브레스까지 쏟아내니, 용용이도 크게 지쳤다.
용의 숨결은 용족 심장에 쌓인 본연의 속성을 모조리 토해내는 기술이니.
아무리 사막의 최고 포식자이자, 적수가 거의 없는 상급 몬스터 샌드 드레이크로서도 보통 하루에 1번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늑대가, 저희 엄마를······. 으아악!”
그러나 공중전을 벌이는 동안, 잠시 손 못 댄 지상이 또다시 난리가 났다.
거대 늑대들이 피난민들에게 도착해서 덮치기 시작한 거다.
달그락, 달그락.
-그르르······!
그리고 그 뒤를 스켈레톤 기마병이 가득 메운다.
사라진 주민들의 뼈로 만들어진 군단. 언데드가 된 주민들은 구슬픈 신음을 흘리며 그 슬픔을 토해낸다.
“빠, 빨리 다리를 건너! 이대로 정체되면 죽어!”
“······헉. ······헉. 지쳤다고 쉬지 마! 뒤에 밀려있는 거 안 보여?”
그러나 피난민들이 달아나기엔 다리가 너무 좁다. 한 번에 겨우 2명 밖에 갈 수 없는 폭의 다리.
수많은 짐과 가축을 몰고 있는 사람들로선 한참이나 걸릴 곳이니까.
이대로는 피난민 대부분이 건너가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용맹한 자경단들이여!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다!”
“야 이 새끼들아! 평소 그렇게 죽이던 늑대들이야. 정신 차리고 버텨라!”
비트로 마을 주민들은 대게 마경에서 활동하던 사냥꾼.
각자 무기를 들고 어떻게든 거대 늑대를 저지하려고 한다.
-크르릉.
-키야악!
그러나 그것도 거대 늑대가 4~5마리까지일 때지, 지금처럼 수백 마리의 거대 늑대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금 늑대 무리는 피난민 전체 규모보다 거대하니까.
드넓은 초원에 완전히 갇힌다. 독에 든 쥐가 돼서 사람의 살점이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나는 용용이를 타고 저공비행해서 그들에게 다가간다.
‘······안 돼. 아쿠아 스톰을 쓴다고 해도 구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공중전을 격렬하게 하느라 이미 거칠게 타오르는 심장.
무리해서 아쿠아 스톰을 쓴다고 해도 고작 한 번뿐.
그 정도론 왼쪽을 뚫든, 앞을 뚫든 저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애초에 이 정도 규모의 군단은, 혼자서 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혼자선 할 수 없다. 새삼 엡실론의 무게를 느낀다.
동부 최강 마법사이자, 최고 영주.
그 빛나는 위상 아래에는 홀로 고독하게 동부의 꿈이라는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그림자가 깃들어있었으니.
‘하지만 나는 엡실론이 아니지.’
이것이 나와 엡실론의 차이다.
단순히 힘의 차이라면 엡실론이 압도적일 것이다. 애초에 써클이 두 배 가까이 차이 나니까.
그러나 나는 이 세계의 이면을 모두 꿰뚫어 본 이방인.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히히힝!
-lv23 물의 명가 크라우드 엘리트 마법사 나아안.
-lv29 은빛 늑대 용병단장 맥스.
-lv11 은빛 늑대 용병단 제나.
-lv17 아리우스 학파 대표 2써클 아라클.
-lv15 아리우스 학파 마법사 아네샤.
.
.
어느새 강물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구원군이 나타났다.
그동안의 방랑 생활 동안 구해주며 만난 인연들.
그들이 군단이 되어 도착했다.
***
쏴아아아.
하늘이 우짖는 듯 내리는 비.
맥스와 제나는 네카르 구원군을 이끌고 호기롭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포르티스 요새 앞 최전방 전진 마을 '비트로'.
본래 마경을 감시하고, 경계하는 임무를 맡은 이곳 주민을 살려야 전장의 바람이 바뀔 것이니.
“지원군이 오셨군요! 이쪽입니다!”
그곳에서 크라우드 조사단 나이안과 합류한다.
“저쪽이군.”
히히힝!
그렇게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착한다.
언덕 아래에서 마을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본다.
쏴아아아.
비가 오고 있다. 온몸이 흠뻑 젖을 장대비.
죽은 이들의 슬픔처럼 처연한 눈물이 주륵주륵 내린다.
아래에 보이는 수많은 피난민 행렬.
그러나 그 뒤로 달려오는 끝없는 언데드 행렬이 더욱 엄청났다.
황량하니 텅 비어있던 초원이 새까만 숲처럼 가득 메워졌으니.
“저, 저기······!”
“샌드 드레이크가 가고일에게 쫓기고 있다!”
“네카르 경이다! 샌드 드레이크 위에 네카르 경이 타고 있다!”
-키야아악!
그리고 그 언데드 군단으로 달려드는 건 용용이와 네카르 뿐.
홀로 수십 마리의 가고일 떼에게 뒤쫓기며 곡예 비행을 한다. 단 한 명에게 달려드는 가고일 떼가 시커멓다.
‘저, 저걸, 막아야 한다고······?’
말 그대로 세상이 멸망하는 날 같은 상황.
힘차게 달려오던 1천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숨이 턱 막힌다.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저들을 구하기 위해 의기투합해서 왔음에도, 당장 나서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저 1만 마리의 언데드를 보니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전혀 승산이 없다.
저곳에 자신들이 끼어들면 1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 것이 분명하니.
네카르와의 의리 때문에 달아나지도 못하고, 두려움 때문에 달려들지도 못한다.
그저 망부석처럼 하얗게 멈춰버린다. 손에 쥔 활이 운다.
“으아······.”
“저, 무슨······.”
네카르가 가고일 무리를 쓸어버리는 모습을 그저 바라본다.
무차별 낙뢰로 일대를 쓸어버리고, 나머지를 용의 숨결로 녹여버리는 모습.
마치 신의 대리인처럼 악을 섬멸하는 모습을.
펄럭.
“?”
그때 네카르가 하늘에서 공격을 멈추고 멈춰선다.
샌드 드레이크가 고속 비행을 멈추고, 천천히 저공 비행하는 것이다.
“이런. 네카르 경께서 마나가 다 떨어지신 모양입니다······.”
“혼자서 저 정도 기적적인 활약을 하셨는데도······.”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낙담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샛별마저 떨어지리라고.
하기야 이 정도의 활약조차 말도 안 되긴 했다.
홀로 이 정도 기적이 가능한 자는 동부에 최강자 엡실론밖에 없을 테니.
아마 저렇게 멈춰선 건 자신들을 위한 작별 인사리라. 그렇게 예단하고 있을 때였다.
부글, 부글부글······.
그런데 강 쪽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난민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강.
평소 전진 마을들을 풍요롭게 해주던 젖줄이었으나, 지금은 통탄스러운 벽이 되어버린 비트로스 강물이 끓듯이 넘실거리는 것이다.
쿵, 쾅, 쿵, 쾅.
어디선가 심장 고동이 들린다. 하늘이 꺼지고, 땅이 울릴 법한 우렁찬 심장 소리. 마치 거인의 숨소리 같은 진동이 세상을 아우른다.
그때,
척.
하늘. 샌드 드레이크의 등 위에 고고히 서 있던 네카르가 양손을 들어 올린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쏴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일거에 일어나는 파도. 강이 미친 듯이 출렁인다. 마치 포르티스 성벽처럼 높고, 평준화된 강물이 일어난다.
“어, 강물이 갑자기 범람합니다!”
모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범람이 아니었다.
파도였다.
내륙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자연 현상.
“아, 안 돼! 저 강물이 저렇게 덮친다면 피난민들도 전멸할 텐데!”
미케일라의 뾰족한 비명.
그러나 그녀가 예상했던 비극이 일어나진 않았다.
고오오오!
강물이 하늘 위로 기어오른다.
강기슭이 바짝 말라버린다. 바닥을 드러내는 강.
마치 거대한 물의 채찍을 들어 올리듯, 네카르는 강 전체를 통째로 들어 올린 것이다.
“흐아압!”
쿠과아아아!
기다란 강을 ‘U’자로 꺾어 흑마법사 군단에게 내던진다.
-쿠에에엑!
-끼기긱······!
하늘에서 떨어지는 강의 폭격. 거대 늑대와 언데드 군단이 둑 터진 파도에 휩쓸리듯 날아간다.
언제 파였는지 모르겠지만, 흙에 물길이 파여 있었으니까.
새로운 강줄기를 따라 휘어져서 흐른다.
대피하던 피난민들을 지키는 강이 변모한다.
“저, 저건······!”
“프레야 여신의 기적이야······.”
자연환경을 뒤바꿔버리는 기적에 모두 입을 다문다. 머릿속에 터져 나오는 감정은 경악과 환희, 숭고함.
자신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던 음의 감정이 사라지고 양의 감정이 휘몰아친다.
우와아아아-!!!
한순간, 이 자리에 몰려온 구원단이 함성을 지른다. 작은 언덕이 떠나가라 터져 나오는 함성.
누가 신호하지도 않았는데도 한꺼번에 내지른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건 마을 주민들에게 엉겨 붙어있던 소수의 거대 늑대들.
“은빛 늑대 용병단! 저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은가!”
“부끄럽도다! 죽음을 각오했다고 자부했거늘. 진정한 죽음 앞에서 망설인 내 자신이!”
“가자! 자랑스러운 사막 전사여! 우리들의 형제를 구하러 가자!”
투두두두!
일제 돌격을 시작한다.
동부 사막 곳곳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 영웅의 출현으로 뭉친다.
동부 모래바람이 부는 방향이 바뀐다.
단 한 사람이, 대자연을 움직였고,
끝내 전황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