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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46화 (46/140)

46. 대피 (1)

나는 폭주하는 발록을 지켜본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부수고 보는 존재.

악이라기보다는 생명체 내면에 있는 충동과 파괴 욕망, 그 자체에 가까웠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악이긴 하지.’

나는 힐끗 마을 주민들을 바라본다.

와르르 무너지는 동굴과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주민들. 진동에 넘어지고, 짓밟히기까지 한다.

【어스 lv1.】

쿠구궁.

“엇······?”

나는 흙의 정령 노움을 통해 묻어놨던 사람과 마을 주민들을 밖으로 대피시킨다. 미케일라도 마찬가지.

그제야 발록에게 말을 건다.

“이봐, 소 대가리.”

【드래곤 피어 lv1.】

몸에서 살기를 뿜어내면서.

신경질적으로 비홀드 시체를 짓밟고 있는 발록.

-크르릉······!

고개를 홱 돌려서 날 노려본다.

그러나 드래곤 아이를 보고 겁을 먹었는지, 본능적으로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움츠러든다.

-크워어어!

쿠과광!

그런 저 자신에게 화가 났는지 더욱 거세게 포효하는 발록.

날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마력으로 덩치가 1.5배 비대해진 후, 더욱 파괴적인 공격.

“부족하군.”

【바람의 길 lv2.】

하지만 나는 그런 발록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중얼거렸다.

“위압감이 서지 않아.”

-크롸아아아-!!!

공포에 젖지 않는 날 보며 재차 분개하는 발록.

하기야 마계에서 인간은 서열 최하위, 최약체 피지배층이니까.

감히 마계의 포식자 앞에서 어딜 당당히 서있냐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화아아악-!!

입에서 새빨간 용암을 뿜어낸다. 물조차 기화시켜버릴 법한 초고열 용광로.

【워터 실드 lv2.】

치이익······!!

나는 이제 동굴 내부에 있는 물을 망설임 없이 끌고 와서 막아낸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워터 실드가 깎이며 점차 밀려난다.

물과 불이 맞닥뜨려서 물이 밀리는 진귀한 순간.

‘······숨이 좀 차긴 하는군.’

나는 온몸이 화끈거리는 열기를 느낀다.

아무리 발록이 흑마법으로 제대로 강화되지 않았다지만,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녀석은 아니다.

아쿠아 스톰으로 죽이기엔, 상성이 좋지 않다. 동굴 속 물도 다소 부족하고.

‘그러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하지만 내 부가 특성은 엘리멘탈 마스터.

굳이 물 속성 마법으로 상대할 필요는 없다.

아쿠아 스톰과 아쿠아 붐 같은 최상급 마법.

이는 흙의 마법으로도 재현 가능하니까.

“······그래, 슬슬 다시 할 때가 됐지. 진정한 의미의 미친 짓을.”

고오오.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붉은 눈의 스태프가 악마가 깨어나듯 흉흉하게 빛난다.

안 그래도 발록의 용암으로 폭발할 듯 밀집한 동굴 내부 마나가 몇 배로 증폭된다.

쿵, 쾅, 쿵, 쾅.

심장도 불길하게 뛴다. 상상 이상으로 뿜어지는 마나.

3써클 중급 마법사의 벽을 뚫은 후, 마나 하트 속 써클이 안정되고 최대한 힘을 뿜어낸다.

머리는 차가운 이성으로 만류하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가슴은 이미 멈출 줄을 모른다.

-크오오오!

쿠과광!

본능대로 행동하는 괴물이기에 육감도 좋은 걸까.

발록은 불길함을 느꼈는지 더욱 공격적으로 날 몰아붙인다.

하나하나가 동굴을 무너뜨리는 괴력.

하지만 바람의 길에 워터 실드까지 계속 시전할 수 있는 나로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지 않았다.

【어스 lv1.】

콰과광.

오히려 내가 시전하는 흙 마법에 생명의 위협을 더 느꼈다.

동굴 전체를 크게 흔드는 어스 마법.

이는 단순히 흙을 모은 게 아니다. 동굴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기둥들을 무너뜨린 거다.

끝없이 흔들리는 동굴 내부.

-크릉······?

쿠구궁······.

발록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를 깨달았는지, 불길하게 흔들리는 초점으로 천장을 올려본다.

미안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신나게 파괴할 때는 좋았겠지.”

【어스 lv1.】

쿠구구궁······!

나는 발을 힘차게 구른다. 땅에 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은다.

마치 대륙이 처음 탄생하고 불안정해, 판이 충돌하고 꺾인 것처럼.

동굴 내부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서 막대한 마나로 충돌시킨다. 한꺼번에 여러 조각의 흙을 움직여야 하는 집단 마법.

그러나 나는 그러한 마법을 혼자서, 그것도 기준보다 10배는 많은 마나로 시전한다.

쿠고고고!

그리고 이윽고, 동굴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동굴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때,

“어스 퀘이크.”

발록이 딛고 있는 땅을 향해 오른손을 내리친다.

어스 퀘이크.

흙 속성 상급 마법의 대표격 마법.

말 그대로 일대 전체에 급격한 지각변동을 유도해, 지진을 일으키는 마법이다.

그 마법을 집단 마법으로 겉모습만이나마 재현한다.

쿠고고고.

시전과 동시에 1차로 무너지는 대지.

-크오!

발록의 육중한 몸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지옥의 문이 열리며, 지상에서 난리치는 악마를 강제로 집어넣듯이.

막대한 마나가 모여 만들어진 블랙홀이 동굴 바위를 붙잡으며 버티는 발록을 바위째로 끌어당긴다.

펄-럭.

-크오오오!

그러자 등에 있는 박쥐 날개를 활짝 펼치는 발록.

본능적으로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죽을 힘을 다해 하늘로 달아나려고 한다.

쿠과과광-!!

그러나 본격적인 진동은 지금부터다.

발록이 서있는 곳뿐만 아니라, 2차적으로 동굴 전체 지반을 무너뜨렸으니까.

이미 동굴 기둥들을 죄다 부숴놨기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무너진다.

쿠광!

-크웨에엑-!!

송곳처럼 내리꽂히는 종유석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동굴 천장이 무너진다. 1층이 무너지고, 2층이 무너지고, 3층이 무너진다. 무너지고 또 무너져도 끝없이 내려오는 또 다른 천장.

그 모든 천장이 켜켜이 쌓여 무거운 무게로 발록을 찍어누른다.

----!

떨어지는 비명이 빠르게 멀어진다.

이곳은 동굴 외곽도 아니고, 동굴 최하단. 완전히 파묻어 발록의 무덤을 만든다.

실로 무시무시한 화력.

쿠고고고-!!

그러나 어스퀘이크는 여기서조차 끝나지 않는다.

스스로 둥둥 날아다니는 매직 오브에 매달려 버티는 나한테도 천장 종유석이 슬슬 내리꽂힌다.

쿠과과과과광-!!!!

아니, 산처럼 크던 동굴이 통째로 무너져 내린다. 마치 싱크홀처럼. 지하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이대로라면 나까지 생매장될 위기.

‘나야 방법은 있지.’

【바람의 길 lv2.】

쐐애액.

나는 이번엔 바람의 길을 집단 마법으로 시전한다. 동굴 밖으로 향하는 길에 바위를 날려버리는 강풍이 몰아친다.

“노움!”

-우움!

노움이 정령의 권능으로 흙을 띄워 올려 공중 다리를 만든다.

나는 그 길을 따라 미친 듯이 달린다. 등에 순풍을 달고 있기에 기사단의 돌격처럼 빠르다.

파앙! 파앙. 파아앙!

【워터볼 lv2.】

바람의 길을 뚫고 들어오는 바위 잔해는 워터볼로 따로 박살낸다.

매직 오브도 내 어깨 위로 날아올라, 미친 듯이 요격한다.

그렇게 악몽 같은 3분간, 동굴 밖으로 달려나간다.

반짝.

저 밖에 보이는 빛.

수초면 도착할 거리지만 아득하게 멀리 느껴진다.

그러나 워터 실드와 아쿠아 실드까지 동원해서 바위들을 막으니 간신히 빛의 세계로 도착한다.

쿠당탕.

바닥으로 몸을 던진다.

그와 동시에 바위산처럼 거대하던 동굴이 와르르 무너진다. 평지처럼 완전히 가라앉은 동굴.

마치 달의 크레이터처럼 움푹 파였다.

“후.”

나는 바닥에서 대자로 누워 숨을 골랐다.

흙먼지를 구르며 옷이 더러워졌지만 하하, 웃음이 나온다.

숨을 몰아쉰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네카르 경!”

저 멀리서 달려오는 세인트 발키리 사제들과 사비나 영지 주민들.

피투성이지만 신성 치료로 겨우 살아난 미케일라도 달려온다.

“무사하신 겁니까? 방금 그 지진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내 몸을 살핀다.

마치 내가 죽을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

"······."

하기야 옆을 돌아보니 엄청나긴 했다.

작은 산 하나가 통째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간 정도니. 저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아직 진원이 남아있을 수 있으니, 일단 대피부터 한다.

-흙의 기초 마법 ‘어스’의 궁극적 활용! 당신은 3써클로 불가능한 마법을 홀로 이뤄냈습니다!

-‘어스 lv1’이 어스 lv3로 스킬 레벨이 2단 승급합니다!

-마계의 괴물 발록과 비홀드를 동시에 처치했습니다. 이 둘은 마계에서도 특히 악랄한 조합. 써클이 막대한 경험치를 받습니다!

-3써클 4티어에 도달합니다!

그제야 쌓여있는 시스템 창을 안심하고 바라본다.

폭발적으로 레벨이 오르는 스킬과 달리, 더럽게 안 오르는 써클 경험치.

그러나 이제 곧 동부 최고의 인재이자, 차기 가주로 확정된 네하린을 넘어선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 속도이리라.

-악과 파괴의 교단 제7군단장 불사왕 데힐라칸의 마수를 두 마리 제거하셨습니다!

-데힐라칸의 부활 마력이 아주 조금 감소합니다! 부활할 때 최대 마력이 0.7% 감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데힐라칸의 마력.

괴조 카디악 때보다 두 배는 증가한 수치다.

그렇게 기뻐하려는 때,

-악과 파괴의 교단 제7군단장 ‘데힐라칸’이 당신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

청천벽력 같은 시스템 창이 나타난다.

거악(巨惡) 데힐라칸.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도 핵심적으로 군림하는 최종 보스 7명 중 한 명이 내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으니.

‘인생이 쉽지가 않군.’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고작 1년만에 최종 보스들에게 눈에 띄는 존재로 성장했다는 거겠지.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발록을 처치했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

그 말에 크게 눈 뜨는 미케일라.

세인트 발키리도, 마을 주민들도 믿기지 않은 지 3초간 침묵했다.

“우와아아-!! 드디어 살았어. 진짜로 살았다고!”

“프레야 교단분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지가 떠나가라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

“······이번에도 목숨을 빚졌군요.”

마지막에 다가오는 미케일라.

아픈 몸을 이끌고 허리 숙이며 말한다.

“고맙습니다. 프레야 여신님 다음가는 은공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온몸을 피로 물들인 전투 사제가 말한다.

사방을 가득 채우는 환호 중심에 내가 서있다.

***

“정말 감사합니다. 흙의 마법사님! 오늘 기적은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발록을 봉인하기 위해 순교까지 생각하신 겁니까? 존경합니다.”

“······.”

사비나 영지로 이동해, 세인트 발키리들에게 몸 점검을 받고 있으니 주민들이 마구 달라붙었다.

지진을 일으키는 마법사라며 두려워하는 자부터, 구해줘서 고맙다고 우는 아저씨, 전통 발효주라며 말젖 술을 건네는 아주머니까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날 만나러 온다.

따뜻한 햇볕을 쐬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니 내가 정말 살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말젖 술은 도저히 못 마시겠지만 말이지.’

차마 버리진 못하고 흙의 정령 노움에게 넘긴다.

꼴깍꼴깍, 잘도 마시는 노움.

키는 유치원생 정도지만 살아간 세월은 나보다 길 테니 괜찮겠지.

-캬아~.

시원한 탄성을 내뱉으며 병나발을 내려놓는다. 얼큰하게 볼을 붉힌 걸 보아 상당히 만족한 모양.

이것으로 동굴에서 내 목숨을 구해준 빚은 청산했다.

발효주를 마셨으니 포도까지 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들도 전부 죽겠지.’

나는 안도할 수 없었다.

이제 곧 동부의 변. 곧 닥쳐올 언데드 군단을 막지 못하면 이들 또한 전부 죽게 될 테니.

노움을 품에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들 서쪽으로 대피하십시오. 이제 곧 마경에서 진짜 악마 군단이 쳐들어올 것입니다.”

다크 로드와 제자들이 더 이상 기다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숨어있던 발록과 비홀드까지 죽은 마당에, 거사가 발각되지 않았다고 확신할 리 없으니까.

이제 곧 대륙 최동부는 초토화될 것이다.

“진짜 악마 군단이 쳐들어온다고요? 그럼 방금 그 괴물들은······?”

이것이 고작 선발대라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세인트 발키리들.

나는 더 숨기지 않고 말한다.

“사제님들께서는 프레야 중앙 교단에 지원을 요청한 후, 포르티스 요새로 가주십시오.”

포르티스 요새.

동부 최동부에 있는 마경을 막기 위해 지어진 동부 최고 요새다.

아무리 물의 명가 크라우드가 동부 최대 도시라고 해도 군사 요새는 아니니까.

‘포르티스 요새에서 막아야 한다. 그곳을 수성하는 게 동부의 변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원작에서는 흑마법사들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올 것이란 것조차 알지 못해 대비하지 못했다.

그 결과 포르티스 요새가 순식간에 함락됐고, 부랴부랴 출발한 사막 영주들의 군대는 각개격파됐다.

물론 지금은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마경에 수색대를 파견했지만.

‘겨우 첫 단추를 끼웠을 뿐.’

그럼에도 현재 전황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상대는 수십 년간 흑마법사의 날만을 준비해온 다크 로드.

반면, 동부 귀족 연합은 메마른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까. 그들이 오려면 한참 걸린다.

‘그간 내가 지원한 병력들에게 기대해보는 수밖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네카르 경께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 또한 금방 가지요.”

들릴 곳이 한 곳 있다.

언데드 군단은 결국 시체를 많이 필요하는 군단.

시체를 많이 주면 끝없는 물량을 막을 수 없으니까.

‘대륙 최동부에 있는 마을들을 구해야 한다.’

청야(淸野) 전술.

전쟁 직전, 언데드들이 주민들을 잡아먹고 머릿수를 늘리지 못하게 대피시킨다.

‘이럴 때 용용이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쪽 서식지가 아니겠지.

나도 알고 있다. 단지 황량한 사막을 보니 샌드 드레이크가 떠올랐을 뿐.

‘그래도 한번 불러나볼까.’

샌드 드레이크를 부를 때 신호용으로 쓰는 호루라기.

만약 내가 샌드 드레이크였다면 들어도 오지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별로 기대 없이 삐이익 불어본다.

***

동부 사막 최대 상인 단체, 황금 상회.

황금 상회의 유일한 후계자 네하드람은 포르티스 요새에 급히 파견 나왔다.

조사단이 마경에서 최소 수천 마리의 언데드들이 진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으니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각 영지에서 군대가 오는 만큼, 미리 보급하러 나온 거다.

“네카르, 그놈이 언데드 군단을 알렸다니. 도대체 가문을 떠나서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위험하게.”

“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팔짱 끼고 말하는 네하드람.

그런 네하드람을 현자 카나단은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봤다.

한편, 포르티스 요새는 빠르게 정비된다.

포르티스 요새는 동부 대륙에서 최고 철옹성이라고 불리는 요새인 만큼 대비가 충분히 돼 있었다.

10m에 달하는 1차 성벽과 15m에 달하는 2차 성벽. 2중으로 된 철문과 그 앞에 설치된 폭 3m의 해자.

날씨에 성이 약해지지 않도록 열에 강한 벽돌과 추위에 강한 바위를 섞어서 쌓아 올린 재질까지.

성 위에 나부끼는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깃발이 드높아 보이는 철저한 실전형 요새였다.

······병력 머릿수만 빼고.

히히힝.

“네하드람 후계자님! 지금 네카르 도련님께서 만나뵙기를 청했습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

그때, 황금 상회로부터 한 전령이 왔다.

네하드람은 다소 놀랐다.

“······네카르가? 그 녀석은 마을 주민을 구하기 위해 사비나 영지로 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곳에서 여기까지 일주일은 걸릴 텐데?

그러나 이내 고개를 주억거린다.

현재 동부 귀족이 군대를 이끌고 전부 모이기로 결정된 상황.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니 마을 주민을 포기하고, 이쪽으로 합류할 수도 있는 일이니.

곧장 오라고 부른다.

“오랜만이십니다. 형님.”

곧장 등장한 네카르.

그는 반갑다는 듯 네하드람에게 다가온다.

네하드람은 흠흠, 헛기침하며 미소를 감추고 나름 근엄하게 말한다.

“망나니놈. 잘 지냈느냐.”

“형님 지원 덕분에 편히 지냈습니다. 그보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네하드람이 팔짱을 다시 끼고 말한다.

네카르는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포르티스 인근 마을들을 구해야 합니다.”

“인근 마을? 설마 마경 근처에 있는 ‘5개의 전진 마을’을 말하는 것이냐?”

5개의 전진 마을.

마경에서 혹여 몬스터 웨이브가 올 때 방파제로 쓰기 위해 만든 마을로, 죄인과 사냥꾼이 강제 호송되는 마을이다.

“그렇습니다. 적들은 언데드. 만약 그들이 죽게 된다면 순식간에 적의 머릿수가 불어날 것입니다.”

“······!”

네카르는 곧장 자신이 온 목적을 말했다.

수많은 사람을 살리며, 아군은 늘리고, 적의 공세까지 약화시킬 수 있는 전략.

“안 된다.”

그러나 네하드람은 칼같이 말을 끊었다.

“그곳들은 마경의 영향으로 통신 구슬도 통하지 않는 곳이다. 이미 틀렸다.”

지금 구하러 가기엔 늦었다.

마을이 대피하긴커녕 전령이 도착하기도 전에 언데드 군단에게 몰살될 것이다.

“의기는 대견하지만, 너까지 죽는 일이다. 미련 없이 포기해라.”

네하드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들의 죽음은 확정돼있다고.

계산은 철저히, 빠르게 하라고. 너는 성서 속에 나오는 영웅이 아니라고.

현실을 깨달으라고 말이다.

“전령보다 빨리 소식을 전할 방법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네카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네놈. 방금 통신 구슬이 먹통이라고 말했을 텐데.”

네하드람은 인상을 찡그린다.

묘하게 웃는 네카르를 노려본다.

그때,

쐐애액, 콰아앙!

하늘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떨어졌다. 흙먼지가 나부낀다. 콜록거리며 사태를 파악한다.

“뭐, 뭐야?”

웅성거리는 사람들. 손으로 기관지를 가리며 연기를 바라본다.

-크르릉.

그 속에서 들린 건 거대한 파충류의 울음.

-키야아악-!!!

하늘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거대한 포효였다.

황금빛에 가까운 비늘로 온몸을 감싼 도마뱀.

익룡처럼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흰자위 없는 검은눈을 번뜩이는 고대의 아룡.

샌드 드레이크.

사해에 서식한다는 전설적인 비행 몬스터다.

그 악명 높은 괴조 카디악보다도 한 단계 윗줄의 몬스터로 분류되는 괴수.

그 괴물이 포르티스 요새 내부로 강림했다.

“이, 이건······!”

“습격이다! 비상종을 울려라!”

땡, 땡, 땡, 땡!

경비병들은 매우 놀라 큰 종을 울린다.

쉬고 있던 군인들이 하던 일을 내던지고 무기를 잡으러 달려온다.

그러나 네카르는 그 괴수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용용아. 가만히 있어라. 형님께서 놀라셨다.”

-키약.

그러자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있는 샌드 드레이크.

네카르는 샌드 드레이크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전진 마을 사람들도, 포르티스 요새도, 동부의 변도.”

현실과 이상을 바꾸어버린다.

불가능하다는 상상을 깨고 실제로 구원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는 걸 제시한다.

안 그래도 부족한 전력을 극복한다.

“아, 그리고 저희 용용이는 되도록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키야앗!

말처럼 순순히 날아오르는 샌드 드레이크.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포르티스 요새로 인근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하여.

이미 쳐들어오고 있다는 언데드 군단에게 시체를 주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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