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가뭄의 악마 (3)
‘2단계 작전도 성공했군.’
나는 악마의 미궁을 사전 조사한 뒤, 타바스 영주 성으로 돌아왔다.
이제 곧 세인트 발키리가 올 테니까. 그때까지 정비를 마치고 기다린다.
‘가뭄의 악마를 죽이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최종적으로 프레야 교단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제 곧 동부의 변.
다크 로드의 언데드 군단을 막기 위해선 동부 연합만으론 부족하다.
흑마법의 천적인 프레야 사제들. 그들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
‘만약 내가 은둔 고수처럼 보인다면 더욱 공신력이 생기겠지.’
그렇기에 내가 알고 있는 악마의 미궁 정보를 미케일라에게 아낌없이 말해줬다.
더구나 동부 교단 실세인 그린달 주교와도 친분을 쌓고 있으니까.
이번에 가뭄으로 고통받던 타바스 영지를 구해준다면, 나는 확실한 프레야 교단의 은인.
마경(魔境) 쪽에서 불길한 움직임이 포착된다고 소식을 전하면, 미리 대비할 수도 있으리라.
‘더구나 성물 아가타의 성배를 빌릴 수도 있고.’
무려 타바스 지역 전체를 악마의 가뭄에서 구하는 일이다.
프레야 교도였으면, 민속 성인으로서 추앙받을 수도 있을 정도의 사건.
당연히 공헌도 금빛 배지를 하사받을 임무다.
어쩌면 이번 사건 하나로 동부의 변의 판도가 바뀔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다.
“네카르 경. 세인트 발키리 멤버들을 긴급 소집했습니다!”
-lv38 세인트 발키리 미케일라.
-lv34 세인트 발키리 루시엘라.
-lv32 세인트 발키리 하리안.
하루 반나절을 기다리니 다른 지역에 있었던 세인트 발키리가 집결했다.
총 6명의 30레벨대 사제들.
각자 하급 수녀복, 하녀복, 귀족 옷 등 옷차림이 다양했다.
여기서 미케일라가 경험도 가장 많고, 레벨도 높았기에 자연스럽게 지휘한다.
“프레야 구휼단 또한 모두 모였습니다!”
-lv15 프레야 교단 사제 안젤라.
-lv13 프레야 교단 구휼단 파비아.
타바스 영지 인근에 구휼하고 있던 사제들도 자원자가 대거 모였다.
그 수는 총 30명.
레벨은 당연히 세인트 발키리에 비해 크게 밀렸지만, 사제들은 모일수록 강해지는 존재.
더구나 위험 지역에 온 사제들인 만큼 나름 의기 넘치고 레벨도 평균치는 됐으니까.
이 정도 수면 꽤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자원자들에게 가뭄의 악마 던전에 대해 설명 말했다.
던전의 특징부터, 조심해야 할 것, 약점 등 내가 아는 모든 공략법이었다.
“이제 아시겠지요. 가뭄의 악마는 물리력으로 없앨 수 없습니다. 성가대의 힘으로 실체화시킨 후, 공격해야 합니다.”
내 작전 설명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 실력은 미케일라가 증명해줬으니 공신력을 입증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실체화시킨다고 한들. 짧은 시간 안에 악마를 처치할 수 있을까요?”
미케일라의 질문은 합당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와 고위 사제라도 몇 분 안에 악마를 소멸시킬 정도의 공격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이 또한 방법이 있었다.
“그간 가뭄을 일으키기 위해 흡수한 물이 있을 겁니다. 그 물을 담은 공간 마법진을 파괴할 겁니다.”
나는 비장의 수를 언급한다.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
이 악마는 물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기에, 빗물부터 지하수까지 모조리 없애버린 자.
그러나 아무리 강대한 악마라도, 제7군단장 데힐라칸급 거악이 아니고서야, 본연의 힘만으로 이것이 가능할 리 없다.
‘다크 로드와 데힐라칸의 도움으로 만든 거대 마법진. 아공간 마법을 이용한 거지.’
4년간의 가뭄.
그 이상 타바스 영지를 메마르도록 아공간에 물을 흡수해놨을 뿐이다.
그 마법을 터트려야 한다.
“형제님께선 그걸 어떻게 다 아시는 거죠? 그건 우연히 알게 된 수준이 아닌데요?”
다만 젊은 발키리 하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가뭄의 미궁 클리어 방식이 이랬는걸 어떻게 설명해?’
물론 이건 게임사에게 만든 공략법이다.
플레이하는 유저에게 아예 클리어할 수 없는 던전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고인물로서, 그 공략법을 알 뿐이고.
하지만 이걸 사실대로 말할 순 없는 노릇.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꿈에서 프레야 여신님께서 일러주셨습니다.”
당연히 개소리다.
단지 사제들이 차마 여신님을 부정할 수 없기에, 적당히 둘러대는 관용어다.
다들 사회생활 안 해본 게 아닌 만큼, 내가 가르쳐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
다만 미케일라는 그 말에 왠지 미묘한 표정을 짓는 모양이지만.
“그보다 모두 전투 준비하십시오. 지금부터 상대해야 할 적은 진짜 악마니까.”
내 말에 엄숙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제들.
자신들의 어깨에 수많은 타바스 영지민의 목숨이 실렸음을 깨닫는다.
발키리들은 한손검과 대형 방패를 들고 뒤따른다.
악마의 미궁으로 출발한다.
***
타마스 영주의 장남 타르마는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의 병상을 지킨다.
안 그래도 악마의 씨앗에 생명력을 상당히 빨아 먹힌 상태에서, 네카르와 마법 결투를 벌였으니까.
과거보다 훨씬 쇠약해지신 게 느껴진다.
둘째 딸 타라헨은 의자에 앉아 곤히 잠든 남작의 손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저기 오라버니.”
“······응?”
“네카르라는 마법사랑 세인트 발키리 있잖아요······. 정말 악마를 무찌를 수 있을까요?”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
괜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지금 아버지께서는 당장 악마를 처치하지 않으면 회생하실 수 없을 만큼 위독하시니까.
“아마도. 가능하겠지.”
장남 타르마는 겉으론 따뜻하게 위로했다.
작아져 있는 동생을 정겹게 안아준다. 가슴팍이 축축해진다. 흐느끼는 동생의 등을 두드려준다.
‘실은 불가능하겠지만······.’
착잡하고도, 죄책감 드는 마음을 숨기면서.
악마를 이길 순 없다.
프레야 교황청 소속인 오래된 지인 사제를 불러놓고 죽이면서까지 알아낸 정보다.
이렇게 사악한 악마는 초기에 대륙 7대 성인 정도는 데려와야 한다고.
제아무리 마탑 마법사와 세인트 발키리가 대단하다고 해도 대륙 7대 성인에 비하면 반딧불이와 보름달 수준의 격차였다.
‘하지만······. 지금 날 괴롭히는 건 이것뿐 만이 아니다.’
식은땀이 줄줄 난다.
가뭄의 악마 때문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까. 심지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예정이니까.
양심의 삼각형이 타마르의 가슴을 푹푹 찌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타바스 영지에 가뭄의 악마를 남몰래 부른 자.
그게 바로 장남 타르마니까.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아버지께서 장남인 내게 영주 직을 물려주지 않으시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잖아.’
타르마는 동생을 안아주면서 10년 전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유모의 비밀스러운 대화.
-타르마 도련님은 어떻게 하실 거에요?
-······그건 지켜봐야지.
-차기 가주 직을 타르마 도련님께 물려주실 건가요? 타르마 도련님은 영주님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여 있잖아요.
-흠, 입조심. 함부로 그런 얘기 하지 말게.
-앗, 죄송합니다. 영주님.
알아보니 사정은 간단했다.
영주의 아내는 오랫동안 불임이었다.
그 때문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발견해서 제 자식처럼 길렀다.
그게 바로 장남 타르마였다.
‘그리고 여동생이 태어났지.’
착잡한 한숨을 내쉰다.
타르마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가문 사람들이 묘하게 자신보다 타라헨과 타레온을 더 챙겨준다는 걸.
왜 아버지가 장남인 자신을 아직도 후계자로 공인하지 않는지 말이다.
‘······아니, 빼앗길 수 없어. 누가 뭐래도 타바스 영지 장남은 나니까!’
결국 그는 다크 로드 자칼이라는 자와 계약했다.
막대한 금화를 손에 얻는 대신, 악마의 씨앗을 아버지 몸에 붙이는 거로.
타바스 영지 전체가 가뭄으로 멸망하더라도 말이다.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그냥 아버지만 잠시 아프신 줄 알았단 말야.’
그러나 엎어진 물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법.
자신 때문에 아버지께서 쓰러지시고, 영지민이 수없이 아사했는데, 인제 와서 사실을 고할 수는 없다.
그저 끝없이 계속 거짓말할 뿐.
“······.”
장남 타르마는 손이 쪼글쪼글해진 아버지를 내려다본다.
그래도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이다니.
죄책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제 손에 항상 피가 묻어있는 기분.
잠잘 때 매일 악몽을 꾼다. 그의 우상이었던 젊은 시절 아버지가 자기 손을 붙잡고 구슬피 우는 악몽.
하지만 이내 고개를 억지로 흔들어 없앤다.
죽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자기 잘못임을 인정하면서도, 사형대로 끌려가 처단당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좋으련만······.
세상에 그런 기적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안 그러면 내가 차기 영주 직에서 밀려나고. 변방으로 쫓겨났을 테니까. 만약 내 동생도 나랑 똑같은 입장이었으면, 똑같이 행동했을 걸?’
이 결정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그렇지 않고선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타르마는 병상에서 숨만 겨우 쉬는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자기 자신을 세뇌하듯 중얼거렸다.
‘······절 원망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장남인 절 두고 동생을 차기 영주로 삼으시려고 하신 아버님이 잘못한 거니까.’
***
또각또각.
나는 세인트 발키리와 함께 영주성 정원에 있는 악마의 미궁으로 떠난다.
벽돌로 되어 있는 미궁을 돌파한다.
어제 사전답사한 대로 발광석으로 길을 밝히면서.
발키리들은 방패를 앞세우며 어둠 속을 경계한다.
“마물입니다. 모두 전투 준비.”
“······!”
물론 그래 봤자 내 시스템 창의 경계보다 효과가 뛰어나진 않았다.
일전과 달리, 길목에 적이 가로막고 있다.
-끼긱? 인간! 불결한 기운이 느껴지는 인간이 들어왔다!
-노예 종족 주제에 감히 내게 눈을 똑바로 뜨다니! 저 눈알을 뽑아서 핥게 만들리라!
키가 100cm 정도밖에 안 되는 회색 소인(小人)들이 새빨간 채찍을 휘두르며 흉폭하게 떠든다.
“꺄악!”
사제들에게 날아든 채찍.
꽝, 치이익!
채찍 주제에 내리친 벽을 새빨갛게 녹여버린다.
무시무시한 파괴력.
과연 마계의 악마다.
소인이지만 머리에 악마의 뿔과 박쥐 날개까지 가지고 있는 값어치를 한다.
-lv29 최하급 마물 임프.
-lv27 최하급 마물 임프.
임프.
마계에서는 최하급 서열로서, 악마나, 마족, 다른 마물들에게 숱하게 잡아먹히는 녀석.
그러나 인간계에서는 최소 중급 몬스터급으로서, 상급 포식자로 군림하는 녀석이다.
“임프입니다! 저놈들은 어둠 속에서 살아서 발광(發光) 마법에 취약합니다! 선제공격하십시오!”
하지만 가뭄의 미궁에 나오는 마물들의 약점을 미리 가르쳐 둔 상태다.
내 명령에 프레야 구휼단은 미리 준비해둔 신성 마법을 쏟아낸다.
“빛이여. 악의 눈을 멀게 하소서!”
“진리의 힘은 언제나 선한 자를 승리로 이끌 지 어니!”
샤아아아!
그들은 임프에게 강렬한 빛을 발산한다.
어차피 살상 공격을 날려도, 악마의 미궁에 있는 적에겐 전혀 통하지 않을 테니까.
실제로 새빨간 채찍으로 공격하려다가 멈칫하는 임프.
-끼야악! 인간! 아주 비겁한 수를 쓰는구나!
-눈알이 녹는 것 같다! 용암 지옥에서 날 태우던 불길이 떠올라!
-끄윽! 빨리 불 꺼! 너네 부모를 납치해다가, 달리는 마차 앞에 던져버리기 전에! 끼야악!
악마들은 미친 듯이 발작하며 아무 곳이나 채찍을 휘두른다.
콰과광!
그것조차 벽을 부숴버리는 위협적인 위력이지만.
【워터 실드 lv2.】
촤아앙.
내가 성수로 만든 물의 방패를 4개나 동시에 생성해 막는다. 사제들을 완벽히 지킨다.
그사이 진격하는 세인트 발키리.
“방패 앞으로!”
“프레야의 검으로 처단하리라!”
번쩍!
미케일라를 필두로 한 고위 사제들이 검에서 새하얀 빛을 뿜어낸다.
신성 검기.
본인의 신성력을 예리하게 극한으로 이끌어낸다.
“하아압!”
푸확-!!
방패로 붉은 채찍을 흘려내며 임프의 배를 완전히 관통하는 신성 검기.
-끼이익······!
-분, 하다······. 인간 주제에······.
다른 임프들도 순식간에 처단된다.
안 그래도 신성력이 마력에 압도적인 상성을 가지는데, 레벨조차 세인트 발키리가 훨씬 높은 덕이다.
‘역시 편하군.’
나는 세인트 발키리를 필두로 마물들을 상대하며 빠른 속도로 진격한다.
붉은 눈의 스태프를 발동해서 쓸어버릴 수도 있지만, 가뭄의 악마를 상대할 때까지 최대한 아껴둘 생각이다.
“여기가 악마가 잠들어있는 곳이군요.”
그렇게 도착한 미궁의 끝.
마지막 문에 당도했다. 발광석을 가져다대보니, 검은 문에는 미궁의 처음에 있었던 문처럼 타락 천사가 새겨져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타락천사가 창칼에 가슴이 꿰뚫려 죽어 있는 모습이다.
“모두 작전을 숙지하셨지요.”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작전을 상기시킨다.
프레야 사제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미케일라가 대표로 나선다.
서걱.
빛의 속도로 잘려나간 경첩.
콰광.
끼이익······.
악마의 문이 열린다. 좌우로 떨어져 나가는 문과 함께, 위에서부터 아래로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휘이이잉.
열린 공간으로 미친 듯이 불어져 나오는 황량한 모래바람.
“흡?”
“여긴······!”
사제들은 모두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경악한다.
하기야 미리 말을 해줬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면 감상이 다른 건 어쩔 수 없으니.
고오오.
마지막 방은 지하 속에 있는 방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넓은 사막이었다.
그것도 보라색 모래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휘날리는 공간.
“이곳이, ‘마계(魔界)’······?”
산소가 모자른 고지대보다도 심히 무거운 공기.
모래 폭풍에서 풍기는 심상치 않은 마력에 모든 사제가 숨을 흡 들이킨다.
마계화.
이곳은 마계의 사막을 일부 재현해놓은 공간이었으니.
악마가 가장 활동하기 좋은 영역 중 하나다.
[이제야 왔느냐.]
그 안 모래 폭풍 속에서 붉은 눈이 번뜩인다.
자세히 보니 바싹 마른 의자에 앉아있는 검은 형체. 검은 안개로 만들어진 거인이 머릿속으로 텔레파시한다.
그 직후,
쿠과과!
“꺄아악?”
“!”
데빌 아이와 함께 모래 폭풍이 프레야 사제들을 몰아친다.
【워터 실드 lv2.】
나는 가까스로 막아낸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식은땀이 이마를 스친다.
사아아······.
“!”
그러나 순식간에 없어지는 워터 실드.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의 권능인지 물이 순식간에 소멸해버린다.
‘역시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노움!”
쿠구구궁.
나는 우선 흙의 정령 노움을 샌드 골렘으로 일으킨다.
모래가 가득한 곳인 만큼 평소보다 1.5배 이상 강한 노움.
-그우어어!
쿵, 쿵, 쿵!
내게 막대한 마나까지 전해 받은 만큼 마계의 모래를 한 움큼 끌어당겨 덩치 10m짜리 거대한 골렘을 만든다.
다크 샌드 골렘.
오래 지속하면 노움이 위험할 수 있지만, 일단 위압감은 확실했다.
[어리석은 것. 그래봤자 최하급이다.]
콰아아아!
또다시 모래 폭풍을 일으키는 가뭄의 악마.
거대한 다크 샌드 골렘 따위 모래 폭풍 앞에서 아주 작은 흙더미에 불과했다.
쿠과광.
-우우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 다크 샌드 골렘.
한방에 박살 나버렸다.
노움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구른다. 황급히 모래를 주섬주섬 모은다.
압도적인 파괴력에 모두 얼굴에 혈기가 메마른다.
“······용기를 잃지 마라! 악마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보지 마!”
번쩍, 쿠과과광-!!
세인트 발키리들은 억지로 연기를 내서 신성 검기를 최대한 발산해, 검기 폭풍을 날린다.
붉은빛이 나는 곳을 제대로 폭파시킨다.
“해치웠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보라색 사막.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모래 폭풍이 피어오른다.
[소용없다.]
“······!”
전혀 통하지 않는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
세인트 발키리들은 과연 두 눈으로 보는 건 다르다는 듯 표정이 경직됐다.
당연했다.
이건 베리어에 막혔거나, 몸을 뚫지 못한 게 아니다.
통과.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의 실체는 가뭄 그 자체.
추상적인 개념인 만큼, 물질계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권능을 확인한 만큼,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프레야 사제분들!”
“알고 있습니다!”
샤아아.
프레야 구휼단은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아아, 아아-
마치 성가대처럼 고음역으로 합창하는 사제들.
신성력의 성질은 축복. 서로서로 축복해주며, 끝없이 빛을 키워낸다.
샤아아아!
[······!]
점차 커지는 빛에 붉은 눈을 번뜩이는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
마계화 된 보라색 사막에 이질감을 느낀다.
‘강제로 실체화시킨다······! 타비로스를 잡을 방법은 이것뿐이다.’
나는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를 노려본다.
이것은 사제 계열 스킬도 전부 마스터하며, 플레이한 나니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일부 성악은 악마를 강제로 현실계로 끌어내리는 힘을 가졌다.
신성력을 극도로 혐오하는 악마로선, 특정 성악을 들으면 가상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없는 거다.
[가소로운 것. 그게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물론 그래봤자 악마를 실체화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
그 안에 악마를 처치하지 못한다면, 신성력이 모두 떨어져 말라 죽게 될 거다.
그런데, 그 안에 악마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주는 건 한없이 어려웠다.
악마라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니까.
[먼지가 되어 사라져라.]
악마의 입가에 검붉은 불꽃을 모은다. 미궁이 적과 흑으로 나뉜다.
화아아악-!!
일직선으로 뿜어지는 지옥 불.
새까만 도화지에 검붉은 불길이 쏟아진다. 미궁 전체 공기가 더욱 바싹 메마르는 열기.
저 불길에 휩쓸린다면 영혼도 남지 않고 새까만 재가 돼버릴 것이다.
말 그대로 스치기만 해도 사망.
‘······이건 도저히 못 막는다!’
고오오.
그렇다고 이 많은 인원이 다 피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이 악문다.
붉은 눈의 스태프가 흉흉한 빛을 뿜어낸다.
【바람의 길 lv1.】
쏴아아아!
거대한 미궁에 돌풍이 몰아친다.
지옥불을 사방으로 꺾는 바람.
차마 막지는 못하고 바람의 길로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가게 한다.
-지옥불을 꺾는 화염! 당신은 막을 수 없는 불길을 흘려보냈습니다!
-바람의 길의 스킬 숙련도가 매우 증가합니다! 스킬 레벨이 2가 됩니다!
그런데도 온몸이 화끈거리는 열기.
시스템 또한, 스킬 레벨이 오르며 사태의 심각성을 입증해주었다.
[버러지 같은 인간놈. 그까짓 애처로운 바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화아아악-!!
그러나 이런 변주에도 타비로스는 입꼬리를 찢으며 계속 지옥 불을 쏟아낸다.
마치 내 마나가 말라갈 때까지 기다려주겠다는 듯.
마나가 고갈되고, 열기에 녹아내리며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의도가 훤히 보인다.
뒤에 서있는 사제들이 비명을 지른다.
나는 남은 물을 모두 끌어모아 방어하면서 소리쳤다.
“······미케일라! 아직 멀었습니까!”
“거의, 거의 다 됐습니다!”
미케일라를 비롯한 일부 사제들은 내가 불길을 막고 있는 사이, 남몰래 마계 속 공간을 뒤지고 있었다.
타바스 영지의 물을 모조리 봉인해버린 거대 마법진.
내가 가져온 특수 시약을 바닥에 흘리면서 그것을 확인하고 있던 거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위치를 찾진 못한 모습.
“멈추십시오! 거기! 그 바로 아래를 노려!”
-lv45. 거대 마법진 (활성화.)
나는 곁눈질로 정확한 위치를 짚어낸다.
분명 흑마법으로 완벽히 숨겨져 있었지만, 내 드래곤 아이로는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원작에서 발견했던 대략적인 위치로 미케일라를 보내고, 이후 내가 정확하게 짚어준 거다.
[네놈이 어떻게······!]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가 그제야 경악해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다.
본래 눈치채지 못하게, 일부러 모른 척 한 모양이지만 내겐 통하지 않았으니까.
이미 늦었다.
촤아악.
먼저 미케일라는 내가 준비해준 특수 시약을 바닥에 흘린다.
성수와 레몬, 그리고 칵테일 실버불렛을 탄 시약.
치이익······. 고고고!
그러자 바닥에 보라빛 연기를 뿜어내면서 드러나는 거대 마법진 핵.
미케일라는 양손으로 검을 역수로 잡은 채, 거대 마법진을 향해 내리꽂는다.
[안 돼!]
쨍그랑! 콰아아아아아-!!!
그러자 아공간에서 쏟아져나오는 거대한 물.
마치 바다가 포탈로 연결된 듯 마계화 머리 위로 콸콸콸 쏟아져나온다.
“어푸!”
순식간에 미궁이 물의 던전이 된다.
4년 간 가뭄이 들도록 흡수한 물.
그동안 봉인됐던 모든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거다.
“성가대!”
아아아아-
나는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면서 성가대한테도 신호를 보낸다.
물리 공격을 당하지 않는 악마를 잠시나마 강제 실체화시키는 성악.
샤아아아.
악마가 강제로 물질화된다. 나는 악마에게 달려든다.
또다시 새빨갛게 타오르는 붉은 눈의 스태프.
이 스태프는 연속으로 마법을 증폭하면 10%의 확률로 깨진다고 나와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90%의 확률로 버텨주겠지.
쿵, 쾅, 쿵, 쾅.
왼쪽 가슴 속 심장이 뛴다. 온몸의 혈관이 굵게 부풀고, 근육이 터질 듯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이 내 몸을 압박한다. 중력이 날 짓누르는 듯한 압박.
그러나 내게 전해지는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흥분이었다.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
저 지긋지긋한 악마놈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격렬한 흥분.
“인간 주제에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냐고 했느냐.”
【아쿠아 스핀 lv2.】
촤아아아악-!!!
4년간, 타바스 영지를 적셨어야 했던 물.
현재 가뭄의 미궁을 홍수처럼 침수시켜버린 이 거대한 물에 회전력을 가한다.
“이번엔 네가 버텨봐라. 타바스 영지민들의 눈물을.”
나는 황량한 보라색 모래바람이 불었던 마계에 물의 폭풍을 시전한다.
황량한 마계의 사막이 아닌, 본래 타바스 영지민의 농경지에 내렸어야 했던 빗물.
쏴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갈라진 대지가 푸른 물로 가득 차오른다.
미케일라를 비롯한 세인트 발키리, 프레야 구휼단, 그리고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 모두 멍하니 물의 토네이도를 바라본다.
그건 해일이었다.
자연의 섭리를 복구하는 파도. 그래서 마치 신의 분노처럼 보여지는 거대한 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