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가뭄의 악마 (2)
둘째 딸 타라헨은 어릴 적 아버지를 떠올린다.
타바스 남작령의 영주 타가리엔.
동부 사막에서 드물게 풍요로운 농토를 가진 타바스 지역의 주인이자, 자상하고도 듬직하신 아버지.
아버지는 모든 걸 알고 계셨고, 계속된 선정으로 타바스 영지는 빠르게 번화했다.
마을 주민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타가리엔이란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를 표했다.
자신보다 몇 배는 키가 큰 아버지가 곁에 있으면 세상에 두려운 게 없었다.
‘······그것도 아버지께서 편찮으시지 않았을 때까지지만.’
타라헨이 13살이 되어 초경을 시작하던 해.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하루 전만 하더라도 정정하셨다. 몸에 악성 종양처럼 검은 반점이 생기신 후, 급속도로 쇠약해지셨을 뿐.
그것이 악마의 씨앗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먼 훗날이었다.
성인식을 치르고, 언제나처럼 아버지의 병상에 찾아뵀다. 피부색이 탁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버지의 모습.
언제나 듬직하던 아버지의 어깨는 안으로 잔뜩 휘어 있었다. 숨은 당장이라도 끊길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놈의 악마의 씨앗 때문에.
건장하던 아버지께서 한없이 작아지셨다.
가끔 악마에게 몸을 빼앗겨 발작도 하시면서.
“······타, 라헨.”
그녀가 울고 있자, 나약해진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시던 아버지.
“날, 죽여라······. 더는, 고통받지 말거라······.”
정신이 온전할 때, 가래가 끓는 목구멍으로 간신히 토해내는 말.
하지만 타라헨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죄지은 만큼 벌하라.
영주이자, 아버지께 평생 배운 것 중 가장 큰 가치를 어기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야, 한다······. 내게, 악마의 씨앗이, 붙은 후······. 점차 가뭄이, 들고 있잖으냐······.”
그럼에도 아버지는 강경하셨다.
실제로 악마의 씨앗이 발아한 후, 아버지의 중심으로 공기가 빠르게 건조해졌다.
처음엔 병실 정도. 다음 해엔 영주성.
······그리고 이젠 타바스 성 내. 최근 해에는 영지 밖까지. 사막이 돼버렸다.
“아니요······. 그럴 순 없어요······. 저흰 못 해요······.”
그러나 타라헨을 비롯한 자식들은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
제 손으로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는 고통.
이는 전체를 위해 죄 없는 이를, 그것도 제 가족을 죽여야 한다는 것과 같았으니.
······그리고 만약, 정말로 만약 아버지를 죽여도 사막화가 계속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질서로 된 세상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어떻게든 쌓아둔 자금을 융통하고, 프레야 교단의 구휼단으로 연명하던 어느 날.
네카르라는 마법사가 나타났고.
“내가 냄새를 좀 잘 맡긴 하지. 그런데.”
촤아악.
모두의 목숨을 위협하던 악마를.
쾅.
“물어뜯는 걸 좀 더 잘해서 말이야.”
······아니, 제 아버지를 벽으로 날려버렸다.
***
내가 남작을 날려버리자 모두가 입을 쩍 벌리며 날 바라본다.
놀람, 두려움, 안도, 슬픔, 하극상.
가지각색의 감정들을 담은 얼굴들이 날 사방에서 바라보고 있다.
악마를 날려버리자, 일시적으로 공포 환술이 풀린 모양이다.
“큭큭······. 인간 주제에 이 정도 물을 일으키다니. 참으로 재밌군.”
허나 어둠 속으로 날아간 남작은 목소리가 여전히 당당했다.
“하지만 이거 어떡하지? 난 물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고양이마냥 날뛸 정돈 아닌데.”
뚜벅, 뚜벅.
악몽처럼 몸이 경직되는 구두 소리.
고고고!
일순 뿜어지는 사악한 마력. 당장이라도 쇄도할 듯 날카롭게 모여든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다들 구두 소리에 맞춰 한 걸음씩 물러난다.
“미안하지만 그게 평범한 물로 보이더냐?”
【아쿠아 lv3.】
촤아악.
그러나 나는 홀로 고고하게 서있었다.
식은땀을 감추고,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네가 있을 곳으로 돌아가라. 여긴 인간계.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물의 감옥 lv1.】
나는 다시 한번 물을 모아, 남작의 머리를 감싼다.
마치 물을 가득 채운 어항을 머리에 씌우듯 질식시킨다.
부글부글.
콰아아!
악마는 사악한 힘을 뿜어내면서 저항한다.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복도 한편.
“커헉······?”
그러나 소용없다.
저 물은 평범한 물이 아니니까. 성수와 레몬, 그리고 실버불렛을 절묘한 배율로 섞어서 만든 물.
가뭄의 악마에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물 배합식이니까.
“안 돼요!”
그때 둘째 타라헨이 내 팔을 턱 붙잡는다.
“악마에게 빙의됐어도, 몸은 온전히 저희 아버지에요······. 죽이지 말아주세요.”
내게 반쯤 매달린 채 무릎 꿇는다.
하기야 이들에게 가뭄의 악마는 물리쳐야 하는 절대 악이자, 소중한 아버지니까.
놀라지도 않도록 담담하게 말한다.
“죽이려는 게 아닙니다. 단지 기절시킬 뿐. 애초에 악마는 숙주가 죽는다고 사라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실이다.
가뭄의 악마는 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숙주를 이용할 뿐, 남작에게 빙의하려는 게 아니니까.
만약 숙주를 죽여서 가뭄의 악마를 죽이려 한다면, 타바스 영주 일가는 물론, 주민 전부를 학살해야 한다.
그런 미친 짓을 하고 프레야 교단으로부터 공적이 될 생각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건, 방진······. 프레야의, 개······. 기다려라······. 네놈은, 필히 죽여주마······.”
털썩.
붉은 눈을 번뜩이던 남작은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털썩 쓰러진다.
숙주가 숨이 막혀 질식했을뿐더러, 성수까지 섞인 배합물로 물고문하다보니, 동기화된 가뭄의 악마가 본체로 달아난 거다.
“아버지!”
타라헨이 벌떡 일어나 남작에게 달려간다.
나는 그제야 물의 감옥을 거두었다. 다행히 숨을 쉬었다.
번쩍. 파아앙!
가뭄의 악마의 어둠이 걷히고 나서야, 또 다른 자도 들어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1층에서 3층까지 한걸음에 뛰어들어온 미케일라.
아마 영주 성을 포위한 어둠을 보고 곧장 들어오려고 했지만, 악마가 있을 때 까진 환영의 결계에 막혀서 들어오지 못했겠지.
제 감각을 속여 제자리걸음만 뛰고 있었을 테니.
“놓쳤습니다. 악마가 달아났습니다.”
“예?”
“세인트 발키리를 소집하십시오. 가까운 시일에 부를 수 있는 만큼만!”
“······!”
나는 미케일라에게 독촉한다.
지하 던전으로 달아났을 가뭄의 악마.
늦게 쳐들어갈수록 사악한 힘으로 방비해둘 테니.
“그리고 영주 자제분들.”
나는 최종 책임자들에게 말한다.
“타바스 영지의 가뭄을 끝내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악마를 처치해야 합니다.”
“······!”
“영주님과 영지민들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대피하십시오. 악마는 사람들의 고통을 먹고 자라는 종족이니.”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타라헨.
그러나 장남 타르마가 말한다.
“불가능합니다. 악마는 당신들이 이길 수 있는 적이 아닙니다.”
“······.”
“남몰래 잘 아는 프레야 교황청 사제에게 의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몸속에 깃든 악마를 퇴마해 달라고.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단 말입니다!”
울먹이며 말하는 타마스.
하기야 일반적으로 악마는 대단히 까다로운 적이다.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가뭄의 악마 타비로스를 몇 번이나 소멸시킨 적 있는 몸.
“타마스.”
나는 그의 어깨를 잡는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어······.”
그 순간 그는, 나에게 묘하게 감화될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 아이가 가진 심묘한 기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즉, 압도된다.
달리 말하자면, 강하게 설득된다.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언제나 방법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제가 그 방법이 있으니.”
“아······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악마를 죽이고 타바스 가문의 영광을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나는 악마 사냥을 결심했다.
‘마침, 세인트 발키리까지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하다.’
어차피 언젠가 악마 타비로스를 죽여야 한다.
저 가뭄의 악마를 죽이지 않는 한, 결국 타바스 영지 속 모든 생명체는 멸망하고 말 테니.
아니, 저 악마가 더 힘을 키우면 동부 대륙 일대를 몰살시킬 수도 있다.
도전 자체를 포기할 순 없는 일이다.
“영주님은 곧 깨어나실 겁니다. 식사는 잘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가뭄의 악마와 충돌하면서 박살난 계단으로.
이미 무너져버린 곳은 흙의 정령 노움을 통해 이어붙이고 내려간다.
이후 내 방으로 돌아와 마지막 정비를 시작한다.
검은 천으로 둘둘 말려있는 붉은 스태프.
어째서인지, 이 스태프를 사용해야 할 날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
세인트 발키리 미케일라는 혼란스러웠다.
이단 심문관인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한 가뭄의 악마.
그 존재를 조직 외의 자가, 그것도 프레야 교단 소속도 아닌 마탑 마법사가 순식간에 찾아냈으니까.
악마를 퇴치하는 작업은 오롯이 프레야 교단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미케일라의 굳은 믿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복도 입구에 서 있는 네카르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도 냉철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찾으려는 듯이.
그녀 역시 그 시선을 따라서 눈을 돌렸으나, 그녀가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저 사내는 도대체 누구지? 아무리 마탑 소속 마법사라고 해도······. 이제 겨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인데······. 나보다 악마에 대해 잘 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상대가 아니었다.
일전 영주성이 어둠의 힘에 둘러싸였을 때도 그랬다.
자신은 결계를 뚫지도 못해서 들어오지 못했는데, 혼자 힘으로 악마를 막아내고 아예 쫓아내기까지 한 모양이니까.
또한, 데빌 아이에 저항했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니었다.
‘절대로 저 나잇대의 마법사가 아니야······. 맞아. 들어본 적 있어. 지고한 경지를 이룬 마법사 중에는 육체의 벽을 허물고 반로환동의 경지에 오른 자가 있다고!’
이를테면 마신 문두스나 마탑주 수준에 이른 대마법사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그녀는 숨을 헉 들어 마셨다.
‘설마 그렇다면······? 저 네카르라는 청년이 대마법사?’
이보다 적절한 추론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에이, 이건 과한 추론이다.’
더구나 반로환동을 경험했다는 마법사는 대륙에서도 정말 손에 꼽으니까.
상식적으로 저 청년이 그런 지고한 경지를 뚫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악마에게 대단히 효과적인 아티펙트를 운 좋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미케일라는 역시 그게 맞다고 고개를 몇 번이나 주억거린다.
‘대마법사 수준이 아니라면, 역시 가뭄의 악마는 너무 강하다······. 다른 대원들을 불러모아도 상대 불가능해.’
미케일라는 이단 심문관으로서, 이교도와 악마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현재 타바스 가문을 덮친 흉수는 대단히 오랫동안 힘을 축적했노라고.
‘이렇게 장기간 가뭄을 일으킬 정도의 권능이라면 몇몇 사제들로선 불가능해······.’
하지만 만약 지금 가뭄의 악마를 처치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수백 년 전, 홀로 동부 대륙을 멸망시켜서 동부 역사를 200년 후퇴시켰다는 불사왕 ‘데힐라칸’급 거악이 될지도 몰랐다.
그 사실을 마탑 마법사 네카르에게 전한다.
“악마를 잡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원이 필요해요. 교황청에서 나서야 할 거예요.”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글쎄요······. 성녀님께서도 현재 서부 대륙 전쟁터에서 평화 유지군을 이끌고 계신지라······. 아무리 빨라도 3개월은 족히 걸릴 겁니다.”
그러자 곧장 고개를 젓는 네카르.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간 가뭄의 악마가 다른 영지로 달아날 수 있습니다.”
“그럼요?”
“동부 전체가 타바스 영지처럼 끝없는 가뭄으로 굶어 죽길 바라십니까?”
“······!”
동부 전체가 말라 죽는 것.
미케일라로서도 벌써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끔찍한 상상이다.
지금 타바스 영지 하나를 구휼하는 것도 프레야 동부 교단으로선 허리가 휠 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수백만 명의 주민이 아사하는 대참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절 믿으십시오. 제가 가뭄의 악마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네카르는 그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걸어나간다.
마치 자신만 믿으면 된다는 태도.
‘그럼 그렇지. 악마의 강함에 대해 전혀 모르는 풋내기가 틀림없다.’
미케일라는 그 모습에 괜히 실망하며 말했다.
“이봐요. 지금 악마의 숙주를 쓰러뜨렸다고 기세등등한 모양인데. 악마의 본체는 숙주 따위와는 차원이 달라요!”
“저도 압니다.”
“전혀 모르고 있어요! 악마의 진정한 힘은 가히 대륙 7대 성인분과 맞먹으니까. 애초에 우리 수준에선 악마 던전의 위치조차 못 찾을 겁니다!”
악마는 자신의 미궁을 사악한 힘으로 감싸서 보호하니까.
땅속에 숨어서, 힘을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 특수한 흑마법을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카르는 그 말을 신경 쓰지도 않고 영주성 정원, 꽃들이 말라 비틀어져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으로 향한다.
“아, 그렇군요.”
쿠구구궁.
그 후 일으키는 흙의 마법.
영주 일가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정원 흙을 뒤엎어버린다.
미케일라는 깜짝 놀라서 한마디 하려고 할 때,
“!!”
흙속에서 보였다. 타락천사 두 명이 창칼을 교차해서 겨누고 있는 검은 문이.
악마의 미궁.
사악한 힘이 넘쳐 흐른다. 악마가 잠적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가시지요.”
“······.”
네카르는 성문만 한 크기의 검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미케일라는 화들짝 놀라 멍하니 3초간 바라보다가 일단 따라 들어간다.
“아직 대원들이 안 왔는데······. 잠깐 탐방만 하는 거예요.”
“예예, 당연히 그래야죠.”
왜인지 건성으로 말하는 네카르.
미케일라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말한다.
“알고 계시죠? 악마의 던전은 환각 마법이 걸려있어요. 그래서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면 끝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어요.”
“좋은 정보로군요.”
마침 두 갈래 길이 나온다.
네카르는 가방에서 발광석을 두 개 꺼낸다.
번쩍.
그리고 하나엔 성수를 바르고, 다른 하나는 바르지 않은 채, 빛을 밝힌다.
“······!”
그러자 다르게 나타나는 그림자 방향.
성수가 발린 쪽은 그림자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
“이쪽이군요.”
네카르는 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머리가 부딪칠까 걱정됐으나.
스르륵.
“······!”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된다. 벽 자체가 환영이었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떻게······. 이렇게 악마의 미궁을 잘 알고 있는 거지?’
혹시 악마 본인일까? 아니다. 그렇다기엔 굳이 영주성에서 전투를 벌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앗, 위험해요! 저건 ‘마나 번’ 흑마법이에요!”
그때 양 갈래 길 중 하나에 보라색 반투명한 벽이 나타난다.
마나 번.
닿는 순간, 보유한 마나를 모두 태워버리는 흑마법진이다.
악마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으로, 토벌대를 특히 고통스럽게 만드는 장치 중 하나.
“이쯤에서 돌아가요. 흑마법 결계는 저희 세인트 발키리가 모이면 어떻게든 해제할 수 있으니까요.”
미케일라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나 네카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는.
치이익.
그 결계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들어가는 게 아닌가?
“헉!”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저 결계에 닿는다면, 웬만한 궁정 마법사조차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데!
그런데······.
저벅- 저벅-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어, 어라?”
분명 보라색 결계에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걸 보아 정상작동한 모양인데, 마나 번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는 바닥에 새겨진 육망성을 향해 워터볼을 발사하여 마법진을 파괴했다.
그러자 결계가 사라진다.
“자, 들어오시지요.”
“아······ 네.”
미케일라의 머릿속은 계속해서 복잡해져 갔다.
네카르.
저 인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상식 밖의 장면이 계속되었다.
아무리 마나가 많은 고써클 마법사라도, 마나 번을 통과하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나? 적어도 심각한 내상 정도는 입어야 정상이거늘······.
설마······?
정말로, 설마?
‘아냐! 성서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의혹이며, 잘못된 믿음이자 착각이라고 했어······. 무엇이든 확신하지 말자.’
미케일라는 그런데도 확신하지 않았다.
성서에서 악마의 속임수가 얼마나 간교한지 몇 번이나 가르치니까.
혹여 이조차 환상일 수 있으니 믿지 않는다.
화르르륵.
그렇게 30분쯤 길을 걸었을까?
보라색 불꽃이 타오르는 통로가 보인다.
미케일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 지옥불······! 오직 성수로만 꺼지는 불이라고요.”
지옥불 헬파이어.
닿는 순간, 모든 것을 태워버릴 때까지 타오르는 불길이다.
물조차 활활 태워버리는 불길.
성수로만 끌 수 있는데, 불길이 저 거대한 통로 전체에 타오르고 있다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
“비켜보십시오.”
“?!”
그런데 네카르는 지옥불마저도 돌파하려고 한다.
미케일라는 이것만큼은 말리려고 했을 때.
“바람의 길.”
쐐애애애액-!!! 화르르륵!
미궁 내에 어마어마한 강풍이 불었다. 그 즉시 밀려나는 지옥불.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제 거의 다 왔군요.”
“······.”
미케일라는 어안이 벙벙해서 머리카락이 사방팔방으로 헤집어졌는데도 바로 잡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제 한 가지 정보만이 남았다.
‘반로환동한 대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