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괴조 카디악 (3)
결국, 첫 괴조는 성공적으로 처치했다.
내가 새로 익힌 ‘바람의 길’ 마법으로, 땅으로 내리꽂자 프레야 성기사단이 달려들어 신성 검기로 목을 꿰뚫었으니까.
새빨간 피가 녹색 언덕을 가득 물들였다.
“우와아아-!! 괴조를 죽였다!”
“모든 게 끝났다! 우린 살아남았어!”
괴조가 미동도 하지 않자, 환호성이 연거푸 나온다.
“야, 저 마법사분은 누구셔? 중앙 마탑에서라도 나오신 분 아냐?”
“평민 가문 출신이시라던데?”
“그래? 그럼에도 저 정도 실력이시라니. 바람 학파라는 비오드 마법사들보다도 훨씬 나은걸?”
“하기야 아무리 귀족 가문이래봐야 능력은 신분이랑 별개니까. ······엇. 도망가자. 귀족놈들이 노려본다.”
그와 동시에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용병들.
하기야 무려 22명이나 되는 두 마법사 학파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 나 홀로 괴조를 땅으로 끌어 내렸으니 당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바위 위에 쓰러진 괴조를 내려다본다.
덩치가 워낙 커서 아직 따뜻한 녀석.
-새끼 괴조 ‘캐니아’를 죽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셨습니다!
-무려 중급 몬스터! 본래 2써클 초급 마법사가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없는 몬스터입니다!
-당신은 자연의 순리를 넘어섰습니다. 써클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2써클 5티어를 넘어섭니다!
시스템 창이 쏟아진다.
벽을 뚫고 경지가 오른다는 시스템 창.
-3써클에 도달했습니다! 몸에 3개의 고리가 생성됩니다!
“!”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몸속 마나 고리가 끊어질 듯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쩡 하는 소리와 함께 2개의 고리에서 3개의 고리로 변모한다.
3써클.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 천재라고 불렸던 네하린의 경지.
귀족 천재가 20여 년간 마법에만 몰두한 결과 이룬 경지를 나는 고작 반년도 안 되는 시간에 도달했다.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
더구나 3써클은 2써클 때와 달리 단순히 마법 효율만 오르는 경지가 아니다.
-2써클에 비해 마나 효율이 20% 추가로 증폭됩니다!
-중급 마법 경지에 도달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중급 마법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중급 마법.
가볍고 경쾌한 초급 마법이 아니라, 시전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확실한 파괴력을 가진 마법 단계를 지칭한다.
게임 시스템으로도 다소 시간이 걸리는 마법.
그 마법을 익힐 수 있게 된 거다.
비록 모든 상황에서 초급 마법보다 우월한 건 아니지만.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진 것이다.
괜히 3써클부터 중급 마법사라며, 각 가문 정예 마법사로 대우받는 게 아니다.
‘설마 여기서 3써클에 도달할 줄이야. 시간이 더 필요할 줄 알았는데.’
나조차 너무나 빠른 써클의 상승에 놀란다.
초급 마법사와 중급 마법사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니까.
마치 처음 마법을 익힌 듯, 클래스가 달라진 기분을 만끽한다.
‘기분이 매우 좋군.’
나는 들뜬 마음을 감추며 당장 마법 서적들을 꺼내서 익힌다.
마법서를 구해놓고도, 3써클에 도달하지 못해서 못 익히고 있던 중급 마법들.
-<바람의 마도서> 제2장에 마나를 100% 주입하셨습니다!
-바람의 마도사 클라인의 비전 마법 ‘헤비 레인’을 습득하셨습니다!
먼저 헤비 레인.
일대 날씨를 바꿔버리는 마법으로, 언데드 군단을 몰고 올 다크 로드 자칼을 성수의 비로 쓸어버릴 비장의 마법이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를 나와서 방랑을 시작한 최우선 목표를 이뤘다.
-<썬더 스톰>에 마나를 100% 주입하셨습니다!
-뇌격의 원로 마법사 니콜라스의 비전 마법 ‘썬더 스톰’을 습득하셨습니다!
그다음으로 익힌 것은 썬더 스톰.
일전 니콜라스에게 받은 전격계 마법서에 있던 마법이다.
무려 비전 마법 2개.
그것도 날씨를 바꾸며, 광범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최상위 중급 마법 2개를 배웠다.
만약 이 마법들을 대규모 전투에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넘치는 마나로 집단 마법으로 시전한다면······. 정말 이전과는 격이 다르겠군.’
빙그레 미소가 절로 나온다.
드디어 동부의 변을 막을 핵심적인 힘을 얻었다.
이제야 겨우 희망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저기 계십니다!”
한참 명상을 하며 중급 마법서를 익히고 있자, 아펠 영주 호세와 프레야 사제들 또한 몰려온다.
“네크 ‘경’이라고 하셨소?”
목소리가 근엄한 아펠 영주 호세.
아펠 영주는 레벨은 형편없었지만, 위엄이 없지 않았다.
권력자라고 반드시 무력이 강한 건 아니니까.
“정말 고맙소. 마법조차 통하지 않는 괴조의 크기에 큰 피해를 예감했거늘. 덕분에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했소!”
내게 악수를 청하는 호세.
어느새, 날 대하는 말투는 경어로 바뀌어 있었다.
하기야 아펠 영주로서도 대단히 반길 일이다.
만약 토벌대가 떼죽음 당하면 아펠 영지는 유령 도시가 될 수 있으니까.
호세로선 모든 걸 잃어버릴 위기에서 내 덕분에 가까스로 구제된 거다.
“과연.”
프레야 교단 총사령관인 주교 그린달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주교 그린달.
동부 사막 최고 직급을 가진 사제.
살아온 경험만큼이나 깊고 많은 주름을 가진 그가 날 보며 말한다.
“이 또한 프레야 여신님의 은총. 자연의 신비로움은 끝이 없구나.”
그는 혼잣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교리상 프레야 여신이 천지창조했다고 나오니까, 마나와 마법 또한 여신이 창조한 것.
방금 내 집단 마법을 여신의 기적만큼 놀랍게 바라본 듯했다.
‘호감을 산 것 같군.’
말투가 고상하고 기승전찬양이라서 그렇지, 어찌됐든 날 좋게 보는 건 맞는 것 같다.
나 또한 이대로 괴조 토벌을 끝마치면 매우 좋으련만.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잠깐.”
손을 들고 정숙 시킨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손짓과 심각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문다.
모두가 정숙했을 때, 그 이유를 말한다.
“이 새는 괴조 카디악이 아닙니다.”
“······!”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커다란 새가 괴조 카디악이 아니라니요!”
내 말에 충격을 받는 사람들.
특히 모든 일이 끝난 줄 알았던 영주와 그린달 주교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차분하게 이들에게 진실을 전한다.
“괴조 카디악은 몸통에 불꽃 같은 검은 반점이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아직 깃털이 생생한 걸 보아 새끼인 게 분명합니다.”
-lv26 새끼 괴조 캐니아. (사망.)
내가 틀릴 리는 없다.
시스템 창에 새끼 괴조라고 대놓고 나오니까.
“······.”
“······.”
이에 모두 입 떡 벌리고 침묵한다.
처음엔 충격과 공포, 두려움 등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괴조 새끼라니.
비록 성체에 거의 가까웠던 새끼라지만······. 저 압도적인 덩치보다 더 큰 새가 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죽은 새끼 괴조의 눈동자와 마주치는 것도 공포스러운데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경이롭다는 감정을 품으며 날 바라본다.
괴물보다 더한 괴물이라는 표정.
그럴 수밖에 없다.
발톱으로 긁는 것만으로도 수십 명의 용병을 학살했던 괴조였다.
저 새를 혼자서 땅에 처박은 게 나니까.
비오드 바람 학파 마법사 전부가 덤볐음에도 못한 일을 말이다.
철컹철컹.
그때 저 멀리서 성기사가 다가왔다.
새끼 괴조에게 최후의 일격을 박아넣은 중년 기사.
-lv34. 프레야 교단 성기사단장 알폰소.
-lv21. 프레야 교단 일반 성기사.
현재 토벌대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기사 알폰소.
40대 중반은 돼 보이는 그가 내게 예의를 대단히 차리며 말한다.
“크루아 학파 네크 경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혹시 괴조 카디악 또한 땅으로 떨어뜨릴 수 있으십니까? 의뢰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
성기사단장 알폰소는 진심으로 날 원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없으면 괴조 카디악 토벌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까.
“자세히 들어보죠.”
원래 계속 참전하려고 했지만, 추가 금액을 준다니 마다하지 않는다.
어차피 괴조‘들’을 잡으려고 했으니까.
탐험가 다모르에게 성창 브류나크의 봉인 파편을 쥐어주고, 다크 로드 자칼과 계약한 대악마 데힐라칸의 부활을 조금이라도 더 저지하려면 참전할 수밖에 없는 거다.
‘더구나 3써클에 오른 만큼 충분히 가능하지.’
나는 가방 속에 고이 잠든 붉은 눈의 스태프를 상기한다.
재계약하러 가면서, 흑마법사 에레스를 지나친다.
“고맙군. 우리 바람 마법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다니.”
흑마법사 에레스는 억지로 웃는 낯으로 덕담을 전한다.
지금은 비오드 바람 계열 학파인 척 연기 중이니까.
······실상은 내가 안 볼 때마다 흉흉하게 눈을 뜨지만.
나는 그러한 모습이 우스워 한마디 했다.
“부족한 면을 채워드린 게 아니라, 그냥 제가 대체해드린 겁니다. 그래서 지금 재계약하는 거고요.”
“······!”
“첫날에 말씀하셨죠. 서로 방해되지 말자고. 부디 아군 토벌대에 짐이 되진 말아 주십시오. 그럼.”
나는 에레스가 시전한 집단 마법 ‘광기 어린 바람’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저 흑마법사들이 괴조를 잡는 척하면서 아군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려 죽였다는 걸 아니까.
모욕당했다는 걸 아는지 부들부들 거리는 에레스.
나는 그 모습을 즐긴다.
뭐, 지금 죽이는 게 깔끔할 수도 있지만, 흑마법사들이 살아 있어야 나머지 괴조들도 부를 테니까.
이쪽도 괴조들을 찾느라 일일이 산 봉오리에 오르는 개고생할 생각은 없는 만큼 에레스의 수명을 잠깐 연장해준다.
어차피 죄다 죽을 목숨이었다.
***
나는 프레야 교단 성기사단장 알폰소와 얘기를 마치고 산 정상을 등산한다.
“괴조 카디악의 둥지는 이쪽일 듯합니다.”
산 정상으로 갈수록 칼바람이 불기에 방향을 잡기 힘들었지만, 원작에서도 이 산을 평정한 적 있었기에 길 안내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마법사는 현자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다들 박학다식하다는 말만 할 뿐 수상쩍다고 여기진 않았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그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저도 좀 가르쳐주십시오.”
“······.”
문제는 탐험가 다모르가 굉장히 놀라워했다는 점이다.
하기야 이런 왕성한 탐구욕이 있으니, 훗날 탐험왕이라고도 불린 거겠지.
나는 다모르에게 차분히 <별들의 전쟁2> 탐험 정보를 가르쳐준다. 물론 티나지 않게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이제 질문을 그만 받아야겠군.”
그렇게 구름을 넘어 산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 질문을 끊는다.
급속도로 시무룩해지는 다모르.
“어······? 제가 위대하신 분을 귀찮게 해드렸습니까······? 죄송합니다······.”
자신이 ‘을’ 입장이란 걸 인지하는지 내 눈치를 보며 말하는 다모르.
그러나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은 전투해야 하니 안 된다는 거다.”
“······예?”
내 말에 얼빠진 표정을 짓는 다모르.
그러나 이내 내 말의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홱홱 돌리며 괴조를 찾는다.
“오, 이런······.”
다모르는 목 젖혀 하늘을 올려다본다.
광활한 창공에는 구름 한 점 없거늘.
토벌대 전체를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이는 저 노란 태양 때문이다.
아니, 저 태양처럼 거대한, 노란색 존재가 하늘에서 내려오기 때문이다.
마치 태양 속에 서식한다는 삼족오가 강림하듯 태양을 가린다.
-삐이이이익-!!
산골짜기에 메아리치는 맑은 울음.
그러나 토벌대는 그 소리만으로도 몸이 경직된다.
“이, 이건······?”
일전 새끼 괴조에게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학살당했던 기억이 나는 것이다.
“초대형 괴조다! 대형 괴조가 나타났다!”
-lv31 성체 괴조 카라애. (흑마법 세뇌.)
심지어 새끼 괴조보다 1.5배는 큰 새가 눈알을 부라리며 우리를 노려본다.
-쐐애애액-!!
새끼의 사체를 보고 왔는지 매우 공격적으로 우는 성체 괴조.
꼴에 짐승이라도, 가족애는 있는 모양이다.
쿠과광-!!
“우아악!”
발톱을 앞세워 바윗길을 파괴적으로 갈아버린다.
다행히 이미 공포에 질린 용병들이 객기부릴 생각 안 하고 피했기에, 죽은 사람은 없었다.
“저, 저기······!”
그러나 이것으로도 끝이 아니다.
-lv33. 성체 괴조 카자악. (흑마법 세뇌.)
-lv34. 성체 괴조 캐디악. (흑마법 세뇌.)
푸른 하늘은 너무 높고, 광활해서 두 마리의 괴조가 더 날아다녀도 상관없었으니까.
덩치가 너무 커서 다른 산맥에서 서식하던 동족을 부른 것이다.
등장만으로도 산경(山景)을 답답할 만큼 가린다.
공중에서 포위해버린다.
“마, 마법사님들! 빨리!”
“알고 있어요!”
흑마법사 에레스 또한 식은땀을 흘리면서 바람 마법을 차징한다.
그녀가 흑마법으로 괴조들을 데려온 건 맞지만, 한꺼번에 섬세한 조종을 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휩쓸려 죽는 거다.
아까 새끼 괴조 한 마리만 부른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흐아압! 광기 어린 바람!”
고고고고!
이번엔 진심으로 광풍을 부른다.
다행히 흑마법사 주위는 안전한 광풍.
-끼에에엑!
“!”
“!!”
날아오던 괴조는 강력한 강풍을 몸으로 뚫고 들어온다.
원체 체급이 컸기 때문에 폭풍 같은 강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오는 것이다.
쿠과광.
······비록 정확히 방향 조종을 하진 못했지만.
다른 산봉오리에 머리를 처박는 괴조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도 토벌대는 공포에 질렸다.
괴조의 일격 한 번에 암벽이 통째로 무너지는 걸 직접 봤으니까.
“······이건, 정말 틀렸다······.”
“땅에 떨어져도, 신성 검기로 목을 찌를 수가 없다······.”
“오······. 여신이시여.”
용병들과 성기사단은 싸워볼 생각조차 못 했다.
그제야 후회했다.
아펠 영지에 서식하던 괴조가 이토록 거대할 줄 몰랐으니까.
이건 토벌대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펠 영지 산속에 계속 머물러 줬다는 게 감사할 지경이니까.
최소한 동부 사막 최고 가문이라는 물의 명가 크라우드가 전력을 다해 마법사를 데려와야 토벌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달아나기엔 이미 늦었다.
무기를 내던지고 두 발에 땀이 나도록 달아나봤자, 저 거대한 괴조에겐 날갯짓 한 번에 당도할 거리일 테니.
그저 바짝 엎드려 죽음이 멀어지길 기도할 뿐.
아군도, 적군도, 그 누구도 광풍 앞에 몸 사리며 섣불리 나서지 못했을 때.
-······.
오싹,
저 멀리, 산꼭대기에서 아직도 나서지 않은 존재가 있었다.
펄-럭.
거대한 날개를 펼친다. 마치 악마의 날개처럼 기괴하게 변한 날개.
몸 전체에는 검은 불꽃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악성 종기처럼 끔찍하게 붙은 흑마법.
하지만 모두의 등골이 오싹하고, 피부에 오돌토돌한 소름이 돋은 건 기괴함이 아니다.
오직 크기.
그 크기가 기존 성체 괴조들조차 아담해 보일 만큼 거대했으니.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은 가히 산 일부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나는 싸늘하게 읊조린다.
“괴조 카디악.”
-lv37 괴조 카디악. (흑마법 세뇌.)
괴조 카디악.
동북부 산맥을 지배하는 필드 보스.
인간이 바람의 정령석을 먹여 탄생한 괴생명체.
이번 토벌의 모든 해악, 근원이 되는 존재다.
【워터 실드 lv2.】
나는 당장 붉은 눈의 스태프를 꺼내서 광풍을 막는다.
그리고 이 드넓은 폭풍의 산 파르티잔에서 홀로 유유히 서서 괴조 카디악과 눈을 마주친다.
【드래곤 피어 lv1.】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아이에 깃든 스킬을 발동한다.
저 괴물은 무려 37.
마법을 익히지도 않은 채, 순수한 괴력만으로 저 정도 레벨이란 건 엄청난 수준이다.
더구나 저런 필드 보스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권능을 가지고 있어, 통상 같은 레벨 몬스터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전력을 다해 상대한다.
그러기 위해 초장부터 기선 제압하는 거다.
-끼야아아아악-!!!
그러나 과연 괴조 카디악은 피어에 순순히 당하지 않았다.
고막을 찢을 법한 굉음.
이건 포효라기보단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마치 참고 참았던 악성 종양을 터트리듯 세상을 향해 맑은 비명을 토해낸다.
-삐이이이이익!
그로써 피어를 이겨낸 괴조 카디악.
몇 초간 고통스러워하다가 눈 질끈 감고 이겨낸다.
스킬 드래곤 피어의 레벨이 고작 1이기도 했지만, 몸에 붙은 악성 종양이 고통스러워 환술에서 비교적 빨리 해제되는 모양이다.
카디악은 또다시 몸이 공포에 경직되기 전에 거대한 날개를 퍼덕인다.
펄럭, 펄럭!
날갯짓 두 번 만에 내 바로 앞까지 날아온다.
자식들로 보이는 동족 성체 괴조조차 공포에 질려 황급히 물러난다.
휘이이이잉-!!
괴조 카디악은 공중에서 날개를 빠르게 휘두른다.
원체 거대한 날개였기에 그 휘두름에 따라 진공파가 생겨난다.
쐐애애액-!! 쿠당탕! 쿠과과광-!!
마차가 엎어지며, 말들이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초강풍을 못 버텨 줄줄이 떨어지는 사람들.
그러나 나는 파르티잔 산맥을 휘갈기는 폭풍 속에서 유일하게 두 발로 서있다.
【바람의 길 lv1.】
쐐애액!
이를 악물고 돌풍의 방향을 하늘로 바꾼다.
하늘을 지배하는 맹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한다.
“······폭풍을 일으키는 새라. 그래, 그게 네 특기였지.”
나는 바람의 길로 카디악을 밀어내며, 억지로 미소 짓는다.
식은땀이 흐르는 손끝 발끝.
그러나 바람의 마도서에서 익힌 새 마법을 시전한다.
【헤비 레인 lv1.】
번쩍!
붉은 눈의 스태프가 악마의 눈을 빛나며 흉흉하게 깨어난다.
헤비 레인.
시전하면 주위에 막대한 비바람이 부는 마법.
날씨를 조종하는 마법으로, 무려 중급 비전 마법 중 하나다.
3써클에 도달할 때까지, 마법서적이 있어도 배우지 못했던 비기.
안 그래도 폭풍이 몰아치는 산맥에서 그 마법을 처음 시전한다.
쏴아······.
먹구름이 다가온다.
아직 스킬 레벨이 1이라서 그런지 고작 2점만 온다.
쿵, 쾅, 쿵, 쾅.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슬슬 예열된 마나가 들끓는다.
드래곤 하트가 뛰기 시작한다. 내 귓가가 먹먹할 때까지, 거친 심장 고동이 들린다.
3써클에 도달하자마자 전력을 다하는 마나.
중급 마법사의 경지에 오르면서 격이 달라진 기세가 뿜어진다.
【헤비 레인 lv1.】
헤비 레인을 연거푸 발동한다.
집단 마법.
본래 여러 마법사가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마법을 홀로 시전한다.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도 무리가 갈 정도의 막대한 마나로.
영창이 토씨 한 글자 틀리지 않는 스킬로 즉발하여 시전한다.
고고고고!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붉은 눈의 스태프.
붉은 마력석이 깨질 듯이 뜨겁다.
집중호우라도 올법한 거대한 먹구름 떼가 몰려온다.
“폭풍은 나도 바라는 바이거늘.”
쏴아아아.
번쩍, 꽈르릉!
운이 좋게도 천둥번개까지 쳐준다.
이건 아직 내 스킬 레벨에서 확정적으로 가능한 게 아니고, 마침 주변 공기가 수증기를 머금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
“마, 마법사님께서!”
“벼, 벼락을 부르신다! 날씨를 조종하는 마법사다!”
하지만 남들이 경악하고 있으니, 굳이 오해를 정정하진 않는다.
낮은 확률이긴 했지만, 작은 벼락을 부른 건 사실이니.
“누가 더 폭풍을 잘 다루는지 겨뤄보자.”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든다.
파치지직.
이번 마법에 특히 엄청난 마나를 꼬라박아서인지, 벌써부터 내 주변에 스파크가 튀긴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과 공명하는 스파크.
먹구름과 가장 잘 통하는 고지 위로 올라온 보람이 있다.
괴조 카디악을 향해 손가락을 탁 튕긴다.
중급 마법사에 오르면서 새로 익힌, 뇌격의 원로 니콜라스의 비기를 재현한다.
【썬더 스톰 lv1.】
번쩍.
그와 동시에 햇빛 한점 비치지 않는 세상이 빛으로 가득하다.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마치 거미줄처럼 펼쳐지는 벼락.
쿵! 쿠광!
잘게 나뉜 벼락 하나하나가 바위와 나무를 분쇄한다. 시뻘겋게 녹아내린 잔해들.
쿵! 쿠광! 쿠과과광-!!!
그러한 벼락이 수없이 떨어진다.
괴조가 맞을 때까지 쏟아진다.
뇌격의 원로 니콜라스보다 숙련도가 낮기에 썬더 스톰 한 발, 한발의 위력은 훨씬 낮았지만.
마나 양 하나만큼은 니콜라스보다 자신 있었으니.
-끼에에에엑-!!
-삐이이익-!!
연속 카메라로 수십 번 스포트라이트를 터트리듯.
세상이 끝없이 번쩍인다. 0.1초마다 멈춘 장면만이 눈에 사진처럼 남는다.
괴조는 공포에 질린 듯 포효한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공중에서 회피 기동한다.
하지만 소용없다. 하늘을 가릴 만한 거대한 크기로 저 많은 낙뢰를 다 피할 수 없으니까.
애초에 번개의 속도는 초속 100,000km.
절대로 피할 수 없다.
번쩍.
하나둘씩 떨어지는 괴조.
“오, 이런······.”
그 모습을 토벌대 사람들은 목이 아픈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날 올려다본다.
이날 폭풍우는 아마 그들이 살아온 수십 년 중, 가장 많은 번개가 친 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