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36화 (36/140)

36. 괴조 카디악 (2)

흑마법사 에레스는 괴조 토벌대에 막 참가했을 때만 해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비오드 바람 계열 마법 학파.

실상은 다크 로드의 명으로 건설한 마법 학파이거늘.

아펠 영주로부터 그곳 대표로서, 무려 지휘관 직으로 초청받은 것이다.

‘후후, 멍청한 귀족놈들. 과연 제 발로 제 꾀에 걸리는구나.’

에레스는 바로 옆에서 말을 모는 아펠 영주가 우스웠다.

비싼 돈 주고 고용한 바람 계열 마법사가 자신들이라니.

지금 괴조 카디악을 조종해서 아펠 주민들을 학살하고 있는 게 자신들인데 말이다.

제 발로 사지(死地)를 찾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일이 간단해졌다. 이번 토벌대만 궤멸시키면 두 번 다시 괴조 토벌을 꿈도 못 꿀 테니까.’

에레스가 다크 로드에게 받은 임무는 최대한 시체를 많이 모으는 것.

더 정확히는 다크 로드와 계약했다는 악마에게 바칠 제물을 구하는 것이다.

이 토벌대를 잘 몰고 가면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흑마법사의 왕이라는 다크 로드 자칼에게 직접 흑마법을 배울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되면 자칼의 제자로서 동부 사막 음지에서 최고의 권력 집단이 될 수 있을 터다.

그녀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정확하게는 네크라는 마법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뭐야, 시발. 저 녀석. 어떻게 나보다 흑마법을 더 잘 찾는 거지?’

처음엔 단순한 당혹스러움이었다.

도대체 무슨 묘기가 있는지 다크 트랩이 숨어 있는 걸 알아차렸으니까. 다크 필드를 통째로 파괴하지 않는가?

경악스러웠다.

차라리 성기사단이 파괴했다면 납득이라도 했을 터.

평민 마법사 따위가 홀로 파괴하다니.

평민 마법 학파는 제대로 된 마법이 없어서 이상한 잡학 마법을 익힌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렇게 놀라는데, 한 수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에레스 경,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안색이 좋지 않아요.”

“······앗, 그럴 리가요. 바람이 선선하니 날씨가 참 좋지 않습니까? 아하하······.”

식겁해서 겨우 대답하는 에레스.

아무리 아티펙트로 마력을 숨겼다 한들, 흑마법사의 천적인 프레야 사제가 두렵지 않을 순 없다.

‘아 씨발. 깜짝이야. 프레야 사제가 왜 갑자기 말을 거는 거야?’

남몰래 심호흡한다.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한번 휙 날린 후에야 머리가 차분해진다.

머리가 차가워지니, 이런 비상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온다.

‘괴조를 한 번 먼저 부르자. 저 건방진 평민 마법사놈을 먼저 죽여 버려야 해!’

에레스는 남몰래 네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놈 때문에 비싼 돈 들여 만든 다크 트랩이 다 물거품이 됐으니까.

건방지게 나댄 만큼 끔찍하게 죽여준다.

뭐, 안 나댔어도 결국 다 죽었겠지만.

이들의 무덤은 어디가 좋을까?

‘산 중턱. 마차를 최대로 끌고 올 수 있는 곳에서 학살해야겠군.’

보급품은 전부 마차에 있으니까.

만약 산 중턱에서 괴조를 불러 보급 마차를 공격하면, 토벌대는 와해해서 모두 굶어 죽겠지.

파르티잔 산은 하루 이틀 만에 내려갈 수 있는 낮은 산이 아니니까.

그때쯤 되면 자신의 정체를 밝혀도 좋을 것이다.

만약 그때 자신에게 빵과 수프를 무료로 나눠줬던 수녀의 표정이 상상된다.

큭큭,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

‘흑마법사놈들이 생각하는 거야. 뭐, 뻔하지.’

나는 토벌대 선두에서 행군하는 흑마법사 에레스를 보며 팔짱을 꼈다.

괴조 카디악.

그 녀석의 악명은 원작에서도 유명하니까. 실상을 아는 만큼 파훼법도 알고 있다.

특히 바람의 마도서를 구한 후라면 더더욱.

‘이제 곧 산 중턱. 괴조가 나설 때가 머지않았다.’

나는 바람이 슬슬 바뀌는 걸 느꼈다.

보급 마차는 무게 때문에 산 정상까지 오르지 못 하니까.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흑마법사로선 다크 트랩을 모조리 파훼하는 날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겠지.

따라서 적당히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성기사님.”

“왜 부르십니까?”

“괴조 카디악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슬슬 전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새빨간 거짓말.

사실 괴조 카디악의 흔적은 없다.

하지만 성기사는 흠칫 놀라더니,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다.

내가 그동안 완벽하게 흑마법 흔적을 발견했으니, 다들 믿을 수밖에 없는 노릇.

“모두 전투 준비! 괴조 카디악의 영향권에 들어선 모양이다!”

“발리스타를 조립해라! 모두 장비를 정비한다!”

덕분에 부산스럽게 전투 준비를 한다.

가파른 바위산을 등산하느라 다소 해이해진 진형을 바로잡고, 긴 휴식을 취한다.

희묽은 오트밀 죽이 아니라, 큼지막한 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스튜도 먹으면서.

만반의 준비를 마친다.

휘이잉.

나 또한 서서히 강해지는 바람을 느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만큼, 가방 속에서 검은 천으로 둘둘 말은 스태프를 점검한다.

산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자자, 모두 전투 준비해라. 무겁다고 한 두 개 빠뜨리지 말고 진짜 교본대로 해라! 뒈지기 싫으면 방어구 완벽하게 챙겨!”

은빛 늑대 용병단장 맥스는 제 부하들을 관리했다.

괴조 카디악 토벌에 참가하기 전부터, 그 악명을 알아봤기에 장비를 확실히 챙기는 것이다.

“어서 ‘발리스타’를 조립해라!”

“거기 용병분들, 정비가 끝났으면 좀 도와주시오! 이놈이 너무 커서 잘 조립이 안 되오!”

더구나 프레야 성기사단 또한 마차에서 대형 병기를 꺼내 파츠를 조립했다.

발리스타.

덩치가 너무 커서 사람이 쏠 수 없는 기계 석궁을 말한다.

제나와 맥스는 발리스타 파츠 옮기는 걸 도와줬다.

더럽게 큰 만큼 무게도 무거웠다.

“응?”

맥스는 겨우 이마에 땀을 닦다가, 저 멀리에 있는 금발 머리 청년과 눈이 마주친다.

대단히 낯익은 사내.

‘······네카르 경?’

잊을 수가 없다.

지난날, 다크 드루이드와 트롤로부터 은빛 늑대 용병단을 구원해준 은인 마법사이니.

더구나 제나와 제논에게 마법서적도 선물한 마법사 아닌가?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겠군.’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려고 다가가는데,

쉿.

네카르는 입가에 손가락을 하나 댄다.

마치 지금은 비밀로 해달라는 듯.

이후 유유히 사라졌다. 아펠 영주 호세와 프레야 주교 그린달 등 지휘관들이 있는 곳으로.

“왜 그래. 맥스.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맥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마 사정이 있으니 말하지 말라고 했겠지.

생명을 구해주신 마법사신데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무시할 리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군. 네카르 경 같은 마법사께서 우리 토벌대에 함께 하신다니.’

아쉽긴 하지만 마음은 더 든든했다.

일전 네카르가 일으키는 대규모 마법 폭격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까.

“자, 모두 준비됐으면 출발한다.”

“오늘 목표는 저 노란 바위 봉오리다!”

지휘를 맡은 아펠 영지 기사들이 소리친다.

폭풍의 산 파르티잔은 살이 에는 칼바람이 부는 곳.

1년 내내 불어닥치는 강풍에 산도 갈려 나가는지, 뾰족한 언덕들이 많았다.

그중 현재 위치와 가까운 노란 봉오리로 향하는 거다.

······물론 무게 30kg이 넘는 완전 무장을 한 채로.

죽을 땀을 흘리며 올라간다.

“헉······. 헉······. 다들 이렇게 노력하는데 괴조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여신님께서 그렇게 지켜주실 거예요.”

함께 가는 수녀는 낙관적으로 말한다.

바로 그때,

-끼익.

저 멀리서 새 한 마리가 전속력으로 날아온다.

모두 흠칫 놀랐지만, 이내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

다 큰 성체인지 양쪽 날개를 다 펼친 독수리는 성인 남성 키만큼 우람했다.

드높은 하늘에서도 선명히 존재를 드러낼 만큼.

“독수리다. 우리 쪽으로 날아든다!”

“피해라. 독수리를 굳이 건드리지 마!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돌아갈 거다.”

“······.”

용병들은 독수리가 날아오자 별일 아니라는 듯 소리쳤다.

독수리 한 마리 정도야 별일 아니니까.

‘······잠깐. 독수리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

그러나 맥스는 날아오는 독수리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먹이 사냥을 하려면 저공비행을 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으니까.

-끼익.

불안하다는 듯 흔들리는 울음.

그러면서도 전속력으로 날아간다.

맥스는 확신했다. 이건 도주라고.

독수리가 공포에 질린 채, 달아난 거라고 말이다.

‘저쪽에 도대체 뭐가 있기에?’

독수리는 나름 숲의 포식자.

무엇에 겁먹은 걸까?

맥스는 독수리가 달아난 곳을 바라본다.

그곳엔 노란 봉오리가 있었다. 지금 토벌대가 목적지로 등산하는 곳.

“저건······.”

“봉오리가 아니다······?”

맥스처럼 노란 봉오리를 바라보는 사람이 점차 늘어난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목적지를 바라본다.

날이 저물어 저녁노을이 걸친 봉오리.

낭만적으로 보이는 경치 같기도 하지만, 아지랑이가 일렁이듯 흔들린다.

-삐이이이익!

그 노란 봉오리에서 거대한 존재의 울음이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쿠구구, 그것만으로도 강풍에 실린 메아리가 몰아친다. 땅이 크게 진동한다.

펄-럭.

노란 봉오리가 날아오른다.

······아니, 봉오리는 녹색이었다.

단지 그 위에 거대한 존재가 머물렀을 뿐.

다가올수록 끝없이 넓어 보이는 양 날개.

“저, 저기!”

한 용병이 손가락으로 하늘 높은 곳을 가리킨다.

목 젖혀 올려다보던 용병들의 시선이 경이에서 경악으로 바뀐다.

“무, 무슨 새 주제에 덩치가······.”

“영주 성보다 더 큰 크기다······.”

저 새는 하늘 전체를 가려버렸으니까.

단순히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듯, 시야를 전부 가려버리는 수준이다.

훈련 덜 된 용병들은 여전히 멍하게 괴조의 크기를 감상한다.

그 사이, 괴조는 코앞까지 날아와 파공음을 터트린다.

-삐야아아악-!!!

귀청이 떨어지는 소리.

토벌대 사람들이 순간 무기를 놓치고 귀를 틀어막을 때,

쿠과과광-!!

괴조는 날카로운 발톱을 활짝 펼치고 땅 위의 인간들을 휩쓸어버린다.

발톱에 걸린 용병들은 막대한 속도로 흙바닥을 끌리며 살점이 튄다.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해버리는 산길.

“크아아악?!”

“사, 산개하라! 정면으로 맞서지 마!”

“살고 싶으면 흩어져! 화살을 쏴라!”

경험 많은 용병 대장들은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다.

숙련 사수들이 전우들의 시체를 짓밟고 앞으로 나서서 사격한다.

쐑! 쐐액, 쐑!

그러나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괴조는 대부분 스치지도 않았다.

간혹 운 좋게 맞은 화살 또한 박히지도 못하고 깃털에 튕겨 나간다.

괴조의 비곗살도 두꺼웠지만, 폭풍의 산 파르티잔에 강풍이 심하게 불었기에 화살이 맥을 못 추리는 것이다.

-삐이이이익!

그러는 사이, 괴조는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한 번 날아든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괴조.

일선에 선 용병들은 공포에 질린다.

“트, 틀렸어! 화살이 튕겨져 나간다!”

“······발리스타! 발리스타를 가져와라! 어서!”

그러나 성기사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이때를 대비해서 초대형 석궁 발리스타를 가져왔으니.

성기사들은 2인 1조로 짝지어서 10대의 발리스타를 끌고 온다.

“발리스타 장전 완료! 쏴라!”

철컹, 팡! 파방! 파앙!

크기만큼이나 살벌한 파공음을 내는 발리스타.

마치 일제포격하는 대포처럼 대형 작살을 쏴댄다.

폭풍의 산 파르티잔의 강풍에도 아랑곳이 없이 날아드는 작살들.

그러나 대부분 빗나갔다.

발리스타 자체가 조종도 어렵거니와, 공중에 떠있는 적을 맞추는 건 점 공격이니까.

퍽!

-끼익!

“맞췄다!”

한 성기사가 기쁨의 탄성을 터트린다.

괴조의 뱃살에 제대로 꽂힌 작살.

그러나 이내 표정이 어두워진다.

분명 괴조의 피를 흘린 첫 경험이었지만 새 발의 피였다.

방금 조립할 때만 해도 발리스타는 대단히 컸는데, 괴조에게 꽂힌 작살을 보니 이쑤시개처럼 작았다.

마치 인간의 몸에 바늘 하나를 꽂은 듯 미약했다.

오히려 토벌대의 사기가 떨어진다.

새삼 괴조의 크기를 실감한다.

“마법사! 괴조를 떨어뜨리기 위해 불러온 마법사분들 어디 계십니까! 서둘러 집단 마법을 시전해주십시오!”

결국 성기사들은 다급히 마법사들을 찾는다.

“조금만 더 기다리게!”

실제로 아리우스 학파 대표 아라클은 이미 집단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생명의 근원이자, 흐르지 못할 곳이 없는 물이여. 그대의 힘을 빌리노니!’”

촤아아악-!!

집단 마법.

여럿이 모여 협력하여 본래 써클보다 훨씬 강한 마법을 시전하는 방식이다.

아리우스 학파 마법사들은 용병이 봐도 대단해보이는 마법진을 활성화한다.

2써클치고는 막대한 마나.

인근 나뭇잎의 이슬과 땅을 적시는 빗물을 긁어모아 초대형 워터볼을 만든다.

“워터 캐논!”

그렇게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워터 캐논.

파아아앙!

-꾸에엑!

다행히 괴조에게 제대로 적중한다. 비명을 지르며 공중에서 떨어지는 괴조.

거기에 비오드 바람 학파 마법사들 또한 기다렸다는 듯 집단 마법을 퍼붓는다.

“······광기 어린 바람!”

쿠고고고!

광기 어린 바람.

바람 계열 중급 마법 중 하나로, 주위 바람을 사방팔방으로 미친듯이 불게 하는 집단 마법이다.

-끼요오옷?!

실제로, 이 마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괴조는 방향을 잃고 공중을 떠돈다.

안 그래도 워터 캐논에 방향을 잃었는데, 풍향이 난기류처럼 흩어졌기에 곤욕을 치른 거다.

“으악-!! 떨어진다!”

“꽉 잡아라! 자세를 낮추고 버텨!”

쿠고고고고!

그러나 광풍은 비단 괴조만 덮친 게 아니었다.

성기사들 또한 사방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방향을 못 잡고 휘청인다.

절벽 아래로 밀려 나간 사람도 있다.

심지어 놀란 말이 앞발을 들다가, 마차 바퀴가 굴러서 쿠당탕탕 절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당장 욕부터 나오는 용병과 성기사들.

“야, 이 미친 마법사야! 아군까지 휩쓸면 어떡해!”

“이 정도 강풍이 아니면 저런 괴조가 꿈쩍이라도 할 것 같아? 헉. 또 온다!”

-삐이이익-!!!

반면 괴조는 잠깐 풍향만 잃은 건지, 곧장 멀쩡하게 다시 날아오른다.

미친 듯이 날갯짓하며 물기를 날려버린다.

“으아악! 집단 마법조차 통하지 않는다!”

이미 항전 의지가 꺾인 비오드 바람 학파 마법사들.

재영창을 하지 않고 혼비백산해서 달아난다.

그 중엔 왠지 모르게 웃고 있는 녀석도 있지만······.

순식간에 퍼지는 패전의 향기.

“틀렸어······. 괴조를 죽일 수 없어······.”

“맥스 대장, 도망치자! 이대로 계속 남아있다간 개죽음이야!”

은빛 늑대 용병단마저 공포에 질린다.

괴조를 토벌하기 위해 가져온 장궁과 발리스타, 심지어 집단 마법까지 소용없었으니까.

성기사들은 괴조가 날아다니는 하늘이 저주스러웠다.

하다못해 땅으로 내려오기만 해도 성기사단이 어떻게든 신성 검기로 찔러 죽일 수 있을 텐데······.

이미 눈동자에 생기를 잃은 상태였다.

“······아니. 아직 마법사님이 남아계시다.”

그러나 맥스는 홀로 마음이 꺾이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 저 잘난 아리우스 학파랑 비오드 학파 둘 다 실패했잖아!”

“저들이라도 대피시키자는 뜻이야?”

다른 사람들은 맥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맥스는 설명하는 대신, 눈을 감고 차분히 생각한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숲 전체에 어둠이 드리우고, 악령의 메아리가 울려퍼졌을 때.

다크 엔트가 바위로 동료 용병들을 깨죽이고, 트롤이 자신을 압도했을 때.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

그때 나타났던 한 마법사가 있었다.

홀로 전황을 바꾼 마탑의 젊은 마법사가.

“이제 곧 그분이 나설 거다.”

맥스는 마음을 다잡으며 희망을 전한다.

은빛 늑대 용병단은 평소 맥스를 신뢰한 만큼 반신반의하면서도 곁을 지킨다.

-삐이이익-!!

그러나 이를 비웃듯 창공을 비행하는 괴조.

괴조 또한 눈치챘다. 자신이 땅에 떨어져야 성기사단이 신성 검기를 꽂아 넣을 수 있다는 걸.

반대로 말하면 떨어지지만 않으면 위험한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거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누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땅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까?

“······바람의 길.”

그때 누군가 차갑게 읊조렸다.

석양을 등지고 언덕 위에 고고히 서있는 사내.

태양처럼 빛나는 금발 머리에, 깊은 푸른 눈을 가진 사내였다.

쐐애애액!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한 마디로 인하여.

난잡하게 불던 광풍이 한 방향으로 집결한다.

-끼이이익?!

갑자기 바뀐 풍향을 따라 하늘로 급상승하는 괴조.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더니 대단히 불쾌한 표정으로 범인을 노려본다.

짐승답게 본능적으로 누구의 소행인지 직감한 거다.

“······네크 씨?”

이는 비단 괴조뿐만이 아니다.

영주의 가신 핸리도, 용병들도, 성기사들도, 사제들도, 비오드 학파 마법사들도, 아리우스 학파 대표 아라클도, 프레야 주교 그린달도 갑작스러운 변수를 바라본다.

특히 맥스를 제외한 은빛 늑대 용병단은 경악했다.

노란 머리카락에 바다처럼 깊은 눈을 가진 젊은 사내.

저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까. 목 젖혀 올려다본다. 그의 등이 그토록 넓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사내는 한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며 다시 읊조린다.

“바람의 길.”

쐐애액-!!

연거푸 불어오는 돌풍.

이는 하나가 아니다.

동서남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모두 사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마치 도시 내 모든 길이 광장으로 모이는 것처럼.

폭풍의 산에 들이닥치는 강풍이 모두 한자리로 불어온다.

비오드 마법 학파 마법사 에레스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경악한다.

“마, 말도 안 돼! 홀로 집단 마법이라고? 혼자서 저 많은 마법을 조종한단 말야?!”

웃음기를 지우고 진심으로 경악하는 에레스.

그녀의 비명을 필두로, 하늘에서 군림하던 괴조 또한 변화가 일어난다.

-끼야아악?

괴조는 안 그래도 급상승하느라 무게 중심을 잃은 상태에서, 즉시 급강하하니 도저히 자세를 잡지 못한다.

끌려가지 않도록 버티는 것이 고작.

“비만 새 주제에. 자연의 순리에 거스르려고 하는구나.”

금발의 사내는 오른손을 땅 아래로 내린다.

“그만 땅으로 내려와라.”

그와 동시에 급강하하는 바람.

쿠과광!

괴조가 순식간에 땅에 처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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