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35화 (35/140)

35. 괴조 카디악 (1)

나는 영주의 가신, 해리의 안내에 따라 선두로 가던 마법사 무리와 합류한다.

총 22명의 마법사.

이들은 크게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었다.

“자, 다들 소개해드리겠네. 왼쪽에 계신 마법사분들이 비오드 바람 계열 학파 분들일세. 괴조를 땅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특별 초빙했네.”

해리가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마법사 11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오드 학파 에레스.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지내지.”

-lv26 흑마법사 에레스.

칼바람 쌩쌩 부는 에레스.

물론 문제는 이놈들이 흑마법사라는 거지만.

나는 아직은 겉으로 미소를 지으며 악수한다.

해리는 딱딱한 분위기 신경 쓰지 않고 또 다른 마법사들을 소개한다.

“자, 그리고 이쪽 분들은 물의 학파 아리우스 마법사분들이라네. 새를 떨어뜨리려면, 우선 물에 젖게 해서 몸을 무겁게 해야 하지 않겠나?”

-lv17 아리우스 학파 대표 2써클 아라클.

아리우스 학파?

대충 들어보긴 했다. 아주 작은 귀족 가문이었지.

하지만 특별히 뛰어난 마법사가 없어서, 별로 관심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영주는 아직 말이 안 끝났다는 듯 더 말했다.

“아, 맞아. 네크 씨도 물의 마법사라고 했었지?”

“예.”

“놀라지 마시게. 이분들은 무려 물의 명가 크라우드와 마법 연구를 직계약한 분들이시니. 함께 다니면 배울 점이 많을 걸세.”

해리는 잘 해보라는 듯 아리우스 가문 마법사를 띄워준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와 공동 연구한다고 자랑한다.

······아, 얘네 우리 가문 하청 학파였나?

그래도 나름 거래처인데 잘해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해리님, 저 어중이떠중이처럼 보이는 젊은 사내는 뭡니까? ”

아리우스 학파 대표 아라클이 내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떠들었다.

써클은 대충 나와 같은 2써클.

“이번에 괴조 토벌에 참여하는 마법사 중 한 명일세.”

“음 ‘집단 마법’은 합이 중요해서 낯선 이는 방해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물 마법을 전공했다고 하니 금방 합을 맞출 수 있지 않겠나?”

“물의 마법사라고요? 신분증 좀 보여줄 수 있겠나?”

나는 아까처럼 마탑의 신분증이나,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신분증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 옆에는 흑마법사들이 있으니까.

혹여 너무 높은 신분을 드러내 버리면 겁먹고 아예 잠적해버릴 수 있으니, 황금 상회에게 특별 제공한 가짜 신분증을 꺼낸다.

아라클은 내 가짜 신분증을 보고 떠들었다.

“크루아 평민 마법 학파?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봐 잭, 자네는 이런 곳 들어봤나?”

“아니, 처음 보는데.”

듣도 보지도 못한 가문인 건 맞다.

크루아 학파라는 곳 자체가 황금 상회가 설립한 유령 학파니까.

다만 그렇다고 해서 생판 처음 보는 상대에게 이렇게 무시하는 게 옳은 건 아니지만.

해리는 불쾌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라클 경. 이 청년은 평민이지만 자네와 같은 2써클이라네. 영주님의 승인으로 토벌대에 합류했으니, 앞으로 함께 해야 할 터. 분란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군.”

“같은 2써클이면 뭐합니까? 평민 출신이면 변변찮은 마법도 못 익혔겠구먼. 집단 마법에 참여할 수 있기나 할지······.”

아라클은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뭐, 통념적으로 일부 맞는 말이다.

마법서적은 굉장히 고가인 사치품.

가난한 평민들은 귀족에 비해 제대로 된 마법서적을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니까.

‘더구나 특히 집단 마법은 더욱 그렇다.’

단순히 개인의 재능으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라, 큰 교육 기관에서 오랜 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수학해야지 익힐 수 있는, 복잡한 마법이다.

새삼 평민과 귀족의 사이가 매우 나쁘다는 걸 체감한다.

이렇듯 정통 마법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흑마법사와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가 민초들을 유혹하는 거겠지.

한편 비오드 학파라고 위장한 흑마법사들은 입장이 묘했다.

“저야 방해만 안 되면 별 상관없습니다.”

내 참전이 딱히 달갑진 않으나, 방해하진 않겠다는 태도.

하기야 흑마법사로선 처리해야 할 적이 늘어나는 것이니 불편하지만, 굳이 눈에 띄게 행동하고 싶진 않다는 뜻이리라.

나야 둘 다 가소로울 뿐이다.

하여튼 나는 다른 마법사들과 별개로 움직이는 거로 하고, 행군을 계속한다.

탐험가 다모르는 내 뒤에서 눈치를 슥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이거 저 때문에 위대하신 분께서 곤란해지신 게 아닌가 싶네요······.”

“······.”

날 아직도 드래곤이라고 착각하는지, 잔뜩 쫄아있는 모습.

뭐, 종결급 특성 드래곤 아이와 드래곤 하트가 있으니 영 아닌 건 아니지만.

말을 계속 타면 어지럽다며 제 발로 걸으며 따라온다.

나는 별생각 없어서 대꾸를 안 하는 건데 화가 났다고 착각하는지 열심히 말을 붙인다.

“그래도 일이 술술 잘 풀리는군요. 마침 인간들도 괴조 카디악을 사냥하려고 하다니. 이번엔 촉이 참 좋습니다.”

“그런가?”

“그럼요. 제 촉을 믿으십시오. 이래 봬도 제가 촉이 좋은 탐험가거든요!”

자기 가슴팍을 팍 치면서 호언장담하는 다모르.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촉은 최대한 빨리 갖다 버리는 게 좋겠군.”

-lv27. 흑마법사 에레스.

나는 바로 앞에 있는 흑마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다모르는 제 촉을 믿으면 안 되는 녀석인 모양이다.

-lv19. 다크 트랩.

-lv21. 블랙 스페이스.

실제로 시스템 창에는 이미 저 멀리 보이는 길목에 흑마법 결계가 보인다.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아이 덕분에 한층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게 됐으니까.

다크 트랩은 일정 머릿수가 들어서면 발동하는 유형의 함정이다.

산길을 무너뜨려 생매장시키는 함정도 있다.

나는 흑마법사 에레스를 노려본다.

아무래도 저놈들이 토벌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려고 설치한 거겠지.

나는 근처의 기사에게 다가가서 말한다.

“함정입니다.”

“?”

“저 앞에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함정을 해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혀 못 믿겠다는 눈치.

아리우스 학파 대표 아라클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한다.

“네크. 뭘 안다고 아는 척하는 건가? 방금 정예 용병들이 정찰을 다 끝마쳤는데 자네가 그들보다 잘 안 다는 건가? 무슨 근거로?”

“······.”

불같이 쏘아붙이는 아라클.

흑마법사들은 자신들이 설치한 것인 만큼 당연히 전혀 모르겠다는 연기를 한다.

【아쿠아 lv2.】

촤아악.

나는 주위 습기를 끌고 와 함정을 내리친다.

결국, 흑마법 트랩 또한 마법.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조건이 부합하면 발동하는 거다.

아마 사람이 얼마나 들어왔는지는 마나 양이 얼마나 있는지로 체크하겠지.

인간도 결국 마나로 이뤄져 있으니.

따라서 마나로 건드려 멋대로 발동시킨다.

딸깍.

쿠고고고!

“!”

“!!”

이에 검은 마력이 뿜어지더니, 검은 벽이 일어난다.

다크 필드.

일정 공간을 가두는 흑마법이다.

“저, 저건······?”

“흑마법이다. 정말 흑마법이 발동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용병, 사제, 성기사, 가신 할 것 같이 모두 술렁인다.

또한, 다들 말하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괴조 카디악.

일대 여행자 씨를 말린다는 대형 조류 몬스터.

그 카디악은 어쩌면 흑마법사가 조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흑마법이다! 성기사단 앞으로!”

“신성 검기를 써라. 흑마법 결계를 없애라!”

샤아아아.

흑마법 결계가 나타나자 역시 선과 질서의 프레야에서 가장 먼저 나섰다.

결벽증 환자처럼 흑마법을 경멸하고 영멸하려는 자들.

“흐아압!”

콰앙!

성기사들은 각자 자신의 무기에 신성 마나를 담아 내리친다.

신성 검기.

기사의 검기와 똑같은 기술이지만, 신성력으로 이뤄져 있는 만큼 흑마법에 추가 효과를 준다는 차이점이 있다.

“······!”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전혀 타격이 없었다.

흑마법은 신성력에 취약한 것이 당연한 순리이거늘.

다크 필드는 잠깐 크게 흔들릴 뿐, 형체를 더욱 단단히 굳히는 게 아닌가?

‘다크 리플렉터의 속성을 덧입힌 다크 필드로군.’

나는 단번에 특성을 꿰뚫어 본다.

인첸트.

특정 대상에 마법을 부여하는 마법이다.

다크 리플렉터는 강하게 공격할수록 더욱 단단하게 변형되는 방어 흑마법이니까.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성력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것이리라.

실제로 다크 필드에 신성 검기를 연신 강하게 내리치는 성기사들을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으니까.

에레스를 비롯한 흑마법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기를 참을 수가 없는지, 손으로 입가를 가린다.

자신들은 저런 거 못 부순다고 거짓말하면서 말이다.

“모두 비켜보시오. 우리 아리우스 학파는 마법 연구에 특화된 가문. 마법진 해제 따위 간단하오.”

그때 아리우스 학파 대표 아라클이 나선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 명성과 위엄을 드높이려는 모양.

‘글쎄, 과연 그렇게 될까?’

아리우스 학파가 나름 귀족 마법 학파인 건 알겠지만, 4대 속성 마법과 흑마법은 근본부터 다르다.

더구나 고작 최고 수준이 2써클이라면 역분석이 될지 모르겠다.

“······.”

그렇게 성기사들을 물리고 30분 가까이 시간이 지난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아리우스 학파 사람들.

“큼, 이게······.”

역시 전혀 감도 못 잡겠다는 눈치다.

하기야 이 정도 흑마법은 에레스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니까.

최종 책임자이자, 토벌대 최고 권력자인 아펠 영주 호세가 다가와 묻는다.

“차도가 있는가?”

“······워낙 복잡한 흑마법 결계인 듯합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합니다.”

절대로 자신들의 수준이 미천하다고는 안 하는 아라클.

하기야 자신 있게 나섰는데 그냥 물러서기엔 학파의 자존심이 꺾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많은 사람이 계속 기다릴 수는 없네. 여차하면 다른 길로 돌아가도 되니 말이야.”

“······!”

영주 호세는 이미 상황이 틀렸음을 직감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안 될 말이다. 철두철미한 흑마법사들이 다른 길이라고 함정을 안 팠을 리는 없으니까.

‘······저자가 주교 그린달인가?’

-lv33. 프레야 주교 그린달.

더구나 나는 아펠 영주 호세와 함께 다니는 늙은 사제를 발견한다.

주교 그린달.

프레야 교단에서 주교는 최고 권력자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자체 성기사단을 대동하는 아펠 영지 주교는 동부 대륙에서 최고 사제 중 하나.

특히 내 기억상 혼자서도 군단급 위력을 가진다는 ‘대륙 7대 성인’과 관계가 깊은 거물이다.

사실상 동부 교단 전체를 지배하는 자.

신성력이 강하진 않아, 무력은 약하더라도 신앙심과 정치력이 두터운 자다.

‘주교 그린달과 인연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동부의 변이 일어났을 때, 최대한 빨리 프레야 교단과 대처할 수 있다.’

나는 목적을 상기한다.

성큼 다가온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의 그림자.

그리고 그 첫 번째 발자취로 벌어지려는 동부 사막의 멸망.

이를 첫 단추부터 막고 진 엔딩으로 다가가기 위해선 대륙 7대 성인을 비롯한 프레야 교단의 전력이 필요하다.

주교 그린달은 그러기 위한 훌륭한 징검다리였다.

“제가 한 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따라서 나는 주교 그린달이 다가왔을 때, 손을 들고 자신 있게 나선다.

흑마법사의 결계 해제를 못 해서 끙끙 앓고 있을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아리우스 학파 아라클은 당연히 발끈하고 본다.

“자네가 뭔데 앞으로 나서는가? 물의 명가 크라우드와 함께 마법 연구한 우리조차 제대로 분석을 못 하고 있거늘. 방금 운 좋게 함정을 발견했다고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몇 분이나 주면 되겠는가?”

아펠 영주 호세는 나를 바라보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로선 어떤 마법 학파든 일만 제대로 해결하면 되니까.

“10분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손짓하는 호세.

한번 해보라는 뜻이다.

그제야 아리우스 학파 마법사들은 옆으로 잠시 비킨다.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결국, 겉모습만 다를 뿐, 원리는 똑같이 다크 리플렉터.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똑같지.’

【아쿠아 lv2.】

나는 다크 필드에 손을 뻗으며, 마나를 불어 넣는다.

다크 리플렉터를 자극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나약하지만 막대하게.

쿵, 쾅, 쿵, 쾅.

쉼 없이 펌프질하는 드래곤 하트.

산길 일대를 봉인한 다크 필드 전체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미약한 진동이 느껴진다.

다크 필드가 무너지려는 징조다.

“하. 10분이 거의 다 됐는데 가만히 서있기만 하느냐? 열심히 해보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구나.”

“······.”

풋내기들의 개소리는 살포시 무시한다.

마나를 계속 불어넣으니 점점 진동이 심해진다.

그리고 일순,

와장창창!

쨍그랑!

“크읏?! 물러나라. 방패 들어!”

“꺄아악!”

다크 필드 전체가 와르르 무너진다.

내가 마나를 부여한 만큼 무너지게 설계돼 있으니까.

본래 흑마법사들이 자신들만 지나다닐 쪽문을 만들 용도로 이용하던 특성을 역으로 이용한다.

“······.”

“······!”

믿기지 않는 상황에 에레스와 흑마법사들을 비롯해 토벌대 전체가 침묵한다.

특히 아리우스 학파 마법사들은 완전히 침묵한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자신들도 다크 필드를 직접 해체해보려고 했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미, 미친······. 이건 말도 안 돼······. 사실 네놈이 흑마법사라서 파훼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러니 사고가 정지해서 저따위 막말이나 한다.

물론 아펠 영주를 비롯한 지휘관들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내가 정말 흑마법사라면 구태여 앞으로 나서서 이 결계를 깨뜨릴 이유가 없으니.

-‘아쿠아’ 마법의 진수! 물은 한 방울은 약하지만, 그 규모가 강을 이루고, 바다를 만들면 거대한 배도 뒤엎어버릴 강력한 파도가 됩니다!

-당신은 아쿠아 마법을 극한으로 활용했습니다!

-‘아쿠아 lv2’가 ‘아쿠아 lv3’로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시스템 창이 날 축복한다.

아무래도 그동안 물리적인 활용만 계속했는데, 마법 결계 해제 같은 다른 방식으로 해제했기 때문에 스킬 레벨이 특별히 빠르게 오른 모양이다.

“자네 학파가 크루아 평민 학파라고 했나?”

아펠 영주 호세는 내게 다가오더니 말한다.

“다음 토벌 때 마법사들을 고용할 때는 크루아 마법 학파를 우선 고려해 봐야겠군.”

멋대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호세.

······미안한데, 크루아 학파는 유령 마법 학파다.

물론 나는 아직 신분을 속이고 있기에,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다.

이 정도도 충분히 좋은 반응.

“흐음.”

그러나 더 중요한 반응은 따로 있었다.

아펠 영주 호세 곁을 지키던 프레야 주교 그린달이 날 바라보는 눈매가 달라졌으니까.

단순히 떠돌이 마법사가 아닌, 귀족 정예 마법사들도 못 풀던 흑마법 결계를 홀로 푼 유망주로 바라본다.

아리우스 학파 대표 아라클은 한참이나 침묵하더니, 영주와 주교의 달라진 시선을 느끼고 헛기침한다.

“흠, 이거야 원, 민망하게 됐군······.”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본다. 내 뒤에는 영주와 주교가 서 있었으니 그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하기야 이런 분위기에서 아까처럼 날 무시하긴 어려울 터.

“씁, 용서하게.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좀 과격했어.”

“무례했죠. 제가 평민이라는 이유로.”

“······.”

내 말에 아라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내 실력을 보긴 봤으나 여전히 나를 적대하고 있는 듯했다.

영주와 주교가 돌아서서 마차로 향하자, 아라클이 내게 다가와서 속삭인다.

“뭐, 제법 실력 있는 마법사란 건 인정하겠네. 다만······.”

녀석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자아내며 나를 올려다본다.

“지금 공을 세웠다고 교만해져서 괴조 카디악이 나타났을 때 끼어들진 말게. 어찌 됐든 괴조는 집단 마법으로 잡아야 하니까.”

“······.”

아라클은 집단 마법만큼은 자신들이 독보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은근히 알력을 넣었다.

하기야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집단 마법.

집단적으로 여러 마법사가 동시에 시전하는 마법.

여러 마법사가 사용하는 만큼 화력이 몇 배로 뛰지만, 당연하게도 그만큼 여러 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해야 하니까.

몇 배의 마나와 마법 캐스팅이 필요하다.

난생처음 보는 외부인과 합을 맞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예외지만 말이지.’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으며 하고 싶은 말을 삼킨다.

그때.

-삐이이이익-!!

육중한 메아리가, 폭풍의 산 파르티잔, 그 복잡한 협곡을 타고 우리에게 밀려온다.

폭풍이라는 산의 위명을 증명하듯.

깎아지는 절벽을 타고 그 소리가 분절되고 변질되면서 마치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강풍이 몰아닥친다.

후우우우-

“큭! 이건?”

“괴조. 그 새가 슬슬 가까이 왔나 보군요.”

“······!”

나는 아펠 영주 호세에게 앞일을 예견한다.

흑마법사 에레스가 날 노려보고 있는 걸 의도적으로 못 본 척하면서.

아마 상황이 여의치 않은 걸 느끼고, 최강의 패를 꺼낸 모양이다.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