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폭풍의 산 파르티잔 (1)
“······칼바람 계곡? 그곳엔 왜 가시려는 겁니까?”
도둑 길드 사람들은 순수하게 물었다.
모르는 자는 없었다.
칼바람 계곡.
폭풍의 산 파르티잔 산 정상에 있는 계곡이다.
그곳에선 사람이 날아가버릴 정도의 강풍이 불기에 접근금지령이 떨어진 곳.
굳이 그곳에 가려는 이유가 궁금한 거다.
나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단순한 던전 탐험이다.”
“그렇군요. 보물 지도라도 얻으셨나 봅니다.”
그제야 납득하는 도둑들.
하기야 던전 탐사는 흔한 이유니까.
사실 굳이 믿지 않아도 별 문제 없었다.
“근처까지 안내해드릴 수 있지만, 폭풍의 산 파르티잔엔 ‘괴조(怪鳥) 카디악’이 서식해서 위험할 수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괴조 카디악.
덩치가 어지간한 2층 목조 건물보다 거대한 포악한 새.
무려 샌드 드레이크와 동급인 중상급 몬스터다.
비만 새라고 불릴 만큼 대단히 뚱뚱했다.
그만큼 먹성도 늘어가 주변 생명체 씨를 말리는 몬스터다.
“그 때문에 의뢰비를 높게 쳐주는 거다. 몬스터를 잘 피해 갈 실력자를 구한다.”
나는 탁자에 올려둔 은화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연하지만 괴조 카디악과 싸울 생각 전혀 없다.
내 목표는 오직 바람의 마도서.
조용히 보물만 챙겨서 내려오면 그만이다.
-lv6 아펠 영지 도둑 갈릭.
-lv9 아펠 영지 도둑 로만.
-lv11 아펠 영지 도둑 딜라.
그러자 일제히 손드는 도둑들.
“단순 길 안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칼바람 계곡까지 최단거리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뭐래? 평소 산도 안 타던 양반들이. 제가 실력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하나 같이 자기가 안내하겠다며 나선다.
하기야 단순히 길 안내하는 것만으로 이리 큰돈이라면 누구나 원할 거다.
아무리 실력 있는 도둑이라도 이만한 돈을 벌기 위해선 그간 털지 않은 귀족가에 잠입해야 하는데, 이는 대단한 위험이니까.
“잠깐!”
그때 그동안 가만히 있던 중년 사내가 나섰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뱃살이 옷 밖으로 튀어나온 자였다.
“실력자를 구하신다잖는가! 이번 일은 내가 직접 나서지.”
“벤텀? 자넨 한동안 안 나서겠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귀한 손님이 오신 것 같아서. 흐흐, 이번에 한몫 단단히 챙기고 휴양이라도 다녀와야겠어.”
그 사내의 등장에 손들던 도둑들이 모두 손을 내렸다.
벤텀이라는 사내는 내게 호탕하게 인사했다.
“20년 차 도둑 벤텀입니다. 귀공자님. 절 뽑으시죠.”
-lv19 아펠 영지 도둑 벤텀.
도둑치고 레벨이 지나치게 높았다.
아무래도 아펠 영지 일대 최고 도둑인 모양.
“제겐 수하 2명도 있습니다. 다들 실력이 뛰어난 만큼 호위도 충분히 될 겁니다.”
-lv15 아펠 영지 도둑 하잔.
-lv14 아펠 영지 도둑 하림.
누구 하나 레벨이 부족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모두 도둑이라는 점이 걸리긴 했지만······.
하여튼 길 안내를 맡은 도둑을 결정했다.
“출발은 내일 아침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광장에서 뵙지요.”
약속대로 선금을 쥐여주고 도둑 길드를 빠져나온다.
칼바람 계곡으로 가기 전에 반드시 구비해야 할 물품이 있으니까.
‘발광석. 동굴을 밝힐 돌을 구해야 한다.’
칼바람 계곡 속에는 숨겨진 동굴이 있다.
바람의 마도사 클라인이 은거했던 동굴.
그 속에 동부 사막을 멸망시키려는 언데드 군단을 막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바람의 마도서가 묻혀있다.
그리고 동굴 탐험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발광석이 필요했다.
구하기 어렵지도 않았다.
딸랑.
“어서 오세요~.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살갑게 맞이하는 여행가 상점.
아펠 영지는 나름 큰 도시인 만큼 방랑객을 위한 상점이 있었으니까.
“발광석을 사고 싶다.”
“헉, 마법사셨군요. 몇 개나 필요하십니까?”
발광석이란 말에 한껏 긴장하는 상점 주인.
발광석을 쓸 수 있다는 건 마법사라는 뜻이었고, 마법사는 대부분 귀족 신분이었으니 말이다.
“가게에 있는 모든 발광석을 사고 싶다. 아니, 하루 이내 구할 수 있는 모든 발광석을 구매하겠다.”
“!”
백지수표가 있는 만큼 통 크게 돈을 뿌린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는 상점 주인.
“죄, 죄송하지만 손님. 발광석이 지속 시간이 매우 짧은 건 알고 계시죠······? 더구나 나중에 환불할 수 없어요.”
발광석과 횃불의 차이점.
발광석은 마나를 통해 빛나기 때문에 바람에 취약하지 않다.
그러나 반대로 마나가 적은 사람은 얼마 지속하지 못한다는 게 최악의 단점이다.
애초에 고 써클 마법사는 극히 적으니까. 수련용으로 사용되는 게 대부분.
쿵.
“괜찮으니 내일까지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둬라.”
“······!”
선금으로 1천 페니를 올려두고 돌아간다.
발광석은 그리 희귀한 돌은 아니니까.
‘내일 아침, 찾아오면 되겠지.’
그동안 맛있는 여관집을 찾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될 일.
-우움!
노움이 거리에서 포도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인다.
사달라고 조르는 눈치.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차피 돈도 많은 만큼 포도 한 송이 사줬다.
***
다음 날 아침,
도둑 길드 벤텀은 약속대로 부하들을 이끌고 광장으로 나왔다.
네카르라는 귀공자와 폭풍의 산 파르티잔을 수색하기로 계약했으니까.
막대한 의뢰금을 받은 만큼 빠질 이유가 없었다.
‘흐흐, 돈 귀한 줄 모르는 귀공자시군. 아무런 기한도 없이 계약을 잡다니. 이리저리 굴리면서 더 뜯어 먹어야겠어.’
단지 오래간만에 잡은 호구를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고민할 뿐.
그런데 막상 의뢰인을 만났을 때는 무언가 일이 잘못됐음을 느꼈다.
“공자님······. 저 많은 돌은 뭡니까?”
일단 광장에 쌓여있는 수많은 발광석이 보인다.
커다란 가방 3개에 빼곡히 담겨있는 발광석.
“필요한 물건이다. 각자 하나씩 매라.”
“······.”
계약금 액수가 워낙 커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각자 하나씩 들쳐멘다.
이후 계약대로 폭풍의 산 파르티잔에 오른다.
‘제기랄, 더럽게 무겁군. 오랜만에 꿀 의뢰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보수를 많이 준다고 해도 일이 무지막지하게 힘들다면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불만을 가진 건 벤텀 뿐만이 아니었다.
‘대장.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히 날로 먹는 의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
다들 원망이 가득했다.
더구나 남에게 무거운 짐가방을 들게 한 당사자 네카르는 자기는 아무것도 안 들고 있지 않은가?
도둑들은 본래 범법자들.
이런 괘씸함을 넘어갈 위인들이 아니다.
특히 사람 하나쯤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산이라면 더더욱.
‘형님. 이대로 호구처럼 가만히 중노동하실 겁니까?’
‘아펠 뒷골목 주인 벤텀이 많이 죽으셨습니다. 공작가 영애의 빤스까지 훔치던 시절 어디 가셨습니까?’
‘시끄럽다! 계약은 계약이잖느냐?’
하지만 계약서를 썼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길드에서 의뢰를 받으면 계약서를 써야 하니까.
만약 이행하지 않는다면 길드에 계약 이행률이 감소한다.
이행률이 낮아지고, 수틀린다고 죽인다는 소문이 퍼지면 앞으로 영영 일을 못 구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숙련된 도둑 벤텀이라도, 정말 귀족가 도둑질만 해서 살아갈 순 없으니까.
그러나 부하들은 완강했다.
‘그렇다면 계약은 이행하고 엿 먹이면 되죠.’
‘맞습니다. 형님. 어차피 언제까지 칼바람 계곡에 데려다준다고 적어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러네?’
결국 계략을 꾸민다.
분명 계약 사항은 길을 찾아주는 대신, 그 기간만큼 돈을 받는 것.
빙빙 돌아가도 계약 위반은 아니다.
계속 시간 끌어서 돈 뜯어먹어도 별문제가 없단 말이다.
‘후후, 좋다. 왜 칼바람 계곡으로 가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애송이 도련님한테 세상은 무서운 곳이란 걸 가르쳐줘야겠어.’
벤텀은 20년 차 도둑.
나름 이 업계에서 경험이 녹록한 자다.
죽이지 않더라도 어리숙한 손님을 다 털어먹는 법을 알고 있다.
‘그래, 흉악한 곰이 있는 동굴로 데려가자. 그리고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 구해주지 않는 거야!’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맹수 서식지로 데려가는 일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네카르라는 의뢰인은 생각보다 훨씬 담담했다.
“이쪽 길은 다른 산맥으로 이어진 방향 아닌가? 맹수 서식지로 가는 방향 같은데.”
“앗? 그, 그러네요. 잠깐 착각했습니다.”
“······.”
지도를 통해 대략 길을 알아봤다는 점이다.
하인에게 모든 일을 맡겨 놓고, 수틀리면 화만 내는 여느 귀족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대장,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의뢰인한테 지도를 먼저 준 거예요?’
‘나도 몰라. 임마!’
그러자 당황한 건 벤텀과 수하들이었다.
‘일단 암벽으로 경사가 급격한 곳으로 간다.’
벤텀은 파르티잔 산 일대를 전부 알고 있다.
도둑 길드원들이 훈련용으로 오르는 산이 파르티잔 산이었으니.
길이 험하고, 칼바람이 에는 곳으로 유도해서 천천히 갈 생각이었다.
일당이 무려 100페니가 아니던가? 산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최대한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
그렇게 도착한 암벽길.
산이 가팔라 발하나 올리기도 힘든 곳.
등산이라기보단 암벽등반을 해야 하는 곳. 그곳에 도착했다.
네카르가 말했다.
“꼭 이쪽으로 가야 하는 건가?”
“다른 길도 있지만 빙 돌아가야 합니다.”
벤텀과 수하들은 속으로 큭큭 웃으며 말했다.
귀공자가 이런 험지를 가봤자 얼마나 가봤을까 싶은 거다.
의뢰인을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저희가 먼저 시범을 보여드리죠.”
끙, 끙······.
문제는 이들도 힘들다는 거였지만.
네카르는 한참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노움.”
쿠구구궁.
암벽길에 흙이 덮인다.
양팔로 붙잡고 가야 하는 뾰족한 바위가 흙에 메워져 매끄러운 경사로가 된다.
“가지.”
“······.”
울컥,
욕이 튀어나올 뻔한 벤텀.
그러나 가까스로 참는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는 위화감을 발견했으니까.
‘이 도련님, 도대체 마나가 얼마나 많길래 이런 일을 자유자재로 하는 거지?’
마법으로 흙을 옮기는 건 비교적 흔한 일이다.
4대 속성 중 하나가 흙 마법이니까.
그러나 아무리 흙 마법 명가 크로코라도 공사를 할 때 마법사들이 하지 않는다.
마나에 한계가 있으니까.
단기적으론 폭발적인 양을 옮길 수 있지만, 그 직후 심히 지쳐버리기 때문에 공사장 인부를 쓰는 거다.
그런데 이 도련님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다.
저렇게 젊은 나이에 지고한 경지를 뚫었을 리는 없고.
혹시 특별한 아티펙트를 쓰는 걸까?
‘하지만 이번엔 확실하다. 이건 도저히 흙으로 메울 수 없으니까.’
벤텀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바위의 길’로 데려갔다.
이대로 그냥 물러서기엔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부하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으므로.
‘조진다. 이놈은 반드시 조진다. 날 개고생시킨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
최악의 길로 데려간다.
아무리 좋은 아티펙트라도 극복 못 할 만한 바위의 길로.
고오오.
바위의 길은 말 그대로 집채만 한 바위가 틀어막은 길이었다.
안 그래도 오르기도 힘든 암벽길에 정면으로 떨어진 바위.
그리고 적당히 당황한 척 연기한다.
“이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길이 있었는데. 이상하군요.”
“그럼?”
“아무래도 멀리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말로는 정중히 사과하지만, 마음은 천박했다.
어디 뚫을 수 있으면 이번에도 뚫어봐라!
라는 심보였으니까.
이번만큼 사람이 도저히 갈 수 없게 길 중앙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아예 통째로 길을 짓뭉개버렸으니까.
휘이잉.
옆으로 돌아가기엔 저 아래로 떨어지는 낭떠러지다.
더구나 폭풍의 산 파르티잔에는 칼바람이 몰아치니까.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낙사할 거다.
‘이 정도면 허탈해하고 화를 낼만 하겠지.’
벤텀은 네카르의 눈치를 살피며 남몰래 웃는다.
네카르가 화를 내면, ‘아니, 이건 자연재해인데 저희보고 어쩌란 말입니까?’라고 따지며 불만을 표시하면 되겠지.
여차하면 말싸움을 크게 벌여서 잠시 산속에 버려두고 가면 되고.
그렇게 벤텀이 앞으로 어떻게 이 싸가지 없는 귀족을 골려줄지 망상을 하고 있을 때,
“이 바위만 치우면 되는 건가?”
네카르는 담담하게 말했다.
“비켜라.”
그러면서 가방에서 자신의 스태프를 꺼낸다.
힘으로 정면돌파하겠다는 듯.
벤텀은 나름 뛰어난 도둑인 만큼 피식, 비웃음부터 나왔다.
‘멍청하군. 아무리 스태프가 뛰어나도, 저 큰 바위를 어떻게 부순다고.’
역시 귀족은 귀족인가.
아무리 깨어있어도 오만함을 버리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쯤,
쿵, 쾅, 쿵, 쾅.
고고고.
붉은 눈의 스태프가 마나를 공명한다.
악마의 눈처럼 생긴 3개의 마력석이 흉흉하게 빛나고 주위 바람 소리가 멎는다.
귀를 때리는 거센 폭풍이 멈춘 것도 아닌데, 고요한 주위.
설마,
벤텀이 믿기지 않아 침묵할 때,
번쩍,
파치지지직-!!
네카르의 오른손에 강렬한 스파크가 번뜩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몰아내는 빛.
나무도, 칼바람도, 새 울음도 멎는다.
무시무시한 파공음만이 귓가를 강타한다.
콰릉! 와르르······.
오른손이 그대로 바위를 관통한다.
눈 찌르는 빛이 사라졌을 땐 이미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이러한 위력은 벤텀조차 상상 못 한 위력이었다.
“벤텀.”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 부서진 바위 사이로 걸어가는 네카르.
“······예?”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듣도록.”
벤텀과 수하들은 멍한 표정으로 네카르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유능한 길잡이라고 해서 데려온 거야. 그런데 슬슬 실망할 것 같은데.”
그 순간 네카르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그 눈을 마주 보는 순간, 벤텀은 왠지 모르게 몸이 굳는 걸 느꼈다.
“아, 아닙니다! 지금부터는 지름길이나 다름없습니다! 자, 가시죠.”
바짝 쫄아서 따라간다.
아무래도 이 손님은 잘못 건드리면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