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방랑 (3)
덜컹, 덜컹.
다크 로드 자칼의 2번째 제자 베어켈.
타고난 무골이라 단독 전투 요원으로 활동하는 자다.
자칼의 비밀 병기라고도 불리는 자.
그자는 조용히 나무 창살 속에서 잠자고 있다.
‘끌끌, 내 꼴이 말이 아니군. 기껏해야 겨우 2류 나부랭이 용병단의 나무 감옥에 실려 가다니······.’
베어켈은 사로잡힌 것보다 나무 감옥 따위에 갇힌 게 더 분했다.
평상시라면 이까짓 나무 감옥 따위 악력만으로 짓이겨버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양손에 마력 봉인 장치가 끼워져 있으니까.
만약 지금 마력을 끌어올린다면 통제를 못 해 주화입마에 빠지고 마나 회로가 폐하리라.
‘하긴. 아무리 나라도 귀족 영주성을 힘으로 돌파하는 건 무리긴 했지.’
그는 자신이 왜 잡혔는지 복기한다.
아펠 영지에 있는 폭풍의 산 파르티잔에는 거대한 새가 한 마리 있다.
괴조(怪鳥) 카디악.
일대 여행자의 씨를 말린 상급 몬스터.
몇 년 전, 베어켈이 흑마법으로 세뇌한 새다.
그동안 그 새를 통해 시체 수를 크게 늘렸었다.
문제는 아펠 영주 또한 괴조 카디악에게 피해가 막심하자, 프레야 교단으로부터 성스러운 돌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들짐승들이 본능적으로 달아나는 신성한 돌.
시체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
동부 사막 전체를 멸망시킬 ‘흑마법사의 날’을 10년이나 급히 앞당기려는 지금 시점에서.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성기사단이 점검하고 있었지.’
결국 베어켈은 어쩔 수 없이 영주성에 잠입해서 신성한 돌을 훔치려다가, 재수 없게 프레야 교단 성기사단과 마주친 거다.
가까스로 탈출하긴 했지만, 신성력은 흑마법사의 천적.
성스러운 돌을 부수고 마력이 탈진 됐을 때, 은빛 늑대 용병단에 발각된 거다.
‘······뭐, 이제 곧 해방되니 상관없지만.’
반짝.
밤에 반짝이는 노란 빛을 보고 알았다.
구조대가 왔음을.
다크 로드 자칼이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다크 드루이드를 준비시켰다는 신호였다.
퍽.
그때 제나라는 용병이 마차 안에 들어와 뒤통수를 때린다.
“야, 흑마법사. 뭐가 좋다고 실실 쪼개고 있냐? 기분 나쁘게. 조용히 수프나 처마셔.”
“······.”
제나라고 했던가?
저 건방진 년이 나댈 수 있는 것도 머지않았다.
다크 드루이드가 이 구속구만 풀어준다면 당장 막강한 마력이 해방되니까.
해방만 된다면 형편없는 용병 스무 명 따위 혼자서 전부 죽일 수 있다.
그다음, 저 제나라는 계집애는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고문을 당하게 되리라.
‘뭐, 2써클 따위 마법사가 한 명 추가된 것 같지만, 그래 봤자 피라미지.’
베어켈은 네카르를 보며 클클 웃는다.
오히려 좋다.
그의 주군 다크 로드 자칼이 진정 각성하기 위해선, 시체가 끝없이 필요하니까.
은빛 늑대 용병단 시체도 쓸만하지만, 몸에 마나를 쌓은 마법사 시체라면 더욱 달콤하리라.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자유의 몸이 된다.
해방이 머지않았는데 굳이 벌써 소란을 피울 필요 없다.
벌써 광란의 시간이 기대되 몸이 달아올랐다.
***
다그닥, 다그닥.
짹짹.
새 지저귀는 소리마저 화창한 오후.
아펠 영지에 가까워졌다.
아직 흑마법사들은 습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적합한 기회를 노리는 모양.
‘머지않아 나타나겠군.’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위를 돌아본다.
앞으로 아펠 영지까지 하룻길.
다크 로드 자칼의 2번째 제자를 구하기 위해선 지금 나설 수밖에 없으니까.
“야, 너 아펠 영지에 도착하면 뭘 할 거냐?”
“뭐부터 하긴! 오랜만에 묵 돈 만졌으면 맥주로 목부터 씻어야지!”
“······.”
반면 은빛 늑대 용병단은 목적지에 도달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다소 긴장이 풀렸다.
이에 대장인 맥스는 고함쳤다.
“모두 정신 차려라! 이제 마지막 야영을 준비한다. 오늘 반나절은 대기하고 새벽에 아펠 영지로 들어갈 거야!”
맥스의 결정에 용병들은 ‘우우.’ 싫은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것이 틀린 판단은 아니란 걸 알기에 반항하는 기색은 없었다.
여행객이 가장 지쳤을 때가 바로 목적지 도착 직전.
도적단이 가장 많이 노리는 타이밍이니까.
‘슬슬 오는군.’
-lv10 리자드맨 (흑마법 세뇌).
-lv11 리자드맨 (흑마법 세뇌).
-lv9 리자드맨 (흑마법 세뇌).
.
.
시스템 창이 저벅저벅 몰려온다.
리자드맨.
동북부 숲에 사는 도마뱀형 수인 몬스터.
지난날, 내 야영지를 덮쳤던 놈들이다.
‘이런. 이곳은 말이 달릴 곳이 없는데.’
일전엔 용병들이 초원에서 말을 타고 화살을 사용했기에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사거리의 이점으로 별 피해 없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좁은 숲길.
동부 사막보다는 북부에 가까운 환경이다.
정면으로 싸워야 하는 만큼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워터볼 lv2.】
파아앙!
따라서 당장 물의 구체로 선공한다.
최소한 기습 당하진 않기 위해서.
갑자기 수풀에 마법을 쏘니 화들짝 놀란 용병들.
그런 용병들에게 고한다.
“적이다.”
-크루루.
“······!”
내 경계태세에 들켰다는 걸 직감했는지 모습을 드러내는 리자드맨.
턱.
“?”
당장 전투에 나서려고 할 때, 누군가 날 붙잡았다.
“뒤로 물러나. 마법사는 앞에 있으면 위험하다니까?”
뒤돌아보니 제나였다.
그녀는 나름 챙겨주는 건지, 날 뒤로 보내며 굳은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두꺼운 바스타드 소드를 뽑는다.
직후 리자드맨에게 달려든다.
“가자! 리자드맨 애새끼들 따위 몇 번이나 죽여본 놈들이다!”
“우와아!”
용병들은 전투라는 생각에 잔뜩 긴장했으면서도 물러섬 없이 덤벼들었다.
어차피 도망갈 곳이 없으며, 용맹하게 싸워야 적들이 달아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지금 나설 필요는 없겠군.’
나는 워터볼을 내려놓고 나무 감옥만 호위했다.
사람을 돕는 것도 상황을 봐서 해야 한다.
은빛 늑대 용병단엔 아직 마법사가 없으니까.
시끄러운 마법이 날아든다면 이쪽에 시선을 뺏겨서 오히려 방해될 수 있다.
창! 챙! 푸확!
리자드맨의 녹색 피가 사방으로 튄다.
은빛 늑대 용병단은 생각보다 잘 싸웠다.
전체적으로 리자드맨과 레벨이 비슷했기에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리자드맨은 각개전투를 하지만,
한 마을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앞에서 방패로 막아주고, 뒤에서 화살을 쏘는 등 손발이 잘 맞은 덕이다.
-lv29 은빛 늑대 용병단장 맥스.
‘생각보다 실력이 꽤 있군.’
푸확!
특히 중앙에서 모조리 썰어버리는 맥스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는 동료들이 위험할 법한 상황이면 어김없이 달려들어 전장을 휩쓸었다.
아무래도 마나를 터득해서 신체 능력을 강화할 줄 아는 모양이다.
“제나! 몸조심해라! 뒤에 있는 동생부터 챙겨!”
맥스는 저돌적으로 싸우는 제나에게 걱정 어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제나는 콧방귀만 꼈다.
“흥, 너나 잘하세요. 내가 무슨 애송이인 줄 아나.”
“······.”
그러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돌격하는 제나.
적극적으로 싸워야 의뢰금 분배를 더 받을 수 있다지만······.
악에 받쳐 몸 사리지 않는 모습이다.
제나의 동생 제논이 내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와서 말했다.
“제드 형이 마법사가 되겠다고 혼자 다니다가 몬스터에게 포위당해서 죽었거든요.”
“?”
“어제 누나가 형한테 쓴소리한 것도 그것 때문일 거예요. 제드 형이 떠오르니까.”
안타깝다만 별로 관심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동료분들도 많고. 우리 누나는 강하거든요.”
다소 두렵지만 굳은 믿음이 깃들어있는 태도.
확실히.
맥스의 활약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그렇지, 제나 또한 전투 센스 있는 용병이었다.
한 사람 몫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그러나 나는 제논의 말을 자른다.
지금 상황은 제나가 활약을 얼마나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미 괜찮지 않다.”
-lv21 다크 드루이드 프로돈.
-lv24 다크 드루이드 차킨.
-lv26 다크 드루이드 사라딘.
그러나 서서히 이 전장의 흑막들이 다가오고 있다.
한 명 한 명이 장녀 네하린보다 강한 강자.
그것도 숲에서는 극한의 힘을 발휘하는 다크 드루이드들이 말이다.
고고고고고-!!
백주대낮에 갑자기 밤이 드리운다.
순식간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한 어둠이 숲 전체를 지배한다.
그러자 당황하는 용병들.
환술에 당해서 사기가 떨어진다. 아무 말이나 지껄인다.
“뭐, 뭐야. 갑자기 이거!”
“저주다! 밤의 저주야. 원한이 쌓인 귀신들이 우릴 괴롭히는 게 분명해!”
“으악! 악마다. 저쪽에 악마가 있다!”
“······.”
그걸 듣고 또 공황상태에 빠지는 용병들.
환각에 빠졌는지 헛것을 보고 주저앉기도 한다.
제논이 말을 떤다.
“이, 이건······?”
“악령의 메아리. 다크 드루이드가 쓰는 환각 마법이다.”
“!”
이건 용병들 잘못이 아니다.
악령의 메아리.
다크 드루이드의 전용 흑마법 중 하나로, 숲 전체에 고통스러운 환각을 부여하는 마법이다.
쿠구구궁.
-인간. 숲의 침입자들!
-크오오오! 모조리 으깨주마!
그 상황에서 거대한 나무들이 악령 씌인 것처럼 살아 움직인다.
다크 엔트.
일반 엔트가 숲의 수호 정령이라면, 이들은 파리지옥처럼 숲의 여행자를 사냥해 잡아먹는 악령들이다.
콰직.
“커헉······?”
“꺄아악! 살려줘! 으악!”
다크 엔트는 거대한 바위를 집어 들더니, 용병들에게 내리친다.
패닉에 빠진 용병들. 아무 저항도 못 한 채 무너진다.
쿠광!
“!”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거대 몬스터.
한 용병이 비명을 지르듯 외친다.
“트, 트롤이다! 숲의 제왕 트롤이 나타났다!”
-lv31 트롤 (흑마법 세뇌 중).
트롤.
숲에 먹이사슬이 있다면 당연히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놈.
은빛 늑대 용병단의 대장인 맥스도 lv29였으나, 상성이 너무 나쁘다. 트롤은 압도적인 덩치와 물리 재생력을 가진 필드 보스.
검으로 상대하려면 레벨이 최소 10개는 더 높아야 하니. 그 격차가 아득했다.
오직 파괴와 살육의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녹색 괴물이 우릴 굽어봤다.
다크 드루이드들이 무슨 수를 쓴 건지 트롤까지 찾아내 데려온 모양이다.
‘기어이, 용병대를 다 죽이고 가려는 건가.’
나는 나무 감옥 속 베어켈을 노려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베어켈 또한 내 시선을 느꼈는지 클클 웃는다.
“지금이라도 도망쳐라. 마탑 애송이.”
“?”
“너도 눈치챘을 텐데? 용병단 나부랭이들로는 저 녀석들을 막을 수 없단 걸. 네 녀석도 비명횡사하고 싶지 않다면 당장 도망치는 게 좋을 터.”
꼴에 나무 창살에 갇혀 있으면서 날 걱정해준다.
뭐, 달아나봤자 붙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모양이지만.
코웃음이 나온다.
“누가 누굴 걱정해주는 건지. 당장 내 손에 죽을 게 넌데.”
“······.”
나야 포상금 따위 관심 없으니, 여차하면 베어켈부터 죽이면 그만이다.
우우웅.
슬슬 매직 오브를 공중에 띄운다.
이 전장에서 변수는 오직 나 하나뿐.
내가 나설 시간이다.
***
“······이런.”
용병대장 맥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떨리는 손을 다 잡는다.
다들 트롤이 내뿜는 피어를 감당하지 못하고 벌벌 떠는 도중에도 홀로 움직였다.
주위 용병 동료들과 제나를 슬쩍 바라본 후, 억지로 발을 움직인다.
맥스의 표정에서 읽힌다. 속으로 ‘내가 할 수밖에 없어!’라고 되뇌는 모습이.
은빛 늑대 용병단은 맥스를 제외하면 다들 마나도 깨닫지 못한 최하급 용병이니까.
맥스가 나서서 저 트롤을 죽이지 못한다면, 동료들이 다 죽고 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모두 물러서! 내가 트롤을 죽일 때까지 버티기만 해라!”
“!”
맥스는 그렇게 말하고 극도로 긴장한 채 트롤에게 다가간다.
제나를 비롯한 용병들이 두 눈 부릅뜬 채 소리친다.
“하지만 아무리 맥스 단장이라도 트롤은!”
“다른 방법이 없잖나!”
“······!”
비장하게 외치는 맥스.
지금 불리한 전황을 뒤엎기 위해선 맥스가 트롤을 최대한 빨리 처치하고, 다크 엔트를 막는데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
-크르릉.
트롤은 숲의 제왕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친절히 기다려준다.
마치 나약한 것들이 재밌다는 듯 말이다.
“히얍!”
파박.
맥스는 마나로 장딴지 근육을 끌어올리더니, 땅을 부술 듯 박차고 달려든다.
그리고 팔뚝 핏줄을 터질 듯 부풀리더니, 전력으로 트롤을 벤다.
서걱.
푸확!
목에 큰 상처가 난 트롤.
녹색 피가 폭포수처럼 콸콸 흐른다.
만약 인간이었다면 필사의 치명상이었을 거다.
맥스와 용병대 또한 순간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크릉.
“!”
그러나 트롤은 흥, 콧방귀 낀다.
이 정도 상처 따위 순식간에 재생시킨다.
그와 동시에 근접한 맥스를 한 손으로 후려친다.
“흐읍!”
콱.
더욱 근접해서 피한 맥스.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검을 트롤 가슴에 찌른다.
스르륵.
“!”
그러나 검이 꽂힌 상태로 그대로 상처를 재생해버리는 트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운과 열정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적이다.
쿠당탕.
“커헉······!”
트롤 팔에 나가떨어져 흙바닥을 구른다. 낙법을 잘해서 즉사하진 않았지만 뼈가 부러졌는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비슷한 타이밍에 다크 엔트에게 밀리던 용병단도 무너졌다.
“끄윽, 끄아아아악-!!!”
“한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엄호하는 제나.
그러나 그녀가 나서봐야 전황은 전혀 달라질 리 없다.
맥스는 안간힘을 쓰며 억지로 일어난다.
‘······제, 기랄. 이런 데서 느닷없이 트롤이라니······. 역시 이번 임무는 우리한테 무리였나······?’
몸이 말을 안 듣는다.
현기증을 억지로 참고, 처절하게 일어나도 상체를 반쯤 드는 게 고작.
쿵, 쿵.
그러는 사이, 트롤이 다가온다.
감당할 수 없는 적.
아무래도 이 숲은 자신들의 무덤이 될 운명인 모양이다.
‘사실 알고 있었다······. 우리 수준에서 흑마법사 임무는 위험하다는 걸. 언젠가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걸······.’
맥스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제나를 비롯한 마을 이웃끼리 시작한 은빛 늑대 용병단.
힘든 일도 함께 겪고, 기쁜 일엔 함께 웃으며 지난 10여 년간 성장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의 오빠인 제드에게 우연찮게 단독 임무가 왔었다. 의뢰금이 굉장히 큰 귀족 의뢰.
마법사가 꿈이었던 제드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기에 흔쾌히 보내줬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도 모르고.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했다.
서늘하게 식은 제드를 끌어안고 울부짖던 제나의 모습이.
밝게 웃던 눈가에는 피눈물이 고였고 뒤틀린 입가는 다시금 미소짓지 못할 것처럼 처참하게 일그러져있었다.
그러한 감정을 느낀 건 맥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체의 흔적을 뒤쫓아보니 몬스터 무리에게 당한 흔적이 발견됐다.
더 조사하니 흑마법사가 기르던 몬스터 무리였다는 걸 알게 됐다.
의뢰금이 높았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
그때부터였다. 제나를 비롯한 은빛 늑대 용병단이 흑마법사 관련 임무를 광적으로 맡게 된 게.
맥스 또한 그 분노를 알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런 최후를 기대하고 계속 맡아왔는지도 모른다.
-크어어!
트롤이 거대한 팔을 들어 맥스를 향해 내리친다.
맥스는 피할 힘도 없었다.
유언 대신 희미한 미소를 남긴다.
‘제드······. 우리가 네 복수를 완성하지 못한 건 용서해라······.’
죽는 날까지 네 복수만을 위해 살았으니.
죄책감은 없다.
그렇게 최후를 직감하고, 바닥에서 눈을 감으려고 할 때.
우우웅, 촤아악.
매직 오브가 머리 위로 떠오른다. 마나가 공명하더니 물의 구체를 만든다.
‘마탑 마법사인가······.’
맥스는 힘없이 그걸 바라본다.
워터볼.
물의 초급 살상 마법이다.
숲의 지배자 트롤을 막기엔 역부족인 공격.
콰아아앙!
“!”
그런데 물의 구체는 무시무시한 굉음을 토해냈다.
트롤이 크게 날아가 주저앉는다.
맥스는 놀라서 두 눈을 부릅뜬다.
콰앙! 콰앙! 콰아앙!
그런데 그런 워터볼은 한 발이 아니었다.
심지어 매직 오브는 대형 워터볼을 연거푸 발사한다. 360° 회전하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연사한다.
쿠과과광.
-크워어어!!
-크오오! 이, 인간놈들이 감히······!
그러자 트롤 뿐만 아니라, 용병단을 바위로 내리찍던 다크 엔트도, 아직 미처 다 소탕 못했던 리자드맨도 모조리 산산조각낸다.
마차를 중심으로 은빛 늑대 용병단 전체를 수호한다.
도대체 매직 오브가 얼마나 명품이기에?
아니, 아무리 명품이라도 분명 시전자의 마나를 따를 텐데?
맥스는 믿을 수 없어 매직 오브가 있는 곳을 힘겹게 바라본다.
“마법사는 앞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말했나.”
“!”
그곳에는 마탑 마법사가 서 있었다.
금빛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네카르라는 마법사.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눈동자로 이 숲 전체를 바라보는 자였다.
“물러나라. 앞에 있으면 위험한 건 너희들이다.”
-꾸엑? 크룽······!
왜인지 트롤이 네카르와 눈을 마주치더니 공포에 질린다.
갑자기 뒤돌더니 전속력으로 줄행랑을 치는 트롤.
그러나 네카르는 그런 트롤을 가게 내버려 두었다.
“아쿠아 스톰.”
그의 명령어와 동시에, 일대에서 요동치는 수증기.
그러고 보니 어느새, 일대가 뿌연 물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들이 뒤엉키며 허공에 물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했고, 이내 마치 태풍처럼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다크 엔트와 일대 숲을 집어삼킨다.
쿠과과과광-!!!
일격에 휩쓸려 나가는 나무들.
한순간에 나무 파편이 돼서 산산조각이 난다.
다크 엔트와 나무들이 모조리 휩쓸려 나가 숲속에 원형 공토가 생긴다.
-꾸어억!
트롤 또한 녹색 핏덩이로 뒤바뀐다.
뛰어난 재생 능력도 폭풍 속에선 무력한 법이니.
용병단은 태풍의 눈 속에 있어서 안전했다.
믿기지 않는 화력에 은빛 늑대 용병단 전체가 일제히 네카르를 돌아본다.
나무 감옥에 갇혀 있는 다크 로드 비밀 병기 베어켈 또한 두 눈을 부릅뜬다.
물론 맥스는 피를 토하면서도 뒤를 돌아본다.
그 뒤로는 서있었다.
그의 동료인 제나가 2서클이라며 무시했던.
멋모르고 사지를 나다니는 마법사가.
그를 사지에서 꺼내주었다.
맥스와 용병단을 뒤덮었던 죽음의 그림자가 거두어지고 있었다.
“맥스.”
그러거나 말거나, 네카르는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차 감옥을 열어둬라. 처넣어야 하는 흑마법사가 더 있는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