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사해의 시험 (3)
나는 네하드람을 떠나보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데없이 네하드람이 튀어나오다니.
돌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작전은 성공했다.
네하드람에게 말도 챙겨주고 호감을 산 거다.
‘누가 차기 가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루두루 친한 게 나으니까.’
나야 차기 가주직에 별 욕심 없다.
앞으로 동부 사막과 전 대륙을 떠돌며 기연을 모아 강해질 거니까.
하지만 차기 가주와 친해질 필요는 있다.
그래도 물의 명가 크라우드라면 동부 사막 패권 가문.
사실상 동부 전체를 다스리는 권력자와 친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
네하린과 네하드람 중 누가 차기 가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친해지면 그만이니까.
“갔군.”
더 이상 네하드람이 보이지 않자,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마적단 창고는 오롯이 내 것이니까.
‘흑마법사 데이아. 그 녀석이 크라우드 차기 가주가 되는 걸 막는 게 최우선이긴 하지만······.’
고대의 석판.
무려 마스터 등급 특성이 있어야만 해금할 수 있는 파편 중 하나.
하나하나가 마스터 등급인 보물들.
그 파편을 모두 모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별들의 전쟁2> 최고 고인물로서 탐구욕이 샘솟는다.
펄럭.
낙타 가죽 천으로 만든 움집들을 뒤진다.
이윽고 목재로 제법 단단하게 만든 특별한 집이 3채 보인다.
다른 집들과 달리 입구가 나무문으로 되어 있었고, 단단한 자물쇠까지 매여 있었다.
“찾았다.”
누가 봐도 보물 창고.
나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워터볼 lv2.】
콰앙.
당장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마적단의 재산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온갖 종류의 모피는 물론, 상인들에게 약탈한 비단과 귀금속, 항아리 등도 보인다.
하지만 그따위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그 속에 버려져 있는 진짜 보물을 찾아 크게 웃었다.
[이름 : 고대의 석판 #3. (MASTER.)]
[설명 : 고대 시대 세워진 비석 일부분이다. 모든 석판 조각을 모으면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효과 : 현재 봉인된 상태입니다.]
고대의 석판 마지막 조각.
원작에서 최고 랭커일 때도 해석하지 못했던 마스터 등급 아이템이다.
특성 드래곤 하트와 연결된 히든 피스.
-경고! 고대의 석판 조각을 합치시겠습니까?
“당연하다.”
-강력 경고! 막대한 양의 힘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만약 해제할 경우, 플레이어가 막대한 페널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다.”
계속 울리는 경고창.
그러나 즉답했다.
여기까지 와서 봉인을 해제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찰칵, 번쩍.
“······!”
망설임 없이 마지막 조각을 합친다.
그러자 거대한 석판에서 막대한 빛과 열이 뿜어진다.
-고대의 석판을 모두 복원하셨습니다! (3/3)
-고대의 석판에 잠들어있던 숨겨진 힘이 깨어납니다!
석판에서 특성 드래곤 하트에 버금가는 거대한 마나가 요동친다.
지이이잉, 쿠고고고!
사막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막대한 진동.
마적단 소굴을 통째로 소멸시킬 법한 마나 파동이 내 몸을 감싼다.
-특성 드래곤 하트를 보유했기에 용의 언어를 해독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덕분에 읽을 수 있는 문자들.
그런데 석판이 모두 모이자 귓가에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의 혈족이자, 위대한 종족이여. 들으라.】
근엄하면서도 은은한 목소리.
늙은 용이 녹음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용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시대가 도래했도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는 영겁의 평화를 끝내고, 세상을 아무런 목적 없는 우연과 맹목으로 지배하고자 한다.】
여기까지는 일전에 나왔던 이야기.
【나를 비롯한 선조들은 이를 막기 위해 대륙 연합군을 창설해 제2차 천마대전에 참전했다.】
“······뭐?”
천마대전.
천계와 마계가 총력전을 벌여 전 차원을 전쟁터로 만든 사건이다.
창세기 이후, 1만 년간 총 2번만 있었다는 대전쟁.
설마 천마대전까지 연루되어 있었다니.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대륙 연합군은 전쟁 직후 와해했고, 용마저 사라진 시대가 온다.】
【그리하여 예언한다. 대륙 각 지역에 ‘7개의 거악(巨惡)’이 강림할 것이라고. 세계의 종말이 오리라고.】
“······.”
세계의 종말.
신화나 전설 따위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넘길 수 없다.
<별들의 전쟁2> 진 엔딩.
10여 년 후, 현실로 다가올 미래 또한 그러했으니.
【그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은 용족이여. 홀로 맞서야 하는 그대의 어깨에 짊어진 운명이 가여울 지어니.】
【우리 선조들은 마지막 숨을 삼키고, 그대를 위해 용족의 유산을 남긴다.】
석판에 남겨진 목소리는 이걸로 끝이었다.
······용족의 유산?
계속해서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없던 정보가 나온다.
그것이 무엇일까 추측하고 있을 때,
번쩍, 샤아아아!
고대의 석판에서 막대한 빛이 뿜어졌다.
도저히 눈을 뜰 수 없는 빛.
마스터 등급 특성 드래곤 하트에 버금가는 초대형 마나가 날 덮친다.
“--?!”
특성 허약한 몸 때문일까?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느낀다.
특히 눈은 너무나 강렬한 빛에 눈꺼풀을 감고 있는데도 타들어 가는 것 같다.
비명을 지르고, 온몸을 잡아 뜯어도 줄어들지 않는 고통.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고통이 내 몸을 잠식한다.
-신규 특성을 획득했습니다.
기절하고 일어나니 시스템 음성이 들린다.
눈떠보니 석판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었다.
흙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보다 신규 특성을 얻었다고?’
혹시 용의 유산이란 게 신규 특성일까?
-특성 창을 확인하시겠습니까?
“확인.”
<현재 보유 특성.>
[1) 허약한 몸. (BAD). ]
[2) 엘리멘탈 마스터 (SUPER RARE.)]
[3) 드래곤 하트 (MASTER.)-용의 유산 활성화 : ㄱ. 드래곤 아이(MASTER.)]
특성 드래곤 하트에 변화가 생겼다.
용의 유산이 활성화됐다는 창과 함께 또 하나의 특성이 추가됐다.
드래곤 아이.
용의 눈을 뜻하는 특성.
그것도 드래곤 하트와 동격인 마스터 등급을 달고서.
‘······용의 유산이 활성화됐다고?’
머릿속이 순간 암전되는 기분이 든다.
특성에 부가 특성이 활성화되는 건 보통 한 단계 진화했다는 뜻.
무려 마스터 등급 특성이 한 단계 진화했다니.
혹시 눈부셨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까?
떨리는 심정으로 활성화 창을 확인한다.
[특성 : 드래곤 하트 (MASTER).]
[설명 : 용의 심장이자, 생명의 원천. 수천 년간 살아갈 용족의 심장답게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가지고 있다.]
[활성화된 특성 : ㄱ. 드래곤 아이 (NEW).]
-활성화 특성을 확인하시겠습니까?
“확인.”
[특성 : 드래곤 아이 (NEW, MASTER.).]
[설명 : 용의 눈. 만물의 영장이자 대륙의 수호자로 여겨지는 드래곤의 어원은 드라코로, ‘뱀 종족, 쳐다보는 것, 순간 번쩍이는 것.’을 뜻했다. 이는 단순한 눈빛이 아닌, 용언(龍言) 마법 중 하나. 그 권능이 담긴 특성이다.]
[특수 효과 : 활성화 시 스킬 ‘드래곤 피어’ 발동 가능.]
“미친.”
절로 욕이 나왔다.
믿기지 않아 설명 창을 다시 읽는다.
드래곤 피어.
주위 적들에게 공포감을 전하는 피어(fear) 계열 최고 등급 스킬이다.
그 스킬의 진정한 위용은 내가 최고 랭커 때 악룡 토벌을 나서면서, 직접 맞닥뜨려봤기 때문에 알고 있다.
‘전투 시작 전에, 기사단의 말들을 미치게 하고, 미리 저장해둔 마법 영창을 전부 백지화하는 거였지.’
악룡을 토벌하기 위해 구성된 결사대.
제국 최고 기사단과 궁정 마법사들이 수백 명이 출격한 날이었다.
그때 악룡의 거대한 그림자와 함께 내리꽂힌 살기.
그와 동시에 말들이 거품 물고, 제국 최고 마법사들이 마나가 역류되 쓰러지며, 사제들이 신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연출됐다.
이를 유일하게 버텨낸 건 오직 내 플레이어 캐릭터뿐.
반대로 말하면 그 이하 생명체들에겐 감히 대항할 수 없는 공포의 순간이었다.
‘기사단의 최강 공격은 첫 돌격인데 그걸 완벽 무력화해버리는 스킬이니까. ······시작부터 전체의 사기를 90% 이상 감소시키는 미친 스킬이었다.’
그 스킬을 지금 내가 얻었다니.
그것도 선공 당하면 안 되는 마법사가 얻었다니.
이것이 향후 얼마나 미친 메리트인지 깨달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스템 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용의 유산을 모두 모으면 특별한 힘을 깨울 수 있습니다.
-다음 용의 유산은 ‘ㄴ. 드래곤 윙.’으로, 육중한 드래곤이 비행하기 위한 용언 마법 ‘중력 마법’이 깃들어있습니다.
“!!”
중력 마법······?
그 말에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버린다.
‘마신(魔神) 문두스의 비전 마법이다······.’
마신 문두스.
정체된 인간 마법 체계를 수십 년 이상 발전시켰다는 대마법사.
그자를 상징하는 마법이 중력 마법이었으니까.
다만 용의 유산에 관련된 시스템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드래곤 아이에 숨겨진 메시지를 읽으시겠습니까?
“······예.”
절로 공손해지는 목소리.
침이 꿀꺽 넘어갈 때, 석판에 새겨진 텔레파시와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용의 유산은 ‘북부’ 하르모르 산에 있다.】
“!”
북부.
동부 사막과 연결된 지역.
혹한의 지역답게 키 높은 숲과 눈으로 뒤덮여 있어서 미개척지가 많은 곳이다.
그곳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하르모르 산이라면, 북부 끝에 있는 산이군.’
대충 그곳에 어떤 대악마가 잠들어있는지 안다.
눈매가 짜게 식는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료하다.
‘다른 용의 유산들을 전부 모으고 7개의 거악(巨惡)을 물리쳐야 겠군.’
고대의 석판은 말했다.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그 악의 씨앗이 뿌린 7개의 거악이 대종말을 일으킬 거라고.
7개의 거악.
정확히 누구라고 지칭하진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다.
아르카나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7명의 대악마. 이들은 각 지역을 멸망시키는 핵심 에피소드로 등장했으니까.
나는 다크 로드 자칼이 있을 동부 사막 끝을 바라본다.
아마 7개의 거악 중 하나가 그 녀석이겠지.
먼저 그 녀석부터 막아야 했다.
“그러려면 사해의 시험부터 완벽히 처리해야겠지.”
동부 사막을 멸망시키기 위해 강림한 다크 로드 자칼.
그는 지금 물의 명가 크라우드를 멸망시키기 위해 사해의 시험에 데이아를 잠입시켰으니까.
이는 험난한 산 중 가장 약한 산에 불과하다.
반드시, 그리고 완벽히 해결해야 하는 적이다.
“가자.”
히히힝!
마적단 숙소에서 살아남은 말 중 한 마리를 타고 사해를 달린다.
나는 원작에서 흑마법도 마스터하며, 그들의 습성을 아니까.
흑마법사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알고 있다.
‘사막의 거대 몬스터를 이용할 거다.’
샌드웜과 샌드 드레이크.
하나 같이 메마르고 두꺼운 갑피를 가져서 공격을 상쇄하는 몬스터들.
물을 응축해서 질량으로 승부하는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겐 천적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나는 상관없다.
이를 파훼할 방법이 있다.
악마 같은 힘으로 벌레처럼 뭉개버릴 수 있으니까.
사해의 시험을 끝낼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