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붉은 눈의 스태프 (2)
나는 스태프를 만들러 불법 암시장을 찾기 전에, 우선 둘째 네하드람부터 만났다.
아직 내 호주머니엔 땡전 한 푼 없으니까.
“네하드람 형님.”
“무슨 일이지?”
“일전 약속하신 자금 지원을 받으려고 합니다.”
과거 흑마법사들이 기습했을 때 네하드람이 오줌 지린 걸 비밀로 하고 공로를 넘긴 대가로 1번 자금 지원을 받기로 했다.
동부 제일 부자라는 황금 상회의 힘으로 양껏 자원을 지원해주기로.
“······오냐. 네가 차기 가주직을 포기한다고 약속했기에 지급해주는 것이다.”
네하드람은 새하얀 지폐를 몇 장 내밀었다.
백지수표.
말 그대로 얼마를 적어도 상관없는 지폐다.
‘백지수표를 준 걸 후회하게 만들어줘야겠군.’
이번 스태프에 태울 돈을 안다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이다.
품질은 확실해도 돈은 미친 듯이 뜯어가는 불법 상회 블랙 오아시스에 갈 거니까.
심지어 붉은색 마력석을 3개나 때려 박는 미친 짓을 할 거다.
어지간한 상회 기둥을 뽑아버릴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스태프에는 마력석 1개만 박지만······. 기왕 만드는 거 성능이 확실해야 하니까.’
마력석은 마나가 깃들어있는 돌.
스태프에 마력석 개수가 너무 많으면, 마법사보다 마나가 많아진다.
그 경우, 마법사가 마법을 통제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오히려 스태프에게 끌려다니게 되는 거다.
그로 인해 일반적으로는 마력석을 1개.
가주 엡실론처럼 마나 통제가 뛰어난 마법사만이 2개를 사용한다.
남는 마력석은 스태프가 아니라 ‘마력 큐브’ 같은 다른 마법 아티펙트에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엡실론 또한 그러려니 생각해서 3개를 집어가도 가만히 있었던 것 같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내가 마나가 부족해서 스태프에 끌려다닐 일은 없으니까.’
어떤 제한도, 페널티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화력에만 몰아줄 수 있다.
······그게 붉은 마력석 3개를 때려박는 미친 짓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하여튼 총알은 준비됐으니 암시장 위치를 찾는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블랙 오아시스는 영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위치를 계속 바꾸니까.’
블랙 오아시스.
돈에 미친 불법 상회다.
따라서 블랙 오아시스와 거래하려면 장소를 알려줄 딜러부터 찾아야 한다.
물론 나는 딜러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암호가 10년 후랑 같은지가 문제지.’
백지수표 일부는 교통비로 환전하고, 검은 후드로 몸을 숨긴 채, 크라우드 영지 선술집으로 향한다.
동부 사막에서 가장 큰 선술집 중 하나.
“와하핫! 말도 안 돼! 망나니 네카르가 크라우드 천재 마법사가 됐다고? 얼마 전에 불 지른 그 놈이?”
“이야~! 이번엔 정말 많이 벌었어. 오늘은 내가 쏜다! 붉은 전갈 용병단, 다들 고생 많았다!”
“······.”
선술집은 언제나 왁자지껄했다.
평민들로선 농사짓고 남는 시간에 즐길 만한 것이 술밖에 없고, 상인이나 용병들 또한 마땅히 머무를 곳이 선술집뿐이니까.
이것이 암시장 딜러가 선술집을 중심으로 숨어든 이유다.
“네, 손님. 뭘 드릴까요?”
“그레인 위스키랑 레드 와이번 온더락으로 한 잔씩. 안주 없이.”
“네~! 그레인 위스키랑 레드 와이번. 안주 살 돈은 없으시답니다!”
“······.”
종업원과 만취한 사람들이 큰 소리 내서 비웃지만 나는 차분했다.
그레인 위스키와 레드 와이번.
그레인 위스키는 옥수수와 호밀로 만들어 평민들 취향의 값싼 술.
반면 레드 와이번은 적포도주로 담근 독한 고가 포도주라서 귀족들 취향의 술이다.
즉, 극과 극의 음료.
일반적인 손님이라면 절대 시키지 않을 음료다.
애초에 증류주와 발효주를 동시에 마시면 탈이 나는 법이니까.
“······손님. 남은 레드 와이번이 딱 한 병, 영주님께 진상할 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문이 들어가자 역시나 선술집 주인장이 직접 다가와 묻는다.
암시장을 찾는 손님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체크하는 질문.
나는 나무로 된 책상을 왼손으로 3번 두드리며 진중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군. 레드 와이번을 양조하는 장소와 날짜를 말해라. 내 입맛이 까다로워서 레드 와이번 외에 다른 술은 입에 댈 수가 없어서 말이지.”
“!”
나는 즉석으로 암호를 지어내며 말했다.
블랙 오아시스 암구호는 특별히 하나로 정해둔 게 아니다.
블랙 오아시스는 전 대륙 지하 경제를 장악한 초대형 상회 중 하나.
만약 암호가 하나라면 배신자가 위험할 수도 있고, 들킬 염려도 있으니까.
“······안으로 따라오시지요. 약도를 드리겠습니다.”
“오오? 메넬 아저씨. 오랜만에 부자 손님이라고 특별대우하는 거야. 뭐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안내하는 선술집 주인.
멋모르는 평민 손님들은 와하하, 비웃지만 말 그대로 코앞에서 또 다른 세상 모르는 하룻강아지들일 뿐이다.
그래, 차라리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게 즐거울지도 모른다.
“지도입니다. 표시된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주인장은 극도로 긴장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90°로 허리를 숙인다.
블랙 오아시스는 불법적인 거래를 일삼는 곳.
그 고객이 정상인일 리가 없으니까.
“고맙군. 이건 지도 값일세.”
나는 지나친 걱정을 하는 주인장에게 팁을 묵직하게 주며 안심시켰다.
혹여 내 정보를 팔지 못하게 돈으로 찍어누르는 거다.
내 돈 아니니까.
히히힝!
이후 지도를 따라 암시장을 찾는다. 가문에서 몰고 온 말을 타고 말이다.
***
‘헉······. 헉······. 제기랄. 직접 뛴 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 줄이야.’
멋지게 팁까지 주고 나왔거늘.
막상 목적지엔 힘들게 도착했다.
페널티 허약한 몸은 말 타는 것도 불편했다.
말을 오래 탈 지구력이 부족했으니까.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는 고통을 참으며 지도에 표기된 곳으로 간신히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크라우드 가문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숲속.
약도 없이는 못 찾을 텅 빈 산가(山家)였다.
빈 산가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방구석 양탄자 아래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숨겨져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보니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방이 나타난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의 욕망을 충족시켜드리는 암시장 블랙 오아시스입니다. 홀로 찾아오셨나요?”
그곳에는 검은 정장, 흑사병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는 상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가면을 쓰고 있지만 낭랑한 목소리로 접대하는 상인 아가씨.
제대로 찾아 왔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블랙 오아시스 안에서 크게 소란을 피우지 마세요. 가해자와 피해자 공평하게 즉결처분 됩니다~.”
가면 속 나긋나긋한 여자 목소리.
오만하기도 한 목소리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쿠구구궁.
-lv31. 청동 골렘. (현재 봉인 중.)
입구에 신장이 5m는 될 법한 압도적인 크기의 청동 골렘이 봉인되어 있으니까.
저 청동 골렘은 나 또한 아는 골렘이었다.
‘저 청동 골렘은 마법으로 공격하면, 오히려 마나를 흡수해서 부활하는 몬스터였지.’
물리력도 엄청나지만, 마법 방어도 뛰어난 병기.
온갖 범죄자가 모여드는 블랙 오아시스에서도 확실한 시큐리티다.
오죽하면 서로 원한이 있는 범죄자들이 협상할 때, 청동 골렘 앞에서 하겠는가?
‘공평한 것 같지만 결국 분쟁에 관여 안 한다는 쓰레기 같은 마인드군.’
나는 적당히 가면을 사서 안으로 들어간다. 3,000명이 거뜬히 들어갈 거대한 홀이 드러난다.
물론 사람은 많진 않았다.
아무래도 불법적인 거래처니까.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앉을 의자가 100여 개밖에 없었다.
빈 곳은 전부 상인들 차지였다.
“가만히 있어! 이제 주인님들을 만날 시간인데, 너희도 잘 입어야 좋은 데 팔릴 거 아냐?”
“······.”
안으로 들어가니 무대 아래에 상품들을 준비하는 흑사병 까마귀 상인들이 보인다.
각종 희귀한 보석과 재료, 골동품, 그리고 노예들을 장부에 숫자로 기록한다.
노예들은 남녀노소 다양했으며, 대부분 노역 노예였고, 예쁘장한 남녀나 이종족 등은 귀한 상품인지 옷으로 특별 포장했다.
물론 탈의실 따위 없었다.
‘뭐,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긴 하지.’
입맛이 쓰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르카나 대륙에 왔으면 아르카나 법을 따라야지.
이곳은 굶어 죽는 사람, 전쟁터에 휩쓸린 사람, 신분에 따라 차별받는 사람 등 불행한 사람이 수없이 많다.
내가 총알이 아무리 많아도 저 많은 노예를 살수도, 책임질 수도 없으니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10년 후면 ‘베아트리체’가 나타나서 모든 노예를 해방시킬 테니까. 이들로선 그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위대한 공녀 베아트리체.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 가장 팬덤이 큰 메인 히로인 중 한 명이 보편적 인류애로 전 대륙을 통합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힘을 길러서, 훗날 그녀의 활약을 지원하고 앞당기는 일뿐이다.
‘우선 스태프 막대로 삼을 나무 완드부터 구한다.’
착실하게 내 일에만 집중한다.
일반적으로 스태프는 크게 2가지로 구성된다.
마력석과 나무 완드.
마력석은 엡실론에게 이미 3개나 받은 만큼 충분하니, 나무 완드만 사서 조립하면 된다.
나는 계단을 타고 지하 3층으로 내려가서 스태프 상점 골목을 둘러봤다.
“어서 오십쇼! 엘프제 최고의 장비들로 모시겠습니다!”
“스태프 제작을 하러 오셨나요? 최고급 마력석과 떡갈나무 지팡이가 마련돼 있습니다!”
잘 입고 친절한 선남선녀의 엘프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타고 난 마법사나 연금술사 장인이라기보단 상인에 가까운 엘프들.
말 그대로 돈에 타락한 엘프들이다.
-떡갈나무 완드 (RARE) : 스태프 제작에 필요한 재료. 만약 개조한다면 최대 마나량을 조금 늘려 줄 것 같다. (가격 : 5,500페니.)
-물푸레나무 완드 (RARE) : 스태프 제작에 필요한 재료. 만약 개조한다면 캐스팅 속도를 조금 줄여줄 것 같다. (가격 : 6,000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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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열된 물건들은 하나하나가 눈 튀어나올 정도의 가격이다.
1페니가 은화로 된 동전 하나로, 한화로 약 5천원 정도 하는 수준.
평민 가정집 전 재산이 평균 6,000페니, 약 3,000만원 정도 되는 세상에서 나뭇가지 하나가 이 정도 가격이라니.
제대로 된 스태프 하나를 만드는데 정말 집과 논밭을 다 팔아야 살까 말까 한 가격이다.
하지만 돈 생각 안 하고 막 살펴본다.
내 돈 아니니까.
‘그래도 영 쓸만한 물건이 없군.’
문제는 돈 신경 안 쓰고 쇼핑하는데도 이거다 싶은 물건이 없다는 것.
사실 물건 자체는 나쁘지 않다.
썩어도 준치라고 타락해도 엘프는 엘프니까.
레어 등급이면 일반 유저들은 명품이라고 부를 고급 아이템이다.
다만 내 눈이 워낙 높기에 영 시원치 않다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스태프 상점을 둘러보던 중 옆 가게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봐, 영감탱이. 내 말 못 알아들었어? 오늘까지 빚 갚기로 했잖아. 정말 관짝 냄새 맡고 싶어서 그래?”
“이, 이러지들 마시오······. 이, 이 가게를 팔아서라도 금방 갚겠소······.”
“아잇~. 싯팔. 금방은 지랄. 금방은 할아범 제삿날이 금방이고! 이 싸구려 가게를 판다고 그 큰돈이 나오는 줄 알아?”
“안 되겠다. 손자손녀 하나씩만 남았다며? 요 앞에 노예상에 당장 팔아버려야겠다.”
“아아아. 제발, 제발 그러진 마시오! 부모도 없는 놈들이오. 부디 자비를······!”
“?”
신장이 190cm는 돼 보이는 험상궂은 사내들이 할아버지를 대놓고 협박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골동품 가게 주인이 돈을 제때 못 갚는 모양.
“꺄악! 할아버지! 할아버지!”
“조용히 안 해? 빨리 안 놓으면 팔 잘라버린다?”
사내들은 할아버지 뒤에 숨은 아이들을 강제로 끌고 간다.
아이들은 건물 기둥을 붙잡으며 애타게 할아버지를 부르지만, 힘없는 할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우연찮게 그들을 지켜보고 생각했다.
‘이것도 내 알 바 아니지.’
빚쟁이들이 참 안타깝지만, 노예들과 마찬가지로 내 일은 아니다.
뭔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돈 무서운 줄 모르면 당하는 게 맞지 않는가?
빌려준 사람이 호구도 아니고. 특히 상대가 블랙 오아시스라면 정말 조심해서 갚았어야지.
애초에 이 할아버지도 범죄고 뭐고 돈만 밝히는 블랙 오아시스 소속 아닌가?
그렇게 눈 돌리고 돌아가려는 데,
[이름 : 세계수의 가지. (SUPER RARE.)]
[설명 : 모험가 마스터 오타르가 세계수 이그드라실을 발견했을 때 채취했던 가지. 스태프의 재료로 사용하면 무시무시한 화력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
할아버지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찮게 발견했다.
세계수의 가지.
원작에서 ‘신비한 골동품 상점’에서 극히 낮은 확률로 최초 1회씩 드랍되는 극희귀 재료 중 하나다.
시세로 따지면 최소 10만 페니 이상!
아주 싸가지 없는 구두쇠 할아범이 운영하는 가게라서, 알아도 안 하는 유저가 많았던 히든 이벤트다.
그 이벤트가 저 할아버지 골동품 가게에서 등장하다니.
설마 저 가게가 훗날······?
“멈춰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읊조린다.
깡패들과 주인장 할아버지, 끌려가던 아이들, 그리고 재미나게 구경하던 사람들까지.
모두의 이목이 쏠린다.
“그쯤하고 애들은 놔주시지. 돈을 갚는다잖나.”
“호오, 이건 또 뭐야? 정의의 사도라도 납시셨나? 푸핫핫!”
“······.”
나보다 덩치가 압도적으로 좋은 깡패들이라 그런지 다 함께 박장대소한다.
한 놈은 정색하고 내 어깨를 퍽 밀친다.
“이봐, 애송이. 나대지 말고 네 갈 길 가라. 이 할애비 빚만큼 네가 갚아줄 거 아니면.”
“히익······.”
스르릉.
깡패는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며 내 목을 겨눈다.
살벌한 분위기에 아이와 할아버지가 겁먹는다.
“네놈에게 줄 돈은 없다.”
그러나 마법사는 덩치로 싸우는 자가 아니다.
【워터볼 LV2.】
나는 특성 드래곤 하트에 깃든 압도적인 마나를 발현한다.
쿵, 쿵, 요동치는 제2의 심장.
고오오.
“······!”
“!”
“!”
골동품 가게 속 수분기를 확 빨려든다.
숨이 턱 막히는 삭막함이 전해진다.
깡패가 내게 덤벼들려고 하기 전에, 깡패 머리를 겨눈다.
“적당히 나대라.”
“······크읏.”
깡패들은 내가 만만치 않은 마법사란 걸 직감했는지 어금니를 깨문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굴종하는 표정이 아니다.
“놔줘라. 어차피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맞아. 저 할아범 따위 내일 조지면 되니까.”
험상궂은 표정으로 읊조리는 깡패들.
발걸음을 돌려서 골동품 가게 밖으로 터덜터덜 나간다.
“고, 고맙소······. 덕분에, 자식 놈 죽어갈 때 약도 못 사준 노인네가 손자손녀는 구할 수 있게 됐군······.”
고물상 할아버지는 내게 고개 숙여 감사를 전했다.
그러나 아직 표정이 밝지는 못했다.
오늘 하루는 겨우 넘겼지만, 내일이면 다시 깡패들이 드잡질하러 쳐들어올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 내가 그것까지 해결해줄 의리는 없지.’
다만 신비한 잡화점 가게는 탐났다.
주인장 할아버지가 연륜만큼 눈썰미가 있는 건지, 단순히 게임 시스템 설정인건지, 다른 곳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희귀 재료들을 모아두기 때문이다.
꼭 스태프가 아니더라도 다른 마법물품을 만들거나, 다른 형제들 마법무구를 제작해 줄 때 쓸만할 것이다.
“할아버님. 빚을 도대체 얼마나 지신겁니까?”
“처음엔 5천 페니였는데······.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지금은 1만 페니나 되었소······.”
마음이 무거운지 한숨을 푹푹 쉬는 주인장.
나는 백지 수표를 꺼내서 1만 페니를 적어넣으며 말했다.
“받으십시오. 1만 페니입니다. 이 골동품 가게를 제가 인수하지요.”
“!”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는 백지수표에 할아버지는 물론, 아이들까지 경악한다.
현재 나는 가면을 쓰고 있기에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물이 나타났나 싶은 거다.
‘뭐, 이것도 내 돈이 아니니까 가능한 거지만.’
황금 상회에서 보고 있다면 오열할 상황이지만 상관 없다.
내 일 아니니까.
애초에 황금 상회는 동부 최고 상회.
이 정도에 흔들릴 상회가 아니다.
오히려 차후 큰 돈 벌게 해줄 가게를 인수해줬으니 감사해야 했다.
“이, 이, 이 큰 돈을 제게 왜······?”
“투자입니다. 이 골동품 가게가 10년 후 대성할 것 같아서요.”
“내 골동품 가게가 무슨 비전이 있다고······.”
“그냥 제 직감입니다. 그 대신 제가 골동품 모든 물건에 우선권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유! 예, 편히 둘러보십시오! 꼭 오늘이 아니여도, 뭐든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나는 적당히 둘러보는 척 하다가 당연히 세계수의 가지를 집었다.
주인장은 골동품 가게를 하면서도 그 가치를 못 알아보는지 아무렇지 않게 넘겨준다.
어찌나 고마워하며 덤을 챙겨주려고 하는지 원작에서 그렇게 고깝던 구두쇠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블랙 오아시스라고 처음부터 다 돈만 밝히는 놈들은 아니었군.’
하여튼 덕분에 원작에서 1만 페니는커녕 10만 페니를 줘도 구하기 힘든 희귀 아이템 ‘세계수의 가지’를 얻었다.
‘자, 이걸로 스태프 막대로 쓸 완드는 구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지하 3층을 떠난다.
재료는 다 구했으니, 이제 제대로 된 연금술사를 찾아서 스태프 재료를 융합만 하면 된다.
그렇게 스태프 불법 제조장인 하이네를 찾아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데, 아까 나갔던 사채업자 깡패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저놈들은 아직 포기를 안 한 모양이군.’
-lv6 블랙 핸드 조무래기 마드.
-lv12 블랙 핸드 전투요원 라누.
날 따라붙는 건지 인기척이 느껴진다.
시스템 창을 보니 아까 골동품 할아버지를 협박하던 사채업자가 맞다.
더구나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뒷골목의 법칙.
한번 얕보이면 계속 얕보이기 때문에 보복을 하려는 것이다.
더구나 사채업자들은 힘으로 안 갚으려고 하는 자들을 찍어 눌러야 하니까.
‘손속 사정을 봐주니 나도 얕보인 모양이군.’
표정이 짜게 식는다.
조용히 스태프만 사려고 적당히 위협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