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15화 (15/140)

15. 가짜 경비병 (3)

“허억······. 헉······. 아이고, 다리야. 잠시 쉬었다가자구나.”

“······헉. 헉······. 옙.”

첫 기습이 끝난 후,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앉을 곳을 찾았다.

사막 근처라 찬 바람이 불기도 했고, 다들 운동 안 하는 마법사보니 정말로 다리 아팠기 때문이다.

‘······체력 훈련 한번 안 한 놈들이랑 같은 급이라니. 자괴감이 드는군.’

나야 매일 아침 달리기 훈련을 했지만,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도 있다보니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 뿐.

타닥타닥.

적당한 자리에 모닥불을 피워두고 스튜를 끓인다.

사람은 원시 시대부터 불을 쬐며 휴식했기에 불 앞에 앉으면 안도감이 든다고 했던가?

우리는 불 앞에 한참 멍 때렸다. 딱히 할 말도 없었으니까.

다만, 옆에 있던 네하드람은 물 끓이는 동안 안절부절못하더니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저, 어르신. 그런데 아까 흑마법사를 사냥하실 때, 쓰신 전격 마법은 뭐였습니까?”

“응? 하하! 썬더 스톰 말이느냐? 마탑에도 등록한 전격 계열 비전 마법이지.”

니콜라스는 자부심 넘치게 말했다.

다만 다음에 오는 네하드람의 말은 상상 이상의 망언이었다.

“저어, 그 마법, 제게도 가르쳐주실 순 없으십니까? 값은 부르시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

비전 마법이라고 밝힌 마법을 가르쳐달라는 네하드람.

제 딴엔 최근 네하린과 내게 뒤처지고 있는 만큼 일발역전할 한 수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비전(秘傳) 마법은 말 그대로 비밀리 전하는 마법이라는 뜻.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실례인 마법을 무려 돈 받고 팔으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발언에 오히려 당황하는 건 나와 네하린의 몫이었다.

특히 나는 원작에서 니콜라스가 제 그림자만 밟아도 얼굴을 시뻘겋게 불태우며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없나보구나!’ 개지랄하던 모습을 알고 있기에 더욱 당황했다.

급히 끼어들어 해명하려던 차, 니콜라스가 정색하고 입을 연다.

“······전격계 마법은 돌아가신 내 스승님께서 전수해주신 마법이란다. 돈으로 팔 수 없는 마법들이지.”

급속도로 시무룩해하는 네하드람.

하지만 니콜라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흘깃 날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너희는 내 오랜 벗 엡실론의 자식들. 내 비전 마법을 전수해줄 수도 있다. 지켜보니 너흰 악인들도 아닌 것 같으니.”

“!”

예상치 못한 네하드람의 성공에 모두가 당황했다.

네하드람은 물론 네하린도 관심의 눈빛이 반짝반짝했다.

마탑의 비전 마법을 배우는 건 대단히 귀한 기회니까. 그것도 전격계 원로 니콜라스에게 배운다면 더욱 말이다.

‘원작에서 그토록 까탈스럽던 니콜라스가 이렇게 순순히 알려준다고?’

물론 원작에서의 모습을 아는 나로선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설마 친구의 자식들이라고 특혜를 주는 건가?

그렇다기엔 원작에서 마탑 벗의 자식들에겐 선을 잘 지킨 것 같은데?

니콜라스의 심중을 모르겠다.

친절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던 눈빛도 의뭉스럽게 보인다.

갑자기 날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고······.”

“허허. 벌써 감사하진 말거라. 전격계 마법은 사람을 가려 받는 걸 알잖느냐?”

“예?”

니콜라스는 가방에서 300페이지짜리 오래된 책을 한 권 꺼냈다.

-<전격 마법의 입문>.

“······이 책은?”

“전격 마법의 입문. 이 서적에 마나를 불어넣어 보아라.”

난데없는 명령에 당황하는 네하드람.

시키는 대로 하니 서적에 푸른 전기가 흐른다.

팡.

“아얏?”

“끌끌, 너는 전격 마법과 잘 안 맞나보구나.”

서적을 둘러싼 전기가 방전되자 니콜라스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너는 틀렸다는 듯.

그러자 네하드람은 오기가 생긴 모양이다.

“아뇨! 좀 더 노력하면 될 겁니다. 되게 할 겁니다!”

팡.

그 말과 동시에 방전되는 전격계 마법서적.

몇 번을 다시 해도 마찬가지였다. 마나가 다 떨어졌는지 숨을 헥헥 거리는 네하드람.

니콜라스는 그런 모습이 익숙한지 딱한 시선을 지었다.

“끌끌, 전격 마법은 선택받은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단다. 재능 없는 사람이 4대 속성 마법을 아예 배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

맞는 말이다.

마법사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속성 마법만을 사용할 수 있다.

크라우드가 물, 크로코가 흙, 다이크 가문이 불에 특화된 건 혈통의 재질 때문이다.

나처럼 특성을 가지거나, 순수 재능이 아니고서야 한 마법사는 한가지 속성밖에 가질 수 없다.

전격계 마법은 물과 바람이 융합한 속성.

최소 물과 바람, 듀얼 속성이 있어야만 배울 수 있다.

“네하린이라고 했느냐? 이번엔 네가 해보련?”

자연스럽게 다음 차례는 네하린으로 넘어갔다.

네하린은 눈을 감고 서적으로 마나를 차분히 흘려보냈다.

파치, 직.

“······!”

정전기가 인다.

놀랍게도 네하린은 물, 바람 속성을 가진 듀얼 속성 마법사였다.

나와 달리 순수 재능으로만 말이다.

“오오! 과연 크라우드 후지기수 중 최고 천재라는 네하린답구나! 정말 전격에도 재능이 있을 줄이야!”

니콜라스는 진심으로 놀라했다.

전격계열에 대한 재능은 뛰어난 마법사가 많은 마탑에서도 겨우 1%만이 있을 만큼 희귀했으니까.

역대급 재능이라는 가주 엡실론조차 전격계 마법은 터득하지 못했다.

네하린 본인도 다소 놀랐는지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다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럴수록 뒤에 있던 네하드람은 한없이 작아졌지만.

“자, 다음엔 네카르. 네가 해보거라. 개인적으로 네겐 기대가 크단다.”

마지막 차례는 나였다.

니콜라스가 흥미롭다는 듯 날 바라본다. 마치 처음부터 기대한 건 나였다는 듯.

아무래도 첫 만남 때부터 내게 강한 흥미를 느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모양이다.

‘물론 내가 흙 속성 마법을 터득했다니 안 될 거로 생각하겠지만.’

아르카나 대륙 인구 중에 마나를 터득한 사람은 고작 5%.

그중에서 듀얼 속성을 터득한 사람은 또 5%밖에 안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많은 특성 중에 듀얼 속성 특성은 얼마 없으니까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듀얼 속성도 정령사만큼이나 귀한데 트리플 속성을 기대한다?

이는 말 그대로 지나가다 벼락 맞을 확률이다.

‘하지만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0이 아니라면 터득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

-<전격 마법의 이해> : 음과 양의 충돌로 발생하는 전격 마법의 기본 이론서. 다 익히면 ‘스파크’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총 소모 MP 5,000. 물+바람 듀얼 속성만 입문 가능.)

특성 엘리멘탈 마스터를 보유한 나로선 피식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나는 마법 서적을 받아들고 차분히 마나를 불어넣는다.

듀얼 속성 마법답게 기초 마법만 익히려 해도 막대한 마나가 소모됐다.

물론 드래곤 하트가 있는 내겐 별로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쿵, 쾅, 쿵, 쾅.

점점 마나 소모 속도를 높여서 밀물처럼 마나를 쏟아 낸다.

아직 여린 드래곤 하트로선 허전함을 느낄 정도의 마나.

격류가 몰아치듯 마법서적에 담는다. 정전기 마법을 피해 서적으로 직행한다.

“음? 이상하군. 원래 마나를 불어넣으면 정전기부터 나와야 하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이에 니콜라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하다.

지금 나는 마법서적에 새겨진 마법진을 무시한 채, 시스템의 힘으로 서적의 힘을 습득하고 있으니까.

-총 마나 1,118 소모. 22% 습득.

-총 마나 2,379 소모. 48% 습득.

.

.

일단 무시하고 마법서에 마나를 한참이나 흘려보낸다.

스튜가 다 끓었으니 먹으란 말도 무시한다.

지금은 전격계 마법을 익히는 게 최우선이다.

-총 마나 4,203 소모. 84% 습득.

-총 마나 4,623 소모. 92% 습득.

덕분에 전격 마법서를 거의 다 익혔다.

다행히 마벨은 지금 기습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바로 옆에서 니콜라스가 그를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마법서적 <전격 마법의 이해>에 총 마나 5,000을 소모했습니다!

-전격계 기초 마법 <스파크>을 습득합니다.

전격계 마법을 익힌다.

파칙, 손끝 발끝에 정전기가 일어난다. 전격계 마법이 발동하자 눈알이 커지는 네하드람.

“저, 저, 저건······!”

“!”

네하드람의 호들갑으로 주위 이목이 쏠린다.

갈무리 안 된 정전기를 본 네하린과 니콜라스.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봤다는 듯 눈을 부릅뜬다. 특히 니콜라스는 자리에 벌떡 일어난다.

“설마설마했거늘! 정녕 트리플 속성의 마법사란 말이느냐! 크라우드에 하늘의 재능이 내렸구나!”

“······.”

지나친 과찬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혹여 어르신이 쓰러질까 진실을 전하진 않았다.

하여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전투태세를 갖춘다.

***

동부 흑마법사 C구역 지부장이자, 위대한 자칼의 3번째 제자 마벨 폰 다이크.

그는 팔자에도 없는 가짜 경비병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보기만 해도 헛구역질 나는 귀족놈들을 위해서.

순간 바보 연기로 살아남는 것까진 좋았지만, 역시 헛구역질이 나는 일이다.

‘나는 10여 년간 허드렛일을 하고 나서야 최하급 흑마법을 겨우 익혔거늘. 부모 한번 잘 만난 덕에 힘든 줄을 모르는군.’

마벨이 보기에 이들은 온실 속 화초일 뿐.

별로 위협적인 자들이 아니다.

당장 전격계 마법만 해도 그렇다. 원로 마법사의 비전 마법을 가르쳐준다니!

만약 흑마법을 익히는 평민이나 귀족 서자였다면 넙죽 절하고 펑펑 울 법한 일이다.

평생 허드렛일 할 팔자를 바꿀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니까.

물론 저들 또한 큰 기회라는 걸 알고 열심히 배우고 있지만, 마벨이 보기엔 그 이상의 간절함이 없었다.

‘뭐, 어차피 내게 죽을 놈들이지만.’

이제 곧 죽일 놈들이니 필요 이상 감정 이입하지 않는다.

다만 암살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문제는 저 두 놈이란 말야.’

마벨의 시선은 최종적으로 두 사람에게 꽂힌다.

하나는 뇌격의 원로 마법사 니콜라스.

듣자 하니 무려 마탑에서도 유명한 뇌격의 마법사라고 한다. 대륙에서도 몇 없는 고위 마법사.

자신보다도 마법 수준이 한두 단계 위인 실력인 건 분명하다.

첫 번째 맛보기 습격 때 시전한 썬더 스톰은 정말 공포스러웠으니까.

머리카락이 없는 것만 빼면 완벽한 노인이었다.

‘이 노인은 아무리 나라도 위험하다. 기습으로 죽여야 해.’

문제는 기습이 제대로 통하지 않게 하는 놈이 있다는 사실이다.

‘망나니 네카르. 물의 명가 크라우드가 탄생시킨 불세출 천재······. 설마하니, 그 희귀하다는 트리플 속성을 가졌을 줄이야.’

네카르는 흙의 최하급 정령 노움을 부린다고 한다.

이를 통해 기습을 모조리 눈치채버린다.

마벨이 단독으로 니콜라스를 죽이기엔, 나머지 손주들이 위험한데······.

하지만 다크 로드의 이름으로 명령을 받았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들짐승 밥 혹 악마 제삿밥으로 바쳐지기 싫다면 저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침착하자. 위기는 곧 기회다. 저놈들의 시체는 최상급이니까. 보상은 확실해.’

마벨은 탐욕스러운 눈빛을 빛낸다.

사령술은 시체의 수준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로 나뉘는 법.

만약 저들을 온전히 시체로 남겨 좀비로 일으킬 수만 있다면.

어쩌면, 다크 로드의 대리인이자 1번 제자인 카넬을 뛰어넘는 위대한 흑마법사가 될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앗? 아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참 생각에 잠겼을 때, 느닷없이 네카르가 말을 건다.

싸가지 없는 새끼.

내가 나이가 몇 배는 많은데, 꼴에 귀족이라고 반말 찍찍하다니.

마벨은 차분하게 화를 가라앉힌다. 어차피 곧 있으면 다 뒈질 목숨들이니까.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그래, 기왕 안내한 거 최종 목적지 지부 C까지 안내하자. 그곳에는 암흑의 울타리가 있으니까.’

마벨은 입속 혓바닥을 뱀처럼 날름거린다.

암흑의 울타리.

흑마법을 익히지 않은 자가 들어가면 마나를 빨아들이는 흑마법 마법진이다.

어지간한 중급 마법사들은 5분도 버티지 못하고 모조리 탈수돼 수분 하나 없는 상태로 죽게 되는 악마의 울타리!

멍청한 귀족들이 제 발로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으니까.

친절히 안내한다.

“자자, 어서 따라오시지요. 피난촌까지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입속 혀가 뱀처럼 날름거린다.

저 재수 없는 귀족들을 끝장낼 수 있다는 생각에 흐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

나는 마벨의 안내에 따라 흑마법사 지부 C까지 순순히 따라갔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걸어서 그를 따라갔다.

“자, 이곳입니다. 하자스 가문 피난민들이 지내는 곳이지요.”

그 결과, 을씨년스러운 마을이 보였다.

마을이라기보다는 공동묘지에 가까운 이곳은 사람의 온기는커녕 죽은 자의 냉기가 오래도록 배어있는 곳이었다.

‘역시 흑마법사 지부 C군.’

나는 이곳을 알아보고 표정을 싸늘히 굳혔다.

니콜라스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표정이 식는다.

“마을 사람들은 어디 있지?”

“아, 날이 추워 안에 들어가 있나 봅니다. 따라오시지요.”

마벨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한 동굴로 안내한다.

나는 표정을 굳힌다.

‘암흑의 울타리. 그곳으로 데려가는 모양이군.’

나는 흑마법사 지부 C를 클리어했던 만큼 암흑의 울타리도 알고 있다.

-lv19 중급 흑마법사 모르그.

-lv21 중급 흑마법사 데나크.

-lv25 중급 흑마법사 모니카.

숲에서부터 흑마법사들이 은밀히 포위하며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이 모든 것이 함정이란 걸 안다.

하지만 순순히 따라 들어간다.

나는 암흑의 울타리로 감당 못 할 마나가 있으니까.

흑마법사 지부 C에서 포위를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아니까.

벌컥.

마벨은 말없이 동굴 앞에 부착된 나무문을 연다.

동굴 내부는 검은 강당이었다. 바닥에 붉은색으로 불길한 문양이 그려진 공간.

그러나 흑마법에 대해 모르는 이라면 단순한 지방 미신 문양이라고 착각할 법한 모양이었다.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마벨은 붉은 문양을 피해 가장자리를 걸으며 말했다.

니콜라스와 네하린, 네하드람이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간 순간,

우웅.

붉은 문양이 빛난다. 함정에 걸려들었다. 암흑의 울타리가 발동된다.

‘슬슬 길을 다 아는 만큼 마벨을 죽여도 되겠군.’

파치직.

【스파크 LV1.】

슬슬 니콜라스에게 배운 전격계 마법을 시전하며 살기를 띤다.

내가 이곳까지 따라온 이유는 다름 아닌 고대의 석판 때문.

이제부터는 마벨이 안내 안 해도 찾을 수 있는 만큼 멋대로 움직여도 상관없다.

따라서 함정에 걸려든 게 맞다. 저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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