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9화 (9/140)

9. 흑마법사들의 왕 (2)

“······허허, 현자 카나단님. 벌써 돌아가십니까? 이거 크로코 가문 가주로서 제대로 감사도 못 했는데.”

“홀홀, 제대로 대접도 못 해주시긴요. 크로코 가문 덕분에 이 늙은이가 복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갑니다.”

현자 카나단 말대로 크라우드 가문은 3일간 대단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아무래도 하자스 가문을 몰래 불러 켕기는 점이 많을 테니까.

크라우드는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수로 계약을 성사시킬 뿐 아니라, 장대한 파티를 즐겼다.

심지어 나도 마지막 날, 마법 연무장에 몰래 내려가다가 꾀병을 들켜서 강제로 끌려갔다.

덕분에 하루종일 고기 뜯고 혈관이 달달하도록 포도주를 마시기만 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두 번 다시 만찬 같은 데 오나 봐라.’

물론 그 경험은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삼시세끼 구운 고기에 포도주만 마시다보니 질려버렸으니까.

왜 중세 영애들이 몇 입 먹고 나이프를 미적거리는지 알 것 같다.

“그럼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허허, 엡실론님께 안부 좀 전해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사이 어른들의 대화가 끝났다.

크라우드 가문으로 돌아가는 마차 행렬이 출발한다.

히히힝! 다그닥다그닥.

먼 길을 달려온 만큼, 돌아갈 때도 멀리 가야 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말발굽 소리는 가벼웠다.

짐도 가벼워졌지만, 마음도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리라.

-lv49 다크 로드의 대리인 카넬 폰 크라우드. (패밀리어.)

······물론 나만 빼고.

나는 마차를 몰래 뒤쫓아오는 박쥐를 알면서도 못 본 척 했다.

지금 급하게 대응하는 건 오히려 독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때가 올 때까지 실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

적들이 오판할 때까지, 내 예측대로 움직여줄 때까지 말이다.

***

하자스 가주 하르메.

그녀는 불안한지 제 자리를 빙빙 돌며 짧은 손톱을 딱딱 씹었다.

가문 내 휘하 마법사들이 이를 보고 불길함이 전염되고 있지만, 지금 그녀는 그딴 걸 신경 써줄 여력이 없었다.

‘제길. 설마 나보고 직접 크라우드 가문을 치라니. 진정 카넬님께서 날 버리시는 걸까? ······설마 다크로드께서 하사하신 ‘디스펠 링’을 빼앗아 가시는 건?’

하르메는 붉은 보석이 박힌 검은 반지를 신줏단지처럼 소중히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그녀는 다크로드 자칼과 카넬에게 직접 흑마법을 배운 제자이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무서운 자인지 알고 있으니까.

언제 버려질지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거다.

‘아니야······. 그래도 나는 12명의 제자 중 하나. 자연재해 같은 사고에 버리시기엔 꽤 아까울 거야······. 곧 거사인데, 나만한 인재도 별로 없잖아?’

인간은 자기 가치를 보존하는 쪽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는 동물.

하르메는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찾아서 정신 승리했다.

더구나 하르메 또한 부모 없는 평민으로서, 밑바닥부터 올라온 인물.

다크 로드 자칼과 카넬은 스승이자 부모, 친척 같은 존재니까.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버려진다는 걸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같은 실력자로 인정받고 싶었다.

“저, 하르메 가주님.”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금발 머리를 처리하고 크라우드를 분열시키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어. 생각해보면 크로코 지하 수로 때의 목표를 다 이루는 꼴이잖아?’

“······가주님?”

“말 걸지 마! 씨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죄, 죄송합니다.”

하르메는 자신을 부르는 하급 흑마법사에게 뾰족하게 화를 냈다.

그러나 통신구슬이 부르르 떨리자 흠칫 진동한다.

-하르메. 작업은 아직인가?

“앗, 넵. 카넬님~. 지금 막 준비를 마치고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

다크 로드의 대리인 카넬 앞에선 한없이 굽실거리는 하르메.

하자스 가문 흑마법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한없이 침묵한다.

“제기랄, 독촉까지 하시다니. 이번에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무조건 저 새끼들을 죽여야 돼······.”

하르메는 망원경으로 이제 막 크로코 가문을 벗어난 크라우드 마차행렬을 보며 중얼거렸다.

본래라면 혹시 모를 크로코 가문 지원을 피해 최소 3일 후에 나서야 했지만, 인정 받고 싶은 욕구와 공을 세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녀를 짓누른 거다.

“야, 너희. 출격할 준비는 됐겠지?”

“옛. 24시간 언제든 출격 가능합니다!”

“좋아. 지금부터 24시간 감시하면서 빈틈을 발견했을 때 나선다. 준비하도록.”

암습을 나선다는 말에 눈빛이 매서워지는 하자스 가문 흑마법사들.

그들은 ‘황금상회’ 문양이 새겨진 가짜 송곳을 집어들며 소리쳤다.

“작전 개시! 모두 전투 준비.”

“가주님께서 디스펠 링까지 가져가신단다! 무조건 성공한다!”

“긴장하지 마라. 크라우드 본가와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니다! 막내아들 네카르. 그자를 습격해서 형제자매들 간에 분란을 일으키는 게 목적이다. 꼭 죽일 필요도 없다. 알겠나?”

하자스 가문 흑마법사들은 숙련된 암살자답게 스스로 고함쳤다.

평민 영지의 삶.

귀족들에게 천대받고 가난하며 상류 문화에 끼지 못하는 그들이 살아가는 법이다.

각종 이권을 위해 뇌물을 주거나, 상대측을 암살하는 일은 익숙하다.

애초에 적발 시 즉시 사형인 흑마법도 익힌 이들이니까.

물론 그렇게까지 배운 흑마법조차 하수구 수준이지만.

깊이 있게 연구된 귀족들 마법을 뛰어넘을 순 없기에 암살을 택하는 것이지만.

덕분에 그 누구보다 정치적 암살에 익숙하다.

“황금상회 칼날을 준비해라!”

“망나니 네카르를 죽여서 황금 상회를 의심받게 해라!”

황금상회 마크가 새겨진 송곳으로 네카르를 죽여서 둘째 네하드람이 의심받게 한다.

장녀 네하린의 어머니, 첫째 부인이 의문사한 상황에서 이는 이론상 완벽하다.

설혹 임무에 실패해도 타격은 충분할 테니.

***

화르륵, 탁탁······.

한편, 반나절 달린 크라우드 마차는 야영지를 찾아 멈췄다.

더 달릴 수야 있지만, 크로코 가문 수로를 고친 만큼 급한 일이 없다.

더구나 동부 지역은 사막과 초원이 공존해있기 때문에 야영지를 찾기 힘들다.

그 때문에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적당한 야영지를 찾을 때마다 쉬어가는 거다.

나와 네하드람은 두꺼운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모닥불 앞에 앉았다.

“슬슬 어두워지니 한기가 몰려오는군.”

“가끔 이럴 땐 이곳이 사막 맞나 싶더라니까요.”

“참나. 사막 한번 안 본 서부놈들처럼 말하는군. 온갖 곳을 싸돌아다닌 망나니가 그것도 모르느냐?”

“······.”

네하드람은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꾸지람했다.

사막이 뭐가 춥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낮엔 불지옥처럼 뜨겁고 밤에는 북부처럼 춥다.

밤바람을 막아줄 나무나 바위가 없기 때문이다.

“음? 네카르. 또 어딜 가느냐?”

“생각을 정리할 겸 밤산책 갑니다.”

나는 야영지를 잡을 때마다 밤산책을 나섰다.

-lv11 1써클 흑마법사 하마스.

-lv13 1써클 흑마법사 하리보.

-lv15 2써클 흑마법사 하자제.

-lv19 3써클 하자스 가주 하르메.

흑마법사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으니까.

나 때문에 누군가 죽으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수 있으니, 적당한 거리에서 꼬리치며 그들을 유인하는 거다.

“흥, 가만히 앉아만 있으려니 좀이 쑤시는군. 같이 가지.”

“따로 가셔도 되잖습니까?”

“망나니가 말대꾸? 네놈 실력이 요즘 일취월장하는 게 운동 때문인 것 같아 확인해볼 뿐이다.”

“······.”

그런데 네하드람이 막무가내로 따라왔다.

흑마법사들이 곧 암습할 거라고 미리 말할 수도 없는 상황.

결국, 어쩔 수 없이 동행에 나섰다.

한가로이 초원을 거닌다.

“······.”

“······.”

저벅저벅.

어색한 공기가 초원을 짓누른다.

내가 딱히 말벗하려는 기색이 없자, 네하드람이 침묵을 깬다.

“그나저나 네카르, 네놈은 운도 좋군.”

“뭐가 말씀이십니까?”

“크로코 지하 수로에서 우연찮게 검붉은 문이 열렸다니. 심지어 흑마법사들이 너 혼자인 줄 모르고 달아났다니. 참으로 기막힌 운 아니냐?”

“······.”

네하드람은 콧바람을 흥, 내뿜으며 팔짱을 꼈다.

내 실력을 숨기기 위해 한 선의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자신감이 오른 모양이다.

“아마 네 쪽에 있던 흑마법사들은 어지간한 머저리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문도 제대로 안 잠그고, 상대 머릿수도 확인 안 하고 달아났지.”

“······.”

“쯧, 차라리 내가 그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만약 나였다면 그들을 물리치는 거로 모자라, 살아간 놈이 하나도 없었을 거다.”

그러면서 네하드람은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퇴로 차단이며, 1:多 전투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게 강의하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였지만 웃으며 맞장구쳐줬다.

왜냐하면.

-lv11 1써클 흑마법사 하마스.

-lv13 1써클 흑마법사 하리보.

-lv15 2써클 흑마법사 하자제.

-lv19 3써클 하자스 가주 하르메.

네하드람이 허세를 부리며 모조리 소탕할 수 있다는 흑마법사들이 지금 몰려오고 있으니까.

반짝.

흑마법사 이름표가 떠있는 초원 수풀에서 무언가 달빛에 비친다.

쇠붙이 신호.

암습을 시작한다는 흑마법사들의 암구호다.

“그래서 내가 12살에 멧돼지를 만나서 어떻게 했냐면······. 네카르, 듣고 있느냐?”

“피하십시오.”

“뭐?”

퍽.

나는 기습적으로 네하드람의 어깨를 확 밀쳤다.

그러자 우스꽝스럽게 바닥에 나자빠지는 네하드람.

“크읏? 네놈! 감히 지금 누굴 밀······!”

쐐액, 퍽.

타이밍 좋게 날아든 송곳.

정확히 우리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네하드람은 자빠지면서 피했고, 나는 네하드람을 민 반발력으로 피했다.

등 뒤 나무에 박힌 송곳을 보고 하얗게 얼어붙는 네하드람.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무, 무슨······?”

【워터 실드 lv1.】

촤아악.

반면 나는 예전에 익힌 초급 방어 마법 워터 실드를 펼친다.

방패처럼 왼팔에 반구 형태로 펼쳐진 물의 보호막.

탱, 태댕!

송곳이 수십 개나 날아온다. 모조리 튕겨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워터 실드는 일반 워터 실드보다 물을 3배로 응축했으니까.

거의 중급 마법과 유사한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워터볼 lv2.】

쐐애액, 파아앙!

나는 왼손에 워터 실드를 펼친 상태로, 오른손만으로 워터볼을 쏟아낸다.

‘내게 속도전을 도전한 것부터 실패한 거다.’

【워터볼 lv2.】

파아앙!

나는 마법을 영창하는 게 아니라 스킬로 즉발하는 거니까.

어지간한 속도의 기습은 역으로 잡아먹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함정에 당해준 것이다.

아니, 내가 저들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파아앙!

파앙!

심지어 적들은 수풀에 숨었지만, 백발백중으로 요격한다.

시스템 이름표가 정확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크아악?"

“저놈. 우리 위치를 파악한 모양이다!”

흑마법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반격으로 긴 송곳을 쏴대지만, 워터 실드는 여전하다.

“······네놈이 크로코 가문에서 우릴 방해했다는 금발머리구나.”

결국 수풀 속에서 복면을 쓴 한 중년 여자가 걸어 나왔다.

오뉴월에 한기가 서릴 법한 목소리.

-lv19. 3써클 하자스 가주 하르메.

‘저 녀석이 하르메군.’

나는 상대를 알아보고 극도로 경계한다.

다크 로드 자칼의 12제자 중 하나인 하르메.

그녀는 동부 초반 스토리에 죽지 않고 끈질기게 등장하는 빌런이니까.

처음 게임하는 사람들을 죄다 접게 만든다는 악랄함으로 유명했다.

“······! 네놈들! 크로코 가문에서 나타났다는 천한 것들이로구나!”

이에 차남 네하드람이 갑자기 자신감을 얻어 일어났다.

미지의 공포보다 명확한 적이 훨씬 만만해보인 것이다.

대체로 흑마법사는 고작 1써클 밖에 안 되니까.

더구나 정면에서 내가 워터 실드로 죄다 막아주고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적들을 깔보는 경향도 있었다.

“워터볼!”

촤아악.

가장 자신 있는 살상마법 워터볼을 펼친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일전 크라우드 마법 연무장에서 보여주었던 워터볼보다 배는 큰 크기였다.

“디스펠 링.”

치링.

이에 하르메가 피식 비웃으며 오른손에 낀 검은 반지를 들어 올린다.

디스펠 링.

다크 리플렉터 하위 호환 버전 아이템.

사용 시, 일정 이하의 마나 소모 마법은 모조리 무효화한다.

초급 마법사에겐 대재앙 같은 아티펙트.

파츠츠츳.

“······! 무, 무슨?”

전력으로 만든 워터볼도, 워터 실드도 사라져버리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네하드람.

공포에 질려 손발이 벌벌 떨리기 시작한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지금 공격당하면 죽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기에, 패닉에 빠진 것이다.

하르메는 이걸 보고 강렬한 쾌감을 즐긴다.

“호호홋! 온실 속 화초로 자란 도련님이라 실전경험이 없으시나보네.”

뛰어난 재능에도 평민으로 태어나 제대로 마법을 못 배운 억하심정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여간 귀족 놈들은 마법우월주의에 빠져서 문제야. 마법만으로 모든 게 다 해결되는 줄 안다니까. 아시겠어요? 등신아.”

“······.”

“그보다 거기 금발 머리. 그쪽도 슬슬 워터 실드가 사라질 때가 됐는데. 응?”

그러나 위화감을 느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펼친 워터 실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유지되고 있었으니까.

고고고고.

“뭐, 뭐지? 오작동인가? ······아니. 어떻게? 분명 디스펠 링은 정상 작동 중인데!”

패닉에 빠지는 건 하르메다.

실제로 디스펠 링은 끝없이 워터실드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다.

쿵, 쿵, 쿵.

단지 내 왼쪽 가슴에 박힌 마나 하트가 끝없이 마나를 다시 채워놓을 뿐이다.

드래곤 하트와 디스펠 링의 대결.

디스펠 링이 아무리 귀해봤자 고작 레어 등급.

마스터 등급 특성과 맞붙었으니 결과는 뻔했다.

파각, 쨍그랑.

“!”

하르메 손가락에 끼어져 있었던 디스펠 링이 일순 금이 가더니 산산조각난다.

검은 반지가 재가 되어 쪼개지고 붉은 보석이 땅으로 떨어진다.

한도 초과.

지나치게 많은 마나를 흡수했기에 감히 감당하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꺄악?! 마, 말도 안 돼! 다, 다크 로드께서 친히 하사하신 신물(神物)이!”

하르메는 아티펙트가 뜨겁게 달아올랐는지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지만,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디스펠 링.

이는 그녀가 하자스 가문 가주이자, 자칼의 제자임을 상징하는 아티펙트였으니까.

이것을 잃어버렸다는 뜻은 그녀가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지위를 박탈당함을 의미했다.

“지금 반지 걱정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

다만 나는 싸늘하게 읊조렸다.

아무리 내가 최고 랭커 때에 비해 약해지고 자비로워졌다지만, 날 죽이려고 찾아온 흑마법사들을 살려줄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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