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8화 (8/140)

8. 흑마법사들의 왕 (1)

폐수로를 뒤흔들었던 파도가 가라앉았다.

포이즌 슬라임은 사라졌고, 밝혀놓은 불길이 꺼졌다. 검은 금고가 쓰러졌다.

흑마법사들 시체는 이미 오수 위에 둥둥 떠 있으니까.

내가 일으킨 깨끗한 파도에 모조리 쓸려내려 간 거다.

“······.”

나는 시체 두 구만 남기고 나머지 시체를 오수 속에 처박는다.

증거 인멸.

마치 흑마법사 중 2명만 죽인 것처럼 다른 시체들을 수장시킨다.

“······아직은 내 진짜 실력을 숨기는 게 좋지. 후- 무리했네.”

숨이 가빴다.

아무리 특성 드래곤 하트 덕분에 마나를 무한히 쓸 수 있다지만, 막대한 마나 소모는 몸에 큰 부담을 주니까.

특히 허약한 몸까지 적용되는 나로선 조심해야 했다.

숨 돌릴 겸, 하염없이 천장의 박쥐를 바라본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lv49 다크 로드의 대리인 카넬 폰 크라우드 (패밀리어.)

단지 엄청난 거물이, 박쥐의 눈을 빌려서 날 지켜보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카넬 폰 크라우드.

사실상 동부 흑마법사 서열 2위인 자.

한때 물의 명가 크라우드 소속으로서, 형제이자 현 가주인 엡실론과 비견되는 실력자였으니까.

동부 사막 최강 마법사라는 가주 엡실론이 lv51였으니, lv49인 카넬이 얼마나 강한 자인지 알 수 있다.

‘아마 지금 내가 카넬과 맞닥뜨린다면 반항도 못 하고 즉사겠지.’

실제로 카넬은 원작에서 크라우드 가문으로 잠입해서 학살을 벌인 적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곳에 와있는 건 아니고 박쥐 패밀리어만 있을 뿐이다.

아마 제 흑마법사를 감시하려고 박쥐를 보내놨다가 이변을 본 모양.

패밀리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당장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적당히 모른 척하고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시간만 죽인다.

타닥타닥.

“도련님! 무사하십니까?”

한참 기다리니, 현자 카나단이 달려왔다.

장녀 네하린과 차남 네하드람 등 크라우드 가문 마법사들을 대부분 이끌고 말이다.

“다행히 괜찮습니다. 다만 전투 도중에 흑마법사들이 수로를 오염시킨 증거를 파손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검은 금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파손한 게 아니라, 흙의 구슬을 차지했다는 증거를 없애서 대충 둘러대는 말이지만.

“다행입니다. 흑마법사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2명을 사살했으나, 대부분 달아났습니다.”

오수 위에 둥둥 떠다니는 2개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나단은 저 깊은 물 속에 처박힌 몇 구를 눈치 채지 못했다.

아직 1써클 초보 마법사인 내가 5써클 상급 마법인 아쿠아 스톰을 재현해서 흑마법사를 다 죽였다고 하면 의심부터 할 테니.

적당히 입에 발린 말을 할 뿐이다.

그때 네하드람이 앞으로 나선다.

“멍청한 놈! 머릿수가 달렸으면 일단 지원 요청부터 했어야지. 멍청하게 다 놓쳤단 말이냐!”

“······.”

그는 내 공을 흠집 내기 바빴다.

지원 요청했다면 가장 많은 사람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더구나 자기 공을 못 세웠다는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동했으리라.

물론 저 말에 별로 공감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도련님. 설마 사회 초행길에 이 정도 공을 세우시다니! 분명 가주님께서도 대견해 하실 겁니다.”

“······.”

“무엇보다 처음 말씀드렸던 안위부터 챙기셔서 다행입니다. 흑마법사가 몇 명이든, 도련님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자 카나단은 순수하게 기뻐서 날 칭찬했다.

당연하다.

맨 처음 하자스 가문이 직접 크로코 수로를 망가뜨렸다는 증거를 찾은 것도.

흑마법사들이 달아난 검붉은 문을 파훼하는 법을 알아낸 것도 나며.

최종적으로 흑마법사들을 소탕한 것도 나니까.

사실상 크로코 미궁에서 모든 일을 내가 해결한 것이다.

애초에 크로코 지하 수로는 10년 뒤에서야 해결되는 난제니까.

카나단 또한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을 텐데, 해결했으니 입이 마르도록 날 칭찬할 수밖에 없다.

“잘했구나. 흠잡을 때 없는 깔끔한 일 처리야.”

현자 카나단이 한참 떠들다가 물러나자, 장녀 네하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영향력 있는 둘이 내 활약을 인정하자, 다른 모든 마법사도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혼자 흠내려고 했던 네하드람은 얼굴을 붉히며 구시렁거렸지만.

나는 말뿐인 칭찬보다는 물질적 보상을 더 좋아하기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겸손하지 않아도 좋단다. 실력 없는 자는 자신에게 기회가 찾아와도 놓쳐버리는 법이거든.”

네하린은 힐끗 네하드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흑마법사들이 오해해서 달아났다는 말.

만약 네하드람이라면 그 기회를 틀림없이 그르쳤을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나는 부정하지 않고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그보다 정말 부쩍 성장했구나. 정말 너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내게 넌 돌봐줘야 하는 동생일 뿐, 같은 가문 마법사는 아니었단다. 하지만 지금 생각이 바뀌었어.”

네하린이 날 바라보는 눈매가 바뀌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연민이었고, 내가 구해줬을 때는 순수한 놀라움이었다면, 지금 날 바라보는 눈빛은 대견함이다.

자신과 견줄 수 있는 형제로 인정한다는 뜻.

이는 네하드람보다 뛰어난 마법사 형제는 후계자 선발 시험의 경쟁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눈 밖에 난 자식 취급이었던 내겐 파격적인 대우일 수밖에 없었다.

오해가 살짝 있는 것 같아 정정해줬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가주 직에 관심 없으니까.”

정말이다.

귀찮게 일만 많은 가주직을 내가 왜 하는가?

세상의 온갖 귀한 것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아는데, 미래에 어떤 재앙이 들이닥칠지 뻔히 아는데 말이다.

‘차라리 친한 형제자매를 차기 가주로 올려두고, 필요한 게 생길 때마다 ‘해줘.’하는 게 훨씬 좋지.’

나야 아르카나 대륙인들과 달리 신분제나 명예에 별 관심 없으니까.

다만 이를 모르는 장녀 네하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주직에 관심 없다라······. 그럼 이곳엔 왜 굳이 온 것이느냐?”

“향후 거래를 하기 위해선 실력 입증이 필요하니까요.”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침 잘 됐다.

향후 숙부 카넬과 다크 로드를 막기 위해선 차기 크라우드 가주와 협력이 필요하니.

“우리 거래 하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누님의 차기 가주직을 걸고 하는 거래 말입니다.”

***

내가 네하린과 거래를 마치고 헤어진 후.

이제 크로코 지하수로를 정화하는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거다.

물을 오염시키는 평민 가문 흑마법사는 없었으며, 무엇보다 타락한 흙의 정령석이 사라졌으니까.

네하드람이 가져온 약재와 네하린이 가져온 성수를 사용할 테니 오수 전체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깨끗이 정화될 거다.

‘······물론 그러면 폐수에서만 사는 포이즌 슬라임이 발작하겠지만. 내 알 바는 아니지.’

왜냐?

나는 그동안 크로코 침대에 누워서 낮잠이나 잤으니까!

현자 카나단에게 몸이 아프다고 꾀병 부렸다.

흑마법사들과의 교전으로 마나가 고갈됐다고 어지럽다고.

실상은 드래곤 하트가 있어서 별문제 없었지만.

덕분에 공만 쏙 세우고 힘들고 더러운 뒷정리는 피할 수 있게 됐다.

-움움! 움! 움!

흙의 최하급 정령 노움이 불을 빵빵하게 불리고 씩씩거린다.

삿대질까지 하는 걸 보아 내게 꾀병은 나쁘다며 나름 훈계하는 모양이다.

정령은 인간 말은 모르지만, 계약자의 마음을 색깔로 알 수 있으니까.

내가 거짓말하는 건 눈치챈 모양이다.

‘하기야 정령들은 거짓말을 싫어하니까.’

정령은 영원히 사는 존재.

최하급 정령이라도 나보다 수십 년은 더 산 어른일 테니까.

자연 그 자체인 만큼 순수한 마음이 강하기에 거짓말을 싫어했다.

“그래서 포도 먹기 싫다고?”

-······우움?

물론 그래 봤자 정신연령은 어린애 수준일 뿐이다.

크로코 가문에서 받아온 포도 바구니를 슬며시 꺼내자 눈이 댕그래지더니, 갑자기 내 허벅지를 꾹꾹 누르며 잘못했다고 애교 부린다.

“옜다.”

-우움~!

나는 피식 웃으며 포도 바구니를 내민다.

그제야 다시 활기를 되찾은 노움.

복스럽게도 먹는다. 한 송이도 다 못 먹었지만.

침대에 누워서 노움을 쓰다듬는다.

가방을 열어서 이번에 챙긴 고대의 석판을 살핀다.

‘그나저나 고대의 석판은 총 3조각으로 쪼개져 있었지.’

한 손으로 들기엔 제법 묵직한 석판.

조각 하나가 무려 드래곤 하트와 같은 마스터급 보물이다.

심지어 고대의 석판은 앞으로 2개를 더 모아야 한다.

만약 마스터급 아이템을 3개나 다 모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시 드래곤 하트와 연관된 아이템이니, 특성 드래곤 하트가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화할까?

아니면, 설마 드래곤 하트에 버금가는, 또 다른 마스터급 특성을 얻는다면?

‘······뭐가 됐든, 향후 판도를 바꿔버리겠군.’

원작 최강 랭커였던 나조차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안 간다.

마스터 등급은 신화와 전설 속에서만 나오는 등급이었으니까.

지금도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하트의 능력이 경악스러운데, 거기에 추가적으로 그 이상의 무언가를 얻는다니.

그 정도면 정말로 다크 로드를 막고 동부 사막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애초에 진 엔딩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이 고대의 석판을 모아야 했던 걸 수도.’

그렇게 침대 위에서 한참 노닥거릴 때였다.

똑똑.

“도련님, 크라우드 가문에서 정화 작업을 마쳤다고 합니다.”

하인의 보고에 생각을 정리하며 창밖을 바라본다.

와아아!

지하 수로가 정화된다는 소식에 활기를 되찾은 크로코 상가.

오아시스 주위에 빼곡히 자란 코코넛 나무 아래에 크라우드 가문 사람들이 의기양양하게 행진한다.

나는 그걸 내려다보고 1층으로 내려간다.

1층에는 보라색 오수를 뒤집어쓴 네하린과 네하드람이 굉장히 지친 상태로 들어온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님.”

“······고생은 네가 했지. 별일은 없었니?”

네하린은 오수가 잔뜩 묻은 옷차림으로, 내 안부를 묻는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눈동자를 굴려서 가까운 코코넛 나무 속에 숨어있는 박쥐를 살핀다.

-lv49 다크 로드의 대리인 카넬 (패밀리어.)

동부 흑마법사 서열 2위 카넬.

그 거물이 날 쫓아다니며 감시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하 수로에서 하자스 가문 흑마법사들을 전멸시켰을 때부터.

하지만 지금 아는 척하면 주변 사람들까지 말려드는 법.

적당히 모른 척한다.

“그럼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전에 한 약속만 지키시지요.”

“······차기 가주직을 노리지 않을 테니, 차후 크라우드 가문에 몬스터 대군이 쳐들어온다면 그땐 반드시 네 명령에 따라 달라라······. 마치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안다는 식으로 말하는구나.”

“아하하, 아니면 말면 되잖습니까?”

나는 웃으며 네하린을 안으로 들였다.

차기 가주와 가장 근접한 네하린과의 거래.

이로써 훗날 동부의 변을 대비할 첫 번째 단추를 끼웠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앞으로 동부의 변까지는 10년이나 남았으니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착실하게 나아간다.

변수 없이 완벽히 막아낼 수 있도록 말이다.

***

한편,

크로코 지하 수로에서 작전 실패한 하자스 평민 가문. 지하 강당.

평민도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하에 수많은 동지가 모였던 곳이다.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던 열정이 가득했던 곳.

고오오.

그러나 지금은 살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사악한 마력을 뿜어내는 석상들만 가득하다.

사자 머리에 숫양의 뿔을 가진 석상.

인간형 상체에 말의 하체를 가진 석상.

가고일처럼 생긴 석상 등 두려우면서도 경외감 들게 조각한 석상들.

72마왕을 형상화한 제단이다.

그 제단 중앙에서 보라색 불꽃이 일렁인다.

[······가주 ‘하르메’, 다크 로드께서 명하신 크로코 가문 건은 어떻게 됐지?]

보라색 불꽃에는 중년 사내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하 공간 전체가 얼어붙는 목소리.

하자스 가문의 현 가주 ‘하르메’는 그 목소리 앞에 무릎 꿇고 있다.

“죄, 죄송합니다······. ‘카넬’님. 거의 다 된 일이었는데······. 무능한 부하 놈들이 막판에 일을 망친 모양입니다······.”

[······.]

가주 하르메는 제단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며 읊조렸다.

다크 로드의 대리인 카넬.

흑마법사의 왕 자칼을 대신해 명령하는 자. 그 권위는 흑마법사의 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다크 로드 자칼이 오랜 기간 잠적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지배자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르메는 다크 로드의 1번 제자 카넬이 한참 침묵하자 더욱 겁먹어 소리쳤다.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무슨 수로.]

단답으로 묻는 카넬.

이에 하르메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크라우드 가문에서 담당하는 수로가 크로코 가문만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다른 가문을 철저히 오염시킨다면······.”

[틀렸다.]

“예?”

카넬은 하르메의 말을 칼같이 자른다.

[이미 크라우드가 흑마법을 눈치챘다. 그딴 식이라면 오히려 귀족들이 더욱 뭉치게 될 거다.]

“······.”

하르메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동자를 마구 굴렸다.

그러다 머리 위에 전구가 뜬 마냥 소리쳤다.

“아! 그, 그래. 이제 곧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 차기 가주를 선발하는 ‘사해의 시험’이 열린답니다! 분명 후계자들 내에서 경쟁이 과열되고 있을 테니, 그들끼리 분열시켜서 갈기갈기 찢어놓는 건 어떻습니까?”

[······.]

카넬은 침묵했다.

이를 동의로 여긴 하르메는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분명 갈라설 겁니다! 특히 차남 네하드람은 권력욕이 강하고, 망나니 네카르는 대낮부터 만취하며 상가에서 난동을 피우는 망나니라고 하니 확실합니다!”

[······.]

눈에 이채를 띄는 하르메.

카넬은 계속 침묵했다.

‘······방금 네카르가 시전했던 마법은 분명 중급 마법이 아니었다.’

눈을 감고 박쥐의 눈으로 보았던 장면을 떠올린다.

지하 수로에서, 마치 한 마리의 바실리스크처럼 일어나는 파도.

그것은 일거에 휘몰아쳐서 하자스 가문 흑마법사들을 덮쳐버렸다.

단 일격에 10여 명의 흑마법사가 전원 즉사한 위력.

심지어 다크 실드를 펼친 자조차 막대한 질량이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비록 위력 자체는 중급 마법 수준이지만, 한때 물의 명가 크라우드 가문 소속이었던 카넬이 이를 눈치 못 챌 리 없다.

물의 중급 마법 중에는 그런 마법이 없다는 걸.

해일처럼 ‘재앙류’ 마법은 한 등급 위로 분류된다는 걸 말이다.

‘아쿠아 스톰. 그건 분명 물의 상급 마법 아쿠아 스톰이었다. 네카르, 그놈은 아쿠아 스톰을 어설프게나마 익힌 거다······!’

카넬은 소름이 돋았다.

아쿠아 스톰.

물의 상급 마법 중 하나로, 정점에 이른다면 바다에서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해안 도시 하나를 통째로 수장시킨다는 마법이다.

궁정 마법사조차 불가능한, 최소 써클이 무려 5써클인 대마법.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도 카넬의 친형이자, 그를 사해의 시험에서 떨어뜨린 가주 엡실론만이 시전 가능한 마법이다.

‘······나조차 못 익힌 마법을 조카 따위가 제대로 배웠을 수는 없고, 아마 아류 마법을 어설프게나마 재현했겠지.’

고오오.

분노에 검은 마력을 줄기줄기 뿜어낸다.

그것조차 엄청난 거니까.

상급 마법을 재현이라도 할 수 있는 마법사는 중앙에서도 손꼽으니.

심지어 네카르는 이제 겨우 21살 아닌가?

만약 네카르가 40-50대 중진 마법사가 된다면?

어쩌면 크라우드는 동부 제일을 넘어서 대륙 제일 물의 명가가 될지 모른다.

‘흥, 꼴에 크라우드도 제법이군.’

물론 다크 로드 자칼님의 힘을 받은 자신에겐 이제 안 되겠지만.

카넬은 하르메가 바친 네카르 프로필 정보를 읽는다.

[이름 : 네카르 폰 크라우드.]

[나이 : 21살.]

[마법 수준 : 1써클 마법사.]

[특이점 :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망나니짓만 하며 허송세월함.]

‘······이게 정말 혈혈단신으로 흑마법사 지부에 쳐들어가서 모조리 쓸어버린 놈의 정보라고?’

말도 안 된다.

이건 분명 가주 엡실론의 연막술이다.

한 가문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여러 곳에서 견제가 들어오니까.

1,000년에 한 번 등장할 법한 재능을 지키기 위해 연막술을 쳤을 뿐이다.

[······좋다. 네게 마지막 기회를 주마.]

카넬이 무겁게 입을 연다.

[망나니 네카르를 죽여라. 그 녀석이 이번 실패의 원흉이니 확실히 죽여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벌을 면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하르메.

그러나 카넬의 명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대신 네가 직접 출정해라.]

“예, 예? 하지만 그건······?”

공포에 바짝 긴장한 하르메.

네카르가 두려운 게 아니다. 물의 명가 혈족을 건드리면, 보복이 올 수 도 있으니까.

혹시 자신을 버리는 걸까, 두려운 것이리라.

그러나 카넬은 자비 없이 말했다.

[분명 내분을 일으키겠다고 했을 텐데. 작전대로 하면 네가 의심 받을 일은 없을 터. 설마 성공할 자신 없는 거냐?]

“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

다크 로드의 첫 번째 제자 카넬은 엄숙한 눈매로 12번째 제자 하르메를 내려다본다.

아무리 하르메가 못 미더워도, 나름 다크 로드의 12명의 제자 중 한 명.

다른 흑마법사들과 격이 다른 자다.

더구나 그녀의 오른손에 끼워진 아티펙트 반지는 특별하다.

무려 다크 로드가 친히 하사한 선물.

디스펠 링.

발동 시, 주위 마나를 모조리 흡수해버리는 반지.

비록 아군도 마법을 못 쓰게 된다지만, 마법사에겐 재앙 같은 아이템이다.

디스펠 링을 발동하고, 날붙이로 찌르면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방어도 못 하고 즉사니까.

'향후 하르메가 크라우드 가문에 붙잡혀 죽어도 상관 없다. 어차피 재능이 여기까지인 년. 천재가 아니라 조숙했을 뿐이니.'

하르메는 다크 로드와 자신의 유일한 실패작.

계륵 같은 녀석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카넬은 궁금했다.

과연 크라우드에서 키워낸 괴물은 이걸 어떻게 대처할지.

다크 로드의 12명의 제자에게서 크라우드의 비밀 병기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인한다.

***

크로코 가문은 지하 수로가 깨끗이 정화되자 곧장 축제를 열었다.

한 해 농작물이 썩어가던 도중, 크라우드가 말끔히 일을 처리해줬으니 당연한 접대였다. 더구나 하자스 평민 가문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논의해야 할 테니까.

그러나 나는 갈 길이 먼 몸.

아프다는 핑계로 피로연에서 빠지고, 크라코 가문 지하 연무장으로 향한다.

혹시나 박쥐가 염탐하지 못하도록 커튼을 두껍게 치고, 문을 꼭 닫는다.

“과연. 이런 환경이면 흙의 마법을 연마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군.”

나는 허리를 숙여서 마법 연무장 바닥에 깔린 흙을 어루만진다.

놀랍게도 크로코 가문 연무장은 방마다 깔린 흙이 달랐다.

입자가 고운 흙, 거친 흙, 단단한 암석, 진흙 등 가지각색의 흙이 갖춰져 있다.

크로코 가문은 흙의 명가.

똑같은 마법 연무장이라도 더욱 흙의 특화돼 있으니까.

에스키모인들이 눈을 가루눈, 마른눈, 함박눈, 솜눈, 소나기눈 등 다양하게 구분하는 것처럼, 흙을 섬세히 구분하는 것이다.

【어스 lv1.】

쿠구궁.

나는 이제 곧 찾아올 암살자를 예측하고, 흙 마법을 연마한다.

'하자스 가문 흑마법사의 보스 하르메. 그 녀석은 모를 수가 없지.'

동부 사막에서 플레이한 유저라면 첫 번째로 만나는 필드 보스다.

별명은 뉴비 마법사 절단기.

이제 막 1써클 마법을 익혔을 초보 플레이어들에게 디스펠 링으로 마법을 봉인해두고, 물리 공격으로 공격해오던 놈들. 그 악랄함은 이루어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사실 패턴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

과거 게임 속에서 상대했던 하르메와 동부 흑마법사들의 패턴을 떠올리며 파훼법을 준비한다.

아무리 디스펠 링이라도 흡수할 수 있는 마나량은 정해져 있으니까.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하트가 있는 만큼 흡수당하는 걸 무시하고 마법을 구사할 계획이다.

‘자신들만 마법을 못 쓰는 꼴이지.’

더구나 내겐 흙의 정령 노움도 있다. 정령은 물리 공격에 당하지 않으니까.

물리 공격으로 덤비는 놈들 따위에게 질 수가 없다.

따라서 역으로 사냥한다. 다크 로드의 12명의 제자를. 한놈한놈 차분히 즈려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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