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망나니 (2)
가주 엡실론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일주일이 또 지났다.
오늘도 아침 9시에 일어나 훈련장을 달린다.
“헉······. 헉······. 젠장, 이 쓰레기 같은 특성. 나중에 안 없애면 진짜 사람이 아니다······.”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을 가진 만큼, 남보다 체력이 두 배로 약하니까.
진 엔딩을 막기 위한 여정을 준비한다.
오히려 장기 목표일수록 규칙적인 일과가 중요하니까.
사막의 건조한 바람이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벌컥벌컥 물을 마신다.
“도련님. 어디로 가십니까?”
“마법 연무장.”
나는 충분히 달린 후, 연무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오늘 습득한 마법을 떠올린다.
영창을 외우는 척, 스킬로 마법을 시전한다.
【워터볼 lv1.】
스르륵.
허공에 모인 물의 구체가 주먹만 한 점으로 응축된다.
잘 모르는 사람은 물구슬로 무얼할 수 있겠냐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쿠과광!
일순간, 마나를 잔뜩 주입하여 허수아비를 향해 날리니 천둥이 울리는 소리가 난다.
당장 허수아비가 박살 나고, 바닥이 홍수가 난 듯 물로 흥건하다.
당연하다.
물의 마법은 마나를 많이 불어넣을수록 더욱 강하게 응축되니까.
특성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지는 막강한 마나로 응축한 물.
어지간한 살상 병기보다 묵직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마법을 쓸수록 느껴진다. 손끝 발끝 미세한 곳까지 마나 혈관이 다 뻗어있다는 걸.’
나는 새삼 내 특성의 위력을 체감한다.
범인과 천재를 가르는 차이는 아주 미세한 혈관 차이였으니까.
마나 양도 바다처럼 많은 데, 똑같은 마나를 써도 효율이 남다른 천재.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런데 10년 전,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내게 주어진 시간은 10년.
그 후, 원작 스토리가 진행될 거다.
세계 대종말까지 이어지는 진 엔딩 스토리.
그걸 막기 위해선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동부 스토리가 무엇이 있었는지 떠올린다.
“이봐, '사해의 시험'까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예, 앞으로 정확히 100일 남았습니다.”
“······.”
지나가는 시종에게 물어본다.
사해의 시험.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최대 행사로, 차기 가주를 선발하는 시험이다.
나야 방랑을 해야 하기에 차기 가주직에 별로 관심 없지만.
원작에서 악의 교단과 흑마법사들이 가문에 난입해서 쳐들어온다고 한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가 크게 기우는 결정적인 사건.
'이후 흑마법사들이 동부 사막 전체를 멸망시키지.'
그 말은 향후 물의 명가 크라우드를 비롯한 동부 영지를 전혀 이용할 수 없다는 뜻이고.
만약 이를 10년 전인 지금 시점에서 막아두면, 향후 매우 일이 수월해질 거다.
하지만 아무리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하트가 있고, 온갖 기연을 얻는다 한들, 그 안에 거물급 흑마법사들을 저지할 만큼 실력을 쌓을 수 있을까?
‘······제기랄. 역시 갈 길이 멀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일찍 잠들고 일어난다.
앞으로 닥칠 일을 대비해 계속 훈련한다.
***
차남 네하드람은 초조했다.
둘째 부인의 아들로 태어나, 장녀보다 정통성이 밀렸으니까.
“네하드람.”
아버지 엡실론이 서늘한 목소리로 부른다.
네하드람은 움찔 놀라더니 고기를 썰던 화려한 은식칼을 즉시 내려놓는다.
“예, 아버지.”
“‘사해의 시험’은 잘 준비하고 있느냐.”
사해(沙海)의 시험.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 치르는 최대 시험이다.
무려 차기 가주를 뽑는 행사이자 의례니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황금상회에 의존하나 보군.”
“······.”
엡실론은 차갑게 식은 눈매로 네하드람을 바라본다.
황금상회.
동부 제일 상회로, 둘째 네하드람의 외가다.
네하드람은 은식칼 손잡이가 차갑다는 촉감이 들었다.
“네 외가를 활용하는 건 자유지만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네하드람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식사 시간 내내 달그락 걸리는 식기 소리만 난다.
‘제기랄. 내가 이게 무슨 꼴이냐. 그 많은 돈을 꼬라박고도 아버님 마음 하나 돌리지 못하니······.’
네하드람은 자격지심이 들어 이를 악물었다.
실제로 황금상회는 영약과 희귀 마법서를 비롯해 막대한 지원을 해줬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점차 가주의 마음이 멀어지는 게 느껴진다.
“······.”
“······.”
어색한 침묵 속에 둘의 식사가 끝났다.
엡실론은 업무를 보러 떠나고, 네하드람은 오도카니 자리에 남았다.
아버지가 앉았던 빈 의자를 바라본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온기.
평생의 노력으로 엡실론 바로 옆자리는 왔으나 이것이 한계라는 걸 느낀다.
평범한 범인으로선, 재능의 벽을 느낀다.
“······후, 정신 차리자. 아직 안 끝났어. 사해의 시험을 통과해서 차기 가주가 되면 아버지께서도 날 인정하실 수밖에 없어.”
네하드람은 억지로 정신 차리며 마법 연무장으로 향했다.
이제 3달 후면 사해의 시험이 시작한다.
앞으로 100일밖에 안 남았으니 더욱 훈련하려는 거다.
촤아악, 파앙!
“······?”
그런데 그때, 가문 연무장에서 누군가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저녁 8시.
‘다들 낮 수련을 해서 마나가 다 떨어졌을 텐데? 누가 수련하고 있는 거지?’
네하드람의 의문은 타당했다.
아무리 수련을 계속하고 싶어도 마나의 한계가 있으니까.
저녁까지 계속 수련할 수 없다는 게 통설이다.
그런데 수련하고 있다니?
호기심이 들어 조용히 내부를 살펴본다.
“······망나니 네카르. 저놈이었군.”
상대를 확인하자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다.
네카르 폰 크라우드.
자신의 이복동생이자, 가주 엡실론의 망나니 자식.
파아아앙!
강렬한 물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놈이 수련하고 있었다.
‘흥, 물소리가 이토록 큰 걸 보아, 마나를 무작정 크게 때려 박는 모양이군. 그렇게 마나를 펑펑 쓰면 순식간에 고갈될 텐데.’
하기야 망나니가 뭘 알겠냐만.
네하드람은 코웃음 쳤다.
‘아예 이번 기회에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한번 보여줘야겠군. 내가 다른 형제보단 월등하다는 걸 말이야.’
벌컥.
네하드람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마법 연무장 문을 열었다.
하찮은 실력자에게 한 수 보여주는 것만큼 뿌듯해지는 게 없으니까.
기분 전환할 겸, 제 동생에게 벽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
【워터볼 lv1.】
촤아악!
오늘도 마법 연무장에서 연신 워터볼을 수련한다.
볼링핀처럼 쓰러지는 허수아비들.
마법진으로 강화된 허수아비들이었으나 막대한 질량으로 계속 후려치니 이곳저곳 금이 가고 부서졌다.
끼익.
“늦은 밤이 돼서야 수련하러 기어 나온 것이냐? 네카르.”
“?”
그렇게 한창 수련하고 있는데, 갑자기 날카롭게 생긴 청년이 들어왔다.
둘째 네하드람 폰 크라우드.
일전에 가주 엡실론과 함께 식사한 적이 있는 녀석이다.
‘안 그래도 과거의 기억이 없어서 불편한데, 무턱대고 시비조라니.’
아무래도 내가 밤늦게까지 마법 수련할 마나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저렇게 단정 짓는 모양이다.
“무슨 일입니까? 형님.”
“형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너 같은 망나니한테 형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
그럼 뭐라고 부르라고.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닫고 있는 사이, 네하드람은 연무장 바닥의 흥건한 물 자국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하, 그래도 꼴에 너도 크라우드 가문의 혈통이라고 최소한의 실력은 갖춘 모양이구나.”
“······.”
“하지만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 워터볼을 최대한 크게 쏘는 거냐? 그럼 여러 번 수련하기는커녕, 몇 번 쏴보지도 못하고 탈진할 거다.”
네하드람은 내가 훈련하는 걸 보지도 않고 훈수를 뒀다.
나는 대충 무시하고 시스템 창을 확인한다.
-lv15 2써클 마법사 네하드람 폰 크라우드.
현재 네하드람은 2써클.
홀로 용병대원 10명에 맞먹는 위력을 가졌을 터.
황금상회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이룬 성과일 텐데, 기고만장하여 남들에게 훈수 두는 걸 즐기는 모양이다.
“그래도 형으로서 조언 하나 해주지. 네놈은 평소 수련을 거의 안 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수련은 가장 강한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얼씨구.’
“······그래서 표준적인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감을 익힐 수 있으니까.”
‘절씨구.’
촤아악. 지이잉.
네하드람이 시범을 보이려는 지 한참 주문을 외우더니 워터볼을 만든다.
지이잉, 파아앙!
네하드람이 워터볼을 최대로 키우고, 허수아비를 시원하게 때린다.
그래도 명문가 혈통답게 기본기는 탄탄했다.
물론 다소 휘청거릴 뿐, 내가 낮에 쏠 때와 달리 아무런 금도 가지 않았다.
“보았느냐. 내 워터볼의 최대 위력을. 하기야 넌 처음 보았겠지. 제대로 수련하러 나온 적이 없으니.”
“······.”
“격차를 느꼈나 보군. 너도 한 10년간 꾸준히 수련한다면 지금 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때 쯤이면 나는 더 먼 경지에 도달했겠지만~.”
네하드람은 피식 비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마치 자신이 승리자라는 듯.
넌 결코 자신의 발끝도 못 따라올 거라는 듯 아주 천천히 말이다.
‘자꾸 뭐라는 거야? 밤에 딴 사람들 깰까 봐, 최대한 약하게 워터볼을 쏘고 있었는데.’
······물론 드래곤 하트를 가진 나로선 어처구니없을 뿐이지만.
굳이 붙잡아서 사실을 고하진 않았다.
머지않아서, 크나큰 충격에 빠지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