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2화 (2/140)

2. 망나니 (1)

물의 명가 크라우드 백작가.

현자 카나단은 서재로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금발 머리 사내를 살펴본다.

네카르 폰 크라우드.

셋째 부인에게 태어난 유일한 자식이다.

사회 초년생답지 않게 근엄한 눈매에, 뾰족한 코, 그리고 세상 무심한 표정까지 귀염성 없는 사내다.

샤락.

네카르는 차분한 표정으로 책을 읽는다.

하녀들이 웅성거려도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딱한 눈으로 무심하게 바라본 게 전부.

앉아서 제 할 일만 한다.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가 바로 마나다. 이는 우리가 숨을 쉴 때, 뱉을 때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고오오.

네카르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책만 읽는다.

심지어 책 구절을 소리 내 읽는 것만으로도, 몸속 마나의 기운이 공명한다.

현자 카나단이 전신 검사를 해본 건 아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온몸에서 선명한 푸른 빛이 돌 정도면 자신보다 마나 양이 많다는 걸.

저게 겨우 스물 한 살짜리 청년의 마나라니.

심지어 일주일 전만 해도 온갖 패악질을 벌이던 망나니 도련님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살 시도를 하시더니 드디어 철이 드신 걸까? ······아니, 이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도련님께서 엄청난 기연을 얻으셨다. 세기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한 마나야.’

하루아침에 각성하다니.

마법적 지능은 다소 평범했지만, 감각이 남달랐다.

자연의 축복을 받은 수준!

마치 푸른 피가 흐른다는 마법 천재들처럼.

아니, 마치 태어날 때부터 마나 하트를 생성한다는 드래곤처럼 특별했다.

“저어, 도련님······.”

“무슨 일이시죠?”

“······그, 오늘은 마실 다녀오지 않으십니까?”

마실.

평소처럼 창녀촌에 가지 않냐고 묻기 상스러워 돌려 물은 거였다.

“그럴 체력 없습니다. 전 허약해서 마법 공부할 체력도 아껴야 합니다.”

“······.”

새빨간 거짓말.

······아니, 정말 철이라도 든 걸까?

오직 책.

방안에 틀어박혀서, 혹은 서재에서 책만 읽었다.

현자 카나단조차 혀를 내두를 만한 집중력이었다.

‘어미와 사별하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서 잠시 비뚤어졌다고 해도······. 이건 지나치게 비범하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만약, 만약 저 아이를 제대로 키워낼 수만 있다면······.

어쩌면 크라우드 가문은 변방의 명문가가 아닌,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가문으로 비상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운이 나빠도 너무나 나쁘구나. 조금만 더 일찍 철 드셨으면 좋았을 텐데.’

문제는 이 아이가 꽃피기엔 시기가 너무 나쁘다는 것.

카나단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릴 적부터 패악질 부려 가주 눈 밖에 난 셋째 부인 아들 네카르는 이미 끈 떨어진 연 신세였다.

“현자님.”

“예, 도련님.”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닙니다. 오랜만에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하셔서 그렇습니다.”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네카르가 물었다.

현자는 억지로 미소지었다.

그리고 네카르가 다시 책을 읽자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도련님께서 조금만 일찍 철이 드셨어도 수도에 좋은 스승을 찾아드렸겠지만······. 이미 때는 늦었으니······.’

말 그대로 종명누진.

이미 물시계의 물이 다했다.

1천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가 태어나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니.

가신으로서, 오랫동안 함께한 웃어른으로서 너무나 침통했다.

저 아이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알까?

죄책감에 젖은 눈으로 네카르를 바라본다.

***

‘운이 좋아도 너무 좋군.’

이른 아침, 나 네카르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사실 남들이라면 뭐가 행운이냐고 물을 거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 백작가.

동부 사막에서나 유명하지, 대륙적으로 본다면 별 권세도 없고, 힘도 없는 곳.

말 그대로 지방을 홀로 외로이 지키는 명문가다.

그러나 고인물의 시선으로 본다면 상당한 호재다.

‘일단 지금 시점은 대충 원작 스토리보다 10년쯤 전인가? 미리 대비하기 좋겠군.’

10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아무리 10년간 수련을 한다고 해서 전 대륙을 멸망시키는 진 보스를 상대할 수준은 안 되겠지만.

적당히 가문에서 성장한 후,

전 대륙을 방랑하면서 기연을 독차지하여 과거 최고 랭커였던 무위를 되찾는다면 해볼 만할 테니까.

‘더구나 물의 명가 크라우드 가문은 근처에 기연도 많아서 준비하기 편하겠어.’

동부는 대부분 사막 지대인 만큼 가문 수 자체가 적어서, 별 볼 일 없는 가문조차 이벤트가 많다.

그런데 크라우드 가문은 사막에서 물에 관한 가문.

주위에 떡고물은 많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거기서도 악명 높은 망나니로 빙의했으니까. 방랑을 막을 사람도 없겠군.’

힐끗 서재를 맴돌고 있는 하인들을 살핀다.

도대체 언제 복도 청소가 끝나는지 온종일 얼씬거리는 하인들.

귀 기울이고 잡담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뭐? 네카르님께서 오늘도 고함 한번 안 지르셨다고?

-헉. 에이미가 넘어지니까 직접 일으켜 세워주셨다고? 주머니에 몰래 이상한 약 넣으신 거 아냐?

“······.”

저기요. 빙의 전, 네카르 씨.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얼마나 개망나니셨는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하인들이 불길하다고 벌벌 떠는 수준이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어차피 기연을 찾아 방랑해야 하는 몸.

여차하면 망나니라는 이유로 가문에서 땡전 한 푼 없이 쫓겨날 수 있으리라.

······시발.

그러나 <별들의 전쟁2> 세상은 위험하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최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헉······. 허억······.

기상하고 오전 타임에는 연무장을 달린다.

언젠가 가문을 떠날 날을 위해서 체력을 미리 길러두는 것이다.

안 그래도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때문에 체력이 1/2밖에 안 되니까.

“네카르 도련님, 오늘도 오셨습니까?”

아침 수련을 마친 후, 책을 읽으러 서재에 들어간다.

벌써 며칠째지만, 적응이 안 된다는 듯한 하인들.

“조용히 책 읽고 싶으니, 모두 나가라.”

“······알겠습니다.”

크라우드 백작 가문은 물의 명가.

일반 서적도 매우 귀한 아르카나 대륙에서 마법 관련 책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

차락, 차락.

집중해서 책을 읽는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

현대에서 살던 나로선 마법이란 게 너무나 흥미로웠으니까.

흐트러짐 없이 같은 자세로 책을 읽는다. 온종일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물의 마법 기초> : 4대 원소 중 하나이자 생명의 근원인 물에 관해 탐구한다. 이 마법서를 읽으면 ‘아쿠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총 필요 MP 1,000.)

.

.

사실 게임 시스템이니까!

게임 속 <별들의 전쟁2>는 마법서적에 마나를 불어 넣으면 그만큼 읽은 것으로 인정되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그 시스템은 이미 빙의한 지금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이 녀석은 도대체 얼마나 망나니였길래, 기초적인 마법 하나 안 익힌 건지.’

-당신 서클은 현재 1써클입니다. 2써클까지는 초급 마법만 익힐 수 있습니다.

물론 네카르라는 본래 인물이 워낙 바닥이었기에 모든 마법을 다 습득하진 못했다.

일반적으로 1써클은 기껏해야 용병 개인 한 명 수준.

2써클부터 전투 마법사로서, 혼자서 10명의 용병대를 죽일 수 있는 화력이 나오니까.

즉, 말 그대로 피라미.

앞으로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었다.

쿵, 쾅, 쿵, 쾅.

그나마 왼쪽 심장이 요동친다.

드래곤 하트.

마지막으로 얻은 마스터급 특성.

하해와 같은 마나를 느끼게 해준다는 제2의 심장이다.

덕분에 나는 마법서를 읽자마자 모든 마나를 쏟아 넣을 수 있었다.

대륙 실제 마법사보다도, <별들의 전쟁> 플레이어보다도 압도적인 속도로 성장한다.

“도련님.”

그때 복도 끝에서 남자 구두 소리가 저벅저벅 다가온다.

정갈한 옷매무새에 온화한 인상의 늙은 사내.

-lv41. 4써클 현자 카나단.

초급 마법사라는 1, 2써클을 뛰어넘어 무려 4써클에 도달한 마법사.

3써클부터 중급 마법사로서, 혼자서 100명의 용병대의 활약을 하는 중진 마법사라고 불린다는 걸 상기한다.

이 자가 가문에서 얼마나 존경받는 마법사인지 파악한다.

“현자 카나단님. 무슨 일이십니까?”

“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

현자 카나단은 유례없을 정도로 정색한 채 말했다.

크라우드 백작가의 가주.

이 몸의 아버지를 뜻하는 말이다.

‘갑자기 날 왜 부르지? 혹시 망나니짓 그만뒀다고 칭찬하려고 하시나?’

묘한 기대가 들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가주는 동부에서 가장 유명한 네임드.

나 또한 어떤 자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카나단을 따라간다.

똑똑.

“가주님. 도련님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와라.”

현자 카나단의 안내에 따라 가주실에 들어간다.

가주실.

좌우로 열리는 문과 동시에 드넓은 금빛 방이 보인다.

중앙이 탁 트여있고, 수많은 창문이 빛을 비춘다.

방구석에는 온갖 종류의 포도주가 기울어진 채 보관되어 있다.

또각또각.

“······.”

현자 카나단은 레드 카펫을 밟으며 가장 안쪽에서 기다리는 사내 등 뒤로 간다.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있는 중년 사내.

가주 엡실론.

크라우드 가문의 지배자.

연륜이 묻어나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앉아라.”

엡실론은 중앙에 앉아서 명령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었는지 10명은 앉을 수 있을 법한 긴 식탁에 음식과 식기가 잔뜩 차려져 있었다.

‘······어디 앉아야 하지?’

그래도 아버지인 엡실론 근처가 맞는 거 같아서 다가오니, 현자 카나단이 웃으며 만류했다.

“도련님 자리는 이쪽이잖습니까?”

“······.”

친절히 안내해준 자리는 엡실론에서 가장 먼 자리. 끝자리다.

식탁 끝이기에 음식도 별 볼 일 없고 종류도 적었으며, 식기가 쇠로 되어있었다.

특별히 나쁜 식기는 아니지만, 옆자리는 은식기. 엡실론 근처 자리는 화려하게 문양도 박혀 있었다.

‘대충 신분에 따라 먹는다는 거군.’

빈자리도 많은데 치사하게.

하지만 생각해보면 노예가 아닌 게 어딘가?

귀족 대우에 감사하며 끝자락 자리에 앉았다.

“네카르. 널 왜 불렀는지 알고 있겠지.”

“?”

중후한 목소리를 내리까는 가주 엡실론.

다만 나는 진심으로 몰랐다.

“무슨 일인지요?”

“······멍청한 놈. 아버지께서 네놈이 열흘 전에 선술집에 불 지른 죄를 처분하시려고 부르신 거잖느냐.”

가주 엡실론 바로 옆에 앉은 오만하게 생긴 사내가 적대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나와 똑같은 금발에 푸른색 눈동자를 가진 사내.

-lv15 2써클 마법사 네하드람.

둘째 부인의 자식 네하드람.

아마 나보다 2살쯤 많은, 이복형제.

나보다 높은 2써클 마법사였다.

'나와 달리 제대로 된 후계자 중 한 명인가 보군.'

네하드람은 엡실론 바로 옆에 있는 만큼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은식기를 썼으며, 뒤에 가신들이 서 있었다.

초라하게 쇠 식기로 홀로 음식을 써는 나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다만 열흘 전 일이라면 정말 모르는 일이다.

난 일주일 전에 빙의했으니까.

“네카르.”

“예.”

“실수든 고의든 선술집에 불을 낸 건 중죄다. 알고 있겠지.”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엡실론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허나 그보다 더 심한 죄는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혈족으로서 마을에 불이 났는데, 물의 마법 하나 쓰지 못해 끄지 못했다는 점이다.”

‘······?’

뭐?

물의 명가 크라우드 혈족이면서 불 하나 못 껐다고?

상황 자체가 코미디다.

‘정말 답도 없는 새끼였네.’

하기야 아까 마법 수준이 형편없긴 했는데 설마 그 정도일 줄이야.

나조차 암 걸리는데 가주 입장에서야 어떨까?

가주는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실추된 가문의 명예. 그것이 네가 책임져야 할 중죄다.”

평민 가게를 불태운 것보다 귀족 명예를 더럽힌 게 더 큰 죄라니.

과연 중세 귀족다운 발상이다.

명예.

아르카나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소문으로 상대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명예를 실추시키는 건 그 가문에 엄청난 타격이니까.

엡실론은 최소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한 권 꺼내더니,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대한 빨리, 이 물의 마법서를 익혀라. 그렇다면 네가 그동안 벌인 죄악을 용서해주겠다.”

물의 마법서를 익혀라.

가문 내 패악질이야 어떻게든 혼내고, 보상하면 되지만, 물의 명가 혈족이 물의 마법을 못 쓰는 것만큼은 용납 못 하겠다는 뜻이다.

“시간은 얼마나 주면 되겠느냐.”

엡실론은 매섭게 노려보며 묻는다.

마치 빠를수록 죄를 감해주겠다는 듯.

그 모습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번 줘보시죠.”

두꺼운 책을 받아 책을 한번 펴본다.

<아쿠아 스핀>.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비전 마법. 물에 회전력을 더해 파괴력을 증폭시키는 고급 마법이다.

쿵, 쾅, 쿵, 쾅.

왼쪽 가슴 속 마나 하트가 뛴다.

특성 드래곤 하트.

무한한 마나를 머금었다는 제2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 곁에 있던 이복형제 네하드람이 말했다.

“아쿠아 스핀? 아버님. 그 마법은 저조차 이제 겨우 익힌 마법 아닙니까?”

“······.”

“네카르, 못 하겠으면 지금이라도 다른 책으로 바꿔 달라고 하거라. 망나니놈이 무슨.”

네하드람은 대놓고 날 무시하며 말했다.

하기야 원래 아르카나 대륙에서 마법서는 대단히 난해한 책.

한평생 마법을 익혀도 1써클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천지에 널렸다.

그런데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비전 마법은 어떠하랴?

나는 책을 탁 덮었다.

‘이미 다 익혔다.’

-<아쿠아 스핀>에 필요한 마나를 100% 주입했습니다! '아쿠아 스핀 lv1'을 습득합니다!

다만 벌써 익혔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일단은 못 익힌 척 하는 것이 옳으리라.

“괜찮습니다. 형님. 식사하시죠.”

얘가 왜 이러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네하드람.

난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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