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들의 전쟁2
고요한 방안.
나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게 창문을 검은 테이프로 막아버린 후, 키보드만 두드린다.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 켜고 나른한 하품을 내뱉는다.
‘벌써 아침인가?’
지금 플레이하는 게임은 <별들의 전쟁2>.
하드 코어하지만 그만큼 높은 자유도와 히든 업적들로 대흥행한 명작이다.
수많은 케릭터와 얽혀있는 다양한 스토리로 유저들을 울고 웃게 만든 게임.
나도 푹 빠져서 6년간, 밤낮없이 플레이했다.
지친 삶에 큰 위로를 받았으니까. 내 인생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이다.
하지만 이 게임조차 슬슬 ‘할 만한 컨텐츠가 없네. 망겜이네.’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왜냐하면.
-랭킹 1위 ‘네카르(나)’! 16,952,900점.
-랭킹 2위 ‘아니씨발1위뭐야’ 323,56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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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들의 전쟁2> 최고 고인물이니까.
최종 컨텐츠와 업적들은 물론, 모든 직업과 특성을 분석한 게 나다.
우스갯소리로 커뮤니티에서 내 너튜브 채널 없이는 게임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니까.
어지간한 컨텐츠는 이미 다 해버렸다. 내 인생 최고의 자부심이다.
딸깍.
-너튜브 계정 ‘네카르’.
-구독자 수 : 50.1만 명.
덕분에 너튜브 계정 구독자도 벌써 50만 명이다.
<별들의 전쟁2>를 즐기는 유저라면 누구나 다 아는 채널.
무명 때 하루 3끼 라면만 먹던 설움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뭐, 그래 봤자 번 돈은 빚 갚는 데 거의 다 썼지만.’
힐끗,
시선을 돌려 옛날 사진을 살핀다.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연명하다가, 비전이 없어서 게임 너튜버로 막 전향했을 때 찍은 사진.
고아원 출신이었기에 생활비와 학자금 대출 때문에 고생을 엄청 했다.
엄마아빠 없는 놈이니, 밥 먹고 게임만 하느니 비아냥도 듣던 설움의 나날.
하지만 이제 아니다.
무시하던 놈들 보란듯이 성공했으니까.
밤낮으로 컨텐츠를 찍은 거로 빚도 해결했으니 만사오케이다.
‘그래, 이제 열심히 살아봐야지.’
지긋지긋한 빚 독촉 문자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여하튼 이번에야말로 너튜브용 새 컨텐츠를 깰 거다.
-새 플레이를 시작합니다.
심호흡하고 새로 캐릭터를 생성한다.
내 캐릭터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머리에 푸른 눈,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잘생긴 사내로 커스터 마이징한다.
-총 3개의 특성 카드를 랜덤하게 결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게임 <별들의 전쟁2>의 가장 큰 특징이다.
새 캐릭터를 생성할 때 특성을 총 3가지 뽑는다.
꼭 좋은 특성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확률 게임.
좋은 게 나올 때까지 뽑으면 되니까.
-첫 번째 특성 : 허약한 몸. (BAD)
먼저 등장한 카드엔 볼이 쏙 들어간 인간이 골골거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제기랄, 쓰레기 특성이다.
체력 관련 스텟이 1/2만 적용되는 페널티 특성이다.
빨리 죽고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나?
‘······아니야. 이 정도 약한 페널티면 오히려 좋아. 나쁜 특성을 뽑으면 다음 특성에서 좋은 특성이 나올 확률이 올라가니까.’
나는 고인물답게 떡상 각을 본다.
더구나 특성 ‘허약한 몸’은 영약을 챙겨 먹거나, 환골탈태하면 극복할 수 있는 페널티니까.
침착하게 다음 특성을 본다.
-두 번째 특성 : 엘리멘탈 마스터. (SUPER RARE)
‘오?’
두 번째 특성 카드를 보고 희열을 느낀다.
한 인간이 불, 바람, 물, 흙의 마법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모습이 그려진 카드.
엘리멘탈 마스터.
4대 원소 마법 계열인 불, 바람, 물, 흙은 물론, 모든 마법을 배울 수 있는 히든 특성이니까.
원래 <별들의 전쟁2>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한 가지 속성 마법만 배울 수 있는데, 그 제약이 사라지는 거다.
‘······아냐, 엘리멘탈 마스터는 지나치게 대기만성형 특성이니까. 이 특성 하나만으로는 초반을 절대 못 버텨.’
미소가 천천히 식는다.
<별들의 전쟁2>의 문제는 난이도가 지랄 맞게 어렵다는 거다.
결국, 엘리멘탈 마스터는 4대 원소 마법을 전부 배워야 의미가 있는 것.
그 전에 죽어버리면 그대로 ‘YOU DIE’일 뿐, 아무 짝에 의미 없다.
‘대충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죽고 재도전해야겠군.’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슈퍼 레어 특성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그렇게 무심하게 마지막 특성을 누르는데.
스르릉, 고오오······.
화면을 검게 물들이며 심연의 이펙트와 함께 마지막 특성이 등장했다.
-세 번째 특성 : 드래곤 하트 (NEW, MASTER).
똬리를 튼 블랙 드래곤이 날 바라보는 카드.
특성 드래곤 하트.
설명 창을 보니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궁극의 특성이라고 한다.
‘뭐······? 마스터 레벨 특성이 실존했어?’
이건 나조차 처음 보는 특성이었다.
손이 덜덜 떨린다. 너무 잠을 안 자서 꿈을 꾸는 걸까 두렵다.
마스터 특성은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유명한 전설이다.
확률상 존재는 했으나, 그 누구도 발견했다는 글을 올린 적 없으니까.
착착 제 뺨을 연속해서 때려본다.
얼얼한 통증과 차가운 식은땀 촉감이 전해진다.
이건 분명 현실이다.
이내 공포와 충격은 기쁨과 환희로 바뀐다.
6년 간 폐인처럼 플레이한 나조차 처음 본 마스터 특성.
그 가치가 어떨지 눈에 훤했다.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이번에 무조건 플레이해야 해!’
혹여 실수로 취소를 누를까,
벌벌 떨리는 손으로 다음 버튼을 클릭한다.
‘만약 마스터 특성이라면······. 새로 나온 ‘진 엔딩 보스’를 클리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단순히 희귀한 특성이라서 기쁜 게 아니다.
지난달에 새로 나온 진 엔딩.
진입하는 순간, 최고 고인물인 나조차 배신감과 허무함, 심연의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무려 세계 대종말.
개발사가 아예 클리어하지 못하라고 만든 듯한 정말 차원이 다른 스테이지를 만들어놨으니까.
내가 모든 업적 다 클리어하고, 히든 피스를 모은 이유.
그럼에도 클리어하지 못해 ‘망겜이네. 더 할 컨텐츠가 없는데.’라고 생각한 원인이다.
만약 이번에 마스터 특성을 놓치면 도대체 얼마나 나중에야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마스터 특성을 가진 캐릭터로 히든 업적을 클리어한다면? 최소 1년 치 너튜브 컨텐츠를 확보하는 셈이다!’
말 그대로 대박 사건!
새 히든 엔딩과 보스까지 깨려면 그만큼 난이도가 지랄 맞고 오래 걸리니까.
진 엔딩 루트로 가면 중간 보스들도 하나 같이 괴랄해지는 만큼 하나하나가 보석 같은 컨텐츠가 되리라.
-경고! 마스터 특성을 보유한 경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페널티가 하나 추가됩니다. 정말로 진행하시겠습니까?
-YES.
-재차 경고! 마스터 특성을 보유한 경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페널티가 하나 추가됩니다. 정말로 진행하시겠습니까?
-YES.
상황이 아무리 급해도 시스템 문구는 전부 읽는다.
혹시나 나중에 단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게임 플레이하다 응급실에 실려 갈지라도 무조건 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 진입합니다.
-첫 시작 장소는 무작위로 결정됩니다.
익숙한 시스템 창.
나는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제발 이번만큼은 끔살당하지 않는 곳에서 시작하기를!
그렇게 게임을 실행했을 때, 이상한 시스템 창이 뜬다.
-마스터급 특성의 특별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난이도가 ‘헬 모드’에서 ‘리얼리티 모드’로 변경됩니다.
뭔 소리지?
이런 난이도가 있었나?
고개를 갸웃할 때,
번쩍, 꽈르르릉!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낙후된 집이라서 피뢰침이 고장 났는지 전선을 타고 전기가 내리친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어찌할 틈도 없이 감전사 당한다.
‘아 씨발. 빚 이제 다 갚았는데······.’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깨어나 보니 이곳은 아르카나 대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