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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에 걸린 연하 남주가 집착하는 이유-30화 (30/70)

[30]

“디트리히, 이런 행위는 어디서 배운 거야?”

디트리히가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밤의 일을 교육받는 건 흔했지만 저주에 걸려 학습이 느린 디트리히는 예외였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입을 열었다.

“미…… 셰리, 입니다.”

미셰리가 이런 짓을 가르쳐 주었다고? 대체 왜?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미셰리는 눈치가 빨랐다. 그랬기에 시안나는 그녀와 대화할 때면 디트리히에 대한 감정을 더욱 꽁꽁 감싸 매며 입단속을 했다.

혹시 그녀의 마음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던 건 아닐까?

“설, 설마 디트리히가 결혼해서 우울해 보였다고 말을 걸었던 것도 떠봤던 거야?”

소름이 우두두 돋았다.

디트리히는 여전히 시안나 위에 올라탄 채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제가…… 미셰리에게, 물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시안나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디트리히는 우연히 마주친 미셰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디트리히의 고민을 들은 미셰리는 곧장 에르마야를 떠올렸다.

갑작스러운 만남도 곤란한데 부부가 되다니, 어색한 게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미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총 지식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모두가 잠든 으슥한 밤에 거사를 치르셔야 해요. 먼저 여성을 침대로 픽! 쓰러뜨린 다음에 박력 있게 상대 위로 올라타곤 팔 사이로 가두고! 당신과 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중요한 건 여성이 거부하면 바로 일어나셔야 해요. 상대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런 거였나! 시안나의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미셰리의 즐거운 발성이 재생되었다.

미셰리! 대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시안나가 골치 아프다는 듯 앞머리를 헝클어뜨리는데, 뜻밖에 쇄골에 말랑한 감촉이 닿았다.

“디, 디트리히? 끝난 것 아니었어?”

“만약, 거부하지 않는다면…… 가볍게 입술로 내리찍으면서…… 아래로……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네게는 에르마야가, 힉!”

실크 천 사이로 배에 닿는 입김과 미묘한 감각에 시안나가 허리를 뒤틀었다. 문득 붉은 머리의 여성이 머릿속에 부유했다.

디트리히를 말려야 하는데…….

하지만 안에서 이상한 감각이 휘몰아치자 그녀는 애꿎은 시트 자락만 움켜쥐며 발끝을 달달 떨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하얀 슈미즈가 휙 들렸다.

허벅지에 닿는 차가운 공기에 시안나가 발작하듯 발을 구르며 디트리히의 머리를 밀어냈다.

“뭐, 뭐 하는 거야!”

디트리히가 고개를 들자 그녀가 침음을 삼켰다. 금안이 아슬아슬한 빛을 띠고 있었다.

“충분히 입을 맞춘 뒤, 몸에 걸친 걸…… 벗겨 내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다음에는……?”

차가운 공기가 시안나의 목덜미를 기어 다녔다.

꿀꺽. 시안나가 침음을 삼키는데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내렸다.

“미셰리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면서, 자긴 부끄럽다고, 모든 걸 상대에게, 맡기라고 하더군요.”

만약 그녀가 일어서 있었다면 꽈당 엉덩방아를 찍었을 것이다.

동시에 왠지 시원섭섭한 마음도 함께였다.

디트리히는 그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거리다 시안나와 마주 보게 올라온 뒤 그녀의 손을 거머쥐고 제 뺨에 붙였다.

손바닥에 볼을 느리게 비빈 디트리히가 풍성한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물에 젖어 찬란하고 감미로운 금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라도 손수건을 꺼내서 달래 주고 싶은 미남이 거기에 있었다.

“헤이스랑 누님이 친하게 붙어 있는 모습을 본 뒤부터…… 심장 부근이, 이상합니다. 자꾸만 기름이 튄 것처럼 따갑고…… 겨울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것처럼 아프고…….”

달빛을 머금은 눈에 극심한 허기가 들어찼다.

“누님을 눈에 담으면 배 속이 불로 지지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그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 옷깃을 움켜쥐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 감정을 불식시켜 주기는커녕 마주 와닿자 시안나의 얼굴도 덩달아 무너져 내렸다.

결혼도, 그 무엇도 디트리히가 좋아서 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에게 쌀쌀맞게 대하니 당혹스러울 것이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긱스에게 뺨을 맞은 시안나가 애먼 디트리히에게 분노를 터뜨린 일. 그때도 디트리히가 어미 잃은 아이처럼 그녀에게 매달렸다.

눈물 젖은 뺨, 발갛게 부어오른 눈가, 울먹이는 눈동자……. 달라진 건 시안나를 덮고도 남을 커다란 덩치뿐이었다.

그녀의 빈자리는 디트리히에게 너무 잔인한 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녀조차 디트리히가 결혼했다지만 그를 완전히 지울 수 없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디트리히가 자꾸 졸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면 되겠지.’

시안나는 디트리히의 붉어진 눈가를 문질러 주었다.

“잠시 이야기하다가 갈…….”

그때, 방문이 소리 소문도 없이 벌컥 열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고도 없는 손님이 많이 찾아올까? 뇌에서 쥐가 났다.

하지만 바로 그다음, 문을 쳐다본 시안나는 뭐가 찔린 사람처럼 딸꾹질했다.

낯선 손님은 다름 아닌 헤이스였다. 그는 목욕 가운처럼 흐트러진 앞섶에 구릿빛 가슴 근육이 흘끔 보이는 헐거운 튜닉을 입고 있었다.

늦은 밤, 두 사람이 으슥한 어둠 속에 있는 모습에 헤이스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이윽고 무감한 낯에 선득한 기운이 깃들었다.

“두 분……. 지금 여기서 무엇 하고 계시는 겁니까?”

따끔한 눈빛에 시안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또다시 목욕시킨다는 변명은 허벅지가 드러날 정도로 슈미즈가 올라가 있는데다 디트리히가 덮치는 듯한 자세라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헤이스의 분노는 약혼자 연기치곤 지나치게 생생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발소리가 차갑게 울려 퍼졌다.

걸음걸이는 조용하면서도 위협적이었다.

“늦은 밤 실례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예감이 들어맞았군요.”

헤이스는 수업 시간에 죄지은 것처럼 어깨를 쭉 내려뜨린 채 퇴장한 시안나가 마음에 걸렸다. 시안나에게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던 디트리히도 마찬가지.

그래서 불현듯 그녀의 방을 방문했다. 역시는 역시였다.

헤이스는 조금 젖은 얼굴의 디트리히에게 연민 한 조각 비추지 않고 비난했다.

“디트리히 님.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디트리히 님께선 이미 결혼하신 몸입니다. 두 사람은 이제 늦은 밤에는 함께할 수 없는 사이입니다.”

시안나의 심장을 날카롭게 베어 내는 말이었다.

디트리히는 칼날처럼 서늘한 눈매로 주시하는 헤이스를 피하지 않았다.

보통 같으면 ‘흐……’ 하면서 물러섰을 테지만 여간 마음이 아닌 듯 시안나에의 어깨에 손을 올리기까지 했다.

허공에서 맞부딪친 시선에 헤이스는 흰자위가 따가울 정도였다.

‘이젠 까만 해츨링이 아니라 어엿한 성체인가. 통제 따윈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

헤이스는 옆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낮은 한숨을 쉬었다.

“휴……. 차라리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가 슬며시 중재안을 내놓았다.

***

“헤이스, 이 황당한 배치는 뭐야?!”

침대에 누운 시안나는 이불을 코까지 끌어올려 덮고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왼편에 누운 헤이스가 턱을 괸 채 여상히 대꾸했다.

“저나 디트리히 님이 서로 물러서질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시안나의 손에 깍지를 끼고 오른쪽에 누운 디트리히도 맞장구쳤다.

“으!”

시안나는 어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헤이스가 내놓은 중재안은 그녀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침대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세 명이 한 침대라니, 누가 봐도 상황이 야릇했다.

만약 세 사람이 다 같이 누워 있는 모습을 미셰리가 보기라도 한다면 시안나는 한동안 저택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그뿐이랴. 당장 짐을 싸야 할지도.

심장이 뛰는 건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상체를 거의 헐벗은 채 누워 있는 헤이스였다. 팔뚝에 닿는 빵빵한 가슴에서 심장이 쿵쿵 진동하는 감각이 느껴져 난감했다.

“헤이스, 좀 떨어져 줘. 가슴이, 자꾸만 닿아서…….”

“저 보고 바닥에서 자라는 말씀이십니까?”

여유 공간이 있었지만 시안나와 밀착하고 싶었던 헤이스는 엄살을 부렸다.

그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안나는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침대에서 다른 남자에게 양보해야 하는 꼴이라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게 전부 다 도련님의 투정에 약한 시안나 님 때문이십니다.’

헤이스가 책망 어린 눈길을 보냈지만 시안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두 남자 사이에서 끼인 탓에 몸 온도가 올라갔고 양옆에서 쿵쿵 맥동 치는 심장 소리가 튀어 나갈 듯 시끄러웠다.

그녀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데, 디트리히가 시안나의 허리를 감싸 안고 발간 뺨을 볼에 비비었다.

“후으. 오랜만에…… 나뭇잎처럼 푸릇한, 냄새…… 좋습니다.”

디트리히가 황홀하다는 듯 살결을 들이마시며 품에 파고들었다.

안 돼! 더 이상 접촉하다간 코피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침대에서 자는 게 꼭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 같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충족감이 차올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도 잘 붙이지 않고, 차기 공작이라 누구에게나 선망받는 남자가 자신을 갈구하고 있었다.

“히익!”

디트리히의 정수리 냄새를 맡고 있는데, 굳은살 박인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시안나가 헤이스에게 등을 돌린 채 디트리히만 신경 쓰자 그가 심술을 부리며 목덜미를 살살 더듬은 것이다.

피부가 얇은 부위였다. 까끌까끌한 손끝이 목선을 타고 미끄러지는 것만으로도 발가락 끝이 곱아들었다.

“하, 하지 마!”

시안나가 비명을 지르며 돌아보았다. 헤이스는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러냐는 듯 피식 웃었다.

“약혼자 앞에서 다른 남자에게만 신경 쓰니 샘이 나서요. 저도 디트리히 님만큼이나 노력해야겠습니다. 혹시 만져 주었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까? 약혼자의 의무를 다해 보겠습니다.”

약혼자의 의무가 뭔데?

마치 그녀가 헤이스의 손길을 원한다는 말투에 시안나는 안면이 토마토처럼 화르르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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