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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에 걸린 연하 남주가 집착하는 이유-29화 (29/70)

[29]

“히익!”

무방비한 허리 위로 농밀한 간지러움이 덮쳤다. 어깨가 흠칫 튀어 오른 시안나가 소곤거렸다.

“뭣, 뭐 하는 짓이야.”

시안나가 낑낑거리며 헤이스의 팔뚝을 밀었지만 그의 손은 아랑곳하지 않고 슬금슬금 그녀의 배로 향했다. 헤이스 위에 걸터앉은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헤이스는 영 못마땅한지 귓속말했다.

“…그렇게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구시다간 가짜 약혼이라는 게 들통날 겁니다. 호응하십시오.”

호응이라니.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지만 정도가 있다.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몸 위를 기어 다닌 적은 없었다.

시안나는 글썽글썽한 눈동자로 헤이스를 흘겨보았다.

“스킨십이 너무 스스럼없다는 생각은 안 들어?”

진짜 약혼이 아니지 않은가.

헤이스가 코웃음을 쳤다.

“자유연애 관계인데, 이 정도는 보통입니다. 차츰 익숙해지셔야 긱스 공작님께서도 의문을 거두지 않겠습니까?”

끙. 아무래도 긱스의 눈길이 의심 가득하긴 했지.

시안나는 체념하고 말았다. 굳은살 박인 손이 배를 지분거리고 배꼽 주변을 쓸어내리는 데도 그저 부들거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멋대로 시안나를 만져 대는 헤이스의 손을 본 디트리히의 눈썹이 위로 들렸다.

저렇게 긱스가 생각날 정도로 정색하는 디트리히는 처음이었다.

“헤이스…… 시안나 누님, 께서 싫어하시니, 떨어져…….”

디트리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시안나의 배에 거미처럼 들러붙은 헤이스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놓으려 안간힘 썼다. 하지만 헤이스는 정신을 차리고 시안나의 배를 두르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는 우위에 선 낯으로 말찻빛 곱슬 머리카락에 연신 입 맞추곤 씩 웃었다.

“저는 시안나 님의 약혼자이니 괜찮습니다. 게다가 시안나 님께선 싫어하시기는커녕 즐거워하시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거절 못 하리라는 걸 알고선!

시안나의 볼이 부풀었지만 이미 그녀도 공범이었다.

그녀는 헤이스의 말에 맞장구치기로 결심했다. 의도대로 술술 넘어가는 상황이 시안나의 과감함을 부추겼다.

“그래……. 헤이스는 내 약혼자지만 이미 결혼한 디트리히는, 읏, 헤이스처럼 내게 손대선 안 돼.”

시안나는 목각 같은 구릿빛 목에 팔을 두르고 괜히 제복 가슴팍에 가슴을 밀착했다. 헤이스의 등 근육이 미동하는 게 팔에서부터 느껴졌다.

설마 쑥스러워하는 건가?

고개를 내리고 헤이스의 표정을 살핀 시안나는 쩔쩔맸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헤이스의 얼굴이 더는 붉어질 수 없을 정도로 새빨갰다.

그녀는 헤이스의 귀에 대고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뭐, 뭐야……. 좀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라며…….”

접촉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주장할 땐 언제고 본인이 쑥스러워하는 건 뭐란 말인가.

헤이스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갑자기 이러실 줄은…… 아니, 침착해지려고 해도 손을 시안나 님의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남자의 손이 배에서 떨어져 허공에서 방황했다. 그녀가 제 사람인 것처럼 지분거릴 땐 언제고, 그녀가 손에 닿는 것조차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허둥지둥거릴 건 또 뭐람.

시안나는 헤이스를 탓하며 자세를 고쳐야 하나 싶어 엉덩이를 들썩였다. 단단한 허벅지를 뭉개는 부드러운 감촉에 헤이스는 결국 뜨거운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읏…….”

더운 숨이 시안나의 새하얀 목덜미를 덮쳤다.

그 뜨겁고 간질거리는 감각에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찌르르 전류가 흘러내렸다.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것만 같았다. 짙은 접촉에 온몸이 예민해진 참이었다. 공기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

“이, 이만 내려가야겠다. 하하…….”

시안나는 헤이스의 탄탄한 허벅지와 제 엉덩이가 맞닿는 감촉이 불편해 목덜미를 긁었다.

헤이스가 어색하게 구는 통에 저마저 불편한 느낌이 감염된 기분이었다.

내친김에 입술을 그의 볼에 내리누르려고까지 했건만 관두자.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때 시안나의 몸이 그림자로 뒤덮였다. 디트리히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어둡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디트리히?”

“제가……. 누님의 약혼자가 되면, 허락, 해 주시는 겁니까?”

뱃가죽을 긁는 듯한 허기 진 목소리에 시안나의 등이 경직되었다.

평소 어른답지 않게 헤실헤실한 웃음을 짓던 디트리히가 짙은 시선으로 그녀와 약혼을 묻고 있었다.

기다란 검은 속눈썹 안에 눈동자에 비친 자신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그가 시안나의 손등을 추어올리고 입을 맞춘 뒤 똑바로 직시했다.

“제가 헤이스보다, 더…… 잘하겠습니다. 제게, 오십시오.”

이상한 일이었다. 목소리와 시선에서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항상 그녀를 보호자나 누나로서 바라볼 때와 다른 느낌. 심장에서 혈관이 쿵쿵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두 사람만의 세계를 깨부순 건 헤이스의 언짢은 목소리였다.

“하아…… 디트리히 님께선 이미 결혼을 하셨습니다. 결혼한 사람은 이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이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저랑만, 약혼하십시오…….”

헤이스의 단호한 대답에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분명 시안나를 덮을 만큼 커다란 덩치인데도 몸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축축해지는 눈가를 닦을 여유도 없어 보였다.

그가 쓰러지듯 시안나를 두 팔로 감싸 안고 고개를 파묻었다. 무방비한 목덜미를 쭉 뻗은 잘생긴 코가 내리눌렀다.

“제가…… 결혼을 한 것은, 오로지 누님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님이 없다면 저는…….”

이윽고 시안나의 목덜미에 축축한 열기가 번져 나갔다. 눈물이었다.

디트리히의 입장에선 억울할 만했다.

그가 결혼을 약속한 것은 긱스가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시안나의 손이 어찌할 바를 모르다 디트리히의 어깻죽지를 쓸어내렸다.

“디트리히…….”

시안나의 심장이 발을 동동 굴렀다.

디트리히의 질투심을 유발시켜 파혼시킬 작정이었는데 촉촉하게 번지는 금안을 보니 후회가 밀려들었다. 뜨거운 눈물이 제 심장에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디트리히는 시안나의 손이 제 등에 닿은 것을 느끼고 파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가 그녀의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처럼 더욱 깊숙이 고개를 묻었다.

시안나가 심한 짓을 저질렀다고 자책하는 사이,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얼굴에서 금빛 눈동자가 새카맣게 빛났다.

***

“아무래도 디트리히의 마음을 속이는 행위는 옳지 않아. 헤이스에게 다음부턴 그러지 말자고 강하게 나가야지.”

그날 밤, 시안나는 침대에 누운 순간부터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새까만 머리칼 아래 애절한 얼굴, 일그러진 금안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자신이 백번 천번 잘못한 일이 맞았다. 디트리히는 그저 결혼에 휘말렸을 뿐인데 그를 탓하는 행동을 하다니.

“헤이스에게 아예 모두를 속이는 약혼을 그만두자고 해야겠어.”

똑똑.

기억의 잔상이 그녀를 괴롭히는 와중, 문 두드리는 소리가 귓속에 날아들었다.

별빛조차 비치지 않는 깜깜한 시각. 도대체 누구지?

급한 용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안나가 급히 허락을 내렸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파자마 형태에 하얀 린넨 잠옷을 입고 커다란 베개를 꼭 끌어안은 디트리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시안나의 눈치를 살폈다.

“디트리히? 오밤중에 무슨 일이야? 어디 불편한 곳 있어?”

혹시 어디 아픈 건가? 몸을 일으킨 시안나가 침대로 다가온 디트리히의 양 뺨을 감싸 쥐고 구석구석 살펴봤지만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안도하는데, 몸이 붕 밀리더니 침대로 쓰러졌다.

“윽?”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디트리히가 날 밀친 거야?

그녀가 상체를 일으키기도 전에 남자의 손이 얇은 실크 위를 꾹 눌렀다. 배가 압박당했다.

놀랄 새도 없이 디트리히가 그녀 위로 올라탄 뒤 얼굴을 붙여 왔다. 설마 입술이 먹히는 건가 싶었는데 이마에 조심스러운 감각이 퍼졌다. 온몸이 녹진해지는 것만 같았다.

잠시간의 달콤함 뒤, 그와의 거리가 벌려졌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달빛이 디트리히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그렸다.

“저, 누님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습니다.”

아래에 깔려 있던 시안나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지금은, 천둥도 치지 않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도 디트리히는 유독 천둥소리에 몸서리쳤기 때문에 그날마다 그녀가 자장가를 불러 주며 디트리히를 재웠다.

비도 내리지 않는 날, 그녀의 방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밤을 같이 보낸다니…… 디트리히가 할 만한 어휘가 아닌데?

시안나가 말이 없자 디트리히는 침울해졌다.

“싫으신 겁니까……?”

“그게 아니라, 윽!”

아니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디트리히가 시안나의 목덜미로 달려들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여린 살이 세차게 빨리며 춥춥, 은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리카락에 찔리는 간지러운 느낌과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충격이 배 속을 꽉 압박했다.

안, 안 되는데. 디트리히는 에르마야랑 결혼을 했잖아.

하지만 입은 달뜬 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지 않는 달콤한 쾌락이었다.

시안나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디, 트리히, 아앗……!”

시안나가 교성 같은 비명을 지르자 디트리히가 얼굴을 떼어 냈다. 그가 자신의 품에 갇힌 여성을 열기에 잠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아프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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