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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를 핥으세요, 공작님! (117)화 (117/144)

117화

클라우스와 아체리아가 공작저로 돌아가 각자의 침대에서 쓰러지듯 잠들었을 무렵, 데르송 후작가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 이놈들이! 이게 무슨 무도한 짓이냐! 이 손 놓지 못해!”

무장한 수도 경비대원들의 손에 양팔을 붙들린 후작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 발버둥을 쳐 댔다. 그가 좀처럼 순순해지지 않자, 뒤에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경비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데르송 후작.”

경비대장은 왕실 소속의 기사이기도 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처럼 차디찬 시선을 마주한 후작이 순간 기가 눌려 발버둥을 멈추자, 싸늘한 눈동자가 후작을 위아래로 훑었다.

“당신은 아동 납치와 아동 노동 규정 위반, 무고한 사람을 음해한 혐의로 치안대에 의해 정식으로 고발되었습니다.”

“즈, 증거가 있느냐! 내가 그런 일을 했다는 증거를 가져오란 말이다!”

후작이 발악을 했지만 경비대장은 무뚝뚝한 표정인 채 코웃음을 쳤다.

“피해 당사자 중 한 분인 비스몽트 공작께서 이미 모든 증거를 입수하셨습니다. 당신이 어린아이들을 탄광으로 납치하여, 불법으로 노역을 시키고 있다는 증거를 말입니다.”

후작의 얼굴이 시뻘겋게 부풀어 오른다. 신음인지 무엇인지,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됩니까? 그 증거뿐만 아니라, 당신이 고용한 용병이 모든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데르송 후작, 당신은 존귀하신 폐하의 백성에게 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된 것입니다.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접어 두시지요.”

경비대장은 또박또박하면서도 음산한 목소리로 마지막 선고를 내렸다. 그가 눈짓을 하자, 경비대원들은 버둥대는 후작을 발로 걷어차다시피 하며 밖으로 끌고 나갔다.

“여보!”

위층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후작 부인과 후작의 두 아들들이었다.

“후작 부인과 후작의 자식들도 모두 체포해라. 진범의 가족들도 모두 심문하라는 폐하의 명령이 있으셨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고요하던 데르송 후작가의 아침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경비대원들은 후작의 서재와 침실을 샅샅이 수색했고, 후작의 가족들은 모두 치안청의 심문실로 끌려가게 되었다.

소란은 데르송 후작가에 그치지 않았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시드레 백작가를 포함한 다섯 군데의 귀족 저택에 치안청의 대원들이 들이닥쳤다.

혼자서 혐의를 다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던 데르송 후작은 시드레 백작을 위시하여 비스몽트 공작을 모함하는 데에 앞장선 귀족들의 이름을 술술 불어 버렸다. 심문관이 제대로 된 심문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느긋한 태도로 하인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던 시드레는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경비대원들을 발견하고도 처음에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경비대 따위가 함부로 드나드는 거야!”

“시드레 백작,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 하겠습니다.”

시드레는 그제야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와 동시에, 데르송 후작이 아침나절에 치안청에 붙잡혀 갔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하인이 뛰어 들어왔다.

“배, 백작님…….”

그는 이미 시드레와 대치하듯 서 있는 여러 명의 경비대원들을 보고 사색이 되었다. 자신이 한발 늦었음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뭐야? 말해.”

“저, 그, 그게…….”

“똑바로 말하지 못해!”

시드레가 패악을 부리듯 발을 탕, 굴렀으나 하인은 이미 그녀가 아니라 경비대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데, 데르송 후작께서…… 저기, 치안청에 잡혀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허리를 숙인 채 쩔쩔매던 하인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빠져나갈 틈만 찾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드레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럴수록 독기 어린 표정을 한 채 경비대원들을 쏘아보았다.

“데르송 후작이 치안청에 잡혀간 것과 나 사이에 대관절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가 무슨 짓을 해서 잡혀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까짓 놈들이 내 집에서 이리 패악을 부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데르송 후작이 왜 잡혀가게 되었는지는 백작님께서 가장 잘 아실 것 같습니다만.”

아침나절에 후작을 체포했던 경비대장은 후작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시드레는 한 번 더 발을 구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놈들의 무도한 행위는 내가 반드시 폐하께 고하겠어! 치안청 상부에도 고발하여 전부 길거리로 내쫓아 버리겠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잡아가려 하다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대 봐!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테니까!”

“비스몽트 공작에 대한 모독과 모함, 거기에 더해 데르송 후작에게 빈민가의 아이들을 납치하여 탄광의 노동력으로 사용하라 조언한 점. 이래도 죄가 없다 하겠습니까?”

시드레의 얼굴은 핏기가 빠져나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난 데르송 후작에게 그러라고 한 적이 없어! 내가 시킨 일이 아니란 말이다!”

“글쎄요, 심문실에서 데르송 후작이 하던 말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만.”

“모함이야! 나를 모함하기 위해 그자가 꾸며 낸 말이야!”

“반박을 하고 싶으시거든 심문관 앞에서 하시지요. 정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강제로 모셔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경비대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명의 건장한 경비대원들이 시드레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은 시드레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은 채 번쩍 들다시피 해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내가 아니야! 그런 것을 시킨 적은 없어! 아악! 이 손 놓지 못해! 이 손 놔!”

시드레는 치안대의 마차에 밀어 넣어지는 순간까지도 고래고래 악을 쓰며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나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정오가 지나도록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해 있던 클라우스는 왕궁에서 마차가 왔다는 소식에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폐하께서 찾으신다 합니다, 공작님. 어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왕궁에서 나온 시종으로부터 전갈을 받은 호즈만은 서둘러 클라우스의 옷을 준비했다. 아직도 잠이 덜 깬 채 비몽사몽 옷을 갈아입던 클라우스가 물었다.

“아체리아는 아직 자고 있나?”

“많이 피곤했던 모양인지라 자게 두었습니다. 요아킴도, 부주방장인 프레드와 루비도요. 밤중에 몰래 나간 것이 그 네 명이더군요.”

“……그래, 자도록 내버려 둬. 깨우지 말고.”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클라우스는 푸석푸석한 얼굴에 겨우 물을 묻히는 시늉만 하고는 마차에 올랐다. 그러고서도 잠이 깨지 않아 가는 길에는 꾸벅꾸벅 졸았다.

필리파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클라우스를 보며 혀를 찼다.

“얼굴이 말이 아니오, 공작.”

“송구합니다, 폐하. 지난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랬겠지. 아침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소?”

“몰랐습니다만, 어떤 소란이었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클라우스의 대답을 들은 필리파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씩 웃었다. 드물게 보이는, 대단히 흡족한 미소였다.

“데르송 후작과 시드레 백작을 포함하여 여섯 명의 귀족들이 치안청 심문실로 끌려갔지. 시드레 백작만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지만, 나머지 다섯 명의 진술로는 그녀가 소문을 꾸며 낸 장본인이라 하더군. 증인이 한두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나 되니 결코 빠져나가지 못할 거요.”

“폐하의 공이십니다.”

클라우스가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자 필리파는 미소를 띤 표정 그대로 콧잔등을 살짝 찌푸렸다.

“내 공이랄 건 사실 전혀 없지. 그대가 데르송 후작이 관리하는 탄광에 사람을 보내어 증거를 모으지 않았소? 게다가 납치범도 공작저의 고용인들이 잡은 것이라 하더군.”

“……그렇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을 벌였더군요.”

“충실한 고용인들을 두어 마음이 흡족하겠군. 틀림없이 아체리아가 주도한 일일 테지?”

왕궁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모든 것을 다 내다보고 있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클라우스는 씁쓸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에게 내가 또 신세를 졌군.”

“존귀하신 폐하와 폐하의 백성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신세라는 말은 당치 않습니다.”

“아니, 내가 좀 더 기민하게 움직였어야 했네. 경비를 강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수색하도록 했어야 했어. 그런 대응으로는 오히려 범인이 더 은밀히 숨어 버릴 구색만 주는 것이 아닐까……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될 것도 생각해야만 했지. 그런 이유로 강력한 대처를 미루고 있었던 것인데, 미진한 방식으로 공작에게도 피해를 오래 끼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네.”

필리파의 어조는 담백했으나 사과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클라우스는 짧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저 하나의 안위보다 폐하의 백성들을 우선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러나 염려해 주신 데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소문이 하루아침에 가라앉지는 않겠지. 데르송 후작을 포함하여 이번 사태를 주도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포고문으로 작성하여 공포하도록 하겠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진범이 누구였는지,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명백하게 밝혀질수록 사람들의 불안도 빨리 종식되겠지요.”

그리고 클라우스에 대한 의심과 불신도 빠르게 가실 것이다. 필리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치안청으로부터 올라온 보고서를 손끝으로 슬슬 훑었다.

“데르송 후작이 소유하고 있던 탄광으로 조사대를 파견했네. 어차피 영지와 재산을 몰수할 것이니 이제 그것은 왕실의 것이지. 고초를 오래 겪은 그대를 위로할 겸, 영지의 일부를 그대에게 하사하고자 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클라우스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필리파를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않은 제안이었다.

“데르송 후작의 영지를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듣기로는…… 그의 영지는 대부분 광산의 수입에 의존하고 토지가 척박하다지만 한 가지 장점이 있다더군.”

“그게 무엇인지요?”

“아주 맛있는 감자의 품종이 자란다고 하던데. 수도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품종도 뿌리를 내려 수확이 시작되었다고 들었네.”

필리파는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가볍게 넘기며 짓궂은 듯한 미소를 띠었다.

클라우스는 그제야 필리파가 뜬금없이 데르송 후작의 영지를 떼어 주겠다고 한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체리아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내리는 상이었다.

공작가에서 그까짓 감자 수입이 탐이 날 리는 없다. 하지만 아체리아는 분명히 흥미를 가지겠지.

클라우스는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눈으로 필리파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께서 내리시는 것을 어찌 거절하겠습니다. 그러시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감자를 수확하여 뭔가 만들게 되거든 내게도 맛보여 주는 것을 잊지 말고.”

“제가 직접 요리를 하진 않겠지만, 요리할 사람에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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